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경이 강무진의 회사에 있는 것을 본 곽연철이 다시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다.보기 드물게도 그의 음성에 약간의 초조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보스, 강씨 집안 사람들을 설득해서 회사에 자리를 얻을 정도면 조수경이라는 여자가 제법 수완이 있음을 인정해야겠습니다. 보스, 이 점 대수롭게 여기지 말고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곽연철의 말은 평온하던 성연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성연은 조수경이 아니라 무진 왜 자신에게 조수경의 존재를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게 더 신경 쓰였다.조수경이 강씨 집안에 머물게 된 지도 꽤 되었다.그동안 무진은 자신에게 조수경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그리고 무진이 목에 매고 있던 다른 스타일의 넥타이 역시 성연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하지만 당분간 휴가를 낼 수도 없어 귀국할 수도 없는 성연.마음이 답답했던 성연이 억누른 음성으로 곽연철에게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 나는 지금 외국에 나와 있고, 무진 씨는 거기에 있는데. 게다가 무진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말한 적이 없는 걸.”이 말을 하는 성연의 음성에는 약간의 노여움을 띠고 있었다.그녀는 무진이 잘못할 리 없다고 믿었다. 게다가 곽연철의 말을 들어 보니, 무진은 조수경에게 별다른 뜻이 없었다.그냥 조수경 혼자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것일 뿐.그러나 자신이 외국에 나와 있는 동안 저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 지 누가 알겠는가.성연은 답답한 마음을 드러낼 곳이 없어 힘들었다.곽연철이 그런 성연을 위로했다.“보스, 일이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조수경은 지금 회사에 있으니 우선 제가 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뭔가 일이 있으면 곧 알려드리죠. 하지만 강무진과 얘기해서 이 참에 조수경과 거리를 좀 두게 해야 합니다.” “나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무진 씨는 조수경이 강씨 집안에 머물고 있는 일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말을 꺼내겠어요?” 자신이 무진의 곁에 감시인을 꽂아 놓았다고 말할
무진은 집에서 며칠 동안 깊이 고민했지만 결국 성연을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속으로 목현수가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지금 목현수와 성연이 너무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게다가 과거 두 사람은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하던 사이여서 그 친분 관계는 어쩔 수가 없었다.이전에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무진도 모른다.목현수는 자신이 없던 시절의 인생에서 성연과 함께 했다.지금 성연이 자신의 약혼녀이긴 하지만 무진은 너무 불안했다.자신이 성연에게 몹시 신경 쓰는 것에는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무진은 회사 업무들을 좀 처리해 둔 후 바로 그날 밤에 자신의 개인 전용기를 불렀다.손건호가 공항까지 무진의 곁에 지켰다.“보스, 정말 혼자 가시겠습니까?”손건호의 눈에 걱정의 빛이 어려 있었다.무진은 이번 여정에 자신이 동행하지 않을 계획이다. “음, 나 혼자 갈 생각이야.” 무진은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으로 가는 일로 다른 사람의 업무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았다. “보스, 보스의 신분은 특수합니다. MS 가문의 본가가 바로 유럽에 있고요. 만약 저들이 보스의 유럽 행을 알게 된다면 분명 당신에게 좋지 않을 겁니다. 아니면 저를 데려 가시든가요. 결정적인 순간에 제가 보스를 보호할 수 있게 말입니다.”손건호가 계속 무진을 설득시키려 애썼다.물론 무진의 심복인 손건호이기에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다른 사람이라면 감히 입에 담지 못할 터. “편한 대로 두 사람만 데리고 가면 돼. 회사에도 진두지휘할 사람이 필요하잖아. 너는 곽연철과 협력해서 회사의 일을 잘 처리하면서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면 돼.”자신을 걱정하는 손건호가 진심이라는 게 그대로 보여서 책망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보스, 제발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손건호가 미간을 찡그린 채 무진을 바라보았다.고개를 끄덕인 후에 무진은 바로 전용기에 탑승했다.검은 정장 차림의 두 사람이 무진의 뒤를 따라 올라 탔다.그날 밤
