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내가 잠잘 수 있도록 해줄 테니, 머리 좀 가까이해 봐요.” 성연이 소파에서 내려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무진은 그녀가 시키는 대로 말을 아주 잘 들었다.성연은 웃음이 터졌다.“정말 날 믿는 거예요?”“잠이 오든 안 오든 지금 나한테는 똑같아.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느니,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낫지 않겠어?” 강무진이 무심한 듯 말했다.그가 정말 편하게 잠들 수 있을지 어쩔지는 성연에게 달렸다.무진을 잠들게 했던 향낭이 그녀의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에게 충분히 능력이 있음이 입증된 터였다. 성연이 진지하게 말했다.“당신이 나를 믿는다니, 당신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지요.”그녀는 환자가 자신을 믿어주니 뿌듯했다.성연은 정신을 가다듬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기다란 손끝을 두 번 매만진 다음 무진의 관자놀이와 뒤통수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이런 특이한 방법은 그녀 스스로 고안한 것이다. 효과가 탁월해서 장기간 불면증에 시달리는 강무진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이었다.강무진의 코끝에 익숙한 약재 향이 감돌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부드럽고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이 거꾸로 비쳤다.그는 얼굴 주위를 오가는 부드러운 손가락의 움직임을 느꼈다.무진의 신경이 점차 느슨해지면서 눈꺼풀이 축 처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감고 깊이 잠들었다.방 안이 고요 속에 잠겼다.성연은 시큰시큰한 손을 흔들며 강무진의 머리를 가볍게 들어 베개 위로 옮겼다.그리고는 그의 손에서 향낭을 빼냈다.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강무진의 경맥에 닿았다.손 밑의 움직임을 느끼던 성연의 안색이 변했다.그녀는 다시 손가락을 뻗어 경맥에 놓고 자세히 관찰했다.손 밑의 경맥은 규칙적으로 뛰긴 했지만 무척 약했다.경맥이 약해진 원인은 한두 개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장기간의 불면증과 정서적 문제, 그리고 오래 복용한 약이 원인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는 그였지만, 그 속은 텅 빈 것처럼 허약했다.이대로 가면 점점 더 몸이 나
강무진은 밤새 깨지 않고 잠을 푹 잤다. 다음날 성연이 일어나보니, 침대 위의 이불은 가지런히 개켜져 있고, 그는 보이지 않았다.아래층.무진은 젓가락으로 만두를 집어 입에 넣었다.분명 평범한 아침식사인데 우아하게 먹는 그의 모습에는 최고급 레스토랑의 분위기가 느껴졌다.진우현은 무진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어젯밤 잠은 좀 잤어?”어젯밤 무진이 소동을 피울까 봐, 우현은 밤새 얕은 잠을 잤다.날이 밝아오고 나서야 어젯밤 아무런 소동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잘 잤어.” 무진은 담담하게 말했다.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그의 컨디션이 아주 좋은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늘 차갑던 그의 얼굴이 오늘만큼은 평온해 보였다.우현은 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최면을 걸어도 소용이 없더니, 송성연이 오고 나서는 저렇게 잠을 잘 자다니!그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능력으로 그를 잠들게 했는지 꼭 확인해야 했다. 그때, 세수를 마친 성연이 책가방을 메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발소리를 들은 무진이 고개를 돌렸다.높이 묶은 머리를 다시 땋아 내리고 이마를 드러낸 그녀는 앳된 이목구비가 그대로 드러나며 무척 활기차 보였다.또, 그녀가 입고 있는 교복은 전에 시골에서 입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흰 블라우스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주름스커트를 받쳐 입으니 더욱 생기발랄해 보였다.“좋은 아침입니다!”성연은 강무진의 맞은편에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인사했다.우현은 조금 놀란 얼굴로 성연을 바라봤다. 그녀가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속으로 요새 시골 아이들은 이렇게 생기발랄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여자아이가 엘리트 의사인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생각을 하자, 기분이 상해 그녀를 노려보았다. “무진에게 무슨 약을 쓴 겁니까?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잠들게 한 거죠?”