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하는 멍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똑똑하고 상황 파악이 빨랐다.이쯤 되니, 일이 간단치 않음을 즉시 눈치 챘다. ‘교장이 직접 나서서 두둔하게 할 정도라니. 송성연, 대체 뭐야? 시골에서 왔다면서? 시골에 저런 배경이 있다고? 그리고 저 남자는…….’“뭐하고 있습니까? 정말 안 할 생각입니까?” 교장이 매섭게 다그쳤다.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계속된 교장의 재촉에 할 수 없이 이윤하는 고개를 숙이고 성연에게 사과했다.“송성연 학생, 미안해요. 학생이 오류를 지적했을 때 바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야.”이윤하는 그런대로 성실한 태도로 사과해 왔다.성연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작은 일을 계속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북성남고를 다녀야 하는데, 너무 척을 지는 것도 좋지 않을 터.모든 면을 고려한 성연이 이윤하의 사과를 받아들였다.“괜찮아요.”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교장은 강무진 앞으로 다가갔다. 이어 허리를 굽힌 채 공손한 어조로 무진의 의사를 물었다.“이번 일, 이렇게 처리해도 되겠습니까?”무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앞으로는 학교 기강을 잘 잡길 바랍니다. 어떤 불미스러운 일도 제 귀에 들어오지 않게 하세요.”일이 마무리되자 지체없이 손건호가 강무진의 휠체어를 밀고 나갔고, 성연이 그 뒤를 이어 교무실을 떠났다.교무실 안.마음속에 이는 초조함을 이기지 못한 이윤하가 즉시 교장의 뒤를 쫓아가 캐물었다.“교장 선생님, 저 사람 뭐에요?”교장이 언짢은 투로 말했다.“저 사람이 누구이건, 꼭 기억하세요. 저 사람만큼은 당신이나 나나 절대 거슬러서는 안됩니다. 다시는 문제 일으키지 않도록 눈 똑바로 뜨고 주의하세요. 이 선생의 우둔함으로 나까지 결부되는 일 없도록요. 안 그러면 우리 모두 끝장입니다!”얼굴이 창백해진 이윤하는 뭔가 말하려 입을 달싹거렸으나 결국 입을 다문 채 조용히 한 옆에 섰다.교장 선생님도 조심해야 할 정도의 인물인데, 그녀 같은 일개 교사야 말할 것도 없겠지.교무실
교실로 향하는 성연을 눈으로 배웅하던 손건호는 계속 감탄 중이었다. ‘우리 보스, 어린 부인에게 너무 관대한 거 아니야?’‘보스를 모신 이래, 이 같은 일은 처음이야. 그런데 이렇게 하는데도 응석받이가 되지 않는다고?’어쨌든 수하로서 그가 뭐라고 하긴 힘든 부분이었다.‘보스는 항상 정도를 지키시는 분이니, 부하의 본분을 지키며 명령만 잘 수행하면 되는 거지, 뭐.’성연이 교실로 돌아오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당연히 재미난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모두들 고소하게 생각하며 기다렸다. ‘이제 송성연이 짐을 싸야 하겠지?’얼굴에 다 드러나 있는 표정들을 보고 있자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저들 마음대로 떠들어대더니 성연이 지나가자 자동으로 시선이 따라왔다. ‘참 할 일도 없는 모양이군.’무표정한 얼굴로 제 자리에 가서 앉은 성연은 책상 위에 엎드려 계속 잠을 잤다.‘이윤하에게 걸렸던 송성연이 ‘살아’ 돌아왔을 뿐 아니라, 무사태평한 모습으로 교실에서 잠을 자?’어떻게 된 상황인 전혀 모르는 채 다들 놀라며 궁금해했다.일명 정보통인 아이가 이 반, 저 반으로 쫓아다니며 정보를 캐기 위해 나섰다.‘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좀 알아 봐야지.’곧 한 바퀴 돌며 탐문을 마친 후, 귀중한 정보를 안고 돌아왔다.가까운 친구들이 금세 에워쌌다.“알아봤어? 어떻게 된 거래?”“설마 송성연, 쟤 일부러 안 가고 여기에 눌러 붙어있는 건 아니겠지? 그럼 정말 뻔뻔한 거 아니야?”“성적도 위조할 수 있는데 못할 게 뭐가 있어?”모두 성연에 대한 경멸로 가득 찬 말들뿐이다.“그만, 거기까지! 송성연, 배경이 장난 아니야. 밉보이지 않게 조심해!”정보를 물고 온 아이가 친구의 손을 잡고 한쪽으로 끌고 갔다. 조심스럽게 성연 쪽을 한 번 쳐다본 뒤, 속삭였다.“송성연,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라고 하지 않았어? 무슨 배경이 있다고?” 농담이라고 생각한 친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야, 그만 애태우고 알아본 거나 말해 봐. 뭐래?” 참
