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은 방학 내내 집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또 그사이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히지도 않았다.그리고 무진과 함께 하루하루 마음 편하고 즐겁게 지냈다.성연은 매일 저절로 눈을 뜰 때까지 잠을 잤는데, 그 느낌이 정말 좋았다.이날 세수를 다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온 성연은 강운경이 무진과 함께 식탁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성연은 강운경을 보고 기뻤다.“고모, 어떻게 오셨어요?”“왜? 내가 반갑지 않아? 내가 너희 두 사람만의 세계를 방해한 거니?”강운경이 두 사람을 놀리는 투로 말했다.최근 좀 단련이 된 성연은 얼굴이 제법 두꺼워져서 이젠 더 이상 걸핏하면 얼굴이 붉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자포자기의 의미가 좀 있지만 말이다.성연이 자연스럽게 무진 옆에 앉은 뒤에 웃으며 말했다.“고모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오시면 당연히 환영이죠.”강운경이 흥, 하며 코웃음을 쳤다.“네 고 작은 입은 점점 더 꿀을 바른 것 같애.”성연도 히죽거리며 대답했다.세 사람이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 동안, 무진은 성연을 위해 누룽지를 식혀 건네주었다.성연에게 구은 달걀을 까 주기도 했다.성연은 누룽지에 구운 달걀을 곁들여 먹는 것을 좋아했다. 색다른 맛이 있었다.요 며칠, 성연은 무진의 시중에 하도 익숙해져서 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그러나 무진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 강운경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성연과 무진의 사이가 좋다는 것은 알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무진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런 적이 없었다. 금시초문임이 확실하다.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성연이 앞에서 전부 이례적이었다.‘참,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니.’예전에 무진에게 많은 아가씨들을 소개했지만, 무진은 늘 냉정하게 거절했었다. 마치 여자들을 한 번 봐는 것도 짜증이 나는 것 같았다.무진이 몸을 낮추고 한 소녀를 이리 지극정성으로 생각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강운경이 줄곧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성연이 고개를 들어 갸우뚱
그룹 연례 대회에는 예전에 무진도 참석하지 않았었다.언제나 강상철과 강상규의 홈그라운드가 되어, 가도 모욕적인 말만 들을 뿐이라 차라리 안 가는 게 나았다.그러나 올해 연례 대회에는 강상철과 강상규가 없었다. 또 그룹 전체를 맡아 관리하는 총괄 대표로서 다른 사람은 가지 않더라도 무진은 반드시 가야 한다.무진은 강운경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성연에게 물었다. “가고 싶어?”“저는 다 괜찮아요.”성연이 대답했다. 연례 대회일 뿐이니 그녀는 당연히 겁나지 않았다.WS그룹과 같은 큰 회사는 연례 대회가 매우 성대할 수밖에 없었다.성연은 아직 가 본 적이 없어서 좀 궁금했다.그러나 무진은 강운경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이 어떻는지 물었다.이러면 강운경이 오해할 수도 있었다. 조금 전에는 무진에게 자신의 계란을 벗기게 했었고 말이다. 평소 자신이 뒤에서 무진을 마음대로 부린다고 고모가 오해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생각만 해도 민망했다.“그래, 성연이가 수락했으니 이렇게 시원하게 결정하자. 나는 디자이너와 약속하고 오후에 와서 성연이 드레스도 맞춰 줄게.” 강운경은 마음에 별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그녀의 생각도 엄마 안금여와 똑같았다. 이들 어린 두 커플만 사이가 좋으면 된다.“고모, 번거롭게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제 옷장에 드레스 많아요. 그냥 그 중에서 하나 고르면 돼요.” 성연은 너무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 옷장 안에 있던 드레스들 모두 무진이 주문해서 만든 것들이다. 강씨 집안의 체면을 결코 깍지 않을 정도의 고가 드레스였다.“안 돼. 이제 네 신분은 무진의 약혼자잖아. 당연히 예쁘게 하고 등장해야지. 치수 재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강운경이 성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괜찮아, 드레스 한 벌 맞추는 것도 괜찮아. 우리 아가씨가 최고로 멋지겠네.” 무진이 성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이번에 성연은 정말 거절할 말을 찾지 못했다.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그럴게요.”어차피 그녀는 괜찮았다