무진이 자신을 만나러 온 사실을 성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 다음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을 마친 성연.룸메이트 앨리스와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성연의 주위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엘리스는 학우들과 재잘재잘거리는 중이었고, 성연은 그 옆에서 듣고만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처음 보자마자 성연에게 눈길을 보내며 주시했다.엘리스가 성연의 팔을 붙잡고 몇 마디 걸면 성연도 한 마디 대답했다.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연을 알고 있기에 앨리스는 억지로 성연을 대화에 끌어들이지 않았다.식당 입구에 거의 도착했을 때 앨리스가 성연에게 말했다.“성연, 방금 엄청난 뉴스를 들었어.” “무슨 뉴스?” 성연이 물었다. “너 우리 식당 음식이 아직 익숙하지 않잖아? 방금 내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우리 학교 2층에 A국 요리사가 와서 너희 나라 음식을 만든데. 우리도 빨리 가보자.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어.”성연의 손을 붙잡고 있는 앨리스는 얼른 가서 맛보고 싶었다. “A국 요리사?” 성연은 앨리스의 말에 진짜 흥미가 생겼다.성연은 확실히 유럽의 음식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처음에는 새로운 음식들을 이것저것 맛보는 것도 괜찮았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 먹던 음식이 점점 더 생각났다.스스로 음식을 만들 줄은 알지만 학교에서 음식하기도 불편해서 그만두었다. “그래, 어서 가보자.” 엘리스가 성연을 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원래 A국의 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디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유럽 학생들로 2층의 식당이 붐볐다.성연과 엘리스는 얌전히 뒤로 가서 줄을 서야 했다.앨리스의 음성에 약간 조바심이 묻어났다.“오 마이 갓, 줄이 이렇게나 길어. 우리 차례는 언제쯤 올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 알았더라면 더 빨리 올 걸 그랬어.”성연이 웃으며 앨리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괜찮아, 우리 몫도 있을 거야. 너무 조급해하지 마.”엘리스는 마음이 급했지
벤츠 승합차를 타고 학교 입구에 도착한 무진은 목현수에게 이끌려 가고 있던 성연을 보게 되었다.무진의 얼굴이 바로 어두워지며 눈에서 한기를 내뿜는 것이 마치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주먹을 꽉 움켜쥔 무진은 냉정해야 한다고 계속 자신을 타일렀다.마음속의 분노가 좀 걷힌 후에야 무진은 핸드폰을 들고 일부러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의 음성은 무척 평온했다.“성연아, 너 뭐 하고 있어?”성연은 무진을 속이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나 지금 차에 타고 있어요. 나를 데리고 박물관에 가려고 사형이 왔는데, 내가 사형에게 도움을 청했어요.”성연의 말에 무진은 속으로 숨을 크게 내쉬었다. 다행히 성연이 자신에게 사실 대로 말했다.그러나 여전히 감정을 누르기가 힘들었던 무진은 짙은 불쾌감이 쑥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무슨 일이든 언제든지 나에게 말하면 돼. 내가 널 위해 사람을 보내면 되는데.”자신의 약혼녀인 성연이 늘 다른 남자를 귀찮게 하는 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그리고 그는 성연이 목현수와 너무 가깝게 지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지난번 목현수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다만 목현수 그 인간이 너무 능청스러운 탓에 성연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약간 화가 난 듯한 무진의 음성에 성연은 조금 충격을 받았다. 왜 화가 났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성연은 설명했다.“무진 씨를 너무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무진 씨는 회사 일이 너무 많잖아요. 나 때문에 무진 씨가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요.”아무리 위험한 일이 생긴다 해도 성연은 일이 해결된 후에야 무진에게 알려줄 터였다.먼 거리에 떨어진 무진이 괜히 걱정만 할 뿐 당장 해결해 줄 수는 없으니까.성연은 곽연철이 자신에게 말해 준 조수경의 일이 생각났다.이번에야말로 무진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다.마침 무진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성연이 반대로 물었다.“요즘 집안에 뭐 재미있는 일은 없어요?”성연이 타고 있는 전방의 차만 주시하며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던 무진이 대답했다
