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제4교시, 이제 막 편입한 성연은 원래 모범 학생으로 지낼 생각이었다. 적어도 선생님에게는 너무 나쁜 인상을 주지 않아야 했다.선생님의 수업은 그냥 수면제였다. 어젯밤 강무진의 수면을 돕느라 밤새도록 잠을 설쳤던 성연은 졸음이 쏟아졌다.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잔뜩 힘을 주었으나, 서로 붙으려는 위, 아래 눈꺼풀을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머리가 쿵 하고 한 차례, 또 쿵 하고 한 차례 내려오더니, 결국 사나운 수마를 견디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린 채 잠에 빠졌다.공교롭게도 4교시 수업은 우등반의 담임 선생님, 이윤하였고, 수학 담당이었다.마른 체형에 높게 올라온 광대뼈, 등 뒤로 가지런히 내려온 긴 머리카락. 냉정하고 엄격해 보이는 선생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수업 방면과 학생에 대한 요구가 끔찍할 정도로 엄격했다.북성남고의 별종으로 유명한 이윤하를, 학생들은 모두 ‘독사’라고 불렀다.이윤하는 학습 태도가 나쁜 학생을 가장 싫어했다.그래서 그녀의 수업은 설령 시늉만 내더라도 끝까지 정신을 차리고 수업을 들어야 했다.막 칠판에 문제를 판서한 이윤하가 교실을 한 차례 휘 둘러보았다.모두 허리를 세운 채 앉아있는 가운데, 책상에 엎드린 송성연만 유독 눈에 띄었다.‘감히 내 수업에서 자는 사람이 있어?’이윤하의 표정이 착 가라앉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마지막 줄에서 자는 학생, 일어나서 문제에 답한다.”그 말에 모두 속으로 경탄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렇게 간 큰 사람이 있어? 감히 ‘독사'의 수업 시간에 잠을 자?’‘정말 그 용기가 가상하다!’그런데 잠자는 사람이 송성연인 것을 본 모두는 재미있는 연극을 보는 눈빛이 되었다.송성연은 입학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그야말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개중에는 그녀의 이런 모습을 거슬려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만점 받아도 뭐 잠 못 자는 건 똑같지 않아?]일부 아이들은 고소한 듯 소곤거리며, 이 만점자가 어떻게 ‘독사'의 분노에 대처할 것인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오로지 송성연에게 망신을 주어 더 이상 이 반에 있지 못하게 할 생각뿐이었던 송아연은 선생님의 표정을 살피지 못했다.성연이 아예 못할 거라 생각하고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했다.아연이 조롱하는 투로 말했다.“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마. 인제 선생님도 네가 가르칠 셈이야? 차라리 그냥 네가 나가서 강의하지 그래?”팔짱을 낀 성연이 여유있는 태도로 이윤하를 바라보며 말했다.“맞는지, 아닌지는 네가 선생님께 물어보면 되겠네. 이건 수업 외의 문제야. 고3 기본과정에서는 배울 수 없는, 최소한 대학 과정의 문제야. 내가 잠을 잔 건 확실히 문제들이 너무 간단해서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성연의 말이 떨어지자 교실 안은 온통 떠들썩해졌다.교육 경력 십여 년의 이윤하는 최우수 교사였다.시골에서 전학 온 송성연이 오만방자한 말로 이윤하의 위엄을 도발했다. 또 자신의 분수를 제대로 아는 그런 겸손함이 전혀 없었다.원래부터 시골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반 학우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송성연은 조금도 겸손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고서도 반성할 줄 몰랐다. 성연에 대한 혐오감이 한 층 더 깊어졌다.반 학우들의 반응에 아연은 매우 만족했다.이게 바로 그녀가 원했던 결과였다.이제 송성연이 계속 이 교실에 있게 된다 하더라도 따돌림을 당할 수밖에 없으리라.학생들 앞에서 실력이 드러난 이윤하는 체면이 땅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이윤하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 인정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지켜보는 자신의 수업에서 어떤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결국 도망가는 쪽을 선택한 이윤하는 핑계거리를 찾아 송성연을 교실에서 내쫓았다.“맞든 틀렸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너는 수업시간에 잠을 잠으로서 수업 분위기를 해쳤어. 그러니 그 벌로 복도에 나가 서 있어. 내가 부르기 전에는 들어올 수 없다!”“그리고 또 넌 학습 태도가 단정하지 않아. 내가 네 보호자를 불러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이야기를'이라는 말을 할 때, 이윤하는 일부러 발음에 힘을
