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아무리 강씨 집안에서 이 남세스러운 일을 단단히 숨기려 한다고 해도 말이다.그러나 결국 누군가의 입을 통해 폭로된 소식은, 지금 북성 온 도시를 뜨겁게 달구었다.이제 둘째, 셋째 일가는 끝난 것 아니냐고 다들 짐작 중인데, 계속해서 몇몇 사람들을 꼽으면서.이러다 둘째, 셋째 사람 모두 찍혀 나가고 없을 것이다.기분이 좋지 않아 바에서 술을 마시던 송아연은 옆자리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떠드는 말을 들었다.아이를 뗀 후, 송아연은 강진성 같은 상류층 남자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비록 인품은 별로였지만, 강진성은 돈이 많았다.지금 송아연에게 제일 부족한 게 돈인데 말이다.북성에서 가장 좋은 선택은 당연히 강진성이었다.그러나 지금 강진성은 송아연의 모든 연락을 차단 중이었다.심지어 가차없이 다른 번호로 강진성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었다.전화를 받았던 강진성은 송아연의 음성을 듣자마자 바로 끊어버렸다. 송아연은 계속 강씨 집안과의 연결을 원했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속으로도 어쩔 수가 없었다.그러던 차에 이 소식을 듣게 된 송아연은 지금 강진성의 기분이 좋지 않으리라 짐작했다.‘이럴 때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 주면 강진성은 틀림없이 자신을 다르게 볼 테지.’그러나 강진성에게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 무척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저녁이 되자, 뻔뻔스럽지만 송아연은 예전에 알던 지인에게 연락해 연락처를 받았다.결국 과거의 지인은 달갑지 않았지만 강진성의 일정을 송아연에게 알려 주었다.강진성이 한 고급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정보를 손에 넣은 송아연은 자신의 모습을 한 차례 정돈하고는 부리나케 달려갔다.강진성이 있다는 룸을 찾은 송아연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아니나 다를까,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강진성이 보였다.“진성 씨…….”송아연은 가장 부드러운 음성으로 강진성의 이름을 속삭였다.지금 마구 짜증이 나고 있던 강진성은 송아연을 보자 혐오감이 확 들었다.“너 왜 또 왔어!”강진성의 눈빛을
송아연은 숨김 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말해 주었다.강진성의 귓가에 대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송성연은 제왕그룹 회장 곽연철과 사적으로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어요. 얕은 관계는 아닌 것 같으니, 사진 좀 찍고 증거를 조작한다면 강무진이 반드시 송성연을 의심하게 될 거예요.”마음이 어지러워진 강무진은 일 처리가 그리 깔끔하지 못할 테고, 이 점으로 둘째, 셋째 일가 쪽은 숨돌릴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그리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면, 무진과 안금여에게 아주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강무진과 안금여를 괴롭힐 수만 있어도 행복할 것이다.하지만 강진성은 이제 송아연을 쉽게 믿지 못했다.애초에 약속하고서도, 나중에 가서 말을 뒤집지 않았던가?송아연이 말한 게 사실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강진성이 의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네가 한 말, 사실이야?”“물론 사실이죠. 내 목숨을 걸고 장담해요. 제 말엔 한 치의 거짓도 없어요.” 송아연이 한 손을 들어올린 채 강진성에게 맹세하듯이 장담했다.가까스로 얻은 이 기회를 다시 잃을 수 없었다.“그럼 됐어, 이 일은 네게 맡기지.” 강진성이 나른한 모습으로 말했다.강진성이 한 그 말은 송아연을 테스트하는 방책이었다.만약 송아연이 거짓말을 했다면, 증거라고는 하나도 내놓지 못할 게 분명했다.만약 사실을 말했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자신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없을 것이다.송아연을 이용해 강무진과 안금여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가치 있는 일.“진성 씨는 안심하고 저한테 맡겨 줘요. 제가 이 일을 아주 깔끔하게 처리할게요.”송아연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이 일을 승낙했다.강진성이 지금 자신의 태도를 떠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송아연도 잘 알고 있다.송아연도 강진성이라는 대어를 다시 낚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게다가 자신이 말한 내용은 사실 그 자체인데다 수행 난이도도 높지 않은 편이다.“네가 이렇게 똑똑하다는 걸 몰랐는 걸.” 강진성은
