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희가 임신만 하지 않았더라면 심유진은 매몰차게 그녀의 손을 뿌리쳤을 것이다.심연희는 앞으로 다가와 심유진의 길을 막았다.몇몇 경호원 같은 거대한 남자가 다가와 그녀의 주변을 에워쌌다.“사모님 조심하세요!”그들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넘쳤다. 그녀를 부축해 천천히 걷고 싶었다.“저는 괜찮아요. 멀쩡한걸요!”심연희는 귀찮은 듯이 손을 저었다. 그리고는 심유진한테 흉이 아닌 흉을 봤다.”남편도 참, 쇼핑 좀 하는 것 가지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다 붙이고! 내가 넘어질 세라 십 분에 한번씩 전화 와서 물어보고! 내가 무슨 세 살짜리 앤가,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심유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득의양양한 얼굴이었고 뽐내러 온 것이 분명했다.“남편이 잘 해주네.”심유진은 맞장구를 쳐주면서 억지로 부러워하는 모습을 하였다.심유진은 알고 있었다. 심연희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오늘 절대 가지 못한다는 것을.심연희는 웃으면서 맘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잘 해주기는!”그녀는 손을 들어 팔목의 옥 팔찌를 보여주었다.“자 이 팔찌 봐봐! 촌스러워 죽겠는데 기어코 사주겠다는 거야! 12억이나 넘어!”심유진은 전문가가 아니라 이 옥 팔찌가 값어치를 하는지 몰랐지만 맞장구를 쳤다. ”안 촌스러워. 예뻐.”“그래!”심연희는 말하면서 옥 팔찌를 빼내 억지로 심유진의 손에 쥐여주었다.”언니가 예쁘다니 언니한테 줄게! 나는 안 좋아하니까!”심유진은 이렇게 비싼 선물을 받을 리 없었다.하지만 심 씨 집안에 예외가 생길 필요는 있었다.“좋지.”그녀는 태연하게 받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목에 꼈다.심연희는 멍해졌다.심유진은 일부러 팔찌를 낀 손을 흔들었다.”너무 예쁘다. 볼수록 예뻐.”심연희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면서 대범한척 했다.”내가 하던 거지만 괜찮다면야!”“당연히 괜찮지. 왜 안 괜찮겠어?”심유진의 눈은 반짝거렸다. 웃음에 두 개의 보조개가 드러났다.”앞으로 이렇게 비싸고 필요 없는 물건이라면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면 꼭 애부터 낳아.”심연희는 타일렀다.”나이도 작지 않잖아. 더 늦으면 임신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애를 낳을 때 더 위험해질 수도 있어.”그녀의 매 한마디는 성심성의인 것 같았지만 심유진의 마음을 찔러댔다.하지만 심유진은 걱정하지 않았다.오히려 심연희한테 맞장구까지 쳤다.“그래.”그녀는 열심히 머리를 끄덕였다.두사람은 에스컬레이터까지 왔다. 심유진이 한 발 내밀기도 전에 팔목에서 큰 힘이 전해졌다.심연희가 아마 발을 헛디뎠는지 앞으로 쏠리기 시작하면서 심유진까지 끌어간 것이다.심유진은 빠르게 에스컬레이터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지만 심연희는 그녀의 힘에 의해 계단에 쿵하고 나앉았다.“아!”심연희는 고통스럽게 큰 소리를 내였다.그녀의 보디가드는 신속히 급정지 버튼을 눌러 위에서부터 달려 내려와 그녀를 부추겨 일으켰다.심연희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심유진을 노려보았다. 울부짖듯이 소리 질렀다.”언니,왜 나를 밀어?!”심유진의 머리는 이 초 정도 공백이 되었다. 정신을 차린 후에야 이 모든 것들은 심연희의 트랩이라는것을 눈치챘다.“나는 밀지 않았어.”심유진은 덤덤하게 말했다.심연희의 눈물은 더 많아졌다.”언니. 양심에 손을 얹고 나는 언니한테 미안한 짓을 한적이 없어... 언니의 지금 삶도 내가 이렇게 만든 게 아니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몇몇 경호원은 그녀를 에워쌌다.“사모님, 병원에 가시죠. 여기는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됐어요.”심연희는 손을 저어 억울한듯 심유진을 바라보고 경호원한테 말했다.”언니는... 잠시 정신이 나간 것 뿐이예요. 저는 지금 병원으로 갈 테니 이 일은 남편한테 얘기하지 말아줘요.”경호원은 난처했다.”하지만 주인께서 물으신다면...”“제가 부주의해서 넘어진 거라고 하세요.”심연희는 대범한 척 모든 책임을 자신한테 돌렸다.심유진은 심연희가 한무리의 사람들의 부축하에 떠나는 것을 보자 아까까지 배고파 죽을 것 같았지만
