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보다 먼저 와 있던 성연은 창고 위 구석에 웅크린 채 앉아서 한참이나 그들의 싸움을 몰래 지켜봤다.적당한 때를 봐서 약재를 가지러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그런데 도중에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등장한 것이다.한참을 관찰해 보니 저 ‘불청객’ 어째 익숙한 사람이 아닌가.‘하, 강무진이라니.’성연의 마음이 꽤 복잡해졌다. 여기서 또 이렇게 맞닥뜨릴 줄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도대체 자신과 강무진은 무슨 이런 악연이란 말인지.옆에서 같이 무진의 얼굴을 확인한 서한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보스, 강무진이 왜 여기에 있죠?”‘설마 강무진이 일부러 여기를 노리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서한기는 무진에 대해 썩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성연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강무진이 있었다.성연이 해명하지 않아도 자신은 성연의 능력을 믿었다. 서한기는 무진이 고의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내가 어떻게 알겠어?” 성연도 머리가 아파왔다.다른 사람이 와서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강무진이 직접 왔더라면 성연이 손을 쓸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그럼 보스, 우리 이제 어떡하지요?” 서한기가 뒤통수를 긁적였다.“좀 두고 보지.” 성연이 이를 악문 채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쌍방이 지금 한창 싸우는 중이다.성연은 우선 조용히 싸움의 추이를 지켜보았다.뒤로 갈수록 성연은 점차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이러다가는 약재를 그대로 빼앗길 것 같았다.“시작해.” 성연이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서한기가 수하들을 데리고 돌진했다.오기 전에 모두들 이미 위장을 한 상태라 다행이었다. 만약 무진이 자신 중 하나를 알아본다면 큰일이니.또 다른 제3의 무리가 등장하자 블랙문과 무진 양측 모두 깜짝 놀랐다. 무진이 입을 꽉 다물었다. ‘강문호, 보기만 아작을 내버릴 테다.’‘이 위치를 또 누가 알고 있단 말이지?’‘강문호, 정말 일을 만드는군.’‘설마, 강상철 쪽에서 물건을 강탈하는 척하며 자신을 여기로 끌어들
보고서를 통해 미리 상황을 파악한 성연이다.조직 블랙문이 이곳을 숨어서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그래서 이번 작전에 성연은 많은 인원을 데려오지 않았다.수적인 열세로 인해 점차 무진 측의 사람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약재 주변을 점점 무진 측의 사람들이 장악해 나갔다.처음에는 무진의 몸을 걱정해서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하던 성연이었다. 하지만 수하들이 점차 밀리는 상황을 본 성연은 저도 모르게 아주 심각해졌다.성연이 휘두르는 긴 채찍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한 무더기씩 쓰러졌다.그러나 무진이 데려온 인원이 너무 많았다. 성연은 아무리 강하다 해도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뒤로 갈수록 성연은 마음이 급해졌다.동시에 속으로 좌절감도 느꼈다.서한기와 곽연철 모두 성연의 심리 상태가 좋지 못함을 느꼈다.서한기가 기회를 틈타 성연 옆으로 가서 성연에게 다가가는 상대를 쳐냈다. 성연의 귀에 대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몇 마디 했다.“보스, 맞은편 상대를 그냥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강무진이라고 생각하지 말고요. 이러다간 보스 위험해요.”강무진은 이미 성연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음을 서한기는 알았다.그렇지 않다면 송성연이 이처럼 혼란 상태에 빠질 리가 없었다.성연도 자신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을 다잡은 뒤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너희들은 나 신경 쓰지 말고 약재를 빼앗는 데만 집중해.”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미워한다고 말하려니 강무진이 미워지지 않았다.강무진에 대해서는 무력해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가능하다면, 정말 무진이 여기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랬다.무진과 적이 되는 것이야 말로 그녀가 가장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다.그녀의 마음속에 깊이 가라앉아 있던 감정이었다.그러나 지금 이렇게 많은 수하들을 거느린 상황에서, 또 사부님이 보내신 약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억지로라도 무진과 대적할 수밖에 없었다.성연은 계속 앞으로 나서며 무진과 맞붙었다
