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많이 많이...”현태는 감격에 겨워 횡설수설했다.“대... 아니, 하 선생님이 이 소식을 들으면 아주 기뻐할 거예요!”‘하 대표님께서 가장 원하시던 거잖아!’ ‘윤 대표님은 하 대표님께서 본인을 위해 죽음까지 마다하지 않았다는 건 전혀 기억하지 못하셔. 심지어 대표님의 정체까지도...’ ‘모든 게 두 분이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아.’‘유일하게 아쉬운 게 있다면, 지금은...’ “아가씨, 어서 하 선생님부터 찾읍시다!” ‘대표님이 이 소식을 알게 된다면, 좋아서 미쳐버리실지도 몰라!’ 이서는 현태를 한 번 보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어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좋아요, 얼른 지환 씨를 찾아서 제 앞에서 인내하고 참을 필요가 없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현태가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신이 났다. 하지만 작은 수풀을 모두 뒤졌지만 지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이서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구역을 계속해서 수색했다.날씨가 이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집합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는데, 밥을 먹으라는 신호였다. 현태가 말했다.“이서 아가씨, 식사부터 하고 계속 찾아보시죠.”“저는 밥을 먹고 싶지 않아요.이서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현태 씨는 가서 드세요.”“아가씨, 아가씨가 안 드시면, 저도 먹지 않을 겁니다.” “그건 안 돼요.”이서는 땅바닥을 주시하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제가 현태 씨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소희 씨가 알면, 저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 어서 식사하러 가세요. 저는 눈을 부릅뜨고 이 근처를 찾아볼게요. 뭔가 느낌이...” “이 근처에 지환 씨가 있을 것만 같아요. 제가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요.” 곰곰이 생각하던 현태가 말했다.“알겠습니다, 아가씨, 그럼 이 근처만 찾아보시고 멀리 가지는 마세요. 강가에는 절대 내려가지 마시고요.”강가는 전문 인력이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이서는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거센 물살에 휩
같은 시각.멀리서 이 장면을 본 하은철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지환이 강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주경모에게 지환의 부하들을 추적하라고 지시했다. 하루 종일 사람을 찾지 못한 그는 이서에게 당하고 나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그녀를 보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이서가 강으로 빠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날 시험하는 건가?’ ‘하지환이 강에 빠진 걸 축하하자마자, 이서도 강에 빠지려 하다니...’ 그가 모든 것을 개의치 않고 돌진하려던 찰나, 눈앞의 상황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이서가 잡은 것은 단단한 나뭇가지가 아니라... 한 사람의 팔뚝이었다!그 사람이 지환이라는 것을 발견한 이서는 깜짝 놀랐다.그 순간, 풀숲에 숨어 있던 하은철의 얼굴은 유난히 창백해졌다. 이서는 급히 강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하반신은 이미 강에 잠겨 있었으며, 강물은 너무도 차가웠다.게다가 얼어붙은 것 같은 두 다리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현태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밥을 먹으러 간 그는 적어도 십여 분이 걸려야 돌아올 수 있을 것이었다. ‘여기서 그렇게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게다가 지환 씨도 의식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구조하려 하잖아!’ ‘내가 강물에 휩쓸린다면, 발견될 때까지 시간이 지체되고 말 거야.‘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올라가야 해!’ 이서는 한 손으로 강가의 풀을 꽉 잡았다. 하지만 물가의 흙이 너무도 부드러웠기 때문에 풀을 잡자마자 뿌리째 뽑히고 말았다. 몸이 하마터면 또 기울어질 뻔했다.그녀는 두 손으로 지환을 팔을 꽉 잡고 혼신을 다해 외칠 수밖에 없었다.“현태 씨! 현태 씨...” 같은 시각. 현태는 도시락을 들고 이서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이서가 혼자 뜻밖의 사고를 당할까 봐 걱정이되었다. 이미 벌어진 일은 그 걱정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 현태는 이서가 보이지 않