연례 대회 당일, 행사장은 매우 시끌벅적했다.WS그룹은 디자인 부서와 후방지원부를 함께 배치했다.고급스러워 보이는 게 설날 분위기도 물씬 풍겼다.회사 본부의 직원들이 모두 행사장에 도착했다. 모두 평소 옷장 속에 모셔 두었던 드레스들을 꺼내 입고 각자의 아름다움을 다투었다.특히 여직원들은 날씨가 추운데도 예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얇은 천조각으로 섹시함을 드러냈다.평소에 일할 때는 동료들과 함께 모두 유니폼을 입지만,오늘만큼은 동료들 앞에서 멋을 부리는 것이다.고수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진 직원들도 있다.연례회의에는 회사 거의 모든 임원과 사장단, 주주들이 올 것이다.운이 좋으면 앞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지금 이 사회는 매우 현실적이다.설사 북성에서 이런 회사에서 일하며 높은 급여를 받는다 하더라도 북성의 물가는 정말 너무 높았다.그들은 명품 한 두 벌을 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허리띠를 졸라매는 생활로 인해 사람이 타락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설사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는다 하더라도 더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하지 않겠는가?그래서 여직원들도 자신을 꾸미는 데 힘을 쏟았다.안금여와 강운경도 모두 도착했다.중대한 공식 행사인만큼 안금여는 한복을 입었다. 오늘 그녀는 옅은 물빛 한복차림이었다. 어깨에는 같은 색상의 숄이 걸쳐져 있었다. 옆에 서있는 강운경은 블랙 롱스커트 차림으로 우아하고 화려해 보였다.WS그룹 직원들만 이번 행사에 참석한 것이 아니었다.또 일부 중요한 귀빈들과 주주들을 초청했는데 모두 행사장에 와 있었다.한순간에 WS그룹 로비는 사람들로 붐볐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성황이었다.안금여는 줄곧 밖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강운경이 그녀의 손을 잡고 부축했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한참이 지났는데 무진이와 성연이는 왜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거지? 예정대로라면 올 때가 되었을 텐데?”“무진이 집이 회사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잖아요. 성연이 사리 분별 잘하는 아이이니, 무진이랑 같이 올 거예
무진과 성연이 나타나자 장내 시선을 사로잡았다.직원들이 여기저기서 논평을 쏟아냈다.“강무진 대표님 정말 멋있어요, 저 긴 다리, 너무 좋아.”“강무진 대표님 이전에 다리를 다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까 전혀 모르겠는데요?”“저기 강 대표님 약혼녀죠? 정말 예쁘고 분위기 있어 보여요. 대표님과 함께 서 있어도 전혀 밀리지 않네요.”“만약 강 대표님 약혼녀가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말한다면, 믿겠어요?”그 말이 나오는 순간 다른 직원들 모두 믿을 수 없다고 소리쳤다.“전혀 그렇게 안 보여요. 저런 용모와 기질이 어떻게 시골에서 나올 수 있겠어요? 대표님 약혼녀가 시골에서 왔다면 나는 두메산골에서 왔어!”“어쩌면 그냥 시골에서 잠시 생활 체험했겠죠.”“대표님과 약혼녀가 너무 잘 어울려서 내 눈을 호강시켜 주네요.”직원들 모두 작은 소리로만 주고받을 뿐, 감히 큰 소리로 말하지 못했다.자신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대상은 자신들의 앞날에 대한 결정권자였기 때문이다.연례 대회의 날에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겠지만, 그들은 여전히 매우 조심스럽다.성연과 무진은 손을 잡고 강운경과 안금여 앞으로 걸어갔다. 성연은 귀엽게 인사했다.“할머님, 고모님.”안금여는 성연을 보면서 볼수록 만족스러웠다.“우리 성연이 점점 더 예뻐지고 있구나.”“할머니도 젊어 보이세요.” 성연도 칭찬을 한마디 했다.안금여는 웃으며 그녀의 혀가 달다고 말했다.강운경도 옆에서 놀렸다.“성연아, 너는 몰랐어? 방금 너와 무진이가 안 온다고 할머니가 하마터면 여기서 눈이 빠지실 뻔했어. 너를 보고 나서야 겨우 웃으시네.”“허튼 소리.” 안금여는 들키자 괜히 불만을 드러내며 강운경을 노려보았다.운경이 입술을 가린 채 가볍게 웃었다.그들을 보면서 성연은 따뜻함을 느꼈다.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서 자신이 정말 행운아라고 느꼈다.정말 운 좋게도 이런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성연과 무진이 안금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 많은 주주와 파트너들이 찾아와 인사를 했다
