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성남고의 참가자 세 명이 나란히 앉았다.남학생 한 명과 여학생 한 명이 성연과 함께 시합에 참가했다.이때 옆에 있던 여학생이 성연에게 사립학교 학생 세 명을 소개해 주었다.2년 연속 우승한 청산고등학교였다.“송성연, 저 여학생을 특히 조심해야 해. 이름이 곽세은인데, 진짜 대단해.” 성연의 왼쪽에 앉아있던 여학생이 말했다.곽세은은 아주 오만했다.하지만 사람은 오만함 때문에 패배한다.운명을 인정할 수밖에.성연이 고개를 들어 슬쩍 보니 모든 학생들 앞에 이름이 쓰여진 팻말이 붙어 있었다.곧이어 곽세은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꽤 눈에 띄네.’성연이 그녀를 쳐다보는 걸 느낀 걸까?곽세은도 곧 눈을 들어 도발적인 눈빛으로 성연을 훑어보았다.성연은 침착하게 시선을 돌렸다.곽세은의 눈빛을 본 옆자리 여학생이 분개하며 말했다.“곽세은, 저 싸가지 하고는. 지난번 대회에서는 다른 학교 학생 한 명을 울렸다고 하더라.”“너 그만 말해. 창피해 죽겠다. 작년의 경시대회에 우리 둘 다 참가했잖아. 곽세은, 정말 대단한 실력이야. 우리는 못 이겨. 송성연, 이번에는 너만 믿는다.” 옆에 있던 남학생이 성연을 보며 말했다.성연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짊어졌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을 정도다.“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대회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큰소리를 칠 수는 없으니까.특히 뒤쪽의 이윤하가 문제의 난이도를 계속 높이는 바람에 성연의 자신감이 적지 않게 줄어 있었다.반드시 이길 거라고 그녀도 장담할 수 없었다.그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할 수밖에.곽세은의 저 기세 등등한 모습을 보니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하지만 성연은 걱정하지 않았다.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자신의 기를 죽이고 대신 다른 사람의 기를 세워줄 필요는 없다.“그리고 맞은편에 또다른 학교 참가자 있지? 안경 쓴 저 남학생도 유망주야. 처음에는 그저 그랬는데 뒤로 갈수록 숨은 실력이 터지더니 곽세은을 이길 뻔했어. 쟤가 하드캐리했지
성연은 무진이 너무 대단하다고 느꼈다.‘수학 경시대회 경기의 문제형까지 알아맞히다니.’‘모두들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말하지만, 더 천부적인 그 사람은 바로 강무진이야.’‘만약 무진이 대회에 참가한다면, 틀림없이 이 사람들을 순식간에 전부 쓸어버릴 텐데.’‘역시 WS그룹 같이 큰 기업을 운영하는 엘리트다워.’‘그의 정신력과 예측 능력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야.’성연은 마음속으로 무진에 대해서 한바탕 칭찬했다.그렇다고 문제를 푸는 속도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손을 멈추지 않고 빠르게 펜을 움직이며 암산을 했다.무대 아래에서 그들의 경기를 보던 이윤하도 꼭 잡은 손에서 식은땀이 났다.그녀는 마음속으로 긴장했다.사실 그녀 자신도 송성연이 해낼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성연이 제출한 답안은 확실히 훌륭했다.그러나 어찌 되었든 성연이 처음 대회에 참가했기에, 여전히 안심할 수가 없었다.“딩동, 딩동.” 벨소리가 울리자 모두 쳐다보았다.벨을 누른 사람은 북성남고의 송성연이었다.그리고 사립학교 사람들과 정우석도 벨을 눌렀다.여기저기서 울리는 벨소리는 센서가 감지하지 않으면 마치 동시에 울리는 것 같았다.하지만 성연이 그들보다 더 빨랐다.무대 위에 있던 북성제일고의 선생이센서를 확인한 후에 성연을 일어나게 했다.“네, 송성연 학생, 이 문제의 답을 말해 보세요.”성연이 즉시 답을 말했다.심판을 맡은 북성제일고 선생이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틀린 것 없이 모두 정답을 맞혔습니다.”이윤하는 기뻐서 눈썹을 치켜세웠다.‘보니, 과연 성연의 실력은 감출 수 있는 게 아니야.’‘이번에는 우리 북성남고에도 희망이 있어.’이윤하는 성연에 대해 가졌던 예전의 생각을 모두 수정했다. ‘어디를 봐서 골치덩어리 학생이야?’‘완전 보물이지.’그녀가 데리고 있는 어떤 학생보다 뛰어났다.저 머리에서 나오는 사유 능력은 정말 스스로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그녀가 젊었을 때는 성연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성연이 문제를 다
문제가 나오자 많은 참가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눈썹을 찌푸렸다.문제 유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첫 번째 문제는 일단 괜찮다 해도 두 번째 문제는 완전히 한 단계를 뛰어넘었다.심지어 이미 고3 범주에 해당되는 문제였다.순간 많은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북성남고 쪽에서도 한 학생이 답을 쓰지 못했다.실력이 되는 참가자들은 아주 빠르게 문제를 풀고 또 벨을 눌렀다.이번에도 역시 성연이 앞섰다.선생님이 성연을 호명하자 성연이 일어나 대답했다. 역시 정답이었다.각 고교의 교사들은 모두 모여 앉아 있었다.모두 자기 학교의 참가자 팀을 이끄는 교사들인 만큼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에도 좋았다.