애초에 자신을 납치하다시피 해서 강제 낙태수술을 시킨 사람은 강진성의 할아버지 강상규였지만 자신이 당한 모든 일의 주범이 송성연이라고 생각하자, 송아연은 원통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만약 당시 송성연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강상규도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송아연은 자신이 받은 고통을 송성연도 맛보게 하고 싶었다.다시 강진성을 통해 강씨 집안을 등에 업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지만, 송성연을 처리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일거양득일 터.송성연의 신세를 망칠 수만 있다면 당연히 가장 좋을 것이다.“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이쪽에서 너한테 사람을 붙여줄 테니,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거 명심해.”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던 강진성은 나가기 전에 손바닥으로 송아연의 얼굴을 가볍게 톡톡 쳤다. 마치 애완동물을 희롱하는 듯한 동작으로.그러나 송아연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강진성의 동작은 오히려 자신이 그의 주의를 끌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적어도 내 의견을 받아들였다는 게 중요하잖아?’송아연은 창피함 같은 건 절대 느끼지 않았다.강씨 집안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그동안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들 모두 자신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될 터.그러니 잠시 동안의 화를 참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앞으로의 희망이 생겼다. 아직은 그들이 무릎 꿇고 자신에게 용서를 빌 때가 아니다.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송성연을 끌어내리고 말 것이다.그 자리는 원래 송성연의 것이어서는 안되었다.강무진 같은 사람은 자신의 약혼녀가 다른 남자랑 엮여 입에 오르내리는 걸 참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이제 송성연이 사람들에게 죽도록 욕 먹을 날만 기다리면 된다.지난 번 송성연 어찌나 의기양양해 보이던지, 정말 꼴 보기 싫었다.제왕그룹과 WS그룹 간의 합작 사업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중이었다.곽연철과 강무진, 두 사람 모두 시원시원한 성격이라, 이견이 있으면 바로 얘기해서 수정할 건 하면서 아주 잘 융합하고 있었다.얼마전, 수색 작업 수행으로 무인도에
며칠 후, 안금여와 강운경을 보러 왔다며 강진성이 강씨 고택에 나타났다.강진성이 방문했다는 집사의 보고를 들었을 때, 안금여는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강진성이 자신을 보러 와?’‘해가 서쪽에서 뜨기라도 했나?’속으로 의심이 가득 드는 안금여였다.강운경 또한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강진성이 도대체 뭐 때문에 여길 와? 설마 누가 걔한테 시켰나?”“됐다, 오고 싶으면 오는 거지.” 안금여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어차피 온 사람을 문전 박대할 수는 없는 노릇.그리고 여긴 강씨 집안 고택이다. 강진성이 온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오히려 무슨 평지풍파를 일으키려 강진성이 온 건지 궁금했다. “들어오라고 해요.” 강운경 역시 엄마 안금여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만약 교활하기 짝이 없는 둘째, 셋째 숙부 강상철, 강상규가 온다면 좀 더 경계해야겠지만, 잔꾀 부릴 줄만 아는 강진성은 할아버지 강상철에 훨씬 못 미쳤다.어릴 때부터 자라는 모습을 보아온 안금여인데, 그 녀석 머릿속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안금여의 눈빛을 확인한 집사가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에 나가서 문을 열었다.고택의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진성은 이미 짜증이 날대로 나 있었다.본가의 위세가 높아지니 과연 사람을 대하는 것부터 달라졌다 싶다.문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허세를 부려야 했다.집사가 대문을 열어 주러 나왔을 때, 미소로 얼굴 표정을 바꾼 강진성은 꽤나 점잖은 듯이 보였다.누가 보더라도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모습이다.정원과 현관을 지나 거실로 걸어간 강진성이 들고 온 선물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큰할머니님, 고모님, 사고로 많이 놀라셨지요? 두 분 원기 회복하시라고 제가 특별히 골라서 가져왔습니다.”강진성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은 아주 부드러웠고, 그 태도도 아주 진지해 보였다.그러나 둘째, 셋째 일가의 진면목을 진작부터 알고 있던 안금여와 강운경은 그런 겉모습에 속지
