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이윤하는 성연을 교무실로 불렀다.교편을 잡은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이렇게 자신을 거역하는 학생은 없었던 터라 정말 체면이 서지 않았다.기록해 둔 보호자 연락처를 뒤져 송성연의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무료한 듯 발끝을 쳐다보던 성연은 전화를 건 대상이 송종철인지 임수정인지 알 수 없었다.아마 그들 둘 다 창피하다며 오지 않을 것이다.아무도 안 오는 게 오히려 덜 성가실 터였다.오지 않게 해야 한다. 그때는 또 한바탕 비난과 조롱이 쏟아질 것이다.송종철의 가족은 하나같이 모두 체면을 목숨처럼 여겼다.일의 과정이 어떻고 누가 잘못했고 등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두지 않는 이들이었다.만약 송종철이 정말 온다면 또 소란을 피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오는 성연이었다.통화를 마친 이윤하 또한 성연을 보지 않았다. 일부러 성연을 한쪽에 둔 채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교안을 보는 척했다.만약 지금이라도 성연이 잘못을 인정한다면, 굳이 억지로라도 보호자에게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한참을 기다렸어도 송성연에게서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곁눈질로 쳐다보니, 송성연은 처음 그 자리에 건들거리며 서서는 옆 자리 선생님의 교안에 대해 중얼거리고 있었다.순간 기가 막혀 저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부러뜨릴 뻔했다.‘아, 가르쳐서 될 아이가 아니야!’약 20여 분이 지난 후,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돌아본 성은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송씨 집안에서 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강무진이었다.손건호가 미는 휠체어에 단정히 앉은 강무진이 교무실로 들어왔다.이윤하도 강무진을 보았다.휠체어에 앉았어도 강무진이 내뿜는 기세는 여전했다.마주한 남자는 맑고 준수한 용모를 지녔다. 볼록한 눈썹 뼈 아래 자리한 두 눈동자는 얼음처럼 시리고 아름다웠으며, 얄팍한 입술은 냉기를 품은 듯 다물려 있었다. 온몸에서 발산되는 기운은 단지 저 휠체어에 앉아 있을 뿐임에도 강한 위압감을 주었다. 전신에서 고귀함이 흘러 넘쳤다.이윤하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본분입니다. 그런데 수업 지식이 학생보다 못하다면, 교사로서 자격 미달이 아닙니까?” 강무진이 위엄 서린 표정으로 이윤하 쪽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벌겋게 달아올랐던 이윤하의 얼굴이 금세 또 하얗게 질렸다. 입술을 파르르 떨던 이윤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강무진에게 손가락을 세우며 말까지 더듬었다.“당신…… 당신 어떻게 그런 말을? 교편 생활만 십여 년인 내가 이런 모욕을 용납할 것 같아요? 정말 돈 밖에 없는 졸부 집 아이 아니라 할까, 진짜 수준 떨어져서!”시골에서 온 성연이 당연히 아무런 배경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집안은 분명 돈으로 애를 학교에 들여보낸 졸부야!’‘돈이 있으면 뭐 해. 교양이 하나도 없잖아.’‘시골뜨기는 시골뜨기인 거야. 식견도 없는.’교단에서 인재를 양성한지 십여 년 동안 자신이 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자부하였다. 명문대학에 진학시킨 자신의 제자만 못해도 수 백명이었다.송성연에게 후원자가 없는 이상, 굳이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이윤하는 즉시 큰 소리로 요구했다.“이처럼 형편없는 학생을, 나는 더 이상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즉시 전학을 가든지, 아니면 반을 옮기세요!”말을 끝낸 이윤하는 책상 위의 전화기를 들고 교장실에 연결했다. 그리고 수업 중에 있었던 송성연의 일과 그 보호자의 태도에 대해 과장해서 일렀다.같은 시각.이윤하가 송성연을 호되게 혼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송아연은 교실에 앉아 있었다.‘화가 나 씩씩거리던 이윤하의 모습으로 봐서는 송성연, 그냥 대충 넘어갈 수 없을 걸?’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만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송성연, 송성연, 이번엔 또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두고 보자…….’아연의 뒷자리에 있던 여자 급우가 의자를 옮겨 옆에 앉았다.“에이, 나는 왜 네가 송성연과 아는 것만 같지?”“무슨 말을 그렇게 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으나 아무런 내색없이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모른다면서 왜 나서서 지적했어?”단순한 호기심이 담긴
