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하의 진정성 있는 태도에 허태준의 마음도 많이 약해졌다. 며칠 전 부하들을 시켜서 했었던 일들을 생각하니 정재하의 두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허태준은 예의를 차리며 대답했다.“초대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태준아, 오늘 수고 많았다.”나지희 아버님이 웃으며 말했다. 나씨네 집안과 허씨네 집안은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집안 어른들끼리도 자주 만남을 가졌었다. 허태준은 비록 이런 상황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씨네 집안사람들과는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었다.“형민이가 고생했죠.”허태준은 모든 공로를 여형민에게 돌렸다. 아버님도 맞은쪽을 쳐다봤다. 여형민은 여전히 손님을 맞이하고 축의금을 걷느라 바빴다. 나은희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다정한 한쌍의 부부였다. “형민이가 확실히 고생 많이 했지.” 아버님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둘이 이렇게 사이좋은 모습은 오랜만에 보네.”여형민과 나은희의 혼인은 쌍방 부모님들의 결정 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두 사람이 별다른 감정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비록 자주 다정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부모님들이 어찌 그 내막을 모를 수 있을까. 허태준은 화제를 다시 이 신혼부부에게로 돌렸다.“이제 또 소원 하나 이루셨네요.”아버님이 호탕하게 웃으며 허태준에게 물었다.“근데 부모님은 왜 안 오셨어?”“여행 가셨어요. 두세 달 뒤에 돌아오실 거예요.”허태준이 대답했다. 부모님의 여행 역시 허태준이 계획한 것이었다. 허태준은 삼촌들의 범죄 증거를 확보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중간에서 제지하거나 속상해서 삼촌들을 미리 다른 곳에 보내놓을까 봐 두려웠다. 근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삼촌들이 감옥에 간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나은희 아버님은 아쉬운 듯했다.“오늘 태준이 아빠랑 한잔 하려고 했는데.”허태준이 아버지 대신 대답했다.“앞으로도 기회는 많은데요 뭐.”허태준은 혼자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결혼식장은 흰색과 핑크색으로 설계되었기에 사랑스
손님들의 좌석은 미리 사전에 안배되어 있었다. 허태준은 두 번째 테이블이었고 그 테이블에는 나씨네 집안의 진척들이 있었다. 나지희의 삼촌들과 고모부 등등이었다. 다들 일찌감치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허태준이 오는 것을 보자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 했다. 허태준은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계속 휴대폰을 주의 깊게 봤다. 그 순간 휴대폰 진동이 올렸다.“대표님, 연회장 입구에서 경비들에게 제지당하고 있습니다.”허태준은 그 메시지를 잠깐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주위 사람들의 대화도 이제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이 결혼식이 그저 비즈니스적인 혼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사랑으로 이루어진 결혼일 줄은 몰랐다. 허태준은 한참 고민하다가 문자를 보냈다.“못 들어오게 막아요.”그는 결국 결혼식을 망치는 행동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나서지 않았어도 이 혼례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식이 정식으로 시작되기 5분 전 매니저 제복을 입은 남자가 다급히 첫 번째 테이블로 달려가 나지희 아버지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전달했다. 아버지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더니 정씨네 부부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정준성은 그 눈빛에 손을 떨며 컵 안의 물마저 쏟았다. 하지만 젖은 옷을 걱정할 틈도 없이 그는 불안해하면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허태준은 대놓고 쳐다보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 척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들었다.나지희 아버지가 이를 악 물면서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것이 들렸다.“당신 아들이 사라졌어요.”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은희가 그들을 진정시켰다. “화장실에 갔을 수도 있잖아요. 제가 나가 볼게요.”그녀가 몸에 일으키자 여형민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저도 같이 가볼게요.”허태준 옆을 지나면서 여형민이 허태준에게 눈치를 줬다.“따라와.”허태준도 변명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전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예식장밖의 직원들은 이미 난리법석이었다. 신랑이 사라지는 사건은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