결국 성연은 약재를 무진에게 빼앗겼다.물건을 손에 넣은 직후, 무진 쪽 사람들은 즉시 창고를 떠났다. 조금도 지체함 없이 아주 신속하고 깔끔한 동작들이었다.성연은 눈을 부릅뜬 채 무진 일행이 사라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이리저리 마음이 복잡했다. 정말 지금의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약재를 다른 사람도 아닌 강무진이 탈취해 가다니, 전혀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다.‘이제 어떡하지?’성연이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창고 입구를 주시했다.그러다 구석에 쭈그리고 있는 블랙문의 몇몇 조직원을 바라보았다.바로 걸어가서 채찍으로 블랙문의 패거리들에게 몇 차례 채찍을 휘둘렀다.“누가 너희들에게 내 물건을 강탈하라고 시켰어?”블랙문 조직원들은 바닥에서 뒹굴었다.“우, 우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보스가 여기에서 지키고 있게 해서…….”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그들은 그 물건이 무엇인지조차도 몰랐다.“보스?” 성연이 눈썹을 치켜 세웠다.보아하니 이곳을 지키던 몇 명은 그저 졸개에 불과했다.저들 뒤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네, 우리 보스가 시킨 일인 걸요.” 그중 하나가 코를 훌쩍거리며 몹시 겁을 먹은 듯 말했다. 성연에게 맞설 용기는 전혀 없이.“너희들 보스가 누구야? 그리고 너희들은 평소 어디서 모여?” 성연은 배후 인물을 알아낼 작정이었다.이것들이 먼저 손대지만 않았어도 지금 약재들은 무진에게 빼앗기는 일 없이 자신의 손에 고스란히 들어와 있을 텐데.이리 재고 저리 따져도 역시 블랙문 이 조직이 문제였다.‘내 물건을 강탈했으니, 절대로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지.’작은 조직일 뿐이지만 완전히 밟아버려서 앞으로는 감히 더 이상 나쁜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말이다.“보, 보스가 우리에게 말할 때는 보통 검은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고 입구에서 한 번 본 적 밖에 없습니다. 보통은 주로 전화로 연락합니다.”블랙문의 조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아는 대로 불었었다.그들은 단지 보스의 지시대로 지키고 있었을 뿐이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는 성연이지만 자신은 잘 알고 있다.지금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사납게 요동치고 있는지.북성에서부터 태평양을 건너 이곳으로 날아왔다.바로 약재들 때문에 말이다.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약재를 무진이 가져갔다.피를 토할 정도로 성연은 화가 치밀었다.친부를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어.서한기는 이렇게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일어나 성연의 곁으로 다가갔다.“보스, 내가 사람을 데리고 쫓아가서 물건을 가져올까?”그렇게 중요한 물건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이런 고생을 하며 외국까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차마 성연의 처진 모습을 볼 수 없었다.설령 상대가 강무진이라 해도 두렵지 않았다.누가 알았겠는가, 성연이 도리어 고개를 저으며 무진 쪽을 쫓으려는 생각을 가로막을 줄.“이번 일은 아마 무슨 착오가 있는 듯해. 먼저 가서 똑똑히 알고 보자.”성연은 무진이 이곳에서 재료로 사용할 화물들을 압수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러니 강무진의 목적은 그 화물들이야, 우리 약재가 아니라.’원래대로라면 강무진은 자신들의 약재에 대해 모르는 게 맞았다.무진의 현재 몸, 그리고 그가 관련하고 있는 영역에서는 이 약재들을 사용할 수 없다.성연은 무진이 이 창고에 나타난 순간부터 일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일단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 좋다.좀 달갑지 않은 마음의 서한기였지만, 그가 성연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여지껏 한 번도 없었다.다른 쪽으로 걸어가던 서한기가 소리쳤다.“보스, 강무진을 대할 때는 좀 너무 특별한 거 아닙니까?”“특별해?” 성연이 기막히다는 듯 물었다.“뭐 때문에 그런 착각을 한 거야?”“됐습니다.” 성연이 앞에서 감히 입을 열 용기가 없던 서한기가 빙 돌아서 곽연철의 뒤에 숨었다.“강무진이 여기 있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분명 뭔가 착오가 생긴 거야. 약재가 강무진의 손에 들어간 게 오히려 더 안전할 수도 있어. 기회를 봐서 찾아오면 그만이니까.” 이렇게 말하면
한 차례 블랙문 조직원들을 훈시한 후 잠시 앉아 있던 성연이 수하 몇 명만 남겨둔 채 창고를 떠났다.저 조무래기들을 미끼로 이용해서 블랙문의 보스를 끌어낸 후 저들 조직의 소굴을 찾아낼 계획이다.자신의 약재를 강탈해 간 만큼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게다가 블랙문에서는 이 약재가 아수라문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강탈해 갔다는 것은 아수라문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는 뜻이다.그녀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블랙문에게 그 끝이 어떻게 되리라는 걸 알려줄 것이다.돌아가는 길, 성연은 고개를 창밖으로 향한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잠시 뒤 돌아가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무진을 마주 대할 지 고민했다.무진의 조금 전 행동이 너무 미웠다. 이가 갈릴 정도로. 참지 못하고 무진을 작살내 버릴지도 모른다.그렇게 심혈을 기울였는데도 강탈당했다는 사실에 울화가 터질 지경이다.곽연철이 앞자리에서 운전대를 잡고 서한기는 조수석에 앉았다. 