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상황이지?’성연이 정신을 바짝 차리며 미간을 찌푸렸다.제일 먼저 몸이 반응하며 얼른 룸 반대편으로 피한 성연은 어둠을 빌려 몸을 숨겼다.성연은 룸에 바짝 몸을 붙여 귀를 갖다 대었다. 안쪽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운지, ‘쿵, 쾅’대는 소리가 함께 울려 나왔다.‘안에 있는 사람들이 분명 싸우는 소리일 거야.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큰 소리를 내지 테니까.’그녀는 사태를 관망하면서 섣불리 안으로 뛰어들지 않았다.한참 지난 후, 인영 하나가 룸 안에서 뛰쳐나왔다. 눈을 가늘게 좁힌 성연이 집중해서 똑똑히 보니 뛰쳐나온 것은 혈귀였다.혈귀의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룸에서 복도까지 핏자국이 이어졌다. 룸에서 뛰쳐나온 그는 손을 가슴에 댄 채 비틀거리며 복도를 뛰어갔다.복도를 빠져나온 그는 주위를 경계하며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다친 몸을 이끌고 클럽의 뒷문으로 달아났다.클럽의 뒤쪽은 빈민가로, 너무 지저분해서 보통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이다.오기 전, 이미 클럽과 주변의 지도를 살폈던 성연은 뛰어난 기억력 덕분에 한 번 본 것은 모두 기억해냈다.혈귀와는 반대 방향으로 길을 돌아간 성연이 혈귀가 지나갈 길목에서 기다렸다.클럽에서 점점 멀어지며 드디어 자신이 위기를 넘었다고 생각하는 혈귀였다.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 바로 앞에 선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빛을 등지고 선 탓에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혈귀는 겨우 붉은 롱 스커트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아름다운 몸매와 곧게 뻗은 긴 다리가 어렴풋이 드러났다.몸매에서 엄청난 미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러나 혈귀에게는 미녀와 노닥거릴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그는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했다. 눈앞의 사람이 바로 조직 내에서 듣기만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마녀라는 걸 말이다.성연의 신분은 아주 특수했다. 그녀에 관한 자료는 모두 극비로 취급되었으며, 일반인은 볼 수 없었다.혈귀조차도 성연과 통화만 한 적 있을 뿐이었다.혈귀는 단
혈귀가 끌려간 후, 송성연은 수정구 양 사이드를 눌러 채찍을 거두어들이고, 재빨리 그곳을 떠났다.긴 채찍이 회수되자, 서릿발 같던 냉혹함도 서서히 그녀에게서 거둬졌다. 점차 나른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변모한 그녀는 걸음걸이조차 제멋대로였다.처마 밑에서 졸고 있는 어미 고양이처럼 온몸에서 나른한 기운을 풍겼다.골목을 나선 뒤, 성연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휙 주위를 한 번 훑었다. 의심스러운 인물이 없음을 확인하고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떠났다.앞서 그녀가 섰던 곳, 높이 솟은 신형 하나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방금 골목에서 있었던 일들은 빠짐없이 강무진의 눈에 담겼다.워낙 은신에 탁월한 그인 터라, 보통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다.그래서 한참을 구경꾼으로 현장에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채지 못했다.눈을 가늘게 좁힌 강무진의 검은 눈동자가 우아한 뒷모습을 주시했다.‘저 여자, 도대체 뭐지?’무척 드물게 한 여자에게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강무진이었다.그가 텅 빈 골목을 바라보고 있은 지 얼마 후,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강무진이 고개를 돌리자, 두 사람을 데리고 쫓아온 손건호가 숨을 헐떡이며 그의 뒤에 섰다.강무진의 모습을 아래위로 세심히 살피던 손건호는 그의 몸에 혈흔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물건은 손에 넣었나?” 강무진이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손건호는 손에 들고 있던 은색 슈트케이스를 들어올려 강무진 앞에 흔들어 보였다.“손에 넣었습니다. 하지만 거래자가 달아나 버렸습니다!”거래자를 언급하며 손건호는 화가 나 이를 갈았다. 그렇게 교활한 놈인지 누가 알았겠는 가. 몇 초 한 눈 파는 동안에 달아나 버렸던 것이다.강무진의 뇌리에는 자연히 붉은 스커트가 떠올랐다. 그의 음성이 왠지 좀 더 낮고 쉬어 있었다.“누군가 이미 끌고 갔어.”“제가 가서 그 놈을 꼭 찾아오겠습니다!”단호한 음성으로 말한 손건호의 몸은 이미 쫓아갈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강무진이 손을 들어 손짓을 하
