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도착한 무진. 비록 화는 났지만 성연을 내려놓는 동작이 몹시 조심스럽다.무진은 성연에게 단단히 경고했다.“앞으로 아무도 네 손을 건드리게 하지 마. 아무도 안 돼!”성연은 무진이 한참 더 마음속에 담고 있다가 말을 꺼낼 줄 알았다.그런데 이렇게 못 참고 바로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무진이 진짜 화났음을 알았기에 성연도 더 이상 장난치지 않고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았어요.”‘성연이 약속했으니 앞으로는 약속을 지키겠지.’무진은 성연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오늘 자신의 행동이 너무 지나쳤던 건 아닌지 반성했다.‘성연과 목현수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 말이지.’이런 생각을 하자 무진의 말투가 좀 누그러졌다. 손도 못 댈 만큼 벌겋게 부은 성연의 발목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많이 아파?”성연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오.”잠시 전에 사형 목현수가 이미 뼈를 바로잡아 주어서 지금 성연의 발목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다만 성연은 지금 이 순간 무진 앞에서 목현수 얘기를 꺼내는 건 부적절함을 잘 알고 있었다.무진이 얼마나 질투하고 있는 지는 몰랐다. 자신과 목현수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있지 않다 보니 약간의 오해도 불가피한 법.마치 자신이 혼자 있을 때 쓸데없는 생각을 자제하지 못하는 것처럼.입장을 한 번 바꾸어 생각해 보면, 이런 무진의 생각도 정상인 셈.그래서 무진의 오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다만, 사형에게 조금 미안할 뿐.이렇게 다리를 다쳤는데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겠나?성연이 괜히 억지를 부린다고 판단한 무진의 미간 주름이 더 깊어졌다.“걸을 때 조심할 줄 모르지? 어떻게 이렇게 심하게 다칠 수 있단 말이야?”자신이 있었으면 성연을 잘 챙겨줬을 텐데.“아이고, 내가 조심하지 않은 거예요. 괜찮아요.” 성연이 무진의 팔을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하루 종일 걱정하게 만들고 너 도대체 나한테 말 안
호텔에 도착해서도 무진은 성연을 객실 안까지 안고 갔다.이동 중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성연은 무진의 품에 기대어 가슴에 머리를 묻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했다.무진은 경호원에게 발목 염좌에 바르는 연고를 사오라고 지시했다.그리고 자신이 직접 성연의 운동화를 벗겨준 후, 아주 부드럽게 성연의 발을 천천히 문질렀다.성연은 발 감각이 꽤 민감한 편.무진이 만지는 동안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다.무진은 성연의 발을 꾹꾹 누르며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자꾸 그렇게 움직이지 마. 내가 멍을 문질러 줘야 네 발이 좀 편할 거야.”성연도 무진이 자신을 위해 그러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성연은 도무지 자신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커다란 손이 성연의 다리 위를 미끄러지듯이 오르내렸다.아주 투박한 느낌.성연의 얼굴은 금세 달아올랐다. 몹시 수줍은 표정과 함께.성연은 입술을 깨물고 참았지만 몸의 반응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고개를 든 무진의 눈에 촉촉하게 젖은 성연의 눈동자와 발그레한 뺨이 보였다.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무진은 성연의 발이 이렇게까지 예민할 줄은 몰랐다.그러나 성연 본인도 잘 몰랐을 것이다. 지금 성연이 보이는 모습은 이렇게 유혹적이라는 건...무진이 자신을 통제하기 힘들게 만들었다.그러나 성연의 발목 부상을 생각해서 참을 수밖에 없는 무진은 천천히 성연의 발목 주변을 주무르기만 했다.성연의 몸도 이에 점차 이완되기 시작했다.그러나 몸이 완전히 풀리자 성연은 무진의 안마가 상당히 수준급임을 인정했다.발목의 통증이 많이 줄었던 것.발목 주위로 혈액이 순환되며 붓기가 그렇게 심해 보이지 않았다.성연이 궁금한 눈길로 무진을 바라보았다.“무진 씨 배운 적 있죠?”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인하지 않았다.“이전에 꽤 큰 회사 하나와 합작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상대가 꽤 까다로웠어. 당시 제대로 투자를 받기 위해 두 가지를 배웠어.”성연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런 일도 있었어요?”북성에서