낮에 있었던 일로 해서, 송성연이 뒤에서 잠을 자도 감히 건드릴 사람이 없었다.송성연이 공부를 잘하는지, 만점이란 성적이 진짜인지 등에 대해, 다들 의심의 눈초리를 아직 거두지 못한 상태였다.‘북성남고에서 위세를 떨치던 ‘독사’마저 도도한 머리를 숙이고 사과 했다니, 얼마나 대단한 배경을 가진 거야?’‘그 정도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 만점은 물론 학위를 산다고 해도 되겠다.’온 사방에서 의론 분분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아침부터 오후까지 질리지도 않는지, 하루 종일 성연에 관한 말들만 떠들어댔다. 성연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있었지만 해명하기도 귀찮았다.‘믿거나 말거나. 능력이 있다 한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겁날까? 가소로워서!’‘시간이 다 증명해 줄 터.’저녁, 방과 후.강씨 집안의 차가 이미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수업시간 중에 운전기사가 찍어 보낸 위치를 이미 전송받았다.시간을 낭비할 필요없이 바로 후문을 통해 골목으로 간 성연은 강씨 집안의 차를 찾았다.습관적으로 뒷좌석의 문을 열고 차에 탄 후에야 안쪽에 이미 사람이 있음을 알아차렸다.성연은 좀 뜻밖이라는 듯 무진을 쳐다보았다.‘이 사람도 타고 있을 줄은 몰랐어.’그는 블랙 슈트 차림이었다. 칼라 부분에 들어간 섬세한 짙은 색 문양으로 포인트를 준 것 외에 온통 블랙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혀 수수해 보이지 않았다. 이 점이 오히려 은근히 더 고급스러워 보이게 했다.오전과는 달리 격식을 차린 진중한 모습에서 범접하기 힘든 기운이 물씬 풍겼다.이때 눈을 감고 쉬고 있던 무진이 인기척에 눈을 뜨고 성연을 바라보았다.차에 오른 성연에게 무진이 자료 한 부를 건넸다.“눈에 익혀 둬. 모두 오늘 저녁 모임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이야.”긴장할 성연을 생각해서 무진이 자료를 준비했다. 얼굴, 이름 등을 미리 익혀 두면 나중에 곤란하지 않을 것이다.자료를 건네받은 성연은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이 기회에 강씨 집안이 사람들을 알아 둔다면, ‘스카이 아이 시스
성연이 한 차례 훑어본 참석자 명단에 의하면, 오늘 집안 모임에 참석하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강씨 집안 사람들이 이 정도밖에 안되지는 않을 텐데.참석자 자료를 무릎 위에 내려 놓은 후, 무진에게 물었다.“설마 집안 사람들, 이게 다는 아니죠?”무진이 성연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작은 할아버님 두 분 모두 서넛의 자녀를 두셨고, 자녀분들 역시 모두 아들들이 있지. 모두 헤아리면 대략 수십 명쯤 되겠군. 때가 되면 다 볼 수 있을 거야.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중요한 사람들 아니니까, 그냥 적당히 상대하면 돼. 굳이 일일이 기억할 필요까진 없어.”이 자료 속의 가족관계만 해도 꽤 복잡했다.지금 본 명단은 겨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이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관건은 회사 전체를 장악한 사람이 그날 만났던 할머니라는 점이다.성연은 자연히 생각했다. 할머니가 자신의 시스템을 가져간 사람이 아닐까 하는.만약 그렇다면, 시스템을 되찾는 일을 설렁설렁할 수는 없을 터.고개를 숙이고 다시 보니 한 장이 아니라 두 장이었다. 뒷장의 내용을 보니, 강무진 일가 친척들의 회사 내 직위였다.몇 번을 훑어도 강무진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의아해서 물었다.“강무진 씨, 자료에는 회사 내 직위, 매년 영업액에 관한 것까지 다 있는데, 강씨 집안 장손인 당신 이름은 왜 안 보여요?”찰나이지만 강무진의 눈동자에 짙은 빛이 서렸다가 바로 사라졌다. 성연의 물음에 무진이 냉담한 어조로 대답했다.“장애 때문에 요 몇 년간 건강 회복에만 집중하고 있어. 회사 일엔 일찌감치 손 뗐지.”“음…….”성연이 일부러 길게 끌며 말했다.“한 마디로 캥거루 족이네요?”무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찌나 놀랐는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이런 말은 또 처음이군.’“그렇게 보인다면 그런 거겠지.” 무진은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안 될 것도 없지.’성연이 무진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 후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저씨가 원대한 이상
무진과 성연이 거실로 들어서자,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흘깃 봐도 실내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고택의 넓은 거실 덕택에 빽빽할 정도로 붐벼 보이지는 않았다.할머니 안금여는 정중앙 상석에 앉아 계셨다.집안 모임이어서 그런지, 할머니는 가볍게 화장을 한 상태였다. 잘 관리된 얼굴에 눈썹을 그리고, 옅은 색의 립스틱을 바른 모습이 한층 우아한 느낌이었다.40대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할머니는 찻잔을 들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하지만 입가에 머금은 미소는 눈가까지 미치지 않았다.둘째 작은할아버지와 셋째 작은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옆에 앉았고, 그 외 손아래 사람들은 자리에 앉았거나 직계 가장 뒤에 서 있었다.분명 집안 모임이건만 성연이 보기에 설명하기 힘든 괴이한 분위였다.성연이 무진의 휠체어를 밀고 거실 가운데로 들어가자, 무진이 차분한 표정으로 불렀다. “할머님.”