방과 후, 이윤하는 성연을 교무실로 불렀다.교편을 잡은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이렇게 자신을 거역하는 학생은 없었던 터라 정말 체면이 서지 않았다.기록해 둔 보호자 연락처를 뒤져 송성연의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무료한 듯 발끝을 쳐다보던 성연은 전화를 건 대상이 송종철인지 임수정인지 알 수 없었다.아마 그들 둘 다 창피하다며 오지 않을 것이다.아무도 안 오는 게 오히려 덜 성가실 터였다.오지 않게 해야 한다. 그때는 또 한바탕 비난과 조롱이 쏟아질 것이다.송종철의 가족은 하나같이 모두 체면을 목숨처럼 여겼다.일의 과정이 어떻고 누가 잘못했고 등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두지 않는 이들이었다.만약 송종철이 정말 온다면 또 소란을 피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오는 성연이었다.통화를 마친 이윤하 또한 성연을 보지 않았다. 일부러 성연을 한쪽에 둔 채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교안을 보는 척했다.만약 지금이라도 성연이 잘못을 인정한다면, 굳이 억지로라도 보호자에게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한참을 기다렸어도 송성연에게서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곁눈질로 쳐다보니, 송성연은 처음 그 자리에 건들거리며 서서는 옆 자리 선생님의 교안에 대해 중얼거리고 있었다.순간 기가 막혀 저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부러뜨릴 뻔했다.‘아, 가르쳐서 될 아이가 아니야!’약 20여 분이 지난 후,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돌아본 성은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송씨 집안에서 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강무진이었다.손건호가 미는 휠체어에 단정히 앉은 강무진이 교무실로 들어왔다.이윤하도 강무진을 보았다.휠체어에 앉았어도 강무진이 내뿜는 기세는 여전했다.마주한 남자는 맑고 준수한 용모를 지녔다. 볼록한 눈썹 뼈 아래 자리한 두 눈동자는 얼음처럼 시리고 아름다웠으며, 얄팍한 입술은 냉기를 품은 듯 다물려 있었다. 온몸에서 발산되는 기운은 단지 저 휠체어에 앉아 있을 뿐임에도 강한 위압감을 주었다. 전신에서 고귀함이 흘러 넘쳤다.이윤하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본분입니다. 그런데 수업 지식이 학생보다 못하다면, 교사로서 자격 미달이 아닙니까?” 강무진이 위엄 서린 표정으로 이윤하 쪽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벌겋게 달아올랐던 이윤하의 얼굴이 금세 또 하얗게 질렸다. 입술을 파르르 떨던 이윤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강무진에게 손가락을 세우며 말까지 더듬었다.“당신…… 당신 어떻게 그런 말을? 교편 생활만 십여 년인 내가 이런 모욕을 용납할 것 같아요? 정말 돈 밖에 없는 졸부 집 아이 아니라 할까, 진짜 수준 떨어져서!”시골에서 온 성연이 당연히 아무런 배경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집안은 분명 돈으로 애를 학교에 들여보낸 졸부야!’‘돈이 있으면 뭐 해. 교양이 하나도 없잖아.’‘시골뜨기는 시골뜨기인 거야. 식견도 없는.’교단에서 인재를 양성한지 십여 년 동안 자신이 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자부하였다. 명문대학에 진학시킨 자신의 제자만 못해도 수 백명이었다.송성연에게 후원자가 없는 이상, 굳이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이윤하는 즉시 큰 소리로 요구했다.“이처럼 형편없는 학생을, 나는 더 이상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즉시 전학을 가든지, 아니면 반을 옮기세요!”말을 끝낸 이윤하는 책상 위의 전화기를 들고 교장실에 연결했다. 그리고 수업 중에 있었던 송성연의 일과 그 보호자의 태도에 대해 과장해서 일렀다.같은 시각.이윤하가 송성연을 호되게 혼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송아연은 교실에 앉아 있었다.‘화가 나 씩씩거리던 이윤하의 모습으로 봐서는 송성연, 그냥 대충 넘어갈 수 없을 걸?’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만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송성연, 송성연, 이번엔 또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두고 보자…….’아연의 뒷자리에 있던 여자 급우가 의자를 옮겨 옆에 앉았다.“에이, 나는 왜 네가 송성연과 아는 것만 같지?”“무슨 말을 그렇게 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으나 아무런 내색없이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모른다면서 왜 나서서 지적했어?”단순한 호기심이 담긴