심유진은 허 씨 집에 들렸다.그녀가 연루되었으니 허태준의 부모님한테 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허 씨 집안 둘째 삼촌과 아주머니는 거실에 앉아있었다. 얼굴 색이 안 좋았다.그녀가 들어오자마자 둘째 아주머니는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독한 년! 내 손주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다친다면 너를 가만두지 않을 테야!”둘째 아주머니의 손톱은 길고 뾰족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심유진의 얼굴에는 핏자국이 세 가닥 나 있었다.허 아주머니는 한발 늦었다. 늦게 막아서다 보니 심유진이 얼굴을 감싸고 나서야 그녀를 뒤로 데려왔다.“진정 좀 해! 유진이가 하는 얘기도 듣고!”“듣긴 뭘 들어? 지 입으로 인정을 하겠어?”둘째 아주머니는 심유진을 노려보았다.”이렇게 악독한 사람은 처음 봐! 연희는 쟤 동생이야. 동생한테까지 손을 대다니!”심유진은 당당하게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저는 연희를 밀지 않았어요. 자기 절로 넘어진 거예요. 추궁하려 들면 제가 오히려 붙잡아줬기에 굴러 떨어지지 않은 거죠. 아니면 태아가 불안정한 게 아니라 유산을 했겠죠.”“거짓말!”둘째 아주머니는 그녀를 가리키며 욕을 했다. 앙칼진 목소리는 심유진의 고막을 찔러대 귀가 아팠다.“댁의 손주를 구한 게 겨우 이런 꼴이었으면 애초에 심연희의 손을 놨었어야 했어요. 적어도 욕을 먹어도 억울하지 않게요.”심유진은 웃었다.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사실이 어떻든 다들 관심이 없으시겠죠. 제가 잘못했다 치죠.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겠네요.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저는 신경도 안 쓰니까요. 하지만 하나 아셔야 할건, 저랑 허태준은 이미 이혼을 한 사이이기에 앞으로 저를 찾으시려 거든 여기에 오지 마세요.”허 씨 집안 사람들은 멍해졌다. 그녀가 당당하게 반박할 줄을 몰랐는지 아니면 그녀와 허태준이 이혼한 사실을 듣고 멍해졌는지.심유진은 허태준의 부모님께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죄송해요. 아버님 어머님. 폐를 끼쳐드렸네요.”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얼굴에 핏자국을 가리키며 둘째 아주머니한테
”네.”심유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비와 안개는 시선을 가렸고 그녀는 이십몇 년 동안을 미워한 이 도시를 잘 볼 수 없었다.차라리... 잘됐지.운전기사는 쉴새 없이 얘기를 해댔다. 그녀는 한 마디도 듣지 않았다.길이 너무 막혀 공항에 도착하자 심유진은 줄곧 뛰어다녔다. 겨우 비행기에 탑승을 했다.비행기가 뜨자 스튜어디스는 승객들더러 핸드폰을 꺼 놓으라고 했다.심유진은 못 참고 허태준한테 카톡을 남겼다.”안녕. 그 사람과 행복하길 바래.”몇 년이 지나서야 보겠지. 아니면 영원히 못 볼 수도 있고. 하지만 상관이 없었다.그녀한테 있어서 이것은 신성한 의식 같은 것이다.그와 작별을 해야만 자신의 과거와 작별을 하는 것이다.**긴 비행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이코노미석의 애기의 장난과 울음소리는 머리가 아프게 했다.심유진은 일어서서 화장실로 갔다. 잠시나마 혼란에서 벗어나려고.하지만 화장실 입구에서 바닥에 쓰러진 채 경련이 일어난 중년 남성을 보게 되었다.호텔 객실부 매니저로서 그녀는 간단한 응급처치를 배웠었다. 입에서 계속 거품이 나오자 간질병이 발작했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 외투를 벗고 소매를 실모양으로 접어서 물게 했다. 그리고 그의 입주변의 거품을 닦아냈다.“약이 있나요?”그녀는 급하게 물었다.중년 남자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손을 떨면서 바지주머니를 가리켰다.심유진은 그 안에서 작은 유리 약병을 꺼내 한 알을 집어서 그의 입에 넣었다.지나가던 스튜어디스는 깜짝 놀랐다. 겨우 진정을 해서 물었다.”무슨 일이시죠? 도움이 필요하신 가요?”“이분이 발작을 일으켰어요. 약은 먹었구요. 여기서 지켜보도록 하세요. 혀를 깨물지 못하게 하시구요.”심유진은 자세히 설명을 하고 스튜어디스가 떠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급히 화장실로 향했다.볼일을 보고 나오자 밖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바닥도 깨끗하게 청소되었다.환자가 회복했나 보다.그녀는 숨을 돌리고는 다시 자리로 가서 앉았다.심유진이 겨우 잠들었는데 얼마
