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은 요 며칠 회사에 있지 않고 접대를 위해 외부로 나갔다.그래서 곽연철은 바로 손건호에게 연락했다.제왕그룹은 많이 바쁘지는 않은 시기라 곽연철이 직접 손건호에게서 자료를 받기 위해 WS그룹 본사로 갔다.비록 손건호가 강무진의 비서에 불과하지만 곽연철은 손건호를 몹시 존중했다.곽연철이 회사 로비에 들어섰을 때에 손건호가 아래로 내려왔다. “곽 대표님, 올라가셔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손건호가 공손한 음성으로 물었다.곽연철이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강 대표님도 안 계시니 그냥 여기에서 기다리겠습니다.”손건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내려오겠습니다.”손건호는 위로 다시 올라가기 전에 프론트 데스크에 곽연철에게 차와 디저트를 갖다 주라고 지시했다.곽연철은 프론트 데스크 바로 옆에 있는 고객 휴게실로 들어서다 조수경을 만났다.조수경을 본 곽연철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여자가 어째서 여기에 있지?’그는 먼저 인사하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겨 휴게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조수경은 조금 굳은 얼굴이 되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프론트 데스크로 가서 이미 준비되어 있던 다과를 들고 휴게실로 갔다.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조수경이 곽연철에게 물었다.“곽 대표님께서는 사업 문제로 여기 오신 건가요?”곽연철은 조수경에게서 아무런 호감도 느낄 수 없었다.조수경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음이 그의 눈에 훤히 다 보였기 때문.곽연철이 조용히 대답했다. “네.”조수경은 곽연철의 냉담한 태도에 움츠러들지 않은 채 차와 간식을 티 테이블에 올려 놓은 후 옆에서 곽연철을 위해 차를 따라 주었다.곽연철은 모르는 척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며 그저 옆에 놓여 있는 잡지 한 권을 들고 보기 시작했다.조수경에 대해 아주 냉담한 태도를 보인 셈이다.그러나 곽연철의 맞은편에 앉은 조수경은 스스로 가장 자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곽 대표님, 지금 저는 WS그룹의 정 직원으로 근무하게 되었어요. 곽 대표님이 잘
조수경이 강무진의 회사에 있는 것을 본 곽연철이 다시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다.보기 드물게도 그의 음성에 약간의 초조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보스, 강씨 집안 사람들을 설득해서 회사에 자리를 얻을 정도면 조수경이라는 여자가 제법 수완이 있음을 인정해야겠습니다. 보스, 이 점 대수롭게 여기지 말고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곽연철의 말은 평온하던 성연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성연은 조수경이 아니라 무진 왜 자신에게 조수경의 존재를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게 더 신경 쓰였다.조수경이 강씨 집안에 머물게 된 지도 꽤 되었다.그동안 무진은 자신에게 조수경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그리고 무진이 목에 매고 있던 다른 스타일의 넥타이 역시 성연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하지만 당분간 휴가를 낼 수도 없어 귀국할 수도 없는 성연.마음이 답답했던 성연이 억누른 음성으로 곽연철에게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 나는 지금 외국에 나와 있고, 무진 씨는 거기에 있는데. 게다가 무진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말한 적이 없는 걸.”이 말을 하는 성연의 음성에는 약간의 노여움을 띠고 있었다.그녀는 무진이 잘못할 리 없다고 믿었다. 게다가 곽연철의 말을 들어 보니, 무진은 조수경에게 별다른 뜻이 없었다.그냥 조수경 혼자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것일 뿐.그러나 자신이 외국에 나와 있는 동안 저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 지 누가 알겠는가.성연은 답답한 마음을 드러낼 곳이 없어 힘들었다.곽연철이 그런 성연을 위로했다.“보스, 일이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조수경은 지금 회사에 있으니 우선 제가 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뭔가 일이 있으면 곧 알려드리죠. 하지만 강무진과 얘기해서 이 참에 조수경과 거리를 좀 두게 해야 합니다.” “나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무진 씨는 조수경이 강씨 집안에 머물고 있는 일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말을 꺼내겠어요?” 자신이 무진의 곁에 감시인을 꽂아 놓았다고 말할