두어 마디 더 나눈 후에 무진에게 지금 약혼녀가 있으며 무진이 새끼를 품은 암탉처럼 성연을 철저히 보호하는 모습을 보고 재미없음을 느낀 양 사장은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무진과 이야기를 나누러 왔는데, 성연은 바로 옆에서 배경 역할을 톡톡히 했다.지루함을 느낀 성연은 안금여와 강운경과 대화를 나누려 했다. 하지만 무진이 끝까지 성연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그녀는 무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묻자 무진은 듣기 좋은 말을 했다. 성연이 자신을 의심할까 봐 그녀를 곁에 두고 다닌다고. 그녀의 약혼자가 다른 사람에게 납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나 뭐라나.성연은 남녀 사이의 연애를 이처럼 참신하게 말하는 건 처음 들어봤다.그러나 이는 무진이 그녀를 얼마나 신경 쓰는 지에 대한 방증이기도 했다.그래서 성연은 기꺼이 무진의 옆을 따라다녔다.곧 시간이 되자 무진이 무대에 올라 축사를 했다.평상시에는 안금여가 무대에 올라갔는데, 오늘은 무진이 맡았다.블랙 슈트 차림의 무진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사업을 할 때처럼 무진은 무엇을 하든 확실한 전략으로 누구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성연은 무대 아래에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무진을 바라보았다.성연을 향하던 무진의 눈빛이 한 순간 그녀에게 머무는 듯했다.성연은 그에게 응원의 손짓을 보냈다.거리가 멀어지자 성연은 무진의 표정을 똑똑히 보지 못했지만 그가 이쪽을 향해 입술 끝을 올려 웃는 듯하자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성연은 멀지 않은 곳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맙소사, 강무진 대표님 저 미소도 너무 좋아요. 방금 약혼녀 보고 웃은 거 맞지?”“네, 저는 이미 두 사람의 제스처에 빠졌어요. 저렇게 돈도 많고 다정한 남자친구를 어디서 찾겠어요?”“이런 남자친구는 아마 선녀만이 가질 수 있을 거예요. 우리 같은 일반인들과는 평생 인연이 없을 걸?”성연은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웃었다. 뜻밖에도 회사 직원들의 대화가 꽤나 재미있었다.WS그룹
곧 추첨이 시작되었다.직원들은 모두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추첨을 기다렸다.홀 안은 모두 말하는 소리,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물론 추첨은 즐거운 일이다.어떤 사람은 운이 좋고, 어떤 사람은 운이 나빴다.누군가 아파트를 뽑았다.디자인 부서에서 몇 년 동안 근무한 고참 직원이었다.그는 아파트를 뽑고는 이내 자신의 뺨을 한 대 치기도 했다.“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원래 누군가 아파트를 뽑으면 다들 좀 부러워도 하고 질투도 한다.하지만 그의 이 반응에 다들 오히려 웃으며 즐거워했다.매일 생활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만이 그의 이런 반응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하늘에서 파이가 떨어져도 내 차례는 오지 않을 줄 알고, 삶에 찌들려 이런 행운이 올 수도 있다는 것도 믿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WS그룹의 다른 부서 관계자들이 수속을 밟기 위해 아파트를 추첨한 사람을 데리고 갔다.모두들 그제서야 이것이 눈 앞의 현실임을 믿었다.그러나 워낙 비싼 아파트다 보니 한 채밖에 준비하지 못해 뒤에 서있던 사람들에게는 아예 기회가 사라졌다.그러나 어떤 여직원들은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던 명품 화정품, 가방 등을 뽑고 한참이나 기뻐했다.어쨌든, 이 모든 게 뜻밖의 서프라이즈였으며 다들 즐거워했다.성연은 옆에서 재미있게 구경하며 작은 케이크를 입에 넣어 먹기도 했다.무진이 어느새 성연 곁으로 다가왔다.“한번 추첨해 볼래?”성연은 고개를 저었다.“나는 저들이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무진 씨 그룹에서 직원들에게 준비한 복지 서비스니까, 나는 끼어들지 않는 게 좋아요.”WS그룹의 직원도 아닌 그녀는 무진의 약혼녀일 뿐인데 어떻게 저들의 즐거움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만약 그녀가 어떤 직원들이 좋아할 상품을 뽑게 된다면, 저들의 마음도 불편할 것이다.그래서 성연은 차라리 저 시끌벅적한 곳에 가지 않는 편이 나을 터.“그래, 그럼 옆에서 구경하자.” 무진도 마지못해 성연
추첨은 연례 대회의 일부분일 뿐.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우수 직원에 대한 포상이다.작년에 실적이 뛰어났던 WS그룹은 두둑한 보너스를 준비했다.이름이 불리면 모두 무대에 올라가 자신의 실적에 맞는 포상을 받는다.모두가 기뻐할 때 강명수와 강명호가 앞으로 나갔다.집안의 기둥이었던 자신들의 아버지는 감옥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지내야 할 판.올해는 좋지 않은 해가 분명했다.자신들의 아버지 강상철, 강상규가 고생하고 있는 판국에 강무진은 무슨 권리로 경축을 한단 말인가?그래, 두 늙은이를 없애고 강무진이 최대 승자가 되었지?무진이 지금처럼 득의양양한 것이 누구의 것과 바꾼 것인지 생각도 해보지 않았겠지.