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연의 계획이 성공하기 직전, 무진의 입술 위에 입술을 가져다 대는 순간 손건호가 거실에 나타났다.미간을 찌푸린 손건호가 소지연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소지연 씨, 뭐하는 겁니까?”남은 업무들을 처리하고 거실에 오자 소파에 앉아 있던 소지연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소지연이 떠났을 리는 없으니 분명히 문제가 생긴 것.사고가 생겼음을 깨달은 순간 손건호는 집안 여기저기 찾으러 다녔다.그러다 이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승리를 바로 눈앞에 두고 놓친 소지연이 고개를 돌렸다. 아름다운 눈동자에 분노의 감정이 가득 실렸다.“손 비서가 뭘 어쩔 건데요?”소지연의 분노를 무시한 손건호는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음성으로 말했다.“소지연 씨, 돌아가세요!”화가 난 소지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간섭하는 거예요?”‘한낱 비서 주제에 내 머리 위에 오르려고 하다니. 도대체 자신의 위치는 생각지도 않는단 말이야?’설사 손건호가 무진의 심복이라 하더라도 대놓고 자신을 도발할 수는 없는 법.손건호는 소지연을 전혀 겁내지 않고 냉담하게 소리쳤다.“저는 미래의 작은 사모님 지시를 따라 보스를 잘 돌봐 드려야 합니다. 돌아가시죠. 그러지 않으면 무례함을 불사할 겁니다!”소지연 같이 낯짝이 두꺼운 사람을 대할 때는 조금의 연민이나 배려도 필요 없었다.소지연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손 비서, 자신의 신분을 잊지 말기를 바래요. 상관해서는 안될 일에는 끼어들지 말아요.”소지연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버젓이 손건호와 시선을 마주쳤다.무표정한 얼굴로 소지연을 쳐다보는 손건호의 눈에 냉기가 서렸다.“나는 소지연 씨가 말한 상관하지 말아야 할 일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겠군요. 나는 지시를 따를 줄 밖에 모릅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명문가 규수인 소지연 씨가 제 보스가 술에 취한 틈을 타서 이런 일을 벌였습니다. 소문이라도 난다면 소씨 집안의 체면이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군요.”“지금 날 협박하는 거예요?” 소지연은 믿을 수 없다는
소지연을 쫓아 보낸 후에 손건호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보스, 어떻게 된 겁니까?”그런데 무진을 보던 손건호는 그제야 무진의 상태가 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보스 강무진이 자신의 옷을 찢었다.손건호는 과감하게 무진의 이마에 손을 대어 본 후에 다시 자신의 체온과 비교해 보았다.그제야 무진의 이마는 정상인보다 온도가 더 높았다. 열이 난 게 확실했다.온몸에 발적이 일어난 상태로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이다.자신의 보스는 절제가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그런 보스가 지금 이 정도로 힘들어하다니, 무진이 정말 참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보스, 어디가 안 좋으신 겁니까?” 손건호가 초조한 음성으로 물었다.초조한 마음에 정신줄을 놓고 있던 손건호는 갑자기 성연의 의술이 떠올랐다.이건 성연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그래서 즉시 성연에게 전화를 걸어 무진의 상태를 설명했다.“작은 사모님, 지금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의사를 불러야 할까요?”손건호의 말을 듣고 있던 성연은 속으로 몰래 비명을 질렀다. 무진이 소지연의 덫에 걸린게 분명했다.소지연의 간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대놓고 엠파이어 하우스에서 일을 벌이다니.‘세상에, 눈에 뵈는 게 없구나.’하지만 지금 성연은 그런 것들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무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게 중요했다.성연은 억지로 자신을 진정시키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지금 당장, 얼음을 채운 욕조에 무진 씨를 넣어요.]“네, 작은 사모님, 즉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손건호가 바로 대답했다.[잠깐, 우선 전화 끊지 말고 내 말 대로 한 다음에 말해요. 그러면 내가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손 비서님에게 다시 알려줄 게요.]성연이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하고 있었다.지금 무진은 대단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얼음물에 몸을 담그면 고통을 좀 줄일 수 있을 것이다.“알겠습니다.” 즉시 집사를 깨운 손건호는 고용인을 시켜 얼음을 준비하게 지시했다.주방의 냉장고 냉동실에 이
