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한 모금 마신 안금여는 얼굴의 웃음기를 지운 채 한 차례 헛기침을 했다.“어린 아이가 철이 없습니다. 둘째, 셋째 서방님 모두 너무 언짢게 생각지 마세요.”이어 굳은 얼굴로 화가 난 척 호통을 쳤다.“성연아, 얼른 무진이 뒤에 가서 서지 않고 뭐하니!”성연이 매우 얌전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무진의 뒤에 섰다.“오늘 여러분들을 부른 까닭은 함께 식사하며 무진이의 약혼녀를 선보이고자 해서입니다. 그러니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강씨 집안에서 발언권이 가장 큰 안금여의 눈빛이 닿을 때마다 손아래 젊은 세대들은 입을 다물었다.모두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잘도 듣고 있다.시골 계집애 때문에 난처해진 강일헌과 강진성은 속으로 바드득 이를 갈았다.곧 식사가 시작되고 음식이 들어왔다. 육, 해, 공 빠진 것 없이 다 갖춘 푸짐한 성찬이었다.성연이 본 것도 있고, 보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어쨌든 비싸면 되는 거지.’강씨 집안의 한끼 식사가 일반 사람들의 반년치 월급과 맞먹을 정도였다.그야말로 돈지랄이었다.설사 자신에게 돈이 있다 하더라도 감히 이렇게 쓰지는 못할 터였다.조용히 무진의 옆에 앉은 성연은 다른 사람들이 수저질을 시작하자 고개를 숙이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성연이 먹는 모습은 솔직히 예의범절에 맞춘 조신한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작이 우아하고 보기 좋아서 빨리 먹는데도 경박스러워 보이지 않았다.무진이 옆에서 성연을 살폈다. 때때로 채소를 집어 주거나 생선 가시를 발라주면서.성연이 너무 빨리 먹다가 체하기라도 할까 걱정된 무진이 연신 주의를 주었다.“천천히 먹어. 서두르지 말고.”맞은편에 앉아 마침 이 말을 들은 강진성이 바로 젓가락을 내려놓고 가시를 세웠다.“형수님, 이건 좀 곤란한데요. 식사 예절, 우리 집안에선 아주 엄격합니다. 식사하시는 모습이 썩 좋지 않군요. 이후 밖에서 어떤 비난을 듣게 될지. 집에서 형님이 굶기는 줄 알겠어요.”약한 모습 보이기 싫은 성연 역시 입안의 고기 조각을
강진성과 강일헌은 번번이 성연이에게 깨졌다.아직도 송성연이 머리에 든 거 없는 촌뜨기라고 생각한다면, 그들 두 사람이 바보 천치일 것이다.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저 모습이 어디 산골 여자아이에게 볼 수 있는 감성이란 말인가?더 이상 성연에게 열 받지 않기 위해 아예 입 닫고 조용히 밥을 먹었다.저녁 식사는 금방 끝이 났다.모임에 참석했던 강씨 집안 일원들이 잇달아 자리를 떴다.사람들로 붐볐던 거실이 순식간에 휑해졌다.고용인들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치우기 시작했다.“드디어 조용해졌구나.”강운경이 안금여를 부축해서 소파에 앉혔다.고개를 끄덕이던 강운경은 보이지 않는 총과 몽둥이로 조롱해대던 사람들을 생각났다. 곧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이 사람들, 매번 집안 모임 때마다 방법을 바꾸어 가며 우리 무진이를 조롱해댔지. 듣기만해도 역겨웠는데, 이제 그럴 일 없을 것 같은데?”‘듣기 좋게 말해서 모두 강씨 집안 사람들이지, 하나같이 야심만만한 여우들 아냐? 무진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지.’안금여가 강운경의 손을 톡톡 두드리며 위로하고는 웃으며 말했다.“신경 쓸 필요 없다.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사는지 보라고 하는 것도 괜찮을게다.”둘째와 셋째 시동생은 매번 집안 모임을 핑계로 이쪽 종가의 밑바닥까지 살폈다. 곤경에 처한 모습을 봐야 두 늙은 여우는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보고 싶어하니 보여주마.’“됐다. 이미 오래된 일인데 괜히 그 사람들 꺼내지 말거라. 속 시끄러우니까.” 일찍부터 강씨 집안 사람들의 태도에 익숙한 터였다.예전 자신의 영감이 살아있을 적에 잘 대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영감이 가자마자 무진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것 같다. ‘무진일 그렇게 힘들게 하더니.’무진의 상태를 위장해야만, 무진이 안전할 수 있었다.그녀는 살아생전 무진을 제대로 지켜주고 싶었다.안금여의 머릿속에서 많은 옛날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자연히 시선이 무진에게 향했다.무진 옆에 앉은 성연을 보는 안금여의 입가에 웃음이 피어