이때 성연이 또 문제를 맞히는 것을 보고는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선생님, 학생을 정말 잘 가르치셨군요. 저렇게 대단한 비장의 카드가 있는데 예전에는 왜 꺼내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참은 겁니까?” 한 선생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남고는 일부러 그런 거야, 오자마자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려고.’‘멋지게 역전을 해서 더 통쾌하게 보이려는 건가?’“이 학생은 이번 학기에 전학을 와서, 저도 별로 가르치지 않았어요. 완전히 천부적인 재능이 있을 뿐이에요.” 이윤하는 감히 공을 내세울 수가 없었다.시합에 참가할 때마다 성연은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었다.이전에 자신이 성연을 조롱했던 여러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며 따가운데, 어디서 감히 이 공을 떠맡을 수 있겠는가?“이번 학기에 전학을 왔어요? 천재야, 대단해.” 그 선생님도 성연의 천부적인 재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어떻게 송성연은 우리 학교가 아니라 북성남고로 들어간 거야?’‘정말 좀 아쉽네.’“그쪽 북성남고는 이런 반전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다른 선생님도 따라서 말했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그냥 보통인 거죠.” 이윤하는 겸손한 말을 하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멈추지 못했다.성연은 이번에 정말 그녀의 체면을 세웠다.“쯧쯧쯧, 보아하니
성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그녀는 기분이 고조되었다. 이런 대회가 꽤 재미있다고 느꼈다.성연은 매우 자극적이라고 느꼈다.한계에 도달하는 활동을 좋아하는 그녀로 하여금 극한의 쾌감을 체험하게 했다.이것은 정신적인 자극과는 아주 달랐다.세 번째 문제가 나왔다.이번에는 청산고교의 학생들이 앞섰다.답도 맞았다.네 번째 문제는 정우석이 앞섰다. 역시 정답이었다.선수를 빼앗겼음에도 성연은 속상해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좀 느렸던 것이다.이 대회장에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성연은 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대등한 상대와 겨뤄야 더 재미있어.’북성남고의 다른 한 여학생은 이미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곧 답안을 포기했다.이 문제를 다 보았을 때, 다른 사람이 답을 이미 말했다.그녀는 이미 더 이상 답을 할 자신이 없다고 느꼈다.‘올해의 문제는 작년 것보다 많이 어려워졌어.’‘작년에는 겨우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었지만, 올해는 세 문제 중에 하나도 풀지 못했어.’지금 그녀는 성연에게 좀 감탄하는 중이었다.‘자신도 성연만큼 대단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이제 겨우 오전인데, 벌써 포기하게 생겼어. 오후 시합에 굳이 참가할 필요가 있을까?’나머지 참가자들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지금 경쟁하듯이 대답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각 학교의 리더들이었다.다른 사람들은 실력을 발휘할 여지가 전혀 없었지만, 이 또한 경기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고수들끼리의 승부를 보면서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었다.동시에 속으로 그들을 위해 긴장했다.‘누가 한 수 위인지 모르겠어.’이윤하는 한 학생이 이미 문제를 풀 생각이 없는 것을 보았다.속으로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그렇게 오랫동안 연습했던 것은 바로 이날을 위해서였는데.결국 하프타임까지도 버티지 못하다니.‘그러나 이것도 저 아이들을 탓할 수는 없어.’‘이번 문제는 너무 까다로워, 게다가 모두 어려운 문제 유형이야.’‘시합에 참
한 시간 반 후에 경기가 끝났다.무대 위의 선생이 점수를 집계했다.최종적으로 성연이 쪽에서 다섯 문제를 먼저 맞히며 50점을 쌓았다.정우석은 30점.“청산고등학교는 역시 강해, 40점이야.”나머지 한 참가자는 10점, 또 어떤 참가자들은 아예 점수가 없었다.점수가 비교적 낮은 참가자들은 기분이 매우 가라앉아 보였다.북성제일고의 선생님이 단상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자, 오늘 오전 경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점심 식사 후에 잠시 휴식하고, 오후에 새로운 문제로 다시 대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오전 시합이 끝난 뒤에 성연도 좀 피곤함을 느꼈다.‘계속 머리를 굴렸더니 확실히 피곤해.’이것은 일종의 정신적인 피로이지만, 성연은 오히려 흥분감을 느꼈다.이번 시합은 그녀에게 새로운 경험이어서 꽤 즐거웠다.이때 정우석이 자신의 자리에서 나와 성연에게 다가왔다.그는 웃으며 성연에게 말했다.“지난번에 말했지? 너에게 우리 학교 구경시켜 주고 싶은데, 어때?”시합이 끝나자 정우석은 지체 없이 걸어왔다.성연과 얼마나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인지 느낄 수 있었다.