뒷좌석에 혼자 탄 성연이 뒤로 몸을 기댔다.좀 멍한 표정이다.지금 성연의 상태가 썩 좋지 않은 게 보였다.서한기는 몰래 자기 뺨을 한 대 쳤다. 약재는 성연의 사부님이 보내준 거였다.성연에게 사부님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서한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지금 약재를 빼앗겨 가장 괴로운 사람은 송성연 본인일 것이다.그런 보스한테 그런 말을 했으니.자신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뭔가라도 해 보려는 생각에 서한기는 곽연철에게 차를 세우라고 요구했다.곽연철이 서한기를 힐끗 돌아보며 물었다.“너 또 뭘 어쩌려고?”“내려서 뭐 좀 사려고.” 서한기가 곽연철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곽연철이 고개를 돌려 성연을 한 번 쳐다보았다.성연이 아직 앞쪽의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것을 본 곽연철이 천천히 차를 세웠다.서한기가 문을 열고 내렸다.갑자기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차문이 닫히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성연은 그저 차창을 통해 서한기의 뒷모습만 쳐다볼 뿐이다.성연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서한기가 지금 어디로
무진은 호텔로 돌아가지 않고 물건을 가지고 먼저 지사 창고로 갔다.그곳에 새로 임명된 지사장 이성태가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한 채 무진을 맞았다.뒤에 있는 수하들이 박스를 들고 무진의 뒤를 따랐다.무진은 강문호 쪽에서 계략을 쓴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우선 강문호가 원재료를 줄였는지 먼저 확인해 보기로 했다.지하 창고에 도착하자 손건호가 다가와 상자를 열었다.그런데 현장에서 상자 안의 물건을 보던 사람들이 모두 일시에 멍해졌다.상자 안의 물건은 자신들이 원하던 재료가 아니었다.말린 초목 한 무더기가 들어있는 것을 보며 약재인 것으로 추정했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렵게 어렵게 가서 찾아왔는데 돌아와서 보니 가져온 게 엉뚱한 물걸이다?손건호는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강문호가 일부러 자신들을 물 먹였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잘못했거나.그러나 그때까지도 강문의 약점인 장부가 자신들의 손에 있었다.자신의 미래를 걸고 장난치지는 않을 텐데.무진의 얼굴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가, 가서 강문호가 말한 창고 위치를 전해준 놈을 잡아와서 다시 확인해.”손건호는 즉시 사람을 찾으러 나갔다.강문호가 주소를 말할 때 한 사람만 들은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손건호는 아예 두 사람을 찾아 비교했다.앉아 있는 무진 앞에 두 사람이 섰다. 무진 앞에서 허리를 뻣뻣하게 세운 채 잔뜩 긴장한 모양새다.‘약재를 손에 넣었는데 어떻게 보스는 아직 기분이 별로인 모양이지?’“너희들이 전달했지? 어제 강문호가 말한 약재를 보관했다는 창고 위치. 도대체 바닷가 어느 창고야?”무진이 차가운 음서으로 물었다.“88호 창고입니다.”“89호 창고입니다.”아까 88호라고 했던 그 수하였다.그런데 돌연 또 하나의 숫자가 튀어나왔다.“도대체 어느 거란 말이야?” 무진의 이마에 핏줄이 불끈 치솟았다.다시 한번 물었지만 두 사람의 대답은 여전히 같았다.88호 창고에 그들이 갔었지만 그 물건이 아니었다.그럼 우리 쪽 수하가 창고 번호를 잘
손건호는 수하들을 이끌고 89호 창고로 갔다.이번에 몇 명만 데리고 가서 그곳의 동태만 살펴볼 생각이었다.그런데 손건호가 89창고에 갔을 때 강문호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손건호가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자 강문호가 불평을 늘어놓았다.“왜 이제야 옵니까?”“여기서 얼마나 기다렸어?” 손건호가 강문호 앞에 서서 조용히 물었다.“6시부터 지금까지 기다렸구만.” 강문호의 어조에는 짙은 원망이 담겨 있었다.이 황량하고 인적이 없는 곳에서 모기에게 얼마나 물어 뜯겼는지. 그런데도 강무진 쪽에서는 사람이 올 생각을 안 하니.그 말을 듣던 손건호가 되려 웃었다.“누가 너한테 우리가 오늘 올 거라고 했어?”강문호가 여기에 함정을 파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 은밀하게 움직였다.하지만 행적이 드러났다.강문호가 알아서 실토를 하니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이리 멍청하니 겨우 강상철, 강상규 패거리에 낀 거겠지만.강문호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저들이 올 거라고 당연히 강일헌이 말했었다.또 여기서 지키고 있다가 강무진이 오면 물건을 온전히 넘겨주라고 강문호에게 지시했다.하지만 강문호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바닷가의 창고는 불법이기 때문에 모든 곳이 매우 외진 곳에 있었다. 여기에서 손을 쓰는 것이 가장 좋았다.그래서 그냥 물건을 돌려주라는 건지 아니면 직접 그들에게 보낼 건지 물었었다.그떼 강일헌은 다른 계획이 있다고만 말했었다.그래서 강문호는 부득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무진 곁에 있는 이 손건호라는 비서, 정말 예리했다. 문제의 핵심을 바로 파악해 내다니 말이다.강문호은 눈알을 굴리며 목을 꼿꼿이 세운 채 대답했다.“내, 내가 짐작하는 게 무슨 문제야?”손건호가 콧방귀를 뀌었다. 강문호한테 그런 걸 알아맞힐 머리가 있다는 걸 믿으라고?누가 정보를 흘렸는지는 간단하지 않는가?오늘 자신이 온 목적은 그 물건들 때문이라는 걸 더 이상 말하는 것도 귀찮았다.강문호도 여기에 있으니 물건이 도망갈