무진은 집에서 며칠 동안 깊이 고민했지만 결국 성연을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속으로 목현수가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지금 목현수와 성연이 너무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게다가 과거 두 사람은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하던 사이여서 그 친분 관계는 어쩔 수가 없었다.이전에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무진도 모른다.목현수는 자신이 없던 시절의 인생에서 성연과 함께 했다.지금 성연이 자신의 약혼녀이긴 하지만 무진은 너무 불안했다.자신이 성연에게 몹시 신경 쓰는 것에는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무진은 회사 업무들을 좀 처리해 둔 후 바로 그날 밤에 자신의 개인 전용기를 불렀다.손건호가 공항까지 무진의 곁에 지켰다.“보스, 정말 혼자 가시겠습니까?”손건호의 눈에 걱정의 빛이 어려 있었다.무진은 이번 여정에 자신이 동행하지 않을 계획이다. “음, 나 혼자 갈 생각이야.” 무진은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으로 가는 일로 다른 사람의 업무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았다. “보스, 보스의 신분은 특수합니다. MS 가문의 본가가 바로 유럽에 있고요. 만약 저들이 보스의 유럽 행을 알게 된다면 분명 당신에게 좋지 않을 겁니다. 아니면 저를 데려 가시든가요. 결정적인 순간에 제가 보스를 보호할 수 있게 말입니다.”손건호가 계속 무진을 설득시키려 애썼다.물론 무진의 심복인 손건호이기에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다른 사람이라면 감히 입에 담지 못할 터. “편한 대로 두 사람만 데리고 가면 돼. 회사에도 진두지휘할 사람이 필요하잖아. 너는 곽연철과 협력해서 회사의 일을 잘 처리하면서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면 돼.”자신을 걱정하는 손건호가 진심이라는 게 그대로 보여서 책망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보스, 제발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손건호가 미간을 찡그린 채 무진을 바라보았다.고개를 끄덕인 후에 무진은 바로 전용기에 탑승했다.검은 정장 차림의 두 사람이 무진의 뒤를 따라 올라 탔다.그날 밤
무진이 자신을 만나러 온 사실을 성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 다음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을 마친 성연.룸메이트 앨리스와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성연의 주위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엘리스는 학우들과 재잘재잘거리는 중이었고, 성연은 그 옆에서 듣고만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처음 보자마자 성연에게 눈길을 보내며 주시했다.엘리스가 성연의 팔을 붙잡고 몇 마디 걸면 성연도 한 마디 대답했다.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연을 알고 있기에 앨리스는 억지로 성연을 대화에 끌어들이지 않았다.식당 입구에 거의 도착했을 때 앨리스가 성연에게 말했다.“성연, 방금 엄청난 뉴스를 들었어.” “무슨 뉴스?” 성연이 물었다. “너 우리 식당 음식이 아직 익숙하지 않잖아? 방금 내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우리 학교 2층에 A국 요리사가 와서 너희 나라 음식을 만든데. 우리도 빨리 가보자.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어.”성연의 손을 붙잡고 있는 앨리스는 얼른 가서 맛보고 싶었다. “A국 요리사?” 성연은 앨리스의 말에 진짜 흥미가 생겼다.성연은 확실히 유럽의 음식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처음에는 새로운 음식들을 이것저것 맛보는 것도 괜찮았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 먹던 음식이 점점 더 생각났다.스스로 음식을 만들 줄은 알지만 학교에서 음식하기도 불편해서 그만두었다. “그래, 어서 가보자.” 엘리스가 성연을 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원래 A국의 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디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유럽 학생들로 2층의 식당이 붐볐다.성연과 엘리스는 얌전히 뒤로 가서 줄을 서야 했다.앨리스의 음성에 약간 조바심이 묻어났다.“오 마이 갓, 줄이 이렇게나 길어. 우리 차례는 언제쯤 올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 알았더라면 더 빨리 올 걸 그랬어.”성연이 웃으며 앨리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괜찮아, 우리 몫도 있을 거야. 너무 조급해하지 마.”엘리스는 마음이 급했지
