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손건호는 외부로 나가 다른 일을 처리했다.그래서 무진이 직접 운전해서 할머니 안금여와 고모 강운경을 보러 고택으로 갈 생각이었다.그런데 주차장에 세워둔 차 전면 유리와 와이퍼 사이에 서류봉투 하나가 또 다시 끼워져 있었다.앞서 무진의 손에 전해졌던 서류봉투와 동일해서 같은 사람이 가져다 둔 것임을 알 수 있다.무진의 기운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차 유리와 와이퍼 사이에서 봉투를 빼내 쓰레기통에 버릴 생각이었다.어차피 성연일 노린 사진이 뻔하니 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그러나 봉투를 들고 쓰레기통으로 향하던 순간 무진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이번에는 또 어떤 걸 ‘증거’랍시고 집어넣었는지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봉투 안에서 사진을 꺼내면서 자신과 성연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이가 누구인지 궁리하기 시작했다.저들의 목적은 너무 뻔했다.과연 이간질이 성공해서 자신과 성연이 헤어진다면 가장 큰 이득을 얻게 될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설마 연적?’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정말 연적이라면 이런 수법은 너무나 졸렬하고 유치했다.무진은 솔직하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좋아한다.이렇게 뭔가를 숨기면서 몰래 잔꾀를 부리는 사람들을 혐오했다.입술을 꽉 다문 무진이 막 봉투를 열려던 순간 이쪽으로 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드니 집사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무진이 손에 봉투를 든 채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집사는 현관에 설치된 CCTV를 통해 무진이 주차장에 서서 꼼짝 않는 모습을 보고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싶어 일부러 내려온 참이었다.집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도련님, 괜찮으세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혹 제 도움이 필요하세요?”“아닙니다. 가서 일 보셔도 됩니다. 여기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무진이 고개를 저었다.곁눈으로 무진이 손에 봉투를 들고 있는 것을 본 집사는 평소 무진이 들고 다니던 서류봉투가 아닌 걸 눈치챘다.집사가 무진의
서류봉투를 열자 안에서 사진 몇 장이 나왔다.그냥 뒷모습만 찍힌 사진 몇 장이다.성연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익숙한 무진이다. 사진 속에 보이는 뒷모습이 성연의 것이라는 걸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그리고 이번에 찍힌 곳은 다른 장소가 아니었다.주변에 아무도 없이 오직 성연 혼자였다. 그리고 가고 있는 곳은 병원.‘뭘 말하려고 이 사진들을 자신에게 보낸 거지?’ 무진의 태도는 알기 어려웠다.그러나 사진을 보낸 사람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사진 몇 장을 엠파이어 하우스 차고에 갖다 둔 게 아니다.무진은 서류봉투를 살펴보았다.이번에는 사진뿐만 아니라 A4 용지 몇 장이 반으로 접힌 채 사진 뒤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종이를 펼쳐본 무진은 순간 멍했다. 성연의 이름이 적인 병원 기록이었다.정확히 말하면, 초음파 검사 결과지로 아래에 성연이 임신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이런 적은 처음 경험해 보지만, 이 글자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분명 하나 하나 다 알고 있는 글자들이다.그러나 같이 연결한 글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이 병원 기록으로 인해 무진은 정신이 멍해졌고, 이 근거 없는 임신 결과지에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도대체 이 기록을 어디서 받은 거지?’‘그리고 이름이 뭐? 송성연?’‘설마 성연이 정말 임신했다고?’이 가정은 바로 무진에 의해 지워졌다.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믿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병원 기록이 이렇게 있으니까.하지만 송성연이다.성연은 행실이 문란한 아이가 아니다. 만약 어린 나이에 임신을 했었다면 지금까지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생각을 할수록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결국 무진은 고개를 저었다.성연에게 이런 일이 있기는 절대 불가능하다.검사 기록지 아래에 병원 마크가 보였다. 어느 병원에서 나온 것인지 조사해 보면 알게 될 터.바로 그때 회사로 돌아온 비서 손건호가 무진이 아직 회사에 있다는 것을 알고 대표실로 들어왔다.사무실에 데스크 앞에 앉은 무진