강무진은 성연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래, 맞아. 매사 거침없이 행동하는 애가 어떻게 앉아서 예의 같은 걸 배우고 있겠어?’그는 휠체어를 조종하여 소파 쪽으로 갔다.“고모는 바쁘신 분인데, 이런 일로 귀찮게 해드릴 수는 없죠.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예절 선생님을 모셔와서 성연이를 지도하게 하겠습니다.”그러자 안금여가 입을 열었다.“나는 오히려 성연의 이런 성격이 마음에 든다. 이제 우리 집안에도 규칙에 매이지 않는 사람이 있을 때도 되었지 않니? 그런 사람이 집안을 이끌면 좋겠다.”그 말을 들은 성연이 깜짝 놀라 안금여를 쳐다봤다.할머니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말씀해 주실 줄은 몰랐다.성연은 할머니가 더 좋아질 것만 같았다. 한참 대화를 나누던 안금여는 피곤이 몰려오는 듯했다. 아직 열 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크게 하품을 하고는 이내 한숨을 쉬었다.“이제 정말 늙었나 보다. 에너지 넘치는 젊은 너희들을 따라 갈 수가 없구나. 성연아, 무진아! 할머니는 더 이상 여기 못 있겠다. 그만 방에 들어가 쉬어야겠어. 낡은 뼈마디가 더는 안된다고 신호를 보내는구나.”강운경이 얼른 일어나 안금여를 부축했다. “엄마, 천천히요.”계단 입구까지 간 강운경이 고개를 돌려 무진과 성연을 쳐다보았다.“둘 다 조심해서 들어가. 오늘은 푹 쉬고 시간이 될 때 또 보자.”강운경에게 인사를 건넨 두 사람은 강씨 고택을 나섰다.돌아가는 길에 한참을 망설이던 성연이 입을 열었다. 걱정거리가 생겼다. “설마 정말 예절 선생님을 데려오는 건 아니죠? 난 싫어요.”무진은 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설령 예절 선생을 모셔온다 해도, 이틀도 안 돼 거품 물고 때려치울 거라고.성연이 먼저 싫다고 말한 이상, 그도 굳이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배우지 않아도 돼. 하지만, 배우는 척은 해야 해. 나중에 고모가 물어볼 때, 뭐라고 할 말은 있어야지.”성연도 그쯤은 충분히 이해한다.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강운경도 있지만, 괜히 트집을 잡
‘자신에게 이렇게 큰 자식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아는 게 겁나는 거야? 내가 혹시라도 자신에게 매달릴까 봐 미리 돈을 주는 거야?’이런저런 생각에 성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 느끼는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일부러 전화를 해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말하다니, 너무 창피스럽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아빠, 엄마’라는 단어는 성연에게 더 이상 ‘사랑’의 의미가 아니었다.그녀의 부모는 정말 구역질 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애써 마음속의 분노를 억눌렀다.“굳이 이렇게 알려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도 어머니에게 연락할 생각 없으니까요.”말을 마치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성연의 눈동자가 사납게 일렁이는 기운으로 가득 찼다.이제 이런 일에는 면역이 생겨 아무렇지 않다고 되뇌었지만, 마음속에서 이는 슬픔은 어쩔 수 없었다.‘이게 뭐야?’‘원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나를 낳은 거야?’‘하지만 고마운 것도 있어. 생명을 줬으니, 오늘의 송성연이 있는 거니까.’휴대폰을 한쪽에 두고 물을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냉장고를 열고 얼음물 한 병을 꺼내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꺼지지 못한 마음속의 불덩어리로 인해 성연의 마음은 점점 더 뜨겁게 타올랐다.마침 집사가 지나가는 것을 본 성연이 물었다.“집사님, 혹시 게임을 연결할 수 있는 장비가 있을까요? 갑자기 게임을 하고 싶어서요.”잠시 머뭇거리던 집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원래는 안 된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괜찮을 것도 같았다.‘사모님은 아직 어린 나이니까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게 정상이지. 이 정도는 괜찮겠지 뭐.’‘도련님도 이해하실 거야.’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입니다.”집사가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에 게임기를 연결해 주자, 성연이 능숙하게 게임기를 조작했다.집사는 금방 게임을 설치해 주었다. 성연이 그냥 게임을 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하면서.만
성연이 직접 만든 이 게임은 모험심을 자극하며 꽤나 긴장감이 넘쳤다.평소 걱정이 많거나 스트레스가 많을 때 하면 딱 좋은 그런 게임이다. 성연이 무진에게 게임 규칙을 설명했다. 구체적인 게임 방법뿐 아니라 게임의 레벨을 깨트릴 수 있는 기술까지 모두 전수했다.손건호와 집사는 놀란 얼굴로 서로 마주 보았다.손건호는 마음속으로 감탄했다.‘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 보스가 집에서 게임 하는 것을 보다니!’‘우리 도련님, 엄청난 돈이 오가는 사업도 마다하고 지금 어린 사모님 유혹에 넘어가 게임을 하고 있다니. 이래도 괜찮나?’몇 번 게임을 하고 난 무진은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하면 할수록 더 빠지게 된다.원래 성연과 함께 있으면서 기분을 풀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자신이 게임에 푹 빠져들었다. 실력도 처음보다 많이 늘어 이제는 전혀 초보자 같지 않았다.