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은 식사를 한 뒤 고택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저택 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갔다.그리고 안금여의 방으로 간 조수경은 안금여를 데리고 나와 정원을 산책했다.온실의 꽃들이 유난히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정원 안으로 들어 가자 진한 꽃향기가 절로 기분 좋게 해주었다.조수경은 안금여를 부축하면서 천천히 걸었다.아주 느릿느릿한 걸음이었지만 조수경은 조금도 귀찮아 하지 않고 안금여에게 싹싹하게 굴었다.한참을 걷다가 조수경이 물었다.“할머니, 추우세요? 제가 방에 가서 덮을 것 하나 가져다 드릴까요? 저녁이 되니 날씨가 좀 싸늘하네요.”조수경은 안금여가 퇴원한 지 얼마 안되었으니 절대 방심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만약 잘 돌보지 못한다면, 무진 오빠가 나를 탓할 거야. 내 이미지도 안 좋아질 테고.’“괜찮다. 이 할미는 옷을 두텁게 입었으니 괜찮아. 오히려 수경이 넌 좀 많이 먹어야겠구나. 너는 너무 말랐어. 이대로 너희 집에 돌아가면 내가 너를 박대했다고 네 할머니가 날 원망하지 않겠니?” 안금여가 농담으로 말했다.조수경이 혀를 쏙 내밀며 말했다.“할머니, 이곳의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이전보다 더 잘 먹어요. 할머니가 거두어 주셔서 저희 할머니도 정말 마음을 푹 놓으셨고요. 그런데 어떻게 할머니를 탓할 수 있겠어요?”“여기 사는 게 익숙해졌어?” 안금여가 물었다.원래는 이곳에 몸을 의탁하러 온 조수경인데, 최근에는 오히려 자신을 돌보고 있었다.이 때문에 안금여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그리고 조수경의 솔직한 생각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사람이 많으면 조수경이 난처해할까 봐 지금 단둘이 있을 때 물어보는 것.“집에 있는 것처럼 익숙해졌어요. 또 고모님과 할머니, 그리고 무진 오빠도 다 잘해 주는 걸요.” 조수경은 마음속의 진심을 드러내었다.그녀는 이 집안의 분위기가 좋았다.‘계속 여기서 지내고 싶어.’그러나 자신에게는 그럴 수 있는 마땅한 자격이 없었다.‘만약 내가 무진 오빠하고...’“네가 즐거우면 됐다. 네가 불편하면 어쩌나
조수경이 입을 열자 안금여는 바로 그 말 뜻을 이해하고 물었다.“수경아, 네가 일을 하고 싶은 거니?”조수경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안금여도 두 말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어 내리며 말했다.“그럼 다음에 내가 무진이에게 본사에 자리를 알아보라고 하마. 아마도 네가 많이 도와줄 수 있을 거야.”상냥하고 결코 성질도 부리지 않는 조수경이지만, 사실 딱 부러지는 성격에 또 아주 총명한 아이임을 엿볼 수 있었다.이런 조수경이 무진을 도와준다면, 자신도 안심할 수 있을 터.조수경에게 다른 이상한 생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조수경이 사양하는 척하며 말했다.“할머니, 아니면 제가 다른 곳에다가 이력서를 넣어볼 게요. 본사 자리라니, 그럼 진짜 무진 오빠가 너무 난처할 거예요.”안금여는 말도 안된다는 듯이 말했다.“이미 여기 멀쩡한 회사를 두고 왜 다른 작은 회사로 가려는 게야? 게다가 네가 회사에 나가서 일하는 게 무슨 난처해 질이야? 만약 네가 일을 잘해 준다면 우리가 네게 감사할 일이지. 하다가 하기 싫으면 바로 그만 두면 돼. 별 거 아니야.”안금여가 그렇게 말하자 조수경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대답했다.“네, 할머니. 감사합니다.”조수경은 입이 절로 찢어지려 했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자신의 진짜 목적을 이루자 마음속으로 의기양양했다. ‘내 계획이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그리고 안금여 할머니가 허락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보아하니 요 며칠 내가 할머니의 호감을 많이 산 게 헛되지 않은 것 같아.’‘드디어 좋은 기회를 얻었어.’이른바 유리한 조건의 사람이 먼저 기회를 잡는 법. 무진과 함께 일하면서 무진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속셈이었다.물론 무진의 비서가 되는 것이 그녀의 목표.‘송성연의 자리를 내가 대신하는 것도 이제 곧이야.’‘무진 오빠가 송성연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게 뭐 어때서?’‘감정은 항상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질 수밖에 없을 테지. 사람은 결국 자신의 곁에