저녁에 무진이 집에 도착했을 때, 성연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성연은 지금 할머니 안금여를 위해 최상의 약재들만 넣어서 보양탕을 끓이고 있다.비록 안금여가 다치지 않았고 검사에 문제가 없는 걸로 나왔지만, 성연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놀랐을 두 사람의 몸을 보양시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종일 끓이고 있는 중이다.언제 먹어도 상관없는 약재들로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어 자주 먹으면 건강에 많은 도움을 준다.또 엠파이어 하우스 창고에서 꺼내 온 것들이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약재들이었다.무진은 바삐 움직이는 성연의 모습을 지켜보며 이내 입꼬리를 위로 당겨 올렸다. 그러나 자조적으로 보이는 웃음은 억지로 만들어 낸 게 분명했다. 진짜 웃음이 나올 리가 없다.‘손건호의 말처럼 성연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무진도 마음속으로 성연을 믿고 있다.그 자리에 서서 성연을 잠시 바라보던 무진은 성연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몸을 돌려 위층으로 향했다.그러나 성연은 예민한 감각으로 무진의 알아채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 서 있던 무진이 몸을 돌리는 게 보였다.성연은 보양탕을 약한 불로 조절한 후에 손을 닦으며 무진에게 다가갔다.“집에 왔다고 왜 말하지 않았어요?”성연을 보자 무진의 표정이 금세 부드러워지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 되었다.내내 복잡해 보이던 표정이 바로 사라졌다.무진이 성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 바쁜 것 보고 일부러 안 불렀어. 공부하기도 힘들텐데 이렇게 힘들게 하지 않아도 돼. 고택에도 주방이 있으니 조리법만 전해줘도 돼.”고3 수능을 앞둔 성연인 요즘 거의 매일 시험이 있었다.타고난 실력을 가진 성연이라 해도 기본적인 학습과 복습을 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니 무진의 마음이 아팠다.안금여와 강운경을 돌보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성연을 돌보는 사람은 없었다.자신은 평소에 회사 일로 바쁘고, 성연이 철이 들어 어른스러웠다. 그래서 성연의 감정을 신
무진이 위층의 서재로 올라가서 서류들을 처리했다.하루에 다 끝내기 힘들 정도의 일들이, 다 보기 힘들만큼 서류들이 날마다 무진의 앞에 쌓였다. 회사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무진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성연의 일로 하루 종일 신경 쓰다 이제야 올라온 공문을 보며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서재에서 서류들을 보던 중에 비서 손건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무진이 바로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 “결과는?”무진의 말투에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마음으로는 성연을 믿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나쁜 결과를 얻게 될까 겁나기도 했다.자신에게 성연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황스럽고 두려웠다.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기를 바랬다.손건호가 무진에게 보고했다.“작은 사모님이 그 병원에 가신 건 확실합니다.”여기까지 들으며 무진은 마음이 불안해졌다. 계속해서 손건호의 음성이 들렸다.“하지만 작은 사모님은 위장약을 타러 가셨습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강진성이 가져온 인삼을 사모님이 드시고 탈이 나서 병원에 가신 겁니다. 당시 집사님이 사모님과 동행했고요.”집사가 동행한 이상 아무 일도 없었을 게 확실했다.하루 종일 무거웠던 무진의 마음이 손 비서의 보고에 금세 가벼워졌다.애초에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자신의 판단도 옳았다. 이 사진과 기록지를 보낸 이는 도대체 머리가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그냥 조금만 조사해봐도 바로 알 수 있는 것을 내가 진짜 믿으리라 생각한 걸까?’‘이런 별거 아닌 걸로 날 속이겠다고?’잠시 고민하던 무진은 결국 이 일을 성연에게 말하기로 결정했다.손건호에게 몰래 조사하라고 지시만 한 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가족들이야 성연의 성품을 알고 믿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니까.사람들은 항상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판단한다.이 일은 무진의 명성과도 관계된 것이다.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을 때, 당연히 자신은 성연을 보호해야 한다.이런 일들이