급히 연락을 받고 온 교장이 교무실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이윤하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일입니까?”자신의 지원자가 왔다고 여긴 이윤하의 말에 힘이 들어갔다.“교장 선생님, 이 학생이 전학 가거나 반을 옮기지 않으면, 저는 더 이상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평소 학교와 관련한 이런저런 뒷공론들을 교장도 심심찮게 들어 알고 있었다.이윤하 선생이 교실에서 매우 엄격하고 때론 지나칠 정도라는 점도.그의 눈에는 이런 행위 또한 학생을 훈육하는 방식 중 하나인 셈이다.성연에게 시선을 돌린 교장은 그녀를 잘 타이를 작정으로 입을 열었다.“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입니다. 이윤하 선생님은 평소 학생들에 대한 요구가 높은 분이에요. 그러니 송성연 학생이 선생님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게 좋겠군요.”몸을 반듯하게 한 성연이 등을 꼿꼿이 세우고 섰다.“교장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수업시간에 잠을 잔 건 분명 잘못된 행동이니, 제가 사과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교장은 성연의 대답에 만족했다. 사실 그렇게 큰 일도 아니었다.학생이 잘못을 시인했으니, 이제 이 일은 해결된 셈이었다.그런데, 잠시 말을 멈추었던 성연이 다시 말했다.“하지만 그 뒤에는 제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제가 입학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고 의심했습니다. 시험은 학교 선생님께서 직접 감독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제 점수를 의심한 건 저를 인격적으로 모독한 겁니다. 선생님이 저한테 사과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진짜…… 선생님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는 없을 테니, 이 일은 서로 상쇄하도록 하겠습니다.”“마지막으로, 저는 선생님의 문제풀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앙심을 품고 저를 쫓아내려 하셨고요.”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 교장은 ‘성연이 고슴도치 같은 학생’이라고 생각했다.눈치 빠른 사람들은 땅에 떨어진 체면을 세울 기회를 이윤하에게 주려 할 터였다.그런데 하필 송성연은 그러기는커녕 아예 외골수 마냥
이윤하는 멍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똑똑하고 상황 파악이 빨랐다.이쯤 되니, 일이 간단치 않음을 즉시 눈치 챘다. ‘교장이 직접 나서서 두둔하게 할 정도라니. 송성연, 대체 뭐야? 시골에서 왔다면서? 시골에 저런 배경이 있다고? 그리고 저 남자는…….’“뭐하고 있습니까? 정말 안 할 생각입니까?” 교장이 매섭게 다그쳤다.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계속된 교장의 재촉에 할 수 없이 이윤하는 고개를 숙이고 성연에게 사과했다.“송성연 학생, 미안해요. 학생이 오류를 지적했을 때 바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야.”이윤하는 그런대로 성실한 태도로 사과해 왔다.성연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작은 일을 계속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북성남고를 다녀야 하는데, 너무 척을 지는 것도 좋지 않을 터.모든 면을 고려한 성연이 이윤하의 사과를 받아들였다.“괜찮아요.”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교장은 강무진 앞으로 다가갔다. 이어 허리를 굽힌 채 공손한 어조로 무진의 의사를 물었다.“이번 일, 이렇게 처리해도 되겠습니까?”무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앞으로는 학교 기강을 잘 잡길 바랍니다. 어떤 불미스러운 일도 제 귀에 들어오지 않게 하세요.”일이 마무리되자 지체없이 손건호가 강무진의 휠체어를 밀고 나갔고, 성연이 그 뒤를 이어 교무실을 떠났다.교무실 안.마음속에 이는 초조함을 이기지 못한 이윤하가 즉시 교장의 뒤를 쫓아가 캐물었다.“교장 선생님, 저 사람 뭐에요?”교장이 언짢은 투로 말했다.“저 사람이 누구이건, 꼭 기억하세요. 저 사람만큼은 당신이나 나나 절대 거슬러서는 안됩니다. 다시는 문제 일으키지 않도록 눈 똑바로 뜨고 주의하세요. 이 선생의 우둔함으로 나까지 결부되는 일 없도록요. 안 그러면 우리 모두 끝장입니다!”얼굴이 창백해진 이윤하는 뭔가 말하려 입을 달싹거렸으나 결국 입을 다문 채 조용히 한 옆에 섰다.교장 선생님도 조심해야 할 정도의 인물인데, 그녀 같은 일개 교사야 말할 것도 없겠지.교무실
