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홍도가 고개를 끄덕였다.“맞는 것 같네요! 제가 우현이 칠요보연을 얻게 되면서 현염초와 진원천정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너무 흘러 그때 기억이 잘...”칠요보연은 연홍도가 30년 전 우연히 사게 된 물건이었다.연씨 가문 보물창고에서 가격이 수억대 나가는 보물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연희주의 병만 아니었다면 보물창고에 이런 물건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그는 세계에서 유명한 신의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칠요보연을 공개한 것이다.“저한테 시간을 좀 주시면 수소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연홍도의 말에 염무현이 웃으면서 말했다.“네. 그러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아직 찾은 건 아니니까 미리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연홍도가 급히 말렸다.염무현은 그가 찾아내지 못한다고 해도 고마운 마음은 가슴속에 간직하려고 했다.연희주는 몰래 연홍도에게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전에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면 지금은 좋은 타이밍이 온 것이 틀림없었다.“염무현 님, 저도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말씀드려도 될까요?”염무현이 흔쾌히 대답했다.“말씀하시죠.”연홍도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딸을 힐끔 쳐다보고는 기대에 찬 말투로 말했다.“희주의 목숨을 살려준 것도 모자라 체내에 있는 현무의 냉기마저도 주셨죠. 정말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혹시 제 딸을 염무현 님께 드려도 될까요?”공혜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이래도 된다고? 딸을 선물한다고? 세상에! 연씨 가문이라면 한 세기 전부터 명문가로서 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이렇게 경솔한 결정을? 분명 희주 씨의 생각일 거야. 아니면 아버지한테 여러 번 재촉할 리도 없어.’하지만 정작 연홍도가 입 밖에 냈을 때 연희주는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공혜리는 거대한 위압감이 엄습해 오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이 감정은 우예원, 하지연과 이은서한테서도 느꼈던 감정이었다.최근의 일을 꼽자면 조금 전에 양희지가 동창회에서 재혼하자고 했을
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연홍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연희주는 자신을 과대평가한 것이 맞았다.얼굴을 마주하면서 혼인을 거론하면 태연하게 받아들일 줄만 알았는데 정작 아버지가 입밖에 내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긴장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염무현이 제자로 받아들여달라고 이해했기 다행이지 아니면 민망해서 죽을 뻔했다.연홍도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하지만 공혜리한테는 여전히 위협적이었다.연희주 이 계집애가 어느 날 가장 강한 연적이 될 줄은 몰랐다.잘못하면 연씨 부녀의 계획에 걸려들 뻔했다.공혜리는 워낙 똑똑해서 이 부녀의 속셈을 진작에 알아챘다.‘직접 만나서 혼인을 거론하려고 했다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아무리 혼인을 맺는 것이 아니라 사부와 제자의 연을 맺는다고 해도 맨날 곁에 붙어있으면 없던 정도 생기겠네!’사부와 제자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혈기가 왕성한 젊은 남녀가 눈만 맞으면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안 돼! 어떻게든 말려야 해!’이때 공혜리는 고서은의 말이 떠올랐다. 먼저 움직이는 자가 임자라는 것을 말이다.“무현 씨, 저를 제자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연홍도도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체내에 있는 현무의 냉기를 어떻게 수련해 야하는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염무현 님밖에 모릅니다. 제 딸을 제자로 받아주시지 않으면 이대로 낭비할지도 몰라요!”연홍도는 아쉽기만 했다.분명 혼인을 맺어야 하는데 말이다.‘왜 사부님으로 모시겠다는 거야. 이건 엄연히 다르잖아.’염무현은 결국 찌푸렸던 미간을 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연희주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그녀가 보기에 일거양득이었다.민망해질 필요도 없이 염무현의 곁에 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아버지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했다.‘젊어서 좋네. 일을 쉽게 쉽게 생각할 수 있고. 분명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문젠데 굳이 돌아서 가다니. 나중에 이대로 갔다간 자기
