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귀가 끌려간 후, 송성연은 수정구 양 사이드를 눌러 채찍을 거두어들이고, 재빨리 그곳을 떠났다.긴 채찍이 회수되자, 서릿발 같던 냉혹함도 서서히 그녀에게서 거둬졌다. 점차 나른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변모한 그녀는 걸음걸이조차 제멋대로였다.처마 밑에서 졸고 있는 어미 고양이처럼 온몸에서 나른한 기운을 풍겼다.골목을 나선 뒤, 성연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휙 주위를 한 번 훑었다. 의심스러운 인물이 없음을 확인하고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떠났다.앞서 그녀가 섰던 곳, 높이 솟은 신형 하나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방금 골목에서 있었던 일들은 빠짐없이 강무진의 눈에 담겼다.워낙 은신에 탁월한 그인 터라, 보통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다.그래서 한참을 구경꾼으로 현장에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채지 못했다.눈을 가늘게 좁힌 강무진의 검은 눈동자가 우아한 뒷모습을 주시했다.‘저 여자, 도대체 뭐지?’무척 드물게 한 여자에게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강무진이었다.그가 텅 빈 골목을 바라보고 있은 지 얼마 후,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강무진이 고개를 돌리자, 두 사람을 데리고 쫓아온 손건호가 숨을 헐떡이며 그의 뒤에 섰다.강무진의 모습을 아래위로 세심히 살피던 손건호는 그의 몸에 혈흔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물건은 손에 넣었나?” 강무진이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손건호는 손에 들고 있던 은색 슈트케이스를 들어올려 강무진 앞에 흔들어 보였다.“손에 넣었습니다. 하지만 거래자가 달아나 버렸습니다!”거래자를 언급하며 손건호는 화가 나 이를 갈았다. 그렇게 교활한 놈인지 누가 알았겠는 가. 몇 초 한 눈 파는 동안에 달아나 버렸던 것이다.강무진의 뇌리에는 자연히 붉은 스커트가 떠올랐다. 그의 음성이 왠지 좀 더 낮고 쉬어 있었다.“누군가 이미 끌고 갔어.”“제가 가서 그 놈을 꼭 찾아오겠습니다!”단호한 음성으로 말한 손건호의 몸은 이미 쫓아갈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강무진이 손을 들어 손짓을 하
강무진이 사진 속의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며, 적막한 그의 눈동자에 빛이 서렸다.“최대한 빨리 찾아서 데려와.” 강무진이 재촉의 기운이 다분한 어조로 지시했다.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고 느낀 무진은 이런 소소한 재미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보스, 밤이 너무 늦었습니다. 먼저 모셔다 드리고 돌아가겠습니다. 사람을 찾는 일은 아래 수하들이 바로 시작할 겁니다. 의사 선생님이 이미 댁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가볍게 턱을 끄덕이며 알았다는 표시를 한 강무진.뒤편의 작은 창고에서 휠체어를 밀고 온 손건호가 강무진을 부축해서 앉혔다. 그리고 두꺼운 담요로 무진의 다리를 덮은 후, 휠체어 채로 안아 올려 차에 태웠다.수천 번도 더 해 본 동작들은 모든 진행과정이 일사천리로 매끄러웠다.곧 무진의 거처에 도착했다.거실에는 이미 흰색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반쯤 기른 머리는 목덜미 쪽에 작은 꽁지머리로 묶여 있었다. 꼬리가 살짝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 아래에는 길게 뻗은 도화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살짝 웃는 듯이 꼬리가 내려온 서글서글한 한 쌍의 눈이 자칫 사람을 빠져들게 한다.위로 약간 들려진 적당한 두께의 붉은 입술은 자웅을 겨루기 힘들 정도로 수려했다.금테 안경 아래의 두 눈동자에는 다정한 빛이 서려 있어 온화하고 점잖아 보였다.강무진의 오랜 친구이자, 강무진을 전담하는 정신과 의사, 진우현이었다.사실 그는 전적으로 강무진의 심리 상담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불면증을 앓아온 강무진을 위해 최면을 걸어 수면을 돕고, 또 수면의 질을 높여 주는 게 그가 담당한 역할이었다.인기척 소리에 고개를 돌린 진우현의 눈에 손건호가 강무진의 휠체어를 밀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또 일하고 왔어?” 진우현은 한 차례 기지개를 켠 후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었다.고개를 끄덕인 무진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휠체어에서 일어나며 진우현에게 말했다.“먼저 목욕부터 하고 올게.”이런 장면 또한 무수히 보았던 터라