만약 직접 가르쳐 주지 않았더라면, 그녀 역시 무진이 처음 게임한다고는 믿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게임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성연은 그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게임을 깨나가는 속도가 그녀를 따라잡을 정도였다.“평소에 집에 있으면서 할 일이 없을 때는 무엇을 해요? 설마 계속 책만 읽는 것은 아니죠?”함께 게임을 하는 동안, 둘의 거리가 조금 가깝게 느껴졌다.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잠시 말이 없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뭐…… 어떻게 보면 계약서도 글로 된 책이라 할 수 있지…….’‘온종일 책만 읽으면 얼마나 재미없을까?’‘으윽, 글자들로 꽉 찬 페이지만 봐도 머리가 아픈데, 온종일 본다니!’이런 생각을 하던 성연이 또박또박 말했다. “역시 게임을 하는 게 더 재미있어요.”무진은 버튼을 누르면서 물었다.“이 게임은 시중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듯 무진은 대화를 하면서 게임도 하고 있었다. 성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TV 화면을 보고 있었다.‘누가 나에게 설명 좀 해줘! 강무진이 어
시간이 많이 지난 것을 확인한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은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게임을 하고 끝냈다.어쨌든 자신 역시 내일 학교에 가야 했다. 너무 늦게 자면 못 일어날지도 모른다. 게임을 마친 성연은 방으로 돌아왔다. 손건호와 상의할 일이 있는 무진 때문에 옆방에 있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은 듯했다.혹시 무진이 같은 방을 쓰자고 요구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침대에서 자고 남은 한 사람은 소파에서 자는 거니까 상관 없었다.이 점에 대해서는 무진과 이미 약속을 한 상태였다.며칠 함께 지내면서 무진이 꽤 매너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첫날은 빼고 말이다. 그날 일은 그냥 사고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무진이 자신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때때로 강씨 집안의 이상한 친척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 말고는, 이곳은 송씨 집안보다 훨씬 편했다.적어도 강무진은 그녀에게 잘해 주는 편이니까.밤 10시 반.성연은 욕실에 들어가 간단하게 씻었다.욕실을 나오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수건으로 올리고 있던 머리를 풀며 문을 열었다. 입구에 손건호가 서 있었다.“무슨 일이에요?”손건호는 그녀를 보며 초조한 듯이 말했다.“제가 보스에게 약을 발라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긴급 콜이 왔습니다. 지금 당장 가 봐야 하는데, 혹시 사모님께서 제 대신에 약을 발라 주실 수 있는지요?”성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집사님에게 부탁하시면 되잖아요.”성연은 손건호가 지금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회사 일이 아무리 급하다 해도, 자기에게 와서 이런 부탁을 할 시간에 약을 바르면 됐을 터.손건호는 성연이 그런 계산까지 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이제는 대놓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집사님은 연세가 많으셔서 잠이 부족하면 다음 날 편두통이 심해지십니다. 그러면 종일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지요. 사모님도 아시다시피 집사님은 이 집안의 살림을 꾸려 나가야
성연은 침대 옆에 앉아 그를 눕힌 후, 상처를 가리고 있는 목욕가운을 젖혔다.자세히 살펴보니, 상처는 이전에 창고에서 봤을 때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이제 서서히 아물기 시작하고 있었다.하지만 어찌 되었든 몸에 깊은 흔적을 남긴 상처였기에 그렇게 빨리 낫지는 않을 것이다.성연은 손에 든 연고를 한 번 살펴보고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손가락 끝에 약을 짜서 무진의 상처에 바르기 시작했다.아주 일반적인 상처에 바르는 연고는 병원에서 처방한 것이라, 순하면서도 서서히 상처를 아물게 할 것이다.그전에 무진이 사용했던 성연이 만든 연고는 상처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만약 계속 그 연고를 사용했다면 지금쯤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을 터였다.그러나 성연은 무진 앞에 너무 많은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너무 똑똑한 사람이라 자칫하면 다른 사실들까지 알아낼 지도 모른다.그래서 성연은 매사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침착한 얼굴로 약을 바르며, 다른 감정은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보통, 여자들은 이런 상처를 보면 깜짝 놀랐다. 소리까지는 지르지 않아도 그녀처럼 침착하지는 못했다.