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담임선생님은 심유진더러 먼저 가라고 했다. 그리고 영상이 나오는대로 보내준다고 했다.심유진은 별이의 손을 꼬옥 잡았다.그녀는 무서웠다.담임선생님이 얘기한 그 남자...그녀는 아직 직접 보진 못했지만 예감이 들었다—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예감.“유선생님이 그러는데 오늘 어떤 아저씨가 데리러 왔다면서?”심유진은 별이한테 물었다.“네.”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모르는 사람이라서 따라가지 않았어요.”“참 잘했어!”심유진은 웃으면서 엄지를 치켜들었다.그녀와 하은설은 별이가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때부터 방범에 관한 지식을 전수해 주었다. 이제 와서 보니 효과는 상당했다.“앞으로도 엄마가 다른 사람보고 널 데리러 가게 하면 미리 유선생님한테 전화를 할거야. 엄마가 유선생님과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누가 와도 따라가면 안돼. 허삼촌이랑 여삼촌이라도 안 돼. 알았어?”“네...”별이는 얼굴을 찌푸렸다.“왜 허삼촌과 여삼촌도 안돼요?”“엄마가 걱정되기 때문이야.”심유진은 옆의 어린아이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심유진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선생님께서 보내 주신 파일을 받았다.사진 속 남자의 얼굴은 그나마 선명했다. 심유진은 한참을 바라보았지만,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그녀는 이 사람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친구라고 하면서 별이를 데려가려 했다.아무리 봐도 납치미수였다.하지만 누구한테라도 실질적인 상해는 입히지 않았기에 경찰에 신고한다 하더라도 어영부영 끝날 것이다.심유진은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그녀는 이 일을 하은설한테 얘기했다. 두 사람은 결국 별이를 미국에 보내기로 했다.“별이쪽이 힘들 거야.”하은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별이는 지금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어. 그리고 널 떠나지 못해.”“나도 언젠가 돌아갈거야.”심유진은 별이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별이가 미국에 가게 되면 그녀도 따라가야
심유진은 더욱 슬펐다.그녀도 별이를 못보게 되는게 싫었다.하지만 방법이 없었다.그녀는 삼일동안 휴가를 냈다. 그리고 미국으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떠나기 전 그녀는 손에 있는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임무를 안배하였다. 그녀가 없는 이 삼일동안 타인의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말이다.호텔의 VIP고객도 일일이 전화로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앞으로 삼일동안 호텔에 있지 않을 겁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부총매니저를 찾으시면 됩니다. 그분의 번호를 조금 이따가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육윤엽은 물었다.“뭐 하러 갑니까?”그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심유진은 워커홀릭이었다. 미국에 있을 때도 단 하루도 휴가를 신청한적이 없었다. 매일 아침부터 새벽까지 근무를 하였었다. 귀국후 아이를 돌보기 위함인지 퇴근 시간을 앞당기긴 하였지만 거의 휴가를 내지 않았다. 이번처럼 바로 삼일씩이나 휴가 신청을 한 적은...거의 없었다.그래서 그는 이상하게 생각했다.요근래 그와 지내다 보니 심유진은 육윤엽과 꽤나 가까워졌다. 그래서 숨김없이 얘기해줬다.“아들을 미국으로 보내려구요.”육윤엽도 심유진의 아들을 본 적이 있었다.아이는 심유진과 무척이나 닮았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그녀가 어릴 적에도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생각날 때마다 그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아들이 방학을 했나요?”육윤엽은 또 물었다.“아니요...”심유진은 웃었다.“아예 공부를 거기서 하게요.”육윤엽은 흠칫했다.“그럼 유진씨도 미국으로 가는건가요?”“네.”심유진은 그렇다고 했다.“가족이 거기에 있으니 가야죠.”그녀의 입에서 나온 가족이라는 단어는 육윤엽을 침묵에 빠트렸다.육윤엽은 암담한 시선을 하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김욱도 걱정을 드러냈다.“돌아가는 것도 좋겠네요.”한참을 침묵하다가 육윤엽은 입을 열었다.그의 세력도 그쪽에 있으니 심유진과 그녀의 아들을 더욱 잘 보살필 수 있었다.“잊지 마세요. 어떤 어려움이라도 저를 찾아오세요.”그는 말했다.예전에
