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성연을 보던 무진은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고 싶었다.하지만 무진이 머리를 들이밀기도 전에 성연에게 밀려 쫓겨났다.“여긴 뭐 하러 와요? 침대에 앉아 쉬고 있어요.”성연은 자신이 요리하는 모습을 무진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좀 이상한 느낌이다.왠지 부끄럽기도 하고.그런 성연의 모습을 바라보던 무진은 돌연 성연이 부끄러워 그런다는 것을 알아챘다.‘어린 마음에 수줍은가 보군.’더 이상 놀리길 포기한 무진은 소파에 기대어 서류를 보았다.출장을 왔어도 무진이 처리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다.국내 본사에서 결재할 수 없는 사안들이 모두 무진에게 올라왔다.그리고 강문호가 말한 그 창고 주소가 사실인지 아닌 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기회를 봐서 조사해 봐야 한다.비교적 중요한 물건들이라 다른 사람들이 눈독 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시간을 끌수록 문제가 생기기 마련, 조속히 손을 써야 했다.성연이 응접실 쪽으로 나오자 서류를 보느라 바쁜 무진의 모습이 보였다.사실 무진이 절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강운경과 안금여 두 집안 여자를 위해 그는 반드시 강인해져 가족들을 보호해야 했을 터.몸이 아파도 할 일은 산처럼 쌓여 있으니.이런 생각을 하자 성연의 마음이 순간 좀 복잡해졌다.어느새 성연은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하염없이 무진을 바라보았다.성연의 시선을 느낀 무진이 고개를 돌리자 맑고 반짝이는 성연의 눈동자와 맞닥트렸다.이 세상의 더러움을 모두 씻어낼 수 있을 만큼 깨끗한 눈이다.차갑고 딱딱하던 무진의 표정이 한순간에 부드러워졌다.“왜 그렇게 보고 있어?”“그러는 아저씨는 왜 안 쉬어요?” 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네가 차려주는 아침 먹으려고.”무진이 대답했다.나풀거리는 하얀 앞치마를 걸친 성연이 무척 사랑스럽게 보였다.무진의 마음 한 켠이 허물어지더니 한순간에 녹아내렸다.“가서 봐야겠다.” 성연이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곁들일 반찬은 이미 다 준비되었다. 시간
성연은 어서 쉬러 가라고 무진을 재촉했다.밤을 꼬박 새고서도 이렇게 버티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다니, 새삼 무진의 체력에 탄복하는 성연이다.“나와 같이 있어.” 무진의 어조가 꽤나 당당한 느낌이다.“난 방금 일어났다고요.” 밤새도록 누워 잔 성연이다.지금은 또 게임을 하며 놀고 싶은 마음이다.“네가 옆에 없으면 잠이 안 와.” 말을 하는 무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그러나 성연은 무진의 말이 좀 가련하게 들렸다.피로에 잔뜩 지친 얼굴을 그냥 쳐다보고 있기가 힘들었다.속으로 잠시 생각하던 성연이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침실로 들어간 무진은 소원성취한 듯 보들보들한 성연을 꼭 끌어안았다.익숙한 약향을 맡으며 무진이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무진이 깰까 봐 성연은 몸을 굳힌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그저 멀뚱멀뚱 눈을 뜬 채 천장만 바라봤다.잠이 더 이상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처음 자세 그대로 무진이 깨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성연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두 사람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정오가 되어 있었다.점심 식사를 위해 무진이 먼저 룸서비스로 주문한 후 성연을 깨웠다.귀여운 아기 돼지 마냥 밤새 그렇게 잤고 오전에 또 잔다.무진이 손 끝으로 성연의 뺨을 쓸었다.부시시 눈을 뜨던 성연의 눈에 지척에 앉은 무진이 보이자 곧바로 일어나 앉았다.“일어났어요?”자신보다 먼저 깨서 일어나 있는 무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这个男人,真是自律到可怕的地步。‘이 남자, 자기 절제력이 진짜 장난 아니야.’“내가 벌써 룸서비스를 부탁했어. 일어나서 뭐 좀 먹자.” 성연이 일어나는 것을 본 무진이 먼저 응접실로 가서 테이블에 음식들을 차렸다.성연이 세수하고 나오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점심을 먹은 뒤엔 성연이와 같이 좀 조용히 쉬어야겠다.’오후가 되자 무진이 또 나가야 했다.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성연을 보고 있으니 정말 나가기 싫어지는 무진이