물건을 확보한 것은 물론 좋은 소식이다.하지만 무진은 이 일을 처리하며 자신이 너무 터무니없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남의 물건을 대놓고 빼앗다니.어릴 때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은 무진은 사람을 대할 때면 그에 맞는 방식을 취해 왔다.생판 남의 물건을 대가 없이 가져가는 일은 해본 적이 없다.뿐만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무진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부끄러운 감정을 오랜만에 느꼈다.물건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그러나 애초에 두 무리가 이 약재 상자를 가져가려 했음이 기억났다.이 약재의 주인이 창고에서 먼저 본 자들인지, 아니면 그 후에 나타난 자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무진은 고민을 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대개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바닷가의 불법 창고는 원래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물건을 숨기는 용도였다.어쩌면, 이 약재 상자는 원래 그 패거리들이 햇빛을 보지 못하게 할 수단으로 가져온 것일지도 모른다.그래서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 단정할 수가 없었다.정말 돌려주고 싶지만 정말 까다로웠다.옆에 서있는 손건호를 본 무진이 이 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게 설명했다.“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제자리에 서서 잠시 생각한 손건호가 대답했다.“이 내용을 조직의 채널을 통해 내보낼 수도 있습니다. 대충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거지요. 주인이라면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말할 수 있을 테니 확인하고 건네줄 수 있을 겁니다. 어떻습니까?”세계적으로 거대한 조직들은 모두 각자의 조직 내 채널을 가지고 있다.대부분의 용병들은 채널을 통해 임무를 맡는다. 각종 임무나 가격, 난이도 지수 등 모두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매우 잡다한 종류가 있지만 사람이나 물건을 찾는 면에서 꽤나 유용했다.“음, 괜찮은 아이디어야.” 무진이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손건호의 의견이 상당히 유효해 보였다. 그 패거리들, 딱 봐도 보통이 아니었다. 몸놀림이 모두 아주 좋았다.무진이 직접 훈련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낸 후 성연의 시간은 다시 한가해졌다.지금 성연은 정원에서 꽃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꽃모종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소 귀한 약재들이다.엠파이어 하우스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다.거의 비료를 준 적이 없는 셈인데도 토양이 아주 비옥했다.성연이 몇 그루를 심어 보았는데 모두 살아남았다.손을 씻고 거실로 들어오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낯선 번호에 성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구지, 이 사람은?’‘기억에 없는 번호인 것 같은데?’원래 받기 싫은 마음에 잠시 망설이던 성연이 결국 전화를 받았다.“네.”“송성연 양, 저 조수경이에요.”휴대폰 건너편에서 조수경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성연의 두 눈썹 앞머리가 올라갔다.“조수경 씨가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조수경이 자신 때문에 고택에서 쫓겨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성연은 조수경을 보지 못했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를 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그런데 내 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조수경은 가는 음성으로 말했다.“송성연 씨, 얘기 좀 하고 싶어요.”성연은 나갈 생각이 없었다. 조수경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고.조수경을 본다면 그날 밤의 그 장면이 떠오르며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그런데 왜 조수경은 자신의 화를 돋우려 하는 거지?’“죄송합니다만, 요즘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 성연의 음성은 의외로 담담했다. 음성이 오르내림이 전혀 없이.오늘 반드시 성연을 만날 결심을 한 조수경이 애원을 하듯이 사정했다.“송성연 씨, 제발, 한 번만 저를 만나 주세요. 요 며칠 저는 무척 괴로웠어요.”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수경이 더 간절히 매달리며 이어 말했다.“그냥 송성연 씨와 몇 마디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성연 씨, 제발 부탁해요.”성연이 조수경을 겁내서가 아니었다.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억울하다는 듯이 사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도대체 조수경이 자신에게 무슨 이
