이렇게 된 이상 이서도 장희령과 계속 얽히고 싶지 않았다.“희령 씨가 나랑 갑자기 친한 척하는 거, 그 이유를 난 잘 알고 있어요.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확답을 듣고 싶다면 해드리죠. 우린 힘들 거 같아요!”장희령은 안색이 변했다.“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아? 나랑 친구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고?”“그건 그들 사정이고, 나는 그럴 생각이 없어요.”말을 마치고 이서는 옆에서 좋은 구경거리 감상하고 있는 심가은에게 말했다.“우리 가자.”심가은은 앞으로 나가 득의양양하게 이서의 팔을 잡고 뒤돌아서서 장희령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속이 정말 시원했다.장희령은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졌다.빌딩을 나서자마자 심가은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서 씨, 방금 너무 멋졌어! 장희령은 세상의 중심이 자기인 줄 아는 사람이야. 그래서 자기밖에 몰라!”이서는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굳이 두 사람의 원한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레스토랑은 이미 예약해 뒀으니, 거기로 가자.”“그래, 출발!”심가은은 완전히 흥분된 상태였다.장희령이 다른 사람 앞에서 코가 납작해진 걸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너무 통쾌했다. 이따가 축하주라도 한 잔 마셔야 하나?’ 장희령이 생각했다.레스토랑에 도착한 이서는 화장실에 가는 틈을 타 하이먼 스웨이에게 전화를 걸었다.“엄마, 우리 레스토랑에 도착했어요.”[알았어, 사람은 다 섭외했으니, 넌 밥 먹고 자연스럽게 가면 되.]이서는 ‘응’ 하고 전화를 끊었다.밖으로 나간 지 몇 걸음 안 되어 핸드폰 화면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확인해 보니, 낯선 번호였다. 게다가 외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머뭇거리며 받았는데 전화기 너머는 조용했다.“여보세요?” 이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여전히 아무 소리가 없었다.“안 들리세요? 말씀 없으시면 전화 끊겠습니다…”이서가 전화를 끊으려 했다.저쪽에서 깨끗하고 맑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서야, 나야.]이서는 소지엽의 목소리라는 것을
소지엽은 아쉬운 기력이 역력했다.[그래, 그럼 끊을게.]이서는 ‘응’ 하고 핸드폰을 내려놓고 룸으로 걸어갔다.룸에 들어가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핸드폰 화면은 마침 꺼졌다.눈치 빠른 심가은은 액정에서 소지엽 세 글자를 보았다.순간 소지엽과 맞선 보던 날의 모습이 문득 떠올라 눈빛이 다소 차가워졌다.“지엽 씨와 아직 연락 있어?”“응. 아주 가끔.”“그쪽에서 연락 오는 거야, 아니면 이서 씨가 하는 거야?”이서는 젓가락을 들며 말했다.“음… 글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왜? 갑자기?”“아무것도 아냐…”심가은은 웃었다.다만 문득 소지엽과의 관계에서 매번 그녀가 연락했던 게 생각했다. 소지엽은 한번도 주동적으로 연락한 적이 없었다.그의 성격상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꼭 그런 건 아닌 듯했다.“지엽 씨가 자기한테는 좀 특별한 것 같은데…”심가은은 일부러 무심한 척 물었다.이서는 갑자기 속으로 움찔했다.“글쎄? 친구니까.”“지엽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이서는 침착하게 손을 닦았다.“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알 바는 아니고 간섭할 수 없고… 내 처신이나 잘하면 되지 뭐. 나 이미 결혼했잖아. 남편도 나 많이 아껴줘. 다른 사람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심가은은 턱을 괴고 이서를 보며 가식적으로 웃었다.아쉽게도 소지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그녀는 젓가락을 집고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는 눈치채지 못하고 열심히 밥만 먹었다.식사가 끝나자 두 사람은 문 앞에서 갈라섰다.이서의 차는 레스토랑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레스토랑 입구에서 멈추었다.그녀는 차에서 내려 다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매니저는 이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포장된 컵과 수저 등을 이서에게 건네주었다.“방금 그 아가씨가 사용했던 물건입니다.”“감사합니다.”매니저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천만에요.”“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네, 안녕히 가세요!”