룸 안의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며 성연의 눈도 흐릿해졌다.점점 더 뜨거워질 때, 무진은 성연의 입술을 한 차례 깊숙이 베어 문 후 동작을 멈추었다.입술의 통증이 성연의 정신을 약간 맑게 했다.성연이 원망의 눈빛으로 무진을 한 차례 쏘아본 후에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문질렀다.“앗, 아파...”그 소리를 들은 무진은 자신의 힘이 너무 셌나 싶어 얼른 고개를 숙이고 다정하게 물었다.“왜? 너무 심하게 빨았나?”“혹시 개띠에요? 내가 아플까 걱정하는 사람이 이렇게 물어요?” 성연은 타박하는 눈빛으로 무진을 노려보았다.무진은 성연을 안으며 연신 사과했다.“미안. 감정을 억제하기가 어려워. 나를 좀 봐 줘?”성연도 정말 그를 책망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터라 무진을 반대편 자리로 밀어낸 후에 좀 느슨하게 할 생각이었다.그리고 분위기가 거의 가라앉았다 싶으면 무진과 제대로 대화를 나누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고 생각했다.곽연철의 말이 맞다. 갈등이 생겼으면 즉각 해결해야 한다.이렇게 질질 끄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성연이 다시 물었다.“무진 씨 요즘 무슨 일로 바빠요?”무진은 좀 이상했지만 앞에 있는 이는 성연이었다. 그래서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했다.“너 이미 물어봤잖아? 회사 일로 바쁘다고. 그리고 할머니 옛 친구분의 손녀를 회사에 넣었어. 경성 지역의 조씨 집안이야.”다 말한 후에 무진은 혹여 빠뜨린 부분은 없는지 기억을 떠올려 보았지만다른 사항이 없는 게 확실했다. 그동안 바쁘게 일한 것 외에 특별한 일은 이 것뿐이었다.성연이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성연은 마음속으로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무진은 그런대로 솔직하게 먼저 모든 일을 똑똑히 자백한 셈이다.성연이 짐짓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조씨 집안 아가씨를 한 번 만나봐야겠네요. 어떻게 할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신다니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네요.”무진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조수경과
무진은 연신 장담했다.“그래,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든 크든 작든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너한테 다 말할게.”성연은 그제야 만족했다.잠시 조용해지자 성연은 소지연의 소행을 무진에게 알려주었다.모든 일은 소지연이 뒤에서 기획하고 지시했던 것.무진은 이전에 자신이 그렇게 믿었던 소지연이 이처럼 모질고 악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무진의 얼굴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으며 눈에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무진은 순간 벌컥 화를 내며 휴대전화를 꺼내 손건호에게 전화를 걸었다.어제 무진이 떠난 후부터 혹여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손건호는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러던 차에 무진의 연락을 받은 손건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보스.”무진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떤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소지연을 잡아!”손건호는 원래 소지연의 위치를 계속 조사하고 있던 중이었다.그러다 이같은 무진의 지시를 받자 한순간 멍했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보스, 걱정 마세요. 최대한 빨리 소지연을 잡을 겁니다.”무진은 손건호의 대답을 들은 후에 전화를 끊었다.성연은 화가 나서 시퍼런 얼굴을 한 무진을 옆에서 위로했다.“괜찮아요. 우리는 소지연의 목적을 알고 있잖아요. 앞으로 많이 주의할 게요. 소지연의 뜻대로 되지 않게 할 거예요.”무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이렇게 해도 소지연의 존재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언제 어디서 성연을 위험에 빠뜨릴 지 모른다.무엇보다 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는데.“너 나중에 위험에 처하면 나에게 말해라. 내가 너를 보호할 사람을 배치할 거야.”성연이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어떤 가능성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무진이다.“좋아요.” 성연은 무진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성연이 계속 물었다.“송아연은 어떻게 되었어요?”송아연에 대해 무진은 사람을 시켜 예의 주시하게 했다.“송아연은 이미 국내 경찰에 연행되었어. 그러나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 어쨌든 송아연이 너에게 그런 짓을 한 장소가