‘대... 대표님?!’흥분한 현태는 제자리에서 몇 번 발을 구르더니 재빨리 사람을 찾으러 달려갔다.풀밭에 누운 채 핏기가 없는 지환을 마주한 이서는 섣불리 응급처치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초조하게 구조대의 도착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상언이 의사를 데리고 달려왔다.의사는 즉시 응급처치를 실시했다.곁에 있던 이서는 불안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하나는 보자마자 달려와 그녀의 떨리는 몸을 껴안고 말했다.“걱정하지 마, 복이 있는 사람은 하늘이 돕는 법이야. 형부는 괜찮으실 거야!” 하나의 손을 가볍게 잡은 이서는 그제야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돌린 의사가 상언에게 말했다.“이 선생님, 폐에 많은 물이 고여서 폐수종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당장 병원으로 이송해서 수술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상언이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당장 병원을 알아보겠습니다!” 이 일대는 매우 외져서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 30분이 걸렸다. 이서가 걱정스럽다는 듯 지환을 바라보았다.상언은 급히 병원을 알아보았다.이곳에서는 지환의 상태를 안정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상언은 건장한 네 명의 어둠의 세력 조직원을 시켜서 들것에 태운 그를 산 아래로 옮기게 했다. 이서는 곧바로 그 사람들을 따라 하산하기 시작했다.다만, 그들은 모두 훈련받은 사람이었으며, 지환의 안전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여자인 이서는 그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서 몇 번이고 크게 넘어질 뻔했다.다행히도, 그녀의 뒤에 있던 현태가 부축해 주었다. “아가씨, 조급해 하지 마세요. 저 사람들은 하 선생님을 잘 돌볼 거예요.”“알아요.” 이서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하지만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요.”지환을 한순간도 볼 수 없다면, 이서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어느새 신발까지 잃어버린 이서를 본 현태가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아가씨, 저한테 업히
의사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두 사람이 물어보려던 찰나, 구급차 문에 나타난 현태가 말했다.“네 바퀴가 고의로 파손돼서 차에 시동을 걸 수가 없어요.”이서의 안색이 아주 어두워졌다.“다른 차량은 없는 거예요?”“다른 차량도 마찬가지예요. 이미 이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다른 차를 부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빨라도 30분은 걸릴 거예요!” “그건 안 됩니다.”의사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환자는 반드시 30분 이내에 수술받아야 해요. 30분 이내에 수술받지 못한다면 생명과 안전에 큰 문제가 생길 겁니다.” 이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하지만...” 들것에 누운 지환을 바라보던 그녀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현태에게 물었다.“현태 씨, 이 선생님은 지금 어디에 계세요?” “저희 뒤를 따라오고 계셨어요. 곧 내려오실 겁니다.” “이 선생님이... M국의 유명한 천재 의사라고 하셨죠? 하은철이 제 신장을 원했을 때도 이 선생님께 수술을 부탁했었거든요. 이 선생님께 이런 수술은 아무것도 아닐 거예요!” 이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현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아가씨, 이 선생님이 오셨어요!” 이서는 발 부상에도 불구하고 구급차에서 뛰어내렸고, 상언의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이 선생님, 수술... 할 수 있으시죠?” 멍하니 있던 상언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네,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건 없어요. 구급차가 훼손됐단 말이에요! 이건 분명 누군가가 고의로 한 짓이라고요. 다른 구급차를 부른다고 해도, 족히 30분은 걸릴 거예요. 그 차가 30분 안에 온다고 장담할 수 있으세요?” “게다가 적은 숨어 있고 우리는 드러난 상황이잖아요. 적이 무슨 행동을 벌일지 모른단 말이에요. 이제 저희가 믿을 곳은 이 선생님뿐이에요!” 상언이 이서를 보며 말했다.“제가 수술하는 건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여긴 환경이 너무 열악해요. 수술 후에 감염이 생길까 봐서 걱정이에요.”이서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아직도 그런 걱정할 겨를이 있다고 생