급히 연락을 받고 온 교장이 교무실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이윤하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일입니까?”자신의 지원자가 왔다고 여긴 이윤하의 말에 힘이 들어갔다.“교장 선생님, 이 학생이 전학 가거나 반을 옮기지 않으면, 저는 더 이상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평소 학교와 관련한 이런저런 뒷공론들을 교장도 심심찮게 들어 알고 있었다.이윤하 선생이 교실에서 매우 엄격하고 때론 지나칠 정도라는 점도.그의 눈에는 이런 행위 또한 학생을 훈육하는 방식 중 하나인 셈이다.성연에게 시선을 돌린 교장은 그녀를 잘 타이를 작정으로 입을 열었다.“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입니다. 이윤하 선생님은 평소 학생들에 대한 요구가 높은 분이에요. 그러니 송성연 학생이 선생님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게 좋겠군요.”몸을 반듯하게 한 성연이 등을 꼿꼿이 세우고 섰다.“교장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수업시간에 잠을 잔 건 분명 잘못된 행동이니, 제가 사과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교장은 성연의 대답에 만족했다. 사실 그렇게 큰 일도 아니었다.학생이 잘못을 시인했으니, 이제 이 일은 해결된 셈이었다.그런데, 잠시 말을 멈추었던 성연이 다시 말했다.“하지만 그 뒤에는 제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제가 입학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고 의심했습니다. 시험은 학교 선생님께서 직접 감독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제 점수를 의심한 건 저를 인격적으로 모독한 겁니다. 선생님이 저한테 사과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진짜…… 선생님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는 없을 테니, 이 일은 서로 상쇄하도록 하겠습니다.”“마지막으로, 저는 선생님의 문제풀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앙심을 품고 저를 쫓아내려 하셨고요.”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 교장은 ‘성연이 고슴도치 같은 학생’이라고 생각했다.눈치 빠른 사람들은 땅에 떨어진 체면을 세울 기회를 이윤하에게 주려 할 터였다.그런데 하필 송성연은 그러기는커녕 아예 외골수 마냥
이윤하는 멍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똑똑하고 상황 파악이 빨랐다.이쯤 되니, 일이 간단치 않음을 즉시 눈치 챘다. ‘교장이 직접 나서서 두둔하게 할 정도라니. 송성연, 대체 뭐야? 시골에서 왔다면서? 시골에 저런 배경이 있다고? 그리고 저 남자는…….’“뭐하고 있습니까? 정말 안 할 생각입니까?” 교장이 매섭게 다그쳤다.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계속된 교장의 재촉에 할 수 없이 이윤하는 고개를 숙이고 성연에게 사과했다.“송성연 학생, 미안해요. 학생이 오류를 지적했을 때 바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야.”이윤하는 그런대로 성실한 태도로 사과해 왔다.성연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작은 일을 계속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북성남고를 다녀야 하는데, 너무 척을 지는 것도 좋지 않을 터.모든 면을 고려한 성연이 이윤하의 사과를 받아들였다.“괜찮아요.”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교장은 강무진 앞으로 다가갔다. 이어 허리를 굽힌 채 공손한 어조로 무진의 의사를 물었다.“이번 일, 이렇게 처리해도 되겠습니까?”무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앞으로는 학교 기강을 잘 잡길 바랍니다. 어떤 불미스러운 일도 제 귀에 들어오지 않게 하세요.”일이 마무리되자 지체없이 손건호가 강무진의 휠체어를 밀고 나갔고, 성연이 그 뒤를 이어 교무실을 떠났다.교무실 안.마음속에 이는 초조함을 이기지 못한 이윤하가 즉시 교장의 뒤를 쫓아가 캐물었다.“교장 선생님, 저 사람 뭐에요?”교장이 언짢은 투로 말했다.“저 사람이 누구이건, 꼭 기억하세요. 저 사람만큼은 당신이나 나나 절대 거슬러서는 안됩니다. 다시는 문제 일으키지 않도록 눈 똑바로 뜨고 주의하세요. 이 선생의 우둔함으로 나까지 결부되는 일 없도록요. 안 그러면 우리 모두 끝장입니다!”얼굴이 창백해진 이윤하는 뭔가 말하려 입을 달싹거렸으나 결국 입을 다문 채 조용히 한 옆에 섰다.교장 선생님도 조심해야 할 정도의 인물인데, 그녀 같은 일개 교사야 말할 것도 없겠지.교무실