“그럴 리가 없어!” 단호히 부정하는 우현의 매혹적인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믿을 수 없어.”애초 강씨 집안에서는 무진의 불면증을 치유하려고 전세계의 명의란 명의는 다 찾아서 치료를 받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향낭 하나 때문에 치유가 된단 말인가?마치 그를 놀리는 것 같았다?결국 꿈틀꿈틀 일어나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우현이 확인해 볼 생각에 향낭을 가져오라고 손건호를 부추겼다.일년 내내 무진의 곁을 지키는 손건호는 그의 생활 습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한눈에 향낭의 위치를 찾아냈다.하지만 향낭을 손에 넣는 순간, 침대에 누워 있던 무진이 조용히 눈을 떴다.순정한 검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을 발산했다. 왠지 정글에 숨어 있는 맹수를 연상시킨다. 언제든 달려들어 사냥감의 목을 문 채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놓지 않는 맹수를.무진의 눈은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손건호와 진우현, 두 사람 모두 얼음 같은 냉기에 온몸이 관통 당하는 듯했다.얼이 빠진 바로 그 순간, 손건호가 손에 쥐었던 향낭이 단숨에 낚아 채여 다시 무진의 손으로 들어갔다.곧이어 정신을 차린 손건호와 진우현은 방금 전 무진의 동작에 대경실색을 했다.우현이 침을 삼키며 즉시 해명했다.“그냥 한 번 살펴만 볼 생각이었어. 넌 방금…… 잠들었잖아?”불면증에 시달리는 무진은 늘 수면 부족으로 머리가 맑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면부족으로 두통을 달고 사는 그였다.정상적인 수면의 느낌을 경험한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그런데 방금 막 깨어난 이 순간, 아주 드물게도 머리가 상쾌했다.살짝 고개를 끄덕인 무진이 곧 허락의 눈빛으로 우현을 응시했다.“네 의술이 발전한 것 같군.”무진의 말에 답답함을 느낀 우현은 대답하지 않았다.자신의 의술이 무진의 오랜 고질병을 치료했다고 생각하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았었다. 그런데 무진이 잠든 게 결코 자신의 공이 아니라는 말을 이미 들은 차였다.우현은 소매를 걷어붙였
다음 날 깨어난 강무진의 안색은 평소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무진의 곁에 선 비서 손건호가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해줬다.무진은 길고 늘씬한 몸을 곧게 세우고 뒷짐을 진 채 창 앞에 섰다. 그의 눈동자에 미미한 놀람이 담긴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향낭이 자신에게 효과 있다는 걸 그 역시 짐작하지 못한 듯했다.보고를 들은 강무진의 입에서 지체없이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렇군.”……지난 밤을 무척 바쁘게 보낸 성연은 호텔의 침대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다.쾅쾅쾅……. 지축을 흔드는 듯한 소리에 성연이 놀라 잠에서 깼다.이를 빠드득 갈며 솟구치는 화를 꾹 누른 채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매섭게 치켜 뜬 성연의 눈에 냉기가 흘렀다. 송씨 집안 세 사람은 자신들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아니, 이게 시골 계집애 기운이야?’송씨 일가 세 사람을 본 성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팔짱을 끼고 섰다. 예의 그 나른한 자세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방금 전의 기세는 순전히 착각라는 듯이.“무슨 일?”문 앞에는 송종철과 임수정이 서 있었고, 두 사람 뒤에 숨듯이 선 송아연이 보였다.“네가 말한 대로 아연일 데려왔어.”송종철은 올라오는 화를 참으며 뒤에 서 있던 송아연을 앞으로 끌어당겼다.시선을 송아연에게 보낸 성연이 나른하게 쳐다보았다.앞으로 떠밀려 나온 송아연은 웃음기가 다분한 성연의 눈을 마주 대하는 순간, 다시 화가 나 노려보았다.송성연이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자신이 저런 촌뜨기에게 사과해야 하다니, 이런 치욕이 없었다.송아연은 아무 말도 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성연 역시 느긋이 편한 자세로 문 가에 기대어 서서 기다렸다.성질을 참지 못한 송종철이 송아연을 재촉했다.“아연아, 어서.”송아연이 도와 달란 듯이 임수정 쪽을 쳐다보았지만, 역시 못 본 척 슬쩍 고개를 돌리는 임수정이었다.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지자, 입술을 깨문 채 내키지 않는 듯 재빨리 말했다.“언니, 그땐 내가 철이 좀 없었어요.
