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와 서해시의 대단한 분들이 다 그곳에 있대요. 조금 전에 전화로 이 일을 제게 알려주셨고 올라가서 술이라도 한잔 따르라고 하더라고요.”우서준은 무척 부러웠다.“도 대표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화하 상업그룹까지 도 대표님과 협력하려고 그분을 찾다니, 도 매니저님 집안 사업이 점점 더 발전하겠네요!”도명철은 남이 추켜세워주는 느낌을 좋아했다.오연정은 기대에 찬 얼굴로 말했다.“도 매니저님, 저희도 도 매니저님이 술을 따르러 갈 때 같이 올라가 볼 수 있을까요? 저희도 그분을 뵙고 싶어요.”“당연히 가능하죠!”도명철은 생각하지도 않고 대답했다.어차피 소개할 때 이름을 얘기할 사람은 도명철 혼자였고 남은 사람들은 ‘도명철의 동료’라고 불릴 테니 다른 사람은 주목받지 못할 것이었다.여자 친구의 도움에 우서준은 매우 흥분했다.“그러면 저희는 언제쯤 올라가면 될까요?”그중 한 분만 알게 되더라도 앞으로 그들의 앞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지금 올라가면 되니까 다들 준비해요.”도명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외모를 체크하기 시작했다.우예원은 이런 일에 흥미가 없었지만 괜히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잡치고 싶지 않았기에 외모를 체크하는 척했다.하유진도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잠시 뒤 사람들과 같이 올라가기만 할 생각이었고 얼굴을 비출 생각이 없었기에 체크할 필요가 없었다.도명철은 염무현을 바라보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염무현 씨는요? 같이 올라가 볼래요?”“이건 아주 보기 드문 기회예요. 염무현 씨 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기회죠. 만약 대단하신 분들의 마음에 들게 된다면 앞으로 승승장구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관심 없어요.”염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전 화장실에 가볼 테니 다들 가보세요.”겨우 화하 상업그룹 책임자는 염무현을 만날 자격이 없었다.게다가 염무현이 먼저 올라가서 인사한다는 건 말도 안 되었다. 그들의 보스인 전태웅도 그럴 자격이 없었다.전태웅도 염무현을
하지연은 퇴근하자마자 스카이 레스토랑으로 오기 위해 정장을 입고 있었다.정장이란 원래 다 비슷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이곳 직원들의 유니폼과도 살짝 비슷했다.술에 취한 여자는 하지연을 이곳의 직원이라고 생각해서 명령조로 말한 것이다.“저기요,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오해는 무슨! 내가 누군지 알아요? 당신네 엄 매니저도 날 보면 공손하게 대하는데 지금 내 명령에 따르지 않겠다 이거예요?”하지연이 설명하기도 전에 여자는 막무가내로 그녀의 말허리를 자르고 눈을 부릅떴다.“내 앞에서 도도한 척하지 마요. 당신 같은 천박한 여자는 수도 없이 봐왔으니까!”“감히 대들기까지 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요. 그러면 내가 엄 매니저님을 대신해서 어떻게 해야 훌륭한 직원이 될 수 있는지 가르쳐주죠!”말을 마친 뒤 여자는 곧바로 하지연을 밀쳤다.하지연은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채 밀려서 바닥에 넘어졌고, 여자는 하지연의 머리채를 잡고 뺨을 때렸다.여자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다시 한번 손을 높게 쳐들었다.“그만!”염무현이 마침 나타나서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당신은 또 누구예요? 남 일에 간섭하지 말아요!”여자는 버럭 화를 냈다.“겨우 종업원 따위가! 이 손 안 놔요? 엄 매니저님한테 당신을 죽을 때까지 때리라고 할까요?”염무현의 옷차림은 하지연보다도 더 후줄근했다.그가 입은 옷은 우현민에게서 빌린 것이었다.우현민은 학자였기 때문에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았고 최근 몇 년간은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평범한 쇼핑몰에서 할인하는 옷들을 사 입었다.그래서 막무가내인 여자는 염무현까지 종업원으로 착각했다.염무현은 손을 뿌리쳤고 여자는 비틀거리며 벽 쪽으로 걸어갔다가 손을 뻗어 벽을 짚어서야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지연 씨, 괜찮아요?”염무현이 하지연을 부축했다.하지연은 뺨이 화끈거리면서 아팠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참았다.“전 괜찮아요. 염무현 씨가 마침 와줘서 다행이에요.”“빌어먹을 연놈들! 너희들 한패였구나! 사
