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성이 벌인 짓의 결과는 그리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던 데다가 또 몰랐다는 듯 사과하는 강진성의 태도에 무진도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무진은 강진성에게 경고 몇 마디 하고는 놓아주었다.다음날, 강진성은 송아연을 데리고 안금여를 방문하러 고택으로 향했다. 과일과 생화 바구니도 손에 든 채.이번이 두 번째 고택 방문이었지만, 고택의 호화로움에 아연은 다시 한 번 놀랐다.그러나 탐욕스러운 표정을 얼른 거둔 채 조심스럽게 강진성의 등 뒤에 숨었다.안금여를 마주한 송아연은 바로 얼굴에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회장님, 얼마 전에 사고로 많이 놀라셨다고 듣고 걱정이 되어 방문했습니다.”안금여는 곁눈길로 송아연을 한 번 슬쩍 훑었다.예전, 이 두 사람의 일로 북성이 떠들썩했었다.그 뒤로 서로 왕래하지 않는 모양세를 보이더니, 어떻게 지금은 또 이렇게 같이 있는 건지.속이 시커먼 저 두 사람이 함께 해서 좋을 일은 없었다.안금여는 송아연을 배려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음, 하며 성의 없이 받아 준 뒤에 바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안금여는 송아연에 대한 인상이 아주 안 좋았다. 어린 나이에도 자중할 줄 모르더니 결국 나중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 역시 자업자득 아니겠는가.안금여는 송아연에 대해 동정의 마음이 조급도 들지 않았다.안금여가 이렇게 대할 줄은 모르고 냅다 방문했던 송아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저도 모르게 강진성을 쳐다보았지만, 강진성 역시 송아연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애초에 강진성이 따라오지 말라고 했음에도 안금여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에 송아연 스스로 따라온 것이다.하여 강진성은 지금의 결과는 모두 송아연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지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강진성 역시 자신을 내 몰라라 하자 송아연은 절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어색한 분위기를 느낀 송아연이 선물 바구니를 테이블 한 쪽에 올리며 말했다.“회장님,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제 마음대로 과일을 좀 사 왔습니다.”송아연이 직접 하나하나 골
무진이 대표실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손건호가 들어와서 편지 한 통을 건넸다.“보스, 누가 익명의 편지를 보스의 차량 와이퍼에 끼워 놓고 갔습니다. 편지에 ‘대표님 친전’이라고 쓰여 있고요. 편지는 제가 이미 한 차례 스캔해 보았는데, 별다른 위험한 사항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편지입니다.”손건호가 차분한 음성으로 설명했다.무진이 편지를 받아 봉투 앞면을 보니 역시 ‘강무진 친전’이라고 적혀 있었다. 글자는 인쇄되어 있어서 누가 보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편지를 보낸 이가 상당히 신중한 성격 같다.무진이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린 채 봉투를 뜯었다.안에는 다른 시간 대에 찍힌 7~8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모두 성연과 곽연철이 만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사진 자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사진 속의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다지 친밀한 동작을 드러내고 있지도 않았다.무진은 이 사진들을 자신에게 보낸 이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편지를 보낸 이는 이 사진 때문에 사이가 벌어질 만큼 자신과 성연 사이의 감정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게다가 이전부터 성연과 곽연철이 알고 있었다면 만나는 게 별로 이상할 것도 없을 텐데.오히려 이 사진을 보낸 이의 속셈이 무엇인지 도시 알 수가 없다.이 사람은 이간계를 쓰려는 게 분명했다. 자신과 성연을 이간질하고 두 사라의 감정에 영향을 주려는 목적으로.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 무진이 믿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또한 성연이 자신의 뒤에서 이런 일을 할 리가 없고.곁에서 사진을 들여다 본 손건호의 눈에 깜짝 놀란 빛이 어렸다.“작은 사모님과 제왕그룹 곽연철 회장이잖습니까? 이게…….”사진만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지만, 남녀 두 사람이 이런 은밀한 장소를 드나드는 것 자체가 의심받기 좋은 일이다.이 사람은 사진들을 이용해서 자기 보스가 사모님을 오해하게 만들 생각인 게 분명했다.손건호는 얼른 보스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하지만 아주 침착한 보스의 표정을 봐서