교실로 향하는 성연을 눈으로 배웅하던 손건호는 계속 감탄 중이었다. ‘우리 보스, 어린 부인에게 너무 관대한 거 아니야?’‘보스를 모신 이래, 이 같은 일은 처음이야. 그런데 이렇게 하는데도 응석받이가 되지 않는다고?’어쨌든 수하로서 그가 뭐라고 하긴 힘든 부분이었다.‘보스는 항상 정도를 지키시는 분이니, 부하의 본분을 지키며 명령만 잘 수행하면 되는 거지, 뭐.’성연이 교실로 돌아오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당연히 재미난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모두들 고소하게 생각하며 기다렸다. ‘이제 송성연이 짐을 싸야 하겠지?’얼굴에 다 드러나 있는 표정들을 보고 있자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저들 마음대로 떠들어대더니 성연이 지나가자 자동으로 시선이 따라왔다. ‘참 할 일도 없는 모양이군.’무표정한 얼굴로 제 자리에 가서 앉은 성연은 책상 위에 엎드려 계속 잠을 잤다.‘이윤하에게 걸렸던 송성연이 ‘살아’ 돌아왔을 뿐 아니라, 무사태평한 모습으로 교실에서 잠을 자?’어떻게 된 상황인 전혀 모르는 채 다들 놀라며 궁금해했다.일명 정보통인 아이가 이 반, 저 반으로 쫓아다니며 정보를 캐기 위해 나섰다.‘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좀 알아 봐야지.’곧 한 바퀴 돌며 탐문을 마친 후, 귀중한 정보를 안고 돌아왔다.가까운 친구들이 금세 에워쌌다.“알아봤어? 어떻게 된 거래?”“설마 송성연, 쟤 일부러 안 가고 여기에 눌러 붙어있는 건 아니겠지? 그럼 정말 뻔뻔한 거 아니야?”“성적도 위조할 수 있는데 못할 게 뭐가 있어?”모두 성연에 대한 경멸로 가득 찬 말들뿐이다.“그만, 거기까지! 송성연, 배경이 장난 아니야. 밉보이지 않게 조심해!”정보를 물고 온 아이가 친구의 손을 잡고 한쪽으로 끌고 갔다. 조심스럽게 성연 쪽을 한 번 쳐다본 뒤, 속삭였다.“송성연,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라고 하지 않았어? 무슨 배경이 있다고?” 농담이라고 생각한 친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야, 그만 애태우고 알아본 거나 말해 봐. 뭐래?” 참
낮에 있었던 일로 해서, 송성연이 뒤에서 잠을 자도 감히 건드릴 사람이 없었다.송성연이 공부를 잘하는지, 만점이란 성적이 진짜인지 등에 대해, 다들 의심의 눈초리를 아직 거두지 못한 상태였다.‘북성남고에서 위세를 떨치던 ‘독사’마저 도도한 머리를 숙이고 사과 했다니, 얼마나 대단한 배경을 가진 거야?’‘그 정도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 만점은 물론 학위를 산다고 해도 되겠다.’온 사방에서 의론 분분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아침부터 오후까지 질리지도 않는지, 하루 종일 성연에 관한 말들만 떠들어댔다. 성연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있었지만 해명하기도 귀찮았다.‘믿거나 말거나. 능력이 있다 한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겁날까? 가소로워서!’‘시간이 다 증명해 줄 터.’저녁, 방과 후.강씨 집안의 차가 이미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수업시간 중에 운전기사가 찍어 보낸 위치를 이미 전송받았다.시간을 낭비할 필요없이 바로 후문을 통해 골목으로 간 성연은 강씨 집안의 차를 찾았다.습관적으로 뒷좌석의 문을 열고 차에 탄 후에야 안쪽에 이미 사람이 있음을 알아차렸다.성연은 좀 뜻밖이라는 듯 무진을 쳐다보았다.‘이 사람도 타고 있을 줄은 몰랐어.’그는 블랙 슈트 차림이었다. 칼라 부분에 들어간 섬세한 짙은 색 문양으로 포인트를 준 것 외에 온통 블랙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혀 수수해 보이지 않았다. 이 점이 오히려 은근히 더 고급스러워 보이게 했다.오전과는 달리 격식을 차린 진중한 모습에서 범접하기 힘든 기운이 물씬 풍겼다.이때 눈을 감고 쉬고 있던 무진이 인기척에 눈을 뜨고 성연을 바라보았다.차에 오른 성연에게 무진이 자료 한 부를 건넸다.“눈에 익혀 둬. 모두 오늘 저녁 모임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이야.”긴장할 성연을 생각해서 무진이 자료를 준비했다. 얼굴, 이름 등을 미리 익혀 두면 나중에 곤란하지 않을 것이다.자료를 건네받은 성연은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이 기회에 강씨 집안이 사람들을 알아 둔다면, ‘스카이 아이 시스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
“누가 물에 빠졌어요.”“빨리 와요, 사람 살려요.”“빨리 여기 구조대에게 연락해서 빨리 사람을 구하러 오게 해.”주위에서는 모두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성연은 물에 빠지는 순간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다행히 호수의 물이 깊어서 바닥에 부딪치지는 않았다.그러나 갑자기 물살에 충격을 받자 현기증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아래의 물살이 좀 급해서 물살에 말려들자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성연은 수영을 할 줄 알지만 손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짙은 무력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성연의 몸은 천천히 계속해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이럴 수가, 누구 수영을 할 줄 알아요? 빨리 내려가서 사람을 구해주세요.” 