‘하지만...’‘이제 하지환은 혼자 싸우는 거나 다름없어.’ ‘허.’그의 오늘 목적은 어둠의 세력 조직원의 일원을 물리치는 것이 아닌, 지환의 수술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방해하기로 한 이상, 걱정할 건 없어.’ “가자.”하은철이 뒤에서 움츠러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둠의 세력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죽으러 가고 싶지 않아 할 뿐이었다. 하은철이 그 사람들을 흘겨보며 측은한 표정으로 말했다.“저들의 손에 죽고 싶지 않다면, 내 손에 죽어야 할 거야.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하은철을 따라 산기슭의 그 구급차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들은 아직 접근하지 않았는데, 어둠의 세력 우두머리가 이서의 곁에 다가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윤 대표님, 누가 있습니다!” 이서가 냉엄한 표정으로 물었다.“어떤 방향에서 오는지 아시겠어요?” “산에서요.”우두머리가 그들이 오는 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서가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말했다.“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지도 알 수 있나요?” “대략 몇백 명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하찮은 졸개들이라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깊은숨을 들이쉬며 구급차를 쳐다본 뒤 말했다.“대부분의 인원을 구급차에 집중시키고, 그 누구도 가까이 오게 해서는 안 돼요. 나머지 분들은 각 구석을 지키고 움직이지 마세요.”“명심하세요! 여러분의 임무는 그들을 물리치는 게 아니에요! 구급차 안의 수술이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거라고요!” “예!”우두머리는 즉시 이서가 정한 대로 행동했다. 모든 것을 마친 그는 다시 이서의 곁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상황이라도 생긴 건가요?” “네, 소리가 작아진 걸로 봐서는 우리한테서 멀어진 것 같습니다.”우두머리가 다소 쑥스러워하며 말했다.“제가 너무 긴장한 모양입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겨냥한 게 아닐지도 모르죠
돌을 던지던 사람들도 이서가 직접 구급차 앞을 막을 줄은 몰랐다. 한동안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서 모두 하은철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상대방이 공격을 멈추는 것을 본 현태가 비로소 마음을 내려놓았다. “설마, 정말로 하은철인 겁니까?” “설마가 아니라 하은철이예요!”이서가 돌이 날아드는 방향을 주시하며 독실한 말투로 말했다. 그녀가 현태를 향해 말했다.“현태 씨, 핸드폰 좀 빌려주세요!” 현태는 잠시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이서에게 건넸다. 이서는 또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어 차단한 번호를 찾아 현태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은철은 높은 곳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이서가 하는 모든 행동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핸드폰이 울리고 화면에 낯선 번호가 뜨자, 하은철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이서는 여전히 그의 번호를 차단 목록에서 지우려 하지 않았다.그를 얼마나 싫어한다는 의미겠는가. ‘윤이서가 나를 이렇게 미워하는 이상, 하지환을 가만둘 순 없겠군.” [이제야 나한테 전화하고 싶은 거야?]하은철이 즐거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이서가 말했다.“하은철, 분명히 경고하는데, 지환 씨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용서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어둠의 세력한테 날 죽이라고 명령이라도 할 건가? 윤이서, 네가 그렇게 할 수 있겠어?] “네 생각에는 어떨 것 같은데?”이서가 차갑게 말했다.“너한테 조금의 인간성이라도 있다면, 지금 당장 저 사람들의 멈추고, 이 선생님이 수술을 잘 마치게 내버려둬!” [인간성? 나한테 그런 게 있을 것 같아?] 그는 자신의 작은 어머니가 이서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인간성 따위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어떻게 해서든 이 수술을 막겠다는 거지?” [내 대답, 안 들어도 알 것 같지 않나?]“이왕 이렇게 된 거!”이서가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먼 곳을 바라보았는데, 마치 하은철을 바라보는
하물며 이 사람들은 이서가 들고 있는 총이 모형일지도 모른다는 요행의 심리를 가지고 있었다. ‘윤이서가 우리는 위협하려는 목적이라면?’ 설령 진짜 총이라 하더라도 총알은 몇 발밖에 없을 텐데, 이렇게 많은 사람 중 누구를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담력이 커진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던 돌을 미친 듯이 구급차를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간이 큰 사람들은 구급차 쪽으로 돌진하기도 했다. 하씨 그룹 지분의 5%라는 제안은 정말 유혹적이었다. 이서는 상대가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대담하게 돌진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그 사람들을 향해 총을 발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전에 총을 써 본 적이 없지만, 지환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런지 단 한발로 사람을 맞혔다. 