10여 년 기다렸던 소식을 하이먼 스웨이는 드디어 듣게 되었다.그녀는 한동안 제자리에 서서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한참이 지나서야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돌려 이서에게 물었다.“이서야, 나 꿈 꾸는 거 아니지? 정말 내 딸 찾은 거 맞지?!”“엄마, 꿈 아니에요. 축하해요.”이서가 기뻐하며 말했다.“드디어 친딸을 찾았어요!”“나…”하이먼 스웨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서를 껴안았다.“이서야, 고마워. 다 네 덕이다. 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친자 확인을 할 수 없었을 텐데.”이서는 하이먼 스웨이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녀가 마음을 가라앉히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엄마, 이제 어쩔 생각이에요? 그냥 신분을 밝힐 건가요?”하이먼 스웨이는 머뭇거렸다.“이서야, 가은이와 안지 오래 되었니? 우리 가은이는 어떤 아이야? 내가 지금 심씨 집 가서 진실을 밝힌다면 우리 가은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이먼 스웨이가 많은 질문을 연달아 하자 이서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엄마, 우선 조급해 말고 다시 잘 생각해봐요, 가능한 상처받지 않게 하면서 진실을 말해주는 게 좋을 거 같아요.”“그래, 네 말이 맞다. 나 서두르지 않을게, 하나도 안 급해.”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전혀 그럴 수 없었다. 십여 년 동안 찾아 헤맨 딸이다.잠자코 생각하니 또 가슴이 아파왔다.이서는 하이먼 스웨이를 호텔로 데려다 준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오늘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가 집에 돌아오자 이서는 바로 지쳐 쓰러졌다.지환의 품에 안긴 이서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정말 잘 됐죠. 엄마가 드디어 친딸을 찾았어요.” 이서는 지환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속은 허탈했다.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곧 엄마의 사랑을 잃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섭섭한 건 어쩔 수 없었다.하이먼 스웨이의 사랑은 따뜻하고 세심했다. 끝없이 주고도 바라지도 않았다.그녀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그녀도 점차 어머니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거는 자신감도 생기게 되었다.
지환도 이서의 비명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왜 그래?”지환이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다. 이서는 지환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의 품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은 이서에게 안도감을 주고 있었지만 두 팔은 자신도 모르게 여전히 덜덜 떨고 있었다.지환은 손으로 이서의 팔을 어루만졌다.그제야 악몽으로 인해 경직했던 몸이 서서히 풀렸다.“악몽 꿨어?” 지환은 이서를 꼭 껴안고 애처롭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저었다.그녀는 악몽에 대해 얘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환이 알게 되면 틀림없이 걱정할 테니.“자기야.” 지환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악몽 꾼 거 아니야?”“아니에요.” 그녀는 부인했다.“가위눌렸어요. 괜찮아요, 얼른 자요.”이서를 보고 침묵하던 지환은 이서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응, 자기도 얼른 자.”그녀는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눈만 감으면 어르신이 침대맡에서 그녀를 쳐다보는 장면이 떠올랐다.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건 지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이서는 구실을 만들어 외출했다. 지환도 그제야 일어나 이상언에게 전화를 걸었다.“마이클 천 의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마이클 천은 이상언이 섭외한 정신건강 상담 전문의이다.그들은 이서의 상황에 대해 전화로 얘기한 적이 있다. 마이클 천은 의료진이 개입한 약물치료보다는 스스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그러나 현재의 상황으로 봤을 때 이서가 스스로 헤쳐 나올 수 있을지 지환은 심히 걱정이 되었다.[왜?]이상언이 되물었다.[이서 씨한테 뭔 일 있어?]“주소 줘!” 지환이는 이를 악물었다.이상언은 어쩔 수 없이 마이클 천의 주소를 지환에게 주었다.전화를 끊고 잠시 고민하던 이상언은 마이클 천이 있는 호텔로 향했다.두 사람은 호텔 1층 카페에서 만났다. 이상언은 지환을 뒤따라가며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급하게 마이클 천을 찾는
