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왜...”심유진의 목구멍은 이물에 막힌 것 같았다. 침을 삼키기조차 어려웠다. 그녀는 가쁘게 숨을 쉬여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 대응하였다.“나는...”육윤엽은 그녀의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은 목소리로 마음속에 숨겨둔 말을 꺼냈다.“네가 날 미워할까 봐.”그의 눈빛은 어두웠다. 불안도 섞여 있었다.심유진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는 한 치의 거짓 없이 진실되어 보였다.그녀는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눈물이 점차 멈추자 호흡도 순리로워졌다.“저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요.”그녀의 목소리는 가벼웠다. 하지만 천만근 되는 것처럼 육윤엽의 가슴을 짓눌렀다.그는 몸을 떨었다. 그녀의 손을 잡은 손은 멈출 새 없이 떨렸다.“유진아...”그의 입술은 움직였다. 눈가는 눈물로 가득찼다.심유진의 대답은 육윤엽의 예상밖이었다. 이사각 그는 기쁜 나머지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그는 그녀를 품에 안아 잃어버린 세월을 위로해 주고 그녀를 예뻐해 주고 싶었으나—그녀의 허약한 모습은 시시각각 그를 일깨우고 있었다. 그녀를 다치게 한 사람들로 하여금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육윤엽의 눈빛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심유진은 멈칫했다.하지만 이내 그는 정상적으로 돌아왔다—마치 방금 그 순간은 그녀의 착각인양.“아빠가 미안하구나.”육윤엽은 고개를 숙이고 미안해하면서 말했다.그의 입에서 나온 아빠라는 칭호는 두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죄송해할것 없어요.”심유진은 육윤엽이 자신을 포기한 것에 대해 탓한 적이 없었다—그의 존재를 알기 전에 그녀는 줄곧 그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그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고충이 있으셨다고 생각해요.”그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가정이 풍비박산이 난 이유는 아마도 허영심에 가득 찬 엄마때문일것이라고.육윤엽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일 것이라고.심유진의 이해는 육윤엽의 마음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그가 눈을 깜빡하자 눈물이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는 고충이 있었다.그는 당연히
아니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그는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조차 몰랐다. 정신이 나간 채 몸만 돌아다닌 것 같았다.“배는 안고파? 김욱이더러 먹을 것을 사오라고 할게.”육윤엽은 말하면서 핸드폰을 꺼냈다.“아니예요!”심유진은 다급히 제지시켰다.“입맛이 없어요.”너무 심하게 다친 탓인지 그녀의 소화시스템까지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하루종일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아 배가죽이 등 뒤에 붙을 지경이지만 그녀는 아무런 음식에도 관심이 없었다.“그래도 뭐라도 먹어야지.”육윤엽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김욱한테 전화를 했다.반시간후 김욱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을 두그릇 들고 왔다.김욱과 같이 온 사람은 단출한 셔츠에 엉킨 머리를 하고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한 허태준이었다.김욱은 설명했다.“허대표님의 차가 바로 아래에 있었어요. 오면서 마침 마주쳤어요.”육윤엽은 눈썹을 찌푸렸다.“이렇게 늦었는데 허대표님은 여기서 무엇을 하셨나요?”허태준은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그의 눈은 심유진의 몸에서 한시도 떨어질줄을 몰랐다.“마취약은 약효가 지났어?”그는 관심스레 물었다.“아직요.”심유진은 감각이 없는 오른쪽 다리를 흘끔 보고 또 허태준을 바라보면서 육윤엽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늦었는데 병원에는 무슨 일로 왔어요?”허태준은 늦어서 병원에 온 것이 아니라 여태 아래에 있었고 떠난 적이 없었다.어제 일은 너무나도 갑작스레 일어나 그가 파견한 사람들도 미처 낌새를 차리지 못했을 때 그녀는 이미 부딪혀 날아갔다. 암암리에 그녀를 보호하던 다른 사람들은 급급히 그녀를 차에 실어올렸다.그가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심유진은 이미 응급실에 있었다.허태준은 회의를 중단하고 시속 200을 달려 서너개 신호등을 가로지른 채 십여분만에 병원에 도착했다.지금도 그때 당시의 기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황급함, 공포감 그리고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 없는 오만가지 생각들. 그는 하나하나 부정을 하면서 달려왔다.다행히 그가 도착하자 마자 그녀가 위험에서 벗
