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낼 준비 하라고 할까?”여형민이 물었다.“응.”허태준은 이 문제에서 망설이지 않았다. 여형민은 바로 일어나서 베란다로 가서 전화를 쳤다.“이제 안심이 돼요?”허태준이 심유진에게 물었다.“무슨 뜻이에요?”“제가 아리를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잖아요.”허태준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말하면서도 그 깊은 눈은 여전히 심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따뜻한 눈빛에 심유진은 또 한 번 흔들렸다. 심유진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전 계속 안심하고 있었어요.”심유진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허태준의 시선이 심유진을 떠나 그녀의 앞에 놓여 있는 접시로 향했다. “이제 밥 잘 먹을 수 있겠어요?”심유진이 멈칫했다. 허태준은 자신이 밥을 다 먹지 않으면 굉장히 신경 쓸 것 같았다. 이쯤 되니 심유진은 그냥 억지로 접시를 들고 몇 숟가락 뜰 수밖에 없었다. 허태준은 그제야 표정이 풀렸다. 심유진은 아직 일이 남아 있었기에 여형민 방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심유진이 떠나자 허태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허태준이 직접 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전화번호 알아볼 필요 없어요. 허아리를 납치 한 사람은 원재예요.”사실 허태준은 이미 그들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했고 통화녹음도 몇 번이나 들었기에 목소리를 듣자마자 원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심유진이 이 사실을 눈치채게 할수는 없었다. 원재의 뒤에는 심훈이 있기에 이로 인해 심유진이 충격을 받을까 봐 걱정됐다. “유진 씨 친구인척 별이를 데리고 간 그 사람?”
”그럼 돈은 예정대로 준비해?” 여형민이 본론으로 돌아왔다.“원재가 납치했다는 걸 알았으니까 바로 경찰 부르면 되는 거 아닌가? 허태준이 그 말을 듣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돈 준비하라고 했어?” 여형민이 놀라서 되물었다. “네가 허락했잖아!” 사실 여형민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었다. 거금을 들여 허태서의 아이를 구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허태준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건 심유진이 옆에 있으니까 한 말이잖아.” 허태준은 심유진에게 차가운 인상을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눈치챌 줄 알았는데.” 여형민을 바라보는 허태준의 눈빛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형민은 욕이 튀여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다시 전화해서 준비하지 말라고 해야겠다.” 통화를 마치고 여형민이 물었다. “범인 잡으러 가라고 할까?” “아니.” 허태준이 소파에 편안하게 기대면서 손가락으로 휴대폰 모니터를 톡톡 두드렸다.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일단 내버려 둬.” 여형민이 호기심에 허태준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별이?” 허태준은 별이와 문자를 나누고 있었다. 여형민은 그 문자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눈을 흘겼다. “유치하다 정말.” 별이는 글을 아직 다 못 뗐기에 대부분 음성통화 아니면 간단한 글들로 대화를 나눴었다. 그리고 허태준은 지금 이모티콘이라는 새로운 방식에 눈을 뜬것 같았다. 허태준은 별이와 각종 이모티콘을 서로 보내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형민이 질책하는 사이 허태준은 또 별이에게 귀여운 이모티콘을 하나 전송했다. “네가 뭘 알아.” 허태준은 목소리마저 전보다 따뜻해진 것 같았다. 여형민은 그런 모습이 정말 적응이 안 됐다. “그래, 내가 모르는 걸로 치자. 근데 이렇게 미뤄도 되는 거야? 원재가 허아리한테 손이라도 대면 어떡해.” “내가 무서울게 뭐가 있어.” 허태준의 얼굴에 또 한줄기 서늘함이 비꼈다. “허아리는 걔 친아빠가 걱정하겠지.” 여형
