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준은 심유진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심유진은 매번 얌전하게 앉아 귀엽게 표현했다.“고마워요.”정반대로 여형민과 나은희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둘은 음식을 집다가 젓가락이 부딪쳐 시비가 붙을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이렇게 상반되는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식사를 마쳤다.허태준은 심유진에게 어디로 갈지 물었다.블루 항공과 진생 그룹의 계약은 이미 성사되었다. 심유진과 김욱의 귀국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아 굳이 멀리 떨어져 있는 호텔로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우리 이만 집에 가요.”“그래요.”허태준은 미소를 머금은 채 한 손에는 심유진의 가방을, 다른 한 손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허태준은 뒤돌아 여형민에게 말했다.“형민 씨도 회사에서 야근하지 말고 나 대표님과 집에 가세요.”“저는 차라리 회사에 가서 야근하고 싶어요!”여형민은 아직도 속이 울렁거려 속심이 튀어나왔다.나은희도 이심전심이었다.“누가 너 보고 집에 들어오래? 나는 네가 매일 회사에서 잤으면 좋겠어. 나 혼자 침대를 차지할 수 있게! 회사 가고 싶으면 실컷 가!”“네가 그렇다면 오늘 꼭 집에서 자야겠는데!”여형민은 계속 나은희의 한계를 건드렸다.심유진은 귀를 막으며 서둘러 허태준을 끌고 자리를 떴다.“우리 빨리 집에 가요. 저 너무 졸려요.”“네.”허태준은 다투고 있는 두 사람을 아랑곳 하지 않고 심유진과 함께 차를 타고 떠났다....허태준은 심유진을 그들이 전에 머물렀던 신혼집으로 데려왔다.허태준은 줄곧 이곳에서 지냈다. 집안의 물건은 모두 심유진이 떠날 때와 거의 같았다.하지만 드레스룸에는 많은 고가의 옷과 가방들이 있었고 심지어 근년에 출시된 리미티드 에디션도 많았다.심유진의 어리둥절한 모습에 허태준은 해명해 나섰다.“매 시즌마다 브랜드에서 잡지를 보내줘요. 그중 유진 씨한테 어울릴 것 같은 옷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했어요.”그는 몇 년에 걸쳐 이 옷들이 모두 심유진에게 입힐 생각이었다.오늘이 바로 허태준의 소원이 이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으로 돌아갈 날짜가 정해졌다.심유진은 이틀간 허태준의 집에 머물며 김욱과는 떠나는 날에 바로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상황을 이미 짐작했던 김욱은 그녀한테 이틀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그는 오히려 심유진 홀로 공항에 나타난 것에 대해 의혹을 품었다.“별이는 유럽에 안 데려가?”심유진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별이를 데려가야 했다. 하지만 허태준의 부모님께서 별이를 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별이가 유럽에 가는 길에 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게다가 허태준도 허태서가 무슨 짓을 벌일 줄 모른다며 떼를 쓰는 바람에 심유진은 별이를 안전하게 허태준의 본가에 맡기기로 했다.“별이가 며칠 더 놀고 싶대.”심유진은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댔다.“태준 씨가 나중에 별이를 데리고 올 거야.”김욱은 계속 캐묻지 않았다....그들은 현지 시간 낮 12시가 넘어서야 유럽에 도착했다.육윤엽이 재촉하는 바람에 김욱은 시차에 적응할 틈도 없이 회사로 향했다.심유진도 김욱을 따라갔다.육윤엽은 사무실 문을 잠그고 커튼을 모두 내렸다.“제가 총재실의 컴퓨터를 조사해 보라고 정보기술팀에 의뢰했지만 모어 항공과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는 하나도 찾지 못했어요.”육윤엽의 안색은 더없이 어두웠다.“그들이 모어 항공과 어떻게 개인적으로 연락했는지 조사할 방법이 없어요.”“범인은 분명 우리가 진생 그룹에 준 견적서를 봤을 거예요.”김욱은 진운생이 준 단서에 따라 짐작했다.“진생 프로젝트는 제가 직접 담당했고 소문이 새지 않도록 견적서를 윤엽 씨한테만 보내드렸어요.”“저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어요.”육윤엽은 다급히 말했다.“하지만...”그는 몇 초 동안 골똘히 생각했다.“김욱 씨가 저한테 보낸 그 메일을 줄곧 삭제하지 않았는데 누가 해킹했을지도 모르죠.”이런 추측 때문에 육윤엽은 다시 정보기술팀을 찾았다.하지만 정보기술팀은 그의 메일이 컴퓨터와 휴대폰 이외의 기기에 접속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즉 해킹을 당하