무진이 나간 후, 성연도 준비를 시작했다. 인면피를 쓰고 옷을 갈아입은 후 CCTV의 각도를 돌려놓았다.호텔을 나서는 성연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도로가로 내려간 성연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와서 섰다.곽연철이었다.성연이 변장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성연의 다양한 변장 스타일에 익숙한 곽연철은 한눈에 알아보았다.곽연철이 아주 공손한 태도로 성연을 불렀다.“아가씨.” 이 곳에도 지사를 두고 있는 제왕그룹이다.좀 더 편리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성연은 이곳의 지부를 임시 사무실로 삼았다.남의 이목을 가린 채 약재를 가져오기에 딱 좋았다.약재를 잃어버린 후, 곽연철에게 자신이 갈 것이라는 말만 전달하면 되었다.요 몇 년 동안 제왕그룹은 표면상 곽연철이 줄곧 관리해 왔기 때문에 성연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곽연철이 뜻밖에도 직접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곽 대표님, 왜 왔어요?”성연이 궁금해서 물었다.제성그룹은 작지 않았다. 곽연철이 처리해야 일도 무진 못지 않았기에 그가 올 줄은 몰랐다.“사람들이 아가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서지요.” 지사에서 그는 거의 오지 않는다.일부 눈이 어두운 자들이 성연에게 함부로 하기도 했다.“하아, 그럴 필요 없어요.” 성연이 휘휘 손을 저었다.“필요합니다.” 곽연철이 진지하게 대답했다.성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때때로 곽연철의 성격이 너무 꽉 막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한기처럼 통통 튀는 성격과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다.비교적 활발한 성격의 성연은 틀에 맞춘 듯한 곽연철의 대답에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욕망이 사라졌다.곽연철의 성격이 그렇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그러나 일에 있어서 곽연철은 완전 능력자였다. 이점에 대해서는 성연도 할 말이 없다.오는 길에 서한기에게 알렸으니, 서한기도 이미 제왕그룹으로 오는 길일 것이다.성연과 곽연철이 도착했을 때 서한기도 막 도착했다.곽연철을 본 서한기가 신이 나서 달
곽연철은 서한기가 이곳에서 요상한 짓을 해서 성연에 안 좋은 영향을 줄까 걱정했다.서한기를 끌어내렸다.복도에 도착했을 때 서한기는 경망스럽게 곽연철의 턱을 들어올렸다.“왜? 나 보고 싶지 않았어요?”곽연철이 서한기의 손을 쳐냈다.“미친.”“싫음 말고.” 다리를 꼬고 복도 의자에 앉은 서한기가 곽연철에게서 획 고개를 돌렸다.서한기를 보고 있던 곽연철은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밥은 먹었어?”“아니.” 서한기가 기운 없이 말했다.곽연철은 즉시 비서를 불러 먹을 것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비서의 동작이 아주 빨라서 십여 분 만에 준비가 다 되었다.곽연철은 서한기를 끌고 휴게실로 가서 음식을 먹였다.서한기는 처음에 성가시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테이블 위에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한 가득 놓인 것을 보더니 곽연철의 어깨를 두드렸다.“그래도 양심은 있네.”곽연철 자신도 식사를 하지 않아서 같이 앉아 먹기 시작했다.고개를 들어 사무실 방향을 힐끗 돌아본 서한기가 곽연철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말했다.“보스는 식사했는지 왜 안 물어봅니까?”사무실 안에 있던 성연이 나와서 두 사람만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비난할 지도 모르는 일.“내가 너인 줄 알아? 물어보니 보스는 먹었대.”곽연철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서한기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모두 곽연철이 뻣뻣할 정도로 예의 바르다고 하지만 그것도 보스 앞에서만 그럴 뿐이다.자신 앞에서는 사람 분통 터지게 만드는 고수였다.‘그러니 자신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기는 기대도 않는 게 좋을 걸.’서한기를 상대하는 것도 귀찮아진 곽연철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고 일어섰다.곽연철이 일어나자 서한기도 얼른 입에 음식을 집어넣은 후 따라 일어났다.“어디 가요?”“보스가 보고서를 거의 다 봤을 거야. 보고할 게 있어.” 사무실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었다.과연 곽연철의 짐작대로 그들이 들어가니 성연이 보고서를 덮었다.다가간 곽연철 성연의 앞에 섰다.“보스, 강탈해 간 이 물