얼마 지나지 않아 최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원재 위치 파악했습니다. 따님이 같이 있어요.” 원재는 허아리를 데리로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저택에서 지내고 있었다. 주위는 다 논밭이었고 이웃집들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숨기 좋은 장소였다. 최준은 그 주위에 잠복해 있으면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했다. “수고가 많아요.” “아닙니다. 제가 해야 되는 일인걸요.” “아, 그리고 어르신 일은…” 허태준이 멈칫했다. “네?” “어르신 시신을 태우는 바람에 부검을 못 해서 사인이 뭔지 조사하지 못했어요. 도와드리고 싶지만 심증만으로는 조사를 하지 못하거든요. 허태서에 관해서도 개인적으로 인맥을 동원해서 조사해 봤는데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딱히 의심 가는 행동을 한 것도 없었고요. 그래서…” 뒤에 무슨 말이 따라올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정말 할아버지의 죽음이 허태서와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증거가 없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허태서를 망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어쩌면 할아버지는 영원히 억울함을 품은채 잠드실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태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삼켰다. 또 영화팀이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호텔을 예약했다. 심유진은 관례에 따라 팀장을 데리고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이미 식사가 거의 마무리되는 상황이었고 다들 술을 한두 잔 해서 그런지 분위기가 시끌벅적했다. 심유진은 겨우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가장 앞에 놓여있는 테이블로 갔다. “유진 씨, 어서 와!” 전감독이 심유진을 보고는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며 심유진을 자신의 옆으로 끌고 왔다. “나랑 조감독이 다음 영화도 경주에서 찍을 건데 그때도 이 호텔로 올 테니까 할인 해줘야 돼?” “그럼요.” 심유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전도연 감독과 조강민 감독은 부부였다. 조강민은 꽤나 유명한 감독이었는데 찍는 작품마다 시청률이 높아서 많은 배우들이 그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 했다. 조강민은 전
심유진은 사영은의 이런 과거는 처음 들었다. 사실 사영은이 한때는 잘 나가는 배우였다는 건 중학교 2학년때에야 알았었다. 그날 점심에 선생님 교무실에 시험지를 가지러 갔었다가 선생님들이 사영은 얘기를 하는 걸 우연히 들은 기억이 있다. 그때는 과학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었기에 컴퓨터는 사치품이나 다름없었고 휴대폰도 전화나 문자만 가능했었다. 그러니 TV와 신문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영은이 연예계를 떠났던 이 몇 년 동안 그녀의 자취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집안사람들은 심유진을 신경 쓰지 않는 데다가 또래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사영은을 잘 몰랐었다. 나중에 나이를 먹고 인터넷이 발달했지만 심유진은 한 번도 일부러 사영은을 검색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가끔 인터넷에 성형 안 한 연예인이라던가 무보정 시대에도 살아남았었던 연예인 등등 기사가 뜰 때면 사영은은 항상 그중에 속해있었다. 심유진은 전도연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그냥 웃기만 했다. 전도연은 전세가 역전됐다는 기분에 취해서인지 점점 더 흥분해서 말했다. “우리 조감독이 그래서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지.” 전도연은 계속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조강민을 살짝 흘겨봤다. “유진 씨한테만 얘기해 줄 테니까 어디 가서 말하지 마요. 글쎼 저 사람이 저렇게 시원시원하게 생겼어도 속이 엄청 좁다니까. 사영은이 자신을 욕했던걸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이제야 속이 시원한가 봐.” 전도연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기에 조강민의 귀에도 들어갔다. “당신도 참…” 조강민은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 뭐라 할 수가 없어 그저 어색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부끄러워하지 마요. 어차피 사영은 씨 거절한 감독들이 수두룩해.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회사에 인사까지 하고 다닌다 하더라고. 사영은 씨는 쓰지 말라고.” 사영은이 이렇게까지 환영받지 못한다는 건 처음 알았기에 심유진은 조금 놀랐지만 예상 못한 건 아니었다. 사영은이 얼마나 권력을 좇는 사