무진은 성연이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호기심이 생겼다.하지만, 손건호가 조사해온 자료에 의하면, 평범하기 그지없었다.무진이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의도적으로 물었다.“너는 이런 상처를 보고도 무섭지 않아?”성연은 무진의 복부를 가볍게 마사지하며 약이 더 잘 흡수되도록 했다.질문을 받고 성연이 놀리던 손을 멈췄다.“무서울 게 뭐 있어요? 그냥 상처일 뿐이잖아요.”무진이 웃으며 말했다.“넌 상처도 능숙하게 치료하고 마사지도 잘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네가 의술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야.”그는 마치 성연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긴장한 나머지 손끝이 살짝 떨렸지만 계속해서 부드러운 손길로 약을 발랐다.무진은 그녀의 손끝이 피부에 닿는 순간, 몸을 움찔했다.간지러우면서도 찌릿찌릿한 느낌이었다.무진의 검은 눈동자가 더 새까매졌다.성연이 헛
성연은 약을 다 바른 후, 뚜껑을 닫아 한쪽에 놓았다. 무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약을 바르는 동안 이렇게 긴장하긴 처음이었다. 이마에서 땀이 날 정도였다. 진우현이 그에게 약을 발라줄 때는 전혀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무진은 성연이 자신에게 생각보다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느꼈다.연고를 제자리에 놓은 성연이 고개를 돌렸다.약을 먹고 쉬고 싶은 성연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무진의 다리로 시선이 향했다. 무진은 검은색 목욕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살짝 열린 가운 사이로 길고 튼튼한 다리가 드러났다. 아마도 방금 약을 바르던 중에 실수로 가운이 벌어진 모양이었다.무진의 허벅지에 있는 작은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일반인들은 잘 못 보지만, 늘 이런 상처를 보고 치료해 온 성연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그런데,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보통 상처가 아닌 총상이었다.상처 가장자리에 총알에 마찰되며 긁힌 흔적이 있었다.성연은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집에서 쌀만 축내는 빈대 같은 남자가 어떻게 이런 상처를 입었지?’‘어쩐지, 다친 지 오래되었는데도 상처가 잘 낫질 않는다 했더니.’성연은 궁금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는 강씨 집안의 복잡한 일에 절대로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강씨 집안에 들어온 것은 모두 ‘스카이 아이 시스템’ 때문이었다. 다른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그녀가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스카이 아이 시스템’을 찾기 전에는 어떤 문제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날, 집안 모임에서 강씨 집안 내의 알력 다툼이 얼마나 치열한지 똑똑히 봤다. 그들 모두 보통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성연의 시선이 계속 자신의 다리를 향하자, 무진은 성연이 이미 자신의 상처를 봤음을 눈치챘다.숨기기보다 차라리 인정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무진이 물었다.“내 다리를 치료해 줄 수 있어?”성연은 그의 물음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의사가 아니
“앞으로 우리는 한 가족이야.” 이렇게 말하는 안금여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였다.“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는 항상 한식구였는데요.”성연이 입술을 삐죽이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래, 성연이 네 말이 맞구나.” 안금여는 다소 흥분한 상태였다.“무진이도 이리 와.” 안금여가 무진에게도 손짓을 했다.무진이 천천히 안금여 앞으로 다가갔다.“예전에 나는 네가 앞으로 외톨이가 되는 게 두려워서 네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단다. 또 앞으로 네가 외톨이가 된다면, 내가 무슨 낯으로 네 부모를 대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 그러나 지금 이렇게 성연이와 함께 하게 되어서 정말 안심이 돼. 마침내 내 걱정을 덜었어.” 성연과 무진을 보는 안금여의 눈에서 마침내 눈물이 흘러내렸다.기쁨의 눈물이다.‘마지막 소원을 이루었어.’“할머니.” 성연도 코가 시큰거리면서 울고 싶어졌다.‘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면서, 할머니는 묵묵히 나를 지지하시면서 뒤에서 보호해 주셨지.’‘만약 할머니와 어른들의 지지와 사랑이 없었다면, 절대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거야.’‘할머니는 내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온정을 주셨어.’