무진 쪽에서도 이미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강문호가 말한 곳 확인해 봤어? 믿을 수는 있어?” 무진이 옷 자락을 정리하며 옆에 있는 손건호에게 물었다.“네, 이미 알아봤습니다. 틀리지 않을 겁니다. 또 이 연해의 창고를 조사해 보니 많은 공장들이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금지된 품목들 다루다가 나중에 폐쇄되고 창고가 된 곳입니다. 이런 창고는 모두 불법입니다. 물건을 훔쳐 가서 보관하기 딱 좋죠. X국의 각 조직들이 이 곳을 찾아내서 아주 잘 속여왔습니다.”손건호는 저녁에 다시 한번 그곳 주소지를 찾아가 조사했다.이번에는 무진도 함께 갈 것이니 그의 안전을 제일순위에 두어야 한다.조금도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된다.“모두 준비되었으면 빨리 시작해. 더 이상 늦추지 말고. 시간을 끌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강문호가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그는 강씨 집안의 장손이다.만약 강문호가 실토한 장소에서 사고가 난다면 손건호 뿐 아니라 온 집안에서 그 책임을 따져 물을 것이다.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강문호가 어리석게 자신에게 손을 대지는 않을 것이다.“예.” 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사람들은 미리 준비시켜 두었으니 무진의 명령 한 마디만 기다리고 있다.사위가 캄캄한 심야.검은색 롤스로이스가 앞을 질주하고 뒤로는 검은색 벤츠가 여러 대 뒤따르고 있다.여러 대의 차량이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는 모습이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영화를 찍는 줄 알 정도로 장관이었다.창고에 가까워졌을 때, 앞에 있던 손건호가 저 멀리 전방을 주시했다. 저 멀리 해변에 여러 대의 차량이 이미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결정을 하지 못한 손건호가 몸을 돌려 무진에게 신호를 보냈다.“보스, 계속 앞으로 갈까요?”무진이 말이 없자 손건호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뒤따르던 차들이 일제히 따라 멈추었다.연해에는 불빛이 거의 없어 사위가 칠흑같이 어두웠다.어두컴컴한 밤이 사람들을 뒤덮었다. 흡사 당장 시뻘건 아가리를 벌리고 집어삼킬 듯하다.어
제 자리에 멈춰 선 차량에서 십여 분을 기다린 무진이 눈을 떴다.“모두 차에서 내리게 해서 시작해.”그들은 곧장 88호 창고로 갔다.안에는 10여 명이 지키고 있었다.창고 문이 미처 방비할 새도 없이 열리며 사람들이 밀려들어오자 창고 안의 사람들 모두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진이 냉소를 지었다. ‘강문호가 꽤나 경계했나 보군. 이렇게 많은 인원을 배치해서 물건들을 지키게 한 걸 보면.’게다가 모두 외국인들이다. “물건 내놔.” 무진이 영어로 그들에게 명령했다.하지만 무진은 전혀 몰랐다. 지금 강문호가 옆의 89호 창고에서 기다리고 있는 줄은.오늘 저녁, 강문호는 직접 창고를 지키고 앉아서 물건을 가지러 올 무진을 기다렸다.그런데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무진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강문호의 얼굴에 황망한 표정이 떠올랐다. 다급해진 강무진이 바로 쳐들어 올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된 거지?’무진 자신도 창고를 잘못 알고 뛰어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지금 88호 창고 안에 있는 이들은 모두 성연의 약재를 강탈해 갔던 블랙문 조직이었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무진이 자리를 지키며 저들과 대치하고 있었다.무진의 생각에, 강문호 쪽에서 이미 연락을 했을 테니 자신이 오면 강문호 쪽에서 바로 약재를 내놓을 것이라 여겼다.그래서 그는 긴 말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말했다.무진 또한 약재를 강탈하러 왔다고 생각하는 블랙문 조직원들이 순순히 내어 줄 리가.바로 거절의 답이 돌아왔다.“우리가 너희들에게 줄 것 같아.” 무진이 눈살을 찌푸렸다.‘강문호, 도대체 지금 뭐 하자는 거지?’‘마음이 바뀌었다?’“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온 거 못 들었어? 빨리 물건 내놓지 못해?”무진의 신호를 받은 손건호가 옆에서 입을 열었다.블랙문의 조직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약재를 잘 지키는 것이었다.그런데 손건호의 입에서 무슨 ‘윗선의 지시’라는 말이 나오자 아무런 통