강명수와 강명호는 비록 아주 불만스럽고 강무진 저놈을 조각 조각 포를 뜨고 싶지만, 장소를 생각해서 오늘 같은 날 강무진에게 표정을 드러내서는 안된다.두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본 직원들이 분분히 한쪽으로 섰다.두 사람의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을 보니 분명히 좋은 뜻으로 온 게 아니었다.무대 아래의 직원들은 모두 슬쩍 강무진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설마 올해 연례 대회에서 또 다른 빅 뉴스가 터지는 건 아니겠지?무진이 두 사람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그는 저 두 사람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지 두고 볼 참이었다.앞으로 나서서 무진을 응시하는 강명수의 눈빛이 상당히 음산했다.그는 이를 악물었다가 말했다.“무진아, 곧 설이다. 우리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두 사람은 모두 연로한 늙은이들이다. 네가 손에 넣으려던 것은 모두 손에 넣었지 않니? 우리 둘째, 셋째 일가는 앞으로 회사에서 발언권도 없으니, 너도 우리와 계속 다툴 걱정할 필요 없다. 어쨌든 네게도 할아버지들 아니시냐? 네가 좀 두 분이 나오시도록 선처를 해 다오.”강면수는 일부러 무진을 도리도 모르는 사람처럼 들리게 말했다.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진이 두 노인을 감옥에 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비난을
무진의 눈에 두 사람의 반응이 들어왔다.사과하러 왔다 해도 성의가 없음을 바로 알 수 있다.무진이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변호사에게 고소를 취하하라고 전했습니다. 이미 두 노인에 대해 최대한의 선처를 베풀었습니다. 두 사람의 소행에 대해서는 드러난 증거가 확실한 이상, 현재 검찰로 이미 넘어가 법에 따른 처분을 기다려야 할 상황입니다. 두 분을 구하고 싶다면 검찰청에 가서 부탁하시죠!”그가 이렇게 말하는데 이 일을 증명하는 것은 의논의 건더기도 없었다.무진 쪽은 철회하고 싶지 않다면, 검찰에서 어떻게 풀어주겠는가?“강무진, 너무 지나치다!” 강명수가 분을 참지 못했다.자신들이 아버지 뻘인데도, 강무진은 조금도 체면도 봐 주지 않았다.자신과 강명호가 직접 찾아가 여러 차례나 부탁하였지만 무진은 모두 묵살했다.자신이 회사를 맡고 있으면 뭐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비록 두 노인은 집안의 어르신들이지만, 나는 스스로 컸다고 장담한다. 두 어른에게 아무런 은혜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이전의 유언비어도 모두 강상철, 강상규 두 어른이 조작한 것들이죠. 두 삼촌들도 이미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 두 분이 알고 있는 사실을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나는 가장 큰 양보를 했습니다. 바로 고소를 취하하는 것으로요. 다른 부분은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무진이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그는 강상철과 강상규에게 저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만약 강상철과 강상규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그에게, 혹은 큰 집에, 조금이라도 잘했다면, 당연히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그렇게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무진은 그 두 사람은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렇다면 이렇게 된 마당에 후환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그들이 영원히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강상철과 강상규가 이미 선을 넘었기에 자신을 탓하면 안되는 것이다.무진의 말이 떨어지자, 강명수와 강명호가 서로 쳐다보았다.원래 무진에 대해 반박할 말을 찾으려고 했
모혜정은 바로 안진검의 회사에 와서 안진검을 찾았다.직원들은 모두 모혜정이 안진검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막지 못했다.“오늘 저녁 같이 식사해. 좋은 식당을 찾았어.” 모혜정은 당당하게 말했다.‘어차피 안진검은 내 약혼자인데, 내가 부리지 않으면 누구를 부리겠어?’“바빠, 시간 없어!”안진검은 머리도 들지 않고 바로 모혜정의 제안을 거절했다.모혜정은 그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나서 웃었다.“진검씨, 당신은 내가 당신의 명실상부한 약혼녀라는 걸 알아야 해! 매번 같은 핑계를 쓰는데, 나한테 변명하며 얼버무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거야?”“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혼약은 부모님이 정하신 거야. 나는 당신에게 감정이 없어.” 