성연은 침착하고 분명하게, 하지만 부드럽게 대답했다.“약은 쓰지 않았어요. 마사지 방법을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에요.”우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진우현의 입이 쩍 벌어졌다. 강무진이 송성연을 자기 옆에 앉힌 것만해도 희한할 일인데, 지금 자기 손으로 여자를 만져?성연은 다른 사람과의 신체 접촉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남자라면 더.반사적으로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뭐예요?”별다른 의도가 없었던 무진은 눈살을 찌푸리는 그녀를 보고는 잡았던 손을 놓았다.“여기서 학교 다니기가 불편할 거야. 일러 두었으니 앞으로 기사와 함께 통학하도록 해.” 수고를 줄일 수 있다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성연이다.“감사합니다.”짧은 감사를 전한 뒤, 돌아섰다.거침없고 시원스러운 동작엔 조금의 어색함이나 머뭇거림도 없어, 마치 자기 집에 있는 모양새다.성연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무진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입가엔 느슨한 웃음이 걸려있었다.무진의 눈길은 한참이나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우현은 오늘 연신 놀라는 중이다.접착제처럼 성연의 뒷모습에 달라붙은 무진의 눈을 보며 불만에 찬 목소리로 그 시선을 잘라냈다.“그 정도 봤으면 이제 눈 좀 돌려라. 하, 저 만년 고목에도 꽃이 피는 거야…….”강무진의 성질과 그의 병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로서는 무진이 평생 고독하게 지낼 것이라 생각했었다.그런데 자신보다 더 빨리 솔로 탈출이라니!서서히 눈빛을 거둔 무진은 더 이상 성연에 관한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곁눈으로 우현을 힐끗 쳐다본 뒤, 의자 등받이에 편안하게 몸을 기대었다.“불면증의 특효약을 찾았어. 이제 넌 안 와도 돼.”말문이 막힌 우현은 똥 씹은 듯 일그러진 표정이 되었다. 오랜 시간 의학연구에 전념해 온 인생이 한순간에 부정당한 듯했다. 게다가 이제 실업의 위기에까지 직면했다.‘역시, 친구보다 여자가 먼저인 놈이었어!’한쪽에 섰던 손건호는 잔뜩 풀 죽어 있는 진우현을 보며 속으로 동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국제적 명성이 자자한 심리학의 대가가 일개 고등학생에게 밀리다니 말이다.자신이 밀린 이유를 진우현은 아직 모를 것이다.좌절에 빠져 허우적대는 진우현의 보기 드문 모습은 볼
성연은 엠파이어 하우스를 나선 얼마 후 학교에 도착했다.이른 아침, 학교 입구에서 도로변까지 이미 고급차들로 꽉 차 있었다.나란히 세워진 차들은 저마다 헉, 소리 날만큼의 고가라 마치 가격 경쟁이라도 붙은 듯했다.또한 과시하듯 명품 옷을 걸치고 한정판 운동화를 신은 학생들이 부지기수였다.이쯤 되니 안으로 계속 차를 타고 들어가는 게 불편했던 성연은 기사에게 도로변에 차를 세우게 한 뒤, 내려서 교문까지 걸어갔다.빽빽하니 붐비는 학생들 사이를 뚫고 교실에 도착했다.편입생인 성연을 선생님은 맨 뒷줄에 앉게 했다.입학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던 성연은 우등반에 배정되었다.그런데 의외로 송아연도 같은 반이었다.송아연의 수능 필수 과목들은 썩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등반에 배정될 수 있었던 까닭은 피아노와 무용 특기를 이유로 교장이 배려해 준 결과였다.교실에 들어서자, 모두들 뚫어져라 성연을 쳐다보았다.책상 사이로 지나가는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기며 여기저기서 작은 소리로 속닥거렸다.[쟤가 입학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는 그 애야?]이 말이 들리자마자 곧 이어 누군가 또 반박의 말을 뱉었다.[설마, 가짜겠지. 뒷문으로 들어온 게 틀림없어.]모두가 북성남고에 들어오려 안달인 까닭은, 이 학교가 소위 귀족학교이기도 하지만 그 교육 수준이 북성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무엇보다 각종 시험의 출제 문제들이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그러니 입학시험으로 학생의 거취를 결정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학교 입장에서는 이 부잣집 자제들의 기를 좀 꺾어서 알아서 물러서는 법을 일깨우고자 하는 면도 있었다.물론 돈으로 들어온 학생도 적지 않지만, 반을 정하고 그에 따른 대우는 철저히 성적에 따를 뿐이었다.송아연과 사이가 좋은 여자아이가 그 옆에서 말했다.“저 신입생, 너랑 같은 성이야. 설마 친척은 아니지?”책과 노트를 정리하던 아연이 성연이 있는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언뜻 경멸의 기색이 얼굴에 떠올랐다. 하지만 자신의