입으로는 개의치 않는다고 말한 무진이지만, 사진 속에서 곽연철을 본 성연이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속으로 질투심이 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찍힌 거의 모든 사진들 마다 웃고 있었다. 게다가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는 저 웃음은 분명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게 분명했다.퇴근 후에 집으로 돌아간 무진은 집에 있던 성연에게 바로 사진들을 건넸다.사진을 건네는 무진의 표정이 좀 찡그려져 있었다. 성연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약간의 원망도 담긴 듯하다.한 눈에 봐도 질투가 분명한 기운이 온 집안 가득 넘실거렸다.사진들을 보다가 무진의 반응을 본 성연이 한 쪽 눈썹을 치켜세웠다.“왜. 신경 쓰여요?”무진은 곧장 상체를 굽히며 성연을 껴안은 채 턱을 성연의 어깨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신경 쓰이는 게 당연하지. 나한테 보상해 줘.”말하면서 무진이 안은 자세 그대로 성연에게 키스했다.이미 무진이 어떤 보상을 원할 줄 알고 있었던 성연은 버둥거리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성연이 곽연철과 함께 있던 모습을 생각하던 무진의 입술이 성연의 입술을 더 깊이 파고 들었다.‘다른 남자랑 있으면서 왜 그렇게 환한 웃음을 짓는 거야, 어?’무진의 눈빛을 본 성연은 자신과 곽연철의 사이를 무진이 전혀 의심하고 있지 않음을 알았다.그저 남자의 드 높은 자존심과 소유욕이 발동한 것일 뿐.성연은 가만히 무진의 키스를 받았다. 무진의 화가 가라앉을 때 멈추어도 되리라 생각했다.그 후 무진의 키스는 점점 더 깊어만 갔다. 하지만 너무 그렇게 심하다고,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했다.어쩌면 성연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 걸지도 모른다.멈출 줄 모르는 무진의 키스로 폐부의 공기가 희박해지면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머리도 띵하며 어지러움을 느꼈다.만약 키스가 계속된다면 욕망의 파도에 밀려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들었다.결국 성연이 무진을 힘껏 밀어내며 두 사람 사이에 간격을 만들었다.사실 노도처럼 밀어붙이는 무진의 공세에 성연 또한
송아연과 강진성의 첫 번째 계획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게 분명했다.송성연과 강무진의 일상에 아무런 파란도 일으키지 못했다.며칠 동안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런 소문도 들려오지 않았다.만약 사진을 받은 무진이 난리를 쳤다면 분명 말이 들려왔을 것이다.지금까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다는 소문은 전혀 듣지 못한 것이다.의심스럽게 생각하던 강진성은 옆에 앉아 있던 송아연에게 물었다. “왜 별로 의심스러워 보이지도 않는 사진들을 강무진에 보낸 거야?”조급해하는 강진성을 보면서도 송아연은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서두르지 말아요. 한 걸음 한 걸음 진행하면 돼요. 메가톤급 폭탄은 뒤에 남겨 둬야죠.”성연을 위해 준비했는데, 이런 소소한 것들에 그칠 리가 없었다.이건 그야말로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 앞으로 터질 사건은 절대 송성연이 뒤집지 못할 것이다.“설마 나를 속이는 건 아니겠지?” 강진성이 의심스럽다는 듯한 시선으로 송아연을 쳐다보았다.아무리 봐도 송아연, 이 아이는 조금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서로 협력하기로 했을 때부터 내내 미심쩍어 하던 강진성이다.어찌 되었든 송아연은 지금 자신을 납득을 시키지 못하고 있었다.“진성 씨, 제가 어떻게 당신을 속일 수 있겠어요? 당신을 돕겠다고 했잖아요. 진성 씨의 적이 바로 내 적이에요.” 송아연이 강진성의 비위를 맞추며 웃었다.자신의 주 목적은 바로 송성연을 가만 두지 않는 것이다.그리고 고택에서의 굴욕을 생각하던 송아연은 속에서 짜증이 치솟았다.자신이 송성연 보다 훨씬 더 높은 교육을 받고,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배웠건만.‘송성연 그 시골뜨기가 뭘 할 줄 안다고?’그러나 바로 그런 송성연이 강씨 집안의 총애를 받다니.도대체 자신이 송성연 보다 못한 게 뭔지 이해할 수 없는 송아연이다.강씨 고택을 방문했을 때, 송성연 때문에 안금여 회장으로부터 수모를 당한 일을 떠올리며, 이 원수를 꼭 갚겠다 다짐했다.“일을 좀 더 믿음이 가게 해. 이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실수해서