그 사람이 쓰러진 후, 미친 사람들은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잠시일 뿐이었고, 다시 맹렬한 반격이 시작되었다. 이서는 첫 발을 쏜 뒤에도 당황하지 않고 계속 사격했다. 어둠의 세력 조직원들은 총기를 휴대하지 않았지만, 아주 강력한 음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무엇을 던지든 상대 중 한 사람이 나가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은철은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우세를 차지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특히 그가 노출된 이후에는 이런 방식의 전투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서가 손에 쥐고 있는 그 총을 제외하더라도. 어둠의 세력이 백발백중으로 공격하는 바람에, 그 사람들은 구급차 앞으로 돌격하기도 전에 큰 타격을 받았다. 간신히 구급차에 다다른 사람들조차 구급차를 뒤집을 힘이 없었고, 주워 온 돌 같은 것을 던질 뿐이었다. 이런 행동은 구급차에 흠집을 내는 것 외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은철이 절망할 즈음에 눈동자를 번뜩였다. 혼란 손에서 흰색 옷을 입은 남자가 커다란 돌을 들고 슬며시 차 뒤로 향했다. 그들은 모두 한 방향에서 공격했기 때문에 차 뒤를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은 절호의 기회였다. 하은철은 다른 사람들도
어둠의 세력 조직원들은 하나같이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들은 총알이 빗발치더라도 이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다.돌을 들고 구급차 유리를 깨뜨리는 데 성공한 그 남자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하하, 하하하, 내가 해냈어, 나는 하씨 그룹 주식의 5%를 받을 수 있다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속되던 찰나, 굳게 닫혀 있던 차 문이 갑자기 열렸다. 이 광경을 본 이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차 옆으로 돌진했다. 하나가 급히 그녀의 뒤를 따랐는데, 이서가 갑자기 쓰러질까 봐 두려워서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상언을 이서를 한 번 본 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은철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동자에는 그를 찢으려는 듯한 사나운 빛이 서려 있었다. 이 눈빛을 마주한 하은철은 1초 만에 두려워졌고, 지환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상언의 표정이 저렇게 무서울 리 없지 않겠는가.‘진짜 죽은 건가?!’ ‘진짜 죽었어!’ 하은철은 정말 환하게 웃고 싶었지만,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어둠의 세력 조직원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득의양양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서의 발걸음은 이미 아주 허무해졌다. 그녀는 상언의 옷자락을 잡은 채 붉은 눈으로 고개를 내저었다.“지환 씨... 아직 살아있죠? 그렇죠? 네?” 상언은 시종일관 하은철을 보았고, 이서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이 표정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지환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소식을 접한 어둠의 세력 조직원들은 곧바로 하은철 쪽으로 향했다. “당장 돌아오세요!”상언의 목소리는 조용한 우림 속의 천둥소리와 같았다. “지환이는 이미 떠났는데, 시신이라도 훼손하고 싶다는 겁니까? 반드시 지환이의 원한을 갚아 줄 겁니다. 하지만 지환이의 장례부터 치르는 게 우선이라고요!” “이서야...”이서는 하나의 품에서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상언은 그제야 이서를 힐끗 보았으나, 이내 하은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어둠의 세력 조직원들에게
이서는 지환의 대답을 듣고 나서 참지 못하고 말했다. “아까 분명히 얘기했잖아요, 화해한 척 연기하는 거라고요! 지엽이도 없는 데서 굳이 연기할 필요는 없어요.”지환은 살짝 눈을 들어 이서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이서야, 아무리 토사구팽이라지만, 이렇게 빨리 쳐내는 건 좀 심하지 않아?” 더 이상 이 주제로 대화하고 싶지 않은 이서는 곧바로 소희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자료는 다 읽어봤어? 정말 심태윤이 벌인 짓이야?”“네, 자료에는 심태윤이 어떻게 가짜 증거를 만들었는지도 다 나와 있었어요. 이 증거들만 경찰에 넘기면, 심태윤은 바로 잡혀가고 말 거예요.” 이서는 소희의 말투에서 뭔가 망설임이 느껴져 물었다. “왜 그래? 혹시 심태윤이 잡혀가면 소희 씨의 양부모를 돌볼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 소희는 가볍게 웃었다. “언니, 저를 너무 착하게 보신 거 아니에요?”“그 사람들이 돈을 이유로 저한테 어떻게 했는지 다 아시잖아요. 그 이후로 저는 그 사람들한테 기대한 것도 없고, 미련도 없었어요. 단지 이 일이 심태윤 혼자 한 짓이 아닌 것 같아서 그래요. 