이 가족의 비열한 속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성연이었다.방에 들어온 그녀는 문을 잠갔다.트렁크를 열고 미니 핀홀 카메라와 소형 녹음펜을 꺼냈다.한쪽 구석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미니 웹캠을 설치하고, 또 다른 쪽 구석에 녹음펜을 두었다.아직 이 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다, 문밖에는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두 사람이 있으니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지금은 송씨 가족도 그녀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 두는 게 좋을 것이다.성연이 장비들을 다 설치하고 손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트렁크 안의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물건들을 모두 정리한 후에 보니, 자신의 향낭이 보이지 않았다.전신을 더듬어 보고 가방도 다시 한 번 검사해 보았지만, 향낭을 찾을 수 없었다.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외할머니가 자신을 위해 직접 만들어 주신 향낭이었다.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사랑해 준 분이신 외할머니는, 그녀 마음에 단 하나 남은 순수였다.외할머니와 관련된 물건이니, 절대 버렸을 리가 없었다.‘몸에 차고 다니면서 지금까지 잘 가지고 있었는데, 도대체 언제 잃어버린 거지?’성연은 턱을 괴고 침대에 앉아 곰곰이 생각하며, 머릿속의 기억들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날 밤 마을에서 한 남자를 치료해 주었던 상황을 차례로 떠올려 보았다.‘분명 거기서 떨어트렸을 거야.’성연이 한숨을 내뱉고는 고운 눈썹을 오므렸다.‘어쩌다 떨어졌지?’향낭은 외할머니가 남겨준 유일한 증표 같은 것이라, 그녀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든 찾아야 해.’성연이 휴대전화를 꺼내 서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뭇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어투였다.“물건을 잃어버렸어. 애들을 보내 마을의 폐창고를 뒤져봐. 찾거든 연락해.”“보스, 뭔 데 그렇게 급해요?” 성연의 말투에서 조급한 기색을 읽은 서한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말이 많다?” 성연이 무표정하게 말했다.그 즉
탕에는 기름이 둥둥 떠다니고, 접시에는 허연 고기 몇 점 걸려 있을 뿐이었다.성연은 위가 쓰려 왔다.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눈앞에서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북성의 명월각 요리가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가서 한 상 주문하면 얼마나 할까요?”성연의 수중에 돈이 없다고 믿고 있던 송종철은 성연의 말을 듣자 ‘쿵’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또 며칠 전 성연이 5성급 호텔에 묵으며 썼던 수백만 원을 그가 계산했던 게 생각났다.명월각 요리는 보통 당일 해외에서 공수해 온 고급 식자재에다 최상품의 술까지 더하면 기본이 수백만 원이었다.‘성연이 쟤가 진짜 가면 결국 또 내가 돈을 내야겠지?’임수정이 몇 백만 원을 써도 두고두고 속이 쓰리고 아팠는데, 하물며 수백만 원이라니!이 놈의 딸 송성연은 도대체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생각하면 할수록 불쑥 화가 치밀어 올라 괜히 애꿎은 집사를 불러 호통을 쳤다.“뭣들 해? 아가씨 먹을 거 준비 안 하고?”괜히 자신에게 화풀이하고 있음을 잘 아는 집사는 목을 움츠린 채 별 다른 대꾸 없이 주방에 일러 음식을 준비하게 했다.지켜보던 성연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그리고 별 말없이 털털하니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로 모바일게임을 했다. 볼륨을 키워 성가시게 하는 세 사람의 음성을 차단시켜 버렸다.성연을 골탕 먹이려다 실패한 임수정과 송아연은 화가나 죽을 지경이었다.저 아래에서 증오심이 끓어오르고 가슴이 답답했다.다리를 꼬고 앉아 게임 삼매경에 빠진 성연을 보며 임수정이 비아냥거렸다.“너는 허구한 날 공부는 안 하니?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살려고 그러는 거야? 시간 있을 때, 아연이에게 좀 많이 배워라, 얘. 아연인 일전에 피아노 콩쿠르에서 2등 하고, 또 학교 성적도 학년 전체에서 10위권 밖으로 나간 적이 없어.”“뭐 시골에서 교육받고 자란 너한테 무슨 기대를 하겠니? 그래도 얼굴이 반반해서 다행이네. 아니면 시집도 못 갈 텐데 말이야.”송아연도 가슴을 내밀며 경멸스럽다는 듯