심유진이 금방 분위기를 수습하려는데 마침 조강민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조강민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전도연은 얼른 휴대폰을 빼앗았다. “당신 뭐 하는 거야!” 조강민이 얼른 다시 가져오려고 했으나 전도연은 얼른 심유진 등뒤로 숨어버렸다. 전도연은 전화를 받고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조감독님~” 애교 섞인 여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유진은 그 자리에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익숙한 목소리였으나 이 말투는 너무 낯설었다. 전도연은 아무 말도 없이 조강민을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지난번에 신주제작 대표님과 자리 한번 만들어주겠다고 하신 건 어떻게 됐어요?” 신주제작은 작년에 금방 설립한 회사였다. 비록 설립한 시간이 짧긴 했지만 이 바닥에서는 꽤나 유명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신주제작의 자금이 풍부해서 다른 회사들보다 월급이 배로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신주에서 제작한 작품들은 대부분 별로였지만 매 작품마다 유명한 배우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이런 신기한 회사였기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신주제작의 대표인 현용진은 회사를 창립하기 전까지는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기에 그 누구도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뭐 하던 사람인지도 몰랐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이 회사를 방패로 검은돈을 세척한다고 추측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추측일 뿐 누구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전도연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조강민은 이미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상태였다. 조강민은 사영은에게 대답을 해주려고 입을 달싹거렸지만 전도연의 눈치를 보느라 이도저도 못했다. 전도연은 아예 휴대폰을 넘겨주었다.조강민은 받기도 뭐 하고 그렇다고 안 받을 수도 없었다. 주위 사람들 눈치를 한번 보다가 조강민은 할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죄송하네요. 현대표님이 계속 시간이 없으셔서.” 조강민의 말투로 봐서는 그가 사영은을 미워했다는 걸 하나도 보아낼 수 없었다. 전도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심유진은 전도연을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팀장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눈짓했다. 전도연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 술 파는 곳은 없어?” 전도연의 웃음이 굉장히 억지스러웠다. 킹 호텔의 4층은 각종 술들이 다 구비되어있는 바였다. 심유진은 전도연을 데리고 그곳으로 갔다. 낮은 음악소리에 분위기가 어쩐지 조금 다운되는 것 같았다. 전도연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기에 심유진은 가벼운 술을 두 잔 시켰다. “너무 화내지 마세요.” 심유진이 잔을 부딪히며 말했다. “내가 뭔 화를 내.” 전도연은 술을 꿀꺽꿀꺽 삼키고는 잔을 탁 내려놓았다. 잔안에 맥주가 사방으로 튀었고 그 육중한 소리에 직원도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어 달려왔다. 심유진은 탁자에 흐른 맥주를 닦아내고는 직원을 돌려보냈다. 심유진은 더 이상 전도연에게 다른 말을 건네지 못하고 가만히 맥주만 마셨다. “사영은 그 더러운 년, 아직도 버릇 못 고쳤어. 괘씸한 것.” 전도연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심유진 눈에도 사영은은 수많은 결점이 있었지만 저런 말까지 들을줄은 몰랐다. “왜요?” 심유진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전도연은 사영은과 연령대가 비슷했기에 그녀의 과거를 다 알고 있었다. 게다가 같은 연예계 사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사영은의 뒷이야기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영은은 데뷔할 때부터 스폰서의 도움을 받았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고. 그때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것도 다 뒷배가 있으니까 누구도 못 건드린 거야.” 심유진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딱히 감정의 동요가 생기지 않았다. 심유진은 자신을 완전히 사영은과 상관없는 제삼자의 입장에 놓고 냉정하고도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근데 그 스폰서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던 거지. 그 집 아내가 얼마나 독했는지 그때 사영은이 임신한 지 3개월이 지났는데 억지로 낙태시키고 연예계에 발도 못 붙이게 했어. 사영은이 당시에도 지금처럼 여기저기 사정하고 얼굴 좀