옆에 있던 강운경이 위로했다.“엄마, 즐거운 날이잖아요? 앞으로 무진이하고 성연이가 함께 엄마 노후를 모실 거고, 나중에 또 아이도 생기면 집안이 더 시끌벅적할 거예요.”“그래, 너희들 서둘러야 해. 얼른 내게 증손자를 안겨줘야지.” 안금여는 바로 핵심을 짚었다.만약 무진과 성연의 아이를 볼 수 있다면, 안금여는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할머니, 가능한 한 빨리 아이를 가질게요.”이전에 성연은 줄곧 아직 어린데 아이를 갖는 건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안금여의 눈에 비친 갈망을 보자 곧바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할머니의 한평생 소원은 바로 자손이 번창하는 거였어.’‘지금은 할머니를 볼 수 있지만 언젠가는 돌아가실 수도 있어.’‘할머니의 이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는 게 당연히 가장 좋겠지.’“정말이니?” 안
서양식 결혼식이 끝났다.무진과 성연은 바로 옷을 갈아입고 전통 혼례를 올려야 했다.결혼식장에서 바로 저택으로 향했다.전통 혼례의 절차는 더 복잡했다.자리에 앉은 채 안금여는 목을 빼고 기다렸다.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안금여와 식구들은 미리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눈이 빠지도록 기다려도 성연과 무진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엄마, 그 말은 몇 번이나 물어봤어요.” 강운경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강운경 자신도 마찬가지였기에 안금여의 초조한 심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조급해서는 안 돼.’“얼마나 지났는지 좀 볼래?” 안금여는 시계를 들고 강운경에게 보여 주었다.강운경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조승호가 옆에서 위로했다.“어머님, 저쪽에는 무진이하고 성연이 친구들도 많아요. 일이 있어서 지체되는 모양이에요. 시간도 아직 안 됐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무슨 일로 지체되는 거야?” 안금여는 다소 불만스러웠다.‘이런 날이 빨리 오기를 밤낮으로 학수고대했는데 말이야.“엄마, 애들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요. 걔들이 애도 아니니까 좀더 기다려봐요.” 강운경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조급하다 해도 어른이 너무 조급하게 재촉하는 건 좋지 않아.’딸과 사위가 모두 이렇게 말하자 안금여도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다만 입구 쪽을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다.곧 밖에서 소리가 들려오더니 성연과 무진이 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안도의 한숨을 내쉰 강운경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 할머니가 여기서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알아!”성연도 시간이 많이 늦었다는 걸 알고 황급하게 달려왔다.바로 고모에게 사과했다.“고모, 죄송해요. 친구들이 많아서 접대하느라 좀 늦었어요.”“괜찮아, 왔으니 됐어, 빨리 가자.” 강운경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무진과 성연은 세 어른에게 차를 올렸다.세 어른들은 각자 두 사람에게 두둑한 돈봉투를 주셨다
지금 연계진과 조수경도 결혼식장의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다.그러나 아무도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눈길을 보내는 사람조차 없었다.결혼식에 참석한 다른 거물들에 비하면 두 사람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조수경은 그야말로 성연을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하고 증오했다.‘저 자리는 분명히 내 거였어.’‘그러나 송성연이 거듭 초를 쳤지.’‘송성연만 없었다면 지금 강무진과 결혼하는 사람은 나였을 거야.’그리고 무진을 주시하는 연계진의 눈빛은 더욱 원망이 가득했다.‘연씨 가문이라는 강력한 적수가 없었기에 강씨 가문이 지금 잘 나갈 수 있었어.’‘강씨 가문이 지금 가진 모든 건 연씨 집안의 것이었어.’‘강씨 가문과 강무진이 우리 걸 도둑질했어!’‘연씨 가문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어떻게 저들 차지가 될 수 있단 말이야?’어두운 표정의 두 사람은 낯빛도 좋지 않았다.만약 다른 사람이 자세히 보았다면, 아마도 결혼식에 참석한 게 아니라 신부를 훔치러 왔다고 여겼을 것이다.정말 참을 수 없게 된 조수경은 이를 악물고 연계진을 바라보며 말했다.“계진 씨, 우리의 계획은 도대체 언제쯤 실행할 수 있을까요?”얼른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이쪽에 주의하지 않자, 연계진은 비로소 눈썹을 찌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그런 말을 왜 해? 우리가 뭘 하겠다고 사람들한테 광고라도 하는 거야? 만약 강무진이 알게 되면, 우리 둘을 끝까지 쫓을 거야!”