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을 여기저기 다니며 옷을 입고 또 입어 보아도 이연은 마음에 드는 옷이 하나도 없었다.원아는 그녀가 이렇게 신이 난 모습이 너무 오랜만이라 방해하고 싶지 않아 한쪽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하지만 삼십 분이 지나도록 그녀는 여전히 직원에게 옷을 추천 받고 있는 중이었다. 원아는 소파에서 일어나 남성복 구역으로 가서 그곳을 천천히 돌아보았다.그녀는 한쪽에서 검은색 남성 바바리코트를 발견하고 만져 보았다.눈치가 빠른 매장 직원이 얼른 다가왔다.“사모님, 혹시 남편분에게 선물하실 건가요? 이 코트는 이번에 새로 들여온 한정판
원아는 장정안과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어서 자리를 비켜주길 바라는 뜻을 은근히 내비쳤지만, 그는 모르는 척 자리에 앉아 있었다.옆에 있던 이연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원아의 체면을 생각해 차마 말을 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되던 찰나! 귀에 거슬리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빠! 내가 오빠를 얼마나 찾았는데. 그런데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오빠 정말 너무해요. 다시는 이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해놓고선 지금 이게 뭐예요?”원아는 굳은
이미경은 빨개진 볼을 감싸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정안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소리를 질렀다.“오빠가 나를 때리다니! 벌써 두 번째야! 저 여자 때문에 오빠가 나를 때린 것이 벌써 두 번째라고!”장정안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이제 그만해, 원아는 임산부야. 네가 한 행동 때문에 산모와 태아가 죽을 수도 있었어! 넌 어떻게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니?”이미경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코웃음을 쳤다. “그게 뭐 어때서? 다 저 여자 업보야.”원아는 숨을 깊이 내쉬며 감정을 자제하려 애썼다. 혹시나 아기
소남은 비록 자신의 손을 지키기는 했지만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남궁산이 이렇게 결혼을 승낙해서는 안 됐다.몇 분만 더 기다렸다면 공든 탑이 이렇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었다.소남은 레이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 남자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고 누구보다 총명했다. 이득과 실을 저울질하는 데는 따라올 자가 없었다. 그는 레이가 아무리 자신의 누나를 아낀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자기들과 결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다. 게다가 T그룹은 러시아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에 그가 아무리 마피아의 대부라 할지
주희진은 한참 만 에야 겨우 감정을 추스렸다.원아는 그녀에게 휴지 한 장을 건네주며 다른 손으로 그녀의 눈가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이모,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다 잘 될 거예요.”주희진은 뭔가 미련이 남은 듯 원아를 바라보다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았다. 혹시라도 원아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아마도 내 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분명 원아 씨와 비슷한 나이가 됐을 거예요. 원아 씨처럼 예쁘고 철도 든데다 재능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주희진의 눈물을 본 원아는 마음이 불편했다.하지만
임영은은 주희진을 바라보며 웃으며 인사했다.“엄마, 저 왔어요. 집에 손님이 오셨네요?”“이모…….”허요염은 어색한 표정으로 주희진을 바라봤다.품격있고 점잖은 그녀 앞에 서면 평소 방탕하던 허용염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주희진은 영은과 그 뒤에 서 있는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애를 보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그녀는 영은이 허요염 같은 친구를 만나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영은의 나쁜 모든 행동들이 모두 그녀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둘 사이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
주희진은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점심을 준비하러 가야겠네. 난 원아 씨와 먼저 내려 갈 테니 영은이 너도 얼른 내려오렴.”그녀는 자연스럽게 원아의 손을 잡고 계단으로 향했다.어른이 된 이후로 원아는 소남 외에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손을 잡혀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주희진은 마치 넘어지기 쉬운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는 듯했다. 원아는 갑자기 울컥했다.그녀에게서 엄마의 사랑이 느껴졌다.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영은은 엄마가 원아의 손을 꼭 잡은 채 자신에게는
극심한 고통이 머리에서 부터 온몸으로 퍼졌다.소남의 머리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그는 자신이 총에 맞은 것을 믿지 못한 채 눈을 크게 떴다. 모스크바의 가을은 확실히 A시보다 훨씬 춥다고 생각했다.도대체 누가 자신에게 깊은 원한을 품었길래 먼 타국까지 와서 죽이려 했을까?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소남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업가로서 그는 사람들에게 냉정했고 자기 때문에 파산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협박을 당한 적도 많았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소남은 머리의 통증이 점점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