무진과 성연을 본 안금여의 얼굴에 걸렸던 미소가 바로 눈가로 이어졌다.특히 성연을 보는 안금여의 눈은 반가움을 숨기지 못했고, 연신 입꼬리가 올라갔다. 안금여가 성연에게 손을 흔들며 따뜻하게 말을 건넸다.“성연아, 할머니 곁으로 오려무나.”성연의 이름이 나오자 모두 이쪽을 돌아보았다.마치 하나의 동작을 보는 듯하다.성연이 슬쩍 입꼬리를 세웠다. ‘강씨 집안 사람들답게 모두 호흡이 척척 맞는군.’손아래 젊은이들은 밖에서는 제멋대로 행동할지라도, 집안에서는 어른들의 말에 순종해야 만 한다.그러니 궁금해도 묻지 못한 채 기껏 쳐다보기만 했다.역시 둘째 할아버지와 셋째 할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위에서 아래로 성연을 한 차례 훑어본 뒤에 안금여에게 말했다.“형수님, 이 아이가 무진의 처입니까?”고개를 끄덕이는 안금여의 얼굴에서 미소가 가셨다. 성연을 대할 때만 따뜻한 빛을 드러낼 뿐이었다.“그래요. 성연아, 이분들은 무진의 작은할아버님들이시다. 인사를 드리도록 하렴.”“둘째 작은할아버님, 셋째 작은할아버님. 처음
성연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확실히, 저도 무진 씨와 제가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딱 맞는 인연이죠. 저는 우리 무진 씨의 외모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이 외모 한 번 보세요. 두 사촌동생분들하고 비교도 안되지 않나요? 물론, 사촌동생분들도 못생긴 건 아니지만, 우리 무진 씨에 비하면 쫌 처진다고 봐야죠. 그렇지만 두 분에게도 좋은 점 하나는 있네요. 안목이 훌륭하다는 점요.” 성연은 자신보다 나이 많은 두 남자를 ‘사촌동생’이라고 불렀다. 확실하게 우세를 점한 뒤, 기세를 몰아 반격한 것이었다.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얼굴이 벌게진 두 사람은 사나운 눈빛으로 성연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녀가 눈치껏 처신하기를 바라며.하지만, 성연은 두 사람이 보내는 경고의 시선을 외면했다.성연을 본 둘째, 셋째 작은할아버지는 입 근육만 움직여 가느다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확실히 촌에서 온 게 맞군. 예의범절도 못 배운 듯 무례한 말을 하다니.”“촌 사람인 점은 문제될 것 없다. 앞으로 무진이가 제대로 교육을 시키겠지.”셋째 할아버지는 장애를 가진 무진의 다리를 보며 비웃었다.마치 그들의 말뜻을 못 알아들은 것 마냥 성연이 따졌다.“둘째 작은할아버님, 셋째 작은할아버님, 두 분 어째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제가 뭐 잘못 말하기라도 했나요? 사촌 동생분들을 칭찬하고 있었는데요. 게다가, 저는 줄곧 호의를 보이며 악담 한 마디 하지 않았는데요. 설마…… 강씨 집안에서는 솔직하게 말하는 게 잘못된 건가요?“만약 솔직하게 말해서는 안된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시골뜨기라, 예의범절에 있어서 사실 잘 모르는 점이 많습니다.”말을 마친 성연이 다시 몸을 돌려 안금여를 마주보았다.“할머니, 죄송해요. 제가 예의를 잘 몰라서 무진 씨 체면을 깍았어요. 앞으로 할머니께서 많이 가르쳐 주세요. 나가서 웃음거리가 되면 안되잖아요?”이 말을 들은 둘째, 셋째 할아버지들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거렸다.그렇다고 자신들의 위
차를 한 모금 마신 안금여는 얼굴의 웃음기를 지운 채 한 차례 헛기침을 했다.“어린 아이가 철이 없습니다. 둘째, 셋째 서방님 모두 너무 언짢게 생각지 마세요.”이어 굳은 얼굴로 화가 난 척 호통을 쳤다.“성연아, 얼른 무진이 뒤에 가서 서지 않고 뭐하니!”성연이 매우 얌전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무진의 뒤에 섰다.“오늘 여러분들을 부른 까닭은 함께 식사하며 무진이의 약혼녀를 선보이고자 해서입니다. 그러니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강씨 집안에서 발언권이 가장 큰 안금여의 눈빛이 닿을 때마다 손아래 젊은 세대들은 입을 다물었다.모두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잘도 듣고 있다.시골 계집애 때문에 난처해진 강일헌과 강진성은 속으로 바드득 이를 갈았다.곧 식사가 시작되고 음식이 들어왔다. 육, 해, 공 빠진 것 없이 다 갖춘 푸짐한 성찬이었다.성연이 본 것도 있고, 보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어쨌든 비싸면 되는 거지.’강씨 집안의 한끼 식사가 일반 사람들의 반년치 월급과 맞먹을 정도였다.그야말로 돈지랄이었다.설사 자신에게 돈이 있다 하더라도 감히 이렇게 쓰지는 못할 터였다.조용히 무진의 옆에 앉은 성연은 다른 사람들이 수저질을 시작하자 고개를 숙이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성연이 먹는 모습은 솔직히 예의범절에 맞춘 조신한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작이 우아하고 보기 좋아서 빨리 먹는데도 경박스러워 보이지 않았다.무진이 옆에서 성연을 살폈다. 때때로 채소를 집어 주거나 생선 가시를 발라주면서.성연이 너무 빨리 먹다가 체하기라도 할까 걱정된 무진이 연신 주의를 주었다.“천천히 먹어. 서두르지 말고.”맞은편에 앉아 마침 이 말을 들은 강진성이 바로 젓가락을 내려놓고 가시를 세웠다.“형수님, 이건 좀 곤란한데요. 식사 예절, 우리 집안에선 아주 엄격합니다. 식사하시는 모습이 썩 좋지 않군요. 이후 밖에서 어떤 비난을 듣게 될지. 집에서 형님이 굶기는 줄 알겠어요.”약한 모습 보이기 싫은 성연 역시 입안의 고기 조각을