조수경이 대답한 이상 안금여는 질질 끌지 않고 바로 무진을 본가로 불렀다.“할머니, 무슨 일이세요?” 무진은 퇴근하자마자 본가로 왔다.오늘 일이 많아서 그런지 안색이 좀 초췌해 보였다.손자의 이런 모습을 보자 안금여의 마음이 아팠다.‘수경이도 배울만큼 배우고 야무진 아이이니, 무진의 곁에서 도울 수 있다면 안 될 게 뭐 있겠어?’원래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이렇게 피곤한 무진을 보자 마음이 굳어졌다.“무진아, 수경이를 네 회사로 출근하게 해라.”그 말을 들은 무진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이전에 조수경이 했던 암시를 떠올린 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할머니, 회사는 농담으로 말씀하실 곳이 아닙니다. 수경이는 다도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집에서 차를 연구하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 회사 기준이 너무 엄격해서 해내지 못할 겁니다.”안금여는 무진의 말에 찬성하지 않았다.“수경이는 똑똑하고 사리가 분명한 아이야. 우리 집에 온 지도 꽤 되었으니 너도 수경이가 무척 자존심이 강한 아이라는 걸 잘 알 거다. 회사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게 해도 돼. 또 수경이가 일을 하며 전문적인 능력을 키우게 하는 게 좋아.”무진은 어쩔 수 없었다.“수경이는 집에서 할머니를 모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왜 굳이 회사에 나가게 합니까? 우리 강씨 집안에도 사람이 없지는 않잖아요?”무진은 솔직히 조수경이 회사에 나오는 걸 찬성하지 않았다.그렇게 되면 무슨 일을 시키더라도 불편할 것이다.조수경이 일을 잘 못한다고 해도 두 집안의 관계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고.무진은 연줄을 통해 회사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더군다나 조수경과 같은 여자아이라니.“무진아 별 거 아니잖니? 수경이가 제대로 할 수 있으면 계속하게 하고, 그러지 못하면 그만 두게 하면 되는 일 아니냐?”안금여는 무진이 얼마나 회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회사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조수경 하나 회사에 넣는다고 큰 문제가 되지
조수경에 대한 인상이 그런대로 괜찮았던 무진.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미리 몇 가지 당부를 했다.“우리 WS그룹에 들어온다 해도 특별 대우는 기대할 수 없어.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은 대우를 받게 될 거야.”회사는 개인이 경거 망동할 수 없는 공적인 곳이다. 그 점에서 특히 더 엄격한 WS그룹.개인적 친분이나 관계는 절대 보지 않는다.그만큼 공사가 확실한 곳이다.설사 이런 사적인 관계를 가진 조수경이라 하더라도 만약 잘못을 한다면 조금도 봐 주는 것이 없을 것이다.조수경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무진 오빠, 나도 배우려는 거니까 특별 대우 같은 건 바라지 않아요.”지금의 일을 누가 정확히 말할 수 있겠는가?자신이 회사에 나가서 무진도 모든 것을 알게 만들 것이다.무진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럼 내일 인사처에 말해 놓을 테니 찾아가 봐.”“무진 오빠 고마워요.” 조수경은 정말 기분이 좋은 지 무진에게 허리까지 굽혀 절했다.“천만에. 회사에 오면 먼저 회사 규정부터 숙지하도록 해.”무진은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자신은 전제를 달았다. 조수경이 해낼 수 있으면 하는 거고 할 수 없으면 그만두어야 한다고.강씨 집안에서 사람 하나 키우지 못할 리가 있겠나, 그 사람으로 조수경을 선택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알겠어요, 무진 오빠 말 잘 기억할게요.” 조수경은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었다.일이 생기자 사람이 아주 활기가 넘쳐 보였다.옆에서 지켜보던 안금여가 흐뭇해했다.내일 회사 출근할 준비를 위해 조수경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첫 출근을 생각하니 여전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더군다나 출근하는 곳이 강무진의 회사다.절대 자신이 실수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조수경이 나가자 안금여는 무진을 보며 말했다.“회사에 있으면서 수경이에 대해 너무 모르는 척하지 마라. 내가 보기에 수경이 꽤 똑똑한 아이야. 제대로 좀 키워서 너를 돕게 하면 좋지 않겠니?”그러나 무진은 할머니 안금여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튿날 곽연철은 또 다시 무진을 찾아왔다.하지만 이번에는 고택이 아니라 회사로 찾아왔다.곽연철을 바로 자신의 사무실로 부른 무진은 비서에게 차를 준비하게 했다.다른 협력사들에게는 없는 대우였다.차를 한 모금 마신 곽연철이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 제가 이미 프로젝트를 따냈습니다만, MS 가문의 제이슨이 일을 꾸민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원자재 제조업체가 갑자기 납품을 못하겠다고 나옵니다.”