“좋아, 그럼 우리 북성남고 친구들도 데리고 너희 학교를 구경하자.” 성연이 동의하며 다른 두 친구를 데리고 이윤하에게 인사하러 갔다.정우석의 원래 의도는 성연과 단둘이 있는 것이었다.단둘이 학교를 구경하는 거였는데.뜻밖에도 성연이 다른 친구들을 같이 불렀다.정우석은 좀 아쉬워했지만,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여전히 점잖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였다.이윤하에게 가서 아이들과 학교 구경할 거라는 말을 했다.이윤하는 반대하지 않았다.동시에 성연이 대회에 참가한 모습을 생각하며 이윤하가 웃기 시작했다.“성연아, 오늘 아주 잘했다. 오후에 차분히 실력을 발휘하기만 하면 돼. 이따가 밥을 먹고 좀 푹 쉬어.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이윤하는 성연이 피곤해서 오후 경기에 영향을 줄까 우려했다.‘어느 것이 가볍고 어느 것이 중한지, 성연은 그래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성연이 고개
정우석의 학교 음식은 맛있기로 유명한데, 식당 아주머니는 요리를 하면서 손을 떨지 않았다.매일 북성제일고 학생들에게 충분한 양을 공급하기 때문에 다툴 필요가 전혀 없었다.북성남고의 학생으로 얼마나 행복한지는 말할 것도 없다.정우석과 송성연은 줄을 섰다.정우석이 말했다.“우리 학교는 말린 생선튀김이 특히 인기가 있어. 겉바속촉에 기름도 느끼하지 않아서 특히 맛있어.”성연은 그가 이렇게 음식을 자랑하자 듣고 웃기 시작했다.“네가 이렇게 말하니, 내가 정말 제대로 맛을 봐야겠다.”“그럼.” 정우석도 웃으며 대답했다.성연은 결국 말린 생선을 잡았다.정우석은 직접 그의 식당카드를 긁어서 두 사람의 밥값을 모두 결제했다.사실 성연은 정우석과 몇 번 만났을 뿐 익숙하지 않았다.그녀는 이렇게 다른 사람의 득을 보고 싶지 않다.그래서 성연이 말했다.“얼마야? 네이모 페이로 이체해 줄게.”정우석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성연아, 너 날 낯선 사람처럼 취급하지 마. 나는 우리 둘이 어쨌든 친구라고 생각해. 여기는 또 우리 학교니까 내가 당연히 손님을 대접하는 거야. 한 끼 정도 밥값은 내가 낼 수 있는 거잖아?”성연은 그가 이렇게 말하자 할 말이 없었다.두 사람은 식판을 들고 자리를 찾았다.통로를 지나다가 그들은 한 여학생을 만났다.“정우석, 내가 창가 자리를 맡았어. 나랑 같이 밥 먹을래?” 이 여자의 이름은 강가희였다.북성제일고의 퀸카 줄곧 정우석을 좋아했다.아주 맹렬하게 대시하면서 정우석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거의 숨기지 않았다.전교 학생들은 강가희가 정우석을 좋아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정우석은 강가희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강가희에 대한 흥미도 없었다.그는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친구를 데리고 있으니 너 혼자 먹어. 우리는 다시 자리를 찾을게.”강가희는 깊은 뜻이 있는 듯 성연을 한 번 보았다.그녀는 벌써 들었다.정우석이 북성남고에 시합에 참가하러 갔다가 북성남고의 한 여학생에게 호감이 생긴 것 같
성연은 그들 사이의 갈등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그냥 웃길 뿐이야.’그녀가 먼저 말했다.“정우석, 너는 강가희와 먹으러 가. 나는 혼자 장소를 찾으면 돼.”성연은 상관없다. 그녀도 반드시 정우석이 동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그냥 밥만 먹는 거야. 내가 먹는 거하고 다른 사람들이랑 먹는 거하고 똑같잖아.’‘배만 채우면 돼.’말하면서, 성연은 식판을 들고 옆으로 갔다.그러나 정우석은 빠른 걸음으로 성연을 따라가서 말했다.“너를 데리고 먹기로 했는데, 약속을 어기면 안되잖아?”이는 성연이 처음으로 북성제일고에 온 것인데, 정우석은 성연 앞에서 나쁜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그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강가희를 내팽개쳤다.강가희의 표정은 아주 좋지 않았다.그녀는 정우석을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아직 정우석이 누구에게 그렇게 정성스럽게 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송성연 그녀에게 아주 강렬한 적의를 갖게 되었다.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강가희의 곁에 있는 친한 친구가 말했다.“딱 보니 일부러 도도한 척하면서 바로 알랑거리면서 남을 홀리는 여자야. 이따가 우리가 시간을 내서 저 음흉한 X에게 경고해야겠어.”강가희는는 입술을 오므리고 차디찬 표정을 지었다.“내 근거지인 북성제일고에서 감히 내 남자를 빼앗을 수 있다니, 자기 주제도 모르잖아?”그녀는 정말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정우석은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있어서 줄곧 정우석을 쫓아다녔고, 정우석이 자신을 좋아할 때까지 기다렸다.그런데 도중에 송성연이란 애가 뒤어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이걸 어떻게 참아?’그녀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묵인하여 쫓든지 간에, 그녀는 모두 자신이 원해서 그랬다.그러나 정우석은 그녀의 것이다. 정우석이 그녀의 추구를 승낙하기 전에는 누구와도 함께 있을 수 없다.누구도 그녀의 손에서 정우석을 빼앗을 생각을 하지 마라.“자, 화내지 말고 이따가 시간을 내서 그녀에게 어떤 사람을 건드리고 어떤 사람을