“우린 아직 다른 일이 있어서.”여형민은 허태준의 팔을 잡고 말했다.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말을 하지 않은 탓인지 그의 목소리는 쉬어있었다. 나은희는 허태준의 팔을 잡은 여형민의 팔을 이 초 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나은희가 가자마자 허태준은 여형민의 손에서 팔을 뺐다. 이마를 찌푸리면서 셔츠에 진 주름을 폈다.“나는 왜 우리가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몰랐지?”그는 목소리를 낮춰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여형민은 그를 복잡미묘하게 바라보았다. 옆에 다른 사람이 있으니 그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삼키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자리를 바꿔 얘기하지.”연회장 근처에는 휴식실이 여러 곳 있었다. 일찍 온 손님들이 휴식할 수 있게 만든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다들 연회에 참석하여 휴식실은 텅 비어있었다.여형민은 아무 방이나 문을 열고 허태준을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잠갔다.“정재하를 도망가게 한일은... 네가 한 거야?”그는 허태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형민답지 않게 자못 진지한 표정이었다.여형민은 허태준과 오랜 친구였으나 서로 성격이 크게 달라 허태준 앞에서 항상 기세가 낮았다—물론 여형민이 일부러 맞춰주려는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허태준은 여형민이 이렇게 정색한 모습을 보자 적응하기 어려웠다.“아니.”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자 허태준은 솔직히 대답했다.여형민은 허태준과 정재하가 옛일로 얽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정재하가 사라졌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허태준을 의심했다.하지만 허태준이 아니라고 하니...“믿을게.”여형민은 허태준한테 항상 이렇게 아무 이유 없이 믿음이 갔다.“하지만...”허태준은 말을 이었다.“이번 일은 나랑도 관계가 없지 않아 있어.”**여형민과 나은희는 결혼한 지 몇 년이 된다. 하지만 부부 사이가 좋지만은 않았다. 여형민은 나씨 가족분들과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가 나지희의 결혼식에 참석한 것은 꼭 완성해야만 하는 임
“내가 결혼한다 해도 나를 기다려준다고 했잖아!”“정재하, 넌 날 속였어!”심연희는 미친것처럼 정재하의 가슴을 내리쳤다. 누런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가득했다.정재하는 멍하니 서 있을 뿐 피하지도 도망가지도 않고 같이 손찌검을 하지도 않았다. 얼굴의 표정은 복잡하여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심연희는 거의 온몸의 힘을 소진한 듯 했다. 그녀는 몸을 비틀거리면서 넘어지려던 찰나 정재하의 옷깃을 잡았다.정재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허리를 잡으려다가 문득 신속히 손을 다시 거두었다.심연희는 그의 행동을 주의 깊게 보았다. 그녀는 바로 얘기하지 않고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겼다.“재하야!”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결혼하지 마. 응?”그녀는 뼈가 녹아버릴 듯 부드러운 목소리를 하였다. 조심스러운 말투는 정재하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심연희, 영원히 고고한 선녀 같은 사람. 그녀는 이렇게 비굴하게 군 적이 있었는가?“나는...”정재하는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그의 머뭇거림을 알아채자 심연희는 더욱 간절하게 말했다.“후회돼. 엄마아빠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됐어. 가족의 이익 때문에 허태서랑 결혼했는데...재하야,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은 너야! 줄곧 너뿐이었어!”허태준은 한창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는데 곁눈질로 여형민이 화를 내며 소매를 걷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뭐 하려고?”그는 급히 여형민을 막았다.“정재하를 잡아 와서 한바탕 패게!”여형민은 분노에 이를 갈면서 말했다.“진정해.”허태준은 아예 여형민의 앞을 막아 나섰다. “정재하는 아직 선택을 안 했어. 한발 물러서서 오늘 재하가 심연희를 따라간다 해도 너랑은 아무 관계 없잖아. 안 그래?”“어떻게 나랑 관계가 없어?!”여형민은 쏘아붙였다. 하지만 허태준의 장난어린 눈빛을 보자 이내 눈을 피했다.“내 뜻은...”그는 설명하려 했다.“이것도 가져야겠고 저것도 포기할 수 없는 남자를 용서치 못하겠어!”“