조수경은 마음속으로 불만이었다.‘결국 연계진은 강무진이 두려운 게 아닐까?’그러나 감히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조수경도 연계진의 성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연계진은 다른 사람이 자기 뜻을 거스르는 걸 가장 싫어하지.’조수경은 얼른 사과했다.“내가 너무 조급했어요.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저것들은 왜 저렇게 잘 사는 걸까요.”이 말이 오히려 연계진을 자극했다.연계진도 조수경과 같은 생각이었다.눈을 가늘게 뜬 연계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이에 결혼식도 진행되기 시작했다.연미복을 입은 무진은 기사처럼 묵묵히 성연의 곁을 지키면서, 성연에게 가장 진지한 애정을 보여 주었다.성연은 눈처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웨딩드레스의 아래쪽 레이스에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어서, 한 벌에 수억 원이나 할 정도로 화려했다.물론 목현수와 샤넬, 그래함과 유채연도 절대 밀리지 않았다.그들의 출중한 외모와 아름다움은 각기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사람마다 모두 자신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레드카펫에 나란히 선 세 쌍의 신랑 신부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간다.무진과 성연은 가운데에 있었다.결국 목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혼인 선서를 하고 반지를 끼워 주었다.결혼식이 끝났다.세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서 자신의 아내를 쳐다보았다.장내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고, 모든 사람들이 이 결혼식을 축복했다.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토론을 펼치기 시작했다.“이건 분명히 내가 여태까지 본 결혼식 중에서 가장 호화롭고 가장 성대한 결혼식이야.”이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북성에서의 신분과 지위도 낮지 않았다.그러나 이런 큰 인물들이 돋보이는 속에서는, 그들도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게다가 이 결혼식에는 더욱 큰 돈을 썼을 텐데, 누가 이렇게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낼 수 있겠어?’‘강씨 가문 이외에는 누구도 이렇게 하지 못할 거야.’“그래, 내가 예전에 참석했던 결혼식들은 모두 결혼식도 아닌 것 같아. 이거야말로 진정한 결혼식이야.”“강 대표가 자신의 소중한 여자에게 다시없는 총애를 준 거야.”“이렇게 좋은 남자는 왜 내 남자가 아닌 거야?”이렇게 말하는 젊은 아가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또 가끔씩 머리를 흔들면서 탄식하기도 했다.옆에 있던 동료가 바로 그 아가씨의 입을 막았다.“오늘은 강 대표와 부인의 결혼식인데, 너는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혹시라도 화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그 아가씨가 주위를 둘러보고 곰곰이 생각해
그 외에도 점점 더 많은 거물들이 등장했다.모두 이 세 쌍의 신랑 신부들을 축복하러 온 것이다.그 자리에 있던 손님들 모두는 이 라인업에 놀라면서도 어느새 좀 무감각해졌다.어떤 불가사의한 인물이 오더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눈앞의 장면을 보면서 성연도 마음속으로 감탄했다.‘보아하니 다들 보통 사람이 아니었어.’‘평소에는 몰랐는데, 이제야 이렇게 많은 인물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무진 씨였어.’무진은 속으로는 더욱 놀라서 성연에게 물었다.“성연아, 저 사람들이 모두 네 친구들이야?”‘이 사람들 중에서 국제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 있겠어?’“맞아요.” 성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진이 왜 이렇게 묻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는 어쩜 이렇게 대단한 거야?” 무진의 입에서 감탄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성연이가 정말 깊숙하게도 숨기고 있었네.’‘내가 아직도 모르는 게 있울지 모르겠어.’“아무리 대단해도 무진 씨 건데요?” 성연은 무진의 품에 안겨 있었다.그날 무진에게 솔직하게 말했을 때부터 성연은 무진에게 속일 일이 없었다.무진이 자신을 믿고 있기에, 성연도 당연히 상응하는 믿음을 줘야 했다.“그 말이 맞아.” 무진은 이마로 성연의 이마에 마주한 채 달콤하게 서 있었다.다른 두 쌍의 달콤함에 비해서, 미스 샤넬과 목현수는 거리가 좀 멀었다.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했던 목현수는, 자신이 마음속으로 미스 샤넬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그렇지만 한동안은 미스 샤넬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몰랐다.그 동안은 줄곧 미스 샤넬이 주동적이었다. 지금 목현수에게 기회가 생겼지만, 오히려 자신을 수동적으로 보이게 만든 것이다.미스 샤넬은 몇 번이나 목현수에게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잠시 후, 미스 샤넬이 머뭇거리면서 물었다.“현수 씨, 당신은 불쾌하지 않아요?”그 말을 들은 목현수는 멍해졌다.“왜 그렇게 물어?”“내가 당신에게 결혼을 강요해서 당신이 억지로 나와 결혼했