박물관에 오니 유럽 문화의 정취가 물씬 풍겼다.한 나라의 문화이지만 들어간 후에 전율을 느꼈다.목현수는 흥미가 없었지만 성연의 옆을 내내 지켰다.하나하나 둘러보는 동안 흥미로운 문화 유물들이 많이 보였다.가끔 알아보기 힘든 것이 있으면 묵현수 더러 설명해 달라고 했다.박물관은 크지도 작지도 않아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 구경을 모두 마쳤다.잠시 돌아다닌 후에 두 사람이 나왔다.목현수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목 마르지 않아?”구경하는 한 시간 동안 성연은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던 터라 역시 목이 좀 마른 것 같았다.그러나 이 박물관에서는 음료를 파는 것 같지 않았다.그래서 목현수가 음료를 사러 너무 멀리 나갈까 봐 손을 흔들며 사양했다.“됐어요, 괜찮아요.”잠시 후에 다른 곳에 가서 마셔도 되니까.그러나 성연의 의도를 알아차린 목현수가 웃으며 말했다.“옆에 자판기 있어. 뭐 마실래?”그 소리에 성연은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다.“나는 생수 마실게요. 고마워요, 사형.”웃으며 고개를 흔들던 목현수가 자판기 앞으로 갔다.이어서 생수 두 병을 사온 목현수.성연은 병 뚜껑을 열자마자 바로 반을 비웠다.시원하게 물을 마신 성연의 눈에 물병을 보며 제자리에 서 있는 목현수가 보였다.성연이 의아한 마음에 물었다.“사형, 왜 안 마셔요? 목 마르지 않아요?” “다른 여자애들처럼 병 뚜껑을 열어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목현수가 농담하듯이 말했다.성연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사형, 내 병 뚜껑은 내가 따요. 내가 어떤 사람인데 다른 사람에게 따 달라고 하겠어요? 아마 평생 볼 일 없을 걸요?”성연은 뭐든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병뚜껑 하나 못 열 정도로 힘이 없어서 어디에 써 먹겠어?’ ‘그 정도면 아마 스스로 생활도 할 수 없을 거야.’성연은 도시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강무진 앞에서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그렇게 생각하니 두 사람은 꽤 잘 어울리는 한 쌍 같았
그 장면을 거리를 유지하고 계속 두 사람의 뒤를 따르던 무진이 보았다.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하는 무진의 눈에는 그저 성연과 목현수가 바짝 붙어있는 것만 보였다.금세 차가운 표정이 된 무진은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차에서 내려 곧장 두 사람 앞으로 걸어갔다.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눈앞에 나타난 무진으로 인해 성연은 한순간 멍한 상태가 되었다.그러다 이내 심상치 않은 무진의 표정을 보고는 곧바로 멈칫했다.하지만 발에 힘을 주지 못해 몸이 휘청거렸다.도대체 무진이 언제 이곳으로 온 건 지 성연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두 사람이 통화를 하던 순간에 무진은 이미 이곳에 와 있었던 모양.무진의 시선에 괜히 찔리는 마음이 들긴 했으나 무진에게 떳떳하지 않은 일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하며 성연이 물었다.“무진 씨, 언제 왔어요?”“어젯밤에.” 덤덤한 음성으로 대답하는 무진에게서 착 가라앉은 기운이 흘렀다.“그럼 도착하고 왜 바로 나를 찾아오지 않았어요?” 무진의 대답에 왠지 망연한 기분이 드는 성연.평소라면 무진은 한시도 기다리지 못하고 가장 먼저 자신을 찾아왔을 터.그런데 이제서야 자신 앞에 나타나다니.더 이상 성연에게 다가가 부축하지 않고 한 옆에 느긋한 모습으로 옆에 서 있던 목현수가 무진을 바라보며 물었다.“강 대표님, 어떻게 또 오셨습니까? 가신지 얼마나 됐다고?”무진은 목현수의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곧장 앞으로 걸어가 두 팔을 펼쳐 성연을 들어올려 안았다.성연은 무진의 행동에 깜짝 놀랐지만 순순히 무진의 목을 감싸 안았다.옆에 서 있던 목현수는 잠시 멍했지만 곧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목현수가 보기에 강무진이 질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강무진, 아무런 말 한마디도 없이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풋, 진짜 귀엽네.’미안한 마음이 든 성연은 목현수를 보며 살짝 웃었다.무진이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자신이 데려와 달라고 목현수에게 부탁해 놓고는 또 이렇게 찬밥 신세가 되게 해서
차에 도착한 무진. 비록 화는 났지만 성연을 내려놓는 동작이 몹시 조심스럽다.무진은 성연에게 단단히 경고했다.“앞으로 아무도 네 손을 건드리게 하지 마. 아무도 안 돼!”성연은 무진이 한참 더 마음속에 담고 있다가 말을 꺼낼 줄 알았다.그런데 이렇게 못 참고 바로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무진이 진짜 화났음을 알았기에 성연도 더 이상 장난치지 않고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았어요.”‘성연이 약속했으니 앞으로는 약속을 지키겠지.’무진은 성연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오늘 자신의 행동이 너무 지나쳤던 건 아닌지 반성했다.‘성연과 목현수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 말이지.’이런 생각을 하자 무진의 말투가 좀 누그러졌다. 손도 못 댈 만큼 벌겋게 부은 성연의 발목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많이 아파?”성연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오.”잠시 전에 사형 목현수가 이미 뼈를 바로잡아 주어서 지금 성연의 발목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다만 성연은 지금 이 순간 무진 앞에서 목현수 얘기를 꺼내는 건 부적절함을 잘 알고 있었다.무진이 얼마나 질투하고 있는 지는 몰랐다. 자신과 목현수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있지 않다 보니 약간의 오해도 불가피한 법.마치 자신이 혼자 있을 때 쓸데없는 생각을 자제하지 못하는 것처럼.입장을 한 번 바꾸어 생각해 보면, 이런 무진의 생각도 정상인 셈.그래서 무진의 오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다만, 사형에게 조금 미안할 뿐.이렇게 다리를 다쳤는데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겠나?성연이 괜히 억지를 부린다고 판단한 무진의 미간 주름이 더 깊어졌다.“걸을 때 조심할 줄 모르지? 어떻게 이렇게 심하게 다칠 수 있단 말이야?”자신이 있었으면 성연을 잘 챙겨줬을 텐데.“아이고, 내가 조심하지 않은 거예요. 괜찮아요.” 성연이 무진의 팔을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하루 종일 걱정하게 만들고 너 도대체 나한테 말 안