“이렇게 큰 인물들을 한꺼번에 만나다니. 눈이 번쩍 뜨이네요. 오늘 우리 정말 도 매니저님한테 감사드려야 할 것 같아요. 도 매니저님 아니면 이런 기회가 어디 있겠어요.”그들의 말을 듣는 우예원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좀 들떠 있었다.곁눈질로 하지연을 보았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하 팀장님, 무슨 일 있어요? 얼굴이 왜 빨개요?”“아, 아니야. 얼굴을 씻었는데... 뜨거운 물이 나와서 그렇게 됐나 봐.”하지연은 대수롭지 않은 척 얘기했다.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한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냥 두 사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다.바로 그때,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쿵!별실 문이 누군가의 거친 발길에 걷어차여 활짝 열렸다.모두가 갑작스러운 일에 멍하니 서있기만 하는데, 십여 명의 경비원이 기세등등하게 뛰어 들어왔다. 그 뒤에는 엄현철과 그의 손에 이끌린 한쪽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른 여자가 같이 따라 들어왔다.그 여자는 염무현과 하지연을 보더니 눈에서 불똥을 튕기며 손가락질했다.“자기야, 저 새끼야, 날 이렇게 때린 게. 나 대신 꼭 복수해 줘야 해.”“또 너야?! 이 개새끼가!”엄현철은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너 아까 대문 어구에서 가짜 카드로 허세부린 것도 가만 놔뒀더니, 감히 내 여자를 때려? 너 사는 게 지긋지긋한가 보다, 너, 어?!”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한 채 당사자들을 서로 엇갈아 보고 있었다.뭐지, 대체?술을 권하러 온 새에 염무현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른 건가?다들 그런 얼굴이었다.“엄 매니저, 무슨 오해가 있는 게 아니에요?”제일 먼저 반응한 건 도명철이었다. 무슨 일이었건 간에 염무현을 찾아온 건 확실하니, 속으로는 어깨춤을 추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말리는 척하며 우예원 앞에서 신사다운 일면을 연출했다.“오해는 개뿔!”엄현철은 눈을 부라리며 욕을 멈추지 않았다.“명철 씨, 내가 전에는 명철 씨 면목을 봐서 이 새끼를 가만뒀는데, 이게, 이게, 이 개자식이
“성추행?”모두가 경멸의 시선으로 염무현을 바라보았다.“응, 맞아. 날 뒤에서 갑자기 껴안고 남자 화장실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어. 내가 죽어라 발버둥 치지 않았으면, 저 새끼한테 당했을 거야... 엉엉...”여자는 얼굴이 눈물범벅이 돼서는 사건의 본말을 전도했다.“나중에 어떤 여자가 들어오니까 멈추긴 했는데 나한테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고 협박했어. 안 그러면 죽이겠다고, 그것도 강간해서 죽이겠다고 그랬어, 저 미친 새끼가!”“내가 그땐 너무 놀라서 아무 소리 못 내고 그냥 보내버렸지, 뭐야.”급조해 낸 얘기 같지 않게 진짜 그럴싸했다. 소설을 쓰거나 연기자를 했으면 대박 났을 것이다. 모두가 그녀의 울분에 찬 호소에 동참하며 분노했으니까.“염무현, 너 완전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구나!”“아까 우리랑 같이 술을 권하러 안 가겠다고 한 게, 그런 더러운 이유에서였네!”도명철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분노의 침을 튀겼다.“회사에 바로 이 일을 보고 해서 내일에 즉각 퇴사 처분 받게 할 거야! 이 좁아터진 나라에서 소문 금방 날 텐데, 당신 이제 회사 취직은 다 글러 먹었어!”“도 매니저님, 내일까지 기다릴 거 뭐 있습니까. 저런 쓰레기를 하룻밤 더 묵혀둬서 뭐 해요. 인사팀 하 팀장님이 여기 있잖아요, 바로 자르라 하세요!”우서준도 덩달아 난리를 쳤다.“짐승보다 못한 쓰레기! 우리 멀리 떨어져 앉아요, 저런 사람과 같이 앉아 있으면 쓰레기 냄새 나서 어디 밥이나 넘어가겠어요?”오연정은 과장스럽게 자리에서 후다닥 비켜서며 전염병이라도 피하는 듯 멀리 도망갔다.이러한 상황에 급한 건 하지연뿐이었다.“아니에요, 그런 거. 내 말 들어봐요...”“자르기만 하면 너무 가벼운 거 아니에요? 경찰에 신고해야죠!”“맞아요! 경찰을 부릅시다, 성추행이 어떤 죈데, 저 쓰레기를 다시 콩밥 먹게 해야죠.”“경찰이 오기 전에 먼저 한대 두들겨 패자!”하지연의 말은 금세 난무하는 욕설에 묻혔고 그녀는 조급한 나머지 땀만 뻘뻘 흘리며 이리저리 말려보려