북성남고의 식당은 또 등급이 구분되어 있다. 예를 들면 1식당, 2식당, 3식당이다.위로 올라갈수록 맛도 좋고 가격도 비싸다.그런 게 성연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북성제일고처럼 맛도 좋고 가격도 싸서 누구나 먹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점심 식사 후.성연은 정우석과 헤어져서 각자 갈 길을 갈 생각이었다. 그녀는 장소를 찾아 휴식을 취하면서 힘을 비축하고 싶었다.정우석도 가로막지 않았다.‘앞으로는 성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을 거야.’오후에 시합이 있으니, 어쨌든 정우석은 성연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마침 북성제일고의 선생님이 와서 정우석을 불렀다.“정우석, 나와 함께 사무실에 좀 가자. 내가 너에게 볼일이 좀 있어.”정우석이 송성연에게 작별 인사를 하자 송성연 혼자 남겨졌다.정우석과 함께 하지 않으니, 성연 혼자서도 즐겁고 편안했다.이때 무진에게서 전화가 왔다.성연은 조용한 곳을 찾아 전화를 받았고 말하는 소리도 절로 즐거워졌다.“왜요?”무진은 성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성연의 경기가 아주 순조로웠음을,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으리라 짐작했다.그의 목소리도 많이 부드러워졌다.[일부러 너를 보러 학교 앞으로 왔어.]성연은 자기가 곧 나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서 바로 무진을 보러 나갔다.그 익숙한 차가 교문 앞에 세워진 것을 보고 성연은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문을 나서서 차에 탔다.달려오느라 헝클어진 성연의 머리카락을 무진이 다듬어 주었다.“시합은 어땠어?”성연은 점수 순위를 말했다.당연히 그녀가 일등이다.말하면서 성연은 아직 조금 거만을 떨었다.오로지 무진 앞에서만 이런 감정을 드러낼 수 있었다.사탕을 얻은 어린아이들은 바로 주위의 가장 좋은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로.유치하지만 성연의 가장 진실한 성정이기도 하다.무진은 칭찬했다. “음, 대단한데?”그는 성연이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때때로 성연이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웠다.그가 가진 것은 모
손민철의 안배로 조수경의 미모를 이용해서 돈 많은 사장들을 꼬셔냈다.조수경의 업무 실적이 아주 빠르게 올라갔다.지난 번의 거의 두 배에 가깝게.이런 놀라운 업무 실적 상승에 사람들은 조수경의 능력을 다시 보게 되었다.이전에 조수경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들도 이번 성과를 본 후에는 완전히 승복했다.사람들은 그 내막을 모르는 상태로 그저 조수경이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라고만 생각했다.앞으로 조수경은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옆에서 조수경을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다.대표실 안.비서 손건호가 서류 파일 하나를 손에 들고 있다. 바로 조수경의 업무 보고서가 들어 있는 파일이다.“보스, 좀 보시죠.”두텁게 쌓인 서류는 상당히 무게가 있어 보인다.무진이 눈을 들어 손건호를 한 번 쳐다본 후, 고개를 숙여 눈앞의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몇 분 동안 집중해서 문서를 모두 살폈다.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무진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보고서를 다 확인한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어떻게 이렇게 많지?”손건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는 조수경 쪽을 직접 주시하지 않고 따로 사람을 보내 지켜보게 했었다.그러나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나 조수경의 이 업무 실적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많았다.손건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계속 말했다.“지금 조수경 씨의 이 업무 실적이라면 이론상 팀장의 위치까지 승진해야 합니다.”무진은 어렴풋이 조수경이 이렇게 하는 목적을 알아챘다.지금 강씨 집안 사람들 모두가 조수경을 피하고 만나주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이런 방법을 썼을 테고...“묵살해!”손건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건 담당 부서의 책임자가 제출한 겁니다. 묵살할 방법이 없습니다.”만약 묵살해 버린다면, 회사 내의 많은 직원들이 실망하는 것은 물론, 직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어쨌든 조수경의 업무 실적이 여기에 이렇게 버젓이 있는 이상, 누구