유럽으로 돌아온 제이슨은 MS 가문의 장로들에게 경과를 보고했다.그러나 장로들은 이미 제이슨이 A국에 세운 회사가 영업 정지된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렇게 오래 있으면서도 제이슨은 WS그룹을 조금도 흔들어 놓지 못했다.모든 문제들을 강무진이 해결한 것이다.이번에 유럽으로 돌아온 제이슨은 의기소침해서 고개를 숙인 채 한 쪽에 서 있었다.그때 금발에 푸른 눈의 외국인이 제이슨의 앞으로 다가갔다.비쩍 마른 체격에 음침한 표정은 아주 계산적으로 보였다.MS 가문의 제7장로. 가문 내에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그가 바로 제이슨을 질타하기 시작했다.“너는 처음에 이 일을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나에게 맹세했지? 그런데 그 결과는? 네가 감히 나를 이 꼴로 만들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 부었는데, 너 때문에 전부 다 낭비하게 됐어!”“7장로님, 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A국 사람들이 너무 교활해서 그렇습니다.”제이슨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욕을 먹자 굴욕감을 느꼈다.하지만 화가 나도 말을 할 수 없었다.그의 지위는 7장로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서열상으로는 일곱 번째이지만 가문 내에서 범상치 않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골이 빈 것도 아니고, 결국 똑똑하지도 않은A국 사람들과 싸울 수도 없다니. 그렇게 오랫동안 키워줘도 아무 쓸모가 없군.”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사람이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제이슨은 이를 악문 채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움츠린 제이슨의 모습을 보는 그 사람의 눈에 들어찬 한기가 더 짙어졌다. 마치 쓰레기 더미를 보는 것처럼 제이슨을 쳐다보았다.7장로의 아들인 오웬, 아주 훤칠하게 잘생긴 미남자였다.그러나 에메랄드 빛의 두 눈은 한기가 서리기 시작하면 사악한 기운마저 느껴진다.매끈한 금발은 마치 그림 속에서 막 나온 듯한 모습이다.다만 도도하게 비웃는 듯한 표정은 정말이지 아름다운 외모를 훼손시켰다.오웬은 겉으로 보기에는 우아한 피아니스트를 연상케 한다.그러나 그저 외모
7장로와 제이슨에게는 또 다른 호칭이 있다.제이슨은 7장로의 사위. 장인이라 해도 가문의 회의에서는 7장로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고, 절대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제이슨의 가문이 7장로보다 세력이 약하기 때문에 7장로이 자신을 발탁해줘야 했다.그래서 제이슨은 7장로의 앞에서 치미는 울분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7장로의 가족들 중에서 제이슨을 존중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특히 오웬이 가장 심했다.오웬은 제이슨을 매형으로 대해 준 적이 없었다. 아니 제이슨을 아주 경멸했다.‘이런 놈이 어떻게 내 매형이랍시고 여기에 있는 거야?’‘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오웬은 제이슨에게 거들먹거리며 말했다.“빨리 항공편을 준비해. 앞으로 A국 쪽의 일은 전적으로 내가 책임질 테니까, 당신은 나를 도와주기만 하면 돼.”제이슨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리더에서 단번에 보좌하는 역할로 바뀌다니, 제이슨은 정말 너무 괴로웠다.게다가 보좌해야 할 인간이 하필이면 오웬이다.앞으로의 생활이 얼마나 괴로울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다른 사람 앞에서 오웬은 절대 자신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을 것이다.예전 부하들 앞에서 창피를 당할 자신의 모습이 벌써 눈에 선했다.‘그리고 장인은 절대 내 편에 서지 않고, 오웬의 행동을 그저 보고만 있겠지.’‘어쩌면 혈기왕성한 오웬에게 기생하는 벌레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지도 몰라.’현재 7장로와 맞서 상대할 능력이 없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제이슨이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본 오웬은 상대하기도 귀찮아서 계속 지시했다.“오늘 밤 소지연을 만날 거야. 지난번에 그 여자가 제공한 자료로 강무진의 회사에 타격을 입히긴 했지만, 당신이 A국에서 한 방 먹고 돌아오는 바람에 기껏해야 비긴 정도에 불과해.”제이슨을 바라보는 오웬의 눈동자에는 경멸의 빛이 가득했다.“말을 할수록 당신이 얼마나 쓸모 없는지 알겠군!”제이슨은 무표정한 얼굴로 오웬을 바라보았다.‘지금 말대꾸를 하면 오웬은 더 신이 나 날뛰겠지.’‘입 다무는 게