강무진이 사진 속의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며, 적막한 그의 눈동자에 빛이 서렸다.“최대한 빨리 찾아서 데려와.” 강무진이 재촉의 기운이 다분한 어조로 지시했다.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고 느낀 무진은 이런 소소한 재미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보스, 밤이 너무 늦었습니다. 먼저 모셔다 드리고 돌아가겠습니다. 사람을 찾는 일은 아래 수하들이 바로 시작할 겁니다. 의사 선생님이 이미 댁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가볍게 턱을 끄덕이며 알았다는 표시를 한 강무진.뒤편의 작은 창고에서 휠체어를 밀고 온 손건호가 강무진을 부축해서 앉혔다. 그리고 두꺼운 담요로 무진의 다리를 덮은 후, 휠체어 채로 안아 올려 차에 태웠다.수천 번도 더 해 본 동작들은 모든 진행과정이 일사천리로 매끄러웠다.곧 무진의 거처에 도착했다.거실에는 이미 흰색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반쯤 기른 머리는 목덜미 쪽에 작은 꽁지머리로 묶여 있었다. 꼬리가 살짝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 아래에는 길게 뻗은 도화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살짝 웃는 듯이 꼬리가 내려온 서글서글한 한 쌍의 눈이 자칫 사람을 빠져들게 한다.위로 약간 들려진 적당한 두께의 붉은 입술은 자웅을 겨루기 힘들 정도로 수려했다.금테 안경 아래의 두 눈동자에는 다정한 빛이 서려 있어 온화하고 점잖아 보였다.강무진의 오랜 친구이자, 강무진을 전담하는 정신과 의사, 진우현이었다.사실 그는 전적으로 강무진의 심리 상담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불면증을 앓아온 강무진을 위해 최면을 걸어 수면을 돕고, 또 수면의 질을 높여 주는 게 그가 담당한 역할이었다.인기척 소리에 고개를 돌린 진우현의 눈에 손건호가 강무진의 휠체어를 밀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또 일하고 왔어?” 진우현은 한 차례 기지개를 켠 후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었다.고개를 끄덕인 무진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휠체어에서 일어나며 진우현에게 말했다.“먼저 목욕부터 하고 올게.”이런 장면 또한 무수히 보았던 터라
“그럴 리가 없어!” 단호히 부정하는 우현의 매혹적인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믿을 수 없어.”애초 강씨 집안에서는 무진의 불면증을 치유하려고 전세계의 명의란 명의는 다 찾아서 치료를 받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향낭 하나 때문에 치유가 된단 말인가?마치 그를 놀리는 것 같았다?결국 꿈틀꿈틀 일어나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우현이 확인해 볼 생각에 향낭을 가져오라고 손건호를 부추겼다.일년 내내 무진의 곁을 지키는 손건호는 그의 생활 습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한눈에 향낭의 위치를 찾아냈다.하지만 향낭을 손에 넣는 순간, 침대에 누워 있던 무진이 조용히 눈을 떴다.순정한 검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을 발산했다. 왠지 정글에 숨어 있는 맹수를 연상시킨다. 언제든 달려들어 사냥감의 목을 문 채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놓지 않는 맹수를.무진의 눈은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손건호와 진우현, 두 사람 모두 얼음 같은 냉기에 온몸이 관통 당하는 듯했다.얼이 빠진 바로 그 순간, 손건호가 손에 쥐었던 향낭이 단숨에 낚아 채여 다시 무진의 손으로 들어갔다.곧이어 정신을 차린 손건호와 진우현은 방금 전 무진의 동작에 대경실색을 했다.우현이 침을 삼키며 즉시 해명했다.“그냥 한 번 살펴만 볼 생각이었어. 넌 방금…… 잠들었잖아?”불면증에 시달리는 무진은 늘 수면 부족으로 머리가 맑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면부족으로 두통을 달고 사는 그였다.정상적인 수면의 느낌을 경험한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그런데 방금 막 깨어난 이 순간, 아주 드물게도 머리가 상쾌했다.살짝 고개를 끄덕인 무진이 곧 허락의 눈빛으로 우현을 응시했다.“네 의술이 발전한 것 같군.”무진의 말에 답답함을 느낀 우현은 대답하지 않았다.자신의 의술이 무진의 오랜 고질병을 치료했다고 생각하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았었다. 그런데 무진이 잠든 게 결코 자신의 공이 아니라는 말을 이미 들은 차였다.우현은 소매를 걷어붙였