오전 제4교시, 이제 막 편입한 성연은 원래 모범 학생으로 지낼 생각이었다. 적어도 선생님에게는 너무 나쁜 인상을 주지 않아야 했다.선생님의 수업은 그냥 수면제였다. 어젯밤 강무진의 수면을 돕느라 밤새도록 잠을 설쳤던 성연은 졸음이 쏟아졌다.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잔뜩 힘을 주었으나, 서로 붙으려는 위, 아래 눈꺼풀을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머리가 쿵 하고 한 차례, 또 쿵 하고 한 차례 내려오더니, 결국 사나운 수마를 견디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린 채 잠에 빠졌다.공교롭게도 4교시 수업은 우등반의 담임 선생님, 이윤하였고, 수학 담당이었다.마른 체형에 높게 올라온 광대뼈, 등 뒤로 가지런히 내려온 긴 머리카락. 냉정하고 엄격해 보이는 선생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수업 방면과 학생에 대한 요구가 끔찍할 정도로 엄격했다.북성남고의 별종으로 유명한 이윤하를, 학생들은 모두 ‘독사’라고 불렀다.이윤하는 학습 태도가 나쁜 학생을 가장 싫어했다.그래서 그녀의 수업은 설령 시늉만 내더라도 끝까지 정신을 차리고 수업을 들어야 했다.막 칠판에 문제를 판서한 이윤하가 교실을 한 차례 휘 둘러보았다.모두 허리를 세운 채 앉아있는 가운데, 책상에 엎드린 송성연만 유독 눈에 띄었다.‘감히 내 수업에서 자는 사람이 있어?’이윤하의 표정이 착 가라앉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마지막 줄에서 자는 학생, 일어나서 문제에 답한다.”그 말에 모두 속으로 경탄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렇게 간 큰 사람이 있어? 감히 ‘독사'의 수업 시간에 잠을 자?’‘정말 그 용기가 가상하다!’그런데 잠자는 사람이 송성연인 것을 본 모두는 재미있는 연극을 보는 눈빛이 되었다.송성연은 입학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그야말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개중에는 그녀의 이런 모습을 거슬려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만점 받아도 뭐 잠 못 자는 건 똑같지 않아?]일부 아이들은 고소한 듯 소곤거리며, 이 만점자가 어떻게 ‘독사'의 분노에 대처할 것인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오로지 송성연에게 망신을 주어 더 이상 이 반에 있지 못하게 할 생각뿐이었던 송아연은 선생님의 표정을 살피지 못했다.성연이 아예 못할 거라 생각하고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했다.아연이 조롱하는 투로 말했다.“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마. 인제 선생님도 네가 가르칠 셈이야? 차라리 그냥 네가 나가서 강의하지 그래?”팔짱을 낀 성연이 여유있는 태도로 이윤하를 바라보며 말했다.“맞는지, 아닌지는 네가 선생님께 물어보면 되겠네. 이건 수업 외의 문제야. 고3 기본과정에서는 배울 수 없는, 최소한 대학 과정의 문제야. 내가 잠을 잔 건 확실히 문제들이 너무 간단해서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성연의 말이 떨어지자 교실 안은 온통 떠들썩해졌다.교육 경력 십여 년의 이윤하는 최우수 교사였다.시골에서 전학 온 송성연이 오만방자한 말로 이윤하의 위엄을 도발했다. 또 자신의 분수를 제대로 아는 그런 겸손함이 전혀 없었다.원래부터 시골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반 학우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송성연은 조금도 겸손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고서도 반성할 줄 몰랐다. 성연에 대한 혐오감이 한 층 더 깊어졌다.반 학우들의 반응에 아연은 매우 만족했다.이게 바로 그녀가 원했던 결과였다.이제 송성연이 계속 이 교실에 있게 된다 하더라도 따돌림을 당할 수밖에 없으리라.학생들 앞에서 실력이 드러난 이윤하는 체면이 땅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이윤하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 인정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지켜보는 자신의 수업에서 어떤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결국 도망가는 쪽을 선택한 이윤하는 핑계거리를 찾아 송성연을 교실에서 내쫓았다.“맞든 틀렸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너는 수업시간에 잠을 잠으로서 수업 분위기를 해쳤어. 그러니 그 벌로 복도에 나가 서 있어. 내가 부르기 전에는 들어올 수 없다!”“그리고 또 넌 학습 태도가 단정하지 않아. 내가 네 보호자를 불러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이야기를'이라는 말을 할 때, 이윤하는 일부러 발음에 힘을