오웬은 소지연을 데리고 이태리 레스토랑으로 갔다.이곳은 MS가문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보안이 아주 철저했다. 오웬은 당연히 목적이 있었기에 소지연을 이곳으로 데려왔다.룸에서 외투를 벗은 오웬이 소파에 앉았다.소지연은 오웬의 맞은편에 앉았다.오웬이 메뉴를 밀었다.“미스 소, 뭘 드실 지 보시죠?”소지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오웬을 바라보았다.자신에게 먼저 메뉴를 선택하게 하는 오웬의 모습에 소지연은 그가 꽤 젠틀한 남자라고 착각했다.‘남자는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약한 법이지.’소지연은 자신의 용모에 대해서 대단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마음속에 쓸데없는 우월감이 조금씩 생긴 소지연은 오웬과 함께 있는 동안 긴장하지 않은 채 음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오웬은 맞은편에 있는 소지연을 보면서 아주 재미있다고 느꼈다.‘조금 잘해줬더니 바로 경계심을 풀었네.’‘원래 머리는 좀 있는 줄 알았더니 완전 멍청한 X일 줄은 몰랐어.’요리가 곧 올라오자, 소지연의 곁에 앉은 오웬이 직접 와인을 따서 소지연에게 건네주었다.“미스 소, 이 곳의 와인은 상당히 괜찮습니다. 한번 드셔 보세요.”만약 조금 전에 소지연이 오웬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인상을 준 게 있었다 해도 지금은 그마저 모두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소지연은 어쩔 수 없이 와인을 들고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소지연이 술을 마실 때 갑자기 허벅지 위에 손 하나가 올라왔다.그 손은 느릿느릿 움직이더니 점점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몸이 뻣뻣하게 굳은 소지연은 얼굴에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그녀로서는 방법이 없었다.오웬의 지위와 그의 성격 때문에 소지연은 감히 반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꾹 참고 있는 소지연의 표정을 보며 오웬의 태도는 더욱 방자해졌다.소지연이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오웬은 소지연의 잔에 술을 가득 따르며 다 마시기를 강요했다.소지연은 또 오웬의 동정심을 사기 위해 불쌍한 말투로 말했다.“미스터 오웬, 저 정말 더 이상 못 마시겠어요.”오웬은 전혀 개의치 않고 손바닥 아
성연이 학교에 가고 없을 때 무진은 따로 목현수에게 커피 한 잔 마시자며 약속을 잡았다.아주 세련되고 분위기 있는 커피숍의 내부. 서로 다른 외모이나 비슷할 정도로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두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시선의 중심에 있는 두 사람은 이런 상황이 이미 익숙한 듯 아주 태연했다.나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 앉은 목현서가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이 오늘 무슨 말을 하려고 나를 불러냈는지 모르겠군요.”물론 속으로는 무진의 생각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입을 열어 물었을 뿐이다.그러지 않으면 분위기가 좀 어색할 터.“천천히요, 목 선생님, 주문하시죠. 뭐 드실 지 한 번 보시죠.” 무진은 목현수에게 메뉴판을 건네주었습니다.그러나 목현수는 메뉴판을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일관되게 나른한 어조로 대답했다.“아무 커피나 두 잔 주문하시면 되죠, 뭐.”무진도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은 채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 블루 마운틴 두 잔.”종업원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잠시 후 주문한 커피를 가져온 종업원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고객님, 맛있게 드세요.”짙은 커피 향이 금세 테이블 주위를 둘러쌌다.무진이 한 모금 입에 머금자 약간 쓴 맛이 느껴졌다.그러나 정신을 차리는 데도 딱이다. 그리 맛없는 편도 아니고.자리에 앉아 느긋한 모습으로 무진의 동작을 지켜보던 목현수는 재촉하지 않은 채 무진이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릴 작정이었다.잔을 살짝 내려놓은 무진이 고개를 들어 목현수를 보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목 선생님, 성연을 챙겨주시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때로 너무 지나친 부분 들도 있더군요. 이후 유럽에서 성연을 챙겨 줄 사람을 따로 붙일 생각입니다.”“강 대표님, 지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너무 늦지 않으셨나요?” 목현수의 예리한 눈빛이 똑바로 무진을 향했다.무진도 고개를 들어 조금도 거리낌 없이 목현수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두 사람의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