심유진은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발끝을 돌리자마자 멈춰 섰다.대문밖 바닥에는 누군가 앉아있었다. 등을 벽에 대고 다리를 구부리고 있었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어깨는 축 처졌다. 퇴폐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그녀는 무슨 상황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그녀를 본 순간 그 암담한 눈동자에는 빛이 났다.허태준은 바닥을 짚고 일어나 그녀의 곤혹스런 시선속에서 큰 걸음으로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상쾌한 민트향이 코끝을 간지럽혔고 넓은 가슴과 튼실한 팔뚝은 그녀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고 체온이 상승하게 하였다.허태준은 그녀의 몸이 으스러질 듯 세게 안았다.그의 떨림을 느끼자 심유진은 그를 밀어내려는 충동을 참고 그의 등을 어루만졌다.“...왜 그래요?”그녀는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허태준은 그녀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그녀의 몸에서 나는 시트러스 향을 맡았다. 몸속의 초조함과 답답함은 조금씩 사라지고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그는 그녀를 놔주기 싫었지만 놔주고 한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출장?”그는 그녀의 뒤에 있는 캐리어를 보았다.“아니요.”심유진은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도 알아야 할 것 같아 입을 열었다.“별이를 미국에 보내려고요.”그녀는 영문없이 가슴이 떨렸다. 그래서 말을 마치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허태준은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이초동안 멍하니 있다가 분노를 가라앉히고 이마를 찌푸리면서 물었다.“왜?”그의 반응은 심유진의 생각처럼 격렬하지 않았다. 그녀는 슬그머니 숨을 돌렸다.“들어가서 얘기해요.”**열몇 시간의 장거리 비행에 심유진은 피곤함에 찌들었다.그녀는 커피를 한잔 내리고 단숨에 반 잔을 마시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허태준은 이마를 찌푸렸다.“늦었는데 조금만 마셔.”그는 말했다.심유진은 머그컵을 내려놓고 웃으면서 말했다.“괜찮아요. 습관이 되어서요.”심장은 찌릿해났다.허태준은 그녀가 몇년동
허태준은 확신을 했다.심유진과 별이는 타겟이 될 이유가 없었다.“내가 해야하는 일을 하는것 뿐이야.”심유진도 어찌 모를수 있겠는가?하지만 그것은 다 예전의 허태준이 저지른 일이기에 지금의 허태준이 그 대가를 치르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친구더러 조사하라고 했으니 따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돼요.”“친구?”허태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릴 적 트라우마때문인지 심유진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몇년동안 그녀의 옆에 있는 사람은 늘 바뀌었지만 친구는 늘 하은설 하나였다.—여형민도 어찌 보면 심유진의 친구라 할 수 있겠다.심유진은 지구 반대쪽에 있는 하은설더러 도와달라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형민을 찾았다면 여형민은 제일 먼저 허태준한테 알려주었을 것이다.그래서 그는 심유진이 자신을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면 그도 모르는 친구가 존재할것이라고 생각했다.허태준은 위기감을 느꼈다.“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이야?”꼬치꼬치 캐묻는 게 좋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참을 수 없었다.“태준씨는 모르는 사람이에요.”다행히 심유진은 그의 질문에 반감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애매한 대답은 허태준을 만족시키지 못했다.—그녀의 인간관계에 대해 조사할 필요가 있겠다.“하지만—”설명해야 할것들을 다 설명하고 나니 심유진은 그를 만나자마자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그렇게 늦었는데 집 앞에서 뭐 하고 있었어요?”허태준은 한순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감추었다.그는 미리 준비한 게임카드를 꺼냈다. ”N회사에서 히어로게임을 론칭한다고 했어. 아직 발행하지 않았지만 우리와 합작을 하고 있어서 몇장 가졌거든. 별이와 테스트 겸 놀려고 왔었는데...”그는 쓴웃음을 지었다.“앞으로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기회는 꼭 있을거예요.”심유진은 망설임이 없이 말했다.사실 그녀도 별이가 다시 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그녀는 단지...허태준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허태준은 그녀를 빤히 쳐