구조된 소년의 어머니도 옆에서 소리쳤다.자신의 과실로 인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당에,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비록 자기 자식이 사고를 당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몹시 조급해진 목현수는 몇 번이나 아래로 바로 뛰어내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게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주위의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갔지만, 구조대는 한참이나 오지 않고 있었다.“이걸 어떡하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아니면 구급차를 불러서 구해달라고 해.”“여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CCTV도 있지 않아? 왜 이렇게 사고가 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을 해대고 있었지만, 직접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었다. 성연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물에 뛰어들 용기는 부족했다.자기 자식이 잘못된 걸 본다면 뛰어들었겠지만 말이다.옆에서 잠시 지켜보던 미스 샤넬이 주저함 없이 바로 물에 뛰어들려고 했다.그러나 옆에 있던 목현수가 눈치 빠르게 붙잡았다.“샤넬, 뭘 하려는 거야?”성연 한 명이 빠진 걸로 이미 충분히 애
성연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데리고 온 관광지는 교외에 있었다.산과 물을 끼고 곳곳에 푸른 풀이 깔려 있어서 생동감이 넘쳤다.그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관광지에는 또 전문적으로 설계된 정자와 누각이 있었다. 넓은 숲의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어서 또 그 속으로 소풍을 갈 수도 있다.미스 샤넬이 앞으로 걸어가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이곳의 공기는 정말 좋네요.”“맞아요, 내가 오기 전에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순수하고 천연적이라고 했어요. 원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은 채 약간만 손을 댔을 뿐이니, 진정한 원래의 생태 관광지인 셈이죠.”성연은 설명할 때, 미스 샤넬이 일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미스 샤넬은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쳤다.“성연 씨, 아는 게 정말 많네요.”“아니에요, 이런 관광지는 우리 A국에 아주 흔해서 조금만 이해하면 알 수 있어요. 유럽 각지에 정통한 미스 샤넬을 난 따라가지도 못하는 걸요.”각기 장점이 있다. 성연은 북성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서 기본적인 상식을 좀 알고 있는 것이지, 칭찬할 건 아니다.“성연 씨가 그렇게 전면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요. 가요,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샤넬 양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성연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미스 샤넬의 뒤를 따라가면서 목현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목현수는 성연이 자신을 계속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됐어, 성연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나도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샤넬 양과의 관계는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해.’그들은 다리 위로 걸어갔다. 아래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였다.미스 샤넬이 포즈를 취하고 성연이 사진을 찍었다.성연은 여러 장면을 잘 포착해서 찍었다.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미스 샤넬이 달려왔다. “어떤 지 내가 한번 볼게요.”성연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미스 샤넬은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감탄했다.“성연 씨, 사진 촬영 기술이