분명히 배후가 있을 거라고요.” “그 배후만 찾아내도 앞으로 골치 아플 일은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심씨 가문 사람들이 이서 언니의 남편이 하 대표님이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더 이상 직접적으로 날 괴롭히지 않았지만, 언젠가 이서 언니와 하 대표님이 헤어진다면, 나를 몰아내려는 사람들은 다시 들고일어날 거야.’ “혹시 이미 의심 가는 사람이 있는 거야?” 이서는 소희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냈는데, 역시 자매다운 호흡이었다. 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이 말을 다른 사람한테 하면 오해받을 수도 있겠지만, 언니한테는 말해도 될 것 같아요.”“제 생각엔... 강경숙이 관련된 것 같아요.” “강경숙?”“제가 심씨 가문에 돌아온 이후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이 강경숙과 심유인이잖아
“적어도 내가 다른 사람을 찾기 전까지는 그렇게 할게.” “지엽아...” “그런 표정 짓지 마.” 지엽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그러면 내가 또 희망을 품을 것 같잖아.” 이서는 입술을 꾹 다물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보다 내가 먼저 가도 될까?” 이서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줘. 내 마지막 소원이야.”지엽의 진지한 눈빛에 이서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지엽은 잠시 이서를 바라보더니, 이서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기억에 새기듯 눈에 담은 후, 미소를 짓고 조용히 돌아섰다. ...한편, 고택 입구에서는 소희와 지환이 두 사람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사람은 지엽 혼자였다. 지엽이 혼자 돌아오는 모습을 본 순간, 지환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환은 한걸음에 다가가 지엽의 멱살을 움켜잡으며 거칠게 물었다. “이서는 어디 있어?” 지엽은 차분한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표님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정말 부럽다니까요?” 하지만 지환은 지엽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이서는 어디 있냐고 묻잖아!” 마침 그때 이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환이 지엽을 몰아붙이고 있는 모습을 본 이서는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 “하지환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서가 무사히 나오는 걸 본 지환은 그제야 손을 놓았다. “너... 괜찮아?” 이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안 괜찮을 건 없지.” 지엽은 헝클어진 옷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서야, 봤지? 저 사람이 바로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널 아주 사랑하면서도 과할 정도로 집착하는 남자가 저 사람이라고.” 이서는 입술을 움직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지엽은 쓸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저 남자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분명히 보여주는 게, 내가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
차가 심씨 가문의 고택에 다다르자, 이서는 가장 먼저 지엽을 발견했다.지엽 역시 차에서 내리는 지환을 보고 얼굴이 굳어 버렸는데, 특히 이서가 자연스레 지환의 팔짱을 낀 순간, 지엽의 눈썹이 몇 번이나 심하게 떨렸다. “두 사람...” 지엽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고택의 대문이 열리며 소희가 나왔다. “오셨네요!” 몇 초 후, 두 사람이 팔짱을 낀 모습을 본 소희는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두 분... 화해하신 거예요?” 이서는 지엽의 반응을 슬쩍 살피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됐어.”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지엽이 떠난 뒤에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희는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하나 언니는 아직 모르죠? 지금 바로 알려줘야겠어요!” 이서는 다급하게 소희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으며 말했다. “잠깐만!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먼저 소희 씨 얘기부터 하자. 지엽아, 얼른 조사한 결과부터 소희 씨한테 보여줘.” 지엽은 여전히 이서와 지환이 함께 있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고, 이서가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소희에게 조사 결과를 건넸다. “소희 씨에게 누명을 씌운 건 심태윤이었어요. 소희 씨가 여태 친동생인 줄 알았던 그 사람이요.” 지엽은 여전히 이서와 지환 쪽에 신경이 쏠려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그 안에 다 적혀 있으니까 잘 읽어보면 돼요...” 지엽이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서야, 잠깐 나랑 따로 얘기할 수 있을까?” 그 순간,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이서는 지환을 한 번 바라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서가 지환의 팔에서 손을 빼내려 하자, 지환은 더욱 강하게 이서의 손을 잡았다. 이서는 당황한 표정으로 지환을 올려다보며 눈빛으로 놓아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 대표님, 제가 이서랑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면