벤츠 승합차를 타고 학교 입구에 도착한 무진은 목현수에게 이끌려 가고 있던 성연을 보게 되었다.무진의 얼굴이 바로 어두워지며 눈에서 한기를 내뿜는 것이 마치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주먹을 꽉 움켜쥔 무진은 냉정해야 한다고 계속 자신을 타일렀다.마음속의 분노가 좀 걷힌 후에야 무진은 핸드폰을 들고 일부러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의 음성은 무척 평온했다.“성연아, 너 뭐 하고 있어?”성연은 무진을 속이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나 지금 차에 타고 있어요. 나를 데리고 박물관에 가려고 사형이 왔는데, 내가 사형에게 도움을 청했어요.”성연의 말에 무진은 속으로 숨을 크게 내쉬었다. 다행히 성연이 자신에게 사실 대로 말했다.그러나 여전히 감정을 누르기가 힘들었던 무진은 짙은 불쾌감이 쑥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무슨 일이든 언제든지 나에게 말하면 돼. 내가 널 위해 사람을 보내면 되는데.”자신의 약혼녀인 성연이 늘 다른 남자를 귀찮게 하는 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그리고 그는 성연이 목현수와 너무 가깝게 지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지난번 목현수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다만 목현수 그 인간이 너무 능청스러운 탓에 성연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약간 화가 난 듯한 무진의 음성에 성연은 조금 충격을 받았다. 왜 화가 났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성연은 설명했다.“무진 씨를 너무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무진 씨는 회사 일이 너무 많잖아요. 나 때문에 무진 씨가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요.”아무리 위험한 일이 생긴다 해도 성연은 일이 해결된 후에야 무진에게 알려줄 터였다.먼 거리에 떨어진 무진이 괜히 걱정만 할 뿐 당장 해결해 줄 수는 없으니까.성연은 곽연철이 자신에게 말해 준 조수경의 일이 생각났다.이번에야말로 무진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다.마침 무진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성연이 반대로 물었다.“요즘 집안에 뭐 재미있는 일은 없어요?”성연이 타고 있는 전방의 차만 주시하며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던 무진이 대답했다
박물관에 오니 유럽 문화의 정취가 물씬 풍겼다.한 나라의 문화이지만 들어간 후에 전율을 느꼈다.목현수는 흥미가 없었지만 성연의 옆을 내내 지켰다.하나하나 둘러보는 동안 흥미로운 문화 유물들이 많이 보였다.가끔 알아보기 힘든 것이 있으면 묵현수 더러 설명해 달라고 했다.박물관은 크지도 작지도 않아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 구경을 모두 마쳤다.잠시 돌아다닌 후에 두 사람이 나왔다.목현수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목 마르지 않아?”구경하는 한 시간 동안 성연은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던 터라 역시 목이 좀 마른 것 같았다.그러나 이 박물관에서는 음료를 파는 것 같지 않았다.그래서 목현수가 음료를 사러 너무 멀리 나갈까 봐 손을 흔들며 사양했다.“됐어요, 괜찮아요.”잠시 후에 다른 곳에 가서 마셔도 되니까.그러나 성연의 의도를 알아차린 목현수가 웃으며 말했다.“옆에 자판기 있어. 뭐 마실래?”그 소리에 성연은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다.“나는 생수 마실게요. 고마워요, 사형.”웃으며 고개를 흔들던 목현수가 자판기 앞으로 갔다.이어서 생수 두 병을 사온 목현수.성연은 병 뚜껑을 열자마자 바로 반을 비웠다.시원하게 물을 마신 성연의 눈에 물병을 보며 제자리에 서 있는 목현수가 보였다.성연이 의아한 마음에 물었다.“사형, 왜 안 마셔요? 목 마르지 않아요?” “다른 여자애들처럼 병 뚜껑을 열어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목현수가 농담하듯이 말했다.성연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사형, 내 병 뚜껑은 내가 따요. 내가 어떤 사람인데 다른 사람에게 따 달라고 하겠어요? 아마 평생 볼 일 없을 걸요?”성연은 뭐든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병뚜껑 하나 못 열 정도로 힘이 없어서 어디에 써 먹겠어?’ ‘그 정도면 아마 스스로 생활도 할 수 없을 거야.’성연은 도시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강무진 앞에서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그렇게 생각하니 두 사람은 꽤 잘 어울리는 한 쌍 같았