5일의 일정 동안 세 사람은 북성의 명소 네다섯 곳을 돌아다녔다.원래 좀 더 있을 생각이었지만, 샤넬 가문에 뭔가 일이 생겼는지 곧 돌아가야 했다.성연은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더 재미난 곳도 많은데.풀이 죽어 있는 성연의 모습에 미스 샤넬이 웃으며 성연의 뺨을 꼬집었다.“그러지 마. 나중에 우리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거야.”갑자기 일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에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은 매일 같이 업무로 바쁜 무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떠나는 미스 샤넬과 목현수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점 한 곳을 예약했다.성연이 이번에 예약한 곳은 평이 좋은 가정식 요리 전문점이었다.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한 목현수가 이런 정통 가정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한 성연이 특별히 그에게 맛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테이블에 오른 음식들은 소담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미스 샤넬은 눈앞의 음식들을 보며 폰을 들어 한참 촬영을 한 후에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정말 맛있어. 와, 매번 색다른 맛을 경험하게 해 주네요.” 이곳의 음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미스 샤넬이 연신 감탄했다.입에 맞지 않는 것들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맞아요. 우리 북성에는 맛있는 음식과 재미난 것들이 정말 많아요.” 성연이 미스 샤넬씨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맞아요. 이곳은 산수가 수려해서 경치도 너무 아름다워요. 앞으로 현수 씨가 원한다면, 현수 씨를 따라 이곳에 와서 정착해도 좋겠어요.” 첫날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미스 샤넬은 무척 즐겁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좋아요. 그러면 그 때 우리 적당한 곳을 고를 수 있어요. 나랑 무진 씨도 두 사람과 같은 곳에 살고.” 그 생각을 하던 성연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것도 좋죠.” 샤넬 양이 맞장구를 쳤다.그러나 그 가능성은 몹시 희박했다.샤넬 가문은 유럽에서 세력이 무척 큰 가문 중의 하나.지금 연세가 많은 미스 샤넬의 아버지는
남은 일정 내내 성연은 미스 샤넬, 목현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북성 주위의 관광 명소들은 전부 한 바퀴 돈 셈이다.무진의 당부를 새기며 최대한 깊은 물이 있는 곳은 피하면서.또 성현은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을 위해 온갖 명소들을 방문해서 즐길 계획을 짰다.성연은 하룻밤 내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래도 무진의 말을 잘 따른 셈이다. 위험한 곳들은 가지 않았으니까.오늘 그들이 함께 온 곳은 커플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주위에는 온통 팔짱을 낀 젊은 커플들이었다. 공기 중에는 핑크빛 기운이 가득했다.반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사이에 혼자 낀 성연은 눈치 없는 들러리 같았다.성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말이다.그러나 지금 서로 손을 깍지 낀 채 닭 털을 날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성연 자신이 피해 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성연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거 아냐?’‘진즉 알았으면 무진 씨를 데리고 올 걸 그랬지.’“샤넬, 저기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을래요?”성연은 핑크색으로 장식을 한 건너편의 가판대를 가리켰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미스 샤넬이나, 샤넬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해서 그냥 바로 이름을 불렀다.“나도 먹어요.” 미스 샤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목현수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 시간.하지만 건녀편에는 그늘이 전혀 없었다.목현수는 양산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내가 사올 게. 무턱대고 저쪽으로 갔다가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목현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샤넬,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목현수가 먼저 미스 샤넬에게 물었다.“다 괜찮아요, 당신이 사 주는 거랴면요.”