“대표님, 사모님의 경우 현재 가장 좋은 방법은 자가 치유입니다. 지금 약물 치료나 물리 치료를 진행한다면 향후 더 큰 고통이 따를 겁니다.”이상언은 지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지환아, 우리 모두 이서 씨가 빨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있어. 너도 알다시피 마이클 천은 이 분야 최고의 정신과 의사야. 그분은 PTSD 방면에서 최고권의자라고. 이서 씨는 분명히 자가 치유로 완쾌할 수 있을 거야. 현재로선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이런 경우 굳이 약물을 사용할 필요 없어. 심적 육체적 고통을 겪을 필요 없거든. 친구야, 이서 씨가 빨리 고통 속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너의 마음은 잘 알아. 하지만 지금 이 과정은 이서 씨 스스로 이겨내야 해. 정말 부득이하게 물리치료나 약물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옆에서 이서 씨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데 어쩌면 그게 지금보다 훨씬 괴롭고 힘들 수 있어.”지환은 주먹을 들어 앞에 있는 책상을 쾅 쳤다.그 진동으로 책상 위에 놓인 물컵의 물이 넘쳐흘렀다.마이클 천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겁에 질려 불안한 눈빛으로 이상언을 바라보았다.이상언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나가라고 표시했다.마이클 천은 이때다 싶어 얼른 방문을 나섰다.문이 닫히자 이상언은 지환의 뒤로 가서 말했다.“친구야, 지금 너의 심경을 잘 알겠지만, 나도 친구로서 한 마디 해야겠어. 지금 이서 씨를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니가 이성을 잃지 않는 거야. 진정 좀 하고! 난 마이클 천이랑 밥 먹고 올게.”말이 끝나자 이상언도 문을 열고 나갔다.방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지환만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빨갛게 충혈된 눈동자로 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하경철, 작은아빠, 정말 대단하다.’‘이렇게 큰 폭탄을 던져주고 돌아가시다니.’‘죽어서도 기어코 이서를 하씨 집안에 들이려고 하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더는 하씨 가문을 봐줄 필요가 없어졌어. 민씨 그룹을 인수한 후 인적 물적 자원을 이용
이서는 눈썹을 찡그렸다.‘미친 놈!’‘윤수정이 생명의 은인이든 아니든 내 어렸을 적 기억이랑 무슨 상관 있다고.’“그러니까... 어렸을 때 수정이가 네 목숨을 구했으니 지금 걔가 무슨 짓을 하든 무조건 다 봐 준다는 거야? 날 죽이려고 드는데도?”하은철은 이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어렸을 때 기억 전혀 없어?”“어렸을 때? 무슨 일?”“우리가 납치되었던 일말이야.” 하은철은 십여 년 전 일어난 일을 이서에게 낱낱이 말했다. 그러고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의 얼굴에서 약간의 얼굴 변화를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그러나 그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이서는 고개를 저었다.“아무 기억이 없는데?”“아마 그 때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부분적인 기억상실증이 생겼을 수도 있어. 그 일 이후 네가 출국했다고 할아버지한테 들었거든...”이서의 머릿속에 몇 개의 희미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그런데 기억의 파편들을 쫓으려 하자 오히려 그 기억들이 자취를 감추었다.“그랬어? 전혀 기억이 없는데? 그럼 내가 너 때문에 해외 나간 거야?”이서가 어렸을 때부터 성지영은 매일 그녀에게 장차 커서 하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고 세뇌시켰다.해외에 나가는 것도 더 나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였고,하씨 집안에 걸 맞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서였다.“너 잘못 기억한 거 아니야...?”하은철은 잠시 침묵하다가 문득 깨달은 기색을 드러냈다.“기억 못하는 게 아니고, 해리성 기억상실증도 아니야. 누군가가 너의 기억을 조작한 거야.네가 출국한 것도 그 납치 사건 때문이거든. 할아버지도 네가 심리상담이 필요할 거라 말씀하셨어.”“심리 상담?”이서의 머릿속에 또 일부 화면이 스쳐 지나갔다.이번에는 또렷했다.그녀가 대여섯 살 때인 것 같았다.어느 날 성지영이 그녀를 데리고 의사에게 갔다.그 때 그녀는 정신과 의사라는 몇 글자를 정확하게 읽어냈다.성지영은 그런 그녀를 똑똑하다고 칭찬까지 했다.그때의 성지영은 정말 따뜻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이서는 장황한 표정의 하은철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설마 오늘 민씨 그룹에 대한 내 입장을 알아보려고 여기 온 거야?”‘뭘 그리 우물쭈물한대? 무슨 기업기밀도 아니고.’이서는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생각이 있긴 하지.”하은철은 얼굴에 희색을 띠었다.“그럼 뒤에서 어음 배서를 받아야 할 텐데?”그가 전하고 싶은 말은 그가 이서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입가에서 맴돌던 말은 퇴색되어 뱉고 말았다.이서는 이상한 눈빛으로 하은철을 바라보았다.“물론 민씨 그룹을 인수하려면 틀림없이 은행 대출이 있어야 하긴 하지. 