눈썰미가 좋은 미스 샤넬은 불쑥 걸음을 멈추었다.같이 손을 잡고 가던 성연도 덩달아 멈춰 서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목현수가 물었다. “왜 그래?”미스 샤넬이 사실대로 말했다.“아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지?”안진검은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미스 샤넬을 보았다.미스 샤넬이 자신을 알아봤음을 눈치 챈 안진검은 서둘러 선글라스를 끼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계속 걸음을 빨리해서 걸었지만 그래도 좀 낭패스러웠다.속으로는 정말 놀랐다.샤넬 가문의 장녀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빌어먹을?’‘그녀가 나를 말했을 지도 몰라.’‘미스 샤넬이 정말 내 이름을 말한다면, 내 신분 배경이 드러나면서 전체 계획에 차질을 줄지도 몰라.’안진검은 마음이 초조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앞으로 계속 동정을 살피면서 들켰는지 어떤지 지켜보는 수밖에.’‘만약 진짜 내 신분이 드러난다면, 계획을 다시 세우는 수밖에 없어.’간신히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안진검은 정말 달갑지 않았다. ‘계획이 이렇게 틀어지다니!’어렴풋이 이상하다고 느낀 성연도 바로 물었다.“누군데요?”미스 샤넬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잘못 본 거겠죠. 닮은 사람은 많으니까요”‘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 사람이 이곳 북성에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목현수가 옆에서 바로 말했다.“잘못 본 게 분명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맞아요, 나는 여전히 성연 씨가 나를 데리고 놀러 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스 샤넬은 다시 성연의 손을 잡았다.그들이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손건호가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을 관광지로 데려다 주는 일을 맡았기 때문.무진에 대해서는 목현수도 자료를 좀 조사한 적이 있었다.손건호가 무진의 오른팔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이번에 손건호가 성연을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모양이군.’그러나 강무진이 직접 자신을 예의 감시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 대해 마음을 놓았음을 의미했다.목
이튿날 출근하던 무진은 푹 안심한 마음으로 성연에게 목현수를 방문하라고 했다.미스 샤넬이 있는 목현수가 자신의 여자에게 다른 시도를 할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성연은 차를 몰고 호텔로 가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찾았다.하루 종일 집에서 심심했던 그녀는 목현수와 미스 샤넬이 북성에 오자 마침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똑똑똑.” 성연이 객실 문을 두드렸다.한참 기다렸지만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성연은 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핸드폰을 꺼내 목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목현수가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다시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야 목현수가 전화를 받았다.성연이 즉시 말했다.“사형, 미스 샤넬하고 어디 나갔어요?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거예요? 나는 바로 룸 앞에 와 있는데.”“방 앞에 있다고?” 그제야 잠에서 깬 목현수는 정신이 좀 드는 듯했다.2분가량 지나서 핸드폰 건너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 기다려, 내가 바로 문을 열어 줄게.”전화를 끊으려고 했을 때 문이 열리고, 성연이 목현수의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미스 샤넬은?”“아직 일어나지 않았어...”목현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성연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 어제 유럽에서 왔으니, 시차 때문에 피곤한 건 아주 정상이죠 뭐.”목현수가 곧장 침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성연은 소파에서 기다렸다.10분 뒤에 미스 샤넬이 졸린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성연을 보자 눈을 살짝 떴다.“성연 씨, 왔네요.”성연은 미스 샤넬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내가 오늘 두 사람을 데리고 관광을 나갈 생각이에요.”“곧 나올게요.” 다시 방에 들어간 미스 샤넬은 화장을 마치고 나왔다.그런데 미스 샤넬의 옷 사이로 옅은 붉은 색 흔적들이 성연의 눈에 들어왔다.경험한 적이 없지만 본 건 있는 성연.그 흔적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사형과 미스