교실로 향하는 성연을 눈으로 배웅하던 손건호는 계속 감탄 중이었다. ‘우리 보스, 어린 부인에게 너무 관대한 거 아니야?’‘보스를 모신 이래, 이 같은 일은 처음이야. 그런데 이렇게 하는데도 응석받이가 되지 않는다고?’어쨌든 수하로서 그가 뭐라고 하긴 힘든 부분이었다.‘보스는 항상 정도를 지키시는 분이니, 부하의 본분을 지키며 명령만 잘 수행하면 되는 거지, 뭐.’성연이 교실로 돌아오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당연히 재미난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모두들 고소하게 생각하며 기다렸다. ‘이제 송성연이 짐을 싸야 하겠지?’얼굴에 다 드러나 있는 표정들을 보고 있자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저들 마음대로 떠들어대더니 성연이 지나가자 자동으로 시선이 따라왔다. ‘참 할 일도 없는 모양이군.’무표정한 얼굴로 제 자리에 가서 앉은 성연은 책상 위에 엎드려 계속 잠을 잤다.‘이윤하에게 걸렸던 송성연이 ‘살아’ 돌아왔을 뿐 아니라, 무사태평한 모습으로 교실에서 잠을 자?’어떻게 된 상황인 전혀 모르는 채 다들 놀라며 궁금해했다.일명 정보통인 아이가 이 반, 저 반으로 쫓아다니며 정보를 캐기 위해 나섰다.‘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좀 알아 봐야지.’곧 한 바퀴 돌며 탐문을 마친 후, 귀중한 정보를 안고 돌아왔다.가까운 친구들이 금세 에워쌌다.“알아봤어? 어떻게 된 거래?”“설마 송성연, 쟤 일부러 안 가고 여기에 눌러 붙어있는 건 아니겠지? 그럼 정말 뻔뻔한 거 아니야?”“성적도 위조할 수 있는데 못할 게 뭐가 있어?”모두 성연에 대한 경멸로 가득 찬 말들뿐이다.“그만, 거기까지! 송성연, 배경이 장난 아니야. 밉보이지 않게 조심해!”정보를 물고 온 아이가 친구의 손을 잡고 한쪽으로 끌고 갔다. 조심스럽게 성연 쪽을 한 번 쳐다본 뒤, 속삭였다.“송성연,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라고 하지 않았어? 무슨 배경이 있다고?” 농담이라고 생각한 친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야, 그만 애태우고 알아본 거나 말해 봐. 뭐래?” 참
낮에 있었던 일로 해서, 송성연이 뒤에서 잠을 자도 감히 건드릴 사람이 없었다.송성연이 공부를 잘하는지, 만점이란 성적이 진짜인지 등에 대해, 다들 의심의 눈초리를 아직 거두지 못한 상태였다.‘북성남고에서 위세를 떨치던 ‘독사’마저 도도한 머리를 숙이고 사과 했다니, 얼마나 대단한 배경을 가진 거야?’‘그 정도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 만점은 물론 학위를 산다고 해도 되겠다.’온 사방에서 의론 분분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아침부터 오후까지 질리지도 않는지, 하루 종일 성연에 관한 말들만 떠들어댔다. 성연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있었지만 해명하기도 귀찮았다.‘믿거나 말거나. 능력이 있다 한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겁날까? 가소로워서!’‘시간이 다 증명해 줄 터.’저녁, 방과 후.강씨 집안의 차가 이미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수업시간 중에 운전기사가 찍어 보낸 위치를 이미 전송받았다.시간을 낭비할 필요없이 바로 후문을 통해 골목으로 간 성연은 강씨 집안의 차를 찾았다.습관적으로 뒷좌석의 문을 열고 차에 탄 후에야 안쪽에 이미 사람이 있음을 알아차렸다.성연은 좀 뜻밖이라는 듯 무진을 쳐다보았다.‘이 사람도 타고 있을 줄은 몰랐어.’그는 블랙 슈트 차림이었다. 칼라 부분에 들어간 섬세한 짙은 색 문양으로 포인트를 준 것 외에 온통 블랙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혀 수수해 보이지 않았다. 이 점이 오히려 은근히 더 고급스러워 보이게 했다.오전과는 달리 격식을 차린 진중한 모습에서 범접하기 힘든 기운이 물씬 풍겼다.이때 눈을 감고 쉬고 있던 무진이 인기척에 눈을 뜨고 성연을 바라보았다.차에 오른 성연에게 무진이 자료 한 부를 건넸다.“눈에 익혀 둬. 모두 오늘 저녁 모임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이야.”긴장할 성연을 생각해서 무진이 자료를 준비했다. 얼굴, 이름 등을 미리 익혀 두면 나중에 곤란하지 않을 것이다.자료를 건네받은 성연은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이 기회에 강씨 집안이 사람들을 알아 둔다면, ‘스카이 아이 시스