강진성이 떠난 후에 성연은 그가 준 건강 식품을 주방으로 가져갔다.어떤 것들이 들어 있는지 살펴볼 생각이었다.할머니 안금여와 고모 강운경을 해치지만 않아도 다행인 강진성이 설마 좋은 마음으로 이것들을 가지고 왔을까? 한 마디로 족제비가 닭에게 세배를 한다고 해서 좋은 마음으로 했다고 믿을 수 있을까?성연이 선물 상자를 열어 보니 상등품의 인삼이 들어 있었다.정말 건강 식품이라면 확실히 보양식이다.의술인으로서 누구보다 이런 건강 약재 냄새에 익숙한 성연이다.상자 안의 인삼 냄새를 맡아본 성연은 인삼 외에 다른 것은 섞이지 않았음을 확인했다.‘설마 강진성을 오해한 건가?’‘아니면, 지금 둘째, 셋째 일가가 안되겠다 싶으니 호의를 표하러 온 건가?’성연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생각만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실천을 해야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법이다.성연은 인삼과 다른 약재를 혼합하여 탕을 끓였다.두 시간을 푹 끓이니, 법랑 재질의 냄비에서 약재 특유의 향이 물씬 났다.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강진성이라는 사람을 믿을 수는 없었다.그래서 안전을 위해 성연이 먼저 한 입 맛보았다.맛을 보니 괜찮은 것 같았다.한 입 더 맛보던 성연은 순간적으로 쥐어짜는 듯한 위통을 느꼈다.성연의 얼굴이 한순간 창백해지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땡그랑.” 숟가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금속성의 소리를 듣고 집사가 쫓아왔다. 얼굴을 찡그린 채 팔로 배를 붙잡고 있는 성연을 보고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작은 사모님, 왜 그러십니까? 괜찮으세요?”지금으로서는 강진성이 인삼 안에 넣은 게 무엇인지 알기는 힘들었다. 성분을 하나하나 검사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이런 상태로는 제대로 검사하기 힘들게 분명했다.게다가 약은 함부로 먹는 게 아니다. 무릇 약에는 일정한 독성과 부작용이 있다고 봐야 했다. 때때로 어떤 약들은 서로 섞이면서 맹독이 되기도 한다.어떤 성분이 들었는지 잘 모르는
성연이 응급차로 병원에 들어가는 장면도 미행하던 강진성의 수하에 의해 모두 찍혔다. 거의 사진 한 장 찍을 때마다 위치를 바꾸며 아주 은밀하게 촬영하는 솜씨를 보니, 이런 도촬 일을 한 지 오래된 전문가가 분명했다.하지만 성연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수액을 맞고 약을 처방받은 후에 성연은 집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별일 아니었는지 지금은 성연의 안색이 많이 좋아진 상태였다.성연은 스스로 자신의 맥을 짚어 보았다. 역시 병원과 같은 결과, 음식을 잘못 먹었을 뿐이다.성연 역시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다행히 강진성이 들고 온 인삼을 할머니가 먹은 게 아니어서.할머니 같은 노약자가 먹고 조금 전 자신 같은 복통을 앓았다면 아마 생명이 위독했을지도 모른다.강진성을 생각하던 성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음을 고쳐먹은 게 아닐까 생각하다니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막 집에 돌아온 성연은 대문 앞에서 마침 퇴근하고 오던 무진과 맞닥트렸다.성연을 보자 무진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오직 성연 한 사람만 담은 듯한 눈으로 성연을 그윽하니 바라보았다.성연도 무진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무진 씨, 퇴근했군요.”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아래로 옮기던 무진은 성연의 손에 의료용 테이프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어두워진 안색으로 무진이 성연의 손을 들어올리며 물었다.“이거 어떻게 된 거야?”잡힌 손을 얼른 내린 성연이 반대쪽 손으로 집안으로 무진을 잡아 끌었다.“들어가서 설명할게요.”성연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테이프가 눈에 거슬린 무진은 팽팽하니 입술을 꽉 다물었다.방금 침을 맞은 탓에 테이프 위로 피가 약간 배어 나와 있었다.거실로 들어와 소파에 앉은 후, 강진성이 선물이라고 인삼이 든 상자를 가져온 일을 얘기했다.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린 성연은 이제서야 겁이 나기 시작했다.“다행히 내가 먹었기에 망정이지, 할머니와 고모가 드시기라도 했다면…….”성연의 설명을 듣던 무진의 표정이 바로 차갑게 바뀌었다.“강진성이 감히 이런 짓을