방과 후, 이윤하는 성연을 교무실로 불렀다.교편을 잡은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이렇게 자신을 거역하는 학생은 없었던 터라 정말 체면이 서지 않았다.기록해 둔 보호자 연락처를 뒤져 송성연의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무료한 듯 발끝을 쳐다보던 성연은 전화를 건 대상이 송종철인지 임수정인지 알 수 없었다.아마 그들 둘 다 창피하다며 오지 않을 것이다.아무도 안 오는 게 오히려 덜 성가실 터였다.오지 않게 해야 한다. 그때는 또 한바탕 비난과 조롱이 쏟아질 것이다.송종철의 가족은 하나같이 모두 체면을 목숨처럼 여겼다.일의 과정이 어떻고 누가 잘못했고 등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두지 않는 이들이었다.만약 송종철이 정말 온다면 또 소란을 피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오는 성연이었다.통화를 마친 이윤하 또한 성연을 보지 않았다. 일부러 성연을 한쪽에 둔 채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교안을 보는 척했다.만약 지금이라도 성연이 잘못을 인정한다면, 굳이 억지로라도 보호자에게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한참을 기다렸어도 송성연에게서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곁눈질로 쳐다보니, 송성연은 처음 그 자리에 건들거리며 서서는 옆 자리 선생님의 교안에 대해 중얼거리고 있었다.순간 기가 막혀 저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부러뜨릴 뻔했다.‘아, 가르쳐서 될 아이가 아니야!’약 20여 분이 지난 후,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돌아본 성은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송씨 집안에서 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강무진이었다.손건호가 미는 휠체어에 단정히 앉은 강무진이 교무실로 들어왔다.이윤하도 강무진을 보았다.휠체어에 앉았어도 강무진이 내뿜는 기세는 여전했다.마주한 남자는 맑고 준수한 용모를 지녔다. 볼록한 눈썹 뼈 아래 자리한 두 눈동자는 얼음처럼 시리고 아름다웠으며, 얄팍한 입술은 냉기를 품은 듯 다물려 있었다. 온몸에서 발산되는 기운은 단지 저 휠체어에 앉아 있을 뿐임에도 강한 위압감을 주었다. 전신에서 고귀함이 흘러 넘쳤다.이윤하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본분입니다. 그런데 수업 지식이 학생보다 못하다면, 교사로서 자격 미달이 아닙니까?” 강무진이 위엄 서린 표정으로 이윤하 쪽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벌겋게 달아올랐던 이윤하의 얼굴이 금세 또 하얗게 질렸다. 입술을 파르르 떨던 이윤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강무진에게 손가락을 세우며 말까지 더듬었다.“당신…… 당신 어떻게 그런 말을? 교편 생활만 십여 년인 내가 이런 모욕을 용납할 것 같아요? 정말 돈 밖에 없는 졸부 집 아이 아니라 할까, 진짜 수준 떨어져서!”시골에서 온 성연이 당연히 아무런 배경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집안은 분명 돈으로 애를 학교에 들여보낸 졸부야!’‘돈이 있으면 뭐 해. 교양이 하나도 없잖아.’‘시골뜨기는 시골뜨기인 거야. 식견도 없는.’교단에서 인재를 양성한지 십여 년 동안 자신이 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자부하였다. 명문대학에 진학시킨 자신의 제자만 못해도 수 백명이었다.송성연에게 후원자가 없는 이상, 굳이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이윤하는 즉시 큰 소리로 요구했다.“이처럼 형편없는 학생을, 나는 더 이상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즉시 전학을 가든지, 아니면 반을 옮기세요!”말을 끝낸 이윤하는 책상 위의 전화기를 들고 교장실에 연결했다. 그리고 수업 중에 있었던 송성연의 일과 그 보호자의 태도에 대해 과장해서 일렀다.같은 시각.이윤하가 송성연을 호되게 혼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송아연은 교실에 앉아 있었다.‘화가 나 씩씩거리던 이윤하의 모습으로 봐서는 송성연, 그냥 대충 넘어갈 수 없을 걸?’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만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송성연, 송성연, 이번엔 또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두고 보자…….’아연의 뒷자리에 있던 여자 급우가 의자를 옮겨 옆에 앉았다.“에이, 나는 왜 네가 송성연과 아는 것만 같지?”“무슨 말을 그렇게 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으나 아무런 내색없이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모른다면서 왜 나서서 지적했어?”단순한 호기심이 담긴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