호텔에 도착해서도 무진은 성연을 객실 안까지 안고 갔다.이동 중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성연은 무진의 품에 기대어 가슴에 머리를 묻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했다.무진은 경호원에게 발목 염좌에 바르는 연고를 사오라고 지시했다.그리고 자신이 직접 성연의 운동화를 벗겨준 후, 아주 부드럽게 성연의 발을 천천히 문질렀다.성연은 발 감각이 꽤 민감한 편.무진이 만지는 동안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다.무진은 성연의 발을 꾹꾹 누르며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자꾸 그렇게 움직이지 마. 내가 멍을 문질러 줘야 네 발이 좀 편할 거야.”성연도 무진이 자신을 위해 그러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성연은 도무지 자신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커다란 손이 성연의 다리 위를 미끄러지듯이 오르내렸다.아주 투박한 느낌.성연의 얼굴은 금세 달아올랐다. 몹시 수줍은 표정과 함께.성연은 입술을 깨물고 참았지만 몸의 반응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고개를 든 무진의 눈에 촉촉하게 젖은 성연의 눈동자와 발그레한 뺨이 보였다.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무진은 성연의 발이 이렇게까지 예민할 줄은 몰랐다.그러나 성연 본인도 잘 몰랐을 것이다. 지금 성연이 보이는 모습은 이렇게 유혹적이라는 건...무진이 자신을 통제하기 힘들게 만들었다.그러나 성연의 발목 부상을 생각해서 참을 수밖에 없는 무진은 천천히 성연의 발목 주변을 주무르기만 했다.성연의 몸도 이에 점차 이완되기 시작했다.그러나 몸이 완전히 풀리자 성연은 무진의 안마가 상당히 수준급임을 인정했다.발목의 통증이 많이 줄었던 것.발목 주위로 혈액이 순환되며 붓기가 그렇게 심해 보이지 않았다.성연이 궁금한 눈길로 무진을 바라보았다.“무진 씨 배운 적 있죠?”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인하지 않았다.“이전에 꽤 큰 회사 하나와 합작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상대가 꽤 까다로웠어. 당시 제대로 투자를 받기 위해 두 가지를 배웠어.”성연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런 일도 있었어요?”북성에서
유니버설 호텔 8층의 연회장.오늘 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운성 전체의 상류층으로 모두 상장회사의 CEO급이다.파티의 주최자인 연계진은 이런 화려한 느낌에 대단히 만족했다. 끊임없이 각 가문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샴페인잔을 부딪치면서 미래의 협력에 대해 이야기했다.이런 모습은 연계진 자신의 손에 의해서 연씨 가문의 과거 영광이 다시 돌아왔다고 느낄 정도였다.검은색 원피스 차림의 조수경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붉은 입술과 요염한 눈빛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마치 이미 연계진의 부인인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가능한 한 모든 손님들과 접촉하면서 손님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인상을 새기기를 원했다.‘그런 인상이 확고해져야 연계진이 진혜선과 결혼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연계진의 진정한 여자라고 인정하게 될 거야.’강한 여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조수경의 마음은 즐거웠다.이때 진씨 가문의 현재 가주인 진양산이 성큼성큼 연회장으로 들어섰다.그 뒤로 투 톤의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탁월한 몸매의 진혜선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청년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진혜선은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순간 조수경은 사람들이 자신을 진혜선과 비교했다는 걸 알아차렸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진혜선을 흘겨보았다.‘괜찮아, 연계진은 단지 이익 때문에 저 여자와 혼인할 뿐이지, 정말 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게다가 진혜선이 좋아하는 남자는 강무진이 맞아. 진혜선이야말로 송성연의 경쟁 상대야.’조수경은 마음속으로 진혜선도 마찬가지로 성연을 적으로 간주한다면, 자신과 진혜선이 함께 협력해서 성연을 대처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수경아, 내가 가서 좀 접대할게.” 연계진의 눈빛에는 부드러움이 어려 있었다.“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조수경은 마음 놓고 연계진의 손목을 놓았다. 결국 진씨 가문 사람이 왔으니 조수경은 잠시 억울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진양산과