아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더 말하지 않을게.”...하은철이 나간 후 이서는 회사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민씨를 인수한 일에 대해 이서는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지만 특별히 중시하지는 않고 있다.민씨 그룹을 인수할 지 말지에 관해서는 이서에게 있어 아직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게다가 자신도 없었다.비록 지환한테서 하은철 삼촌이 배서를 해준다는 얘기를 전해 듣긴 했지만, 자신이 이렇게 큰 회사를 인수할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그리고 솔직히 요즘 회사를 운용하는 것보다 대본 쓰는 게 훨씬 더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하이먼 스웨이와 얘기를 나눈 후 이서는 영감이 끊이지 않았다.요 며칠, 그녀는 이미 만 자에 가까운 대본을 써냈다. 하이먼 스웨이가 최근 심가은 일로 바쁜 게 아니었다면 이서는 벌써 찾아가 대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조언을 구했을 것이다.‘어휴.’‘엄마의 친딸 찾기는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네.’이서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에야 회사를 나왔다.사무실 입구를 나와서야 심소희가 아직 가지 않았음을 발견하였다.“소희야, 아직 퇴근 안했어?”심소희는 고개를 들었다.“하 던 일 끝내고 가려고요. 곧 끝나가요.”책상 앞에서 바삐 움직이는 심소희를 보며 안 본
‘타이밍이 이렇게 아쉽다니?’’그녀는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심소희를 보았다.임현태를 보는 순간 심소희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소희야, 미안해, 내가...”“언니, 남편 분이 임현태 씨에게 픽업해 오라고 부탁했나 봐요. 역시 언니 집에 가는 건 눈치 없는 짓인 거 같아요.”차에 타고 있던 임현태가 차에서 내렸다.“아가씨, 소희 씨...”심소희는 태연자약하게 임현태와 인사를 했다.“안녕하세요.”임현태의 안색이 더욱 부자연스러워졌다.“저는... 사장님께서 아가씨 모셔오라고 하셔서...”심소희는 웃으며 말했다.“언니, 내 말이 맞죠? 그럼 방해꾼은 이만 물러 가겠습니다.”이서는 심소희에게 같이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괜히 또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있으면 서로 어색해질까 봐 걱정했다.결국은 임현태가 나서서 심소희를 불러 세웠다.“소희 씨, 데려다 줄게요. 같이 가요.”이서는 심소희를 보았다.심소희는 망설이는 눈치였다. 제자리에 서서 꼼짝 않고 있다가 잠시 후에야 입을 열었다.“네, 감사합니다.”셋이서 같이 차에 탔다.차에서 이서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썼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은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이서는 심소희가 가장 좋아하는 가십으로 화제를 전환했다.“소희야, 연예계에 요즘 무슨 재밌는 거 없니?”심소희는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얘기를 꺼내자 말문을 열었다.“연예계에 요즘 이렇다 할 빅 뉴스는 없는데... 그러고 보니 언니 관련 찌라시는 하나 있어요.”“나? 내 찌라시가 있다고?” 이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언니가 모르고 있을 줄 알았어요. 요즘 인터넷에 하 대표님이 민씨 그룹을 인수할 의향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하은철?”“네.”“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이서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내 얘기 계속 들어봐요, 네티즌들은 하은철이 민씨 그룹을 인수하는 목적이 윤수정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거라고 하던데... 언니, 웃기지 않아요?”돈이 남아 도는 것도 아니고
“형, 안녕.”소민찬은 소지엽의 질문을 피하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소지엽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소민찬을 바라보았다.“민찬아, 아직 내 질문에 대답 안 했잖아. 네가 왜 여기 있냐니까?” 소민찬은 이제 마냥 대답을 회피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분명히 실마리가 드러날 것이니 말이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나만 보고 있어...’소희는 소민찬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며 의문을 제기했다.“모르셨어요? 소민찬 씨는 유인 언니의 남자 친구예요. 오늘 여기 온 이유도 사실상 저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온 거죠.” “심유인 씨랑 사귄다고?”지엽이 눈살을 찌푸렸다.“며칠 전에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은 여자는 심유인 씨가 아니었잖아?” 소민찬과 심유인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형, 아무래도 잘못 기억하는 것 같아. 그날 같이 밥을 먹은 사람도 유인이었어.” 