“누가 물에 빠졌어요.”“빨리 와요, 사람 살려요.”“빨리 여기 구조대에게 연락해서 빨리 사람을 구하러 오게 해.”주위에서는 모두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성연은 물에 빠지는 순간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다행히 호수의 물이 깊어서 바닥에 부딪치지는 않았다.그러나 갑자기 물살에 충격을 받자 현기증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아래의 물살이 좀 급해서 물살에 말려들자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성연은 수영을 할 줄 알지만 손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짙은 무력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성연의 몸은 천천히 계속해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이럴 수가, 누구 수영을 할 줄 알아요? 빨리 내려가서 사람을 구해주세요.” 구조된 소년의 어머니도 옆에서 소리쳤다.자신의 과실로 인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당에,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비록 자기 자식이 사고를 당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몹시 조급해진 목현수는 몇 번이나 아래로 바로 뛰어내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게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주위의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갔지만, 구조대는 한참이나 오지 않고 있었다.“이걸 어떡하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아니면 구급차를 불러서 구해달라고 해.”“여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CCTV도 있지 않아? 왜 이렇게 사고가 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을 해대고 있었지만, 직접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었다. 성연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물에 뛰어들 용기는 부족했다.자기 자식이 잘못된 걸 본다면 뛰어들었겠지만 말이다.옆에서 잠시 지켜보던 미스 샤넬이 주저함 없이 바로 물에 뛰어들려고 했다.그러나 옆에 있던 목현수가 눈치 빠르게 붙잡았다.“샤넬, 뭘 하려는 거야?”성연 한 명이 빠진 걸로 이미 충분히 애
성연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데리고 온 관광지는 교외에 있었다.산과 물을 끼고 곳곳에 푸른 풀이 깔려 있어서 생동감이 넘쳤다.그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관광지에는 또 전문적으로 설계된 정자와 누각이 있었다. 넓은 숲의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어서 또 그 속으로 소풍을 갈 수도 있다.미스 샤넬이 앞으로 걸어가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이곳의 공기는 정말 좋네요.”“맞아요, 내가 오기 전에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순수하고 천연적이라고 했어요. 원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은 채 약간만 손을 댔을 뿐이니, 진정한 원래의 생태 관광지인 셈이죠.”성연은 설명할 때, 미스 샤넬이 일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미스 샤넬은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쳤다.“성연 씨, 아는 게 정말 많네요.”“아니에요, 이런 관광지는 우리 A국에 아주 흔해서 조금만 이해하면 알 수 있어요. 유럽 각지에 정통한 미스 샤넬을 난 따라가지도 못하는 걸요.”각기 장점이 있다. 성연은 북성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서 기본적인 상식을 좀 알고 있는 것이지, 칭찬할 건 아니다.“성연 씨가 그렇게 전면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요. 가요,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샤넬 양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성연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미스 샤넬의 뒤를 따라가면서 목현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목현수는 성연이 자신을 계속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됐어, 성연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나도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샤넬 양과의 관계는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해.’그들은 다리 위로 걸어갔다. 아래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였다.미스 샤넬이 포즈를 취하고 성연이 사진을 찍었다.성연은 여러 장면을 잘 포착해서 찍었다.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미스 샤넬이 달려왔다. “어떤 지 내가 한번 볼게요.”성연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미스 샤넬은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감탄했다.“성연 씨, 사진 촬영 기술이