이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정말... 같이 먹고, 같이 잔다고요?”지환은 그 말에 이서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걸 눈치채고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지만, 일부러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응, 어쩔 수 없잖아. 어둠의 호리병을 반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당분간은 같이 지내야겠어요.” 지환의 미소는 더 깊어졌는데, 그 미소가 사라지기도 전에 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하도훈은 언제 처리할 수 있어요? 설마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죠?” 지환은 깊은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이 다크 웹의 1위와 2위의 위치만 알아낸다면, 하도훈과 정면 승부를 가릴 수 있을 텐데 말이지...”“어둠의 호리병은 그 둘의 위치를 모르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어둠의 호리병도 순위에 올라 있는 킬러일 뿐, 그 사람들과 친구는 아니거든.” “단서도 전혀 없어요?” 지환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실망하게 해서 미안하지만, 지금은 없어.” 이서는 실망이라기보다는 하도훈이라는 골칫거리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럼, 우린 이제 어디로 가요?” “회사로.” 고개를 끄덕인 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두 사람이 탄 차는 윤씨 그룹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이서는 지엽의 전화를 받았다. “소희 씨에 대한 일은 어느 정도 해결된 거야?”이서는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얼른 가서 소희 씨한테 알려줘. 분명히 엄청나게 기뻐할 거야.” 수화기 너머의 지엽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말했다.[이서야, 난 소희 씨랑 이제 막 알게 된 사이라 조금 어색한데, 네가 같이 가주면 안 될까?] 이서는 곁눈으로 지환을 한 번 바라보며 생각하다가 말했다. “알았어.” 그 순간, 이서를 태우고 있던 지환은 잠시 핸들을 놓칠 뻔했
“고이서를 바로 내쫓으면 분명 편하긴 하겠죠. 하지만 내 손에 있는 윤씨 그룹의 자산 중 일부는 원래 윤씨 가문의 것이었어요.”“그 인간들의 만행이 제대로 폭로되지 않으면, 과거 윤씨 그룹에 몸담았던 몇몇 내부 인사들은 고이서와 손을 잡고 말 거예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반드시 그 인간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지 모두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고이서를 회사의 대표 자리에 앉힌 거야? 그 여자가 빨리 본색을 드러내도록 하려고?” “네.”짧게 대답한 이서는 무심코 거울 속 자신을 보았고, 활짝 웃고 있는 자기 모습에 잠시 멍해졌다. ‘하지환 씨 앞에 서면 점점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는데, 이서에게 더 난감한 것은 지환이 자신의 정체를 속였던 일조차 잊고 있다는 점이었다. ...“왜 내려오라고 한 거예요?”아래층으로 내려온 이서는 지환의 차에 올랐다. “하도훈이 이렇게 오랫동안 잠적한 이유가 뭔지 알아?”“자식을 만드느라 바쁜 거겠죠.” “맞아.”“그동안 꽤 많은 여자를 만났고, 그중 한 여자가 진짜로 임신했다더라.” 이서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스쳤다. “그럼 이제 하도훈이 다시 우리한테 신경 쓸 여유가 생겼다는 거네요?” 지환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 없이 이서를 바라보았다. 이서는 지환의 표정을 보고 의아하게 물었다. “그 표정은 또 뭐예요? 설마... 예전에 내가 하도훈한테 여자를 붙여보라고 했던 그 작전을...” 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 임신했다는 여자, 하지환 씨가 보낸 사람이에요?” “아니었으면 한 번에 임신했을 리가 없잖아.” 이서는 입을 살짝 벌리고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럼 그 아이는 하도훈의 아이가 아닌 거예요?” 지환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고, 이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도훈은 그 사실을 알면 미쳐버릴 거예요.” “미치면 더 좋지 않아?” 지환은 담담하게
