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연희주가 도도하게 말하더니 콜라겐이 가득한 어여쁜 얼굴을 염무현의 몸에 찰싹 가져다 댔다.부성민은 온몸의 힘이 쫙 빠져나가는 듯 순식간에 의기소침하게 변했고 산송장이 따로 없었다.이내 쓸쓸한 표정으로 점점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그리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두 눈에 다시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다정하게 걸어가는 남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화가 난 나머지 이만 바득바득 갈았고 눈빛은 원망과 독기로 가득했다.“염무현라고? 두고 봐!”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딱 기다려, 난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야. 네가 죽으면 희주도 마음을 바꾸고 다시 내 사랑을 받아줄 테니까.”말을 마치고 나서 씩씩거리며 뒤돌아서 떠났다.복도 코너.발갛게 달아오른 연희주의 얼굴은 마치 탐스럽게 익은 사과 같았다.“저기... 사부님, 제가 일부러 거짓말한 게 아니라...”그녀는 수줍은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부성민이 워낙 고지식한 놈이라 그런 소리를 안 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질 거예요.”“그럼 사부님이라고 하면 되지, 굳이 약혼자라고 할 필요 있어요?”염무현이 되묻자 연희주의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고, 심지어 귀까지 핑크로 물들었다.“절대로 안 믿을 거예요. 사부님께서 나이도 어리신데 저랑 몇 살 차이도 나지 않잖아요. 사제 관계라고 하면 설득력이 전혀 없어요.”연희주가 설명을 보탰다.“힘들게 해명하는 대신 아예 단념시키는 게 나아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전 정말 부성민이 싫거든요? 맨날 들러붙어서 짜증 나 죽겠어요.”염무현은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툭 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돌아가는군. 우리 사이를 왜곡한 점만 빼면 완벽해요.”“화나진 않아요?”“그게 왜? 제자를 도와 문제를 해결하는 건 사부의 의무가 아니겠어요?”“사부님 최고! 저 완전 감동이에요.”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메인 홀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향했다.주최 측에서 준비한 경매를 제외하고 입찰자들도 각자의 소장품을
그동안 염무현은 줄곧 옥반지만 연구해 왔다.다만 별다른 성과가 없고 진행 상황이 더뎌서 수시로 지니기로 했는데 어쩌면 알아낼 수 있는 계기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연희주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에 즉시 깨닫게 되었다.이게 바로 옥반지의 비밀이란 말인가?어쩐지 허문정이 어린 나이에 소년 신의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실력도 또래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했더니 그제야 모든 의혹이 풀렸다.다만 그는 너무 건방지고 오만한 게 오점이었다.신비로운 옥반지를 가진 덕분에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전 세계를 휩쓸고 정상에 올라서는 유일한 1인자가 될 줄 믿었지만, 아쉽게도 좋은 패를 쥐고도 망친 케이스였다.허문정이 조금이라도 덜 나댔다면 비참한 죽음까지 맞이하지는 않을 텐데.이내 평정심을 유지하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연희주는 어리둥절한 채 그에게 이끌려 앞에 있는 전시대로 향했다.유리장에 들어 있는 각종 귀중한 골동품과 달리 테이블 위에는 기괴한 모양의 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이건 기석인가요?”연희주는 더더욱 이해가 안 갔다.기석은 사실 큰 가치는 없었다.몇 년 전 컬렉터 사이에서 기석을 수집하는 열풍이 불었는데, 자그마한 돌이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팔려 매매에 뛰어든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그러나 유행은 곧 잠잠해졌고, 업계에 연루된 관계자들은 커다란 손해를 입었다.비록 지금도 기석을 수집하는 마니아들이 꽤 되지만 인기는 물론 가격도 옛날만큼 높지 않았다.“두 분, 구경해보세요.”주인장은 키가 작고 뚱뚱한 중년 남자였는데 쭉 찢어진 두 눈에 총기가 흘러넘쳤다.염무현이 호랑이 무늬의 네모난 돌을 가리키며 물었다.“이거 얼마예요?”“젊은이가 안목이 예사롭지 않군요. 여기서 제일 좋은 기석을 한눈에 알아보다니.”주인장이 신이 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이건 통으로 된 마노인데 수억 년 전에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죠. 소재는 물론 형태, 색상 등 면에서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연희주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허풍 떨지 마