이튿날, 손건호는 외부로 나가 다른 일을 처리했다.그래서 무진이 직접 운전해서 할머니 안금여와 고모 강운경을 보러 고택으로 갈 생각이었다.그런데 주차장에 세워둔 차 전면 유리와 와이퍼 사이에 서류봉투 하나가 또 다시 끼워져 있었다.앞서 무진의 손에 전해졌던 서류봉투와 동일해서 같은 사람이 가져다 둔 것임을 알 수 있다.무진의 기운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차 유리와 와이퍼 사이에서 봉투를 빼내 쓰레기통에 버릴 생각이었다.어차피 성연일 노린 사진이 뻔하니 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그러나 봉투를 들고 쓰레기통으로 향하던 순간 무진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이번에는 또 어떤 걸 ‘증거’랍시고 집어넣었는지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봉투 안에서 사진을 꺼내면서 자신과 성연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이가 누구인지 궁리하기 시작했다.저들의 목적은 너무 뻔했다.과연 이간질이 성공해서 자신과 성연이 헤어진다면 가장 큰 이득을 얻게 될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설마 연적?’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정말 연적이라면 이런 수법은 너무나 졸렬하고 유치했다.무진은 솔직하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좋아한다.이렇게 뭔가를 숨기면서 몰래 잔꾀를 부리는 사람들을 혐오했다.입술을 꽉 다문 무진이 막 봉투를 열려던 순간 이쪽으로 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드니 집사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무진이 손에 봉투를 든 채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집사는 현관에 설치된 CCTV를 통해 무진이 주차장에 서서 꼼짝 않는 모습을 보고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싶어 일부러 내려온 참이었다.집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도련님, 괜찮으세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혹 제 도움이 필요하세요?”“아닙니다. 가서 일 보셔도 됩니다. 여기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무진이 고개를 저었다.곁눈으로 무진이 손에 봉투를 들고 있는 것을 본 집사는 평소 무진이 들고 다니던 서류봉투가 아닌 걸 눈치챘다.집사가 무진의
서류봉투를 열자 안에서 사진 몇 장이 나왔다.그냥 뒷모습만 찍힌 사진 몇 장이다.성연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익숙한 무진이다. 사진 속에 보이는 뒷모습이 성연의 것이라는 걸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그리고 이번에 찍힌 곳은 다른 장소가 아니었다.주변에 아무도 없이 오직 성연 혼자였다. 그리고 가고 있는 곳은 병원.‘뭘 말하려고 이 사진들을 자신에게 보낸 거지?’ 무진의 태도는 알기 어려웠다.그러나 사진을 보낸 사람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사진 몇 장을 엠파이어 하우스 차고에 갖다 둔 게 아니다.무진은 서류봉투를 살펴보았다.이번에는 사진뿐만 아니라 A4 용지 몇 장이 반으로 접힌 채 사진 뒤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종이를 펼쳐본 무진은 순간 멍했다. 성연의 이름이 적인 병원 기록이었다.정확히 말하면, 초음파 검사 결과지로 아래에 성연이 임신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이런 적은 처음 경험해 보지만, 이 글자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분명 하나 하나 다 알고 있는 글자들이다.그러나 같이 연결한 글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이 병원 기록으로 인해 무진은 정신이 멍해졌고, 이 근거 없는 임신 결과지에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도대체 이 기록을 어디서 받은 거지?’‘그리고 이름이 뭐? 송성연?’‘설마 성연이 정말 임신했다고?’이 가정은 바로 무진에 의해 지워졌다.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믿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병원 기록이 이렇게 있으니까.하지만 송성연이다.성연은 행실이 문란한 아이가 아니다. 만약 어린 나이에 임신을 했었다면 지금까지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생각을 할수록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결국 무진은 고개를 저었다.성연에게 이런 일이 있기는 절대 불가능하다.검사 기록지 아래에 병원 마크가 보였다. 어느 병원에서 나온 것인지 조사해 보면 알게 될 터.바로 그때 회사로 돌아온 비서 손건호가 무진이 아직 회사에 있다는 것을 알고 대표실로 들어왔다.사무실에 데스크 앞에 앉은 무진