제이슨이 원자재 업체 사람들을 매수한 게 분명했다.그래서 모두 자신과의 계약을 원하지 않는 것일 터.곽연철의 말에 무진이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이 제이슨이라는 작자 일하는 게 너무 심하다.어쨌든 모두 사업하는 사람들, 공정한 경쟁을 중시한다.그래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제이슨을 상대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하지만 제이슨이 이렇게 비열하게 나온다면 자신 역시 받아 줄 수밖에.무진이 길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이 일은 제가 방법을 생각해 보죠.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 프로젝트 다음 단계를 진행하세요.”이미 마음속에 방법이 떠올랐다. 비열한 사람에게는 똑같은 방법으로 상대할 것이다.“강 대표님 바쁘신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곽연철이 다소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얼마 전에 강무진은 이 프로젝트의 전권을 자신에게 맡겼다.그런데 며칠 지나지도 않아 이렇게 결정을 하지 못해 찾아온 것.“괜찮습니다. 요즘 본사 업무가 많이 바쁘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주로 제이슨 때문에 바쁘죠.”무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맞습니다. 제이슨 이 작자 아주 위험한 놈입니다. 지금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앞으로 우리에게 좋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제이슨은 일을 할 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강 대표님 조심하셔야 됩니다.” 몇 차례 대결하면서 기본적으로 제이슨이 악랄하고 도덕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 수 있었던 곽연철.제이슨은 이길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놈이었다.“곽 대표님이 말씀하신 부분은 저도
그날 저녁, 북성의 한 유명한 회관에서 무진이 직접 식사 자리를 만들었다.많은 거물급 인사들이 모였다.이름만 대면 다들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귀에 익은 이들.“강 대표님, 별고 없으십니까?” 그 중 블랙 슈트를 입은 키가 큰 남자가 무진에게 술을 권했다.무진 또한 호쾌하게 받은 잔을 모두 비웠다.“네, 별일 없습니다. 요즘 고 선생님께 좋은 일이 있으시더군요. 뉴스에서 봤습니다.” “별 거 아닌 일로 강 대표님 입에 오르내리다니 정말 부끄럽군요.”상대방이 겸손한 태도로 무진의 인사를 받았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무진은 깍듯이‘선생님’이라고 불렀다.테이블 위에는 산해진미의 음식들로 가득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술은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 명주다.이 식사 모임을 위해 적어도 수 억은 들이지 않았을까?이 정도 금액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이처럼 통 크게 쓸 수 있는 사람이 강무진 외에 또 있을까? “역시 강 대표님의 배포가 큽니다. 강 대표님과 식사하는 자리가 무척 즐겁군요. 먹고 싶은 음식들이 모두 나와 있으니 말입니다. 아무래도 오늘 같은 환대에 감사를 해야겠습니다.” 모두들 강무진의 이런 통 큰 태도에 은근히 감탄했다.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만만찮은 신분과 지위를 가졌다.모두 각 분야에서 한다 하는 이들로 모두 상류사회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다.그러나 무진의 통 큰 손을 뛰어넘을 이는 없었다. ‘역시 강씨 집안은 다르군. 백 년을 넘게 이어온 그룹의 총수다워.’ “다들 즐겁게 드셔 주시면 됩니다.” 무진이 잔을 들며 저들과 한 잔 마셨다.굳이 입을 열어 말할 필요가 없었다. 강무진이 지금 이 자리를 만든 까닭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MS그룹의 제이슨이 WS그룹을 겨냥하고 벌인 일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하지만 제이슨이 한 마디로 주제넘은 짓을 벌였다고 다들 생각했다.북성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북성의 거대 그룹을 자기가 대신할 수 있다는 건지.도대체 자신들을 뭘로