무진보다 먼저 와 있던 성연은 창고 위 구석에 웅크린 채 앉아서 한참이나 그들의 싸움을 몰래 지켜봤다.적당한 때를 봐서 약재를 가지러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그런데 도중에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등장한 것이다.한참을 관찰해 보니 저 ‘불청객’ 어째 익숙한 사람이 아닌가.‘하, 강무진이라니.’성연의 마음이 꽤 복잡해졌다. 여기서 또 이렇게 맞닥뜨릴 줄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도대체 자신과 강무진은 무슨 이런 악연이란 말인지.옆에서 같이 무진의 얼굴을 확인한 서한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보스, 강무진이 왜 여기에 있죠?”‘설마 강무진이 일부러 여기를 노리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서한기는 무진에 대해 썩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성연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강무진이 있었다.성연이 해명하지 않아도 자신은 성연의 능력을 믿었다. 서한기는 무진이 고의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내가 어떻게 알겠어?” 성연도 머리가 아파왔다.다른 사람이 와서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강무진이 직접 왔더라면 성연이 손을 쓸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그럼 보스, 우리 이제 어떡하지요?” 서한기가 뒤통수를 긁적였다.“좀 두고 보지.” 성연이 이를 악문 채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쌍방이 지금 한창 싸우는 중이다.성연은 우선 조용히 싸움의 추이를 지켜보았다.뒤로 갈수록 성연은 점차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이러다가는 약재를 그대로 빼앗길 것 같았다.“시작해.” 성연이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서한기가 수하들을 데리고 돌진했다.오기 전에 모두들 이미 위장을 한 상태라 다행이었다. 만약 무진이 자신 중 하나를 알아본다면 큰일이니.또 다른 제3의 무리가 등장하자 블랙문과 무진 양측 모두 깜짝 놀랐다. 무진이 입을 꽉 다물었다. ‘강문호, 보기만 아작을 내버릴 테다.’‘이 위치를 또 누가 알고 있단 말이지?’‘강문호, 정말 일을 만드는군.’‘설마, 강상철 쪽에서 물건을 강탈하는 척하며 자신을 여기로 끌어들
보고서를 통해 미리 상황을 파악한 성연이다.조직 블랙문이 이곳을 숨어서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그래서 이번 작전에 성연은 많은 인원을 데려오지 않았다.수적인 열세로 인해 점차 무진 측의 사람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약재 주변을 점점 무진 측의 사람들이 장악해 나갔다.처음에는 무진의 몸을 걱정해서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하던 성연이었다. 하지만 수하들이 점차 밀리는 상황을 본 성연은 저도 모르게 아주 심각해졌다.성연이 휘두르는 긴 채찍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한 무더기씩 쓰러졌다.그러나 무진이 데려온 인원이 너무 많았다. 성연은 아무리 강하다 해도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뒤로 갈수록 성연은 마음이 급해졌다.동시에 속으로 좌절감도 느꼈다.서한기와 곽연철 모두 성연의 심리 상태가 좋지 못함을 느꼈다.서한기가 기회를 틈타 성연 옆으로 가서 성연에게 다가가는 상대를 쳐냈다. 성연의 귀에 대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몇 마디 했다.“보스, 맞은편 상대를 그냥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강무진이라고 생각하지 말고요. 이러다간 보스 위험해요.”강무진은 이미 성연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음을 서한기는 알았다.그렇지 않다면 송성연이 이처럼 혼란 상태에 빠질 리가 없었다.성연도 자신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을 다잡은 뒤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너희들은 나 신경 쓰지 말고 약재를 빼앗는 데만 집중해.”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미워한다고 말하려니 강무진이 미워지지 않았다.강무진에 대해서는 무력해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가능하다면, 정말 무진이 여기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랬다.무진과 적이 되는 것이야 말로 그녀가 가장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다.그녀의 마음속에 깊이 가라앉아 있던 감정이었다.그러나 지금 이렇게 많은 수하들을 거느린 상황에서, 또 사부님이 보내신 약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억지로라도 무진과 대적할 수밖에 없었다.성연은 계속 앞으로 나서며 무진과 맞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