“만약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 물건들은 최고점일 때 사서 돈이 묶여 있는 거죠?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서 제멋대로 가격을 제시하리라는 착각은 버려요. 장사를 이렇게 하면 가뜩이나 몇 안 되는 잠재 고객마저 떨어져 나갈 테니까. 한두 명을 속여서 크게 한탕 해보려는 심산인 것 같은데 일찌감치 단념해요. 아니면 이번에 허탕 친 셈이라 티켓값마저 벌지 못한다고 확신하죠.”그녀의 말에 미소를 짓고 있던 주인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이번에 찐 전문가를 마주친 건가?역시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하더니 옛말이 틀린 게 없었다.기선 제압에 성공한 연희주는 돌멩이를 가리키며 물었다.“얼마예요?”방금 가격부터 묻는 염무현의 행위는 이 바닥에서 절대 금기시하는 것이다.상대방의 구매 의향을 파악한 다음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연희주가 물밑 작업한 덕분에 이제 주인장이 불리한 국면에 빠지게 되었다.컬렉션 대가의 딸답게 그녀는 귀동냥으로 유용한 지식을 꽤 많이 습득했다.선택권은 다시 주인장에게 넘어갔고, 자칫 가격이 비싸서 잠재 고객마저 잃어버리지 않게 꼼꼼히 따져봐야만 했다.“6천만 원...”주인장은 고심 끝에 금액을 제안했다.그래도 줏대는 있어야 하니 바로 최저가부터 시작할 수는 없었다.적어도 흥정의 여지는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너무 수동적일 게 뻔했다.“좋아...”염무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연희주가 불쑥 끼어들었다.“2천만 원! 더는 안 돼요. 팔래요? 말래요?”염무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뜻인즉슨 고작 6천만 원을 굳이 흥정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아가씨, 흥정도 정도껏 해야지. 제가 얼마나 착한 금액을 제시했는지 알아요? 이건 협상이 아니라 통보잖아요.”주인장이 우는 소리를 연신 했다.“본전도 못 뽑겠네요. 진짜 좋은 물건이라고 맹세할게요! 자세히 봐봐요, 어떻게 그 정도로 후려칠 수 있죠?”“좋다고?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연희주는 시큰둥한 표정을
염무현은 휴대폰을 꺼내 카드로 결제했다.연희주가 네모난 돌을 집어 들려고 했지만 무게가 상상을 초월했다.고작 자그마한 돌멩이였지만 체감은 10킬로가 넘어 여자가 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내가 할게요.”염무현이 웃으면서 말했다.연희주는 안간힘을 써서 겨우 들어 올리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할 수 있어요.”입금 문자를 확인한 주인장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이번 매물은 그가 최저가로 싹쓸이해 왔다.비록 몇 년 전 가격과 비교할 바가 안 되지만 꽤 많이 떼어먹은 건 사실이었다.적어도 티켓값은 벌었으니 괜히 오지는 않았다.염무현과 연희주가 떠나자마자 멀리서 한 청년이 허겁지겁 뛰어와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숨을 헐떡거렸다.그리고 간절함이 담긴 눈빛으로 테이블 위를 두리번댔다.“청교인은 어디 있죠?”주인장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그게 뭐예요?”“청교인이요! 호랑이 무늬가 있는 네모난 갈색 마노가 원래 여기 있지 않았나요?”청년이 손을 들어 아래를 가리켰다.주인장은 의혹을 감추지 못했다.“왜요? 그쪽도 관심이...?”“당연하죠! 아니면 급하게 뛰어올 필요도 없었겠죠.”청년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고, 말투에 불쾌함이 담겨 있었다.그리고 더는 실랑이하기 싫은 듯 바로 휴대폰을 꺼냈다.“얼마죠? 말만 해요, 제가 무조건 살 거라.”남는 게 돈인 쩐주가 또 나타나다니!그의 이름은 여도혁으로 꽤 유명한 골동품 감정사였다.또한 제일 특화된 분야가 바로 보석류의 감정이다.비록 나이는 어려도 업계 내에서 인기가 있는 편에 속했다.그 외에도 대단한 사부님을 모시고 있는데 바로 보물 감별 대사로 소문 난 맹승준이다. 자신의 수집품을 감정 맡기고 싶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앞다투어 그를 찾는지 모른다.아까도 사부님이 말씀하길 기석 진열대에 청교인이라는 네모난 마노를 발견했는데 흔치 않은 보물이라고 했다.하지만 정작 물건의 주인은 그 가치를 잘 모르는 듯싶었다.따라서 구경하는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인위적인 수공