병원의 초음파검사실.한 여의사가 화면을 보고 있었고, 성연도 좀 긴장된 표정이었다.“축하해요, 송성연 씨. 아주 건강한 쌍둥이예요! 벌써 한 달 반이나 됐네요.”“우리 병원에 임산부의 지식 수첩이 있으니까 가져가서 많이 보면서 알아두세요. 나중에 우리 병원 산부인과에서 출산하실 생각이라면, 연락처를 드릴 테니까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문의하시면 됩니다.”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의사가 부드럽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성연은 정말 놀랍고 기뻤다. ‘처음부터 바로 쌍둥이를 임신하다니. 하늘이 너무 큰 선물을 주셨어.’‘시간을 따져 보니 무진 씨하고 처음 관계를 가졌을 때 임신한 게 분명해.’‘한 번에 임신이 되다니! 무진 씨의 능력도 정말 대단한데!’성연은 또 의사와 의견을 나누었다. 의사인 자신이 난치병에도 대처할 수 있지만, 오히려 정상적인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아직도 배워야 할 지식이 적지 않았다.병원에서 나왔을 때, 성연의 마음은 날아가는 듯했고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할머니와 고모에게 소식을 알려 드리면 기뻐하시면서 어떤 모습을 보이실까?’‘그리고 무진 씨는 또 어떤 반응일까?’서한기는 성연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궁금했지만, 임신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보스, 의사가 중병으로 오진해서 공연히 놀라셨습니까? 왜 이렇게 기뻐하세요?”성연은 어이가 없어 바로 서한기를 째려보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좀 좋은 생각 좀 할 수 없어?”서한기는 멋쩍게 웃으면서 한참을 생각했지만 그래도 감을 잡지 못했다.“이제 돌아갈까요?”“응, 돌아가. 넌 이제 진성 조직의 대장이니까 앞장서서 무진 씨 근심을 덜어줘야 해. 알겠지?” 성연이 당부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두말없이 승낙한 서한기는 성연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 바로 손건호와 합류하였다. 두 사람은 요즘 그야말로 운성시를 샅샅이 뒤졌다. 어떤 고수가 비밀리에 연계진을 보호하고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그러나 연운그룹의 고위 임원들을 포함한 계속된 추적 조사에도 불구
꼭두새벽에 손건호가 별장에 도착했다.성연이 코디한 무진의 정장이 후리후리한 체형에 잘 매치되자, 성연의 두 눈에는 그야말로 하트가 가득했다.‘정말 멋있어, 너무 멋있어!’손건호가 다급한 표정으로 초대장을 건네주었다.“보스, 운성시의 상공회의소에서 보낸 초대장인데, 오늘 저녁 8시에 유니버설 호텔에서의 파티입니다.”무진은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이런 초대는 매일 몇 개나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오늘 스케줄에 이건 없지?” 말을 하면서 회사로 출발할 발걸음을 재촉했다.“없습니다.” 손건호는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더듬었다.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고 손건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빨리 말해. 빙빙 돌리지 말고!”“예!” 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겁니다. 오늘 밤 이 파티의 주최자가 연계진의 연운그룹입니다. 그리고 진씨 가문도 참석한다고 합니다!”무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진씨 가문은 정말 연계진과 같은 길을 가려고 하는 모양이네. 진 백부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진교철 한 명 때문에?’“손 비서, 곧바로 진교철의 국외에서의 모든 이력을 샅샅이 조사해줘! 그리고 파티에 참석하는 걸로 저녁 일정을 바꿔!”무진의 눈빛이 변했고, 그윽하게 빛나는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예리함이 가득했다.“보스, 왜 참석하시려는 겁니까? 그러면 연계진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닙니까? 보스, 가지 마세요. 연계진에게 보스는 쉽게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손건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무진이 가볍게 웃으면서 손건호의 어깨를 토닥였다.“너는 아직 좀 어려. 연계진 그 인간이 이렇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굳이 보냈겠어?”“그럼 이건 연계진이 고의로 도발한 겁니까?”고개를 끄덕이며 거실에서 나온 무진은 벤틀리를 향해 걸어갔다.손건호가 얼른 차문을 열어준 뒤 바로 운전석에 올랐다.2층 안방에서 남편이 떠나는 모습