그 장면을 거리를 유지하고 계속 두 사람의 뒤를 따르던 무진이 보았다.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하는 무진의 눈에는 그저 성연과 목현수가 바짝 붙어있는 것만 보였다.금세 차가운 표정이 된 무진은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차에서 내려 곧장 두 사람 앞으로 걸어갔다.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눈앞에 나타난 무진으로 인해 성연은 한순간 멍한 상태가 되었다.그러다 이내 심상치 않은 무진의 표정을 보고는 곧바로 멈칫했다.하지만 발에 힘을 주지 못해 몸이 휘청거렸다.도대체 무진이 언제 이곳으로 온 건 지 성연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두 사람이 통화를 하던 순간에 무진은 이미 이곳에 와 있었던 모양.무진의 시선에 괜히 찔리는 마음이 들긴 했으나 무진에게 떳떳하지 않은 일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하며 성연이 물었다.“무진 씨, 언제 왔어요?”“어젯밤에.” 덤덤한 음성으로 대답하는 무진에게서 착 가라앉은 기운이 흘렀다.“그럼 도착하고 왜 바로 나를 찾아오지 않았어요?” 무진의 대답에 왠지 망연한 기분이 드는 성연.평소라면 무진은 한시도 기다리지 못하고 가장 먼저 자신을 찾아왔을 터.그런데 이제서야 자신 앞에 나타나다니.더 이상 성연에게 다가가 부축하지 않고 한 옆에 느긋한 모습으로 옆에 서 있던 목현수가 무진을 바라보며 물었다.“강 대표님, 어떻게 또 오셨습니까? 가신지 얼마나 됐다고?”무진은 목현수의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곧장 앞으로 걸어가 두 팔을 펼쳐 성연을 들어올려 안았다.성연은 무진의 행동에 깜짝 놀랐지만 순순히 무진의 목을 감싸 안았다.옆에 서 있던 목현수는 잠시 멍했지만 곧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목현수가 보기에 강무진이 질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강무진, 아무런 말 한마디도 없이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풋, 진짜 귀엽네.’미안한 마음이 든 성연은 목현수를 보며 살짝 웃었다.무진이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자신이 데려와 달라고 목현수에게 부탁해 놓고는 또 이렇게 찬밥 신세가 되게 해서
차에 도착한 무진. 비록 화는 났지만 성연을 내려놓는 동작이 몹시 조심스럽다.무진은 성연에게 단단히 경고했다.“앞으로 아무도 네 손을 건드리게 하지 마. 아무도 안 돼!”성연은 무진이 한참 더 마음속에 담고 있다가 말을 꺼낼 줄 알았다.그런데 이렇게 못 참고 바로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무진이 진짜 화났음을 알았기에 성연도 더 이상 장난치지 않고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았어요.”‘성연이 약속했으니 앞으로는 약속을 지키겠지.’무진은 성연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오늘 자신의 행동이 너무 지나쳤던 건 아닌지 반성했다.‘성연과 목현수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 말이지.’이런 생각을 하자 무진의 말투가 좀 누그러졌다. 손도 못 댈 만큼 벌겋게 부은 성연의 발목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많이 아파?”성연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오.”잠시 전에 사형 목현수가 이미 뼈를 바로잡아 주어서 지금 성연의 발목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다만 성연은 지금 이 순간 무진 앞에서 목현수 얘기를 꺼내는 건 부적절함을 잘 알고 있었다.무진이 얼마나 질투하고 있는 지는 몰랐다. 자신과 목현수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있지 않다 보니 약간의 오해도 불가피한 법.마치 자신이 혼자 있을 때 쓸데없는 생각을 자제하지 못하는 것처럼.입장을 한 번 바꾸어 생각해 보면, 이런 무진의 생각도 정상인 셈.그래서 무진의 오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다만, 사형에게 조금 미안할 뿐.이렇게 다리를 다쳤는데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겠나?성연이 괜히 억지를 부린다고 판단한 무진의 미간 주름이 더 깊어졌다.“걸을 때 조심할 줄 모르지? 어떻게 이렇게 심하게 다칠 수 있단 말이야?”자신이 있었으면 성연을 잘 챙겨줬을 텐데.“아이고, 내가 조심하지 않은 거예요. 괜찮아요.” 성연이 무진의 팔을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하루 종일 걱정하게 만들고 너 도대체 나한테 말 안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
“언니, 빨리 나와서 사형에게 보여주세요.” 성연이 바로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유채연은 바로 그래함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래함은 지금도 유채연이 겉모습만 꾸민 여자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겼다.약간 수줍어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그래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래함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한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유채연도 그래함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걸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 한참 기다렸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그래함의 눈을 마주한 유채연이 어색하게 치마자락을 잡고 말했다.