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금여는 무진의 대답을 듣는 순간, 온몸에 희열을 느끼며 조금 전까지 했던 근심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난 바로 가서 준비해야겠다. 이 아가씨를 아주 예쁘게 단장해서 네 앞에 데려와야지.”그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흔들며 방을 나갔다. 마치 무진이 딴소리라도 할까 봐 겁이라도 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비서 손건호는 자기 보스가 이런 결혼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까닭에 깜짝 놀랐다.‘정말, 보스가 결혼한다고? 그것도 사진 속의 여자아이와?”‘어려 보이지만, 그간의 행적으로 봐서 보통이 아닌 게 분명해.’……안금여는 애당초 두 가지 상황을 예상하고 준비했다. 손자 무진이 결혼을 받아들이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을 상상하며 그에 맞는 대처법을 생각했으나, 결혼하겠다고 하니 송종철에게 연락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강씨 집안은 성연을 마음에 들어 하며 만족스럽게 생각했다.안금여의 연락을 받은 송종철은 너무 기뻐 소리를 지를 뻔했다. 송성연이 집에 온 이후로 받았던 스트레스가 한 번에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드디어 송성연을 시집보낼 수 있게 됐다!이제 남은 일은, 성연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속여서 강씨 집안에 보내 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다음날, 성연은 학교에 가서 모의고사 시험을 봤다.송종철은 전에 없이 다정하게 힘내라는 응원의 말까지 했다. 정작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성연은 그를 흘깃 한 번 쳐다본 후, 그대로 지나쳐 차에 올랐다.그 모습을 본 송종철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하지만, 그녀가 곧 이 집에서 사라질 거라는 생각에 애써 화를 눌러 참았다. 얼마 후, 검은 벤츠가 속도를 서서히 줄이며 멈추어 섰다.입구에 ‘북성남고’라고 쓰인 글자가 보였다.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금빛 간판은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북성남고는 북성에서 이름난 명문 학교로, 재벌 자제들이 다니는 최고의 귀족학교였다.어떻게 해서라도 상류사회에 속하고 싶은 중산층 사람들은 무리해서라도 자기 자식을 이 곳에 보
이번에 성연이 본 시험은 북성남고의 다음 월말고사 시험문제였다.명문 학교 선생님들이 출제한 것 중 중점 문제만 모은 것으로, 난이도가 높았다.그런 시험을 만점 맞은 성연이 입학하게 되면, 북성남고는 성적이 우수한 영재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그녀가 북성남고에 다니는 동안 학교에 크나큰 영예를 가져다줄 지도 모른다.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 유별나게 친절한 시험 감독은 직접 그녀의 입학 절차를 도와줬을 뿐만 아니라, 학교 소개도 해주었다. 그의 도움으로 입학 절차는 아주 빨리 마무리되었다.집에 돌아온 송아연은 분통을 터뜨리며 송종철과 임수정에게 송성연이 만점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했다.뜻밖의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은 멍한 얼굴이었다.특히 송종철은 마치 그녀를 처음 보는 것처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성연은 거실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때, 가방 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그녀의 휴대전화에는 두 가지 벨 소리가 저장되어 있다. 그중 조직에서 걸려 오는 전화는 특별한 벨 소리가 울렸는데, 그녀는 그런 전화는 늘 먼저 받았다.성연은 습관적으로 문을 잠그고 전화를 받았다.“보스, 혈귀가 아수라문에 들어왔다가 달아나 버렸습니다. 출구 쪽에 내통한 놈이 있었습니다.”평소 건들거리던 말투는 완전히 사라진 채, 서한기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성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온몸에서 얼음장 같은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요즘 내가 아수라문에 가질 않았더니 난리네. 너희들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할 거야? 너희가 못 찾으면 내가 나서야 하는데, 그때까지 안 잡고 내버려 둘 거야?”서한기는 코만 만지작거리며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혈귀를 지키던 부하에게는 이미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하나 더…….”“흥!” 성연이 코웃음을 쳤다.서한기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눈 딱 감고 말했다.“스카이 아이 시스템을 도둑맞았습니다. 혈귀, 그 개자식이 달아나면서 시스템도 가져가 버렸습니다. 누군가에게 팔려고 했던 모