“언니, 빨리 나와서 사형에게 보여주세요.” 성연이 바로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유채연은 바로 그래함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래함은 지금도 유채연이 겉모습만 꾸민 여자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겼다.약간 수줍어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그래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래함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한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유채연도 그래함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걸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 한참 기다렸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그래함의 눈을 마주한 유채연이 어색하게 치마자락을 잡고 말했다.“어때? 보기 싫어?”“예뻐. 내가 홀딱 반할 정도야.” 그래함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러웠다.유채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화장을 마친 뒤 그들은 계속 쇼핑을 했다.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게 자리를 양보했다.그래함이 바로 앞으로 가서 유채연의 손을 잡았다.유채연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래함은 꼭 쥔 채 유채연이 벗어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성연이도 여기 있잖아.” 유채연은 20여 년을 살면서 그래함 이 한 사람만 좋아했다.평소에도 남자와 스킨십을 해본 적도 없었다.지금 그래함과 함께 걸으면서 유채연은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러나 그래함의 따뜻한 손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자 마음은 달콤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그래함이 바로 말했다.두 사람 뒤에 있던 성연은 하마터면 그래함을 흘겨볼 뻔했다.‘이건 날 훼방꾼으로 여기는 거야.’유채연은 감히 고개를 돌려 성연을 보지 못하고, 손을 잡힌 채 얼굴만 빨개졌다.그래함은 유채연이 자신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자 불만스러웠다.“채연아, 팔장을 낄래.”“아니, 손을 잡았잖아.” 유채연은 입술을 깨물며 수줍어했다.“우리 연인 사이잖아?” 그래함이 유채연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열기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자 유채연은 더욱 부끄러워했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외삼촌에게 차를 주자, 외삼촌은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 차의 성능을 시험해 보겠다고 말했다.그래함이 자신을 속이는 건지 보려는 것이다.외삼촌이 차를 몰고 가자 성연과 그래함, 유채연만 남게 되었다.오늘 손님이 오기 때문에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자세히 헤아려 보니 외삼촌은 정말 디테일한 사람이야.’“채연 언니, 우리 쇼핑하러 가요.” 성연이 다가가서 유채연의 팔장을 꼈다.“그래.” 유채연은 성연이 쇼핑을 하려는 걸로 생각하고 함께 갔다.성연이 유채연을 데리고 온 곳은 모두 고급 쇼핑몰이었다.유채연도 옷을 좀 사고 싶었지만, 가격을 보고는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성연은 흰색 원피스를 유채연의 몸에 대고 비교해 보았다.“채연 언니, 이 원피스가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 보세요.”“난 됐어. 네가 맘에 들면 사.” 방금 유채연은 가격표를 언뜻 봤다.‘너무 엄청난 가격이야.’‘원피스 한 벌에 어떻게 가격이 이렇게 비쌀 수 있는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어.’‘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야!’“언니, 이 치마가 정말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보고 싶지 않아요?” 성연은 눈을 깜빡이며 유채연을 바라보았다.눈앞의 원피스를 보고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한번 입어 봐.” 그래함도 유채연이 이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유채연은 자신의 그런 모습이 기대되면서도 머뭇거렸다.마침내 결정을 내린 뒤에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갔다.‘확실히 잘 어울리네.’유채연은 한번 입어 본 걸로 만족했고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성연과 그래함이 번갈아 설득해서 유채연도 결국 옷을 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또 유채연에게 많은 옷을 사주었다.처음에는 유채연도 두 사람이 돈을 쓰는 걸 걱정했다.그러나 두 사람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유채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중에는 돈을 쓰는 것에도 무감각해졌다.예쁜 옷을 많이 산 뒤 그래함이 뒤에서 가방을 들어주었다.그래함의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였다.성연은 또 유채연을 끌고