로얄 스위트 룸의 인테리어는 무척이나 우아하고 호화로움을 자랑했다. 룸 내부 구석구석마다 화려함의 극치였다.스위트 룸에 들어서자 마자 은은한 향이 났다.“나 먼저 샤워하러 갈게요. 여기서 기다려요.” 묙현수의 볼에 키스를 한 미스 샤넬은 목현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목현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30분 후.찰칵, 소리가 났다.욕실 문이 열리면서 미스 샤넬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무심코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던 목현수.눈앞의 장면에 몸이 뻣뻣이 굳었다.물빛 실크 가운을 걸친 미스 샤넬의 허리에는 얇은 띠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실크 가운 사이로 풍만한 가슴 계곡과 희고 긴 다리가 보일 듯 말 듯했다.그녀가 천천히 목현수를 향해 걸어오자, 가운 안의 나신이 슬쩍 드러났다.목현수의 머리가 띵해 오기 시작했다.한 호텔 룸 안에서 내보이고 있는 샤넬의 모습이 무엇을 말하는지 건강한 성인 남자인 목현수가 모를 리가 없었다.미스 샤넬은 목현수에게 다가가면서 그의 반응을 살폈다.하지만 보면 볼수록 실망감만 들었다.자신의 몸까지 드러내며 이렇게 다가가는데도 자신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 목현수.점점 서운한 마음이 커지는 미스 샤넬.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목이 멘 음성으로 물었다.“현수 씨, 당신은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목현수도 미스 샤넬이 눈물을 흘릴 줄은 몰랐다.미스 샤넬은 항상 씩씩하고 쾌활한 사람이어서 우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런 그녀가 말릴 새도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자 목현수 자신도 깜짝 놀랐다당황한 목현수가 손사래를 쳤다.“아니야, 그냥 내가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 몰랐을 뿐이야.”미스 샤넬이 화가 나서 말했다.“당신, 평생 이 여자 저 여자 유혹하려는 거죠!”그녀의 눈에 원망과 질책의 빛이 들어찼다. 또한 짙은 실망감도.목현수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바
성연은 수시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음식을 먹으면서 성연이 농담처럼 물었다.“사형, 사형은 미스 샤넬과 언제 결혼할 거예요? 이번에 돌아왔으니 부모님을 만나 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예쁜 미인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사형을 따라다니는 걸 모른 척할 수 있어요?”성연은 그저 슬쩍 물어보았을 뿐이다.지난번에도 물어봤지만 매번 이 문제를 회피하는 목현수였기에.“곧 할 거야. 다음 달 즈음에 돌아가서 결혼할 거야.”그런데 목현수가 이렇게 대답할 줄은 정말 몰랐던 성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무진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옆에서 목현수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두 달이면 목현수가 유부남이 된다는 말이지?’‘엄밀히 말해 지금 미스 샤넬은 목현수의 약혼녀.’‘이제는 목현수도 더 이상 성연이에게 매달릴 수 없다는 거지.’무진은 이제야 정말 위기감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그도 옆에서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그럼 이게 신혼여행인가요?” 그 말을 들은 목현수가 눈을 치켜 떴다.‘하, 내가 강무진 네 놈의 얄팍한 생각을 모르는 줄 알아?’‘성연이를 내가 뺏을까 봐 겁이 났던 거 아니야?’‘이제 내가 결혼한다고 하니 강무진의 태도가 완전히 변했어.’“그런 셈이지요.” 목현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무진은 찻잔을 들어올려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척하며 자꾸만 벌어지는 입을 슬쩍 가렸다.주문했던 음식들을 다 먹자, 디저트가 나왔다.이 음식점의 주요 메뉴 중 하나가 바로 A국 특유의 디저트였다.미스 샤넬은 방금 먹은 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놀랄 만큼 맛있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디저트로 나온 이 케익들.동물을 본떠 동그랗게 만든 모양이 무척 사랑스러웠다.미스 샤넬은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포크를 들었다.“이 케익들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뭐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요.”성연이 손을 흔들었다.“모두 먹는 것들이에요. 미스 샤넬. 많은 생각하지
