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용은 어리둥절했다.“네? 가업을 물려 받는다고요?”‘윤씨 그룹…… 망한 거 아니었나?’‘지금 그 윤씨 그룹은 자산의 가치도 없을 텐데…….’“네.”“아니, 윤 총괄님, 절대 충동적인 결정 내리지 마세요. 장지완의 일 처리 방식에 대해, 저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니까…… 내 말인즉,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 때문에 자기의 직업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물론 장지완 씨와 전혀 관계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제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합니다. 거의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직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윤씨 그룹이 다음 달에 새로운 CEO를 선출하기 때문입니다. 저…… 윤씨 그룹을 살리고 싶거든요.”할아버지 세대처럼 찬란한 업적을 내진 못하겠지만, 파산 직전의 윤씨 그룹을 살리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매우 만족할 것이다.김청용은 멈칫했다.“그나저나 최근 몇 년 윤씨 그룹은 줄곧 적자 상태에 처해 있다고 들었는데, 괜찮겠어요?”“네, 저 이미 마음 굳혔습니다.”이서는 사직서를 김청용의 앞에 건네주었다.“사장님께서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김청용은 눈앞의 편지봉투를 보면서 난처했다.그러다가 한참 후에야 말했다.“이렇게 하죠. 사직서는 먼저 받아 두겠습니다. 만약 이서 씨가 윤씨 그룹의 새 CEO로 선출된다면 그 때 정식으로 사직 처리하는 걸로 합시다. 어떻게 생각해요?”“이해해주시고 편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신임 부장이 오시면 인수인계도 해야 하니, 그 때까지는 계속 출근할 겁니다.”“윤 총괄의 얘기를 들어보니, 차기 CEO에 선출에 자신만만 한 거 같은데요??”이서가 웃었다.“그럼 먼저 축하드립니다.”“감사합니다.”김청용은 이서와 몇 마디 더 나눈 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지체없이 이천에게 전화를 걸었다.“이 비서님, 큰일났습니다. 윤 총괄이 사직서를…….”윤이서는 배후 보스의 조카며느리다.이렇게 큰 일을 김청용 혼자서 결정
지환은 일어서서 낙지창 앞으로 다가갔다. 거리에 차량과 인파로 붐볐다. 윤씨 그룹에 투자하는 건 지환에게 있어 식은 죽 먹기다.이서가 윤씨 그룹을 아무리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도, 지환은 그녀를 도와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이천은 이제야 왜 지환이 얼마 전부터 윤씨 그룹 자료를 보기 시작했는지 드디어 알 것 같았다.“회장님께서 힘을 실어주신다면, 윤씨 그룹도 분명히 기사 회생할 수 있습니다.”이천을 등진 지환은 손가락 하나를 세워서 가볍게 흔들었다.“아니, 우리 와이프 혼자서도 충분히 윤씨 그룹을 살릴 수 있어.”지환의 비지니스적 판단은 늘 정확했다.그러나 이번에는 지환의 판단에 동조할 수 없었다. 이서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윤씨 그룹의 문제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었다.윤씨 그룹을 공짜로 준다고 해도 이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했을 것이다.윤씨 그룹을 떠맡는 순간부터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니, 차라리 새 회사를 창업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게 이천의 판단이었다.“못 믿겠어?” 지환은 이천을 쳐다보며 물었다.이천은 깜짝 놀라며, 차마 그의 얘기에 동조 못한다는 할 수 없었다.‘회장님은 지금 사랑에 눈이 멀었어. 내가 못 믿는다고 하면 틀림없이 화내겠지?’지환은 이천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별다른 말없이 화제를 돌렸다.“수집한 자료를 이서한테 줄 방법 생각해봐. 이서가 눈치채지 않게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해.”“네.”……퇴근할 때쯤 이서는 소지엽의 전화를 받았다.[나 이미 아래층에 와있어.]이서는 시간을 한 번 보았다.“벌써?”소지엽은 웃으며 말했다.“여자를 기다리게 만드는 건 신사의 품격이 아니지.”“곧 내려 갈테니…….” 이서는 물건을 정리하고 말했다.“몇 분만 기다려.”[응, 그래. 있다 봐.]전화를 끊은 소지엽은 인내심을 가지고 아래층에서 이서를 기다렸다.오늘 고급 세단 차량을 타고 온 그는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야, 저 사람 식당 메인 쉐프 아니야?”“그래, 맞아, 대박! 부잣집 자제였어?