평소 귀가 밝던 성연은 그날, 임수정과 송종철이 하는 대화를 모두 들었다. 겨우 한두 마디 들었을 뿐인데도 그가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날 이용하겠단 말이지? 오히려 고마운 일인걸!’성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북성에 왔으니 전학수속을 빨리 했으면 좋겠어요.”순간 송종철의 안색이 굳어졌다. “알아보는 중이야.”그는 성연이 다시 학교문제로 따지고 들까 봐 재빨리 말했다. “북성에서는 학교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학교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사실 그는 성연을 입학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강씨 집안으로 보낸 후 돈을 받게 되면, 그 이후의 일은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었다.‘강씨 집안에서 얼마나 버틸지는 순전히 자기 운이지, 뭐.’지금은 성연에게 돈을 적게 쓰는 것이 곧 돈을 버는 것이었다. 성연은 소파에 기대앉아 실눈을 뜬 채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사립학교 같은 경우에는 그냥 돈 내고 입학시험만 치르면 되는 거 아니에요?”그 말을 들은 임수정은 입에 넣었던 과일을 도로 뱉어내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넌 사립학교의 일 년 학비가 얼마나 비싼지 알기나 하니?”그녀는 휴지를 꺼내 손을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우리가 그만한 돈이 있다고 해도, 네 성적으로 들어갈 수나 있는 줄 알아?”성연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다 멈추며 고개를 들어 그녀를 흘겨보았다.“제 성적은 어떻게 아세요?”임수정은 냉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학년 내내 꼴찌인데 당연한 거 아니니?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마. 창피하니까.”실은, 성연의 IQ 지수는 상위 1%였다. 하지만 그녀가 성적이 좋지 않은 이유는 시험문제가 너무 쉽고 간단해서 도무지 도전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귀찮아서 시험을 안 친 것뿐인데, 꼴찌는 무슨?’하지만 이런 얘기를 저들에게 할 필요는 없었다.성연은 손뼉을 짝 소리 나게 치며 소파에서 일어났다.“괜찮아요. 저 혼자 가도 돼요. 돈이나 내주세요
휠체어에 앉은 강무진의 흰 셔츠 아래로 근육이 선명한 팔이 드러나 있었다.무진은 할머니의 얘기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는 듯,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할머니가 건네준 서류에 손만 올린 채 한참이 지나도 펼쳐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마음이 급해진 안금여는 자세를 고쳐 앉고는 그를 다그쳤다.“시간만 보내면서 이 꼴로 살면 대체 어쩌라는 거니?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이 할머니에게 증손주도 안겨주지 않을 작정인 거야?”무진은 시선을 돌려 할머니를 쳐다보며 늘 그랬듯 냉랭하게 말했다.“손자가 저 하나는 아니잖아요. 증손주는 다른 손자들이 많이 안겨드릴 겁니다.”‘천하의 안금여가 이리 못난 소리를 하는 손자를 어떻게 내버려 둬?’화가 난 안금여는 씩씩대며 호통을 쳤다.“네가 내 장손이고, 후계자야. 그러니 당연히 네가 증손주를 안겨줘야지. 안 그러면 내가 죽어서 먼저 간 네 할아버지를 어떻게 보겠니? 또, 강씨 가문 조상들은 어찌 뵙고!”하지만, 무진이 여전히 서류를 볼 생각이 없어 보이자 그녀는 직접 그것을 펼쳐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무진아, 이 할머니 얼굴 봐서 한 번만! 딱 한 번만 만나봐!”그러자 그는 아예 눈을 감고는 딴청을 피웠다.손금여가 첫 장을 넘기자. 소녀의 사진이 보였다.무진의 비서인 손건호가 뜻하지 않게 그것을 보게 되었다. 그는 투명인간처럼 무진의 곁을 지키며 묵묵히 제 할 일을 다 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깜박이며 사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 여자애였다!그는 허리를 굽혀 강무진의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보스, 보세요. 그 여자애입니다…….”무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사진 속의 그녀는 그가 손건호를 시켜 찾았던 바로 그 여자아이였다!이번엔 또 다른 사진이 보였다.흰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의 미소는 상큼했고 자태는 우아했다. 알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그는 눈빛이 진지해지며, 서서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안
창고 밖으로 나아서 성연과 무진은 차에 올랐다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무진은 화가 났지만 성연에게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성연이 이렇게 한 것도 자신들을 위해서일 뿐이야.’‘더군다나 지금 성연은 안진검을 잡기 위해서 온몸으로 위험을 무릅썼어.’‘그러나 결과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오늘은 마침 내가 왔지만, 만약 내가 오지 않았다면?’‘성연이는 어떻게 되었을까?’무진은 자신이 없어서 성연이 안진검의 손에 떨어지거나, MS가문의 손에 떨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안진검 그자는 척 봐도 악랄하고 잔인한 놈이야.’잠시 생각하던 무진은 더없이 두려웠다.