눈썰미가 좋은 미스 샤넬은 불쑥 걸음을 멈추었다.같이 손을 잡고 가던 성연도 덩달아 멈춰 서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목현수가 물었다. “왜 그래?”미스 샤넬이 사실대로 말했다.“아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지?”안진검은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미스 샤넬을 보았다.미스 샤넬이 자신을 알아봤음을 눈치 챈 안진검은 서둘러 선글라스를 끼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계속 걸음을 빨리해서 걸었지만 그래도 좀 낭패스러웠다.속으로는 정말 놀랐다.샤넬 가문의 장녀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빌어먹을?’‘그녀가 나를 말했을 지도 몰라.’‘미스 샤넬이 정말 내 이름을 말한다면, 내 신분 배경이 드러나면서 전체 계획에 차질을 줄지도 몰라.’안진검은 마음이 초조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앞으로 계속 동정을 살피면서 들켰는지 어떤지 지켜보는 수밖에.’‘만약 진짜 내 신분이 드러난다면, 계획을 다시 세우는 수밖에 없어.’간신히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안진검은 정말 달갑지 않았다. ‘계획이 이렇게 틀어지다니!’어렴풋이 이상하다고 느낀 성연도 바로 물었다.“누군데요?”미스 샤넬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잘못 본 거겠죠. 닮은 사람은 많으니까요”‘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 사람이 이곳 북성에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목현수가 옆에서 바로 말했다.“잘못 본 게 분명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맞아요, 나는 여전히 성연 씨가 나를 데리고 놀러 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스 샤넬은 다시 성연의 손을 잡았다.그들이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손건호가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을 관광지로 데려다 주는 일을 맡았기 때문.무진에 대해서는 목현수도 자료를 좀 조사한 적이 있었다.손건호가 무진의 오른팔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이번에 손건호가 성연을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모양이군.’그러나 강무진이 직접 자신을 예의 감시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 대해 마음을 놓았음을 의미했다.목
이튿날 출근하던 무진은 푹 안심한 마음으로 성연에게 목현수를 방문하라고 했다.미스 샤넬이 있는 목현수가 자신의 여자에게 다른 시도를 할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성연은 차를 몰고 호텔로 가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찾았다.하루 종일 집에서 심심했던 그녀는 목현수와 미스 샤넬이 북성에 오자 마침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똑똑똑.” 성연이 객실 문을 두드렸다.한참 기다렸지만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성연은 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핸드폰을 꺼내 목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목현수가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다시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야 목현수가 전화를 받았다.성연이 즉시 말했다.“사형, 미스 샤넬하고 어디 나갔어요?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거예요? 나는 바로 룸 앞에 와 있는데.”“방 앞에 있다고?” 그제야 잠에서 깬 목현수는 정신이 좀 드는 듯했다.2분가량 지나서 핸드폰 건너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 기다려, 내가 바로 문을 열어 줄게.”전화를 끊으려고 했을 때 문이 열리고, 성연이 목현수의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미스 샤넬은?”“아직 일어나지 않았어...”목현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성연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 어제 유럽에서 왔으니, 시차 때문에 피곤한 건 아주 정상이죠 뭐.”목현수가 곧장 침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성연은 소파에서 기다렸다.10분 뒤에 미스 샤넬이 졸린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성연을 보자 눈을 살짝 떴다.“성연 씨, 왔네요.”성연은 미스 샤넬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내가 오늘 두 사람을 데리고 관광을 나갈 생각이에요.”“곧 나올게요.” 다시 방에 들어간 미스 샤넬은 화장을 마치고 나왔다.그런데 미스 샤넬의 옷 사이로 옅은 붉은 색 흔적들이 성연의 눈에 들어왔다.경험한 적이 없지만 본 건 있는 성연.그 흔적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사형과 미스