모두 반대의 목소리뿐이었지만, 이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불만 있으면 사직서 쓰세요.” 이 한마디에, 회사 고위층들은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서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고이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오늘부터 고 팀장님이 아닌 고 대표님이 된 거예요.”‘고 대표’라는 말을 듣는 순간, 고이서는 애써 입꼬리를 올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새어 나오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너무나 큰 기쁨에, 아무리 억제하려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으니 말이다.“저는 이만 가 볼게요.” 이서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 사무실을 떠났고, 고이서는 문이 닫힌 후에도 몇 초간 멍하니 서 있었다.5분이 지나도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고이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서의 책상으로 다가가 나뭇결을 쓰다듬었다. ‘이제 이 모든 건 다 내 거야...!’ 고이서는 마치 꿈속을 걷는 사람처럼 대형 의자로 다가가 앉았다.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는 순간, 마치 가죽 의자가 아니라 구름 위에 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자리만 차지하면... 다시 예전처럼 호화로운 삶을 즐길 수 있을 거야. 원하는 대로 화려한 드레스를 사고, 반짝이는 보석도 망설임 없이 살 수 있고... 돈 걱정 따위는 안 해도 되겠지! 아, 내가 좋아하는 남자도 내 마음대로 만날 수 있을 거야.’ 고이서의 마음이 격렬히 요동치던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고이서는 마치 제 발 저린 도둑처럼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고, 몇 초가 지나서야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들어오세요.”문을 열고 들어온 김하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 팀장님, 회의 시간이 다 됐습니다.” ‘고 팀장’이라는 호칭에 고이서는 속으로 불쾌감을 느꼈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김하늘’이라는 이름을 새겨 두었다.‘며칠만 지나면 내가 정식으로 대표가 될 텐데, 그때 가장 먼저 잘라버릴 사람은 바로 네가 될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김하
고이서는 이서가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성지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윤이서는 사실 아주 멍청한 사람이야.”“정말 똑똑한 사람이었으면, 하은철처럼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을 두고, 굳이 가난한 남자를 택했겠니?” 고이서는 예전에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윤이서가 정말 그렇게 멍청하다면, 누구도 살리지 못했던 회사를 그렇게 짧은 시간에 다시 일으켜 세우고, H 국의 4대 가문 중 하나로 만들진 못했을 거야.’‘그것도 혼자만의 힘으로.’‘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윤이서는 정말 멍청한 것 같아.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다니까?’‘이 회사의 대표가 된 것도 전부 운 덕분이었던 것 같아.’ “고 팀장님?”이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이서는 정신을 차렸다. “네, 대표님.” 이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큰 일이에요. 오늘은 제가 한 말을 잊어버린 정도로 끝났지만, 앞으로는 계약서 서명 같은 중요한 일을 잊어버릴지도 모르잖아요.” “고 팀장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잠시 쉬어야 할 것 같긴 한데... 제가 쉬는 동안 회사 일은 누구한테 맡겨야 할까요?”이서는 갑자기 고이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래요, 고 팀장님! 고 팀장님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요!”고이서는 당황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 팀장님이 꼭 저를 도와줘야 해요. 고 팀장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 회사에는 저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고이서는 일부러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감히...”“별거 아니에요. 제가 쉬는 동안 회사 운영만 도맡아주면 돼요. 저는 회복하는 대로 다시 돌아올게요.” 고이서는 겉으로는 고개를 저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이렇게 큰 회사를 저한테 맡기셨다가 큰 문제라고 생기면 어떡하시려고요.” 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고이서는 속으로 이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드