중년 남성은 심유진과 같이 셔틀버스를 탔다.그는 열정적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심유진은 그의 성함이 육윤엽이라는 것과 국제 유명한 블루스타 항공회사에서 일하는 것과 업무 때문에 한국과 미국을 자주 드나든다는 것을 알았다.“보통은 조수를 데리고 다니는데 이번엔 조수 집에 일이 생겨서 저랑 같이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런 일이 생겼지 뭐예요.”육윤엽은 아직도 심장이 벌렁댔다.”다행히 아가씨를 만났으니 망정이예요.”그는 심유진의 명함을 받으려 했다.”오늘 회사에 일을 처리하러 가야 해요. 다음에 식사대접을 하면서 감사인사를 드리도록 하죠.”심유진은 미안하게 웃었다.”여기에는 공부하러 온 거라서요. 오늘에 도착했습니다.”육윤엽은 “오.”했다. 그리고는 이마를 찌푸렸다.”대학은 8월 말에 개강하지 않나요? 이렇게 빨리 왔어요?”“먼저 어학원에 좀 다니려고요.”심유진은 쑥쓰러워하면서 고개를 숙였다.”스피킹이 안돼서 바로 수업을 들으면 따라가지 못 할 것 같아서요.”육윤엽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준비할 건 다 준비했나요?”심유진에게 목숨을 구해준 값을 하려고 그러는지 그는 그녀의 상황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학교랑 머무를 곳은 찾았나요? 지인이 데리러 오나요? 차로 바래다 줄까요?”심유진은 그의 호의를 거절했다.”친구가 있어요. 다 안배를 해줬습니다.”“그래요.”육윤엽은 아쉬웠다. 그는 주머니에서 도금을 한 펜을 꺼내 심유진의 손바닥에 숫자를 적었다.“제 전화번호입니다. 전화 카드를 발급받으면 꼭 연락 주세요.”심유진은 손바닥을 맞잡고 예의 있게 웃었다.”그럴게요.”**육윤엽이 나가자마자 양복 차림을 한 외국 남성 두 분이 다가와 그의 캐리어를 대신 잡았다.육윤엽은 다른 한분을 지휘했다.”저 아가씨도 좀 도와주세요!”심유진은 연거푸 거절했다.”아니에요! 제가 하면 됩니다!”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하은설은 위치를 발송해왔다. 심유진더러 나오자마자 그녀를 찾아오라고 했다.“제 친구를 만나러 가봐야겠어요.”심
하은설이 웃으며 말했다. “강한 척하는 건 여전하네?” 심유진도 입을 삐죽거렸다. “너도 나한테 시비 거는 건 여전하다?” 두 사람은 마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좋다.”하은설의 말에 심유진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두 사람 모두 많이 변했지만 그들의 우정만은 전혀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있었다. 하은설은 집까지 차를 몰고 갔다. 그녀의 집은 소위 말하는 “농촌”에 위치해 있었기에 고층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주위에 보이는 집들은 모두 넓은 마당이 있는 작은 별장들이었다. 하은설의 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 년간 차곡차곡 저축한 돈으로 마련한 집이었다. “경주 시중심에서 화장실 한 칸 살 정도의 가격이야.” 하은설이 얘기했다. 심유진은 이런 생활이 너무 부러웠다. 집안에 들어가니 주차장과 오락실, 헬스장까지 볼 수 있었다. 게임기나 운동기구 같은 건 심유진도 충분히 살 수 있었다. 그저 이 정도로 큰 집이 없을 뿐이었다. “집 값이 싼 게 장점이야.”하은설이 한숨을 쉬었다.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거든. 마트나 병원 모두 여기서 몇천 킬로미터는 가야 돼. 저녁 8시만 돼도 길에 아무도 없어. 혼자 살 때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넌 모를 거야. 밤마다 누가 쳐들어와서 날 해치기라도 할까 봐 마음 졸였는데 이젠 네가 왔으니까.” 하은설이 심유진을 안고 볼에 입을 맞췄다. “이젠 무서워할 필요 없겠다!” 심유진은 자신을 데려온 것이 이 목적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은설은 자신의 옆방을 내어줬다. “원래는 손님방이었어. 혹시 친구들이 오면 이 방을 쓰게 했었는데 사실 쓸 일이 별로 없으니까 방에 딱히 뭐가 없어. 이불은 다 새 거로 갈아 놨으니까 이 방은 네가 마음대로 인테리어 해도 돼. 이젠 네 거야.” 심유진은 방을 꾸밀 기력도 없었다. 샤워를 끝마치고 침대에 눕자마자 심유진은 잠에 들었고 짐도 풀지 못했다. 하은설이 방에 들어와서 심유진을 깨워서야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이 정도는 먹어줘야 하는 거 아냐?” ”그건 그래.” 하은설도 납득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심유진은 여전히 하은설이 강제로 깨워야만 일어났다. 알람이 몇 번이나 울리는데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은설이 불만스러워하며 말했다. ”네가 돼지야? 어제 온종일 잤으면서 밤에 잠이 와?” 