소지엽은 지난번에 집에서 함께 식사한 여자가 심유인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여자의 성이 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는 어렴풋이 기억나.’‘그 여자는 절대 심유인 씨가 아니었어.’ “아니, 그 여자는 심유인 씨가 아니었어!” 소지엽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리고 그 여자가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은 건 불과 며칠 전의 일이잖아. 지금은 왜 또 심유인 씨와 사귄다는 거지?” 소민찬은 한참 동안 우물쭈물하며 말하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야 다소 역정을 내며 말했다.“형, 이건 내 사적인 일이라, 형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닌 것 같아. 부모님도 내가 여자 친구를 몇 명을 사귀는지 신경 쓰지 않으시는데, 형이 무슨 자격으로 이러는 거야?”“그래, 나는 네 사적인 일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어. 하지만 계속 본사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본사에 들어가고 싶다면 절대 스캔들을 만들면 안 돼! 그런 일은 큰 파장을 일으킬 거라고!” 소민찬은 당황하기 시작했다.‘아버지는 나를 좋아하지
소민찬이 비웃으며 말했다.“허, 천재다운 모습이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심근영이 말했다.“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군요.” “천재답게 생긴 게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런 규칙은 누가 정한 거죠?” “어차피 임현태 씨는 허풍을 떠는 거지 않습니까? 시험에 합격에서 하버드에 들어갔을 리가 없다는 말입니다.”“두 사람, 문맹이거나 눈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에요?”소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현태 오빠의 소개란에 당시 오빠의 성적을 적어둔 게 있잖아요. 클릭해서 좀 보세요. 현태 오빠는 수석으로 하버드에 들어갔다고요.”“그리고 오빠에게 추천서를 써준 사람은 하버드에서 공정하기로 유명한 물리학 교수라고요.”“설마 그 교수님보다 두 사람이 더 대단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죠?” 소민찬과 심유인은 그제야 상세 내용을 확인하고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가 또 빨갛게 달아올랐다.두 사람은 확인도 하지 않고 성급하게 큰소리를 친 것을 후회했다.‘처음부터 제대로 확인했다면, 임현태를 다른 방식으로 비웃을 수 있었을 텐데.’“그게 뭐 어떻다고 그래?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잖아. 하지만 우리 민찬 씨는 달라. 단순히 해외 유학파일 뿐만 아니라, 자동차 경주, 승마, 골프도 할 줄 안다니까?” “소희야, 네 남자 친구는 그렇게 고상한 취미는 즐길 줄 모르지?” 현태가 말했다.“하 대표님의 곁에 있는 경호원에겐 기본인 것들입니다. 만약 그것도 할 줄 모른다면, 하 대표님은 저를 곁에 두지 않으시겠죠.”‘기본’이라는 말은 소민찬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완전히 짓밟는 것이었다. 자동차 경주, 승마, 골프...이런 것들은 흔히 ‘재산을 낭비하며 점차 타락하는 부잣집 도련님들의 기본 패키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훌륭한 실력을 갖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현태에게는 그저 기본일 뿐이었다.‘감히 날 모욕해?’소민찬이 일어서서 자리를 떠나겠다고 말하려던 참에 고용인이 뛰어와 말했다.“윤 대표님
심유인과 소민찬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가까스로 하버드에 합격했다고?’‘허풍 떠는 거 아니야?’ “정말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이라고요? 하버드 학원 출신이 아니고요?” 현태는 진심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저는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이 맞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직접 조사해 보셔도 되고,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두 사람은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핸드폰을 꺼내 하버드 대학교 홈페이지를 검색했다.두 사람은 약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으나, 홈페이지 링크를 누르자마자 우수한 동문의 행렬에 있는 현태의 얼굴을 발견했다.이를 믿을 수 없는 것은 이지숙도 마찬가지였다.‘정말... 사진 속의 사람이 현태 씨라고?!’ ‘말도 안 돼!’‘소민찬이 어느 대학교에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Y국에 있는 대학교 출신일 거야. 학문도, 능력도 없는 재벌 2세들이 어디서 신분 세탁을 하는지는 불 보듯 뻔한 거니까.’ Y국의 학위는 이수하기가 가장 수월해서 누구나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외부 사람은 분명히 알지 못해서 겁을 먹기 일쑤였다.심유인은 원래 소민찬의 학력을 빌미로 현태를 놀라게 하려 했다.하지만 놀래키기는커녕 본인이 놀라게 된 셈이었다. 심유인은 곧 문제점을 발견했다.“... 하버드 대학교에 체육생으로 입학한 게 아니네요? 전공은 물리학이랑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임현태 씨는 체육에 타고난 거 아니었나요? 왜 물리학을 전공한 거죠?”“아, 시험 봐서 들어간 게 아니라, 부정 입학이었나 보네요, 그렇죠?” 소민찬은 심유인의 말을 듣고, 혈색을 띠며 현태의 학력을 비웃었다.“하하, 유인아, 그런 건 부정 입학이나 비리가 아니라 기부라고 하는 거야.”“임현태 씨, 입학하는 데 얼마가 필요하던가요?”“하하, 하 대표님과 대체 무슨 사이길래 그렇게 아낌없이 돈을 쓰는 거죠?” “저는 학력을 산 적도, 학력을 위해서 돈을 쏟아부은 적도 없습니다. 정당하게 시험으로 합