하지만 한 회사의 대표는 곧 하늘과도 같았다. “아직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서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듯한 김하늘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그 사무실에도 CCTV가 있을 거 아니에요. 당장 영상 자료를 가져와 보라고요!” 김하늘은 당황하며 말했다. “대표님,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굳이 대표님께서 무안해지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아.’ 이 정도의 생각은 김하늘도 하고 있었으나, 이서는 아주 단호했다.“됐고, 당장 가져오세요.” 김하늘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고이서는 의아해졌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비서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그럼 설마...’ ‘그 꽃차가 효과를 나타낸 건가?’이 가능성이 떠오르자 고이서는 속으로 흥분했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고 말했다. “대표님께서 CCTV를 보자고 하신다면 봐야죠. 만약 저희가 오해한 부분이 있다면, 대표님께서도 정확하게 설명해 주실 겁니다. 그렇죠, 대표님?”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이건 작은 일이 아니니까요.” “만약 김 비서가 잘못 전한 거라면 엄하게 처벌하고, 정말 내가 말해놓고 잊어버린 게 맞다면, 그땐 분명히 사과할게요.” 이쯤 되니 김하늘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었다. 김하늘은 결국 CCTV 영상을 가져왔고, 영상 속에는 이서가 몇 번이나 김하늘에게 지시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고 팀장님을 불러주세요.”심지어 몇 분 간격으로 반복해서 지시하는 모습도 있었다. 이서는 그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짜... 내가 한 말이 맞다고...? 그런데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지?”“김 비서, 미안해요. 정말 기억이 안 나서 그랬어요.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너무 미안해서 가방을 하나 선물로 주고 싶은데, 오늘 퇴근하기 전에 나한테 와서 받아 가요, 알겠죠?”김하늘은 이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애매하고 거절하기도
“진짜예요?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이서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지환은 묘한 씁쓸함을 느꼈다. 이서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을 단순히 의례적인 질문으로 하지 않고, 정말 진심을 담아 묻곤 했다. 지환은 한동안 말없이 이서를 바라보다가 침을 한 번 삼키고 나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진짜야. 생각해 봐. 네가 너희 가족 이야기를 고이서와 나눈 거잖아. 고이서 입장에선 너와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을 거야.” 이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야.’ 그 후, 두 사람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병원 앞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는 고요한 침묵만 흘렀다. “고마워요. 오늘 하루 정말 즐거웠어요.” 이서는 진심으로 말했고, 지환은 잠시 이서를 응시하다가 짧게 대답했다.“응.” “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요.” 이서는 문을 열고 잠시 망설이다가 차에서 내렸다. ...이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꽃차를 들고 의사를 찾아갔고, 의사는 꽃차를 검사한 뒤 말했다. “지난번과 성분이 똑같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양이 더 많네요.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겠어요.” 의사는 몇 번 더 종이에 뭔가를 적더니 고개를 들었다.“3일이에요. 이 차를 마시면 3일 후에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이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이서, 생각보다 더 조급했구나?’ 이서는 병실로 돌아가 꽃차를 우린 후,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렸다. [고 팀장님이 주신 꽃차 덕분에 불면증이 해결됐어요. 요즘 정말 잘 자고 있답니다.]문구와 함께 사진을 올리자, 고이서는 핸드폰을 보며 모든 걱정을 덜어냈다. 이제 남은 건 이서가 언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느냐였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고이서는 간절하게 속으로 외쳤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윤씨 그룹의 CEO 자리에 앉고 싶다고.’특히 이서가 회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주목받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이서의 질투심이 극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