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이 레포트를 열자마자 조수가 황급히 들어와서 보고를 했다.“사영은씨가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사람과 논쟁을 벌였습니다!”사영은이 얼마나 까다롭고 말을 얄밉게 하는지는 심유진이 제일 잘 알았다. 그녀가 누구와 일을 일으켰든 지간에 사람들이 보기에 좋지는 않을 것이다.심유진은 마우스를 던지고 급히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그녀가 도착하기도 전에 저 멀리서 사영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심유진은 사영은과 같이 있던 남자를 똑똑히 보았다.오래도록 그리고 바랐던 아버지가 이런 방식으로 그녀의 앞에 나타날 줄이야.육윤엽과 마음의 소리까지 호소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는데 지금 이 시각 그녀는 한발자국도 떼지 못했다.엘리베이터입구에 있던 세 사람은 아직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육윤엽은 힐을 신은 사영은보다 조금 작았다. 하지만 기세에서는 사영은을 압도했다.“사영은.”그는 냉소하면서 말했다.“곱게 죽지 못한다고 했나. 아무래도 당신이 나보다 먼저일걸.”사영은은 지금 육윤엽의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그녀의 인상속에 육윤엽은 다소곳하고 그녀의 말이라면 끔뻑 죽는 뱃일하는 사람일 뿐이었다.그녀가 그에게 시집을 간 것도 사영은이 알고 있는 보통남자중에서 육윤엽은 제일 말을 잘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그녀는 그의 풍자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옛적 자신의 발아래에 있던 노비가 지금은 높은 육매니저가 되어 그녀를 진흙구덩이에 밀어 넣는 모습을 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억울함과 분노가 가슴에 쌓여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사영은은 홧김에 예전에 화날때 그한테 했던것마냥 육윤엽의 뺨을 떄리려 했다.하지만 그녀의 손은 누군가에게 잡혔다.육윤엽옆의 건장한 남성이 차가운 얼굴을 한 채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힘은 세서 그녀의 뼈를 끊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아!”사영은은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 정교한 얼굴은 구겨지고 표정은 일그러졌다.육윤엽이 고개를 흔들자, 김욱은 그녀의 손을 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화가 난 모습
들어오라고 할까?심유진은 자신한테 물었다.그녀는 지금 그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아니, 그녀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 있고 싶었다.하지만 그녀는 육윤엽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의 신분중 그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킹호텔의 귀객인 것이다.“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조수가 나간 뒤 심유진은 바닥에서 마우스를 집었다.마우스의 배터리는 커버와 같이 빠져나갔다. 겉면에는 깨진 흔적이 보였다.심유진은 짜증이 나서 낮은 소리로 욕을 한마디 하고는 손안의 모든 물건을 휴지통에 버렸다.문은 다시 열렸다.육윤엽은 김욱과 앞뒤로 들어왔다.심유진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육윤엽의 얼굴을 보자 몸은 경직되었고 가슴도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육윤엽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긴 숨을 들이마신후 입가에 담담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물었다.“육선생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육윤엽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뜨거운 눈빛이 아니었지만 무시를 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YT그룹과 계약을 다 체결했습니다. 미국에 일을 보러 가야 할 것 같아요.”그는 말했다.“네?”심유진은 당황했다.금방 이 사람이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두사람은 아직 얘기를 다 나누지 못했는데 곧 이별이라니. 그녀는 아쉬웠다.하지만 만류하려는 말을 할수가 없었다.제일 중요한것은—그녀는 만류할 이유가 없었다.육윤엽이 그녀의 존재에 대해 알든 알지 못하든 방금 전에 사영은이 콕 집어 얘기를 했지만 그는 그녀와 툭 털어놓고 얘기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유년시절의 경험은 심유진더러 친정을 갈망하게 했다. 하지만 바랄수 없었다.그녀는 주동권을 육윤엽에게 맡겼다.그가 모른 척하려고 한다면 그녀도 한평생 아는 척하지 않으리라.“네.”심유진은 냉정해지려 애를 썼다. 그리고 사무적인 말투로 물었다.“언제 떠나시려구요? 공항까지 차를 안배해 드릴까요?”“내일 아침 일찍 떠나려구요. 차는 필요 없습니다. 다만 오