“정말 변변치 못하게!” 외삼촌은 유채연을 노려보았다.그래함은 외삼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했다.‘외삼촌은 이게 채연이가 만약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거야.’그래서 그래함도 지나친 요구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이런 것들을 채연이에게 주는 것도 당연한 거야. 여기에 그치지 않고 채연이에게 훨씬 더 잘 해 줄 거야.게다가 외삼촌과 유채연은 그래함의 지위에 대해서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이 정도의 돈은 그래함에게 있어서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유채연이 직접 음식을 준비해서, 외삼촌 가게 뒤의 정원에서 모두 함께 밥을 먹었다.외삼촌의 표정은 시종 좋지 않있다.밥을 다 먹고 유채연이 치우려고 하자 외삼촌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놔 둬! 나 혼자 해도 돼! 너는 그럴 시간이 있으면 가서 너 자신이나 좀 꾸며.”외삼촌은 말하면서 유채연을 물러서게 했다. 유채연이 비틀거리자 그래함이 뒤에서 유채연을 부축해 주었다.그리고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집 앞에 와서야 유채연은 그래함과 성연에게 미안한 듯이 웃었다.“정말 미안해. 외삼촌이 바로 저런 성격이셔. 미안해.”“언니, 외삼촌이 이런 성격인 건 우리도 이해할 수 있어요. 외삼촌이 치우지 말라고 했으니까 우리 좀 걸어요. 이쪽의 풍경이 좋네요.” 성연은 유채연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그래함과 성연이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고, 유채연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그들은 주변을 한가롭게 걸었다.길가에서 자동차 판매점을 본 그래함이 걸음을 멈추었다.유채연과 성연은 고개를 돌려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성연이 그래함에게 물었다.“사형, 왜 그래요?”“우리 들어가서 한번 보자.” 그래함은 판매점 안으로 들어갔다.그래함이 뭘 하려는 건지 몰랐지만, 유채연과 성연도 그래함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그래함은 한참동안 살펴보았다.여기는 읍내라서 그다지 비싼 차가 없었다. 겉모습이 좋아 보이는 차는 성능이 좋지 않았고 성능이 좋은 차는 스타일이 좋지 않았다.겨
“그렇게 하겠습니다.” 외삼촌이 말한 걸 그래함은 모두 승락했다.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외삼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유채연은 외삼촌이 제시한 조건들에 대해서 아주 불만이었다.‘내가 그래함과 함께 하는 건 두 사람이 예전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그러나 지금 외삼촌이 그렇게 많은 요구를 하는데, 오히려 내가 그래함의 돈 때문에 그래함과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유채연이 항의했지만 외삼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어때? 내 이 조건들을 자네가 승낙한다면 채연이가 자네와 함께 떠나도 돼. 자네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그럼 말할 필요도 없지!”유채연이 다시 말을 하려고 했지만, 바로 뒤에 있던 성연이 유채연의 옷소매를 당기면서 권유했다.“사형에게 저런 요구를 한 건, 외삼촌이 언니에게 사고가 생길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에요. 나중에 혹시라도 집안이 몰락하게 될까 봐 일부러 이런 요구를 한 거예요. 만약 언젠가 정말 의외의 사고가 생긴다 해도, 언니가 읍내로 돌아올 수 있게 말이죠.”옆에 있던 성연은 벌써 외삼촌의 뜻을 알아차렸다.‘외삼촌이 말한 조건은 모두 채연 언니에게 유리한 것들이야.’‘외삼촌은 자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돈도 채연 언니 계좌에 넣고, 집 명의도 채연 언니 앞으로 하라고 했어.’‘모두 채연 언니에게 만약의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거야.’성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삼촌의 마음이 이렇게 세심한 줄은 몰랐어.’‘사형이 채연 언니를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외삼촌이 말한 이런 상황은 생기지 않을 거야.’‘그러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해. 결국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유채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외삼촌의 요구는 모두 나를 위해서였어.’유채연은 더더욱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그저 그래함을 바라볼 뿐이다.“외숙부님이 말씀하신 건 다 문제없습니다. 채연이에게 사 줄 집을 한번