”고객을 위해 응급실을 예약해 두고 떠나려던 찰나 아래에서 당신 사촌오빠를 만나서 몇마디 얘기를 했어. 당신이 깼다고 하면서 올라와 보라고 하네.’허태준은 김욱을 에돌아서 심유진의 침대곁으로 왔다.어제 김욱한테 문전박대를 당해서 그는 먼저 떠날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그녀의 가족이기도 하니 자신보다 그녀의 옆에 있을 자격이 있었고 의사와도 그녀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얘기할겸 먼저 떠났다.사고가 발생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그는 그녀를 처음 보는 것이다.의사한테서 그녀의 상처가 심하다는 것을 전해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여전히 큰 충격을 받았다.안타까움과 범인들을 능지처참시킬 분노가 섞여져 그의 얼굴에는 복잡하고 난해한 표정이 보여졌다.하지만 심유진의 주의력은 사촌오빠라는 단어에 집중되었다.“사촌오빠요?”이 칭호는 아빠라는 칭호보다 더 낯설었다.“누구요?”김욱은 죽을 침대옆 책상에 놓고 웃으면서 허태준을 대신해 대답했다.“나.”심유진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보고 육윤엽을 보았다.육윤엽은 그녀의 의혹에 답변을 해줬다.“김욱은 내 조수일뿐만 아니라 내 친조카이기도 해.”심유진은 고아와 마찬가지인 자신에게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많은 가족이 생길줄을 꿈에도 몰랐다.그녀의 지금 이시각 심정은 말로 형용할수 없었다.김욱은 죽을 꺼내와 심유진에게 먹이려 하였으나 손안에 든 죽과 수저 모두 허태준한테 뺏겼다.“제가 하죠.”그는 자연스레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한숟가락 뜨기도 전에 앞에서 불쾌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허태준이 머리를 들자 어두운 얼굴을 한 육윤엽이 보였다.“이리 줘.”육윤엽은 손을 내밀었다.허태준은 불만스러웠지만 미래의 장인어른을 불쾌하게 만들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네.”그는 양손으로 그릇을 들고 웃으면서 건넸다.심유진은 허태준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다.그녀는 생각했다. 블루스타가 국제상에서의 지위를 얕봤나?육윤엽은 자신을 세살짜리 어린애로 착각한듯 했다. 죽 한그릇을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먹였다. 한숟가락
아마도 무언가를 먹고 목도 축인 까닭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예전처럼 걸걸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숨이 차고 말을 빨리하지 못했다.“핸드폰이 연결이 안 되니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울뻔했어.”사실 별이는 이미 눈물이 터졌다. 전화를 하면서 숨이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 울었다. 말도 똑똑히 못 하고 부단히 물었다.“허삼촌, 엄마가 저를 버린 건가요?”—심유진이 그렇게 견결하게 자신을 미국으로 보내려 했고 이젠 연락도 되지 않으니 한창 예민할 나이인 5세 어린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하지만 허태준은 이런말을 심유진한테 할 턱이 없었다.“당신 걱정을 많이 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계속 물어.”심유진은 마음이 아팠다. 눈가가 붉어지더니 눈물이 흐를뻔 했다.그녀는 이를 악물면서 눈물을 도로 삼키고 허태준한테 물었다.“그래서 어떻게 대답해줬어요?”“외국에 출장 갔다고 했어. 조금 지나야 돌아온다고.”심유진의 마음은 그제야 조금 내려앉았다.“고마워요.”그녀는 진심으로 말했다.허태준은 웃으면서 말했다.“고맙긴.”그의 눈빛은 부드러웠고 말투에도 애정이 가득했다.심유진의 가슴은 찌릿해났다. 그녀는 황급히 눈을 피해 자신의 심장박동을 숨기려 했다.그녀는 부단히 자신한테 경고했다. 같은 곳에서 또 넘어지면 안 된다고.“하나 더 부탁해야 할 일이 있어요—”그녀는 머리를 짜내 겨우 화제를 돌렸다.“집에 고양이 두마리가 있는데 펫샵에 잠시 맡겨줄 수 있나요?”이제와 생각하니 그녀는 또 자책하기 시작했다—멀리 미국으로 떠나면서 그들을 한번 포기했고 이번에 또 잠시 포기해야 하다니.사람이었다면 아마 그녀를 죽도록 미워했을 것이다.“그래.”허태준은 바로 승낙했다.“집 비밀번호는...고양이 간식과 모래는 주방 캐비넷에 있으니 펫샵에 데리고 갈때 가지고 가도 돼요. 물론 펫샵에서 살수도 있고. 그리고 또...”심유진은 한참을 당부했다.다 설명을 하고 나니 허태준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육윤엽은 차가
