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이 이런 오지랖을 부린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일단 전도연을 걱정한 것도 있지만 사실 약간의 사심도 있었다. 가족들이 자신에게 못되게 군건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별이까지 건드렸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호텔에서 일하는 동안 심유진도 많은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인맥을 쌓았었다. 심유진은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쁜 사람이었기에 연결음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언니, 어쩌다 나한테 전화를 다 걸어?”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바빠? 시간 내서 경주에 잠깐 들려줄 수 있어? 부탁할 일이 있는데 해줄 수 있나 해서.” 심유진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다음날 오후, 허태준이 회의를 마쳤을 때는 이미 세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일할 때 사용하는 휴대폰은 계속 매니저에게 맡겨둔 상태였는데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매니저를 만나자마자 그가 다급히 휴대폰을 건넸다. “대표님, 전화가 몇 번이나 울렸습니다.” 비록 업무용 휴대폰이긴 했지만 허태준의 허락 없이는 매니저도 함부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부재중 전화는 전부 같은 번호였다. 몇 번 봤던 번호였기에 허태준도 익숙했다. “메시지도 온 것 같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가장 우에 원재가 보낸 영상메시지가 보였다. 허태준은 사무실에 와서야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에서 허아리는 양손과 다리가 묶인 채로 더러운 구석 쪽에 앉아있었다. 집에서 예쁘게 묶었었던 머리는 이미 엉망이 된 상태였다. 허아리의 눈에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했다. “아빠!” 허아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아빠 나 너무 무서워. 제발 구해줘.” 허태준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영상을 끄고 매니저에게 말했다. “저 지금 퇴근할 테니까 일정 다 뒤로 미뤄주세요.” 허태준은 바로 구치소로 갔다. 가는 길에 원재가 몇 번이나 전화를 걸고 협박하는 메시지도 보냈지만 허태준은 신경 쓰지 않으며 휴대폰을 차 뒷좌석에 던져버렸다. 안 본 사이 정소월은
정소월이 허태준의 손을 잡으려고 했으나 허태준이 신속히 피했다. “미안.” “심유진 때문이야? 심유진 때문이지!” 정소월의 표정이 싹 변했다. “분명 그 년이 너한테 입을 나불거렸을 거야. 믿지 마! 다 거짓말이야! 못된 년이라고.” 할 말이 남은 게 아니었다면 허태준은 당장 일어나서 나가버렸을지도 모른다. 정소월과 함께 있으면 주변 공기마저 더러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허태준은 화를 간신히 참으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오늘은 이것 때문에 왔어.” “뭔데?” 허태준은 영상을 정소월에게 보여줬다. 정소월은 살짝 움찔했을 뿐 전혀 보통의 엄마들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조금 지나서야 정소월은 큰소리로 물었다.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납치당했어. 납치법은 1억을 요구하고 있고.” “그럼 얼른 구해야지!” 정소월이 다급하게 말했다. “1억 정도는 충분히 있잖아.” 허태준이 잠시 멈칫하다가 목소리를 깔았다. “없어.” “거짓말!”정소월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럴 리가 없잖아. CY가 얼마나 큰 회산데! 네 몸값도 어마어마하다며.” “아니.” 허태준이 손으로 얼굴을 쓸며 한숨을 쉬었다. “투자에 실패해서 돈을 많이 잃었어.” “그럼 우리 애는 어떡해? 그냥 죽게 내버려 둬? 친딸이잖아!” 정소월이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너 이렇게 독한 사람이었니?” “미안해, 너한테도 미안하고 아이한테도 미안해. 다음생에는 나 같은 사람 만나지마.” 허태준은 정소월이 대답하기도 전에 방에서 나왔다. 방문을 닫자마자 허태준은 표정이 싹 변했다. “들어가 보세요.” 허태준이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교도관에게 말했다. 허태준의 기사는 교도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이제 어디로 갈까요?” “주변에 숨어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죠.” 허태준은 차창밖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기사님은 차를 사람이 오가지