제이슨의 회사에 일어난 소식을 듣고 곽연철은 그날 무진이 생각한 방법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게 되였다.하지만 이렇게 영문도 모른 채 조사를 당하게 하다니, 강무진은 정말 고단수였다. 아마도 제이슨은 자신들의 수에 당한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이쪽의 일도 거의 마무리된 상태로 강무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그날 저녁, 곽연철은 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강 대표님, 업체들이 다시 원자재를 공급하기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이랬다저랬다 하며 신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화가 나서 가격을 낮추었습니다. 아마도 제이슨 쪽은 가망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지 공급 업체들도 순순히 동의하더군요. 이렇게 되면 우리가 이전에 제이슨 때문에 발생했던 손실까지 모두 보충한 셈입니다. 계산해 보니 오히려 더 이득을 볼 것 같군요.”사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포기한 셈 치고 제이슨과 끝까지 다툴 생각에 가지고 있는 거였다.딱히 이득을 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결국 소 뒷걸음 치다가 얻어 걸린 격으로 반전이 일어난 것.원래 원자재를 공급하기로 했던 업체들이 WS그룹의 눈밖에 났음이 알려지자 다른 회사들도 그들과 계약하려 하지 않았다.그래서 설령 가격을 더 낮춘다 하더라도 저들은 감히 불평하지 못하는 상황.무진도 이런 깜짝 선물까지는 생각지 못했던 터였다.이번 기회에 제이슨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어서 이미 아주 흡족한 상태.결론적으로 말하면 모두 곽연철의 공이라 할 것이다.그래서 무진이 곽연철의 공을 치하했다.“곽 대표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모두 곽 대표님 덕분에 성공했습니다.” “강 대표님, 무슨 그런 겸손의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저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강 대표님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셨지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곽연철은 아주 잘 알고 있다.강무진이 수를 써서 제이슨의 회사를 잠시 문 닫게 하지 않았다면 공급 업체들이 그렇게 빨리 순순히 말을 듣지 않았을 거였다. “곽 대표님이 수완이 좋지 않았다면
무진은 요 며칠 회사에 있지 않고 접대를 위해 외부로 나갔다.그래서 곽연철은 바로 손건호에게 연락했다.제왕그룹은 많이 바쁘지는 않은 시기라 곽연철이 직접 손건호에게서 자료를 받기 위해 WS그룹 본사로 갔다.비록 손건호가 강무진의 비서에 불과하지만 곽연철은 손건호를 몹시 존중했다.곽연철이 회사 로비에 들어섰을 때에 손건호가 아래로 내려왔다. “곽 대표님, 올라가셔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손건호가 공손한 음성으로 물었다.곽연철이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강 대표님도 안 계시니 그냥 여기에서 기다리겠습니다.”손건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내려오겠습니다.”손건호는 위로 다시 올라가기 전에 프론트 데스크에 곽연철에게 차와 디저트를 갖다 주라고 지시했다.곽연철은 프론트 데스크 바로 옆에 있는 고객 휴게실로 들어서다 조수경을 만났다.조수경을 본 곽연철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여자가 어째서 여기에 있지?’그는 먼저 인사하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겨 휴게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조수경은 조금 굳은 얼굴이 되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프론트 데스크로 가서 이미 준비되어 있던 다과를 들고 휴게실로 갔다.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조수경이 곽연철에게 물었다.“곽 대표님께서는 사업 문제로 여기 오신 건가요?”곽연철은 조수경에게서 아무런 호감도 느낄 수 없었다.조수경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음이 그의 눈에 훤히 다 보였기 때문.곽연철이 조용히 대답했다. “네.”조수경은 곽연철의 냉담한 태도에 움츠러들지 않은 채 차와 간식을 티 테이블에 올려 놓은 후 옆에서 곽연철을 위해 차를 따라 주었다.곽연철은 모르는 척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며 그저 옆에 놓여 있는 잡지 한 권을 들고 보기 시작했다.조수경에 대해 아주 냉담한 태도를 보인 셈이다.그러나 곽연철의 맞은편에 앉은 조수경은 스스로 가장 자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곽 대표님, 지금 저는 WS그룹의 정 직원으로 근무하게 되었어요. 곽 대표님이 잘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