심근영이 얼른 말했다.“그래, 내가 경솔했군. 하지만 현태는 내 말의 뜻을 알 거야.” “우리 소희는 어깨를 들지도, 손을 쓰지도 못해. 이 아이와 서로 보완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으니, 아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모두 화기애애한 웃음을 짓는 반면, 옆에 있던 심유인과 소민찬만이 웃지 못했다. 더욱이 소민찬은 창피해 죽을 것 같았다. 사실, 소민찬이 여기에 온 것은 심유인이 돈을 주면서 자신의 남자 친구 역할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즉, 소민찬은 여기에 와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만 하면 된다는 것. 하지만 지금의 소민찬은 웃음거리로 전락했으니, 그가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생각한 소민찬은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하지만 심유인은 곧장 가서 소민찬을 끌어당겼다.“어디 가요?” 소민찬은 이미 주방에 도착한 심근영 일가를 힐끗 보았는데, 그들은 소민찬과 심유인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소민찬이 목소리를 낮추었다.“당연히 가야지! 왜, 계속 남아서 네 사촌 동생의 남자 친구한테 굴욕이라도 당하라는 거야?!” “저는... 저 사람이 그저 운전기사인 줄 알았다고요.”“일단 진정해 봐요. 어쨌든 민찬 씨는 소씨 가문의 사람이잖아요.” “소씨 가문의 도련님이 한낱 경호원보다 못하겠어요?” 소민찬은 분명 소씨 가문의 사람이지만, 소태성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더군다나 소지엽이야말로 소태성 같은 사람인데, 소민찬이 어떻게 명함을 내밀 수 있겠는가? 이것은 소민찬이 가족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외국으로 내몰린 이유이기도 했다. 심지어 이번에는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 소태성에게 즉시 떠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심유인이 시선과 체면이 하늘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 소민찬은 난감해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봤자 나는 소씨 가문의 도련님일 뿐이야. 사람을 죽일 듯이 때리는 사람은 당해낼 수 없다고.” 심유인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가요, 저 사람들의 기세를 제대로 꺾어놓자고요.”
“엄마, 뭔가 오해하신 것 같아요. 현태 씨가 왜 그 돈을 은행에서 대출받았다고 생각하세요? 현태 씨의 돈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소희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웃음을 터뜨린 사람은 심유인이었다.“소희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운전기사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이 있겠어?” 소희도 심유인을 따라 웃기 시작했다.“언니, 현태 오빠가 누구의 운전기사인 줄 알고나 말하는 거예요?” “뭐?”심유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이서 언니예요.”“이제 이해가 좀 되세요?”소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심유인의 표정을 보고 말을 덧붙였다.“현태 오빠가 운전기사인 건 명백한 사실이에요. 하지만 또 다른 직업도 있어요. 그건 바로 이서 언니를 보호하는 거죠.” “운전기사일 뿐만 아니라, 경호원이란 말이에요.” 심유인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시큰둥하게 말했다.“흥, 그게 뭐 어쨌다고 그래? 기껏해야 운전기사나 경호원을 하는 사람인 거잖아. 우리 집에도 경호원이 있어. 경호원이라 해봤자 한달에 몇백만원을 버는 게 전부일 텐데, 90억짜리 헤어샵을 사는 게 말이나 돼?” 소희는 일부러 자랑하는 것 같아서 망설였지만, 현태의 진짜 과거를 털어놓기로 했다.“허, 몇 년 동안 UFC의 챔피언 자리를 지킨 사람한테, 몇십억이 무슨 대수라고 그러세요? 혹시 꿈이라도 꾸는 거예요?” “UFC?!”심유인은 격투기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UFC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소희는 설명하기도 귀찮다는 듯 말했다.“모르면 인터넷에 찾아보시던가요.”“언니, 제가 언니의 속셈을 모를 줄 알아요? 현태 오빠가 평범한 운전기사라고 생각해서 일부로 언니의 남자 친구도 부른 거잖아요.” “저희 부모님께는 남자 친구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은 언니의 남자 친구와 제 남자 친구를 비교하고 싶은 거잖아요, 안 그래요?” “이런 말까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언니가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 같아서 말씀해 드릴게요. 제 남자 친구가 언니의 남자 친구보다 돈이 더 많을