연운그룹 빌딩 회장실.연계진은 명문가의 두 자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가문은 모두 WS그룹 자회사에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전 선생님과 임 선생님께서 가문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상품을 우리 연운그룹에 조달할 수 있다면, WS그룹의 가격보다 30%를 더 쳐서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전혀 이익을 보지 않고 모두 당신들에게 양보하는 거나 한가지입니다.”연계진의 가늘고 긴 두 눈이 웃는 듯 마는 듯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두 부잣집 도련님들은 크게 동요한 게 분명했다. 30%의 이윤이라면 대충 계산해도 1년에 20억 원이 넘는 이익이 더 생길 것이다.이런 이익이라면 그들은 당연히 집안 어른들 앞에서 내세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한다고 자신들을 욕하지 못할 것이다.“연 회장님,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분명히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며칠의 시간을 더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일단 좋은 소식이 있으면 즉시 회장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두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연계진이 이렇게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은 WS그룹과 한 판 겨뤄보겠다는 게 분명했다. 만약 WS그룹과 등을 돌리게 된다면 결과는 아주 심각할 것이다.“그렇게 하세요. 가문의 발전에 관한 큰일이니까 두 분은 돌아가서 잘 협상해 보세요. 절대 가족들의 화목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연계진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그의 온몸에는 제왕의 기세가 가득해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연계진을 믿게 되었다.두 부잣집 도련님이 나가자, 조수경의 마음은 크게 동요하면서 연계진을 대하는 눈빛은 반작거렸다.‘과거에 강무진에게 꽂혔을 때는 강무진이야말로 비즈니스의 제왕이라고 생각했어.’그러나 이제는 연계진도 이렇게 사람을 매혹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강무진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라서 원한을 풀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돕고 싶었다.‘물론 송성
이른 아침, 샤넬의 전화를 받은 성연은 임신기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연이 전통 지식들을 가르쳐 주자, 샤넬은 어리둥절하게 들으면서 목현수에게 받아 적도록 했다.“샤넬, 이건 현수 사형도 다 알아요. 사실 당신이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굳이 내게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성연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샤넬이 크게 웃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샤넬이 뽐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무진은 최근 양대 조직의 부하들을 모두 모은 뒤에 훈련을 실시했다.손건호와 서한기는 서로 팀장 자리를 놓고 한바탕 겨뤘다.서로 치열하게 경합하자 결국 무진이 나서서 두 사람이 교대로 팀장을 맡고 한 달에 한 번 교대하도록 조치했다. 이번 달에는 서한기가 팀장을 맡도록 하자, 부팀장이 된 손건호는 불만이 가득했다.최종적으로 합친 조직의 이름은 무진과 성연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진성’으로 정했다.성연은 이 명칭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진성의 이름은 곧 전국,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해외의 수많은 조직에서는 보스들이 분분히 부하들에게 앞으로 ‘진성’을 만나면 처벌하지 않을 테니까 임무를 바로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이렇게 많은 준비를 한 진성의 첫 임무는 당연히 연계진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무진 씨, 이건 너무 사소한 일에 조직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거 아니에요? 한 가문에 불과한 연씨 가문이 대단한 무력을 보유할 정도는 아니잖아요?”성연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무진에게 물었다.“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적은 드러나지 않았고 우리는 드러난 상태야.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어떤 위험도 없기를 원해. 그래서 안전을 확보하려고 조사하는 거야.”최근 한동안 무진은 운성시 전체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전개되었고, 중견 기업의 기업가들과 일부 가문들도 연계진의 포섭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약속한 이익이 매혹적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매수되었다.물론 거절하는 쪽이 더 많았다. 그들은 모두WS그룹의 든든한 지원군으