“남자들은 다 저렇게 연약한척하는 여자를 좋아하는 거야?” 심유진은 잠시 생각했다. 사영은과 정소월은 어쩌면 같은 부류의 사람 같았다. 정소월이 허태준의 마음을 얻은 걸 보면 남자들은 정말 저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전도연은 남은 술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냥 내숭 떨 줄밖에 모르는 것들이잖아. 남자들은 다 똑같아.” 전도연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바에 울려 퍼지며 노랫소리까지 덮어버렸다. 바에 있는 손님들이며 직원들이 모두 이쪽을 쳐다봤다. 전도연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조강민이 또 사영은을 도와주기라도 하면 바로 이혼이야!” 심유진이 얼른 그녀를 위로했다. “감독님이 어디 그런 사람인가요. 진정하시고 잘 얘기해 보세요. 오해일 수도 있잖아요.” “오해? 무슨 오해? 다 그 사람이 이미 했던 짓인데!” 전도연은 말할수록 열이 받는지 웨이터를 불렀다. “여기 맥주 한잔 더 주세요.” “네.” 웨이터가 술을 가지러 가려고 하자 심유진이 얼른 말렸다. “이미 많이 마시셔서 안 가져오셔도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킹 호텔의 직원 중에는 심유진은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유진 씨, 흥을 다 깨네.” 전도연이 살짝 눈을 흘기자 심유진은 웃으며 그녀의 팔짱을 꼈다. “시간도 늦었는데 방까지 데려다 드릴까요?” 전도연은 이미 많이 마셨기에 발음마저 어눌했다. “안 갈 거야!” 전도연이 단칼에 거절했다. “조강민 그놈 얼굴 보기 싫어.” “다른 방으로 잡아드릴게요.” 심유진은 반응이 매우 빨랐다. “오늘은 조감독님이랑 같이 계시지 말고 혼자 쉬세요.” 전도연은 그제야 타협했다. “그럼 그럴까?” 심유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얼른 방을 하나 새로 잡았다. 전도연은 방까지 데려다주고 나서 심유진은 조강민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조강민은 연신 사과했다. “괜한 고생시켰네요.” 조강민이 한숨을 쉬었다.
심유진이 이런 오지랖을 부린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일단 전도연을 걱정한 것도 있지만 사실 약간의 사심도 있었다. 가족들이 자신에게 못되게 군건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별이까지 건드렸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호텔에서 일하는 동안 심유진도 많은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인맥을 쌓았었다. 심유진은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쁜 사람이었기에 연결음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언니, 어쩌다 나한테 전화를 다 걸어?”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바빠? 시간 내서 경주에 잠깐 들려줄 수 있어? 부탁할 일이 있는데 해줄 수 있나 해서.” 심유진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다음날 오후, 허태준이 회의를 마쳤을 때는 이미 세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일할 때 사용하는 휴대폰은 계속 매니저에게 맡겨둔 상태였는데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매니저를 만나자마자 그가 다급히 휴대폰을 건넸다. “대표님, 전화가 몇 번이나 울렸습니다.” 비록 업무용 휴대폰이긴 했지만 허태준의 허락 없이는 매니저도 함부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부재중 전화는 전부 같은 번호였다. 몇 번 봤던 번호였기에 허태준도 익숙했다. “메시지도 온 것 같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가장 우에 원재가 보낸 영상메시지가 보였다. 허태준은 사무실에 와서야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에서 허아리는 양손과 다리가 묶인 채로 더러운 구석 쪽에 앉아있었다. 집에서 예쁘게 묶었었던 머리는 이미 엉망이 된 상태였다. 허아리의 눈에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했다. “아빠!” 허아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아빠 나 너무 무서워. 제발 구해줘.” 허태준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영상을 끄고 매니저에게 말했다. “저 지금 퇴근할 테니까 일정 다 뒤로 미뤄주세요.” 허태준은 바로 구치소로 갔다. 가는 길에 원재가 몇 번이나 전화를 걸고 협박하는 메시지도 보냈지만 허태준은 신경 쓰지 않으며 휴대폰을 차 뒷좌석에 던져버렸다. 안 본 사이 정소월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