“계속 이런 일이 생기다 보면 너에게 안 좋을까 봐 걱정이야. 너에게 경호원 두 명을 붙여 밀착 경호를 하게 할 생각인데, 어때?” 무진은 이 일이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고 생각했다.무엇보다 성연과 관련된 일인만큼 절대 허투루 처리해서는 안 된다.성연에게 발생할 지도 모르는 모든 의외의 상황들을 근절시킬 것이다.성연이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이 사람은 단지 우리 두 사람을 이간질하려는 거예요. 나에게 아무 짓도 못할 거예요.”비록 무진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최근 일어난 일련의 일들로 성연은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미친…….’해이해진 나머지 미행당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자신에게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자신의 능력으로 몰랐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아니면 미행한 그 놈이 원래 엄청난 고수라는 말이다.역시 안일한 환경에 너무 오래 머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지 않으면 기본적인 경계심마저 무너질 터였다.“만약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만 해.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하고. 절대 숨기지 마.” 무진은 역시 성연에게 강제로 사람을 붙이지 않았다.성연은 똑똑하고 주관이 뚜렷하기에 참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알았어요.” 성연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이 일은 자신이 직접 처리할 생각이다.영문도 모른 채 표적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불이 났다.배후에서 이 계략을 꾸민 당사자를 꼭 찾아내야 했다.성연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일단 화를 거둬. 우린 모두 너를 믿어. 바로 이번 일의 범인이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야. 그러니 화를 내며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마.”“늘 단정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당연히 아무 것도 겁나지 않아요. 하지만 내게 이런 구정물을 끼얹은 만큼 절대 간단하게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성연이 이를 악문 채 말을 꺼냈다.이 일로 성연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기억해, 언제든 자기자신을 가지고 모험할 생각은 하지
엠파이어 하우스 쪽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자, 강진성은 송아연을 불렀다.송아연은 두 사람이 자주 만나던 클럽에 왔다.강진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그쳤다.“네 방법대로 해서 되겠어? 초음파 검사지까지 줬는데 강무진이 아직 믿질 않아. 다른 것을 주면 강무진이 믿을 거라고 생각해?”애초에 송아연이 낸 생각에 동조해서 같이 작당을 해서는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자신이 예상한 상황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송아연이 강진성을 위로하며 말했다.“진짜 볼만한 연극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 걸요!”지금의 상황은 송아연이 미리 예상했던 일이다.송성연을 그토록 아끼는 강무진과 안금여인데, 몇 마디 말로 그들 사이를 이간질할 수 있을 리가.하여튼 송성연이 무슨 방법으로 강씨 집안 사람들을 구슬린 건지 모르겠다.사람 마음을 홀리는 데 가장 능한 여우를 이런 간단한 방법으로 잡을 수는 없을 터였다.그러나 강진성은 송아연의 말을 별로 믿지 않았다.“언제나 말은 그렇게 말하는데 도대체 효과를 볼 수 있기는 한 거야?”강진성은 송아연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이제껏 필요한 사람과 돈을 지원했음에도 성과를 얻지 못했는데 어떻게 조급하지 않 있겠는가.셋째 일가에서는 이번 일로 큰 소란이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실패하면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진성 씨, 진성 씨가 원하는 결과를 꼭 얻을 거예요. 서두르면 되는 일도 없다는 걸 잘 아실 거예요. 이 일은 역시 천천히 진행해야 해요.”송아연의 마음속엔 자신만의 계획이 들어 있었다.자세한 내용은 강진성에게 말한다 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목적만 이룰 수 있다면 이런 과정들에 신경 쓸 필요가 뭐란 말인가.강진성은 하마터면 송아연의 말에 기가 막혀 웃음이 나오려 했다.“너 참 말 잘한다? 지금 바로 말해 봐. 도대체 언제 내가 요구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지. 쓸데없는 소리 지껄일 생각 말고!”“진성 씨, 저를 한 번