시차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같이 밤새 얘기나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심유진이 하품을 하며 인정했다. ”나 진짜 돼지인가 봐.” 이 말을 하면서도 심유진은 몰려오는 졸음을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아침은 여전히 하은설이 준비했다. 토스트와 계란프라이, 베이컨, 그리고 우유 한잔이었다. 사실 아침 식사로 충분한 양이였는데도 심유진은 여전히 배가 부르지 않아 하은설 집에 남은 토스트까지 다 먹어 치웠다. ”너 진짜 좀 이상해.” 하은설이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오전에 볼일 다 끝나면 병원 가서 검사 한번 해보자. 아무 일도 없으면 좋은 거고 혹시 무슨 병이 있는 거면 빨리 치료할 수 있으니까.” 사실 심유진도 자신의 상태가 조금 달라진 걸 눈치챘다. 하지만 그저 환경이 달라지면서 생긴 변화일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병원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하은설은 끝내 심유진을 병원까지 끌고 갔다. 심유진은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기에 대부분 하은설이 의사와 대화를 했다. 의사가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하은설이 놀란 표정을 하더니 복잡한 심정으로 심유진을 바라봤다. 심유진은 영문은 모르지만 굉장히 초조해졌다. “왜? 뭐라고 하시는데?” “너 혹시 이번 달에 생리 온 적 있어?” 하은설의 뜬금없는 질문에 심유진이 잠시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아직 없어.” 심유진은 일이 바쁜 데다가 야근까지 자주 했기에 생활패턴이 매우 불규칙적이었다. 그러니 생리 불순이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는 데다
그녀는 확실히 성생활을 오랫동안 안 했다. 하은설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물었다. “이 아이 낳을 거야?”“아니!”심유진의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겪었던 비극을 아이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은설이 심유진의 선택을 의사에게 전달했다. 의사 선생님의 얼굴에서 웃음이 점차 사라지더니 아쉬움만 남았다.“수술 날짜는 빠른 시일 내에 잡겠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더 자세한 검사가 필요해요.”한 시간 가량의 검사를 마친 후 의사가 얘기했다. “지금 상태로는 당장 수술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심유진은 약을 잔뜩 처방받았다. “일단 몸상태부터 회복하고 일주일 뒤에 다시 검사하러 오세요. 그 사이에 정말 아이를 낳지 않으실 건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네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심유진과 하은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안은 너무 조용해서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한참 지나 하은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이를 안 낳는 게 맞는 것 같아. 이제야 새 인생을 살아보려고 하는데 아이한테 잡혀 있을 수는 없지. 게다가 낳는다 하더라도 온전한 가족의 사랑을 줄 수 없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심유진은 아이를 낳을지 말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 아빠가 누구일지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을 계산해 보면 병실에서 병간호를 해주던 그때 임신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상하게 몸이 쑤시긴 했는데 설마 밤중에 누군가 허태준의 병실에 들어가 그런 짓을 했던 걸까? 어떤 일이 있었던 간에 이제 심유진은 증거를 댈 수도 없었다. “시내에 타로점을 봐주시는 분이 있는데 진짜 용하대!” 하은설이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이따 같이 가서 운세나 한번 보자.” 심유진은 이런 걸 잘 믿지 않았지만 하은설이 기대하는 듯하니 그냥 한번 체험이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동의했다. 시내는 확실히 흥성흥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