이른 아침, 연계진은 최근에 구입한 운성의 저택 침실에 있었다.잠에서 깬 조수경은 손에 시가를 든 연계진이 창문 앞에 선 채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헐렁하고 섹시한 잠옷 차림의 조수경이 고양이처럼 가볍게 남자의 뒤로 다가가서 껴안았다.조수경은 이 남자의 능력은 무진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이 남자는 성연에게 복수하겠다는 내 소원을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을 거야.’고개를 숙여 자신을 껴안은 두 손을 보는 연계진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일어났네!”“계진 씨, 정말로 진혜선과 결혼할 거예요?”이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소원을 이루기만 하면 된다고 일찌감치 자신에게 다짐했지만, 스킨십이 있게 되자 조수경도 다소 감성적이게 되었다.몸을 돌린 연계진의 두 눈에는 순식간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손에 든 시가를 끄고는 돌아서서 활짝 웃으면서 조수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이건 반드시 해야 해. 진씨 가문의 실력은 WS그룹의 모든 지지 세력 중에서 가장 강력해. 진씨 가문과 혼인할 수만 있다면, 연씨 가문이 강씨 가문을 이겨서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야!”남자는 마치 7, 8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것처럼 천천히 완곡하게 말했다.조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당신 말을 따를 테니까 나를 잊지만 않으면 돼요!”연계진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그럴 리가. 내 가장 큰 조력자인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내가 왜 가장 먼저 당신을 찾았겠어?”약속을 받자 조수경은 흡족했다.오늘이 계획 실행을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송성연, 결혼했다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너에게 가장 심각한 일격을 날려 줄게!”옷을 갈아입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조수경이 총총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연계진의 비서 서진아가 조수경을 그 감옥으로 안내하는 일을 책임질 것이다.한 시간 남짓 달려서 운성시 북쪽의 한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조수경은 절차에 따라서 접견실에서 송아연
“혜선 언니는 승낙했어요?”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진혜선의 눈빛에 걱정이 드러났지만 곧바로 웃으면서 숨겼다.“아직 승낙하지 않았어. 하지만 무진이도 알겠지만 나는 집안의 결정을 거역할 수 없어. 당연히 두 사람의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무진 씨보고 이 모든 걸 막아달라는 말이에요?”성연은 갑자기 뭔가 불편한 느낌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이건 결국 진혜선 자신의 혼사야. 내 남편이 다른 여자의 혼사에 간섭하는 건 어쨌든 좀 이상한 걸.’무진은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진씨 가문에서 뜻밖에도 연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기로 결정할 줄은 몰랐어. 연계진은 도대체 어떤 좋은 점을 약속한 걸까?’‘두 집안이 이미 이렇게 오랫동안 연합하면서, 진씨 가문은 줄곧 기꺼이 강씨 가문의 거대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어. 원래 진상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자립해서 가문을 이끌 수 있었지. 아니면 WS그룹에서 나오는 진씨 가문의 이익을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진씨 가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걸 선택하지 않았어.’‘지금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니, 이건 정말 너무 이상한데.’무진의 마음을 한순간에 간파한 듯 진혜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무진아, 진씨 가문에는 두 일가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리 장남 일가는 과거에 줄곧 차남 일가를 눌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강씨 가문과 함께 할 수 있었어. 그러나 최근 차남 일가에서 진교철이라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 나왔어. 진교철이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해외에서 돌아왔는데, 이번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 일가와 관계를 끊겠다는 거야.”“형제 간의 반목으로 가문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우리 아버지는, 진교철의 요구에 동의하고는 나보고 연계진과 혼인하라고 하셨어. 아무튼 이번에는 정말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어.”이렇게 직접적인 진혜선의 SOS 요청에 무진은 다소 놀란 듯했다. ‘진혜선은 평소에 성숙하고 침착한 여장부의 모습을 보였어.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먼저 내게 도