강진성과 강일헌은 번번이 성연이에게 깨졌다.아직도 송성연이 머리에 든 거 없는 촌뜨기라고 생각한다면, 그들 두 사람이 바보 천치일 것이다.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저 모습이 어디 산골 여자아이에게 볼 수 있는 감성이란 말인가?더 이상 성연에게 열 받지 않기 위해 아예 입 닫고 조용히 밥을 먹었다.저녁 식사는 금방 끝이 났다.모임에 참석했던 강씨 집안 일원들이 잇달아 자리를 떴다.사람들로 붐볐던 거실이 순식간에 휑해졌다.고용인들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치우기 시작했다.“드디어 조용해졌구나.”강운경이 안금여를 부축해서 소파에 앉혔다.고개를 끄덕이던 강운경은 보이지 않는 총과 몽둥이로 조롱해대던 사람들을 생각났다. 곧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이 사람들, 매번 집안 모임 때마다 방법을 바꾸어 가며 우리 무진이를 조롱해댔지. 듣기만해도 역겨웠는데, 이제 그럴 일 없을 것 같은데?”‘듣기 좋게 말해서 모두 강씨 집안 사람들이지, 하나같이 야심만만한 여우들 아냐? 무진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지.’안금여가 강운경의 손을 톡톡 두드리며 위로하고는 웃으며 말했다.“신경 쓸 필요 없다.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사는지 보라고 하는 것도 괜찮을게다.”둘째와 셋째 시동생은 매번 집안 모임을 핑계로 이쪽 종가의 밑바닥까지 살폈다. 곤경에 처한 모습을 봐야 두 늙은 여우는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보고 싶어하니 보여주마.’“됐다. 이미 오래된 일인데 괜히 그 사람들 꺼내지 말거라. 속 시끄러우니까.” 일찍부터 강씨 집안 사람들의 태도에 익숙한 터였다.예전 자신의 영감이 살아있을 적에 잘 대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영감이 가자마자 무진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것 같다. ‘무진일 그렇게 힘들게 하더니.’무진의 상태를 위장해야만, 무진이 안전할 수 있었다.그녀는 살아생전 무진을 제대로 지켜주고 싶었다.안금여의 머릿속에서 많은 옛날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자연히 시선이 무진에게 향했다.무진 옆에 앉은 성연을 보는 안금여의 입가에 웃음이 피어
채연 언니의 원래 이름은 유채연으로 집은 바로 옆 마을에 있었다.두 마을 사이에는 왕래가 아주 빈번했다.이리저리 오가는 중에 유채연도 성연과 성연의 사형들하고 익숙해졌다.유채연은 원래 성격이 좋은 사람이다.그렇지 않았다면 그래함의 성격상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성연은 그래함과 함께 유씨 가문의 고택으로 갔다.이곳의 길은 좁아서 운전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연과 그래함은 걸어갔다.다행히 거리도 가까웠고 두 사람의 체력도 좋았다. 그래서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다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한때 기세등등했던 유씨 가문의 고택은 이미 잡초가 무성했고, 이미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없어 황량해 보였다.성연과 그래함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혹시 채연 언니가 이사를 갔나요?” 의문이 든 성연이 물었다.유채연에 대한 그래함의 마음이 그렇게 깊다는 걸 알았다면, 성연이 이쪽의 움직임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모르겠어.” 눈앞의 정경을 보자, 그래함의 표정이 아련해지는 것 같았다.결과가 반드시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기 전에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이미 황량하고 인적이 없는 이곳의 모습을 보자, 그래함의 마음속에는 한바탕 복잡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그래함의 표정을 본 성연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위로하고 싶은데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어.’‘지금 사형은 이미 이곳에 도착했어.’‘하지만 여전히 채연 언니를 생각하고 있어.’‘두 사람의 당시 감정이 꽤 깊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다만 나중에는 정말 유감스럽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눈앞의 장면을 바라보던 성연의 뇌리에 갑자기 뭔가 생각이 번쩍였다.“사형, 우리 이 마을의 이장님한테 가 봐요. 이장님은 채연 언니의 소식을 알 거예요.”“맞아.” 그래함의 눈에 드디어 생기가 돌았다.“빨리 가 보자.” 그래함의 발걸음은 바빴다.그 뒤를 따르던 성연은 그래함의 절박한 모습을 보자 자기도