“어때? 보기 싫어?”“예뻐. 내가 홀딱 반할 정도야.” 그래함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러웠다.유채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화장을 마친 뒤 그들은 계속 쇼핑을 했다.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게 자리를 양보했다.그래함이 바로 앞으로 가서 유채연의 손을 잡았다.유채연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래함은 꼭 쥔 채 유채연이 벗어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성연이도 여기 있잖아.” 유채연은 20여 년을 살면서 그래함 이 한 사람만 좋아했다.평소에도 남자와 스킨십을 해본 적도 없었다.지금 그래함과 함께 걸으면서 유채연은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러나 그래함의 따뜻한 손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자 마음은 달콤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그래함이 바로 말했다.두 사람 뒤에 있던 성연은 하마터면 그래함을 흘겨볼 뻔했다.‘이건 날 훼방꾼으로 여기는 거야.’유채연은 감히 고개를 돌려 성연을 보지 못하고, 손을 잡힌 채 얼굴만 빨개졌다.그래함은 유채연이 자신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자 불만스러웠다.“채연아, 팔장을 낄래.”“아니, 손을 잡았잖아.” 유채연은 입술을 깨물며 수줍어했다.“우리 연인 사이잖아?” 그래함이 유채연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열기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자 유채연은 더욱 부끄러워했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외삼촌에게 차를 주자, 외삼촌은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 차의 성능을 시험해 보겠다고 말했다.그래함이 자신을 속이는 건지 보려는 것이다.외삼촌이 차를 몰고 가자 성연과 그래함, 유채연만 남게 되었다.오늘 손님이 오기 때문에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자세히 헤아려 보니 외삼촌은 정말 디테일한 사람이야.’“채연 언니, 우리 쇼핑하러 가요.” 성연이 다가가서 유채연의 팔장을 꼈다.“그래.” 유채연은 성연이 쇼핑을 하려는 걸로 생각하고 함께 갔다.성연이 유채연을 데리고 온 곳은 모두 고급 쇼핑몰이었다.유채연도 옷을 좀 사고 싶었지만, 가격을 보고는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성연은 흰색 원피스를 유채연의 몸에 대고 비교해 보았다.“채연 언니, 이 원피스가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 보세요.”“난 됐어. 네가 맘에 들면 사.” 방금 유채연은 가격표를 언뜻 봤다.‘너무 엄청난 가격이야.’‘원피스 한 벌에 어떻게 가격이 이렇게 비쌀 수 있는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어.’‘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야!’“언니, 이 치마가 정말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보고 싶지 않아요?” 성연은 눈을 깜빡이며 유채연을 바라보았다.눈앞의 원피스를 보고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한번 입어 봐.” 그래함도 유채연이 이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유채연은 자신의 그런 모습이 기대되면서도 머뭇거렸다.마침내 결정을 내린 뒤에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갔다.‘확실히 잘 어울리네.’유채연은 한번 입어 본 걸로 만족했고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성연과 그래함이 번갈아 설득해서 유채연도 결국 옷을 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또 유채연에게 많은 옷을 사주었다.처음에는 유채연도 두 사람이 돈을 쓰는 걸 걱정했다.그러나 두 사람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유채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중에는 돈을 쓰는 것에도 무감각해졌다.예쁜 옷을 많이 산 뒤 그래함이 뒤에서 가방을 들어주었다.그래함의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였다.성연은 또 유채연을 끌고