진혜선이 고른 식당은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탄 뒤에야 도착했다.남쪽에서는 흔치 않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한옥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공기 중에는 은은한 풀내음이 났고, 개울가의 작은 다리와 고풍스러운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쾌한 환경에 아주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진혜선이 성연을 보자 웃으면서 인사했다.“성연 씨 오늘 이 옷은 정말 운치가 있네. 과연 결혼한 여자야말로 진정한 매력이 넘치는 모양이야.”“혜선 언니 놀리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언니하고 여자의 운치를 비교할 수 있겠어요?” 성연은 진혜선의 옷차림을 관찰했다. 오늘은 오히려 캐주얼한 옷차림인데, 이전에 몇 번 봤던 화려한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다.‘정말 아름다워. 이렇게 간단하게 꾸몄는데도 막 대학을 졸업한듯한 모습이야.’하지만 성연은 진혜선이 무진보다 두 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성연은 마음 속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혜선 언니와 무진 씨는 자연스럽게 친근한 관계야. 그리고 탁월한 능력에 저런 미모라면 내가 남자라도 마음이 움직일 거야.’“가자, 이 식당은 예약제야. 매일 여덟 테이블의 손님만 받아.” 진혜선은 두 사람을 데리고 청룡각이라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 여덟 테이블 중에서 청룡각이 제일 먼저 공략 대상이 될 게 분명해. 예약한 사람도 아마 더 많을 것 같은데.”무진은 진혜선을 바라보았다.진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어렵긴 했어. 하지만 오늘 WS그룹 대표께서 오셨으니 이 사람들 복이기도 해!”고전적인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메뉴를 건네주자 지배인이 공손하게 말했다.“강 대표님과 사모님, 두 분께서 메뉴를 좀 봐주세요. 고르기 어려우시면 제가 메뉴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무진은 성연에게 메뉴를 건네주었다.“좋아하는 게 있는지 한번 봐.” 성연이 메뉴를 보니 요리 이름도 ‘안개비 내리는 숲’ ‘눈 덮인 호숫가’ ‘호수의 기억’처럼 남쪽 지방의 정취가 가득한 독특한
무진이 일어나려고 할 때 갑자기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자리에 앉은 무진이 손건호에게 눈빛을 보냈다.“들어오세요!”손건호가 대답했다.문이 열리자 잘생긴 젊은 남자가 들어와서 무진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들어온 사람은 바로 소지연의 먼 친척이자 유럽지역 본부장인 소태경이다.“괜찮아요. 무슨 보고할 게 있습니까?” 무진은 평온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다소 어색해하면서 몇 초 동안 망설이던 소태경이 결국 입을 열었다.“대표님, 바로 이 얘기인데요. 제가 사전에 상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연계진 씨의 초청에 잘못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연씨 가문과 우리 WS그룹이 아주 직접적인 경쟁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된 처신을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무진은 소태경이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사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원래 그 일이었군요! 괜찮아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당신을 유럽 지역의 본부장으로 임명한 건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작은 일을 가지고 어떻게 소 본부장을 의심할 수 있겠어요?”무진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지만, 소태경은 무진의 동작 하나 하나가 책략을 세우는 듯한 느낌이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소태경은 조금도 기쁜 기색이 없이 계속 말했다.“다음번에는 반드시 명심하고 절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귀국한 것도 사촌누님의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예전에 농촌에 있던 저를 데리고 나와 주셨기 때문입니다.”“효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이 점을 굳게 믿습니다!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일이 마무리되면 빨리 유럽으로 가서 진두지휘하세요. 지금 MS 가문은 이미 몰락했으니 소 본부장이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무진의 간단한 몇 마디에 사기가 고무된 소태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빛을 빛냈다.“제가 반드시 우리 WS그룹을 유럽에서 3위 안에 들게 만들겠습니다!”소태경이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