육윤엽이 찾은 자료는 심유진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동시에 결과도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 천차만별이었다.“그날 유치원에 나타난 사람은 원재라고 합니다. 길거리에서 상인들한테 보호비를 받으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양아치죠.”김욱은 감정 기복이 없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소개를 하였다.“양아치라구요?”심유진은 손안의 문서봉투를 더 세게 잡았다.문서봉투는 육윤엽이 그녀에게 전달한 것이다. 삼사센치정도되는 두께였고 묵직했다.“네.”김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서봉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먼저 보세요. 대부분은 범죄기록입니다.”심유진은 봉투를 열었다. 그러나 잘 잡지 못해서 바닥에 흘렸다. 안에 섞인 사진들이 흘러나왔다.사진은 아마 내부시스템에서 직접 프린트한 것으로 보였다. 거의 모든 사진은 정면으로 뚜렷하게 찍혀졌다. 그리고 카메라를 응시보고 있었다.심유진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사진 속의 사람은 별이의 선생님이 캡처해 준 사진속의 사람이었다.다만 유치원에 나타났을 때에는 정장을 입고 있었고 머리도 정성 들여 만진 듯 했다. 심지어 안경까지 맞춰 더욱 세련되어 보였다. 사진 속의 모습과 완전 반대였다.사진 속의 그는 늘어난 티셔츠와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머리는 빗지도 않은듯 했고 원기가 가득했다.겉모습만 봐서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김욱의 말대로 문서봉투 안에는 사진과 기본정보 외에 전부 원재의 범죄기록이었다.그의 범죄기록은 많았고 명목도 가지각색이었다. 공갈과 협박이 제일 많았고 그 외에도 구타, 도박...그래서 교도소에도 많이 갔었다. 하지만 죄목이 엄중하지 않아 매번 열흘이나 보름이 지나서 풀려났다. 그래서 나와도 예전과 똑같이 행동했었다.“경찰도 어쩔 방법이 없답니다.”김욱은 말했다.심유진은 자료를 한번 훑어보았지만, 가슴속의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그녀는 이 사람을 모르고 그를 건드린 적도 없었다. 그의 세력이 닿는 곳은 시내와 조금 떨어진 곳이었고 그녀가 일하고 생활하는 곳은 시내에서 경비가
”아니요!”심유진은 부인을 했다.심 씨 사람들은 심유진을 혐오했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 이유 없이 그녀의 아들이 보고 싶겠는가?백번 물러서서 그들이 진짜 별이를 보고 싶어 한대도 원재같은 사람을 유치원에 보내서는 안됬다.그녀의 반응은 육윤엽이 생각한 것과 같았다.사실 그의 질문은 시험이었다.그녀가 저번에 해준 이야기에서 그는 그녀가 심씨 집안에서 잘 지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챘다.그녀는 심 씨 사람을 싫어했고 심 씨 사람들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확인할 수 없었다. 좋아하지 않는 감정은 아무 죄도 없는 아이에게 손을 댈 만큼 심한 감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그럼...어떤 이유인가요?”육윤엽은 물었다.심유진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그녀는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모르겠습니다.”그녀는 말했다.별이를 납치한 이유는 그녀를 속상하게 만들고 싶거나 그녀한테서 뭔가를 얻어내려는 것일 거다.전자라면 너무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후자라면...그녀는 호텔 매니저일 뿐이다. 기껏해야 방값을 20프로 할인해 줄 능력밖에 안 됐다.“돈때문인가요?”“그들은 저보다 돈이 더 많습니다.”심유진은 웃었다.모든 이유중 돈은 제일 성립이 안 될 이유다.희열엔터는 지난 육년 동안 큰 영향을 받았었다. 지난날의 돈줄은 하나하나 떠나갔지만 심연희가 허태서와 결혼후 YT그룹의 투자를 받고 규모를 넓혔다. 그래서 많은 새로운 스타를 배출해 낼수 있었다. 매년 몇백억의 수입을 볼 수 있었다. 최근 허태서의 스캔들과 허씨, 심씨 두 사람의 이혼으로 영향을 더 받았겠지만 바닥안의 지위는 그대로여서 지금의 자금으로 심씨 가족들은 한평생을 근심걱정없이 살수 있었다. 그녀의 쥐꼬리만한 월급이 눈에 들어나 오겠는가?“그건 모르죠.”육윤엽은 차를 한모금 마시고 심오한 표정을 지었다.심유진이 자신의 친딸이라는것을 알고 나서 그는 심 씨가족을 조사하였었다. 희열엔터의 경영상황은 아마 그가 심훈보다 더 잘 알 것이다.“제가 듣기로 희열엔터는...낙관적이지 못