연희주는 잔뜩 경계하는 얼굴로 낯선 불청객을 바라보았다.“웃기고 자빠졌네! 그쪽 사부가 먼저 찜해두었다고 본인의 물건이라는 보장은 없잖아? 무슨 이런 막무가내가 다 있어? 그렇다고 본인이 직접 찾아온 것도 아니고, 왜 애먼 제자를 보낸 거지? 설마 우리가 골동품 거래의 암묵적인 룰마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누가 먼저 찜하든 상관없이 먼저 사는 사람이 임자이거든!”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곱게 자란 건 사실이지만, 성격마저 순하다는 뜻은 아니었다.더욱이 예의 없는 상대방 때문에 대뜸 손부터 대려고 하니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화를 내기 마련이다.심지어 이는 염무현의 물건이지 않은가?여도혁은 고작 어린 계집애한테 면박 당할 줄은 몰랐는지라 머쓱하게 말했다.“오해야, 아마도 내 표현 방식이 문제 있는 것 같은데... 그럼 돈 주고 사는 건 어때? 얼마에 샀는지 물어볼 생각도 없으니까 마음대로 가격 제시해. 절대로 흥정하지 않을게.”연희주는 딱 잘라 말했다.“안 팔아.”무려 사부님의 마음에 든 물건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순순히 내어줄 수 있겠는가?“그럼 더블로! 아니, 세 배로 줄게.”여도혁이 통이 크게 손가락 3개를 내밀었다.물론 배포가 큰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은근히 화난 기색을 내비쳤다.뜻인즉슨 두 사람에게 좋은 말할 때 잘하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얼른 청교인을 내놓지 않으면 큰코다칠지도 모를 테니까!“개뿔도 없으며 허세 부리기는! 돈 있으면 다야?”연희주는 눈앞의 남자가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우리가 거지도 아니고, 3배는커녕 30배, 심지어 300배를 준다고 해도 안 팔아! 저리 비켜, 얼른 가봐야 하니까.”분노가 차오른 여도혁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경고하는데 괜히 화를 자초하지 마. 계집애 주제에!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그런 말투로 대꾸하는 거야? 어디서 제 분수도 모르고! 순순히 청교인을 내놓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그러운 아량으로 용서해줄게. 아니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줄 알아.”이제는 빼앗아
여도혁은 두 사람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무례하게 구는 염무현과 연희주를 손을 볼 기세였다.“이 자식이! 방금 너 자신이 내뱉은 말 때문에 참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여도혁이 천천히 손을 들자 회색 기운이 스멀스멀 모여들기 시작했다.이내 사람들은 숨 막히는 압박감을 느꼈다.“무력을 모으다니? 이건 대성 마스터만이 가진 스킬인데?”“세상에, 이 나이에 벌써 대성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수준이라니? 감탄이 절로 나오는군!”“저 커플은 죽었어! 그러니까 사람은 절대 건방지게 굴면 안 된다니까.”여도혁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염무현을 바라보았다.“아직 출항하기 전이라 사람을 죽이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 널 죽이고 아무 데나 쑤셔 넣고 공해까지 나간 다음 상어 먹이로 바다에 내동댕이칠 거야.”염무현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앞으로 나서 연희주를 막아섰다.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꾀꼬리처럼 청아한 목소리가 대뜸 울려 퍼졌다.“무슨 일이죠?”목소리의 출처는 드레스 차림의 젊은 여자였는데 뛰어난 미모와 남다른 분위기를 자랑했다.깔끔하게 재단한 실크 드레스는 여자의 아름다운 S라인 몸매를 여실히 드러냈고, 하이힐을 신은 채 완벽한 캣워크를 선보이며 다가왔다.