손건호는 황급히 창고로 달려 가서 약재들을 찾았다. 적힌 약재를 모두 찾은 후에 성연이 시킨 대로 분말을 만들기 시작했다.분말로 간 약재를 물에 타서 무진에게 먹인 후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무진의 반응을 지켜보았다.무진의 몸에 나타났던 약효는 억제되더니 서서히 사라졌다.드디어 술에 취해 있던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한 무진은 머리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몸은 욕조에 누운 채였다.이제 정상적인 체온을 회복한 무진은 얼음물 속에 담긴 몸이 어느새 달달 떨려오며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조심스럽게 무진을 지켜보던 손건호가 물었다.“보스, 괜찮으세요?”손건호의 음성을 들은 무진이 되려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손건호는 우물쭈물하며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어쨌든 소지연은 무진이 무척이나 신뢰했던 이였다.그런데 이런 짓을 벌였으니 어쩌면 무진은 믿지 않을 지도 모른다.무진은 뇌 한쪽이 텅 빈 듯했다. 깨기 전의 일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그러나 자신의 몸이 아주 이상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알아야 했다.아직 손건호와의 통화를 이어가던 성연은 손건호가 대답을 못하는 것을 보고 직접 입을 열었다.[무진 씨, 얼른 가서 쉬어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요 내일 일어나서 다시 이야기해요.]“송성연.”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무진은 성연의 음성에 표정이 많이 풀렸다.성연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무진 씨 마음에 의아함이 있을 줄 알아요. 하지만 지금 무진 씨 몸이 많이 힘들 테니 내일 깨면 손 비서가 오늘 있었던 일들 모두 보고할 거예요. 됐죠?]무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무진을 설득하자 성연의 입에서 돌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다행히 무진은 별탈 없었다. 소지연의 약은 그냥 보통약일 뿐이었다.“보스, 제가 침대까지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손건호가 무진을 욕조에서 부축했다.무진은 몸이 나른하고 기운이 없었다.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으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성연이 이렇게 정중한 감사인사를 전하자 손건호는 좀 쑥스러웠다.잠시 웃다가 소지연을 떠올린 성연은 그 얼굴 꼴도 보기 싫었다.“손 비서님이 지켜보면서 소지연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세요.”간신히 기회를 잡아 무진에게 약을 먹였을 소지연이 그렇게 순순히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속에 또 무슨 나쁜 생각을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소지연 그 여자에 대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던 손건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저도 알고 있습니다.”막 성연과 통화를 끝내니 과연 소지연이 다시 돌아왔다.소지연은 걱정스러운 체하며 물었다.“손 비서님, 무진 오빠는 어때요? 몸에 별다른 점은 없어요?”조금 전까지 손건호와 칼을 겨누더니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편안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정말이지 그녀의 멘탈에 탄복할 정도다. 연기가 너무 뛰어났다.그러니 무진 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이제야 그 본성을 드러낸 것일 터.손건호는 굳은 얼굴로 축객령을 내렸다.“신경 쓰지 마시죠. 보스는 이미 잠이 들었으니 돌아가세요.”이 사단의 주범이 바로 소지연 자신이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모습이 정말 역겨웠다.화가 난 소지연이 손건호를 노려보았다.“어쨌든 나도 무진 오빠의 손님이지 않아요? 그런데 이런 태도로 나를 대해요?”이전에는 손건호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아도 본 듯 만 듯하며 넘어갈 수 있었다.다시 와서 봐도 손건호는 역시 이처럼 제 분수를 몰랐다.소지연은 겉으로는 몹시 화가 난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놀라는 중이었다.‘왜 약효가 나타나지 않아? 아까 분명히 발작을 일으키는 걸 봤는데?’그녀는 자기 좋을 대로 계산을 끝냈다. 송성연은 멀리 외국에 나가 있어서 돌아올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무진이 발작을 일으키면 그 곁에는 오직 자신뿐일 터. 결국 무진은 자신을 선택하게 될 것이었다.그런데 지금 약효가 사라졌다.소지연은 이를 악물었다. 모든 게 다 자신과 맞서고 있었다!손건호는 무진의 방 입구에 선 채 조금도