성연이 한 차례 훑어본 참석자 명단에 의하면, 오늘 집안 모임에 참석하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강씨 집안 사람들이 이 정도밖에 안되지는 않을 텐데.참석자 자료를 무릎 위에 내려 놓은 후, 무진에게 물었다.“설마 집안 사람들, 이게 다는 아니죠?”무진이 성연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작은 할아버님 두 분 모두 서넛의 자녀를 두셨고, 자녀분들 역시 모두 아들들이 있지. 모두 헤아리면 대략 수십 명쯤 되겠군. 때가 되면 다 볼 수 있을 거야.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중요한 사람들 아니니까, 그냥 적당히 상대하면 돼. 굳이 일일이 기억할 필요까진 없어.”이 자료 속의 가족관계만 해도 꽤 복잡했다.지금 본 명단은 겨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이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관건은 회사 전체를 장악한 사람이 그날 만났던 할머니라는 점이다.성연은 자연히 생각했다. 할머니가 자신의 시스템을 가져간 사람이 아닐까 하는.만약 그렇다면, 시스템을 되찾는 일을 설렁설렁할 수는 없을 터.고개를 숙이고 다시 보니 한 장이 아니라 두 장이었다. 뒷장의 내용을 보니, 강무진 일가 친척들의 회사 내 직위였다.몇 번을 훑어도 강무진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의아해서 물었다.“강무진 씨, 자료에는 회사 내 직위, 매년 영업액에 관한 것까지 다 있는데, 강씨 집안 장손인 당신 이름은 왜 안 보여요?”찰나이지만 강무진의 눈동자에 짙은 빛이 서렸다가 바로 사라졌다. 성연의 물음에 무진이 냉담한 어조로 대답했다.“장애 때문에 요 몇 년간 건강 회복에만 집중하고 있어. 회사 일엔 일찌감치 손 뗐지.”“음…….”성연이 일부러 길게 끌며 말했다.“한 마디로 캥거루 족이네요?”무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찌나 놀랐는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이런 말은 또 처음이군.’“그렇게 보인다면 그런 거겠지.” 무진은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안 될 것도 없지.’성연이 무진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 후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저씨가 원대한 이상
무진과 성연이 거실로 들어서자,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흘깃 봐도 실내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고택의 넓은 거실 덕택에 빽빽할 정도로 붐벼 보이지는 않았다.할머니 안금여는 정중앙 상석에 앉아 계셨다.집안 모임이어서 그런지, 할머니는 가볍게 화장을 한 상태였다. 잘 관리된 얼굴에 눈썹을 그리고, 옅은 색의 립스틱을 바른 모습이 한층 우아한 느낌이었다.40대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할머니는 찻잔을 들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하지만 입가에 머금은 미소는 눈가까지 미치지 않았다.둘째 작은할아버지와 셋째 작은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옆에 앉았고, 그 외 손아래 사람들은 자리에 앉았거나 직계 가장 뒤에 서 있었다.분명 집안 모임이건만 성연이 보기에 설명하기 힘든 괴이한 분위였다.성연이 무진의 휠체어를 밀고 거실 가운데로 들어가자, 무진이 차분한 표정으로 불렀다. “할머님.”무진과 성연을 본 안금여의 얼굴에 걸렸던 미소가 바로 눈가로 이어졌다.특히 성연을 보는 안금여의 눈은 반가움을 숨기지 못했고, 연신 입꼬리가 올라갔다. 안금여가 성연에게 손을 흔들며 따뜻하게 말을 건넸다.“성연아, 할머니 곁으로 오려무나.”성연의 이름이 나오자 모두 이쪽을 돌아보았다.마치 하나의 동작을 보는 듯하다.성연이 슬쩍 입꼬리를 세웠다. ‘강씨 집안 사람들답게 모두 호흡이 척척 맞는군.’손아래 젊은이들은 밖에서는 제멋대로 행동할지라도, 집안에서는 어른들의 말에 순종해야 만 한다.그러니 궁금해도 묻지 못한 채 기껏 쳐다보기만 했다.역시 둘째 할아버지와 셋째 할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위에서 아래로 성연을 한 차례 훑어본 뒤에 안금여에게 말했다.“형수님, 이 아이가 무진의 처입니까?”고개를 끄덕이는 안금여의 얼굴에서 미소가 가셨다. 성연을 대할 때만 따뜻한 빛을 드러낼 뿐이었다.“그래요. 성연아, 이분들은 무진의 작은할아버님들이시다. 인사를 드리도록 하렴.”“둘째 작은할아버님, 셋째 작은할아버님.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