조수경의 표정이 좀 어정쩡했다.사실 마음속은 성연에 대한 원망으로 꽉 차 있었다.고택에 찾아갔더니, 안금여와 강운경은 자신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강무진도 자신에게 어찌나 냉담한지.조수경은 성연이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라고 생각했다.물론 강씨 집안에서 충분히 많은 것들을 해 주었겠지만, 외부인이 송성연에게 이런 명품들을 선물한 적은 없을 것이다.송성연 쪽에서부터 손을 쓰기로 생각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성연은 자신들보다 더 상대하기 힘든 강골이었다.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수경의 얼굴에는 거꾸로 억울하고 불쌍한 표정이 가득 차 있었다.“성연 씨, 당신 생각을 이해해요. 앞으로 꼭 무진 오빠와 거리를 둘 게요. 다만...”조수경은 성연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말했다.“나는 할머님과 고모님을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고모님과 할머님은 지금 나를 전혀 만나시려고 하질 않으세요.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어 성연 씨를 찾아온 거예요. 성연 씨가 나를 용서해 준다면, 두 분도 나를 다시 만나 주실 거라고 믿어요.”조수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찾아왔는가 싶었더니, 알고 보니 조수경은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택에 찾아가면, 무슨 일을 하든 훨씬 편리할 테니까.“할머니랑 고모가 어떻다고요? 그 분들 뜻이에요.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나도 두 분 어른의 뜻은 못 꺽어요. 나를 핑계로 해서 그 분들을 설득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건 말도 안 돼는 일이에요. 생각도 하지 말아요.” 성연이 딱 잘라 말했다.자신의 마음이 난도질을 당하는 것을 본 조수경은 얼굴의 미소를 계속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그래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는 그냥 우리 두 사람의 오해를 풀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때는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어요. 송성연 씨, 정말 미안해요. 나는 정말 일이 이렇게 되는 걸 원한 게 아니에요.”“조수경 씨가 무진 씨와 거리를 두기만 한다면, 우리 사이에는 오해가 생길 리가 없겠죠.”성연이 담담한 표정으로 조수경을 쳐다보았다.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낸 후 성연의 시간은 다시 한가해졌다.지금 성연은 정원에서 꽃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꽃모종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소 귀한 약재들이다.엠파이어 하우스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다.거의 비료를 준 적이 없는 셈인데도 토양이 아주 비옥했다.성연이 몇 그루를 심어 보았는데 모두 살아남았다.손을 씻고 거실로 들어오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낯선 번호에 성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구지, 이 사람은?’‘기억에 없는 번호인 것 같은데?’원래 받기 싫은 마음에 잠시 망설이던 성연이 결국 전화를 받았다.“네.”“송성연 양, 저 조수경이에요.”휴대폰 건너편에서 조수경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성연의 두 눈썹 앞머리가 올라갔다.“조수경 씨가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조수경이 자신 때문에 고택에서 쫓겨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성연은 조수경을 보지 못했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를 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그런데 내 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조수경은 가는 음성으로 말했다.“송성연 씨, 얘기 좀 하고 싶어요.”성연은 나갈 생각이 없었다. 조수경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고.조수경을 본다면 그날 밤의 그 장면이 떠오르며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그런데 왜 조수경은 자신의 화를 돋우려 하는 거지?’“죄송합니다만, 요즘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 성연의 음성은 의외로 담담했다. 음성이 오르내림이 전혀 없이.오늘 반드시 성연을 만날 결심을 한 조수경이 애원을 하듯이 사정했다.“송성연 씨, 제발, 한 번만 저를 만나 주세요. 요 며칠 저는 무척 괴로웠어요.”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수경이 더 간절히 매달리며 이어 말했다.“그냥 송성연 씨와 몇 마디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성연 씨, 제발 부탁해요.”성연이 조수경을 겁내서가 아니었다.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억울하다는 듯이 사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도대체 조수경이 자신에게 무슨 이