식당 안.미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그러나 목현수는 음료수 한 잔만 손에 쥔 채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의아하게 쳐다보던 미스 샤넬이 물었다.“안 먹어요? 왜 날 쳐다보고 있어요?”오늘 목현수가 좀 이상했다.“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줄 게.” 정상적인 대화이긴 하지만, 목현수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조금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아주기도 했다.이전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 목현수였다.미스 샤넬의 오늘 모습은 목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좀 새롭게 보였다.주스를 한 모금 마신 목현수가 입을 열었다.“미스 샤넬, 오늘 왜 굳이 성연을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어? 설마 네도 위험하게 될 줄 몰랐어?”목현수의 눈에 미스 샤넬은 늘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제일 먼저 강에 뛰어들어 성연을 구한 사람은 미스 샤넬이었다. 목현수의 물음에 잠시 멍해 있던 미스 샤넬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송성연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그러지 않고 송성연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평생 자책하며 살 테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송성연을 구해야 했어요.”그러니까 미스 샤넬은 목현수 때문에 송성연을 구했다는 의미.만약 송성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미스 샤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 말했다.“공교롭게도 내가 한 수영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감히 그런 용기 못 냈지.”미스 샤넬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순간 목현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목현수를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미스 샤넬.목현수 자신이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목현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미스 샤넬에게 약속했다.“이전에는 정말이지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미스 샤넬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거야.”미스 샤넬의 눈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
목현수도 한숨을 돌렸다.방금 성연에게 일이 생기자 목현수는 바로 손건호에게 알렸다.원래 다른 곳에 있던 손건호가 그제서야 달려왔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십니까?” 성연의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것을 본 손건호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난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던 성연이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이 일은 무진 씨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냥 지나가면 돼요.”손건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리 둘이 옷을 갈아입게 민박집을 좀 잡아주세요. 자칫하다 감기에 걸리겠어요.”이 관광지는 비교적 유명한 곳이라 근처에 민박집들이 많이 있었다.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 성연이 미리 조사한 사항들이다.“예.” 고개를 살짝 끄덕인 손건호가 그들을 데리고 나가서 모두 차에 올랐다.차에 올라탄 성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정중하게 말했다.“미스 샤넬, 고맙습니다. 오늘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물속에서의 질식감을 떠올린 성연은 여전히 심장이 벌렁거리는 듯했다.“괜찮아요. 당신은 내 친구니까 구할 수 있었어요. 물론 내가 구하긴 했지만 마음에 두지 말아요. 친구끼리는 서로 도와야지요.” 미스 샤넬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대범하게 말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연은 그전에 미스 샤넬과 적지 않은 오해를 겪었다.그런데도 그녀가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미스 샤넬의 손을 잡은 성연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곧 그들은 손건호가 잡은 민박집으로 들어갔다.목현수가 미스 샤넬과 성연을 향해 말했다.“두 사람은 먼저 들어가서 좀 씻어. 내가 갈아입을 옷을 구해올 게. 여기 있는 옷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그래요.” 미스 샤넬은 별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목현수가 옷을 사 주겠다고 하자 성연은 아무래도 좀 어색했다.예전엔 별일 아니었지만, 이제 그들은 다 자란 성인들이었다.성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나, 나는 필요 없으니까 미스 샤넬만 사주면 돼요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