로얄 스위트 룸의 인테리어는 무척이나 우아하고 호화로움을 자랑했다. 룸 내부 구석구석마다 화려함의 극치였다.스위트 룸에 들어서자 마자 은은한 향이 났다.“나 먼저 샤워하러 갈게요. 여기서 기다려요.” 묙현수의 볼에 키스를 한 미스 샤넬은 목현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목현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30분 후.찰칵, 소리가 났다.욕실 문이 열리면서 미스 샤넬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무심코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던 목현수.눈앞의 장면에 몸이 뻣뻣이 굳었다.물빛 실크 가운을 걸친 미스 샤넬의 허리에는 얇은 띠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실크 가운 사이로 풍만한 가슴 계곡과 희고 긴 다리가 보일 듯 말 듯했다.그녀가 천천히 목현수를 향해 걸어오자, 가운 안의 나신이 슬쩍 드러났다.목현수의 머리가 띵해 오기 시작했다.한 호텔 룸 안에서 내보이고 있는 샤넬의 모습이 무엇을 말하는지 건강한 성인 남자인 목현수가 모를 리가 없었다.미스 샤넬은 목현수에게 다가가면서 그의 반응을 살폈다.하지만 보면 볼수록 실망감만 들었다.자신의 몸까지 드러내며 이렇게 다가가는데도 자신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 목현수.점점 서운한 마음이 커지는 미스 샤넬.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목이 멘 음성으로 물었다.“현수 씨, 당신은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목현수도 미스 샤넬이 눈물을 흘릴 줄은 몰랐다.미스 샤넬은 항상 씩씩하고 쾌활한 사람이어서 우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런 그녀가 말릴 새도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자 목현수 자신도 깜짝 놀랐다당황한 목현수가 손사래를 쳤다.“아니야, 그냥 내가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 몰랐을 뿐이야.”미스 샤넬이 화가 나서 말했다.“당신, 평생 이 여자 저 여자 유혹하려는 거죠!”그녀의 눈에 원망과 질책의 빛이 들어찼다. 또한 짙은 실망감도.목현수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바
성연은 수시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음식을 먹으면서 성연이 농담처럼 물었다.“사형, 사형은 미스 샤넬과 언제 결혼할 거예요? 이번에 돌아왔으니 부모님을 만나 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예쁜 미인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사형을 따라다니는 걸 모른 척할 수 있어요?”성연은 그저 슬쩍 물어보았을 뿐이다.지난번에도 물어봤지만 매번 이 문제를 회피하는 목현수였기에.“곧 할 거야. 다음 달 즈음에 돌아가서 결혼할 거야.”그런데 목현수가 이렇게 대답할 줄은 정말 몰랐던 성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무진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옆에서 목현수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두 달이면 목현수가 유부남이 된다는 말이지?’‘엄밀히 말해 지금 미스 샤넬은 목현수의 약혼녀.’‘이제는 목현수도 더 이상 성연이에게 매달릴 수 없다는 거지.’무진은 이제야 정말 위기감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그도 옆에서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그럼 이게 신혼여행인가요?” 그 말을 들은 목현수가 눈을 치켜 떴다.‘하, 내가 강무진 네 놈의 얄팍한 생각을 모르는 줄 알아?’‘성연이를 내가 뺏을까 봐 겁이 났던 거 아니야?’‘이제 내가 결혼한다고 하니 강무진의 태도가 완전히 변했어.’“그런 셈이지요.” 목현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무진은 찻잔을 들어올려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척하며 자꾸만 벌어지는 입을 슬쩍 가렸다.주문했던 음식들을 다 먹자, 디저트가 나왔다.이 음식점의 주요 메뉴 중 하나가 바로 A국 특유의 디저트였다.미스 샤넬은 방금 먹은 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놀랄 만큼 맛있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디저트로 나온 이 케익들.동물을 본떠 동그랗게 만든 모양이 무척 사랑스러웠다.미스 샤넬은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포크를 들었다.“이 케익들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뭐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요.”성연이 손을 흔들었다.“모두 먹는 것들이에요. 미스 샤넬. 많은 생각하지