마술에 걸린것마냥 육윤엽은 얼어붙었다. 두눈은 크게 떠졌고 그 자리에 그대로 경직되었다.그는 자신의 심정을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촉박하고 당황하였으며 약간의 희열과 기대가 있었다.그는 겨우 자신을 가라앉혔다. 입가에 미소는 유난히 경직되어 보였다.“저를 아버지로 생각하셔도 됩니다.”그는 뜨거운 눈빛으로 심유진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심유진은 이런 시험이 싫었다.그녀가 딸이라는 것을 인정하거나 하지 않거나.그녀는 이렇게 암암리에 찔러대는 행동에 배척감을 보였다.그녀가 그에게 쌓은 호감도 무마시켰다.“아니에요.”그녀는 눈길을 돌려 웃으면서 말했다.“그래도 충고는 고맙네요.”그녀에게 바로 거절당하자 육윤엽은 조금 실망했다.하지만 감정을 드러낼 수가 없어 멋쩍게 웃고 넘어갔다.“가봐야겠어요.”그는 일부러 팔목의 시계를 보고 말했다.“이따가 영상회의가 있어서요.”심유진은 입술을 핥고는 같이 일어섰다.“바래다드릴게요.”“아니예요.”육윤엽은 그녀를 막았다. 그리고 떠나기 전 되돌아서 귀띔을 했다.“저녁을 잊지 말아요.”심유진은 겁이 났다.그녀는 육윤엽과 단둘이 있고 싶지 않았다. 허위적인 가면을 쓰고 시답잖은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조수한테 전화를 걸었다.“오늘저녁에 중요한 일정이 있었나요?”—이왕이면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는 그런 일정이었으면 좋겠다.조수의 대답은 그녀를 실망시켰다.“없습니다. 심매니저님.”“그럼 오늘저녁으로 앞당길 수 있는 일정은요?”심유진은 마음을 접지 못하고 물었다.조수는 노트를 펼쳐보면서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없습니다.”심유진은 전화를 끊었다.**온오후 심유진은 정신을 가다듬지 못했다. 넋이 나간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조수는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었다.“심매니저님, 어디 불편하신가요? 병원에 가보시겠어요?”병원이라는 단어는 심유진의 정신을 되돌려 놓았다. 두눈은 밝게 빛이 났다.“머리가 아프네요. 조금 이따가 병원에 가봐야겠어요.”그녀는 신속히 모든 파일을 저장
심유진은 그 차와 등을 지고 있었다. 그녀는 엔진소리가 들리자마자 뒤를 바라보았지만 이미 늦었다.대략 삼십초 정도 지났을까, 심유진은 엎드린 자세로 바닥에 쓰러졌다. 사지는 아파서 감각을 잃은 것 같았고 오장육부도 자리를 이동한 것 같았다.비명소리가 귓가에 전해졌다.뜨거운 무엇인가가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심유진은 눈앞이 까맣게 변한채 기절해 버렸다.그녀는 얼마나 혼미를 했는지 몰랐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고 빛 한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한순간 그녀는 시력을 잃은 줄 알았다.다행히 그녀의 두눈은 점차 암흑에 적응되었고 천장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지독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러 그녀는 병원에 누워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목을 움직여 주위의 환경을 둘러보려 하였으나 뼈를 쑤시는 고통이 사지에 전해졌다.“쓰읍—”그녀는 숨을 들이마셨다.이윽고 옆에서 흥분과 긴장에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유진아, 깼니?”사람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심유진은 분별할수 있었다.“육선생님?” 그녀의 목은 말라서 갈라진 소리가 났다.“팟.”육윤엽은 침대머리에 스위치를 켰다.하얀색 불빛이 온 병실을 밝혔다.심유진은 그제야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오른다리는 꽁꽁 싸매져 높이 들려졌고 목에는 고정을 위해 무언가가 쓰여져 있었다.아마도 그 차사고에서 꽤나 다쳤나보다.“어디 불편한 곳은 없고?”육윤엽은 간호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끌면서 다가왔다. 그리고 관심스레 물었다.그의 안색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피곤함에 찌든 것 같은 모습을 보니 여기에서 꽤나 오래 지냈나 보다.심유진은 물었다.“어떻게 여기에 계세요?”육윤엽은 멈칫했다.“나는...”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걱정이 되어서.”심유진의 마음속의 기대감은 조금씩 사라졌다. 그리고 무력감으로 대체되었다.“아직도 저한테 솔직하게 얘기하기 싫으신 건가요?”그녀는 더 이상 모르는척하기 싫었다.아마도 사람은 아플때 정신이 더욱 연약해지나 보다. 심유진은