‘내 안위는 상관없지만, 성연의 안위는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어.’성연은 무진이 입술을 꽉 다문 모습을 보고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성연이 먼저 말했다.“안진검에게 모혜정이라는 약혼녀가 있어요. 이전에 모혜정이 나와 안진검의 관계를 오해했기에, 나는 단지 이 일을 똑똑히 설명하려고 여기에 왔는데 뜻밖에도 안진검이 진짜 모습을 드러냈어요.”무진은 성연처럼 총명한 사람이 이전에 안진검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게 믿기지 않았다.게다가 안진검의 진면목을 알게 된 뒤라서 성연은 단순하게 해명할 수가 없었다.아무리 말해도 무진은 믿지 않았다.무진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성연아, 너 자신에게 물어봐, 네 해명이 믿기는지?”성연은 자신이 처음에 했던 생각을 말할 수가 없었다.‘이번에는 확실히 경계심을 늦췄다가 하마터면 나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뻔했어.’‘만약 이번 무진씨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안진검과 싸우다 함께 죽었을 거야.’‘다행히도 무진 씨가 왔어.’그러나 성연은 무진에게 감히 말하지 못했다.자신이 너무 무모해서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무진 씨...”“성연아, 잘 생각한 다음에 다시 내게 말해. 나는 네가 그저 핑계를 대는 걸 원하지 않아.”입을 열려고 하던 성연은 무진의 말을
무진은 이미 성연의 신호를 받았다.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달려든 무진이 안진검을 바로 발로 차서 쓰러뜨렸다.그리고 안진검이 손에 쥔 비수도 제거했다.무진은 성연을 품에 안았다.방금 비수가 자신의 목을 겨눈 장면을 생각하자, 성연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떨렸다.무진이 서연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면서 작은 소리로 위로했다.“괜찮아, 괜찮아, 두려워하지 마.”이렇게 위급한 상황이라서 무진도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즉시 부하들에게 안진검을 잡으라고 알렸다.상황이 심상치 않자, 안진검은 사무실로 도망쳐 문을 잠근 채 지원을 기다리려고 했다.그러나 이터너티의 사람들 동작이 더 빨라서 곧바로 안진검을 붙잡았다.안진검은 바로 바닥에 깔린 모습이 되었다.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면서 외쳤다. “놔, 놔줘.”얼굴도 바닥에 꽉 눌렸다.자신이 붙잡힌 순간, 안진검의 마음도 얼어붙었다.무진의 손에 떨어지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가 없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무진은 성연을 품에 안은 채 등을 가볍게 토닥이면서 위로했다.성연은 정말 두려움을 느꼈다.이 순간, 성연의 안색도 창백했다.카지노를 떠나면서 무진은 내친 김에 경찰에 신고했다.경찰로 하여금 이 도박꾼들과 안진검의 부하들을 체포하게 한 것이다.‘이 도박장을 이곳에 연 것 자체가 명백한 범법 행위야.’‘안진검 일당이 저지른 일도 모두 불법적인 일이지.’‘경찰이 오면 저자들도 틀림없이 몇 년씩 감옥에 가게 되겠지.’‘이 도박꾼들도 가족들을 속이고 이런 짓을 했을 거야. 이런 범죄는 근본적으로 뿌리를 뽑아야 해.’무진은 성연을 품에 안은 채 부하들을 향해 지시했다.“안진검은 엄중하게 감시해. 그자가 도망치거나 누구하고도 접촉하지 못하게 해.”‘안진검은 MS 가문의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인물이야. 만약 안진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면, 구출할 사람을 보내거나 안진검을 죽여서 입을 막으려 할 거야.’‘안진검을 잡아 두면 당연히 쓸모가 있겠지.’‘대장로의 수양아들이니 안진검은 틀림없
손건호와 부하들이 안진검의 경호원들을 없애고 있을 때.무진은 안진검의 사무실로 접근했다.당연히 자신이 직접 안진검을 생포할 작정이었다.무진은 MS 가문의 나쁜 영향은 정말 그대로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이 안진검이 성연과 몇 번이나 접촉했지.’‘다행히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어서 성연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어.’‘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얼마나 후회하게 됐을까.’‘이번에는 반드시 MS 가문을 전부 해결해야겠어.’‘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존재가 줄곧 큰 위험이 될 거야.’무진은 마음속에 큰 분노를 품고 있었다.‘오늘 반드시 안진검을 죽일 거야.’그런데 방 안의 안진검은 성연을 잡고 비수를 성연의 목에 대고 있었다.사무실 문이 열렸다.안진검은 뛰어든 사람은 틀림없이 성연과 한패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어쨌든 성연을 잡고 위협하려는 것이다.사무실 문이 열리자, 무진의 앞에 안진검이 성연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무진은 갑자기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이 장면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안진검도 온 사람이 무진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칼을 들고서 험악하게 웃기 시작했다.