법전이 언제 풀릴지는 염무현도 몰랐다.하지만 허문정 같은 병신도 옥반지를 컨트롤할 수 있는걸 보면 염무현도 언젠간 그럴 수 있었다.이때 밖에서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려왔다.창문을 통해 확인해 보니 마당에는 두 대의 고급 차가 세워져 있었다.차 번호를 보니 벤틀리 차량은 진경태의 것으로 확인되였고 클리넌 차량은 공규석의 것으로 확인되였다.역시나 그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려 마당으로 걸어들어왔다.‘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지?’공규석이 초인종을 누르려고 했을 때, 염무현이 먼저 문을 열어주었다.“무현 님, 이렇게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공규석이 급히 양해를 빌었다.염무현이 말했다.“들어와서 말씀하시죠.”거실에는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잠옷을 입고있는 긴 생머리의 우예원이 이들을 위해 마실 차를 준비했다.“감사합니다.”이 둘은 예의 갖춰 고마움을 표시했다.염무현이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무슨 일인데요?”진경태는 부탁하기 어려웠다.“저희 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어서 무현 님께 부탁하러 왔습니다. 서씨 가문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이후로 몇몇 지하 세력들이 서해 땅을 노리는 중입니다.”공규석이 이어서 말했다.“사실 예전부터 서해 땅을 접수하려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저씨가 지키고 있어서 아무도 건드리는 자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물려받아서는 세 번이나 위험해질 뻔했는데 그래도 제가 잘 막은 덕에 지킬 수 있었죠. 제가 이 바닥에서 손을 씻으면서 서경철이 물려받았고, 쌍방이 손해를 입긴 해도 최소한 주권은 저희 서해에서 쥐고 있었죠.”그런데 서씨 가문이 사라진 이후로, 공규석과 진경태는 염무현의 요구대로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상대방은 기회가 왔다 싶어 몇 번이고 서해의 물을 흐려놓아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고 사람을 보냈었다.진경태와 공규석은 이방인이 서해시를 훼방 놓게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다.제대로 나서려고 했지만 이들의 실력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오랫동안
“무현 님, 그러면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공규석과 진경태는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1호 별장을 떠났다.염무현이 직접 나서면 아무도 서해시를 넘보지 못했다.서해 땅을 노리고 있는 놈들은 아마도 꿈을 깨야 했다.염무현이 2층으로 올라가려고 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는 다름아닌 연홍도였다.“무현 님, 방금 조사해 봤는데 구천명이라는 사람이 현염초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분도 저처럼 골동품을 수집하기 좋아해서 몇 번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염무현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가능성이 얼마나 큰데요?”“장담할 수가 없습니다.”연홍도가 말했다.“저희는 워낙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는지라 겸손하게 살고 있습니다. 노출되었다간 타깃이 될 것이 뻔하거든요. 누군가 구천명 씨가 서양 몰락 귀족한테서 골동품을 한 아름 사 갔다고 했습니다. 이 골동품들은 선조 말기 때 침략자들이 혼란을 틈타 궁궐에서 훔쳐 갔던 것입니다. 현염초는 고급 약재로서 황실에서나 사용할 법한 약재입니다. 제가 보기엔 구천명 씨가 현염초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염무현은 어느정도 마음을 먹었다.“어디 계세요? 제가 좀 만나볼 수 없을까요?”연홍도가 말했다.“만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구청명 씨는 워낙 성격이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라 낯선 사람을 만나기 두려워하거든요. 저도 말 한마디 못 해봤습니다. 그런데 내일 한 경매장에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 기회를 빌어 접근하면 될 것 같습니다.”염무현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주소 좀 알려주세요.”“직접 가시게요?”연홍도가 급히 말렸다.“제가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일면식 있는 사람이라 마음을 열지도 몰라요.”“그러실 필요 없습니다.”염무현이 공손하게 거절했다.연홍도의 방법이 더 효과적일진 몰라도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사실이었다.성공할 수 있을지도 보장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렇다면 직접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이때 연홍도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경매는 한 유람선에서