“너네 A국의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진작부터 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현수 씨한테 데리고 가달라고 졸랐죠. 첫 번 째로 성연 씨를 보러 온 거예요.” 미스 샤넬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어떤 의미에서는, 목현수가 자신을 A국으로 데려온 것 자체가 자신을 인정한 거라고 생각하는 미스 샤넬.미스 샤넬이 따라온 걸 본 무진은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성연의 허리에 감겨 있던 팔이 아무 내색 없이 슬그머니 풀렸다.미스 샤넬과 성연이 다정한 모습으로 앞장서 걸었다.목현수와 무진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서로를 싫어하는 두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입을 열지 않았다.공항 밖을 나온 사람들은 모두 무진이 준비한 차량에 탑승했다.무진은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아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음식점으로 데려갔다.북성에서 아주 유명한 음식점인 이 곳은 언제나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하지만 이곳의 VIP고객인 무진은 얼굴을 보이자마자 곧바로 특실을 준비해 주었다.음식점의 총지배인이 직접 메뉴판을 가져와서 무진 일행의 주문을 받았다.살짝 허리를 숙인 채 아주 정중한 자세로 지배인이 말했다.“강 대표님, 최근 저희가 아주 참신한 신 메뉴 하나를 선보였는데, 평이 아주 좋습니다. 한번 맛보시겠습니까?”“이곳의 특선 메뉴들을 하나씩 내오세요.” 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지배인이 만면에 희색을 띠면서 말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가서 준비하겠습니다.”특실 안에는 성연과 무진이 나란히 앉고, 그 맞은편에 샤넬과 목현수가 나란히 앉았다.북성이 처음이라 연신 두리번거리던 미스 샤넬은 흥분한 음성으로 말했다.“이게 바로 A국 스타일? 정말 예뻐요. 유럽과는 정말 다르군요.”“미스 샤넬, 여기가 마음에 들면 자주 오세요.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해요. 특히 미스 샤넬 같이 아름다운 외국 여성에게는 더요.” 성연이 미스 샤넬에게 차를 한 잔 따라 주며 놀리듯이 말했다.성연의 칭찬에 미스 샤넬은 좀 쑥스러운 표정을
“정말요?”“비행기 시간을 알려주면, 제가 그 시간에 마중 나갈게요.”전화를 받다가 의자에서 일어선 성연의 음성에 기쁨이 철철 넘쳐 흘렀다.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무진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폰 건너편 음성이 남자 같은데...’무진이 무의식 중에 한마디를 꺼냈다.“누구?”성연이 재빨리 대답했다.“사형인데 벌서 북성으로 오는 중이라고 하네요. 나보고 마중나와 달라는데, 무진 씨도 같이 갈래요?”마음이 좀 불편해진 무진이 미간을 찡그렸다.‘그 자식은 왜 또 튀어나오는 거야? 사형이면 사형답게 행동해아지. 왜 자꾸 성연에게 들러붙는 거야?’성연이 혼자 목현수를 마중 나간다면 당연히 마음이 놓이지 않을 터.잠시 고민하던 무진이 이내 대답했다.“음, 내가 같이 가지.”“무진 씨 일은 안 바빠요? 바쁘면 나 혼자 가도 돼요.”그냥 공항으로 사람을 마중하러 가는 것이니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성연은 생각했다.무진이 바쁜 시간을 짜내 가면서 자신과 함께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괜찮아, 내가 같이 갈게.” 무진이 노트북을 닫았다.고개를 끄덕인 성연이 따라 일어섰다.“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우리가 공항에 도착하면 딱 맞을 거예요. 가요.”무진이 성연의 뒤를 따랐다.잠시 후, 북성의 공항.비행기 도착 시간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한 성현과 무진. 목현수가 탑승한 비행기는 아직 착륙하기 전이었다.두 사람은 함께 대합실에서 목현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목말라?” 무진이 물었다.“괜찮아요.” 성연이 고개를 저었다. 무진이 움직이는 순간, 성연은 그가 물을 사러 간다는 것을 알았다.성연이 무진의 팔을 잡아당겼다.“귀찮게 갈 필요 없어요.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사형이 곧 도착할 거예요.”무진이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그래.”핸드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하던 성연이 투덜거렸다“나올 때가 됐는데...”성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국 게이트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다시 고개를 숙여 시간을 확인하니 바로 목현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