양 옆에서 경호원들이 붙잡고 있었지만 성연의 마음은 차분했다.성연도 안진검의 아지트를 부수러 온 사람이 무진일 줄은 몰랐다.몇 초 동안이나 경악한 채 전혀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안진검을 노려보는 무진의 눈빛에서는 원한이 폭발할 것 같았다.무진이 안진검을 향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그 여자를 놓아주면, 오늘 너를 죽이지 않겠어!”무진의 이런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무진은 가슴을 조여야 했다.‘안진검을 해결하면 성연이 철저히 안전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결국 성연은 깊은 함정에 빠졌어.’무진의 이런 모습을 본 안진검이 냉소하며 말했다.“강무진, 강무진. 당신 같은 사람이 결국 자신의 여자 때문에 제 발로 호랑이 굴로 들어오다니.”안진검은 성연이 나타나자, 무진과 성연이 공동으로 꾸민 계획이라고 생각했다.‘송성
무진은 부하들을 데리고 카지노를 공격했다.도대체 누가 들어왔는지 모르는 도박꾼들은 놀라서 허둥지둥 달아났다.부하들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무관한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엎드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자초하게 될 거야!”도박꾼들 대부분은 담이 크지 않아서 바닥에 엎드린 채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안진검의 경호원은 모두 수십 명이다.모두 칼을 들고 기세등등하게 이쪽으로 달려들었다.앞장선 자가 무진의 수하들을 향해 위세를 부리며 말했다.“너희들은 누군데 감히 이곳에 와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 너희들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그들의 손에는 모두 무기를 들었지만, 이터너티 쪽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었다.불빛 아래에서 차가운 빛을 발산하는 무기들은 더없이 섬뜩하게 보였다.이터너티 쪽 사람들은 수도 적고 다소 약해 보였다.그래서 안진검의 경호원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하지만 이터너티 쪽 사람들은 모두 고수들이다.각자의 전투력도 무척 강했다.맨손으로도 이 경호원들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다.그 경호원들은 칼을 마구 휘두르며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기술은 전혀 없었다.곧 여러 명이 이터너티 쪽 사람들에 의해서 바닥에 쓰러졌다.칼도 곧 이터너티 쪽 사람들 손으로 들어갔다.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무진은 때때로 자신에게 달라붙는 자들을 걷어찼다.갑자기 무진의 곁에 한 사람이 다가왔다.무진이 손을 뻗어 공격하려 하는데 그 사람이 소리쳤다.“보스, 접니다.”무진은 손건호가 따라올 줄은 몰랐다.바로 손을 거두고 말했다.“너 왜 왔어, 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고개를 숙인 손건호가 말했다.“보스, 보스를 보호하는 게 제 직책입니다. 나는 보스에게 어떤 일도 생기게 할 수 없습니다. 보스가 저를 따르지 못하게 해도 괜찮습니다. 보스만 괜찮으면 됩니다.”그 말을 듣자 무진은 순간 멍해졌다. ‘손건호는 정말 방법이 없어.’“왔으니 됐어, 방해나 하지 마!” 무진은 결국 손건호의 행동을 눈감아주었다.손건호가 자신을 위해서 그랬다는
안진검은 앞으로 가서 그들을 막으려고 했다.쾅! 그때 밖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곧이어 탁탁 소리가 났다.마치 집을 허무는 소리 같았다.안진검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해졌다.이때 누군가 들어와서 보고했다.“회장님, 누군가 우리 카지노에 뛰어들었습니다.”안진검은 그래도 냉정한 모습이었다.“경찰이야?”그 사람은 당황한 표정으로 보고했다.“아닙니다. 아주 잔인하게 손찌검을 하는데, 저희들에게는 극단적인 수를 썼습니다.”이미 그들의 손에 여럿이 죽었다.하지만 이 사실은 감히 말하지 못했다.안진검이 더 화를 낼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안진검도 놀란 표정이었다.‘어렵게 카지노를 열었어. 가까스로 이 자리를 찾았는데, 이제 모두 파괴된 거야.’‘그런데 도대체 누구일까?’고개를 돌린 안진검이 음산한 표정으로 성연에게 물었다.“당신이 데려온 사람이야?”어안이 벙벙해진 성연도 막연한 표정이었고, 안진검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사실 성연은 밖에 있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돌연 성연의 앞으로 달려간 안진검이 차갑게 성연을 쳐다보았다.“내 신분을 간파한 거야? 이곳은 이렇게 은밀한데, 당신이 누군가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누가 찾을 수 있겠어. 오늘 제 발로 여기 왔으니 내 인질이 될 수밖에 없어.”말이 끝나자 손을 내밀고 성연의 목을 조르려고 했다.옆에 있던 모혜정도 멍해졌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모혜정은 안진검을 보고 다시 성연을 보았다.