갑자기 현장에서 은은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즐겁고 경쾌한 바이올린 소리에도 축복이 담겨 있었다.이 은은한 소리는 좀 익숙했다.그 소리를 들은 성연은 깜짝 놀랐다.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자, 과연 루카의 모습이 보였다.루카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슈퍼스타급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루카의 연주회 티켓을 아가씨들이 사려고 해도 매번 판매 시작과 함께 매진된다.루카는 용모도 아주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라서 거의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다.그런데, 그런 사람이 결혼식에 특별히 와서 연주를 한 것이다.여기에는 루카의 팬들도 많았다.무대 위의 루카를 보면서 팬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눈시울도 붉어졌다.한 명문가의 아가씨가 옆에 있던 동료의 손을 꼭 잡고서 말했다.“나는 몇 년 동안이나 항상 루카의 콘서트 티켓을 구하려고 했지만, 현장에서 들어보지 못하고 동영상으로만 볼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뜻밖에도 여기서 루카의 연주를 봤으니 내 평생의 소원을 이뤘다고 생각해.”그 아가씨의 흥분한 모습을 보고 있던 동료는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했다.“지금 강 대표의 결혼식을 빌어서 소원을 이뤘으니, 앞으로 강 대표와 강 대표 부인에게 감사해야 해.”“물론이지, 루카, 내 루카는 어쩌면 저렇게 대단할까?” 그 아가씨는 여전히 루카가 있는 방향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집착하는 눈빛이었다.문득 뭔가 생각이 난 그 아가씨가 옆에 있던 동료의 손을 치면서 말했다.“빨리, 빨리, 핸드폰으로 나하고 루카의 사진을 한 장 찍어 줘, 빨리.”동료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몇 장만 더 찍어. 오랜만에 루카의 모습을 봤으니까 반드시 많이 찍어야겠어.” 그 아가씨는 자신을 과시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동료를 재촉했다.성연은 웨딩드레스 자락을 들고 루카의 앞으로 걸어갔다.“네 결혼식인데 내가 당연히 참석해야지. 우리는 예전에 모두 약속했어.” 루카는 온몸에서 온화한 기운을 발산했다.성연이 놀리듯이 말했다. “첼리스트의 출연료는 저는 정말 드릴 수
이렇게 국제적인 스타 가수인 소지한.그런 소모한이 성연과 무진의 결혼식에 들러리를 서러 온 것이다.소모한은 오늘 성연과 무진의 결혼식에서 사회를 봤다.한쪽에 서서 세 쌍의 신랑 신부를 보고 있자니, 위안도 얻으면서 즐거웠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한 대의 전용기가 무진과 성연의 결혼식장에 도착했다.알고 보니 심우재가 온 것이다.성연은 심우재가 여기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심우재의 일은 정말 바빴기 때문이다.결혼식에 올 수 있는 것도 인연에 따른 것이기에, 성연은 결코 강요하지 않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정말 바쁜 중에, 시간을 내서 온 것이다.무진과 성연은 함께 심우재를 맞이하러 갔다.“우재 오빠.” 성연은 나지막하게 불렀다.“왜? 곧 아줌마가 되는데도 아직도 아가씨처럼 그렇게 쉽게 부끄러워하는 거야.”심우재가 성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우재 오빠, 너무 바쁘신데 안 오셔도 됐어요.” 심우재 눈 밑의 다크 서클을 보면서, 성연은 심우재가 얼마나 급하게 일을 해서 시간을 냈을지 생각했다.“내 여동생의 결혼식인데 당연히 내가 와야지. 이 정도의 시간도 낼 수 없을 정도는 아니야.”심우재는 성연이 결혼을 하든 어떤 모습이 되든 줄곧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여겼다.“강 대표.” 심우재는 다시 고개를 돌려 무진을 바라보았다.무진이 손을 내밀어 심우재와 악수를 했다.“심 회장님.”“우리 집 성연이를 이제 자네한테 맡길 테니까 잘 해줘야 해. 만약 성연이에게 무슨 억울한 일이 생기게 한다면, 다른 사람이 자네 자리를 물려받게 될 거야.” 심우재의 이 말은 오빠로서 매제에게 하는 경고였다.성연의 친정 사람으로서 무진에게 좀 엄포를 놓으려고 한 게 분명했다.“심 회장님 안심하세요. 저는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을 겁니다.” 무진은 예리한 표정으로 심우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강 대표, 그럴 필요는 없어요. 강 대표의 그런 마음만 있으면 돼. 만약 성연이에게 잘하지 못했다면, 여기서 나하고 얘기할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