“얼마?”여자와 엄현철은 듣자마자 같이 입을 열었고, 놀라워하는 표정 역시 똑같았다.한 백만 원 정도로 예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큰 숫자에 잘못 들었나 했다.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알면서 도명철은 일부러 천연덕스럽게 물었다.“왜요? 모자라요? 그럼... 1억. 1억으로 할까요?”“돈은 돈대로 드리고 사모님한테 사과도 드리라고 할게요. 그럼 되죠?”2천만 원을 불렀을 때 잠시 놀라서 대답할 시기를 놓쳤는데, 말도 꺼내기 전에 1억으로 변해버리니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었다.1억!엄현철의 세컨드인 여자는 그한테서 매달 용돈으로 400만 원을 받는데, 따귀 한 번 얻어맞고 2년 치 용돈을 한꺼번에 받은 셈이다.경악을 금치 못한 건 엄현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체면 유지를 위해 들끓어 오르는 희열을 애써 누르며 돈에 꿈쩍도 안 하는 사람인 척했다.“명철 씨, 저도 그냥 명철 씨가 얘기하니까 봐주는 거지, 아니면 이 자식이 사지 멀쩡하게 우리 레스토랑 문턱을 못 넘어요. 알죠?”이 말이 나오자 다들 도명철한테 엄지를 내밀었다. 말 몇 마디로 위기를 헤쳐 나가는 능력이 역시 도 매니저답다고 생각하면서. 비록 개쓰레기 같은 목숨 하나 건졌지만.“그전에, 이 자식이 반드시 무릎 꿇고 내 여자한테 사과해야 해요.”엄현철은 거절은 용납 못 한다는 말투로 요구했다.도명철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물론이죠. 그렇게 할게요.”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명령조로 염무현한테 얘기했다.“돈은 내가 급한 대로 빌려줄 수 있다만 나중에 갚아야 해!”“무릎 꿇고 사죄하는 건 당연한 거야. 나도 여기까지밖에 도와줄 수 없어. 예원 씨가 사정하니 들어준 거지, 아니면 이런 일에 끼지도 않았어.”“얼른 저 사모님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고 뭐해?”염무현은 그제야 반응을 보이며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도명철을 흘겨봤다.“넌 뭔데?”“뭐라고?”도명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즉시 되물었다.그러자 서늘한 한기를 뿜어내며 염무현이 말했다.“내 일에 왜
다들 염무현이 영락없이 세게 얻어터져 뼈도 못 추스를 거라 생각했다.소문에 의하면 엄 매니저는 그전에 건달이었을 뿐 아니라 싸우는 걸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라고 했다. 저 무쇠 다리로 걷어차면 3인치나 되는 널빤지도 거뜬히 부러뜨릴 수 있다고 했는데, 그 힘으로 아랫도리를 걷어차면 그대로 고자가 되는 것이다. 아까는 손도 베어버리겠다고 했는데 그도 허투로 얘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너무나 참혹한 장면이 벌어질 것 같아, 차마 보지 못하고 하지연과 우예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흥미진진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도명철과 우서준은 워낙에 염무현을 골탕 먹이는 게 목적인지라, 그가 비참해지는 꼴을 보면 속이 더 시원해질 것만 같았다.“씨발, 뒈져!”엄현철보다 더 잽싸게, 염무현의 발이 먼저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쿵!짧은 비명과 함께 엄현철의 뚱뚱한 몸체가 활처럼 휘어진 자세로 문밖으로 날려 나가더니 복도 벽에 쾅 부딪혀 밑으로 쿵 떨어졌다.대리석 벽이 그 때문에 안으로 우그러들었고 깨진 부스러기들이 우수수 떨어졌다.죽을 것 같은 통증에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진 엄현철은 입에서 피를 토하더니 어금니를 깨물고 울부짖는 짐승처럼 외쳤다.“죽여, 저 새끼 죽여버려!”십여 명의 경비들은 그의 말에 따라 소리를 지르며 염무현을 향해 달려왔다.염무현은 느긋하게 팔을 들어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테이블 위에 있던 접시와 나이프 등이 허공에 떠 있는 틈을 타 그가 재빠르게 손을 놀리니 접시들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휙 날아 경비들의 얼굴에 한 개씩 정확히 꽂혔다.으아! 악!별안간 접시 깨지는 소리와 비명소리로 방안이 소란스러웠고, 십여 명의 경비들은 하나같이 바닥에 드러누워서 피투성이인 얼굴을 부여잡고 아프다며 뒹굴고 있었다.삽시에 난장판이 돼버린 별실 안에서 멀쩡히 있는 사람들은 전부 경악한 얼굴로 입만 벌리고 있을 뿐 누구 하나 소리내지 못하였다.엄현철은 이미 보통 사람보다 싸움을 잘하는 편인데, 저렇게 쉽게 나자빠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흉