충격!또 충격!소지엽이 기다리는 사람이 윤이서일 줄은 다들 꿈에도 생각 못했다.두 사람이 차를 타고 떠난지 한참이나 되어서야 누군가가 말을 더듬거리며 말했다.“설마…… 저 사람이 윤이서의 진짜 남편은 아니겠지?”그런 게 아니라면 마세라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왜 서우에서 쉐프를 하고 있는지 대체 설명이 안 되었다.“그럴 리가? 윤이서 남편은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하던데? 마세라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평범할 수 있어?”잘 생기고, 멋있고, 돈도 많고…….게다가 쉐프이니 요리 솜씨도 일품일 테지.이런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진짜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아마도, 하은철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평범하다는 얘기겠지?”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차 안에서 이서는 쑥스러워하며 말했다.“미안해, 지난 번 구내식당에서 널 못 알아봤어.”“내 얼굴이 평범하다는 걸 둘러서 얘기하는 거지?”소지엽이 장난쳤다.“장난이고……, 기억 못할 수도 있지.”이서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근데 어떻게 서우에서 일하게 된 거야?”‘소씨 가문도 큰 사업을 하고 있으니 소씨 그룹에서 그럴싸한 일자리를 하나 만드는 건 누워 떡 먹기일 텐데…….’소지엽은 농담 반 진지 반으로 말했다.“나 스파이인데?”“?”“너도 알잖아, 서우는 하은철 삼촌이 차린 회사라는 거…….”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 삼촌이란 사람은 정말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야. 웃픈 얘기 하나 해줄까? 하은철 삼촌이 얼마전에 몇몇 대형 브랜드를 인수합병 했잖아. 소씨 그룹에서는 이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어. 합병된 뒤에야 그 사람이 이미 H국에 와 있다는 걸 알았어. 신비로운 인물이지?”이서도 이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 때 하경철이 그녀에게도, 하은철 삼촌이 귀국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줬었다.“그런데 주방에서 무슨 비밀을 알아낸다는 거야?”“모르는 소리.”소지엽은 신이 나서 이서에게 설명했다. “진짜
소지엽은 웃으며 문을 열었다.룸 안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들며 소지엽과 이서를 보고 일어섰다.“윤이서 씨?”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람은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었다.“구태우입니다. 사설 탐정업체 운영 중이고, 이 업계에서 몸 담은 지는 10년 정도 됐습니다. 우리 회사가 동종업계에서 서열 2위라고 하면, 1위를 자처할 업체는 없는…… 그런 정도입니다.”이서는 구태우의 얘기에 웃었다.“반가워요. 편하게 이서라고 부르셔도 되요.”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소지엽은 구태우에게 장난치듯 말했다.“괜히 큰 소리 치지 말고, 나중에 가서 일 처리 제대로 못하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거야. 알지? 내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구태우는 하하 웃었다.“지엽 씨, 걱정 마. 내가 털어서 안 나오는 거면 그 사람은 깨끗한 사람이야.”이서는 그의 이 말을 듣고 크게 안심했다.“제 운전기사를 뒷조사하고 싶습니다.”“네? 누구를요?”“일이 어떻게 된 거냐면…….”이서는 일을 경유를 간단히 설명했다.“그래서 나는 왜 그 사람이 저한테 회사에서 파견한 사람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나를 속였는지 알고 싶어요. 나에게 접근한 목적이 무엇인지도요…….”소지엽은 눈썹을 찌푸리며 얼굴의 웃음기도 사라졌다.“그럼 자르면 그만일 텐데 왜 계속 옆에 두는 거죠?”이서는 눈을 깜박였다.“왜라니요?”“우선, 거짓말로 이서 씨를 속였고, 둘째, 내력이 불분명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을 곁에 두는 건 시한폭탄과 같이 있는 거나 다름없는 건데…….”이서는 웃었다.“그런데 임현태 씨, 일 잘 하거든. 암튼 제대로 조사한 뒤 결정하려고요…….”소지엽은 입술을 오므리고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 내가 출퇴근시켜 줄까?”“아니.”구태우는 줄곧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서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 그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소지엽에게 다가갔다.“너 이서 씨 좋아하지?”소지엽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밥이나 드셔.”구태우는 헤헤 웃었다.“좋아하면 쫓아다녀야지