육윤엽은 그녀와 얘기한 적이 있었다. 경주에 일주일가량 머무를 것이고 방도 일주일을 잡았다고.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는 가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심유진은 심지어 스위트룸을 청소하는 청소부한테서 육윤엽이 거의 매일 방에만 있고 하루 세 끼를 레스토랑에 전화해서 서비스를 시켰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그는 이처럼 한가하니 합작보다 경주에 휴가를 온 것 같았다.육윤엽은 그녀의 질문에 당황했다.“아직이요.”그는 오른손으로 주먹을 잡고 입을 가려 가볍게 기침을 함으로써 부자연스러운 감정을 숨겼다.“아파서 병원에서 며칠 지낸 것도 있고 YT그룹에 일이 많은 것도 있고 해서 허대표님이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전화가 왔었어요.”몇 년간 강도 높은 업무를 하고 점점 높이 올라가면서 육윤엽의 성격은 나쁘게 변했다.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허태서같이 태만한 태도에 육윤엽은 진작에 손사래를 치면서 떠났을 것이다. 여기에서 하루도 더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몇 년간 잃어버린 딸을 이제야 어렵게 만났으니 온통 어떻게 두사람의 거리를 좁힐까하는 생각뿐이고 정을 붙이려고 노력했다.그는 심유진이 친부에 대한 감정을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막연히 진실을 알려줄 수 없었다. 그냥 그녀 옆에 묵묵히 있으면서 그녀를 지켜주고 그녀의 일거일동을 주시할수밖에 없었다.YT그룹과의 합작은 그가 체류를 할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심유진은 의심을 하지 않았다.허태서는 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정식으로 YT그룹을 물려받아 한창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육윤엽쪽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수도 있었다. 더욱이 그의 업무능력은 손아래 대리보다도 못했으니 말이다.“내일 나가봐야겠네요.”육윤엽은 기침을 하고는 그녀가 캐물을까 봐 화제를 바꿨다.“아침 열시쯤 차량을 안배해 주겠어요?”“물론이죠.”심유진의 집중력은 돌려졌다.“조금 이따가 연락을 드릴게요. 확인되면 기사의 번호도 보내드리겠습니다.”**이와 동시에 허태준도 개인탐정이 보내온 원재의 자료를 받았다. 그리고 자연
—아마도 그들은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그녀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호텔 어디를 가나 조수를 데리고 다녔다. 혼자 집에 있을 때도 경각성을 늦추지 않았다. 매일 밤 문과 창문점검을 여러 번 했고 밤에는 자다가도 벌떡 깨어나곤 했다.심유진의 머리는 점점 아파났다.그녀는 이러다가 정신병에 걸리고 말 것이다.—혹시 이것이야말로 심씨 일가의 진정한 목적인가?그녀의 정신상태는 허태준과 육윤엽이 제일 먼저 알아챘다.육윤엽은 매일 각종 이유를 대 그녀를 만나 그녀의 상황을 돌려서 묻곤 했다. 그녀가 고민과 번뇌에 대해 얘기할때 위안을 주기도 했다.허태준은 조급해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별이도 떠났으니, 그녀와 만날 정당한 핑계가 없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그녀의 집에 들락거리면 그녀는 바로 그를 쫓아낼 것이다.“어떻게 해야 하지?”그는 여형민한테 물었다.여형민은 진작에 대구에서 돌아왔다. 그래서 매일점심마다 허태준의 사무실에 가서 같이 점심식사를 하곤 했다.“방법은 세 가지나 있어.”여형민은 손가락 세개를 들었다.“첫째, 심유진한테 고백하여 그녀를 당당히 관심하는 것—너 같은 겁쟁이는 절대 이 옵션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지.”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허태준은 예리하게 그를 노려보았다.여형민은 못본척 하고 계속 말했다.“둘째, 업무로 자신을 마비 시키는 것. 보이지 않으면 걱정도 되지 않는 법. 심유진이 어떻든 너랑 상관이 없는 거야.”허태준은 노려보기조차 지겨웠다.“됐어. 닥쳐.”“아직 안끝났어—”여형민은 입을 삐죽했다.“사람이 이렇게 인내심이 없어?”“안 들어도 알 것 같아. 다 쓸데없는 얘기지.”허태준의 주의력은 눈앞의 문서에 집중되었다.그는 대뇌가 단락이 되어 여형민의 의견을 물은것이라고 생각했다—여인에 대해서 여형민이나 자신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는데.“세번째 방법은 무조건 효과가 있을 거야.”여형민은 그의 앞에 다가섰다. 허태준이 듣든 듣지 않든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근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