”그럼 왜...”심유진의 목구멍은 이물에 막힌 것 같았다. 침을 삼키기조차 어려웠다. 그녀는 가쁘게 숨을 쉬여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 대응하였다.“나는...”육윤엽은 그녀의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은 목소리로 마음속에 숨겨둔 말을 꺼냈다.“네가 날 미워할까 봐.”그의 눈빛은 어두웠다. 불안도 섞여 있었다.심유진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는 한 치의 거짓 없이 진실되어 보였다.그녀는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눈물이 점차 멈추자 호흡도 순리로워졌다.“저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요.”그녀의 목소리는 가벼웠다. 하지만 천만근 되는 것처럼 육윤엽의 가슴을 짓눌렀다.그는 몸을 떨었다. 그녀의 손을 잡은 손은 멈출 새 없이 떨렸다.“유진아...”그의 입술은 움직였다. 눈가는 눈물로 가득찼다.심유진의 대답은 육윤엽의 예상밖이었다. 이사각 그는 기쁜 나머지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그는 그녀를 품에 안아 잃어버린 세월을 위로해 주고 그녀를 예뻐해 주고 싶었으나—그녀의 허약한 모습은 시시각각 그를 일깨우고 있었다. 그녀를 다치게 한 사람들로 하여금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육윤엽의 눈빛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심유진은 멈칫했다.하지만 이내 그는 정상적으로 돌아왔다—마치 방금 그 순간은 그녀의 착각인양.“아빠가 미안하구나.”육윤엽은 고개를 숙이고 미안해하면서 말했다.그의 입에서 나온 아빠라는 칭호는 두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죄송해할것 없어요.”심유진은 육윤엽이 자신을 포기한 것에 대해 탓한 적이 없었다—그의 존재를 알기 전에 그녀는 줄곧 그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그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고충이 있으셨다고 생각해요.”그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가정이 풍비박산이 난 이유는 아마도 허영심에 가득 찬 엄마때문일것이라고.육윤엽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일 것이라고.심유진의 이해는 육윤엽의 마음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그가 눈을 깜빡하자 눈물이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는 고충이 있었다.그는 당연히
아니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그는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조차 몰랐다. 정신이 나간 채 몸만 돌아다닌 것 같았다.“배는 안고파? 김욱이더러 먹을 것을 사오라고 할게.”육윤엽은 말하면서 핸드폰을 꺼냈다.“아니예요!”심유진은 다급히 제지시켰다.“입맛이 없어요.”너무 심하게 다친 탓인지 그녀의 소화시스템까지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하루종일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아 배가죽이 등 뒤에 붙을 지경이지만 그녀는 아무런 음식에도 관심이 없었다.“그래도 뭐라도 먹어야지.”육윤엽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김욱한테 전화를 했다.반시간후 김욱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을 두그릇 들고 왔다.김욱과 같이 온 사람은 단출한 셔츠에 엉킨 머리를 하고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한 허태준이었다.김욱은 설명했다.“허대표님의 차가 바로 아래에 있었어요. 오면서 마침 마주쳤어요.”육윤엽은 눈썹을 찌푸렸다.“이렇게 늦었는데 허대표님은 여기서 무엇을 하셨나요?”허태준은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그의 눈은 심유진의 몸에서 한시도 떨어질줄을 몰랐다.“마취약은 약효가 지났어?”그는 관심스레 물었다.“아직요.”심유진은 감각이 없는 오른쪽 다리를 흘끔 보고 또 허태준을 바라보면서 육윤엽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늦었는데 병원에는 무슨 일로 왔어요?”허태준은 늦어서 병원에 온 것이 아니라 여태 아래에 있었고 떠난 적이 없었다.어제 일은 너무나도 갑작스레 일어나 그가 파견한 사람들도 미처 낌새를 차리지 못했을 때 그녀는 이미 부딪혀 날아갔다. 암암리에 그녀를 보호하던 다른 사람들은 급급히 그녀를 차에 실어올렸다.그가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심유진은 이미 응급실에 있었다.허태준은 회의를 중단하고 시속 200을 달려 서너개 신호등을 가로지른 채 십여분만에 병원에 도착했다.지금도 그때 당시의 기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황급함, 공포감 그리고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 없는 오만가지 생각들. 그는 하나하나 부정을 하면서 달려왔다.다행히 그가 도착하자 마자 그녀가 위험에서 벗