무진은 원래 성연과 함께 가려고 했다.그러나 안금여가 가로막고 나섰다.[성연이는 너무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사형이 함께 있는데, 네가 끼어서 무슨 구경을 하겠다는 거야? 그럴 시간이 있으면 빨리 결혼 준비를 해.]무진은 그야말로 꿈속에서도 성연을 아내로 맞아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다.그러니 당연히 결혼식의 일부터 준비해야 했다.무진이 안금여와 전화 통화를 할 때 성연은 옆에서 듣고 있었다.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어.’‘결혼도 조만간의 일이야.’성연도 이번 결혼식을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옆에 있으면서 반박하지 않고 묵인함으로써 동의한 셈이다.성연이 들었다는 걸 아는 무진이 다가가서 볼에 뽀뽀를 했다.“그럼 너 혼자 가. 안전에 주의하고. 나는 집에서 기다릴게.”“알았어요.” 성연은 부끄러워하며 무진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성연도 자신이 그렇게 일찍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무진과 함께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자신도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으니까.성연과 그래함이 시골로 가는 날, 무진은 여전히 집에서 성연의 물건을 정리해주었다.무진의 손에 든 가방을 받은 성연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 안에... 뭐예요?”“세면용품에 옷도 몇 벌 있고 외투도 있어. 저쪽은 모두 산간 지역이니까 추울 수도 있어. 만약 무슨 의외의 사고가 생겨서 돌아오지 못한다면 이걸로 우선 아쉬운 대로 참아.” 무진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그러나 지금 자신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앞에 있는 물건들을 본 성연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우리는 잠깐 갈 뿐인데 어디에 그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해요? 그쪽에서 살 수 있어요.”“네가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을까 걱정돼.” 무진은 가방을 성연의 손에 밀어 넣었다.무진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성연은 가방을 건네받았다.“그래요, 알았어요.”무진은 줄곧 아주 주도면밀하게 고려했다. 지금 성연과 동반할 수 없게 되자, 잘 보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던 성연이 뭔가를 떠올리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여전히 채연 언니를 잊지 않았어요? 어쩐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사형이 여자 친구 이야기도 하지 않더라니.”그래함은 속내를 들킨 듯이 우물쭈물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잠시 후에 성연이 비로소 말했다.“사형의 생각을 알겠어요. 괜찮아요.”“이틀만 있다가 가자.” 그래함의 심정은 사실 좀 불안했다.자신이 한결같이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이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그러나 결국 돌아가서 한 번 보려던 것이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그래요.” 성연이 대답했다.모처럼 그래함이 국내에 왔는데, 이 작은 소원을 성연이 어떻게 들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리고 성연도 오랫동안 할머니를 보러 가지 않았기에 할머니를 뵈러 가야 했다.‘할머니는 나를 기대하시면서 잘 지내셨을 거야.’‘이제는 할머니에게 나는 확실히 잘 지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별장에서 돌아간 성연은 무진에게 이 일을 알려주었다.“시골 마을로 돌아간다고? 왜 갑자기 시골에 갈 생각을 했어?” 무진은 여전히 호텔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까 봐 걱정을 했다.‘지금은 정말 안전하지 않아.’‘시골 마을에 가면 불안정한 요소가 많아.’“그래요, 사형이 부탁한 건데 어쨌든 같이 가 봐야죠.” 성연은 이런 일을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좀 보자, 성연아. 네가 시골 마을에 있을 때 그래함도 너하고 함께 살았어?”무진이 물었다.‘알고 보니 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구나.’‘그리고 이제서야 내가 이 일을 알게 된 거야.’성연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 일은 말하자면 길어요.”원래 당시 성연이 스승님 밑에서 배우고 있을 때 그래함도 있었다.스승님은 그래함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함으로써 해외 유학을 하고 사업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다만, 지금은 제자들이 하나같이 모두 이름을 날리게 되었지만, 스