성연은 전화를 끊고도 한참 후에야 비로소 마음속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송종철은 어떻게든 그녀를 강씨 집안으로 시집을 보내려 했고, 그녀는 결혼을 깨 버릴 방법을 궁리 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면서 말이야.’강씨 집안은 사실 상대하기 까다로운 곳으로 백 년의 전통을 지닌 가문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 집안이 그저 북성 최고의 갑부라고만 알고 있었으나, 사실은 세계 최고의 갑부였다. 강씨 가문 재산의 90% 이상이 지하에 숨겨져 있어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들리는 말로는, 강씨 집안의 젊은 세대 중에 아주 유능한 키 맨이 있다고 한다. 업종을 망라하며 손 대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실세인 데다, 그의 영향력은 하늘을 찌를 정도라고.하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성연이 세운 ‘아수라문'의 정보팀에서도 그를 조사했었다. 하지만 이미 알려진 사실 외에는 아무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이제, 그녀가 진상 파악을 위해 직접 강씨 집안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스카이 아이 시스템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강씨 집안이 호랑이 소굴이라 해도 반드시 들어가야 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성연은 송종철이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사실, 그는 성연을 속일 핑계가 생각나지 않아 답답하던 참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임수정이 과일 한 접시를 들고 성연의 방으로 갔다.침대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던 성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임수정을 바라보다 다시 휴대전화를 봤다.임수정은 이를 악물었다. 예의 없고 무시하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분노가 솟아올랐다.‘자기가 정말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분수도 모르고 말이야.’하지만 임수정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성연아, 여기서 지내는 게 좀 불편해 보이는구나. 환경을 좀 바꿔 보는 건 어떻겠니? 우리 집보다 훨씬 좋은 곳이야. 귀족 자제들이 살
성연과 송종철이 도착한 곳은 북성의 유명한 고급 빌리지였다.이 빌리지는 값비싼 땅 위에 지은 곳으로, 직위가 높은 정치인이나 재벌 일가가 주로 살았으며, 일반인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엠파이어 하우스]성연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입구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명필의 손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힘차고 기세가 웅장한 글씨체는 사람들을 압도할 만했다. 송종철도 뒤따라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는 듯, 차 문은 그대로 열어 둔 채였다. 그는 하나의 절차라도 되는 양 형식적으로 당부하는 말을 건넸다.“성연아, 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 이곳은 우리 집보다 백 배는 더 나은 곳이야. 네가 여기서 살 생각을 하니 나도 마음이 놓인다.”그는 말을 마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성연의 마음이 어떤지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송종철이 이곳에 도착할 때부터 다시 떠날 때까지는 채 2분도 안 걸렸다. 마치, 귀찮은 일을 빨리 해치워 버리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마음이 놓인다고?’성연의 얼굴에 비웃음이 가득했다.그가 마음이 놓이는 이유는 아마도 번거로운 일을 해결해 버린 데에서 느끼는 안도감일 것이었다. 엠파이어 하우스의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성연은 짐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잠시 자리에 서서 건물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엠파이어 하우스는 매우 인상 깊은 곳이었다. 정교하게 지어진 건물마다 값나가는 침향나무로 만들어진 긴 회랑이 있었다. 그곳에 서니 은은한 나무 향이 났다. 긴 화랑의 한쪽 끝에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 아래에는 연꽃이 심겨 있었고, 비단잉어 홍백이 바닥이 보이는 맑은 연못에서 보일 듯 말듯 헤엄쳐 다녔다.고풍스러운 분위기로 가득 찬 전형적인 정원식 건축물은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그때, 검은 제복을 입은 집사가 그녀를 마중 나왔다.거실에 들어서자 곳곳에 놓인 값진 골동품과 명화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하지 않던 성연에게도 강
손을 잡힌 성연이 안금여를 따라 소파에 앉았다.“할머님.”성연의 말을 들은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성연의 손을 가볍게 감싸듯 두드렸다.“넌 참 좋은 아이 같구나. 긴장하지 않아도 돼. 이제 우리는 한 가족이 될 테니 말이야. 무슨 일이 있으면 이 할머니를 찾도록 해라. 내가 네 편이 되어 줄 거니까. 알겠지?”성연은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속으로 생각했다.‘어떻게 긴장을 안 할 수가 있겠어요? 나랑 결혼할 남자는 조병이 있는 미친 사람이라 는데 말이에요.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다 저를 달래려고 그러는 거잖아요.’오늘 밤, 자신이 직면하게 될 것이 대체 무엇인지 그 누가 알겠는가!성연은 어떠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만족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동안은 너무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지냈고 이제 겨우 이곳에 왔다. 이까짓 이유로 두려워 도망갈 수는 없었다. 그러다 성연은 문득, 자신의 권리를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상기된 얼굴을 하고 촉촉해진 눈으로 안금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수줍은 듯 손끝을 오므렸다. “할머님, 우리 아버지한테 듣기로는…… 제가 결혼 때문에 이 곳에 왔다고 하셨는데…… 혹시 그전에 먼저…… 학교에 다녀도 될까요? 