“정말 변변치 못하게!” 외삼촌은 유채연을 노려보았다.그래함은 외삼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했다.‘외삼촌은 이게 채연이가 만약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거야.’그래서 그래함도 지나친 요구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이런 것들을 채연이에게 주는 것도 당연한 거야. 여기에 그치지 않고 채연이에게 훨씬 더 잘 해 줄 거야.게다가 외삼촌과 유채연은 그래함의 지위에 대해서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이 정도의 돈은 그래함에게 있어서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유채연이 직접 음식을 준비해서, 외삼촌 가게 뒤의 정원에서 모두 함께 밥을 먹었다.외삼촌의 표정은 시종 좋지 않있다.밥을 다 먹고 유채연이 치우려고 하자 외삼촌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놔 둬! 나 혼자 해도 돼! 너는 그럴 시간이 있으면 가서 너 자신이나 좀 꾸며.”외삼촌은 말하면서 유채연을 물러서게 했다. 유채연이 비틀거리자 그래함이 뒤에서 유채연을 부축해 주었다.그리고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집 앞에 와서야 유채연은 그래함과 성연에게 미안한 듯이 웃었다.“정말 미안해. 외삼촌이 바로 저런 성격이셔. 미안해.”“언니, 외삼촌이 이런 성격인 건 우리도 이해할 수 있어요. 외삼촌이 치우지 말라고 했으니까 우리 좀 걸어요. 이쪽의 풍경이 좋네요.” 성연은 유채연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그래함과 성연이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고, 유채연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그들은 주변을 한가롭게 걸었다.길가에서 자동차 판매점을 본 그래함이 걸음을 멈추었다.유채연과 성연은 고개를 돌려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성연이 그래함에게 물었다.“사형, 왜 그래요?”“우리 들어가서 한번 보자.” 그래함은 판매점 안으로 들어갔다.그래함이 뭘 하려는 건지 몰랐지만, 유채연과 성연도 그래함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그래함은 한참동안 살펴보았다.여기는 읍내라서 그다지 비싼 차가 없었다. 겉모습이 좋아 보이는 차는 성능이 좋지 않았고 성능이 좋은 차는 스타일이 좋지 않았다.겨
“그렇게 하겠습니다.” 외삼촌이 말한 걸 그래함은 모두 승락했다.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외삼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유채연은 외삼촌이 제시한 조건들에 대해서 아주 불만이었다.‘내가 그래함과 함께 하는 건 두 사람이 예전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그러나 지금 외삼촌이 그렇게 많은 요구를 하는데, 오히려 내가 그래함의 돈 때문에 그래함과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유채연이 항의했지만 외삼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어때? 내 이 조건들을 자네가 승낙한다면 채연이가 자네와 함께 떠나도 돼. 자네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그럼 말할 필요도 없지!”유채연이 다시 말을 하려고 했지만, 바로 뒤에 있던 성연이 유채연의 옷소매를 당기면서 권유했다.“사형에게 저런 요구를 한 건, 외삼촌이 언니에게 사고가 생길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에요. 나중에 혹시라도 집안이 몰락하게 될까 봐 일부러 이런 요구를 한 거예요. 만약 언젠가 정말 의외의 사고가 생긴다 해도, 언니가 읍내로 돌아올 수 있게 말이죠.”옆에 있던 성연은 벌써 외삼촌의 뜻을 알아차렸다.‘외삼촌이 말한 조건은 모두 채연 언니에게 유리한 것들이야.’‘외삼촌은 자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돈도 채연 언니 계좌에 넣고, 집 명의도 채연 언니 앞으로 하라고 했어.’‘모두 채연 언니에게 만약의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거야.’성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삼촌의 마음이 이렇게 세심한 줄은 몰랐어.’‘사형이 채연 언니를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외삼촌이 말한 이런 상황은 생기지 않을 거야.’‘그러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해. 결국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유채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외삼촌의 요구는 모두 나를 위해서였어.’유채연은 더더욱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그저 그래함을 바라볼 뿐이다.“외숙부님이 말씀하신 건 다 문제없습니다. 채연이에게 사 줄 집을 한번
