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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약혼자를 처음으로 만나는 날

손을 잡힌 성연이 안금여를 따라 소파에 앉았다.

“할머님.”

성연의 말을 들은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성연의 손을 가볍게 감싸듯 두드렸다.

“넌 참 좋은 아이 같구나. 긴장하지 않아도 돼. 이제 우리는 한 가족이 될 테니 말이야. 무슨 일이 있으면 이 할머니를 찾도록 해라. 내가 네 편이 되어 줄 거니까. 알겠지?”

성연은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긴장을 안 할 수가 있겠어요? 나랑 결혼할 남자는 조병이 있는 미친 사람이라 는데 말이에요.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다 저를 달래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오늘 밤, 자신이 직면하게 될 것이 대체 무엇인지 그 누가 알겠는가!

성연은 어떠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만족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동안은 너무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지냈고 이제 겨우 이곳에 왔다. 이까짓 이유로 두려워 도망갈 수는 없었다.

그러다 성연은 문득, 자신의 권리를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을 하고 촉촉해진 눈으로 안금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수줍은 듯 손끝을 오므렸다.

“할머님, 우리 아버지한테 듣기로는…… 제가 결혼 때문에 이 곳에 왔다고 하셨는데…… 혹시 그전에 먼저…… 학교에 다녀도 될까요? 너무 일찍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아서요.”

안금여는 그녀의 말을 듣고 속으로 기뻐했다.

‘역시 진취적인 아이구나!’

‘안타까울 정도로 철이 들었어.’

“물론이지. 너를 오늘 여기 오라고 한 이유도 네가 이 집에서 생활하는데 적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야. 또 무진과 생활 습관을 맞출 시간도 필요하니까. 너에게 의무 같은 걸 지워줄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고 지내거라.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성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이 집안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닌 것 같았다.

강씨 집안의 일 처리 수준은 놀라울 정도였다. 안금여와 대화하는 사이에 성연을 위한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다.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안금여는 곧 돌아가야 했다.

그녀는 집사에게 성연의 옷을 몇 벌 더 장만해 놓으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았던지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성연아, 할머니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강씨 본가에 살고 있단다. 심심하면 놀러 와도 좋아. 괜히 내가 여기서 젊은 너희들이 감정을 키워 나가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구나. 이 곳이 익숙해지게 좀 둘러 보겠니? 저녁이 되면 무진이 돌아올 거야.”

그녀는 보면 볼수록 성연이 더 마음에 들어 기분이 좋았다.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공손히 인사한 성연은 그녀를 배웅하고 차에 타는 것까지 확인을 다한 후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집사가 성연에게 위층에서 마음에 드는 방을 사용하면 된다고 말해 주었다.

하나하나 방을 살펴보던 성연은 그중 하나를 선택했다.

장식이 거의 없는 회백색의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방이었다.

말끔히 청소된 방 안에는 깨끗한 새 이불이 침대 위에 가지런히 개켜져 있었다.

성연은 편안한 느낌의 이곳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오늘 관찰하고 겪은 대로라면, 강씨 집안의 일 처리 스타일은 매우 꼼꼼하고 엄격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규칙을 엄격히 지켰다. 그녀를 처음 보면서도 차분하고 평온한 눈빛이었다. 평범한 옷차림의 성연에게도 무척 공손했으며 낮추어 보는 듯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녀를 위해 사소한 일까지 하나하나 잘 처리해 주었다.

집안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이들을 이렇게 잘 훈련시킨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성연은 침대에 앉아 머릿속으로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했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날이 저물었다.

성연은 방에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차 소리가 들려오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그녀는 눈을 뜨고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휠체어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한 남자가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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