5일의 일정 동안 세 사람은 북성의 명소 네다섯 곳을 돌아다녔다.원래 좀 더 있을 생각이었지만, 샤넬 가문에 뭔가 일이 생겼는지 곧 돌아가야 했다.성연은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더 재미난 곳도 많은데.풀이 죽어 있는 성연의 모습에 미스 샤넬이 웃으며 성연의 뺨을 꼬집었다.“그러지 마. 나중에 우리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거야.”갑자기 일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에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은 매일 같이 업무로 바쁜 무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떠나는 미스 샤넬과 목현수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점 한 곳을 예약했다.성연이 이번에 예약한 곳은 평이 좋은 가정식 요리 전문점이었다.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한 목현수가 이런 정통 가정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한 성연이 특별히 그에게 맛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테이블에 오른 음식들은 소담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미스 샤넬은 눈앞의 음식들을 보며 폰을 들어 한참 촬영을 한 후에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정말 맛있어. 와, 매번 색다른 맛을 경험하게 해 주네요.” 이곳의 음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미스 샤넬이 연신 감탄했다.입에 맞지 않는 것들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맞아요. 우리 북성에는 맛있는 음식과 재미난 것들이 정말 많아요.” 성연이 미스 샤넬씨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맞아요. 이곳은 산수가 수려해서 경치도 너무 아름다워요. 앞으로 현수 씨가 원한다면, 현수 씨를 따라 이곳에 와서 정착해도 좋겠어요.” 첫날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미스 샤넬은 무척 즐겁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좋아요. 그러면 그 때 우리 적당한 곳을 고를 수 있어요. 나랑 무진 씨도 두 사람과 같은 곳에 살고.” 그 생각을 하던 성연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것도 좋죠.” 샤넬 양이 맞장구를 쳤다.그러나 그 가능성은 몹시 희박했다.샤넬 가문은 유럽에서 세력이 무척 큰 가문 중의 하나.지금 연세가 많은 미스 샤넬의 아버지는
남은 일정 내내 성연은 미스 샤넬, 목현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북성 주위의 관광 명소들은 전부 한 바퀴 돈 셈이다.무진의 당부를 새기며 최대한 깊은 물이 있는 곳은 피하면서.또 성현은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을 위해 온갖 명소들을 방문해서 즐길 계획을 짰다.성연은 하룻밤 내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래도 무진의 말을 잘 따른 셈이다. 위험한 곳들은 가지 않았으니까.오늘 그들이 함께 온 곳은 커플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주위에는 온통 팔짱을 낀 젊은 커플들이었다. 공기 중에는 핑크빛 기운이 가득했다.반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사이에 혼자 낀 성연은 눈치 없는 들러리 같았다.성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말이다.그러나 지금 서로 손을 깍지 낀 채 닭 털을 날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성연 자신이 피해 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성연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거 아냐?’‘진즉 알았으면 무진 씨를 데리고 올 걸 그랬지.’“샤넬, 저기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을래요?”성연은 핑크색으로 장식을 한 건너편의 가판대를 가리켰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미스 샤넬이나, 샤넬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해서 그냥 바로 이름을 불렀다.“나도 먹어요.” 미스 샤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목현수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 시간.하지만 건녀편에는 그늘이 전혀 없었다.목현수는 양산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내가 사올 게. 무턱대고 저쪽으로 갔다가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목현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샤넬,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목현수가 먼저 미스 샤넬에게 물었다.“다 괜찮아요, 당신이 사 주는 거랴면요.”