무진이 며칠 동안 조사했지만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매일 자신이 직접 이 일의 진척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성연도 서한기에게 이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결코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지는 않겠어.’지금은 누구라도 성연에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다.성연이 만약 계속 이렇게 있다면, 아마 그 사람들은 성연이 만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성연에게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정말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했다.만약 이번에 이로 인해서 정말로 그래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성연은 필연적으로 그 일당을 잡아내고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앞서 무진이 일을 처리하고 있어서 성연은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하지만 이제는 성연이 이 일에 관여해야 했다.이 일을 수하에게 맡긴 뒤, 성연은 수시로 그래함과 함께 북성을 돌아다녔다.이제 그래함의 몸은 많이 좋아졌다.호텔에 있으면 또 비슷한 일이 생길까 봐 무진이 그래함에게 한적한 별장을 준비했다.그리고 하인 두 명을 뽑아서 보냈다.모두 우리 편이기에 마음 놓고 사람을 쓸 수 있었다.“사형, 아니면 사형이 국내로 돌아오세요. 여기는 사람도 많아서 우리도 자주 만날 수 있어요. 사형 혼자 외국에서 외톨이로 지내면서 고독하게 명절을 보내잖아요.” 성연은 그래함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그래함이 가까스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기에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성연도 잘 알고 있었다.그래도 한마디 더 하자면성연도 사형들을 가족으로 여긴다는 것이다.“됐어, 나도 요 몇 년 동안 외국에 있으면서 익숙해졌어. 적응하지 못할 것도 없으니까 나 때문에 걱정하지 마.” 그래함은 성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그 동작은 다른 감정이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동생에 대한 오빠의 사랑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사형, 잘 생각해보세요.” 성연은 애교를 부렸다.“그래, 생각해 볼게. 넌 지금 강무진이 좋지 않아? 나보고 너희 훼방꾼이 되라는 거야?” 그래함이 성연을 놀렸
그래함은 모든 일의 과정을 자세히 돌이켜보았다.풀리지 않는 의혹이 가득한 표정이었다“나는 방금 이곳에 왔고 다른 사람과 원한도 없는데, 나한테 왜 이런 거지?”‘일부러 내 방으로 물건을 보낸 건 분명히 나를 해치려는 거야.’그래함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남에게 미움을 샀다면, 나는 방금 북성에 왔기에 불가능한 일이야.’성연도 일찌감치 이 문제를 생각했다.그래함이 문제를 제기한 이상 성연이 바로 말했다.“그자가 나를 목표로 했을 거예요. 독을 쓴 대상이 아마도 나였을 거예요. 다만 그때 내가 먹을 수 없었지요.”‘그때 성연이 정말 음식을 다 먹었다면 그 결과가 어땠을지는 상상할 수도 없어.’‘지금 그래함이 성연을 대신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거야.’무진은 갑자기 당황스러웠다.‘지금 결국 누군가가 성연에게 독수를 썼어.’바로 옆을 보고 말했다.“손 비서, 사람을 보내서 그 대체되었다는 종업원을 추적해!”“예.” 손건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나갔다.그래함의 마음속에는 더욱 많은 의문이 들었다.“성연이는 줄곧 선량했고 또 의술을 익혀서 적지 않은 사람들을 도와주었어. 그런데 어떻게 그런 악랄한 인간들에게 미움을 살 수 있겠어?”그는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다 큰 남자인 나도 그 아픔을 견딜 수 없었는데, 여린 소녀인 성연은 더 말할 것도 없어.’무진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성연이 상처를 받은 것은 십중팔구 모두 나 때문이야.’‘만약 내 옆에 있지 않았다면, 성연이가 그렇게 많은 고생을 겪지는 않았을 거야.’‘성연을 잘 보호해야 했어.’무진이 자신 때문이라고 막 입을 열려고 했다.옆에 있던 성연이 바로 말했다.“사형, 이 일은 얘기하자면 길어요. 다음에 다시 사형에게 얘기해 줄게요. 때로는 사형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도 귀찮은 일이 찾아오는 법이지요.”성연은 이런 것들이 모두 무진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모두 나쁜 마음을 품은 그 인간들이 소란을 피웠을 뿐이야.’“네 말도 맞지만, 이런 일은