현태는 설명하기 시작했다,“제가 그 헤어샵을 인수하긴 했지만, 사모님께 드릴 거거든요.” “앞으로는 사모님께서 그 샵의 사장님이십니다. 미용은 하고 싶을 때 하시면 됩니다.”심씨 가문에는 전속 미용사가 있었지만, 꽤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다.게다가 이지숙이 미용 기계를 사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어떤 시술을 두세 달이나 반년 정도 지나야 다시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미용 기계에 먼지만 앉지 않겠는가?결국 이지숙은 헤어샵에 가서 시술받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헤어샵에 가는 것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시간을 예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가끔 일이 생겨서 시간을 놓치면, 다시 예약을 잡아야만 했다.이지숙은 진작에 헤어샵을 인수하려고 했는데, 줄곧 자신에게 적합한 헤어샵을 찾지 못했다.이지숙은 현태가 선택한 헤어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하지만 그 샵의 사장은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외국에서도 적지 않은 명성을 떨치던 터라 온 가족이 외국으로 이사하기도 했다. 이지숙은 이미 그 사람과의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는 않았고, 모든 일은 흐지부지되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생각하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었다.심유인은 ‘말도 안 돼’ 라는 말만 연신 해댔다.“말도 안 돼요! 임현태 씨는 그냥 운전기사잖아요. 대통령을 위해 운전한다고 해도 헤어샵을 살 수는 없을 거라고요!”그 헤어샵은 심유인도 아는 곳이었다.‘거긴 적어도 100억은 있어야 인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이지숙도 마음속에 품었던 호기심을 드러냈다.“이 샵의 사장이 계속 외국에 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그 사람하고 연락한 거죠?” “아, 그 부분은 하 대표님께서 힘써주셨습니다. 마침 하 대표님께서 그 샵의 사장님과 구면이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하 대표님의 곁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장님께서 흔쾌히 샵을 양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지숙이 물었다.“하 대표가 이 일에 직접 나섰다고요?” “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순조롭
심유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고작 한 세트가 다예요?”“그래도 이해는 해드릴게요. 이게 능력 범위 내에서 고를 수 있는 가장 좋은 제품이었을 테니까요. 800만원, 900만원을 저축하려면 몇 개월은 걸려야 하잖아요, 그렇죠?” 이지숙이 곧장 입을 열었다.“유인아, 그게 무슨 말이니? 선물은 금액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거란다.” “그래.”심근영도 현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네 숙모를 위해 스킨케어 제품을 골랐다는 건, 충분히 마음을 썼다는 증거란다.”심유인이 입을 삐죽거리자, 현태가 웃으며 말했다.“아무리 값비싼 선물보다 마음이 중요하다지만, 조금 쑥스러워서 다른 선물도 준비해 왔습니다.”심유인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그 선물도 화장품은 아니겠죠? 또 몇백만원짜리인 건가요?”“유인아!”이지숙은 다소 불쾌해졌지만, 성격이 좋은 현태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아닙니다, 이번 선물은 스킨케어 제품보다 조금 비싼 거거든요.”현태는 이 말을 끝으로 작은 선물 상자를 꺼냈다.심유인이 목을 길게 빼며 재촉했다.“숙모, 어서 열어보세요. 목이 빠질 것 같은데, 대체 뭐예요?” 이지숙은 손에 쥔 작은 상자를 묵묵히 바라보았다.‘꽤 가벼워. 아무래도 큰 선물은 아닌 것 같아.’“밥부터 먹고 열어보자꾸나.” “지금 열어보시죠. 심유인 씨도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신 모양인데요.” 현태가 이지숙을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심유인이 경멸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방금 그 스킨 케어 제품보다 조금 더 비싼 선물을 꺼내면, 내가 감탄한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허, 정말 웃겨.’‘저것도 고작 몇백 만원짜리 선물일 뿐일 거야.” “숙모, 선물한 사람도 저렇게 말하잖아요. 어서 열어보세요!”이지숙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선물 상자를 열자마자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스킨케어 제품이 아니라...’‘작은 증서?’상자를 또 한 번 확인한 이지숙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이건.