손건호가 무슨 말을 하든 소지연은 제자리에 딱 붙어 선 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무진에게 엉기려는 게 분명했다.무진이 보지 않는 한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손건호는 너무 온화한 태도는 소지연에게 전혀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손건호가 차가운 음성으로 경고했다.“소지연 씨, 지금 우리 작은 사모님이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작은 사모님 무척 대단하신 분입니다. 이미 보스를 위해 치료제를 만들어 냈거든요. 소지연 씨가 보스에게 한 일에 대해서는 처분을 기다리도록 하지요.”소지연은 속으로 저도 모르게 떨었다.무진의 상태가 어째서 이렇게 빨리 완화되었는지도 이제 알게 되었다.‘송성연은 정말 대단해. 여기에 없으면서도 날 이렇게 화나게 하다니.’“나와 무진 오빠 사이에 이 일이 뭐 대단하다고? 무진 오빠는 나를 탓하지 않을 거야.”소지연이 계속 고집을 피웠다.사실은 그녀도 무진에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랐다.그러나 손건호 앞에서 지고 싶지 않은 소지연.“그랬으면 좋겠네요.” 손건호가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소지연이 자기자신을 너무 믿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나와 무진 오빠 사이의 친분을 생각해 보시죠.” 콧방귀를 뀌며 손건호를 바라보는 소지연의 눈에 혐오감이 떠올랐다.손건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침 그때 지나가던 집사를 향해 손건호가 말했다.“집사님, 운전기사를 시켜서 소지연 씨 좀 바래다 드리도록 하세요.”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지연 앞에 가서 청하는 자세를 취했다.“가시죠.”소지연은 눈에 쌍심지를 켠 채 손건호를 째려보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결국 마지못해 집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손건호에게는 함부로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집사는 그렇지 않았다.수십 년간 강씨 집안을 지킨 집사다. 만약 이 일을 안금여와 강운경에게 알리기라도 한다면 큰 일이다.손건호는 여전히 문 가에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소지연을 배웅하기 위해 나갔던 집사는 소지연에게 운전기사를
날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때, 무진이 눈을 떴다.매일 생체시계가 이 시간에 맞춰져 있어서 아무리 늦게 자도 이 시간에 깼다.어젯밤 성연의 말 대로 지은 약의 효과인지 무진은 기분이 상쾌했다. 숙취로 머리가 깨질 듯한 느낌도 사라지고 없었다.하지만 무진은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다는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일어난 무진은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여니 손건호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밤을 꼬박 새운 손건호의 양복이 후줄근했다. 핏발이 선 눈으로 무진을 보자 바로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보스, 깨셨습니까?”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여기서 밤새 지켰어?”손건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이 마침내 왔다.하지만 보스도 조만간 이 일에 대해 알아야 했다.“어젯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진이 거실 소파에 앉자 손건호도 따라갔다.손건호는 어젯밤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무진에게 보고했다.“어젯밤에는 작은 사모님 덕분에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보스의 상태가 걱정되신 사모님이 저를 시켜 지켜보게 했는데, 다행히 보스가 깨셨네요.무진은 몸이 살짝 굳은 상태였다. 얼굴은 경악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소지연이 나에게 약을 먹였다고?”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손건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무진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사실 소지연이 벌인 일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게 아니었다.온천호텔에 있을 때 소지연이 보여준 행동, 그리고 그를 유혹하던 말 등 모두 자신에 대한 소지연의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다만 그때 자신은 소지연을 무척이나 믿었고 또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았기에 결국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다.지난번에는 그저 성연의 단순한 질투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그런데 성연은 소지연의 목적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던 것.‘내가 정말 어리석었어. 이것도 못 알아차리고.’성연을 생각하던 무진의 눈에 당황스러움이 스쳤다.“얼른 내 휴대폰을 가져와. 성연이에게 전화를 걸어야겠어.”성