서우 내부 게시판이 오늘 저녁처럼 이렇게 열기가 뜨거운 적은 없었다.첫 번째 핵폭탄급 뉴스는 오늘 오후 소지엽이 고급 외제차를 몰고 가는 사진이 찍힌 것이다.두 번째는 이서가 소지엽의 차에 올라탄 것이다.이미 어떤 사람은 인터넷에서 마세라티의 소유주가 소지엽이라는 것도 검색해냈다.구내 식당에 소씨 가문 둘째 도련님이 있다는 걸 알고 다들 난리 났다.[아아아아악! 대어 놓쳤네! 난 왜 그가 소씨 가문 둘째 도련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흑흑흑, 난 그냥 내 눈물에 코 박고 죽을 거야! 내 두 눈은 장식인가보다, 왜 그를 평범한 사람으로 봤지?!][미녀 여러분, 울지 마세요. 설령 당신들이 혜안을 가졌어도 소용없어요. 이미 윤 총괄과 결혼한 사이니……. 역시 잘생긴 남자는 누군가의 남편이든가, 아니면 아직 태어나지 않았든가, 둘 중 하나네…….][어쩐지 지난번에 윤 총괄이 구내 식당 주방을 드나든다고 했더니……, 소 팀장이 윤 총괄을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어, 흑흑흑, 두 사람은 벌써 법적으로 이어진 가족이었어.][하하하, 이서가 운전기사에게 시집갔다고 했던 사람들, 창피하겠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은 윤이서가 하은철과 결혼하지 않아도 절대로 일반인에게 시집가지 않을 거라……. 재벌들의 말은 그냥 한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리면 돼. 어떤 재벌이 그러더라. 200억이 만드는데 작은 목표라고…….]“…….”서우는 비록 화장품 회사이지만, 회사 안에 컴퓨터를 잘 다루는 고수도 적지 않다. 그들은 곧 인터넷에서 이서와 소지엽이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는 사이이고, 게다가 이서가 8살 되던 해에 유학의 길에 오르자, 얼마 되지 않아 소지엽도 같이 출국했다는 걸 검색해냈다.그것도 같은 나라, 같은 지역으로.두 학교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고!비록 두 사람 관련 정보가 많지 많지만, 이서와 소지엽의 망붕 렌즈를 끼는 데는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소꿉놀이 친구로 자랐으니 망붕 렌즈 끼기 딱 좋고!”“게다가 연적인 다른 소꿉친구
촬영현장.야간 촬영은 여자 배우들이 가장 꺼리는 일 중에 하나이다.밤샘 촬영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피부가 민감한 배우에게는 특히 골치 아픈 일이었다.그러나 이제 이서정은 더는 밤샘 촬영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오늘처럼 야간 촬영이 있는 날에는, 제작진이 가장 좋은 분장실과 함께 친절하게 간이 침대까지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하씨 집안 사람은 대우가 다르긴 다르구나!’“이서정의 잘난 척하는 낯짝 제발 좀 안 봤으면 좋겠다!”스태프들은 찬바람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불평 불만을 털어놓았다.“성괴 얼굴에 연기도 별로인데다, 평소에 우리를 괴롭히는 건 그렇다 쳐, 촬영할 때 맡은 바 역할이나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휴, 결혼했으면 연예계 은퇴하고 결혼생활에나 집중할 것이지 사모님이 무슨 연기를 한다고?!”“쉿!” 옆에 있던 사람이 긴장한 듯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잘리고 싶어? 잊었어? 지난번에 물이 차갑다는 얘기를 안 들어줬다고 여러 명 해고했잖아.어쩌겠어? 지금은 그쪽이 실세이니까 참아야지.”두 사람이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입구에서 갑자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두 사람도 슬쩍 보고 깜짝 놀랐다.감독도 방문자를 확인하고는 손에 든 스피커를 내려놓고 황급히 달려갔다.“아이고, 사모님, 어떻게 여기까지…… 귀한 걸음하셨습니까?”눈앞의 사람은 민호일의 아내인 이하영이었다.재벌집 사모님은 이하영은 평소에는 카드놀이나 하고 피부 관리나 받고, 오늘처럼 외출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이하영은 감독은 안중에도 없는듯 본체만체하며 목을 빳빳이 세우고 물었다.“이서정 씨 어딨어요? 나 이서정 씨 만나러 왔는데……!”감독은 얼른 사람을 시켜 이서정을 불러오게 했다.분장실 입구에서 이서정의 매니저는 화가 나서 심부름 간 스태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목소리를 깔았다.“우리 배우님이 쉬고 있는데, 귀찮게 했다가, 너희들 뒷감당할 수 있겠어?”스태프는 난처한 듯 말했다.“민회장님 부인이 오셨습니다.”매니저는 순식간에 낯빛이 바뀌