다음 날 깨어난 강무진의 안색은 평소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무진의 곁에 선 비서 손건호가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해줬다.무진은 길고 늘씬한 몸을 곧게 세우고 뒷짐을 진 채 창 앞에 섰다. 그의 눈동자에 미미한 놀람이 담긴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향낭이 자신에게 효과 있다는 걸 그 역시 짐작하지 못한 듯했다.보고를 들은 강무진의 입에서 지체없이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렇군.”……지난 밤을 무척 바쁘게 보낸 성연은 호텔의 침대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다.쾅쾅쾅……. 지축을 흔드는 듯한 소리에 성연이 놀라 잠에서 깼다.이를 빠드득 갈며 솟구치는 화를 꾹 누른 채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매섭게 치켜 뜬 성연의 눈에 냉기가 흘렀다. 송씨 집안 세 사람은 자신들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아니, 이게 시골 계집애 기운이야?’송씨 일가 세 사람을 본 성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팔짱을 끼고 섰다. 예의 그 나른한 자세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방금 전의 기세는 순전히 착각라는 듯이.“무슨 일?”문 앞에는 송종철과 임수정이 서 있었고, 두 사람 뒤에 숨듯이 선 송아연이 보였다.“네가 말한 대로 아연일 데려왔어.”송종철은 올라오는 화를 참으며 뒤에 서 있던 송아연을 앞으로 끌어당겼다.시선을 송아연에게 보낸 성연이 나른하게 쳐다보았다.앞으로 떠밀려 나온 송아연은 웃음기가 다분한 성연의 눈을 마주 대하는 순간, 다시 화가 나 노려보았다.송성연이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자신이 저런 촌뜨기에게 사과해야 하다니, 이런 치욕이 없었다.송아연은 아무 말도 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성연 역시 느긋이 편한 자세로 문 가에 기대어 서서 기다렸다.성질을 참지 못한 송종철이 송아연을 재촉했다.“아연아, 어서.”송아연이 도와 달란 듯이 임수정 쪽을 쳐다보았지만, 역시 못 본 척 슬쩍 고개를 돌리는 임수정이었다.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지자, 입술을 깨문 채 내키지 않는 듯 재빨리 말했다.“언니, 그땐 내가 철이 좀 없었어요.
이 가족의 비열한 속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성연이었다.방에 들어온 그녀는 문을 잠갔다.트렁크를 열고 미니 핀홀 카메라와 소형 녹음펜을 꺼냈다.한쪽 구석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미니 웹캠을 설치하고, 또 다른 쪽 구석에 녹음펜을 두었다.아직 이 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다, 문밖에는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두 사람이 있으니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지금은 송씨 가족도 그녀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 두는 게 좋을 것이다.성연이 장비들을 다 설치하고 손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트렁크 안의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물건들을 모두 정리한 후에 보니, 자신의 향낭이 보이지 않았다.전신을 더듬어 보고 가방도 다시 한 번 검사해 보았지만, 향낭을 찾을 수 없었다.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외할머니가 자신을 위해 직접 만들어 주신 향낭이었다.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사랑해 준 분이신 외할머니는, 그녀 마음에 단 하나 남은 순수였다.외할머니와 관련된 물건이니, 절대 버렸을 리가 없었다.‘몸에 차고 다니면서 지금까지 잘 가지고 있었는데, 도대체 언제 잃어버린 거지?’성연은 턱을 괴고 침대에 앉아 곰곰이 생각하며, 머릿속의 기억들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날 밤 마을에서 한 남자를 치료해 주었던 상황을 차례로 떠올려 보았다.‘분명 거기서 떨어트렸을 거야.’성연이 한숨을 내뱉고는 고운 눈썹을 오므렸다.‘어쩌다 떨어졌지?’향낭은 외할머니가 남겨준 유일한 증표 같은 것이라, 그녀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든 찾아야 해.’성연이 휴대전화를 꺼내 서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뭇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어투였다.“물건을 잃어버렸어. 애들을 보내 마을의 폐창고를 뒤져봐. 찾거든 연락해.”“보스, 뭔 데 그렇게 급해요?” 성연의 말투에서 조급한 기색을 읽은 서한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말이 많다?” 성연이 무표정하게 말했다.그 즉