너무 일찍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아서요.”안금여는 그녀의 말을 듣고 속으로 기뻐했다.‘역시 진취적인 아이구나!’‘안타까울 정도로 철이 들었어.’“물론이지. 너를 오늘 여기 오라고 한 이유도 네가 이 집에서 생활하는데 적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야. 또 무진과 생활 습관을 맞출 시간도 필요하니까. 너에게 의무 같은 걸 지워줄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고 지내거라.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성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이 집안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닌 것 같았다.강씨 집안의 일 처리 수준은 놀라울 정도였다. 안금여와 대화하는 사이에 성연을 위한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다.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안금여는 곧 돌아가야 했다.그녀는 집사에게 성연의 옷을 몇 벌 더 장만해 놓으라고 지시했
성연은 밖이 잘 보이지 않게 커튼을 내리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회색 천장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그 남자를 보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영원히 피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스위치를 내려 불을 꺼버렸다.‘탁’하는 소리와 함께 방 안이 어둠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잠든 척했다. 이렇게 하면 약혼자라는 사람과 만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밝았던 방이 갑자기 어두워진 것을 본 강무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야?”집사가 몸을 굽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할머님께서 오늘 그분을 이곳에 데리고 오셨습니다.”강무진은 못마땅한 듯 아무 말이 없었다. “보스, 그분을 다른 방으로 모실까요?”위층 방을 바라보는 손건호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강무진은 다른 사람이 자기 물건을 건드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더군다나 그 방은…….강무진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그는 물음에 대해 대답은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나를 위층으로 데려다 줘.”손건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부축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집사는 뒤에서 휠체어를 들고 따라왔다.그를 방 앞까지 데려다 준 뒤, 손건호와 집사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강무진은 자존심이 센 사람으로 자신의 ‘영역’이 다른 사람에게 침범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그 방은 평소 집사나 가정부가 청소할 때를 제외하면 신뢰가 두터운 몇 사람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른 사람은 절대 들어갈 수 없었다.휠체어를 타는 강무진 때문에 집안에는 턱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휠체어를 움직여 방으로 들어간 뒤,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행동했다.이불 속에 숨어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이던 성연은 속으로 생각했다.‘설마 그 많은 방 중에 하필 이 방이 그의 방은 아니겠지? 설마!’‘이게 다 무슨 일이람!’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바람을 무참히 짓밟았다. 강무진은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그의 몸으로 물줄기가 떨어졌다. 직
송성연은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강무진의 커다란 몸이 그녀를 눌렀다. 성연에게 그는 마치 커다란 산 같았다.그는 성연을 아프게 하지 않으면서도 도망갈 수 없게 압박했다.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그의 몸을 주먹으로 공격했다. 특히, 그의 급소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강무진이 막는 바람에 제대로 공격 한 번 하지 못했다. 성연은 더욱 화가 나 아까보다 더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녀의 실력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닌지라, 얼마 후 강무진 또한 당해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 몸의 상처가 다 낫지 않은 그는 혹시라도 성연이 상처 부위를 공격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성연이 계속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그는 성연을 몸으로 힘껏 내리 누르며 압박했다.그리고는 커다란 손으로 성연의 두 손목을 수갑을 채우듯 채워 머리 위로 올렸다. 그녀의 두 다리 역시 그에게 눌려 꼼짝하지 못했다.커튼이 꼼꼼하게 쳐진 방안은 바람은커녕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짙은 어둠이 가득한 방에서는 아무리 시력이 뛰어난 성연이라 해도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다만 진한 남자의 향기가 콧속으로 전해질 뿐이었다. 성연은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짓눌리고 있자니 너무 불쾌해서 소리를 질렀다. “당신 도대체 누구야?”‘이런 실력을 갖춘 자가 장애가 있다는 강무진일 리가 없어.’‘설마 강무진 집에 찾아온 손님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대담하잖아?’성연이 남자를 향해 경고했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지금 당장, 그 손 놔! 나는 강무진의 약혼녀야.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그 손 놓는 게 좋을걸?”성연은 자신을 누르고 있는 이 남자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이곳은 강무진의 집이었고, 그가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언급하면 혹시라도 지금 상황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강무진은 오랜만에