‘원래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람들 앞에 낮을 들 수 없는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어.’‘그러나 송성연과 안진검의 지금 모습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안진검은 모혜정을 보고 화를 내며 말했다.“빨리 뒷문으로 뛰어!”모혜정은 눈물이 날 정도로 깜짝 놀랐다.“무슨 일이 생긴 거야?”안진검의 표정은 어두웠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만약 모혜정이 사람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이런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성연은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서 손을 벌리고 말했.“이제 해명했으니까 안 선생님과 미스 모는 오해가 없겠지요?”안진검이 갑자기 이상하게 웃었다.“맞아요.”갑자기 성연에게 다가가서 물었다.“미스 송, 저를 보고 왜 당황하세요?”안진검에게 들키자 성연은 깜짝 놀랐다.‘이 안진검이 꽤 예민한데!’성연은 먼저 철수할 작정이었지만 안진검의 경호원이 너무 많아서 막을 수가 없었다. ‘나가서 부하들을 소집해야만 모조리 잡을 수 있어.’‘나 혼자 있으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여기 있는 안진검의 사람들을 이기는 건 불가능해.‘사무실에만 경호원이 있는 게 아니라 밖에도 있을 거야.’성연은 감히 경거망동할 수가 없었다.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안 선생님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무슨 긴장을 해요? 저는 미스 모와의 오해를 풀 수 있어서 기쁜데요.”안진검은 웃는 듯 마는 듯 성연을 바라보았다.“그래요?”그러면서 성연에게 더 다가가서 성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송성연의 눈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 봐야겠어.’성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모혜정이 뒤에서 안진검의 팔을 잡아당겼다.“두 사람이 왜 그렇게 가까이 있는 거야?”방금 모혜정이 보기에는 두 사람이 곧 하나가 되려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런 관계도 없을 수 있어?’안진검이 주먹을 쥐었다.‘하마터면 모혜정을 내팽개칠 뻔했어.’‘이 여자는 정말 기가 막히게 초를 치지. 일을 성공시키지는 못하고 오히려 망치고 있어!’안진검은 화가 폭발할 뻔했다!“혜정아, 너는 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정말 참을 수가 없게 되자 안진검의 목소리도 좀 커졌다.안진검이 자신에게는 곱게 말하지 않자 모혜정도 성질이 났다.“야, 안진검, 나야말로 당신 약혼녀야. 그런데 나는 이렇게 거들떠보지도 않아?”“멋대로 귀찮게 굴지 마.” 안진검은 모혜정을 보기 위해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모혜정의 성질을 알고 있기에 모혜정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몇 번이나 성연을 떠볼 때마다 모두
안진검은 성연을 잘 이용해서 무진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려고 했다.성연이 먼저 제 발로 올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안진검은 방금 성연을 보고 놀라면서도 의문이 줄곧 사라지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안진검은 여전히 아주 냉정했다.성연이 왜 갑자기 왔는지 생각했다.‘만약 단지 모혜정 때문이라면, 송성연이 직접 올 필요는 전혀 없어.’‘게다가 자진해서 모혜정을 따라 이런 곳에 왔어.’다시 한번 생각해 본 안진검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송성연이 내 신분을 알아차린 걸까?’‘그래서 모혜정을 이용해서 내가 있는 곳을 찾은 거야.’잘 생각해 보자 안진검의 눈빛에는 음침함이 번뜩였다.안진검은 성연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미스 송, 내가 도박장을 차렸다면, 미스 송 마음속의 제 이미지가 모두 무너지겠지요?”안진검은 일부러 그렇게 물었다.‘송성연이 티가 나는지 좀 봐야겠어.’성연은 아주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럴 정도는 아니에요. 결국 이것도 일종의 비지니스니까요. 안 선생님은 사람들이 탄복할 비결도 가지고 계시니까요.”안진검은 말하면서 성연의 표정을 관찰했다.그리고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저는 정말 강 대표님을 존경합니다. 미스 송이 추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성연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그럼요. 문제없어요.”‘어차피 지금 여기에 있으니까 아무리 허튼소리를 해도 상관없어.’안진검은 일부러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정말요? 미스 송이 정말 저를 추천해 주실 건가요.”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지요. 안 선생님처럼 뛰어나신 분은 틀림없이 아주 좋은 협력 파트너가 될 거예요. 무진 씨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아주 좋아해요. 안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무진 씨도 틀림없이 기꺼이 안선생님과 합작할 거예요.”“미스 송, 과찬이십니다. 저는 언제쯤 강 대표님의 그런 자리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안진검의 말투에는 서글픔을 담겨 있었다.“열심히 노력하시면 이루실 수 있을 거예요. 안 선생님도 노력하시는 분이니까