강진성이 벌인 짓의 결과는 그리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던 데다가 또 몰랐다는 듯 사과하는 강진성의 태도에 무진도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무진은 강진성에게 경고 몇 마디 하고는 놓아주었다.다음날, 강진성은 송아연을 데리고 안금여를 방문하러 고택으로 향했다. 과일과 생화 바구니도 손에 든 채.이번이 두 번째 고택 방문이었지만, 고택의 호화로움에 아연은 다시 한 번 놀랐다.그러나 탐욕스러운 표정을 얼른 거둔 채 조심스럽게 강진성의 등 뒤에 숨었다.안금여를 마주한 송아연은 바로 얼굴에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회장님, 얼마 전에 사고로 많이 놀라셨다고 듣고 걱정이 되어 방문했습니다.”안금여는 곁눈길로 송아연을 한 번 슬쩍 훑었다.예전, 이 두 사람의 일로 북성이 떠들썩했었다.그 뒤로 서로 왕래하지 않는 모양세를 보이더니, 어떻게 지금은 또 이렇게 같이 있는 건지.속이 시커먼 저 두 사람이 함께 해서 좋을 일은 없었다.안금여는 송아연을 배려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음, 하며 성의 없이 받아 준 뒤에 바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안금여는 송아연에 대한 인상이 아주 안 좋았다. 어린 나이에도 자중할 줄 모르더니 결국 나중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 역시 자업자득 아니겠는가.안금여는 송아연에 대해 동정의 마음이 조급도 들지 않았다.안금여가 이렇게 대할 줄은 모르고 냅다 방문했던 송아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저도 모르게 강진성을 쳐다보았지만, 강진성 역시 송아연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애초에 강진성이 따라오지 말라고 했음에도 안금여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에 송아연 스스로 따라온 것이다.하여 강진성은 지금의 결과는 모두 송아연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지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강진성 역시 자신을 내 몰라라 하자 송아연은 절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어색한 분위기를 느낀 송아연이 선물 바구니를 테이블 한 쪽에 올리며 말했다.“회장님,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제 마음대로 과일을 좀 사 왔습니다.”송아연이 직접 하나하나 골
무진이 대표실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손건호가 들어와서 편지 한 통을 건넸다.“보스, 누가 익명의 편지를 보스의 차량 와이퍼에 끼워 놓고 갔습니다. 편지에 ‘대표님 친전’이라고 쓰여 있고요. 편지는 제가 이미 한 차례 스캔해 보았는데, 별다른 위험한 사항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편지입니다.”손건호가 차분한 음성으로 설명했다.무진이 편지를 받아 봉투 앞면을 보니 역시 ‘강무진 친전’이라고 적혀 있었다. 글자는 인쇄되어 있어서 누가 보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편지를 보낸 이가 상당히 신중한 성격 같다.무진이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린 채 봉투를 뜯었다.안에는 다른 시간 대에 찍힌 7~8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모두 성연과 곽연철이 만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사진 자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사진 속의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다지 친밀한 동작을 드러내고 있지도 않았다.무진은 이 사진들을 자신에게 보낸 이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편지를 보낸 이는 이 사진 때문에 사이가 벌어질 만큼 자신과 성연 사이의 감정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게다가 이전부터 성연과 곽연철이 알고 있었다면 만나는 게 별로 이상할 것도 없을 텐데.오히려 이 사진을 보낸 이의 속셈이 무엇인지 도시 알 수가 없다.이 사람은 이간계를 쓰려는 게 분명했다. 자신과 성연을 이간질하고 두 사라의 감정에 영향을 주려는 목적으로.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 무진이 믿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또한 성연이 자신의 뒤에서 이런 일을 할 리가 없고.곁에서 사진을 들여다 본 손건호의 눈에 깜짝 놀란 빛이 어렸다.“작은 사모님과 제왕그룹 곽연철 회장이잖습니까? 이게…….”사진만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지만, 남녀 두 사람이 이런 은밀한 장소를 드나드는 것 자체가 의심받기 좋은 일이다.이 사람은 사진들을 이용해서 자기 보스가 사모님을 오해하게 만들 생각인 게 분명했다.손건호는 얼른 보스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하지만 아주 침착한 보스의 표정을 봐서