안진검은 여태까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모혜정과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모혜정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모혜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진검 씨, 송성연이 마음에 든 거지. 말해!”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연의 미모는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안진검이 또 성연에게 밥을 사 준다면 이건 정말 문제야!’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안진검은 모혜정이 그야말로 억지를 부린다고 느꼈다.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빨리 대답해. 당신, 송성연이 마음에 들었지? 걔가 마음에 들어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다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모혜정의 목소리는 톤이 아주 높아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안진검은 여전히 편안한 모습으로 서류를 처리했다.“진검 씨, 솔직히 말해. 그 여자한테 빠져서 내가 약혼자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야!”안진검이 대답하지 않자, 모혜정이 달려가서 안진검의 팔을 잡아당겼다.안진검은 정말 귀찮았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어.’‘모혜정도 옆에서 쉬지 않고 따지고 있지.’안진검은 정말 모혜정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검 씨,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빨리 말을 해!” 모혜정은 손을 뻗어 안진검의 팔을
그리고 반대쪽. 부하들의 보고를 듣던 안진검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성연이 고향으로 내려가 있던 동안.안진검은 수하들에게 성연의 단서를 찾아내라고 했지만 줄곧 찾지 못했다.그래서 안진검은 화가 나 있었다. ‘원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빨리 송성연과 친구가 되려고 했는데.’‘결국 계획이 중단되었어.’‘송성연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 강무진 쪽의 소식도 늦어진다는 걸 의미해.’‘송성연의 주선이 없다면, 강무진은 나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을 거야. 또 단서를 잡고 내 신분을 똑똑히 조사할 수 있을 거야.’‘이 모든 것은 송성연을 통해서만 할 수 있어.’그러나 지금 결과가 없으니, 안진검이 어떻게 이 화를 참을 수 있겠는가!안진검의 안색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안진검의 앞에 선 수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안진검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마음속으로는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말투를 가다듬었다.“의부님.”안진검이 부하에게 손짓하자, 부하는 마치 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나갔다.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MS 가문의 대장로였다.안진검의 목소리를 들은 대장로가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애초에 떠날 때 이미 계획을 다 세워놓지 않았어? 지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거야?”“의부님, 죄송합니다. 잠시 사고가 생겨서 진행이 중단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안진검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장로에게 사과했다.“내게 사과해도 소용없어. 지금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주시하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간을 끌었지만, 더 이상 성과가 없다면 가문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거야! 만약 다른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이 나면, 네가 위로 올라갈 기회는 없어!”대장로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가까스로 이 기회를 잡은 안진검이 어떻게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서둘러 대장로에게 애원했다.“의부님,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제 계획이 곧 성과가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