집에 돌아온 성연은 약재를 가지고 황급히 해독약을 조제했다.다 만든 뒤에 바로 그래함에게 보냈다.“사형, 이건 해독환이에요. 빨리 먹어요.”그래함이 바로 해독환을 먹자 작용도 빨랐다. 그래함의 배는 곧 아프지 않게 되었고 안색도 많이 좋아졌다.“괜찮아요? 사형?” 성연은 시종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그래함이 위로하며 말했다.“네 약이 아주 효과가 있네. 지금은 이미 많이 좋아졌어.”“그럼 됐어요.” 성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혹시 그래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서, 오는 도중에 성연의 마음은 시종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아무 일도 안 생겼으니 그나마 다행이야.’이때 무진도 병원에 도착해서 그래함에게 조사 결과를 알려주었다.“원래의 종업원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매수되었을 겁니다. 제가 지배인으로부터 전화번호를 받고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연락을 할 수 없었습니다.”무진은 눈썹을 찌푸렸다.대신한 사람에 관해서도 어떤 소식도 찾을 수 없었다.누가 자신의 눈앞에서 소란을 피웠다고 생각하니 무진은 정말 화가 났다.“강 대표님이 고생이 많으셨습니다.”그래함도 이런 일은 성연과 무진이 바라던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아닙니다. 총재님의 몸은 좀 어떻습니까?” 무진도 걱정이 되었다.그래함은 성연에게 있어서 당연히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성연이가 방금 약을 가져와서 지금은 이미 많이 좋아졌습니다. 강 대표님께 걱정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그래함의 손에는 아직 링거가 꼽혀 있었다.병원의 약효는 성연 자신이 배합한 약보다 못했다.효과도 느렸다.성연의 약이 있어서 그래함의 몸은 육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별일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무진이 입술을 꽉 다물었다“제가 배후에 있는 자를 잡아낼 테니, 그 점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만약 이런 작은 일도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래함 그들도 틀림없이 내가 성연이를 잘 보호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거야.’“저는 걱정하지
성연이 바로 119에 전화를 걸어서 그래함을 긴급히 병원으로 호송했다.그리고 남아서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을 수집한 성연은 무진에게 전화를 해서 알려주었다.무진은 서류들을 다 처리하고 마침 호텔 방향으로 달려오던 중이었다.‘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무진이 운전기사에게 다급하게 지시했다.“빨리 가자!”조수석에 앉아 있던 손건호도 무진의 초조한 말투를 듣고 물었다.“보스,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그래함에게 사고가 생겼어. 서둘러.” 무진은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그러나 손건호도 그래함 이 사람의 중요성을 알기에 눈썹을 찌푸리면서 표정이 굳어졌다.곧 호텔 입구에 도착했다.성연이 뛰어나와서 무진에게 말했다.“음식에 독이 있었어요. 무진 씨가 여기를 조사해 보세요. 난 돌아가서 물건을 좀 가져올게요.”급하게 나온 성연은 몸에 다른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방금 그래함에게 은침을 놓아서 독소의 확산을 어느 정도는 억제했다.그러나 그래함의 독은 일반적인 독이 아니라서 반드시 성연이 돌아가서 조제해야 했다.병원이라고 반드시 잘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무진은 성연이 무엇을 하러 가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건호와 함께 들어갔다.호텔의 지배인이 이미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여기서 큰 인물에게 사고가 생겼다는 말에 지배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그는 정말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지배인 앞으로 다가간 무진이 바로 노여워하며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당신네 호텔 음식에 누가 독을 넣었어요?”지배인은 정말 억울했다.무진의 앞에 선 채 땀도 감히 닦지 못했다.“강 대표님, 저희 음식은 모두 겹겹이 점검해서 깨끗하지 못하거나 누가 독을 넣는 상황은 생길 수 없습니다.”“손 비서, 가서 물건을 가져와.” 무진이 지시했다.손건호는 무진의 말 뜻을 알아차렸다.바로 그래함의 방으로 가서 그 음식들을 모두 가져왔다.그리고 검사를 담당하는 의사도 왔다. 음