심유진은 빙빙 돌려 말할 정력이 남아있지 않아 직접적으로 물었다.“사영은씨?”정답은 아닌듯 했다.육윤엽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흔들면서 부정을 했다.“아냐.”심유진의 예상밖이었다.귀국해서 그녀는 숨은 듯 조용히 살았다. 예전의 원수와의 접촉을 되도록이면 피했다.근래가 되어서야 별이때문에 화가 나 빅뉴스를 터뜨렸었다.“심연희야.”심유진이 묻기도 전에 육윤엽은 답안을 줬다.심연희...그렇다면 그녀의 추측도 얼추 맞은 셈이다.육윤엽은 조심스레 심유진의 표정을 관찰했다. 어떠한 슬픔과 실망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경찰에 이미 제압당했어.”이 모든것은 허태준 덕분이었다는 것을 육윤엽은 말하지 않았다.그의 사람들은 심유진을 병원에 데려가느라 급해서 범인을 제압할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 다른 차량이 달려와 심연희의 차량을 막아섰다.나중에 전해 들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 차량에 있던 사람은 허태준과 관련이 있었다.하지만 이 안건의 진전은 생각처럼 순리롭지 못했다.고의적으로 사람을 치어놓고 당장에 붙잡혔으니, 증거는 빼도 박도 못했다. 더군다나 심유진의 상처를 감안한다면 심연희는 감방에 들어가고도 남았어야 했다.하지만 심씨일가에서 받은 진단서에는 심연희가 엄중한 신경질환으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즉 최종 법정에 가게 된다고 해도 심연희는 높은 가능성으로 형사적인 책임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그는 진단서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품어 경찰에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였다. 안건 책임자는 심연희의 정신상태에 관해 전문적인 평가를 진행하겠다고 했으나 미리 예방주사를 놓았다.“평가결과는 아마도 실망만 안겨줄 겁니다...심사과정중의 표현으로 놓고 보면 아마 진짜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심연희는 자신의 복수가 성공을 했다고 생각해 미친듯이 열광했다. 누가 뭐라 해도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웃으면서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아가야, 엄마가 드디어 널 위해 복수를
이번 귀국행에 이렇게 많은 우여곡절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한평생 승진도 안하고 돌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옛말에 뱀한테 한번 물리면 동아줄만 봐도 뱀인줄 안다는 말이 있다.그녀는 뱀한테 이렇게 많이 물렸지만 매번 위험의 끝자락에서 들락날락했다—그녀도 자신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진짜로 무서웠다.여기에 더 머무르다가는 팔다리가 끊어지는 것처럼 간단하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목숨까지 빼앗길지도 모른다.“좋다!”육윤엽은 활짝 웃었다. 마음은 통쾌하기 그지없었다.몇시간만에 그는 평생 제일 어려운 두 과제를 해결했다.그는 몇백억짜리 계약을 성사한 것보다 더 기뻤다.심유진은 온몸에 중상을 입었으니 한참을 자도 정신은 또렷하지 않았다. 육윤엽과 얘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눈꺼풀이 무거워져 잠에 들었다.**심유진이 다시 깨어났을 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의사와 간호사의 위문과 검사였다.그녀는 심하게 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신체 각 기능도 정상적이었다.하지만 의사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심유진은 사고가 났을 때 머리가 바닥에 세게 부딪혔었다. 출혈은 심하지 않았지만 의사가 말하기를 내부손상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아마 후속적인 정밀검사가 필요할 것이다.“요즘 환자의 상태를 더 눈여겨보셔야 합니다.”그는 육윤엽과 김욱에게 당부했고 심유진한테도 잊지 않고 당부를 했다.“불편한 곳이 있다면—어지럼증이라 해도 즉시 저한테 알리셔야 합니다.”육윤엽은 시종일관 병실에서 그녀와 있어주었다.그의 몸도 좋지 않아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 일은 김욱한테 시켰다.혈연관계가 있다고 해도 심유진과 김욱의 사이는 친하지 않았다. 그래서 심유진은 김욱한테 많은 신세를 졌다고 불편해했다.“시터를 쓸까요?”그녀는 제의를 했다.한쪽으론 두사람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고 다른 한쪽으론...그녀도 여자이니 두 남자가 보살펴주는 것에는 그래도 불편함이 있었다.김욱도 같은 생각인지 그녀에게 오십대 되는 여성 시