모혜정은 바로 안진검의 회사에 와서 안진검을 찾았다.직원들은 모두 모혜정이 안진검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막지 못했다.“오늘 저녁 같이 식사해. 좋은 식당을 찾았어.” 모혜정은 당당하게 말했다.‘어차피 안진검은 내 약혼자인데, 내가 부리지 않으면 누구를 부리겠어?’“바빠, 시간 없어!”안진검은 머리도 들지 않고 바로 모혜정의 제안을 거절했다.모혜정은 그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나서 웃었다.“진검씨, 당신은 내가 당신의 명실상부한 약혼녀라는 걸 알아야 해! 매번 같은 핑계를 쓰는데, 나한테 변명하며 얼버무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거야?”“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혼약은 부모님이 정하신 거야. 나는 당신에게 감정이 없어.” 안진검은 여태까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모혜정과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모혜정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모혜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진검 씨, 송성연이 마음에 든 거지. 말해!”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연의 미모는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안진검이 또 성연에게 밥을 사 준다면 이건 정말 문제야!’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안진검은 모혜정이 그야말로 억지를 부린다고 느꼈다.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빨리 대답해. 당신, 송성연이 마음에 들었지? 걔가 마음에 들어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다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모혜정의 목소리는 톤이 아주 높아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안진검은 여전히 편안한 모습으로 서류를 처리했다.“진검 씨, 솔직히 말해. 그 여자한테 빠져서 내가 약혼자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야!”안진검이 대답하지 않자, 모혜정이 달려가서 안진검의 팔을 잡아당겼다.안진검은 정말 귀찮았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어.’‘모혜정도 옆에서 쉬지 않고 따지고 있지.’안진검은 정말 모혜정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검 씨,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빨리 말을 해!” 모혜정은 손을 뻗어 안진검의 팔을
그리고 반대쪽. 부하들의 보고를 듣던 안진검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성연이 고향으로 내려가 있던 동안.안진검은 수하들에게 성연의 단서를 찾아내라고 했지만 줄곧 찾지 못했다.그래서 안진검은 화가 나 있었다. ‘원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빨리 송성연과 친구가 되려고 했는데.’‘결국 계획이 중단되었어.’‘송성연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 강무진 쪽의 소식도 늦어진다는 걸 의미해.’‘송성연의 주선이 없다면, 강무진은 나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을 거야. 또 단서를 잡고 내 신분을 똑똑히 조사할 수 있을 거야.’‘이 모든 것은 송성연을 통해서만 할 수 있어.’그러나 지금 결과가 없으니, 안진검이 어떻게 이 화를 참을 수 있겠는가!안진검의 안색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안진검의 앞에 선 수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안진검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마음속으로는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말투를 가다듬었다.“의부님.”안진검이 부하에게 손짓하자, 부하는 마치 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나갔다.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MS 가문의 대장로였다.안진검의 목소리를 들은 대장로가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애초에 떠날 때 이미 계획을 다 세워놓지 않았어? 지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거야?”“의부님, 죄송합니다. 잠시 사고가 생겨서 진행이 중단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안진검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장로에게 사과했다.“내게 사과해도 소용없어. 지금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주시하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간을 끌었지만, 더 이상 성과가 없다면 가문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거야! 만약 다른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이 나면, 네가 위로 올라갈 기회는 없어!”대장로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가까스로 이 기회를 잡은 안진검이 어떻게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서둘러 대장로에게 애원했다.“의부님,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제 계획이 곧 성과가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