“누가 물에 빠졌어요.”“빨리 와요, 사람 살려요.”“빨리 여기 구조대에게 연락해서 빨리 사람을 구하러 오게 해.”주위에서는 모두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성연은 물에 빠지는 순간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다행히 호수의 물이 깊어서 바닥에 부딪치지는 않았다.그러나 갑자기 물살에 충격을 받자 현기증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아래의 물살이 좀 급해서 물살에 말려들자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성연은 수영을 할 줄 알지만 손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짙은 무력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성연의 몸은 천천히 계속해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이럴 수가, 누구 수영을 할 줄 알아요? 빨리 내려가서 사람을 구해주세요.” 구조된 소년의 어머니도 옆에서 소리쳤다.자신의 과실로 인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당에,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비록 자기 자식이 사고를 당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몹시 조급해진 목현수는 몇 번이나 아래로 바로 뛰어내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게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주위의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갔지만, 구조대는 한참이나 오지 않고 있었다.“이걸 어떡하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아니면 구급차를 불러서 구해달라고 해.”“여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CCTV도 있지 않아? 왜 이렇게 사고가 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을 해대고 있었지만, 직접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었다. 성연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물에 뛰어들 용기는 부족했다.자기 자식이 잘못된 걸 본다면 뛰어들었겠지만 말이다.옆에서 잠시 지켜보던 미스 샤넬이 주저함 없이 바로 물에 뛰어들려고 했다.그러나 옆에 있던 목현수가 눈치 빠르게 붙잡았다.“샤넬, 뭘 하려는 거야?”성연 한 명이 빠진 걸로 이미 충분히 애
성연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데리고 온 관광지는 교외에 있었다.산과 물을 끼고 곳곳에 푸른 풀이 깔려 있어서 생동감이 넘쳤다.그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관광지에는 또 전문적으로 설계된 정자와 누각이 있었다. 넓은 숲의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어서 또 그 속으로 소풍을 갈 수도 있다.미스 샤넬이 앞으로 걸어가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이곳의 공기는 정말 좋네요.”“맞아요, 내가 오기 전에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순수하고 천연적이라고 했어요. 원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은 채 약간만 손을 댔을 뿐이니, 진정한 원래의 생태 관광지인 셈이죠.”성연은 설명할 때, 미스 샤넬이 일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미스 샤넬은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쳤다.“성연 씨, 아는 게 정말 많네요.”“아니에요, 이런 관광지는 우리 A국에 아주 흔해서 조금만 이해하면 알 수 있어요. 유럽 각지에 정통한 미스 샤넬을 난 따라가지도 못하는 걸요.”각기 장점이 있다. 성연은 북성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서 기본적인 상식을 좀 알고 있는 것이지, 칭찬할 건 아니다.“성연 씨가 그렇게 전면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요. 가요,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샤넬 양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성연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미스 샤넬의 뒤를 따라가면서 목현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목현수는 성연이 자신을 계속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됐어, 성연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나도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샤넬 양과의 관계는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해.’그들은 다리 위로 걸어갔다. 아래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였다.미스 샤넬이 포즈를 취하고 성연이 사진을 찍었다.성연은 여러 장면을 잘 포착해서 찍었다.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미스 샤넬이 달려왔다. “어떤 지 내가 한번 볼게요.”성연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미스 샤넬은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감탄했다.“성연 씨, 사진 촬영 기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