결혼식이 분명한데 하객들의 표정은 마치 스타와 함께 하는 콘서트 같았다.그리고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손님이 아니라 팬인 것이다.성연은 사람들이 왜 이런 표정으로 자신들을 보는지 의문이 들었다.“타타타타, 타타타...”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다.신랑 신부들은 고개를 들고 붉은색과 흰색이 섞인 헬리콥터 몇 대가 이쪽으로 날아오는 걸 보았다.헬리콥터 아래에는 플래카드도 내걸고 있었다.그래함의 결혼을 축하할 뿐만 아니라, 목현수의 결혼도 축하했다.그 사람들을 본 그래함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래함은 단지 그들에게 결혼을 통지했을 뿐이다.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기에 그 사람들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뜻밖에도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것이다.유채연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 그래함이 설명해 주었다.“저 사람들은 모두 유럽에 있는 나하고 친한 친구들이야.”유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곧 누군가가 상공에서 인사를 했다.위에서 수많은 꽃들이 흩날리면서 떨어졌다.조종사의 조종 하에 헬리콥터들은 큰 하트 모양을 형성했다.사람들은 바로 이 모습을 찍었다.‘헬리콥터만 열 몇 대야.’‘강무진의 결혼식이라 해도, 이건 너무 엄청나잖아.’이런 움직임은 부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다시 한 번 바꿔버렸다.이 장면은 더할 나위 없이 충격적이었다.헬리콥터가 천천히 내려오자, 무진은 그 사람들에게 식탁과 음식을 마련해 줄 것을 지시했다.손건호가 바로 준비해서 그 사람들을 식탁으로 인도했다.미스 샤넬이 목현수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저 사람들은 그래도 꽤 잘 하는데 분간할 수가 없네요. 현수 씨가 지시한 게 아니에요?”“나는 저 친구들이 올 줄 몰랐어.” 목현수는 어깨를 으쓱거릴 수밖에 없었다.심지어 자신은 통지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스스로 결혼 얘기를 듣고 온 것이다.목현수도 가슴이 뭉클했다.‘결혼식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기에 친구들도 참석해서 결혼의 증인이 되기를 바란 거야.’“우리 결혼식을
사람들 속에서는 다른 두 쌍의 신랑 신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그들은 강씨 가문의 청첩장만 받았을 뿐 다른 사람들도 함께 결혼식을 올린다는 사실은 몰랐다.그러나 이것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다른 두 커플의 용모 수준도 아주 높았기 때문이다.“강 대표 부부와 함께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면 도대체 어떤 신분일까?”“역시 잘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가 친구가 되는 거야.”“저 커플들의 사이 좋은 모습, 이거야말로 이 결혼식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야. 정말 부럽네.”“...”모두의 표정에는 축복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세 커플의 용모와 기질이 더 막상막하여서, 정말 대단한 시각적 향연이었다.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래함과 유채연, 그리고 목현수와 미스 샤넬이 누군지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누군가는 몰래 그들의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기도 했다.아는 사람이 있는지 보려고.갑자기 군중 속에서 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알았어, 드디어 알았어.”흥분한 모습을 보고, 같이 온 사람이 대뜸 물었다.“뭘 알았다는 거야?”“단상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그 사람이 되물었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눈총을 주면서 무례하게 말했다.“지금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겁니까? 저 사람들의 신분을 알았다면, 우리가 쓸데없이 여기서 의논할 필요가 있겠어요?”“왼쪽에 있는 전통 혼레복을 입은 남자는 그래함입니다!” 그 사람의 목소리는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그래함이 누구지?”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북성 사람들이다.그래서 이름을 말해도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은 채 미스 샤넬 쪽을 가리키면서 계속 말했다.“저 분은 샤넬 가문의 큰아가씨예요. 세상에, 내가 살면서 결국 이런 대단한 장면을 볼 수 있다니. 저 사람들은 모두 최상류층 중에서도 가장 대단한 사람들이에요.”그 사람이 반만 말하자, 다른 사람들은 정말 초조해 죽을 지경이었다.모두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검색했고, 곧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