“저는 뭐 한 것 없어요.”심유진은 겸손하게 말했다.“공교롭게도 마침 진생 그룹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마침 진생 그룹 진 대표님의 조카딸이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가 겸사겸사 우리를 주선해 주었어요.”김욱은 컴퓨터를 끄고 한마디 얹었다.“이런 우연은 아무나 마주칠 수 있는 것이 아니죠.”“그건 그래요.”심유진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하지만 육윤엽은 김욱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그럼 김욱 씨의 말은 이 모든 게 우연은 아니라는 건가요?”김욱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애매모호하게 말했다.“누군가가 부추기는 것 같았어요.”육윤엽은 멍해 있는 심유진을 훔쳐보며 모든 의문을 가슴에 묻어두었다.“됐어요. 다들 이만 가서 쉬세요.”육윤엽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저었다.“내일 저녁에 저의 집에 오세요. 우리 셋이 맛있는 것 먹으면서 축하 파티를 합시다.”...심유진은 서둘러 집에 가지 않았다.그녀는 경주에서 산 기념품을 총재실의 동료들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었다.모두 그녀와 친하지 않지만 매우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마리아는 심유진을 붙잡고 물었다.“유진 씨, 경주에서 재미있어요?”“꽤 괜찮았어요.”심유진은 그녀에게 경주의 전통 간식과 그녀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티백을 가져다주었다.“이 티백으로 우려낸 차는 경주의 찻집에서 파는 차보다 못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저와 함께 경주에 가서 재미있게 놀아요!”“좋아요!”마리아는 티백을 끌어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맛을 보고 싶었다.“기념품을 살 마음이 있었다는 건 경주에서 많은 수확을 걷었나 본데요?”마리아는 심유진을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놀렸다.“그것과는... 딱히 상관이 없지 않을까요.”블루 항공과 진생 그룹의 협력에 대해 아직 공식 발표도 나지 않았다. 게다가 내부에스파이까지 있는 상황이라 심유진은 육윤엽과 김욱이 당부한 대로 입을 다물어야 했다.“원래 기념품을 사드릴 계획이었어요.”기념품을 구매한 건 허태준의 비서였지만 어쨌든 심유진의 의지로 구매
김욱은 아래층에서 심유진을 기다리고 있었다.김욱은 차를 두고 온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줘야 했다.“우리가 진생 그룹과 계약한 일을 회사 사람들한테 비밀로 해야 해?"심유진은 김욱한테 물었다.“한동안 비밀로 해.”김욱은 단호하게 말했다.“진생 그룹이 아직 전 회사와 계약이 만료되지 않았으니 앞으로 6개월 동안 우리는스파이를 찾아내야 해.”“근데 마리아 씨한테까지 꼭꼭 숨길 필요가 있어?”심유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마리아 씨가 회사에 입사한 지 꽤 되었는데 굳이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없잖아...”마리아는 회장실에서 처음으로 심유진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이고, 그녀가 주디를 상대할 때도 의리를 지키고 도와주었다. 비록 마리아도 용의선상에 있지만, 심유진은 마리아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마리아 씨가 삼촌 사무실에 가장 많이 드나들었던 걸 잊지 마.”김욱은 심유진한테 일깨워 주었다.“지금 이 상황에서 누구도 믿으면 안 돼.”“... 알겠어.”심유진은 시무룩해서 답했다....그날 밤 심유진은 예상치 못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오랫동안 감감무소식이던 주디한테서 온 연락이다.“주디 씨, 미안해요.”주디는 울먹거리며 후회하고 있었다.“애초에 제가 유진 씨를 비하하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유진 씨가 김욱 씨한테 잘 얘기해주면 안 돼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심유진은 얼떨떨했다.주디는 블루 항공을 떠난 후 바로 모어 항공에 입사했다. 이는 엄연히 계약위반이었기에 김욱은 그녀를 고소했다. 김욱이 알아서 일을 처리한 덕에 심유진은 이 일에서 신경을 껐다.사실 경쟁사로 이직을 한 건 계약을 위반한 거였지만 그리 심각한 일도 아니었다. 김욱이 배상으로 합의를 해준다면 소송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모어 항공이 이 협의를 알고 있음에도 주디와 직원들을 빼돌린 이상, 당연히 배상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했다.그래서 심유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이 김욱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심유진은 그제야 일이 생각과는 다르게 흘