“무현 님, 여긴 어떻게? 식사하러 오셨습니까? 무현 님 신분으로는 위층 로얄 VIP룸으로 가셔야 할 텐데요. 어째서 이런 누추한 곳에서 식사를 다 하십니까?”김범식은 허리를 굽히고 윗몸을 앞으로 약간 숙여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미리 언질을 주셨으면 제가 전담자를 배치해서 잘 모셨을 텐데요.”아무도 상상 못 했던 광경에 일제히 경악하고 있는 중이었다.어떻게 된 상황이지?논리대로라면 김범식은 엄현철의 편에 서서 흉악하게 생긴 거한들을 지휘하며 염무현을 밟아 죽이고, 때려죽이고, 찔러 죽여야 마땅한 게 아닌가?왜? 왜 그들의 범식 형님이 금방 만기 출소한 전과자 새끼 앞에서 굽신거리고 있는가?저 새끼가 대체 뭐길래?“내가 여기서 밥 먹을 수 있는 것도 어느 도련님 덕분인데요.”무표정한 얼굴로 염무현은 가볍게 콧방귀를 꼈다.“가짜 카드를 쥔 내가 대문도 못 들어오는데, 로얄 VIP는 무슨. 저랑 장난해요?”가짜 카드?공규석이 슈프림 블랙 카드를 염무현한테 넘겨주는 걸 직접 봤는데 가짜라니?“저기 엄 매니저가 염무현 씨 카드가 가짜라고 그랬어요. 바닥에 버리기까지 하면서.”하지연이 적당한 타이밍에 나와 김범식의 의문을 풀어주었다.1초 전까지 그나마 온화했던 얼굴이 갑자기 지옥에서 나온 저승사자처럼 무섭게 돌변한 김범식은 살의가 어린 차가운 눈빛으로 엄현철을 째려보았다.엄현철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김범식이 염무현을 대하는 태도 하며, 자기가 버린 염무현의 그 블랙 카드까지...그럼 설마 그게 진짜 슈프림 블랙 카드란 말인가?갑자기 등골이 오싹해 났다.그러나 더 길게 생각할 새도 없이 그는 득달같이 달려온 김범식의 무참한 발길질에 차여 바닥에 꿇어앉았다.“이 꼴통 새끼, 눈깔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이 씨발 새끼, 감히 무현 님 카드를 가짜라고 그랬어? 게다가 개새끼라고 욕까지 해? 너 죽어봐라, 이 씨발 놈아.”“형님, 용서해 주십시오... 그만, 더 차 면 저 죽습니다.”바닥에 웅크리고 드러누워 엄현철은 살려달라
진실이 밝혀지자 우예원은 감히 염무현의 눈도 쳐다보지 못했다.‘난 정말 실패한 인간이야... 어떻게 그딴 미친년을 믿을 수 있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염무현을 두고...’게다가 하지연이 증명을 서는 상황에서까지 친구를 믿지 않았다.“이 쌍년이, 지가 꼴값을 떨고 남한테 뒤집어씌우질 않나, 내연남 데리고 와서 지랄을 피우질 않나. 이것들이 사람을 괴롭혀도 유분수지. 아, 나 진짜 빡치네!”김범식은 달려가서 여자를 구둣발로 정신없이 걷어찼다.“내가 여자를 안 때리긴 하지만 너 같은 년은 사람 새끼도 아니야!”그는 발길질하며 입으로 계속 욕을 퍼부었다.모두 간담이 서늘해져 입도 뻥끗 못 하고 있었다.“야! 여기 이 두 연놈 치워라!”김범식이 팔을 휙 내젓자, 그의 수하 몇 명이 즉시 앞으로 다가와 살았는지 죽었는지 축 늘어져 있는 두 사람을 별실 밖으로 들고 나갔다.다 처리하고 나서 김범식은 또 급히 염무현 곁에 다가서서 낮은 소리로 얘기했다.“무현 님,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둘은 앞으로 서해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이 정도면 마음에 드십니까?”김범식은 두 눈으로 직접 봐서 잘 알고 있다. 염무현은 의술에서만 귀재일 뿐 아니라 무력 또한 막강하다. 게다가 공규석과 공혜리 부녀의 중시까지 더해져 그는 염무현에 대해 탄복할 따름이고 마음속으로부터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무조건 염무현의 심기를 풀어드려야 했다.드디어 그는 염무현이 고개를 약간 까딱하는 걸 보았다. 이번 일은 끝내 해결이 된 것이다.염무현이 갑자기 되물었다.“당신은 왜 여기 있어요?”“전 형님의 신변 보호를 위해 따라온 겁니다.”김범식이 대답하더니 한마디 더 보탰다.“형님이 바로 위층에 있는데, 혹시 저랑 올라가시지 않겠습니까? 무현 님을 보면 형님이 매우 기뻐하실 겁니다.”“날 보고 싶으면 내려오라고 해요.”담담한 말투로 염무현은 말했다.잠깐 멈칫하더니 김범식은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무현 님은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