무진이 집에 도착하자 집 안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현관문에 들어선 순간 집사의 엄한 목소리가 실내에서 들려왔다.무척 화가 난 음성의 집사가 차가운 얼굴로 질책했다.“여기 엠파이어 하우스에서는 손 버릇이 나쁜 사람은 받지 않습니다. 멀쩡한 젊은 여성이 받기에는 여기 월급이 꽤 많지 않아요? 어떻게 물건을 훔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얼른 성실하게 자신의 업무를 인계하고 나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 선에서 끝낼 수 없습니다!”“집사님, 제가 잘못했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훔친 것도 없어요.”여자 고용인이 변명을 시작했다.“내가 직접 봤는데도 거짓말을 할 생각입니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됐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이 와서 처리할 겁니다.” 집사가 시퍼렇게 굳은 얼굴로 고용인을 응시했다.스스로 사람을 보는 안목이 괜찮다고 자부했고, 이 여자 고용인도 자신이 직접 가서 골랐다.언제나 얌전하니 시키는 대로 잘 따르던 이 고용인은 결코 이런 일을 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고용된 지도 얼마 안되어 이런 일이 생기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그러니 어찌 집사가 화를 내지 않겠는가?“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여자 고용인은 잘못했다는 말만 계속 반복할 뿐, 집사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무진은 멀찌감치 떨어져 선 채로 단편적인 말들을 들었다. 평소 누구에게나 온유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이던 집사가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무진이 거실로 들어가며 물었다.“무슨 일입니까?” 집사가 말을 하기도 전에 여자 고용인이 쉴 새 없이 고개를 조아리며 눈물로 호소했다.“대표님,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어요.”이마가 온통 푸르죽죽한 색을 띤 걸 보니 바닥에 이마라도 찧어 댄 모양이다.무진이 이마를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무엇을 훔쳤습니까?”엠파이어 하우스의 모든 고용인들은 집사가 도맡아 관리해 왔다.고용인들의 자질도 뛰어난데다 집사가 관리를 잘 해
잠시 생각하던 성연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침실에 두는 물건은 그리 많지 않았고, 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귀중품도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에. 만약 자신이 귀중품을 숨기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눈 앞의 여자 고용인은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이다.집사에게 발견될 때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에 고용인이 뭔가를 찾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성연은 추측했다.또 침실에서 성연이 귀중하게 여기는 물건이라면 노트북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트북과 연동되어 휴대폰에서는 아무런 경고음도 울리지 않았다.그러니까 가사도우미로 고용된 저 여자는 자신의 노트북을 만지지 않았던 것이다.어쩌면 여자의 목적은 다른 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용인을 지켜보던 무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바른대로 말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무진처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몸에서 자연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평범한 고용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무진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여자 고용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벌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만큼 무진의 눈빛은 매서웠다.결국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모두 제 방에 있어요.”여자 고용인이 계속 바닥에 주저앉아 꼼짝 하지 않자 집사가 얼른 큰 소리로 질책했다.“방에 있다고 했으니 빨리 가서 가져와야지, 왜 그리 멍하니 있습니까?”완전히 몸이 풀려버린 여자 고용인이 바닥을 짚고 간신히 일어나 비척비척 자신의 방으로 갔다.고용인들이 거주하는 곳은 본관 뒤편에 좀 떨어져 있어 집사는 다른 고용인 두 사람을 불러 따라가서 지켜보게 시켰다.여자 고용인과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집사는 성연과 무진에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도련님, 작은 사모님.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지금까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며 딴 말을 한 적이 없는 집사이다.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니까.오랜 가족 같은 집사의 사과에 성연이 얼른 나섰다.“집사님, 자책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