“너네 A국의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진작부터 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현수 씨한테 데리고 가달라고 졸랐죠. 첫 번 째로 성연 씨를 보러 온 거예요.” 미스 샤넬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어떤 의미에서는, 목현수가 자신을 A국으로 데려온 것 자체가 자신을 인정한 거라고 생각하는 미스 샤넬.미스 샤넬이 따라온 걸 본 무진은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성연의 허리에 감겨 있던 팔이 아무 내색 없이 슬그머니 풀렸다.미스 샤넬과 성연이 다정한 모습으로 앞장서 걸었다.목현수와 무진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서로를 싫어하는 두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입을 열지 않았다.공항 밖을 나온 사람들은 모두 무진이 준비한 차량에 탑승했다.무진은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아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음식점으로 데려갔다.북성에서 아주 유명한 음식점인 이 곳은 언제나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하지만 이곳의 VIP고객인 무진은 얼굴을 보이자마자 곧바로 특실을 준비해 주었다.음식점의 총지배인이 직접 메뉴판을 가져와서 무진 일행의 주문을 받았다.살짝 허리를 숙인 채 아주 정중한 자세로 지배인이 말했다.“강 대표님, 최근 저희가 아주 참신한 신 메뉴 하나를 선보였는데, 평이 아주 좋습니다. 한번 맛보시겠습니까?”“이곳의 특선 메뉴들을 하나씩 내오세요.” 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지배인이 만면에 희색을 띠면서 말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가서 준비하겠습니다.”특실 안에는 성연과 무진이 나란히 앉고, 그 맞은편에 샤넬과 목현수가 나란히 앉았다.북성이 처음이라 연신 두리번거리던 미스 샤넬은 흥분한 음성으로 말했다.“이게 바로 A국 스타일? 정말 예뻐요. 유럽과는 정말 다르군요.”“미스 샤넬, 여기가 마음에 들면 자주 오세요.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해요. 특히 미스 샤넬 같이 아름다운 외국 여성에게는 더요.” 성연이 미스 샤넬에게 차를 한 잔 따라 주며 놀리듯이 말했다.성연의 칭찬에 미스 샤넬은 좀 쑥스러운 표정을
“정말요?”“비행기 시간을 알려주면, 제가 그 시간에 마중 나갈게요.”전화를 받다가 의자에서 일어선 성연의 음성에 기쁨이 철철 넘쳐 흘렀다.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무진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폰 건너편 음성이 남자 같은데...’무진이 무의식 중에 한마디를 꺼냈다.“누구?”성연이 재빨리 대답했다.“사형인데 벌서 북성으로 오는 중이라고 하네요. 나보고 마중나와 달라는데, 무진 씨도 같이 갈래요?”마음이 좀 불편해진 무진이 미간을 찡그렸다.‘그 자식은 왜 또 튀어나오는 거야? 사형이면 사형답게 행동해아지. 왜 자꾸 성연에게 들러붙는 거야?’성연이 혼자 목현수를 마중 나간다면 당연히 마음이 놓이지 않을 터.잠시 고민하던 무진이 이내 대답했다.“음, 내가 같이 가지.”“무진 씨 일은 안 바빠요? 바쁘면 나 혼자 가도 돼요.”그냥 공항으로 사람을 마중하러 가는 것이니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성연은 생각했다.무진이 바쁜 시간을 짜내 가면서 자신과 함께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괜찮아, 내가 같이 갈게.” 무진이 노트북을 닫았다.고개를 끄덕인 성연이 따라 일어섰다.“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우리가 공항에 도착하면 딱 맞을 거예요. 가요.”무진이 성연의 뒤를 따랐다.잠시 후, 북성의 공항.비행기 도착 시간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한 성현과 무진. 목현수가 탑승한 비행기는 아직 착륙하기 전이었다.두 사람은 함께 대합실에서 목현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목말라?” 무진이 물었다.“괜찮아요.” 성연이 고개를 저었다. 무진이 움직이는 순간, 성연은 그가 물을 사러 간다는 것을 알았다.성연이 무진의 팔을 잡아당겼다.“귀찮게 갈 필요 없어요.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사형이 곧 도착할 거예요.”무진이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그래.”핸드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하던 성연이 투덜거렸다“나올 때가 됐는데...”성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국 게이트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다시 고개를 숙여 시간을 확인하니 바로 목현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