성연은 식당 입구의 작은 가게에서 그래함과 유채연을 기다렸다.두 사람이 손을 잡고 식당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하기로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성연은 묵묵히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그래함이 유채연을 데리고 가더라도 바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유채연의 외삼촌이 별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해도.그러나 유채연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유채연을 데려간다면 그래함은 반드시 외삼촌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그래함은 유채연과 함께 돌아가서 외삼촌을 만났다.외삼촌이 그래함을 난처하게 만들 것을 염려해서, 유채연은 원래 그다지 외삼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외삼촌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자, 유채연도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생각해보니 외삼촌은 아마 동의할 것 같아.’그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유채연의 외삼촌은 거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외삼촌.” 유채연은 그래함의 뒤에 숨은 채 외삼촌을 바라보았다.‘외삼촌은 지금까지 내가 여기서 살게 해주셨어.’‘어쩌다 내게 온정을 보이기도 했지만.’유채연도 외삼촌 본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외삼촌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그래함은 유채연의 손을 토닥이면서 긴장을 풀고 모든 건 자신에게 맡기라는 눈짓을 했다.“외숙부님.” 그래함이 유채연과 함께 외삼촌 맞은편에 앉았다.외숙부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외삼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험악판 표정을 지으며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지금 뭐라고 했어? 나는 당신 같은 조카는 없어.”그래함은 오히려 외삼촌을 두려워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어차피 이제 모두 한 가족이 될 테니까 제가 외숙부님이라고 해야지요.”그래함의 말에 반박하려던 외삼촌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대감에 가득 찬 유채연의 눈빛을 마주하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무슨 일이야!” 외삼촌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래함을 쳐다보았다.“저는 채연이를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여기서 나가서 더 잘 살 수 있게
이튿날 오후, 가게문을 닫은 뒤 유채연은 성연의 안내로 그래함을 만났다.이번에는 유채연의 수줍은 성격을 고려해서, 밀크티 가게가 아니라 칸막이가 있는 식당을 골랐다.엉성한 칸막이지만 그래도 모두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우아한 분위기가 넘치는 잘생긴 그래함을 보자, 유채연의 얼굴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유채연이 그래함에게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없었다면 그 옥노리개도 간직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채연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래함이 유채연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나는, 다 괜찮아.” 유채연은 그래함을 똑바로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래함은 이렇게 멋스러운데, 나는 진흙밭의 진흙일 뿐이야.’요 몇 년 동안 유채연은 전혀 자신을 꾸미지도 않았다.날마다 그럭저럭 지냈을 뿐이다.지금은 그래함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도 없었다.‘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래함에게 어울릴 수 있겠어?’그래함이 종업원을 불러서 가정식 요리를 몇 개 시켰다.모두 유채연이 좋아하는 음식들이다.그래함이 시키는 요리 이름을 들으면서, 유채연은 놀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그래함이 유채연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걸 내가 어떻게 기억하지 못하겠어?”“당신...”그래함이 자상하게 대할수록 유채연은 더 열등감을 느꼈다.‘나한테 무슨 덕과 능력이 있어서 이런 사람에게 어울리겠어?’“애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음식부터 먹자.” 그래함의 마음은 더 긴장하면서 안절부절 못했다.이번에 또다시 거절 대답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성연은 턱을 괸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그다지 먹고 싶은 것 같지 않았다. 그래함은 수시로 유채연에게 음식을 집어 줬지만, 식사하는 내내 유채연을 쳐다보느라 음식도 그다지 먹지 않았다.안타까움이 가득한 식사였다.가까스로 식사를 마친 뒤, 그래함은 종업원에게 앞의 음식을 치우고 주스와 과일을 내오도록 했다.그래함이 유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