은방울 같은 목소리는 주차장에 있던 네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다들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나지희는 번잡한 드레스를 벗고 더 편한 미니드레스로 갈아입었다. 겉에는 두꺼운 방한복을 걸쳤다. 그녀는 정재하와 심연희와 오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정재하의 얼굴색은 삽시간에 변했다. 그는 황급히 심연희를 밀어내고 나지희한테 설명하려 했다.“지희야, 내 말 좀 들어봐! 네가 본 것이 다가 아니야!”아침드라마 속에 불륜을 저지른 남자가 따로 없었다.나지희는 시종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하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행복하고 달콤했던 웃음이 아니라 냉혹함과 조롱이 가득한 웃음이었다.정재하는 그녀를 향해 걸어가다가 멈췄다. 삽시간에 크나큰 공포감에 잠겼다.“지희야!”멀리서부터 하이힐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은희는 급히 달려와서 나지희의 옆에 섰다.누가 흘린 소식인지 모르겠으나 그녀가 신부대기실에 도착했을 때 나지희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브라이드 메이드가 얘기하기를 정재하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지희는 옷을 갈아입고 뒤쫓아갔다고 한다. 누구한테도 어디로 간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나은희는 한참을 묻고 나서야 단서를 얻어 경비실을 찾았다.하지만 경비실에서는 이렇게 얘기했다.“나씨 집안 둘째 아가씨는 감시카메라를 한참 보다가 화가 나서 나가던데요!”24시간 동안 작동하는 카메라는 대회장 구석구석에 분포되어 있었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화면은 벽면 전체를 덮었다.나은희는 스크린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끝내 주차장에 있는 정재하의 모습을 캐치하였다.그의 옆에는 낯설지가 않은 여자가 서 있었다—심연희.나지희는 아마도 이 화면을 보고 화가 나서 나섰겠지.경비한테 구체적인 위치를 묻고 나서 나은희는 급히 달려갔다.나지희의 성격은 나은희가 잘 알았다—대부분은 애교 많은 작은 공주였지만 화가 나기 시작하면...뭐든 저지를 수 있었다.정재하와 심연희는 혼이 나서 마땅하다. 하지만 나지희가 직접 나서서는
나은희는 나지희가 애써 참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아팠다.“엄마아빠 눈치 볼 것 없어.”나은희는 모두 다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나지희에게 말했다.“네 행복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이 결혼을 취소하고 싶다면 온 가족이 널 지지할 거야.”정재하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나지희를 바라보았다. 내밀었던 발도 다시 거두면서 그녀의 심판을 기다렸다.하지만 나지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심연희는 뒤에서 정재하를 껴안았다.그녀는 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하게 말랐지만 유난히 힘이 셌다. 그의 허리를 감싸자 그는 아픔을 느꼈다.“재하야! 걔랑 결혼하지 마! 넌 나를 사랑해, 재하야!”심연희는 울부짖으면서 정재하의 뒤쪽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그리고 나지희를 노려보았다.“재하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 당신이 아니야! 절때 너랑 결혼하지 않을 거야! 꿈 깨!”나지희는 심연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녀가 여기에 없는 것처럼.“정재하, 오 분 줄게.”나지희는 나은희한테서 핸드폰을 가져갔다. 그리고 스크린 속의 시간을 보면서 말했다.“지금은 11시 17분이야. 11시 22분까지 기다릴게. 시간이 되면 올라가서 모든 사람한테 말할 거야. 오늘의 결혼식은 취소라고.”그녀의 말은 협박이 아니었다. 공지였다.정재하는 잘 알기에 더 다급했다.그는 당장 심연희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다. 그녀에 대한 미안함에 우유부단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선명하고 확고하게 거절했다.“심연희, 나는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하지 마! 얘기하지 마! 안 들을래!”심연희는 소리를 지르면서 귀를 막았다. 이렇게 해야만 잔혹한 현실을 마주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아무 소용 없다.정재하는 그녀의 간섭에 굴하지 않고 마저 얘기했다.“나는 지희를 사랑해. 지희랑 진심으로 한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아아아아아!”