성연은 무진이 외려 독박을 쓸까 염려했다.그러나 무진은 겁나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무진은 회사로 갔다.마침 월요일이라 매주의 정기 보고가 열릴 예정이었다. 회의석상에서 각 부서의 보고가 끝난 후, 무진이 선포했다.“소지연, 소 팀장은 오늘부로 즉시 유럽사업부에서 아프리카사업부로 전출됩니다.”유럽사업부 소속인 소지연은 그룹 본사에서는 가끔씩 유럽 시장의 상황만 보고할 뿐 매일 출근하지는 않았다.보통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소지연은 참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 회의에 소지연은 없었다.그런데 무진이 생각지도 못하게 소지연에게 직접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다.아프리카 사업부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미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회사에서 버림받은 자식 꼴이었다.아프리카 사업부에는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보통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그곳으로 이동되는 것은 모두 사고를 친 경우였다. 이번 생애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소지연의 생사에 대한 결정은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많은 임원들이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소지연이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길래 강무진 대표가 이렇게 화가 난 걸까?’그러나 본사 내에 소지연과 관계가 좋은 임원이 있었다.과거 소지연은 본사에서 힘들게 일하며 실적을 쌓았기에 유럽 사업부로 갈 수 있었다.본사에서 오랫동안 일한 직원들은 소지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그런 소지연을 봤었기에 마음이 모질지 못한 임원들이 소지연을 위해 앞으로 나서 말했다.“대표님, 소 팀장은 회사를 위해 공로는 없다 해도 고생을 했습니다. 아리따운 젊은 여성을 아프리카로 보내는 건 막다른 길로 몰아붙이는 격이 되지 않겠습니까?”옆에 있던 임원도 따라서 맞장구를 쳤다.“맞습니다, 대표님,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지 않겠습니까?”“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건은 제가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입니다.”무진은 역시 풍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소지연의 남은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소지연이 벌인 일들은 입에 올리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 있던 사람이 회의에서 결정된 일을 소지연에게 알려주며 관심을 가지고 말했다.[소 팀장,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강 대표를 그렇게 화나게 한 거야? 아니면 회사에 직접 나와서 사정을 하면 강 대표가 높이 평가해서 용서해 주지 않겠어?]한마디로 소지연은 얼음굴에 빠진 셈이었다.그녀의 눈에는 충격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휴대폰 건너편에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억지로 웃었다.“아무 일도 없었어요.”[진짜야? 강무진 대표 보니까 장난 아니었어.] 휴대폰 속에서는 믿지 않는 빛이 선명했다.소지연은 짜증이 치밀어 올라 손가락으로 눈앞의 시트를 쥐어뜯었다. 손가락에 힘을 꽉 주었는데 이는 그녀가 지금 엄청 참고 있음을 말해 준다.그런데 회사 사람들 앞에서 안색을 바꾸면 그녀가 무진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퍼질 것이다.머릿속에서 잠시 생각하던 소지연은 마침내 꽤 괜찮다 싶은 방법을 생각해냈다.“사실 아프리카 사업부에서 최근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앞으로 해외 사업의 중심은 아프리카로 옮겨질 겁니다. 강 대표님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저를 보내 지켜보게 하실 생각이세요.”소지연의 오만은 자신이 이미 무진의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했다.설령 떠난다 하더라도 자신에 대한 일을 회사의 수다쟁이들이 함부로 지껄이게 할 수는 없었다.같이 통화하던 임원은 문득 크게 깨달은 듯이 말했다.[어쩐지, 강 대표가 어떻게 소 부장을 그런 곳에 보내려 하는가 했더니, 역시 그런 사정이 있었군.]“그 동안 제가 강 대표님이 어떤 관계인지 다 보셨잖아요.”소지연이 득의양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두 사람이 통화 중일 때, 집안에 초인종이 울렸다.소지연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집에 사람이 왔나 보네요. 나가서 봐야겠어요. 우선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어요.”이어서 전화를 끊었다.그러나 소지연의 얼굴은 점점 굳어지며 무척이나 보기 흉했다.소지연이 문을 여니 찾아온 사람은 WS그룹 인사팀 팀장이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