허태준은 요즘 억울하기 그지 없었다.그는 자신이 어떻게 육윤엽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몰랐다. 심유진의 위문리스트중 블랙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이다. 매번 신이 나서 병원에 가면 각종 이유로 김욱한테 제지당했다.어쩔수 없이 그는 낡은 수법을 썼다—시터를 구해준다는 명의로 심유진의 병실에 자신의 눈이 되어줄 사람을 심는 것이었다.진아주머니는 매일 허태준한테 심유진의 몸 상태에 대해 보고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만족을 하지 못했다.어쩔수 없이 그는 여형민한테 도움을 요청했다.“심유진을 만날수 있는 정당한 명목을 생각해 줘.”허태준은 심유진한테 식사배달, 핸드폰 배달, 별이의 소식을 전해주는 등 각종 방법으로 도전을 해봤지만 매번 김욱한테 제지당해 대신 전달해 주겠다는 얘기만 들었다.“심유진을 보러 가는 게 제일 정당한 이유 아냐?”여형민은 그녀의 고민에 동감을 표하지 못했다. 사실—“나는 어제 심유진을 만나봤거든. 알고 있었어? 그 YT그룹과 합작한다는 블루스타항공에 육책임자가 심유진의 친아버지래! 이 세상은 놀라운것 투성이야. 벙쪘다니까...”여형민은 흥분에 겨워 한참을 말했으나 허태준은 한마디도 듣지 않았다.“어제 심유진을 보러 갔다고? 병실에 들어갔다고?”그는 여형민을 빤히 쳐다보았다. 긴장해서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까먹었다.“당연히 들어갔지.”여형민은 허태준의 바보 같은 질문에 황당해했다.“심유진이 중증환자 간호실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못 들어갈 건 또 뭐야?”허태준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육 씨 집안사람들이 너를 들여보냈다고?”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여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심유진의 친구라고 하니까 막지 않던데. 심유진씨 아버지랑 사촌오빠는 다 좋아 보이던걸. 나랑 한참을 얘기했어. 심유진을 보살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이제 심유진이 퇴원을 하게 되면 식사를 대접하겠다고.”허태준은 더욱 억울했다.억울함과 동시에 화가 났다.똑같이 심유진의 친구인데 왜 대우는 그와 여형민이 천차만별일까?
아마도 병실에 오래 있은 탓인지 심유진은 사람을 만나기 좋아했다.그녀가 차 사고를 당해 다쳐서 입원했다는 소식은 호텔에 퍼졌다. 간혹가다가 사람들이 문안을 왔지만 매번 김욱한테 제지를 당했다.그녀의 몸은 안정을 취해야 하는 게 맞지만 너무 안정해서 무료했다.이런 와중에 여형민은 육윤엽과 김욱이 심사숙고한 끝에 유일하게 들여보내져 그녀와 대화를 할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래서 그녀는 여형민을 보자 눈에서 빛이 반짝반짝 났다.“하이!”그녀는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진심으로 우러나온 미소였다. 육윤엽과 김욱은 어쩐지 질투가 났다—그녀는 그들과 있을 때 한 번도 이렇게 기뻐한 적이 없었다.육윤엽은 조용히 결정을 했다.앞으로는 여형민의 위문횟수도 줄여야겠다고.“오늘은 안 바빠요?”심유진은 진아주머니한테 눈치를 줬다. 진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심유진의 침대를 높여줬다.다행히 그때의 사고에서 심유진은 허리를 다치지 않아 처음 며칠 아픔이 지나간후 누워만 있기 싫어 가끔은 앉아서 그들과 같이 티비도 보고 담소도 나눴다.“안바빠.”여형민은 제집에 온 듯 쇼파에 앉았다.“금방 맡고 있던 안건을 끝마쳐서 요즘 할 일이 별로 없어.”그는 육윤엽한테 물었다.“육책임자님은요? 업무를 보러 가지 않아도 되나요?”허태준한테 듣기로 육윤엽은 하루 24시간 동안 심유진 옆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그렇기 때문에 허태준은 슬쩍 들어올 기회조차 없었다.“유진이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육윤엽은 머리를 숙여 부드럽게 심유진을 바라보면서 입가에는 자상한 미소를 띠웠다. 딸바보가 따로 없었다.심유진은 얼굴이 뜨거워났다. 가슴속에는 뜨거운 무엇인가가 꿈틀대고 있었다.병실 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다.사람들은 소리를 따라 바라보았다. 여형민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김욱보다 먼저 일어서면서 말했다.“제가 문을 열어볼게요.”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한참을 기다린 허태준이었다.육윤엽의 얼굴색은 변했다. 김욱도 덩달아 긴장했다. 그는 급히 문어구쪽에 다가가 허태준을 막아 나서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