이게 바로 눈물겨운 부성애이지 않겠는가?옛날처럼 꽉 막힌 것도 아니고 스승과 제자가 이어질 수 없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연홍도는 장인어른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딸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을 다했다.세 사람은 다시 차에 올라탔고, 3시간 동안 달려 고속도로를 타고 항구로 향했다.전담 운전기사는 무표정하게 운전에만 집중했지만, 사실은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왜냐하면 연홍도가 조수석에 앉았기 때문이다.만약 평소라면 뒷좌석에 탔을 것이다.현재 그들이 타고 있는 클리넌은 튜닝을 진행했는데 뒷줄의 회장님 시트는 각종 첨단 하이테크 기능이 탑재되었다.그러나 지금 뒷좌석을 차지한 사람은 연희주와 평범한 외모의 젊은 남성이었다.연희주는 연씨 가문에서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로서 뒤에 탄다고 해도 그나마 이해는 가지만, 연홍도가 고작 젊은이를 위해 자기 자리를 선뜻 내어줬다는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었다.게다가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차에 올라타자마자 연희주는 젊은 남자와 딱 붙어 앉았는데, 다정한 연인의 모습이 따로 없었다.연씨 가문은 무려 재벌이고 어려서부터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기에 양반집 규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정녕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걸 모른단 말인가?이는 예의를 중요시하는 집안에서 절대로 용납 불가능했다.설령 연희주의 처사가 미숙하다고 한들 나이를 핑계 삼을 수 있지 않은가?사랑을 처음 하거나 이성에 눈이 먼 탓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연홍도 역시 같은 차를 타고 있었다.심지어 코앞에서 왜 묻지도 따지지도 않냐는 말이다.이 세상의 모든 딸은 아버지의 보물이기 마련일 텐데 힘들게 키운 금지옥엽 같은 아이가 별 보잘것없는 남자에게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지켜만 보면서 꿈쩍도 안 한다니?운전기사는 그저 경악하기 바빴다.만약 조금만 더 자세히 관찰했더라면 연홍도가 화를 내기는커녕 내심 흐뭇해한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널찍한 뒷좌석은 최소한 절반이 비어 있었다.염무현은 시종일관 자
비록 연희주는 나이가 어려 사회적 경험이 없는 편에 속하지만 어려서부터 컬렉션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경매에 관련하여 꽤 많이 알고 있었다.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속한 경매회사는 봄 혹은 가을에 옥션을 진행하거나 각종 이벤트를 통해 전국 각지의 컬렉터들의 관심을 이끈다.다만 유람선에서 경매를 진행하는 건 여태껏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연홍도가 웃으면서 말했다.“왜냐하면 바다 위에서는 더 편리하거든.”차에 전부 믿을 만한 사람이 탔는지라 그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골동품이나 고대 문물의 거래에 대해 많은 국가는 엄격한 법률 규정이 존재해. 상아 조각품 또는 춘추전국시대의 청동기 그리고 수많은 출토 유물을 매매하는 건 불법이야. 따라서 위험을 무릅쓰고 암거래할 바에는 유람선을 타고 공해로 나가면 법의 구속을 당할 필요가 없잖아.”연희주가 문뜩 깨달았다.“그렇군요. 거래가 없으면 피해도 덜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네요.”곧이어 일행은 항구에 도착했다.부두에 호화 유람선 한 척이 정박해 있었고, 옆에 보이는 주차장에는 다양한 모델의 고급차들이 빼곡히 들어섰다.그만큼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이 결코 일반인은 아니라는 것을 유추해낼 수 있다.셋은 이내 차에서 내렸다. 연홍도는 비록 즉흥적으로 참가하기로 했으나 막강한 인맥을 동원해 VIP룸 티켓 3장을 얻었다.보통 경매장과 달리 유람선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유료 티켓이 필요했다.설령 아무것도 안 사더라도 크루즈 여행 겸 다녀올 수 있기에 절대로 밑진 장사는 아니었다.“세 분, 이쪽으로 오세요.”안내 직원이 티켓을 확인하고 세 사람을 맞이했다.“괜찮아요, 저희가 알아서 둘러볼 테니까 굳이 따라오지 않아도 돼요.”연홍도는 팁으로 현금 한 뭉치를 꺼냈다.직원은 연신 감사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떠났다.“출항하기 전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까 난 룸으로 가서 좀 쉴게.”연홍도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제안했다.“젊은이들끼리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네!”연