강무진은 이런 자신의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은 까닭은 관심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만났던 여자들은 모두 의도적으로 접근해왔다. 그는 그녀들에게서 풍기는 고약한 화장품 냄새가 지독히도 싫었다. 매번 그녀들과 스킨십을 시도해보았지만, 채 2분도 안 돼 그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었고 결국 여자들을 쫓아내고 말았다.하지만 이 여자는 달랐다. 강무진은 당장이라도 이 여자를 덮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그는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방안이 다시 고요해졌다.성연은 자신이 이 남자를 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당한 터라, 지금 손을 쓴다 해도 승산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실력이 이 남자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했다.위풍당당한 ‘아수라문’의 문주가 남자 하나 당하지 못하다니.이제껏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성연은 ‘세계 용병 랭킹’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했다.그런데 이 남자는 도대체 뭐지?그녀는 강씨 집안에 숨은 인재들이 많은 것 같아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이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싸워서 이길 수 없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성연이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협박했다.“당신 계속 이렇게 나오면 사람을 부를 거야!”그녀가 막 살려달라고 소리치려는 순간, 입이 막혔다. 깜짝 놀란 성연은 멍하니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 키스를 해봤다.성연은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무진은 멍하니 있는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그녀의 입술에 깊이 키스했다. 강무진은 지금 이 순간 마음 따위는 상관없이 본능에만 충실하고 싶었다.어차피 이 여자는 자신의 약혼녀 아닌가. 키스하면 안 될 이유가 없었다.길고 긴 입맞춤이 계속됐다.한참 후, 강무진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괜찮은데?”성연이 귓불
이때 산책하고 돌아오던 외삼촌이 성연을 보고는 불만을 표시했다.“걔가 원하지 않으면 그만둘 것이지, 왜 또 강요하는 거야? 나는 성질 좋은 사람이 아니야. 채연이를 괴롭히지 마.”외삼촌의 말을 들은 성연은 유채연을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성연도 중재자일 뿐이기에 유채연을 대신해서 결정할 수는 없었다.지금 유채연의 외삼촌 때문에 대화를 나누기가 더 불편했기에, 돌아가서 다시 방법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성연이 나간 뒤 외삼촌을 보면서 유채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그 자리에 선 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더없이 가슴 아프게 했다.유채연의 이런 모습을 본 외삼촌은 크게 화를 냈다.바로 유채연을 향해 화를 내며 소리쳤다.“너 왜 그래? 아까 그 남자가 바로 네 사진 속에 있던 걔가 맞지? 그 사진을 몇 년이나 보고 있었는데, 그 남자를 좋아하는 거지? 그럼 나가. 이 작은 가게는 나 혼자서도 관리할 수 있어.”예쁘고 부지런한 유채연이 요 몇 년 동안 일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유채연에게 남자를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유채연은 응하지 않았다.맞선을 볼 때마다 유채연은 자기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언젠가 문을 잠그는 걸 깜빡했을 때, 외삼촌이 무심코 유채연의 손에 든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유채연은 마치 보물을 대하듯이 사진을 보고 있었다.그때 외삼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그 사람이 정말 나타났는데 조건도 아주 좋아 보여.’‘채연이가 그 남자와 함께 한다면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거야.’외삼촌의 말에 유채연은 순간 멍해졌다.유채연은 자신이 나간다고 하면 외삼촌이 제일 먼저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다.자신이 떠나면 외삼촌을 챙겨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유채연의 눈에 외삼촌은 줄곧 나쁜 사람의 모습이었다.하지만 그래도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외삼촌이 자신을 돌보고 보호해줄 거라고 생각했다.‘외삼촌이 가끔씩 말을 거칠게 해도 속마음은 부드러워.’