허태준은 원재의 전화번호를 차단하고 나서야 오후동안 조용히 지낼 수 있었다. 근데 새벽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너 솔직히 말해. 아이 납치됐니?”어머니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허태준은 허태서 때문에 알게 되었을 것이라 추측했다.“네.”허태준은 부정하지 않았다.“언제?”어머니의 목소리가 더 떨렸다.“어제요.”납치범에게서 전화가 온 그날밤에 허태준은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허아리는 계속 어머니와 함께 있었는데 가정부가 유치원에서 아이를 못 봤다고 하니 당연히 초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허태준은 납치됐다는 얘기는 안 하고 억지스러운 거짓말을 했다.“데려와서 며칠 같이 있으려고요.”어머니는 의심을 하기는커녕 굉장히 기뻐했다. 줄곧 부녀지간에 더 감정을 쌓고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지금 당장 돌아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어머니가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 허태준도 지체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거실에 앉아계셨다. 허태준이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어머니는 벌떡 일어서셨다. 아버지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침착하게 허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니?”허태준은 거실 중앙에 앉았다.“허아리가 납치됐고 납치범은 1억을 요구하고 있어요.“1억?”어머니가 눈을 크게 떴다.“정말 뻔뻔하구나.”아버지도 분노한 듯했다.“줄 생각 없어요.”“뭐? 그럼 그냥 아이가 죽게 내버려 둘 거니?”어머니는 화가 나면서도 허태준에게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아이를 싫어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자기 딸에게 이렇게 독하게 굴 수 있니.”“그 정도 돈을 못 내놓는 것도 아니고.”아버지도 말을 보탰다. 그들의 불만을 들으면서도 허태준을 줄곧 침착했다.“허아리는 제 딸이 아니에요.”허태준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으려면 부모님께 진실을 알려드려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그럴리가 없다!”어머니가 부정했다.“유전자 검사도 해봤는데 확실히 친딸이 맞다고 했어.”허
하지만 어머니가 검증할 때는 조작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정소월이 날 속였어.”어머니의 얼굴이 붉어졌다.“용서 못해.”“됐어.”아버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가 허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허아리가 네 딸이 아니어도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야. 그동안 같이 지내면서 정도 쌓였는데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게다가 납치된 것도 다 너 때문이잖아.”“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허태준이 말했다. 아버지는 허태준이 하는 일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네가 그렇게 말하니 우리는 걱정하지 않으마.”아직도 분노에 차있는 아내를 보며 아버지가 안경을 벗고 태양혈을 주물렀다. “나 피곤해.”아버지는 어머니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우리는 이만 쉴게. 시간도 늦었는데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렴.”하지만 허태준은 남지 않았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집에 있으면 불편했다. 최준 쪽에서 연락이 왔다. 원재는 오후에 돈을 받지 못하자 정남일을 만나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모르겠지만 안색이 좋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들은 원재가 사라진 틈을 타 집안에 잠입해 들어갔다. 원재는 허아리에게 무슨 약을 먹여 잠들게 한 것 같았다. 다행히 심장이나 맥박은 모두 정상이었고 생명에 위협은 없었다. 경찰은 방안에 cctv를 몇 개 설치해서 허아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제때에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허태준이 원재를 차단한 것도 이러한 보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재가 밤에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취했는지 아이를 때리고 있습니다.” 최준이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그래도 진입하지 말까요?” 허태준은 최준이 많이 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경찰로서 약자가 당하고 있는걸 보기 힘든 게 당연했다. 보지 않아도 원재가 얼마나 독하게 아이를 때리고 있을지가 눈앞에 그려졌다. “들어가지 마세요. 원재는 허아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테니까.”