이 점에서 연희주는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더 성숙한 모습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나이가 많은 사람과 비교하더라도 뒤지지 않았다.단순히 비싼 물건이라서 혹은 허영심을 충족하거나 화려하다는 이유가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이런 왕관은 설령 구매한다고 해도 유리장 안에 고이 모셔다 두는 것을 제외하고 아무런 실질적인 용도가 없었다.과연 직접 착용하는 사람이 있을지 싶었고, 가장 큰 단점이 바로 스타일의 미스 매치였다.“저기 보이는 게 옥으로 만든 전통 나비 장식품 아닌가요?”연희주는 이내 다른 곳에 주의력을 빼앗기고 후다닥 뛰어갔다.염무현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무엇을 보든 새롭게 느껴지는 듯싶었다.게다가 정력까지 넘치지 않는가?이내 뒤따라가려던 찰나 한 젊은 남성이 연희주를 가로막더니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희주야! 정말 너였어?”“부성민?”남자를 발견한 연희주의 얼굴에 기쁨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멀리서 보였는데 왠지 너 같았거든!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나! 너도 경매에 참여하러 온 거야?”부성민이 신이 나서 말했다.이는 누가 봐도 남자가 여자에게 호감이 있는 상황이었다.“그걸 말이라고 해? 설마 이 먼 곳까지 놀러 왔을까?”연희주가 쌀쌀맞게 쏘아붙였지만 부성민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활짝 웃었다.“그러니까 우리는 운명이라는 뜻이지, 코딱지만 한 유람선에서도 마주치다니! 그래, 이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야. 희주야, 신이 베푼 호의를 저버리면 절대로 안 돼, 우리 이참에 그냥...”연희주는 손을 들어 그만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상대방의 말을 끊었다.“스톱! 대체 신이랑 무슨 상관인데? 정녕 하느님의 허락을 받고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그 모습은 마치 여신의 비위를 맞춰주는 시종 같았다.부성민은 연희주를 오랫동안 좋아했을뿐더러 얼빠가 따로 없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독한 외사랑에 불과했다.심지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마저 그가 제멋에 취해 착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똑똑히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인가?”염무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부성민은 두 눈을 부릅뜨고 큰 소리로 호통쳤다.“너 말고 다른 사람 있어? 자기 분수도 모르는 주제에! 얼른 그 더러운 손 놓지 못해?!”구경꾼과 마찬가지로 부성민도 염무현을 사기꾼이라고 확신했다.파렴치한 수법으로 아직 세상 물정에 어두운 백지장처럼 순수한 연희주를 속였다고 여겼다.만약 명문자제였다면 그나마 찍소리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신분상으로 그녀와 어울렸으니까.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싸구려로 감쌌고 명품 한 개조차 없었다.게다가 신분을 나타내는 사치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즉,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재벌과는 전혀 무관했고 시골뜨기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충분했다.이런 하찮은 놈이 대체 무슨 자격으로 연희주의 곁을 지키냐는 말이다.애초에 연희주를 자기 여자로 생각한 부성민은 거의 독점물로 여기다시피 해서 다른 남자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현재 부성민의 모습은 사냥감을 지키는 맹수를 연상케 했고, 날이 잔뜩 서 있었다.“희주한테서 손을 떼지 않으면 그 팔을 잘라 버리라고 할 테니까 두고 봐!”화가 머리끝까지 난 연희주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한 마리의 암사자처럼 으르렁거렸다.“부성민! 작작 해, 여기에 네가 낄 자리가 있다고 생각해? 내가 누구랑 함께하든 신경 꺼. 오지랖이 어찌나 넓은지 괜히 쓸데없는 참견하지 마. 얼른 비키지 못해? 썩 꺼지라고!”보통 남자는 예쁜 여자에게 쓴소리를 듣는 순간 의기소침해서 떠나기 마련이다.그러나 부성민은 달랐다. 연희주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고 확신하는 바람에 그녀에게 현실을 깨닫게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서 빌어먹을 사기꾼의 추악한 민낯을 낱낱이 공개할 작정이었다.따라서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반대로 모든 걸 염무현의 탓이라고 여겨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네 뜻대로 이뤄지게 놔둘 수는 없지! 감히 희주를 속이다니? 꿈 깨!”부성민은 염무현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우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이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