성연은 식당 입구의 작은 가게에서 그래함과 유채연을 기다렸다.두 사람이 손을 잡고 식당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하기로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성연은 묵묵히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그래함이 유채연을 데리고 가더라도 바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유채연의 외삼촌이 별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해도.그러나 유채연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유채연을 데려간다면 그래함은 반드시 외삼촌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그래함은 유채연과 함께 돌아가서 외삼촌을 만났다.외삼촌이 그래함을 난처하게 만들 것을 염려해서, 유채연은 원래 그다지 외삼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외삼촌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자, 유채연도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생각해보니 외삼촌은 아마 동의할 것 같아.’그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유채연의 외삼촌은 거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외삼촌.” 유채연은 그래함의 뒤에 숨은 채 외삼촌을 바라보았다.‘외삼촌은 지금까지 내가 여기서 살게 해주셨어.’‘어쩌다 내게 온정을 보이기도 했지만.’유채연도 외삼촌 본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외삼촌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그래함은 유채연의 손을 토닥이면서 긴장을 풀고 모든 건 자신에게 맡기라는 눈짓을 했다.“외숙부님.” 그래함이 유채연과 함께 외삼촌 맞은편에 앉았다.외숙부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외삼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험악판 표정을 지으며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지금 뭐라고 했어? 나는 당신 같은 조카는 없어.”그래함은 오히려 외삼촌을 두려워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어차피 이제 모두 한 가족이 될 테니까 제가 외숙부님이라고 해야지요.”그래함의 말에 반박하려던 외삼촌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대감에 가득 찬 유채연의 눈빛을 마주하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무슨 일이야!” 외삼촌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래함을 쳐다보았다.“저는 채연이를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여기서 나가서 더 잘 살 수 있게
이튿날 오후, 가게문을 닫은 뒤 유채연은 성연의 안내로 그래함을 만났다.이번에는 유채연의 수줍은 성격을 고려해서, 밀크티 가게가 아니라 칸막이가 있는 식당을 골랐다.엉성한 칸막이지만 그래도 모두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우아한 분위기가 넘치는 잘생긴 그래함을 보자, 유채연의 얼굴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유채연이 그래함에게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없었다면 그 옥노리개도 간직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채연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래함이 유채연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나는, 다 괜찮아.” 유채연은 그래함을 똑바로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래함은 이렇게 멋스러운데, 나는 진흙밭의 진흙일 뿐이야.’요 몇 년 동안 유채연은 전혀 자신을 꾸미지도 않았다.날마다 그럭저럭 지냈을 뿐이다.지금은 그래함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도 없었다.‘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래함에게 어울릴 수 있겠어?’그래함이 종업원을 불러서 가정식 요리를 몇 개 시켰다.모두 유채연이 좋아하는 음식들이다.그래함이 시키는 요리 이름을 들으면서, 유채연은 놀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그래함이 유채연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걸 내가 어떻게 기억하지 못하겠어?”“당신...”그래함이 자상하게 대할수록 유채연은 더 열등감을 느꼈다.‘나한테 무슨 덕과 능력이 있어서 이런 사람에게 어울리겠어?’“애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음식부터 먹자.” 그래함의 마음은 더 긴장하면서 안절부절 못했다.이번에 또다시 거절 대답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성연은 턱을 괸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그다지 먹고 싶은 것 같지 않았다. 그래함은 수시로 유채연에게 음식을 집어 줬지만, 식사하는 내내 유채연을 쳐다보느라 음식도 그다지 먹지 않았다.안타까움이 가득한 식사였다.가까스로 식사를 마친 뒤, 그래함은 종업원에게 앞의 음식을 치우고 주스와 과일을 내오도록 했다.그래함이 유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