저녁에 무진이 집에 도착했을 때, 성연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성연은 지금 할머니 안금여를 위해 최상의 약재들만 넣어서 보양탕을 끓이고 있다.비록 안금여가 다치지 않았고 검사에 문제가 없는 걸로 나왔지만, 성연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놀랐을 두 사람의 몸을 보양시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종일 끓이고 있는 중이다.언제 먹어도 상관없는 약재들로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어 자주 먹으면 건강에 많은 도움을 준다.또 엠파이어 하우스 창고에서 꺼내 온 것들이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약재들이었다.무진은 바삐 움직이는 성연의 모습을 지켜보며 이내 입꼬리를 위로 당겨 올렸다. 그러나 자조적으로 보이는 웃음은 억지로 만들어 낸 게 분명했다. 진짜 웃음이 나올 리가 없다.‘손건호의 말처럼 성연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무진도 마음속으로 성연을 믿고 있다.그 자리에 서서 성연을 잠시 바라보던 무진은 성연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몸을 돌려 위층으로 향했다.그러나 성연은 예민한 감각으로 무진의 알아채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 서 있던 무진이 몸을 돌리는 게 보였다.성연은 보양탕을 약한 불로 조절한 후에 손을 닦으며 무진에게 다가갔다.“집에 왔다고 왜 말하지 않았어요?”성연을 보자 무진의 표정이 금세 부드러워지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 되었다.내내 복잡해 보이던 표정이 바로 사라졌다.무진이 성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 바쁜 것 보고 일부러 안 불렀어. 공부하기도 힘들텐데 이렇게 힘들게 하지 않아도 돼. 고택에도 주방이 있으니 조리법만 전해줘도 돼.”고3 수능을 앞둔 성연인 요즘 거의 매일 시험이 있었다.타고난 실력을 가진 성연이라 해도 기본적인 학습과 복습을 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니 무진의 마음이 아팠다.안금여와 강운경을 돌보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성연을 돌보는 사람은 없었다.자신은 평소에 회사 일로 바쁘고, 성연이 철이 들어 어른스러웠다. 그래서 성연의 감정을 신
무진이 위층의 서재로 올라가서 서류들을 처리했다.하루에 다 끝내기 힘들 정도의 일들이, 다 보기 힘들만큼 서류들이 날마다 무진의 앞에 쌓였다. 회사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무진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성연의 일로 하루 종일 신경 쓰다 이제야 올라온 공문을 보며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서재에서 서류들을 보던 중에 비서 손건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무진이 바로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 “결과는?”무진의 말투에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마음으로는 성연을 믿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나쁜 결과를 얻게 될까 겁나기도 했다.자신에게 성연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황스럽고 두려웠다.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기를 바랬다.손건호가 무진에게 보고했다.“작은 사모님이 그 병원에 가신 건 확실합니다.”여기까지 들으며 무진은 마음이 불안해졌다. 계속해서 손건호의 음성이 들렸다.“하지만 작은 사모님은 위장약을 타러 가셨습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강진성이 가져온 인삼을 사모님이 드시고 탈이 나서 병원에 가신 겁니다. 당시 집사님이 사모님과 동행했고요.”집사가 동행한 이상 아무 일도 없었을 게 확실했다.하루 종일 무거웠던 무진의 마음이 손 비서의 보고에 금세 가벼워졌다.애초에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자신의 판단도 옳았다. 이 사진과 기록지를 보낸 이는 도대체 머리가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그냥 조금만 조사해봐도 바로 알 수 있는 것을 내가 진짜 믿으리라 생각한 걸까?’‘이런 별거 아닌 걸로 날 속이겠다고?’잠시 고민하던 무진은 결국 이 일을 성연에게 말하기로 결정했다.손건호에게 몰래 조사하라고 지시만 한 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가족들이야 성연의 성품을 알고 믿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니까.사람들은 항상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판단한다.이 일은 무진의 명성과도 관계된 것이다.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을 때, 당연히 자신은 성연을 보호해야 한다.이런 일들이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