납치 사건이 생기고 나서 여형민은 한 번도 심유진을 찾아오지 않았다. 심유진은 객실을 한 바퀴 점검할 때에야 여형민이 이미 체크아웃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형민이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니 납치 사건은 어떻게 됐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심유진은 며칠 동안 뉴스도 열심히 봤지만 뉴스에도 납치 관련 소식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뉴스에는 안 뜨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심유진은 점심에 공항에 마중을 갈 일정이 있었는데 회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예정시간보다 반시간이나 늦게 왔다. 심유진은 문자로 사정을 설명하면서 얼른 달려갔다. 그러다가 1층 로비에서 마침 호텔로 돌아오고 있던 육윤엽을 마주쳤다. 육윤엽은 말끔한 정장차림이었다. “일 보고 오시는 길이세요?” 육윤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YT그룹이랑 얘기를 나눴는데 협상이 잘 안 되네요.” 육윤엽은 다급해 보이는 심유진의 모습을 보며 물었다. “이렇게 급하게 어디 가세요?” “공항에 손님 모시러 가요.” 심유진이 시간을 확인했다. “회의가 늦게 끝나서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요.” “김비서보고 데려다 달라고 하죠. 마침 김비서도 공항에 가야 할 일이 있거든요.” 육윤엽이 눈짓하자 김욱이 얼른 대답했다. “차는 입구에 세워놨습니다.” 심유진은 요즘 계속 자기 차가 아닌 기사님 차로 출퇴근을 했었다. 그러니 지금 기사님에게 연락을 해도 한참 기다려야 할 것이고 이 시간에는 택시도 잘 잡히지 않기에 육윤엽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럼 신세 좀 질게요.” 심유진은 김욱과 친하지 않았기에 가는 길 내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반쯤 갔을 무렵 손님은 이미 경주에 도착했다. 심유진은 만날 장소를 정해두고 여러 번 다시 사과했다. 김욱은 최대한 빨리 공항에 도착했다. 심유진이 성공적으로 손님을 만나고 이제 택시를 타고 가려는데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손님은 만나셨어요? 아까 내렸던 곳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심유진은 조금 놀랐다. “처리하실
“그러시군요.” 김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가연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니, 호텔 영업 관련해서 도와주면 돼?” 심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복잡해. 이따가 도착해서 얘기해 줄게.” 임가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차에서 내릴 때 김욱은 임가연에게 명함을 요구했다. 이유는 굉장히 타당했다. “회사에 마케팅해야 할 일이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심유진은 사비로 임가연에게 스위트룸을 예약해 주고 룸서비스도 불러줬다. 배불리 먹고 나서 임가연은 소파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언니 그냥 얘기해.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조건 해줄테니까.” 심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빅뉴스가 있는데 터뜨려줬으면 해서.” 반시간뒤 임가연은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 이걸 터뜨리라고?” 임가연은 마음이 복잡해 보였다. “언니, 잘 생각해야 돼. 언니한테도 영향이 클 거야.” “다 생각해보고 하는 말이야.” 심유진은 침착했다. “글은 내가 써서 보내줄게. 자료도 다 첨부했어. 너네 회사의 모든 매체에 올려줬으면 좋겠어. 가격은 네가 말하는 대로 지불할게.” “돈은 필요 없어.” 임가연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평소의 커리어우먼으로 돌아왔다. 심유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안돼.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거래를 하자는 거야. 그냥 너네 회사 규정대로 돈 받아.”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임가연은 손을 저었다. “이 정도 기사면 우리 회사에도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킬 거야. 회사 규정에 따르면 오히려 내가 돈을 지불해야 돼.” 비록 임가연이 이렇게 말했지만 심유진은 여전히 빚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계약서를 쓸 때 회사 쪽 마케팅도 임가연네 회사에 맡겼다. 엔젤 엔터는 sns가 흥하기 시작할 때 얼른 그쪽을 파고들어 사업을 시작한 회사였다. 그러니 마케팅이나 홍보에 있어서는 굉장히 전문적이었다. 심유진이 기사 초안을 작성하고 임가연은 그걸 수정한 뒤 회사에 돌렸다. 하루밤사이에 당신이 모르던