도박장 밖.무진이 부하 대여섯 명을 데리고 도착했다.옆에 있던 부하가 공손하게 보고했다.“보스, 여기입니다.”성연이 모혜정의 입을 통해서 안진검이 있는 곳을 알아냈을 때, 무진도 안진검의 위치를 찾아냈다.‘지금 안진검이 이 곳에 있는 게 확실해.’무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모두 들어가서 잡을 준비해.”무진의 눈빛은 은은하게 흥분을 담고 있었다.‘안진검을 그렇게 오랫동안 찾았는데 마침내 찾았어.’‘이번에는 절대 안진검을 놓치지 않겠어!’부하가 다소 망설이며 무진에게 보고했다.“안은 카지노라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우리가 소란을 피우러 왔다는 걸 알게 되면, 그 도박꾼들은 분명히 안진검을 돕겠지.’‘그렇게 되면 그이 일의 난이도가 높아질 거야.’무진이 턱을 가볍게 들고 말했다.“왜? 너희들도 지금 내 실력을 의심하는 거야? 이런 양아치 새X들이 뭐가 무서워?”‘도박꾼들일 뿐인데 어떻게 프로와 비교할 수 있단 말이야.’무진은 자신이 길러낸 사람들도 정말 자신이 있었다.부하들은 무진의 말에 은근히 투지가 불타올랐다.예전에는 무진이 부하들을 데리고 일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지금 무진이 직접 부하들을 데리고 출전했기에 부하들도 절대 질 수 없었다!그러나 손건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무진에게 다가가서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보스, 차에서 기다리고 계시지요. 제가 사람들과 함께 들어가겠습니다.”손건호에게는 여전히 무진의 안전이 중요했다.“안 돼, 저 안진검은 내 손으로 없애야 해!”무진의 말투도 확고했다.‘안진검이 우리 주위를 빙빙 돌면서 놀렸는데, 어떻게 그자를 용서할 수 있겠어?’“하지만 보스, 안쪽은 위험합니다.” 만약 무진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안여의와 강운경에게 설명할 것인가!“너는 내 실력을 못 믿어?” 무진이 고개를 들어 차가운 눈으로 손건호를 힐끗 보았다.“제가 보스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게 아닙니다. 이 상황은 정말 들어가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안진검은 커피를 타러 안쪽으로 들어갔다.안진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모혜정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성연에게 차갑게 경고했다.“당신이 말한 대로 분명하게 말해야 돼요.”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한 말은 꼭 지켜요.”모혜정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은 걸 본 성연은 옆에서 위로했다.“모혜정 씨, 터무니없는 생각이에요. 저하고 안 선생님은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모혜정은 성연이 좋게 말을 해도 코웃음을 쳤다.“나는 당신 말을 믿지 않아.”“그날, 나는 구시가지에 가서 물건을 샀어요. 당신도 내가 많은 쇼핑백을 들고 있었던 걸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그날 어떤 아가씨가 지갑을 날치기당했는데, 안 선생님이 용감하게 행동하셨어요. 우연히 나하고 마주쳐서 같이 밥을 먹으러 갔을 뿐이에요. 그 식당은 폐쇄된 것도 아닌데, 대낮에 무슨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성연은 모혜정에게 또박또박 말했다.모혜정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성연의 말이 꽤 일리가 있었다.“앞으로는 진검 씨하고 왕래하지 말아요.”성연이 대답하려는데, 안진검이 커피 두 잔을 들고 안에서 나왔다.마침 모혜정이 성연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안진검은 갑자기 모혜정에게 한바탕 훈계했다.“혜정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미스 송은 대단하신 강무진 대표님의 약혼녀이고 앞으로 결혼할 사이야. 네가 소란을 피워서 만약에 강 대표님을 화나게 한다면, 나하고 너는 정말 괴롭게 될 거야.”모혜정은 그제야 성연이 뜻밖에도 무진과 결혼할 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그러자 모혜정의 마음은 오히려 진정되었다.‘이것은 송성연이 진검 씨에 대해서 그런 뜻이 없다는 걸 말해주는 거야.’‘강씨 가문은 큰 사업을 하고 있고 강무진도 잘 생겼잖아.’‘강무진에 비하면 안진검은 비교할 수도 없지.’‘어쨌든 송성연은 진검 씨가 마음에 들지 않을 거야.’모혜정이 깨달은 표정을 드러내자 안진검이 비로소 말했다.“이제 알았지? 빨리 송양에게 사과하지 않고 뭐 해!”모혜정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