다음 날 아침 일찍 성연이 왔다.성연은 바로 가게에서 유채연과 이야기하고 싶었다.“채연 언니.”어제 두 사람에 대한 유채연의 태도는 좋았다.그러나 오늘 유채연은 냉담하게 거부하는 모습이었다.성연을 보고 정색을 하면서 미소도 전혀 짓지 않았다.“성연아, 물건을 사지 않으면 나가. 우리 가게는 작으니까 여기에 있지 마.” 축객령을 내린 것이 분명했다.그런 유채연을 보면서 성연은 단지 가슴이 아팠을 뿐이다.‘두 사람에게는 분명히 좋은 미래가 있어.’‘그러나 채연 언니는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해.’“채연 언니,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 사이에 분명히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잘 이야기하면 오해도 잘 해결될 거예요.” 성연도 두 사람이 잘 지내면서 행복하게 함께 있기를 바랐다.하지만 매번 뜻대로 되지 않았다.“우리 사이에 무슨 이야기할 만한 게 있겠어. 나를 찾아온 거라면 돌아가. 만약 나를 찾으러 온 게 아니라면, 여기서 즐기면서 나한테는 더 이상 오지 마.”이렇게 말하면서, 유채연은 마음속으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그러나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돼.’‘그래함과 성연만 여기서 나가면 돼.’‘이렇게 하면 나도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지 않을 거야.’‘예전의 꿈만 기억하면 돼.’‘나는 다시 내 생활을 계속할 수 있어.’“언니, 언니는 지금 사형에게 정말 아무런 느낌도 없어요?” 성연은 유채연이 그래함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도 없다는 걸 믿지 않았다. 유채연의 눈빛이 반짝거렸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성연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더욱 분발해서 열심히 권유했다.“채연 언니, 언니의 생각이 어떤 지를 떠나서 나는 단지 언니가 사형하고 잘 얘기하고, 무슨 문제가 있으면 함께 해결하기를 바랄 뿐이에요.”유채연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자신과 맺어질 수 없는 그 사람을 지나치게 원하지 않기 위해서, 아예 생각을 끊으려는 것이다.“나는 여기에 남아서 가게를 봐야 해. 성연아, 네
외삼촌에게 밥을 차려준 뒤 유채연은 혼자 가게를 지켰다.손님에게 물건을 가져다주면서.오늘 밤, 유채연은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을 좀 연장했다.외삼촌이 의심할까 봐 유채연도 너무 오래 끌지는 못했다.마침내 작은 슈퍼마켓의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유채연은 혼자 길모퉁이까지 걸어가 보았다.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갑자기 더없이 서글퍼지자, 유채연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그래함은 납득했겠지.’‘내가 지금 어떤 처지인데, 또 어떻게 그래함을 연루시킬 수 있어?’‘나도 너무 뜬구름 잡는 생각만 한 거야.’유채연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하긴, 그래함이 왜 내게 반했겠어?’‘지금의 내게 그래함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겠어.’유채연은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방 문을 잠근 뒤 이불 속에 눕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마음속으로는 모든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마음은 그래도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그때 어머니의 병이 아니었다면 집안이 망하지는 않았을 거야.’‘아마도 나도 대학에 갔을 거고, 그래함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겠지.’‘어쩌면 모든 게 달라졌을지도 몰라.’‘그런데 지금 이런 생각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어.’‘나와 그래함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이제 나는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하고 살아가면 돼.’‘지금의 나는 이전처럼 헛된 망상을 할 자격도 없어.’‘현실로 돌아가는 게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야.’유채연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똑똑똑- 넓은 방안에 문 밖의 노크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크게 울렸다.유채연은 이런 장면에 익숙한 듯 눈물을 닦고 침대에서 일어났다.“외삼촌, 무슨 일이세요?”약간 갈라진 듯한 유채연의 목소리는 특히 표시가 났다.하지만 유채연은 그렇게 많은 걸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 맘대로 하면 돼.’“너 오늘 저녁 안 먹었지?” 밖에서 외삼촌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먹을래요.” 생각할수록 슬퍼서 유채연은