“그래, 네 남자 친구도 같이 봐주마.”심근영이 대답했다.“같이 식사하자꾸나, 그럼 된 거지?” 심근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심유인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감사합니다, 삼촌, 역시 제게 정말 잘해주시네요.”소희는 그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연기가 계속될 모양이군.’ “삼촌, 민찬 씨가 선물도 사 왔어요. 이것 좀 보세요!”심유인은 심근영을 끌고 선물 더미 앞에 다다랐고, 이지숙에게 보여줬던 선물 세 개를 집어 들었다.심유인은 현태가 가져온 선물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심근영은 심유인의 말을 듣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마음은 고맙지만, 우리는 네 친부모가 아니잖니. 네 남자 친구가 우리를 위해 이렇게 많은 돈을 쓰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구나.”“우리 회사에 가서 돈을 받고, 같은 값어치의 답례품을 사주도록 하렴.” 심유인은 순간적으로 너무 기뻐서 눈꼬리를 치켜들었다.사실 그 선물들을 산 사람은 심유인이었는데, 그녀는 수중에 그렇게 큰돈이 없어서 모두 신용카드와 할부로 결제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심씨 가문의 회사에 가서 돈을 받으라니!심유인은 이 기회에 카드 빚을 메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금 더 챙길 수도 있었다. 나중에 누군가 물어본다면, 민찬에게 답례 선물을 산 것이라고 하면 그만일 테니 말이다.생각할수록 심유인은 점점 더 흥분했고, 심근영이 이미 허리를 숙여 선물 상자를 하나 집어 든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이 안에는 뭐가 들었지?”심유인은 심근영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얼른 말했다.“삼촌!” 심근영이 동작을 멈추고 물었다.“왜?” “그게...”심유인은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안에 든 물건이 무엇인지는 다른 사람이 절대 알면 안 돼.’ ‘적어도 심소희의 남자 친구라는 사람은 절대 알면 안 된다고!’ “소희의 남자 친구분도 선물을 가져왔다고 들었어요. 아직 그 선물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했는데, 그것부터 열어 보는 게 어떨까요?” 심근영은 현태를 바라보았다
현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심유인은 즐거워했다.“와, 가난하긴 해도 염치는 있으신가 보네요. 하지만 그게 유일한 장점이겠죠?” 선물은 현태가 스스로 준비한 것이기에, 소희도 현태가 무슨 선물을 샀는지 몰랐다.그래서 현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소희는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 듯했다.“오빠, 무슨 선물을 샀는데요?”‘소민찬보다 못한 선물이면 큰일인데.’ 소희는 선물로 심유인과 경쟁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어쨌든 현태가 부모님을 보러 오는 날이니, 선물의 품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현태가 심씨 가문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소희는 현태가 심씨 가문의 권세나 재물 탓에 손가락질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현태가 웃으며 말했다.“우선 들어가자. 곧 알게 될 거야.”이지숙도 계속 밖에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말했다.“그래요, 무슨 얘기든 들어가서 하자고요.”고개를 끄덕인 소희가 현태의 선물을 들어주려 하자, 현태가 말했다.“괜찮아, 내가 들게.”이 세심한 배려는 곧장 이지숙의 눈에 띄었는데, 여자는 본래 본능적인 행동을 가장 신경 쓰기 마련이지 않은가?현태의 행동을 본 이지숙은 소희가 거짓말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겉으로 보기에는 덩치도 크고 투박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의외로 세심한 면이 있네?’이렇게 생각한 이지숙은 현태를 다소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하지만 현태는 이지숙의 반응이 조금 변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들이 거실로 들어서자, 이지숙은 고용인에게 심근영을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사실, 심근영은 일찍 깨어났기에,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심근영이 시간을 질질 끌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2층에서 현태를 관찰했기 때문이었다.고용인의 동정을 들은 심근영이 매무새를 다듬으며 말했다.“곧 나가도록 하지.” 심근영은 고용인이 떠난 후에야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그제야 현태의 생김새를 똑똑히 보았다. 현태는 키가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