”고객을 위해 응급실을 예약해 두고 떠나려던 찰나 아래에서 당신 사촌오빠를 만나서 몇마디 얘기를 했어. 당신이 깼다고 하면서 올라와 보라고 하네.’허태준은 김욱을 에돌아서 심유진의 침대곁으로 왔다.어제 김욱한테 문전박대를 당해서 그는 먼저 떠날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그녀의 가족이기도 하니 자신보다 그녀의 옆에 있을 자격이 있었고 의사와도 그녀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얘기할겸 먼저 떠났다.사고가 발생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그는 그녀를 처음 보는 것이다.의사한테서 그녀의 상처가 심하다는 것을 전해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여전히 큰 충격을 받았다.안타까움과 범인들을 능지처참시킬 분노가 섞여져 그의 얼굴에는 복잡하고 난해한 표정이 보여졌다.하지만 심유진의 주의력은 사촌오빠라는 단어에 집중되었다.“사촌오빠요?”이 칭호는 아빠라는 칭호보다 더 낯설었다.“누구요?”김욱은 죽을 침대옆 책상에 놓고 웃으면서 허태준을 대신해 대답했다.“나.”심유진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보고 육윤엽을 보았다.육윤엽은 그녀의 의혹에 답변을 해줬다.“김욱은 내 조수일뿐만 아니라 내 친조카이기도 해.”심유진은 고아와 마찬가지인 자신에게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많은 가족이 생길줄을 꿈에도 몰랐다.그녀의 지금 이시각 심정은 말로 형용할수 없었다.김욱은 죽을 꺼내와 심유진에게 먹이려 하였으나 손안에 든 죽과 수저 모두 허태준한테 뺏겼다.“제가 하죠.”그는 자연스레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한숟가락 뜨기도 전에 앞에서 불쾌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허태준이 머리를 들자 어두운 얼굴을 한 육윤엽이 보였다.“이리 줘.”육윤엽은 손을 내밀었다.허태준은 불만스러웠지만 미래의 장인어른을 불쾌하게 만들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네.”그는 양손으로 그릇을 들고 웃으면서 건넸다.심유진은 허태준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다.그녀는 생각했다. 블루스타가 국제상에서의 지위를 얕봤나?육윤엽은 자신을 세살짜리 어린애로 착각한듯 했다. 죽 한그릇을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먹였다. 한숟가락
아마도 무언가를 먹고 목도 축인 까닭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예전처럼 걸걸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숨이 차고 말을 빨리하지 못했다.“핸드폰이 연결이 안 되니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울뻔했어.”사실 별이는 이미 눈물이 터졌다. 전화를 하면서 숨이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 울었다. 말도 똑똑히 못 하고 부단히 물었다.“허삼촌, 엄마가 저를 버린 건가요?”—심유진이 그렇게 견결하게 자신을 미국으로 보내려 했고 이젠 연락도 되지 않으니 한창 예민할 나이인 5세 어린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하지만 허태준은 이런말을 심유진한테 할 턱이 없었다.“당신 걱정을 많이 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계속 물어.”심유진은 마음이 아팠다. 눈가가 붉어지더니 눈물이 흐를뻔 했다.그녀는 이를 악물면서 눈물을 도로 삼키고 허태준한테 물었다.“그래서 어떻게 대답해줬어요?”“외국에 출장 갔다고 했어. 조금 지나야 돌아온다고.”심유진의 마음은 그제야 조금 내려앉았다.“고마워요.”그녀는 진심으로 말했다.허태준은 웃으면서 말했다.“고맙긴.”그의 눈빛은 부드러웠고 말투에도 애정이 가득했다.심유진의 가슴은 찌릿해났다. 그녀는 황급히 눈을 피해 자신의 심장박동을 숨기려 했다.그녀는 부단히 자신한테 경고했다. 같은 곳에서 또 넘어지면 안 된다고.“하나 더 부탁해야 할 일이 있어요—”그녀는 머리를 짜내 겨우 화제를 돌렸다.“집에 고양이 두마리가 있는데 펫샵에 잠시 맡겨줄 수 있나요?”이제와 생각하니 그녀는 또 자책하기 시작했다—멀리 미국으로 떠나면서 그들을 한번 포기했고 이번에 또 잠시 포기해야 하다니.사람이었다면 아마 그녀를 죽도록 미워했을 것이다.“그래.”허태준은 바로 승낙했다.“집 비밀번호는...고양이 간식과 모래는 주방 캐비넷에 있으니 펫샵에 데리고 갈때 가지고 가도 돼요. 물론 펫샵에서 살수도 있고. 그리고 또...”심유진은 한참을 당부했다.다 설명을 하고 나니 허태준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육윤엽은 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