다시 유채연이 고함을 치자 외삼촌은 크게 놀랐다.‘요 몇 년 동안 채연이는 내 앞에서 줄곧 순종했어.’‘지금 뜻밖에도 두 명의 외부인 때문에 감히 말대꾸를 하고 있어.’갑자기 외삼촌이 또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보니까 네가 간이 배 밖에 나왔구나. 내가 그동안 너를 거뒀는데, 너는 전부 너는 짖어라 라는 식이야?”“나 아니면 누가 너를 신경이나 쓰겠어. 그 사람들은 돈이 있잖아. 진작에 갔다가 왜 이제야 온 거야?”“만약 또 내게 이렇게 말할 거면, 앞으로 너를 상관하지 않아도 탓하지 마.”외삼촌은 유채연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서 심하게 말을 했다.유채연은 그 말들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마음속으로는 온통 그래함을 생각하고 있었다.‘예전에 나와 그래함은 죽마고우여서 다른 사람에겐 하지 않았던 일도 많았지.’‘그래함이 병이 났을 때 내가 그래함을 돌보았어.’‘그때 사랑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그래함에게 감정이 생겼어.’‘그래함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내가 맞은편 마을로 가지도 않았을 거야.’‘심지어 그래함은 나중에 나하고 결혼할 거라고 예전에 말하기도 했어.’나중에 일어난 그 일들이 오히려 유채연을 심연 속으로 매섭게 끌고 갔다.만약 유채연의 집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유채연도 그래함과 함께 하는 걸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그래함은 내가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럴 리가 없어.’‘그래함은 단지 일시적으로 감정이 복받쳤을 뿐이야.’‘곧 후회할지도 몰라.’그들의 처지가 너무나 현격하게 차이가 나기에.유채연은 감히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할 수 없었다.일을 너무 좋게 생각할 수도 없었다.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간직할 것이다.‘빛나는 보석이 된 그래함은 가장 높은 위치에 서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거야.’‘그러나 지금 진흙투성이인 유채연은 그저 서민들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어.’‘지금까지 그렇게 좋지 않았던 내 처지가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어.’‘예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자포자기하기도
유채연은 넋이 나간 채 슈퍼마켓으로 돌아왔다.머릿속에 맴도는 건 그래함의 자신에 대한 태도와 자신에게 했던 말뿐이다.슈퍼마켓을 지키던 외삼촌은 유채연이 오는 것을 보고는 가게에서 나가며 야단쳤다.“누구를 만났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집안 일은 할 필요가 없어?”“이 정도로 시간을 잡아먹을 거면 차라리 집에 잘 있는 게 낫겠어.”유채연은 반박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숙이고 서 있었다.유채연이 돌아왔을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뜻밖에도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났어.’‘지금은 확실히 시간이 좀 늦었어.’평소에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주 엄격했다. 유채연은 오랫동안 바깥에 나가지 않은 채 매일 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유채연이 감히 항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본 외삼촌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너를 찾아왔던 그 두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야?”유채연은 건성으로 대답했다.“그저 고향 사람일 뿐이에요.”“고향 사람이 왜 너를 찾아왔어?” 외삼촌은 여전히 예민했다.유채연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너무 오랫동안 나를 보지 못했으니까 나를 찾아왔지요.”“너는 지금 류씨 집안에 사는 게 아니야. 너를 찾아오려면 시간이 더 걸렸을 텐데, 그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한가해서 너를 찾아온 거야?” 외삼촌은 계속 꼬치꼬치 캐물었다.유채연의 상태가 아직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외삼촌이 그렇게 묻는 말을 듣자 외삼촌에게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평소에 외삼촌은 자신의 일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렇게 세세하게 물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야.’“그때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 사람들이 구태여 알아볼 필요도 없이 조금만 물어봐도 알 수 있지요. 외삼촌, 그걸 왜 물어보세요?” 유채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외삼촌이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 사람들이 정말 호사스럽게 손을 쓰던데, 부자인 모양이야. 그 사람들한테서 돈을 좀 구할 수 없을까?”방금