심연희는 더 높은 목소리로 정재하의 목소리를 누르려 했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나지희는 심연희가 칼을 빼 드는 것을 보자 진정이 되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해도 심연희가 정재하를 찌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그녀의 갈등을 느끼자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나은희는 그녀의 손을 먼저 잡았다.“지희야, 안돼.”나은희는 고개를 저었다. 늘 자신감이 넘치던 얼굴에는 당황함이 묻어있었다.나지희는 진심으로 정재하를 사랑 했다. 심지어 정재하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에서 죽기 싫다. 저 여자의 칼 아래에 죽는 것은 더더욱 싫다.그녀는 정재하를 바라보았다. 정재하도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눈에는 가슴 아프게 하는 슬픔과 진한 애정이 묻어있었다.나지희의 가슴은 격렬하게 움직였다. 난데없는 공포감이 그녀를 감쌌다.“지희야.”정재하는 웃으면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더없이 진정된 말투였다.“남이 뭐라 해도 너만 날 믿어주면 돼. 나는 너를 정말로 사랑해.”“정...”나지희가 입을 열자마자 그의 얼굴은 어두워지고 삽시간에 심연희의 팔목을 잡았다.심연희는 놀라서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예리한 칼날은 얇은 옷을 뚫고 정재하의 등을 찔렀다.“안돼!”나지희는 넋을 놓고 절망적이게 소리쳤다. 그리고 있는 힘껏 나은희의 손을 뿌리치고 정재하쪽으로 달려갔다.“오지 마!”정재하는 소리 질렀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아픔을 참으면서 심연희의 팔을 놓지 않았다.칼은 여전히 그의 몸에 박혀있다. 땀방울이 그의 이마에 맺혀 눈에 흘러 들어갔다.“가! 빨리 가!”그는 얼마나 더 지탱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시각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다. 지희가 다치지 않는 것.상처는 칼이 박혀있는 것 때문에 피가 뿜어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두우면서도 강렬한 빨간색은 칼자루를 중심으로 정재하의 새하얀 슈트를 조금씩 조금씩 물들이고 있다.나지희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슬픔, 후회, 공포감..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그녀의 마음속에 얽히고 쌓였다.“어서 가
......그녀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재하야...”그녀는 입을 뻥긋했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정재하의 얼굴은 핏기가 사라졌다. 흘러나온 피처럼 힘도 유실되었다.“지희야.”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그는 더없이 허약해 보였다.나지희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그의 몸을 바라보았다.“다행이다.”정재하는 그녀를 향해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네가 아니라서 다행이야.”칼에 찔린 사람이 그녀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병에 걸리게 될 사람이 그녀가 아니라서 다행이다.죽게 될 사람이 그녀가 아니라서 다행이다.“정재하 이 바보야!”나지희는 걷잡을 수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나은희는 다가가 나지희를 안았다. 차가운 시선은 정재하를 마주하자 동정과 고마움으로 변했다.텅 빈 주차장에는 발걸음 소리가 전해졌다.전신 무장한 경찰들이 사면팔방에서 나타나 정재하와 심연희를 중간에 에워쌌다.경찰들을 보자 심연희는 당황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정재하의 손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설명했다.“경찰 아저씨. 이 칼은 저절로 찌른 거예요. 저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저를 잡아가면 안 돼요!”경찰은 그녀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들을 점점 더 에워쌌을 뿐이다.정재하는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힘껏 얘기했다.“조심하세요! 이 사람은 에이즈 환자예요!”경찰들은 위축되지 않았다. 그들은 장비들로 겹겹이 무장되어 있어 얼굴 외에 밖에 드러난 피부가 없었다.한 경찰이 심연희의 뒤쪽에서부터 접근했다. 그녀가 발견하기 전 그녀의 다른 한 손을 잡았다.“아!”심연희의 비명소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팔은 이미 뒤쪽으로 비틀려졌다.정재하는 잡고 있던 팔을 경찰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손을 놓았다. 그의 몸은 휘청이더니 다른 경찰이 다가가 그를 부축하였다.옆에 서 있던 경찰은 마법을 부리듯 의약 함을 꺼내면서 정재하한테 얘기했다.“상처를 처리해 주고 병원에 데려갈게요. 출혈이 너무 심하네요.”정재하는 그 사람을 말렸다.“아니요! 제 피는 이미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