성연은 잠시 눈썹을 찌푸렸지만 물을 좀 마시자 많이 좋아졌다.가슴에서 솟구치던 메스꺼움도 이렇게 내려갔다.그러나 앞에 있는 음식에는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그래서 성연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괜찮아요. 방금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그래함이 휴지를 주면서 말했다.“괜찮아. 불편하면 억지로 먹지 마. 나 혼자 먹으면 돼.”“그래요, 옆에서 과일이나 좀 먹으면서 기다릴게요.” 성연도 자신이 왜 이런지 의아했다.이전에는 이런 상황이 발생한 적이 없었다.그러나 곧 개의치 않았다. 이런 불편한 느낌은 포도를 먹자 많이 완화되었다.그래함은 혼자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아주 깔끔하게 먹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했다.성연은 정말 아쉬워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내 주변의 사형들은 모두 최고의 남자들이야.’‘내게 절친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최고인 사형들을 다른 여자들이 채 가는 걸 걱정하지 않았을 거야.’성연은 아쉬운 표정이었다.그래도 다행히 성연이 주문한 음식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식량 낭비를 피하기 위해서 그래함은 앞에 있는 음식들을 모두 깨끗하게 먹었다.성연이 때맞춰서 그래함에게 물 한 잔을 꺼냈다.“사형, 물 드세요.”그래함이 물컵을 받으며 말했다.“너는 정말 철이 들었어”성연은 다소 불복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당연하지요. 나는 지금 성인인데요, 그렇죠? 사형들은 나를 어린애로 보지 말아요.”“너 근데 애잖아?” 그래함이 성연을 놀렸다.그래함의 눈에 성연은 줄곧 자신이 보살펴야 할 여동생이었다.“나야말로 아니거든요. 난 결혼도 할 건데요.” 성연이 불만스럽게 반박했다.그래함이 감탄하면서 말했다.“맞아,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네.”“빨리 사형을 받아줄 사람을 찾아요. 혼자는 외롭잖아요.” 성연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그래함이 막 대답하려고 하는데 배에서 따끔따끔한 통증이 밀려왔다.이 통증은 너무 심해서 그래함처럼 인내심이 좋은 사람조차 허리를 굽힐 정도로 아팠다.심
무진은 그래함에게 로얄 스위트룸을 마련해 주었다.안에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었고 그래함은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었다.그래함과 밥을 먹은 후, 무진은 아직 처리해야 할 급한 서류가 남아 있었다.성연을 남겨두고서 회사에 갔다가 다시 오겠다고 했다.성연은 그래함과 함께 소파에 앉았다.무릎 위에 땅콩 한 봉지를 놓고 먹으면서 아주 쾌적한 모습이었다.그리고 그래함의 앞에는 뜨거운 김이 나는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었다.“왜 강무진을 선택했어?”“사형, 이유를 모르겠어요? 왜 또 물어봐요?” 성연은 그래함이 일부러 이렇게 물었다고 느꼈다.“난 잘 모르겠어. 네 마음속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이야.” 그래함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이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고 장난도 심한 데다가 애교도 잘 부려서, 거의 아무도 굴복시킬 수 없었지.’‘엄격한 고학중 사부님조차도 성연이를 대하면서 총애할 수밖에 없었어.’‘성연이가 우리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결혼하는 사람일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인연이 오는 건 누구도 막을 수 없잖아요.” 성연은 어깨를 으쓱거릴 수밖에 없었다.“말도 안 돼.” 그래함은 담소하면서 성연의 말을 믿지 않았다.사실 성연 자신도 무진과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잘 몰랐다.애초에 두 사람이 상대방에게 접근했을 때 목적은 모두 단순하지 않았다.나중에 두 사람이 서로 보살피고 고백하면서 성연은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성연은 이렇게 발동이 늦게 걸리는 사람이다.무진만 성연을 원하면서 인내심 있게 성연이 깨닫기를 기다렸을 뿐이다.무진의 성연에 대한 이 인내심만으로도 성연은 완전히 마음이 기울었다.“사형, 정말로, 감정 이런 일은 인연에 달려 있어요.” 성연은 자신의 생각에 어떤 문제도 없다고 느끼면서 말했다.“그래.” 그래함의 시선은 어딘가 아련해 보였다.마치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가는 것 같았다.성연이 말한 인연이 있는 그곳...“그 얘기는 그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