주디처럼 옳고 그름을 모르는 사람은 사회적 매질을 겪어도 싸다.“왜 또 무슨 일 있어?”하은설은 얼굴에 팩을 한 채 하얀색 잠옷 치마를 입고 방에서 나왔다.심유진은 귀신을 본 줄 알고 깜짝 놀랐다.“다른 잠옷은 없어? 그리고 그 얼굴도...”심유진은 소파에 기대어 빠르게 뛰는 심장을 손으로 감싸쥐었다. 저 무서운 몰골을 쳐다도 보지 싫었다.“이 잠옷이 얼마나 편하고 시원한데.”하은설은 심유진 옆에 앉아 태연하게 매니큐어를 발랐다.“난방이 너무 잘 돼서 벌거벗고 누워도 덥네.”“아직 산후조리 중이니까 감기에 걸리지 않게 보온에 신경 써.”심유진은 그녀를 꾸짖었다.“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반면 하은설은 대수롭지 않아 했다.“심유진!”하은설은 심유진을 돌아보며 눈치도 없이 물어댔다.“너 앞으로 어쩔 생각이야?”“뭔 소리야? 뭘 생각해?”심유진은 그녀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너랑 허 대표는 앞으로 유럽에 머무를 생각이야? 아니면 경주로 돌아갈 거야?”심유진의 표정은 순간 엄숙해졌다.“네 아버지가 여기 계시니까 너도 유럽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건 알아. 하지만 허 대표님과 그쪽 부모님께서 동의하실 것 같지는 않은데. 너도 봐, 별이가 이번에 경주에 돌아가니까 다들 걔를 보배처럼 아끼잖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희들이 경주로 돌아가면 나도 그만두고 너희들과 함께 갈 수 있어. 예전에는 외국에서 혼자 지내는 것이 익숙해서 별것 아닌 것 같았어. 근데, 너희랑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지내다가 요 며칠 동안 혼자 있어 보니 마음이 너무 허전하고 힘들더라.”“우리 아마 경주로 돌아갈 것 같아.” 심유진은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아버지와 오빠가 최근 블루 항공의 사업을 국내로 이전할지 고민하고 있어. 만약 일이 성사되면 우리 가족 모두 경주로 돌아갈 거야.”“그럼 됐어.”하은설은 쿨하게 답했다.“나 이번에 연차 다 쓰고 바로 사직서 제출할 거야.”심유진은 어느 정도 하은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너만 후회하지
그러나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김욱은 심유진을 사무실로 불렀다.뜻밖에도 육윤엽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와 김욱은 모두 표정이 어두웠다.이 이상한 분위기는 심유진을 긴장하게 했다.심유진은 조심스럽게 사무실 문을 열었지만, 손은 문고리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다들 표정이 왜 이래?”그녀는 두 사람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두 사람은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할 수만 있다면 심유진은 바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고 싶었다.“걱정 마세요. 유진 씨를 선을 보게 할 생각은 아니에요.”드디어 육윤엽이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심유진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심유진은 육윤엽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그럼, 회사에 또 무슨 문제가 생긴 거예요?”“방금 전화 한 통을 받았어...”김욱은 심유진을 흘깃 쳐다보았다.“아침에 나와 통화한 그 친구가 모어의 직원이거든. 방금 그 사람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어. 그는 주디 씨가 모어에서 그녀에게 준 임무를 완수했기에 해고된 거라고 말했어.”“무슨 임무?”심유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임무를 다 완수했는데 어떻게 해고될 수 있어.”“주디 씨가 블루 항공에 스파이를 심어뒀대. 그리고 그 스파이를 통해 회사의 최신 소식까지 모두 알아낼 수 있었대. 심지어 우리가 진생 그룹과 공동합작한 프로젝트까지도 알아냈대.”심유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주디 씨가 스파이랑 한패란 말이야?”“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지.”김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모어가 주디 씨를 해고하는 것은 그녀와 관계를 끊기 위해서야. 주디 씨는 비밀을 지키는 대신 거액의 돈을 받았지. 하지만 내가 신경 쓰이는 건, 주디 씨가 너한테 전화한 목적이야.”주디와 심유진은 줄곧 사이가 나빴다. 심지어 주디가 블루 항공에서 해고된 것도 심유진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설령 주디가 벼랑 끝에 서있다 해도, 심유진에게 도움을 청할 사이는 아니었다. 주디는 차라리 심유진보다 마리아와 사이가 더 좋았다.게다가 주디는 벼랑 끝으로 몰린 상황