식당 안.미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그러나 목현수는 음료수 한 잔만 손에 쥔 채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의아하게 쳐다보던 미스 샤넬이 물었다.“안 먹어요? 왜 날 쳐다보고 있어요?”오늘 목현수가 좀 이상했다.“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줄 게.” 정상적인 대화이긴 하지만, 목현수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조금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아주기도 했다.이전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 목현수였다.미스 샤넬의 오늘 모습은 목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좀 새롭게 보였다.주스를 한 모금 마신 목현수가 입을 열었다.“미스 샤넬, 오늘 왜 굳이 성연을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어? 설마 네도 위험하게 될 줄 몰랐어?”목현수의 눈에 미스 샤넬은 늘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제일 먼저 강에 뛰어들어 성연을 구한 사람은 미스 샤넬이었다. 목현수의 물음에 잠시 멍해 있던 미스 샤넬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송성연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그러지 않고 송성연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평생 자책하며 살 테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송성연을 구해야 했어요.”그러니까 미스 샤넬은 목현수 때문에 송성연을 구했다는 의미.만약 송성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미스 샤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 말했다.“공교롭게도 내가 한 수영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감히 그런 용기 못 냈지.”미스 샤넬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순간 목현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목현수를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미스 샤넬.목현수 자신이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목현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미스 샤넬에게 약속했다.“이전에는 정말이지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미스 샤넬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거야.”미스 샤넬의 눈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
목현수도 한숨을 돌렸다.방금 성연에게 일이 생기자 목현수는 바로 손건호에게 알렸다.원래 다른 곳에 있던 손건호가 그제서야 달려왔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십니까?” 성연의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것을 본 손건호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난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던 성연이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이 일은 무진 씨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냥 지나가면 돼요.”손건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리 둘이 옷을 갈아입게 민박집을 좀 잡아주세요. 자칫하다 감기에 걸리겠어요.”이 관광지는 비교적 유명한 곳이라 근처에 민박집들이 많이 있었다.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 성연이 미리 조사한 사항들이다.“예.” 고개를 살짝 끄덕인 손건호가 그들을 데리고 나가서 모두 차에 올랐다.차에 올라탄 성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정중하게 말했다.“미스 샤넬, 고맙습니다. 오늘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물속에서의 질식감을 떠올린 성연은 여전히 심장이 벌렁거리는 듯했다.“괜찮아요. 당신은 내 친구니까 구할 수 있었어요. 물론 내가 구하긴 했지만 마음에 두지 말아요. 친구끼리는 서로 도와야지요.” 미스 샤넬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대범하게 말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연은 그전에 미스 샤넬과 적지 않은 오해를 겪었다.그런데도 그녀가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미스 샤넬의 손을 잡은 성연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곧 그들은 손건호가 잡은 민박집으로 들어갔다.목현수가 미스 샤넬과 성연을 향해 말했다.“두 사람은 먼저 들어가서 좀 씻어. 내가 갈아입을 옷을 구해올 게. 여기 있는 옷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그래요.” 미스 샤넬은 별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목현수가 옷을 사 주겠다고 하자 성연은 아무래도 좀 어색했다.예전엔 별일 아니었지만, 이제 그들은 다 자란 성인들이었다.성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나, 나는 필요 없으니까 미스 샤넬만 사주면 돼요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