”대표님, 누가 찾아왔는데…“ 심유진이 금방 손님과 얘기를 나누고 돌아오는데 매니저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녀를 불러 세웠다. 표정이 굉장히 난감해 보였다. “누군데요?” 심유진은 불안함에 발걸음을 멈추고 경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요즘 유명해진 사영은 씨요.” 매니저는 잠시 멈칫하더니 궁금해하며 물었다. “혹시 아는 사이세요?” 심유진은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왜 찾아왔대요?” “모르겠어요. 굉장히 화가 난 것 같은 모습이긴 했어요.” 사영은이 매니저에게는 나긋나긋하게 얘기하긴 했지만 매니저도 눈치가 있었기에 사영은의 기분 정도는 단번에 읽어낼 수 있었다. 심유진은 사영은이 그 글 때문에 온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이런 날이 언젠가 올 거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사영은이 갑질이 심하고 허위적인 사람이라는 건 연예계에 종사했던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딸을 학대했다는 건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진짜 학대를 당했던 심유진밖에 모르는 사실이었다. 가족들은 사영은이 복귀해서 돈을 벌어오기를 바라고 있으니 이런 폭로를 했을 리가 없고 그렇다면 그 범인은 심유진일 수밖에 없었다. 심유진은 길게 한숨을 쉬고는 매니저에게 말했다. “경호원들을 사무실 밖에 대기시켜 주세요. 혹시 사무실 안이 너무 소란스럽다 싶으면 경호원들을 데리고 바로 들어오시고요.” ”아…“ 매니저는 놀란 눈치였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물어볼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심유진은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사영은은 소파에 앉아있었고 탁자에는 이미 다 식은 물 한잔이 놓여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사영은이 고개를 돌렸다. 심유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녀는 씩씩거리며 일어났다. “네가 한 짓이지?” “네?” 심유진이 모르는 척했다. 이미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이런 상황을 상상해서 그런지 눈앞에 화가 잔뜩 난 사영은이 있는데도 전처럼 두려운 감정이 들지 않았다. “모르는 척하지 마.”
“넌 벌 받을 거야.” 심유진 곁을 지나며 사영은이 저주했다. 심유진이 차갑게 웃었다. “당신이 아직 벌을 안 받았잖아. 내 벌은 아직 멀었어.” 사영은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영은이 가자마자 매니저가 황급히 달려왔다. “대표님, 괜찮으세요?” 매니저는 걱정하며 심유진을 살폈다. “괜찮아요.” 심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사영은 씨가 또 오시면 그냥 경호원들을 불러서 내쫓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한편 사영은은 분이 덜 풀려 호텔 엘리베이터 버튼을 내리치며 화풀이를 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년! 내가 저 년을 낳지 말았어야 해!” 사영은이 분을 삭이고 있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꼭대기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영은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려다가 안에서 나오는 사람과 부딪히고 말았다. “아!” 사영은이 부딪힌 이마를 문지르며 고개도 들지 않고 큰소리부터 쳤다. “눈 똑바로 안 뜨고 다녀?” “죄송한데 눈 똑바로 안 뜨시고 부딪히신 분은 그쪽이시거든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화장품이 제 옷에 묻었어요.” 사영은은 비록 가정 내에서는 일부러 자세를 낮췄지만 밖에 나가면 모두가 그녀를 떠받들어줬었다. 근데 오늘 두 명이나 자신을 깔보니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얼만데? 배상하면 될 것 아니야.” 사영은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상대방 얼굴에 뿌렸다. 지폐들이 공중에 흩뿌려졌다. “죄송하지만 이 정도 돈으로는 안 돼요. 없으시면 됐어요. 어차피 배상해 달라고 할 생각도 아니었으니까.” “너!” 사영은이 그를 노려봤다. 키가 180은 넘어 보이는 사람이라 힘들게 고개를 치켜들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됐어, 시간낭비 하지 마. 급한 일이 남아있으니까.” 그 남성의 등뒤에서 중후한 중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방금까지 거대했던 그 남성이 순식간에 공손해졌다. 사영은은 저도 모르게 그 뒤에 있는 사람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