탕에는 기름이 둥둥 떠다니고, 접시에는 허연 고기 몇 점 걸려 있을 뿐이었다.성연은 위가 쓰려 왔다.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눈앞에서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북성의 명월각 요리가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가서 한 상 주문하면 얼마나 할까요?”성연의 수중에 돈이 없다고 믿고 있던 송종철은 성연의 말을 듣자 ‘쿵’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또 며칠 전 성연이 5성급 호텔에 묵으며 썼던 수백만 원을 그가 계산했던 게 생각났다.명월각 요리는 보통 당일 해외에서 공수해 온 고급 식자재에다 최상품의 술까지 더하면 기본이 수백만 원이었다.‘성연이 쟤가 진짜 가면 결국 또 내가 돈을 내야겠지?’임수정이 몇 백만 원을 써도 두고두고 속이 쓰리고 아팠는데, 하물며 수백만 원이라니!이 놈의 딸 송성연은 도대체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생각하면 할수록 불쑥 화가 치밀어 올라 괜히 애꿎은 집사를 불러 호통을 쳤다.“뭣들 해? 아가씨 먹을 거 준비 안 하고?”괜히 자신에게 화풀이하고 있음을 잘 아는 집사는 목을 움츠린 채 별 다른 대꾸 없이 주방에 일러 음식을 준비하게 했다.지켜보던 성연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그리고 별 말없이 털털하니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로 모바일게임을 했다. 볼륨을 키워 성가시게 하는 세 사람의 음성을 차단시켜 버렸다.성연을 골탕 먹이려다 실패한 임수정과 송아연은 화가나 죽을 지경이었다.저 아래에서 증오심이 끓어오르고 가슴이 답답했다.다리를 꼬고 앉아 게임 삼매경에 빠진 성연을 보며 임수정이 비아냥거렸다.“너는 허구한 날 공부는 안 하니?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살려고 그러는 거야? 시간 있을 때, 아연이에게 좀 많이 배워라, 얘. 아연인 일전에 피아노 콩쿠르에서 2등 하고, 또 학교 성적도 학년 전체에서 10위권 밖으로 나간 적이 없어.”“뭐 시골에서 교육받고 자란 너한테 무슨 기대를 하겠니? 그래도 얼굴이 반반해서 다행이네. 아니면 시집도 못 갈 텐데 말이야.”송아연도 가슴을 내밀며 경멸스럽다는 듯
평소 귀가 밝던 성연은 그날, 임수정과 송종철이 하는 대화를 모두 들었다. 겨우 한두 마디 들었을 뿐인데도 그가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날 이용하겠단 말이지? 오히려 고마운 일인걸!’성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북성에 왔으니 전학수속을 빨리 했으면 좋겠어요.”순간 송종철의 안색이 굳어졌다. “알아보는 중이야.”그는 성연이 다시 학교문제로 따지고 들까 봐 재빨리 말했다. “북성에서는 학교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학교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사실 그는 성연을 입학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강씨 집안으로 보낸 후 돈을 받게 되면, 그 이후의 일은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었다.‘강씨 집안에서 얼마나 버틸지는 순전히 자기 운이지, 뭐.’지금은 성연에게 돈을 적게 쓰는 것이 곧 돈을 버는 것이었다. 성연은 소파에 기대앉아 실눈을 뜬 채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사립학교 같은 경우에는 그냥 돈 내고 입학시험만 치르면 되는 거 아니에요?”그 말을 들은 임수정은 입에 넣었던 과일을 도로 뱉어내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넌 사립학교의 일 년 학비가 얼마나 비싼지 알기나 하니?”그녀는 휴지를 꺼내 손을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우리가 그만한 돈이 있다고 해도, 네 성적으로 들어갈 수나 있는 줄 알아?”성연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다 멈추며 고개를 들어 그녀를 흘겨보았다.“제 성적은 어떻게 아세요?”임수정은 냉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학년 내내 꼴찌인데 당연한 거 아니니?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마. 창피하니까.”실은, 성연의 IQ 지수는 상위 1%였다. 하지만 그녀가 성적이 좋지 않은 이유는 시험문제가 너무 쉽고 간단해서 도무지 도전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귀찮아서 시험을 안 친 것뿐인데, 꼴찌는 무슨?’하지만 이런 얘기를 저들에게 할 필요는 없었다.성연은 손뼉을 짝 소리 나게 치며 소파에서 일어났다.“괜찮아요. 저 혼자 가도 돼요. 돈이나 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