“사모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까지 안 챙기셔도 되는데……. 암튼 감사합니다.”우리 모두 같은 이씨잖아요. 600년 전 까지만 해도 우리 한 가족이었을 걸요.”두 사람은 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고, 잠시 뒤 이하영은 하품을 하며 말했다.“오늘 촬영이 아직 덜 끝났다고 들었어요. 나 때문에 촬영이 많이 지체된 거 같으니까 나도 이젠 그만 가 볼 게요.”말을 마치고는 유유히 떠났다.이하영의 차가 멀리 떠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이서정을 에워쌌다.“이 배우님, 너무 부러워요. 일류 스타의 일상이 사치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했는데, 명문세가들의 삶은 격이 다르네요. 백 24개를 눈도 깜빡하지 않고 선물하다니…….”“이 배우님, 당신 남편도 그렇죠? 가방만 모셔 두는 별장이 따로 있는 거 아니에요?”“부러워 죽겠어요, 이 배우님, 당신의 행운을 저에게도 좀 나눠주세요.”“…….”이서정이 원하는 게 바로 이런 거였다.비록 지환과의 결혼은 가짜지만, 민씨 집안 사람들과 자주 왕래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짝퉁 하부인이라는 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테니.그녀는 입술을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아니야, 무슨……. 그냥 고급 차량을 여러 대 보유하고, 부동산이 좀 있고, 백과 옷, 보석 등도 좀 있고……. 뭐 그 정도야.”“조금이 얼마인데요?”다들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이 배우님, 기회가 되면 남편 좀 만나게 해 주세요. 듣자니 투자의 귀재라고 하던데…….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네요. 얼굴 좀 보여주세요!”이서정의 표정은 순간 부자연스러웠지만 곧 완벽하게 감췄다.“그러지 뭐, 하지만 워낙 바쁜 사람이라, 비즈니스 때문에 매일 출장 중이야, 아마 시간이 안 될 걸?”“괜찮아요, 우리는 언제든지 시간 있어요.”“…….”이서는 다음 날 출근해서 사설 탐정사의 전화를 받았다.구태우가 아니라, 전에 신문지 광고 통해 전화했던 작은 회사에서.이서는 별 고민도 하지 않고 전화를 바로 끊었다.그런데 상대방은 끈질기게 두 번째 통화를
이서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사설 탐정 쪽도 당황했다. 그는 무의식중에 뒤에 서 있는 이천을 보며 입모양으로 물었다.“나 의심하는 거 같은데?”이천은 겉보기에는 태연자약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사설 탐정보다 더 긴장했다.한참 뒤에야 이서가 입을 열었다.“확실한가요? 20만원?”[네, 네, 네.]드디어 회답을 들은 사설탐정은 이서가 번복할까 봐 바로 물었다.[20만원에 사시겠습니까?]“네, 거래하시죠.”이서는 잠시 생각한 후 다시 말했다.“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이메일 주소로 보내주세요.”이서는 자주 쓰지 않는 메일주소를 상대방에게 주었다.사설탐정은 기분 좋게 전화를 끊고 이천에게 말했다.“나를 못 믿는 거 같은데?”이천은 그를 흘겨보았다.“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자료들 보내.”“네, 네, 저 그럼 일전에 얘기했던 2천만원은……?”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핸드폰에서 입금 안내 문자가 떴다.사설탐정은 숫자 뒤의 0이 몇 개인지 여러 번 확인하고 나서야 웃으며 말했다.“사장님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이런 좋은 일이 있으면 부디 저를 찾아주세요. 감사합니다.”“천만에. 고마워할 거면 우리 그 괴짜 회장님한테도 고마워해야지.”회사로 돌아온 이천은 회장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회장님, 서류는 이미 사모님께 잘 전달해 드렸습니다.”그는 나름 뿌듯했다.“사모님은 절대 회장님이 뒤에서 움직이는 지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지환은 눈을 들어 느긋하게 이천을 바라보았다.지환의 쳐다보는 눈빛에 이천은 두피가 찌릿찌릿했다.“회장님, 왜 그러세요?”그는 돌아오면 꽃과 박수가 기다릴 줄 알았다.근데…… 김칫국을 제대로 마신 것 같았다.지환은 태블릿을 이천에게 건네주었다.태블릿은 확인한 이천은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연예부 기사였다.보도에 따르면, 소지엽과 윤이서가 비밀리에 결혼을 했고, 함께 로맨틱한 저녁식사를 하며 달콤한 신혼을 즐긴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친절하게 두 사람의 사진도 함께 첨부하여 기사를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