“마리아 씨는 남아봤자 육 대표님께 커피 타주는 것 외에 할 일이 없지 않아요?”심유진은 마리아에게 물었다.마리아는 주로 육윤엽의 개인적인 일이나 일정을 계획해 주는 일을 책임지고 있었다.블루 항공에 일이 있기 전까지 육윤엽의 하루 일과는 규칙적이어서 매일 정시에 퇴근했다. 협력업체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어 퇴근 후에는 회사로 전화를 걸지 않았다.심유진은 마리아는 야근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유진 씨!”마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언성을 높였다.“제가 하는 일이 많고도 많아요. 함부로 깔보지 마세요! 제가 야근하면 기껏해야...”마리아는 갑자기 능글맞게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육 대표님한테 커피 몇 잔 더 타 줄 수 있죠.”...일하다 보니 어느새 아홉 시가 다 되어갔다.심유진은 일에 열중하느라 맞은편에 앉은 마리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마리아가 자리에서 일어설 때마다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서 육윤엽의 사무실로 배달하는 게 전부였다.그렇게 마리아는 겨우겨우 육윤엽이 퇴근할 때까지 버텼다.퇴근할 때 육윤엽은 마리아의 뒤에 잠시 멈춰 서서 말했다.“앞으로 야근할 필요 없어요. 커피는 제가 알아서 타서 마실게요.”“네.”마리아는 머쓱한 듯 대답했다.그가 떠난 후 마리아는 다시 심유진한테 다가갔다.“육 대표님도 퇴근하셨는데 유진 씨는 아직도 일이 안 끝났어요?”심유진은 여전히 불이 켜져 있는 김욱의 사무실을 바라보았다.“제 상사가 아직 퇴근하지 않았어요! 저도 상사한테 잘 보여서 이 회사에 오래 붙어 있도록 노력해야겠어요.”그 말에 마리아는 다시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그럼, 제가 같이 있어 줄게요.”“그럴 필요 없어요.”심유진은 그녀의 호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다.“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여자가 저녁 늦게 집에 가는 것이 위험할 수 있어요.”“유진 씨도 여자 아니에요?”마리아가 되물었다.“저는 데리러 올 사람이 있어요.”심유진은 차마 김욱이 그녀를 집에 데려다준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마리아가
김욱에게는 출장 전용 캐리어가 있었고 안에는 옷 몇 벌과 생활용품들이 들어있었다.임시 출장 업무가 있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게 그는 그 캐리어를 항상 차에 두고 다녔다.이제 쓸모가 있게 되었다.심유진은 김욱을 다른 객실로 안배했고 하은설의 방과 벽 하나만 떨어졌다.하은설은 그전에 김욱을 몇 번 본적이 있었다. 그리 서로 익숙한 편은 아니었지만 낯설지는 않았다.김욱이 오자 하은설은 생활에 영향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지 않았기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김욱과 심유진은 보통 일찍 나가고 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같은 집에 살더라도 만날 시간이 거의 없었다.“저녁은 먹었어요?”김욱이 방을 치우기 위해 들어가기 전에 하은설이 그에게 물었다.그와 심유진은 지금 막 야근을 끝내고 돌아왔기 때문에 밥을 먹을 시간이 전혀 없었다.“집에 뭐 먹을 게 있어?”심유진은 원래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하은설이 묻 묻자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바로 먹을 수 있는 건 없어. 아니면 내가 국수나 물만두 좀 끓여줄까?”심유진이 고용한 간병인은 하은설의 세 끼만 해주었을 뿐 절대 음식을 더 많이 하지 않았다.다행히 집에 인스턴트식품들이 있었기에 굶을 정도는 아니었다.“전 괜찮아요.”김욱은 하은설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캐리어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그리고 그는 방문을 닫았다.하은설은 혀를 날름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심유진에게 투덜거렸다.“네 오빠는 정말 까칠하네. 저번에 훠궈 먹으러 왔을 때는 그렇게 친근하더니. 며칠 안 본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 있어?”“그래? 난 꽤 친절하다고 생각하는데.”김욱의 처사하는 스타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심유진은 딱히 그가 까칠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하긴 최근 회사에 문제가 조금 생겨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럴 수 있어.”“알겠어.”하은설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잠깐! 너 회사가 문제 생겼다며 넌 왜 매일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조금도 초조해 하지 않아?”하은설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내가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