유채연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그래함의 눈빛은 자신도 모르게 어두워졌다.그는 싸움에서 진 수탉처럼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기에 생각도 하지 않고서 바로 유채연을 쫓아갔다.성연이 그래함의 앞을 가로막았다.“사형, 지금 채연 언니의 상황도 봤으니까 조급해하지 마세요. 채연 언니에게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해요. 우리가 온 첫날인데, 쫓아간다고 해도 어떻게 그렇게 승낙할 수 있겠어요?”그래함은 여전히 자신은 정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꼈다.“설마 내 마음을 채연이는 모르는 거야?”의기소침해진 그래함이 자리에 앉았다.성연은 그들이 이렇게 오해하는 걸 원치 않았기에 옆에서 설명했다.“사형, 사형은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지금 사형은 채연 언니가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뛰어나요. 결국 많은 사람들도 결혼은 집안이 엇비슷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채연 언니는 깊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요. 언니의 반응은 완전히 제 예상대로예요.”지금 그래함의 세계는 유채연은 이전에는 접촉해 보지도 못했고 따라잡을 수도 없는 위치였다.‘채연 언니는 왜 그렇게 많이 생각한 걸까?’‘언니와 사형은 그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어.’‘두 사람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그들 사이에는 장벽이 너무 많아.’‘그건 시간도 바꿀 수 없는 거야.’‘어떻게 해야 언니 마음을 돌릴 수 있는지 열심히 생각할 수밖에 없어.’그 말을 들은 그래함은 막막한 표정이었다.“그럼 이제 어떡하지?”턱을 매만지던 성연이 잠시 후에 말했다.“채연 언니가 지금 동의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지금 여기서 채연 언니가 승낙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머물러야 해요.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사형을 도와줄게요.”그래함은 지금 유채연과 함께 있고 싶지만, 유채연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게 분명했다.‘지금은 우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어.’그러나 유채연에게 남편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그래함은 전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작은 읍내에는 머무르기에
유채연은 망설이면서 자신의 손을 뒤로 감출 수밖에 없었다.그래함이 자신에게 이런 행동을 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옆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성연은 마음속으로 다소 놀랐다.‘지금 사형은 거의 반쯤 무릎을 꿇고 있어.’‘태도는 경건하기까지 해.’‘이렇게 멋진 남자가 자기 앞에 서면 어떤 여자라도 설렐 거야.’‘하지만 채연 언니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해서, 언니의 마음속 생각을 알 수 있어.’성연이 옆에서 말했다.“채연 언니, 사형의 언니에 대한 마음을 줄곧 가지고 있었어요.”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잠잠했던 유채연의 마음도 움직였다.‘하지만 그래함은 명품 옷을 입고 있어.’‘한눈에도 이 남자가 이런 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그런 높은 신분이라는 걸 알 수 있어.’‘게다가 나는 오랫동안 일을 했기 때문에 손도 더할 나위 없이 거칠어졌어.’ 이렇게 생각하자 유채연은 갑자기 다시 용기가 없어졌다.등 뒤로 감춘 손을 꼭 쥔 채 입술을 깨물었다.성연이 옆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채연 언니, 사형에게 기회를 주세요. 사형은 막 귀국하자마자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이곳에 와서 언니를 찾았어요. 불쌍한 사형을 봐서라도 기회를 주세요.”유채연은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그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그래함은 내 비천한 모습을 이렇게 못 알아보는 거야?’천천히 일어선 그래함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채연아, 나는 강요하는 게 아니고 강요할 생각도 없어. 그러나 나는 조급하게 나를 거절하지 말고 정말 네가 잘 생각해주면 좋겠어. 나와 함께 하면, 너는 더 잘 지낼 수 있을 거야.”이전의 그래함은 감히 이런 말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 자신은 유채연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다.그래서 비로소 찾아온 것이다.“됐어.” 유채연은 힘겹게 한마디를 내뱉으며 가슴이 두근거렸다.자신의 마음도 몹시 괴로웠지만, 유채연은 자신과 그래함은 차이가 난다고 생각했다.“채연 언니, 정말 잘 생각해 보지 않을 거예요?” 성연은 정말 이런 장면을 그
자리에서 일어난 그래함이 다시 유채연의 손을 잡았다.“나와 함께 해 줄래?”이 요구를 들은 유채연은 순간 어안이 벙벙한 채 멍하니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자신과 그래함은 이미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유채연은 자신은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유채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그래함은 그녀의 답을 듣는 게 겁이 났다. 그래함의 표정에는 애원하는 기색까지 드러났다.“채연아, 우선 조급하게 나를 거절하지 말고 잘 생각해줄래?”유채연이 자신에게 보답할 기회를 주기를 바란 것이다.‘애초에 내가 떠나자마자 유채연의 집에 이런 변고가 생겼으니, 정말 내 잘못이야.’“나, 난 안 돼. 지금 내 꼴을 봤잖아.” 유채연은 고개를 숙인 채 고개를 들 용기마저 없었다.‘나는 그래함과 함께 있을 그런 자격이 없어.’‘지금의 그래함은 더 좋은 짝을 가질 자격이 있어.’‘게다가 나는 삶에 찌들린 불쌍한 사람일 뿐이야.’‘그래함이 나와 함께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나는 개의치 않아. 정말이야. 바로 승낙할 것을 요구하지 않을게. 하지만 잘 잘 생각해줄 수는 있겠지? 그렇게 빨리 나를 거절하지 말고 잘 생각해 줄래?” 그래함의 이 말투는 정말 비굴할 정도였다.그렇게 오랫동안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그래함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유채연이 유일한 사람이었다.성연은 눈을 부릅뜬 채, 잠시 후에 어떻게 그래함을 도와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지금 채연 언니는 자신감이 하나도 없어.’‘그렇게 많은 일을 당했으니, 채연 언니의 예전의 마음이 일찌감치 없어진 것도 무리가 아니야. 지금 그래함 사형이 온 걸 언니 입장에서 말하자면, 아마도 이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채연 언니가 정말 그래함 사형과 다시 함께 할 수 있다면 훨씬 나아질 거야.’‘하지만 채연 언니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왜?” 유채연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나는 바로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이야.’‘그래함을 누가 원하지 않
이렇게 손을 잡히자, 바로 얼굴이 빨개진 유채연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손을 빼낼 수가 없었다.당황한 유채연이 황급히 말했다.“얘기할 테니까 손을 놔줘.”성연도 그래함의 행동을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평소에 어떤 일을 하든 사형은 아주 침착해.’‘지금 채연 언니의 모습을 보고 통제력을 잃은 거야.’‘얼마나 좋아하면 저럴까!’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유채연을 찾았고 마침내 좋은 소식이 있었다.그것은 바로 유채연이 여전히 독신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그래함은 유채연의 손을 쓰다듬으면서 여전히 아쉬워하며 놓지 못했다.그래함은 지금 자신이 이미 이성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전부 본능에 의지해서 행동하는 것이다.“빨리 놔줘.” 유채연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사람들 앞인 데다가 이곳에는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그래함이 이럴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그러나 유채연은 자신은 이제 그래함에게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지금 내 앞에 있는 그래함은 이렇게 뛰어난 모습인데, 내가 무슨 덕이 있겠어?’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는 그래함의 모습을 보면서, 성연은 치한의 행동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성연이 이마에 손을 짚고 말했다.“사형, 먼저 손을 놓고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번 들어봐요.”성연의 말을 듣자, 비로소 자기가 추태를 부렸다는 걸 깨달은 그래함도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미안해.”유채연이 얼른 손을 집어넣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언니, 언니 집에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어요?” 성연은 여전히 몹시 궁금했다.‘지금 채연 언니는 외삼촌과 함께 살고 있지만, 아마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유채연의 눈에서 슬픔이 묻어났다.“그때 나는 하마터면 시집갈 뻔했어. 그러나 어머니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져서 많은 병원비가 들게 되자 상대방에서 원하지 않았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너무 무리하게 일했던 아버지도 결국 과로로 말미암아 병이 나셨어. 아버지를 여러 해 동안 보살폈지만 결국 돌아가셨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