그녀의 아름다움은 공혜리의 카리스마 넘치는 대표 이미지와 달랐고, 또한 연희주의 청순하고 푸릇푸릇한 모습과도 거리가 멀었다.이는 성숙한 지적미로서 일거수일투족에 이미 교양이 묻어났다.이런 분위기는 절대로 후천적으로 형성될 수 없으며 그녀는 누가 봐도 명문가 출신이었다.“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뭐 하는 거죠? 누가 소란이라도 일으켰나요?”구경꾼들은 자발적으로 그녀를 위해 길을 비켜주었다.“안녕하세요, 유시인 씨.”“저희는 단지 구경만 하는 거니까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젊은이들이 철이 없어서 시비가 붙었을 뿐이에요. 저희랑은 전혀 무관하거든요?”그녀는 바로 이번 유람선 경매의 주최자였다.유씨 가문은 워낙 세력이 막강해서 동부 연안의 3대 도시를 이끄는 왕이라고
말을 마친 그는 씩씩거리며 뒤돌아서 떠났다.“형, 사부님께서 형한테 가보라고 해서 왔어요. 혹시 청교인은 손에 넣었어요?”부성민이 옆에서 다가와 물었다.“아까 시인 씨를 마주쳤는데 왠지 기분이 언짢아 보이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여도혁이 화를 감추지 못했다.“말도 마. 어떤 커플이 청교인을 먼저 사 갔는데 자칫 시인 씨의 심기를 건드릴 뻔했어.”그는 이대로 넘어갈 생각은 없는 듯싶었다.“대체 어떤 간덩이가 부은 놈이 형의 물건을 탐내는 거죠?”부성민이 펄쩍 뛰었다.여도혁은 뒤돌아서 앞을 가리켰다.“저 둘이야.”부성민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분통을 터뜨렸다.“젠장! 또 저 자식이라니.”“아는 사람이야?”여도혁이 되물었다.부성민은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한껏 부풀려서 다시 설명해주었다.“그래? 빌어먹을 놈이 사부님의 보물을 빼앗아 갔을뿐더러 사람들 앞에서 나한테 망신까지 주고 감히 우리 동생의 여자 친구를 가로챘단 말이지?”여도혁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그럼 더더욱 살아서 땅을 밟게 해줄 수는 없지. 사람 두 명을 보내 미행시키고 기회가 생기면 바로 죽여버리자.”부성민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유씨 가문은 어떡하죠? 형은 시인 씨의 눈 밖에 나는 게 걱정되지 않아요?”“몰래 처리하면 아무도 모를 텐데 유시인이라고 별 수 있겠어?”여도혁은 전혀 걱정 안 되는 듯 코웃음을 쳤다.“설령 귀에 흘러 들어간다고 한들 사부님의 체면을 봐서라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어.”“역시 현명하군요!”부성민은 여도혁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지금이라도 염무현을 죽이면 연희주가 다시 그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생각만 하면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애초에 사형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 찾아왔지만, 어쨌거나 여도혁은 사부님과 함께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유람선을 탔는지라 고작 자신의 질투심 때문에 본때를 보여주는 사소한 일에는 관심이 없을 거로 여겼다.결국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심지어 돈을 주고 부탁할 생각까지 했다.
‘얼른 날 청교인 위에 올려줘.’여자의 목소리는 기대로 가득 찼고, 신난 기분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그러나 염무현은 꿈쩍도 안 하고 느긋하게 되물었다.“네가 누군데?”‘모르는 척하기는!’여자는 초조한 말투로 짜증 난 듯 쏘아붙였다.‘지금 손에 끼고 있는 반지 말이야.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허문정의 손에서 빼앗아 올 때는 언제이고, 그동안 진법을 풀기 위해 계속 시도한 목적도 나랑 같지 않아? 이제 기회가 코앞에 놓였는데 뭘 망설이고 있는 거지?’염무현의 표정은 여전히 태연하기만 했다.“그래서 지금 본인이 반지라고?”‘당연하지!’여자는 씩씩거리며 대답했다.염무현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매정하게 말했다.“마지막 기회를 줄 테니까 잘 생각해보고 대답해. 본인이 반지라고 확신하는 거야?”지금 장난하나? 사실 반지에 숨어 있는 미스터리 거물이 바로 그녀였다.하지만 반지는 단지 매개체일 뿐,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엄연히 다른 존재였다.‘너...!’여자의 목소리에 주체할 수 없는 화가 묻어났다.‘그런 쓸데없는 질문은 대체 왜 하는 거야? 그래, 어차피 알려준다고 해서 큰일 나는 건 아니니까. 똑똑히 들어, 난 청교의 여왕 백희연이야, 태어날 때부터 왕의 자리를 계승할 운명을 지닌 사람이라고! 이 세상을 통틀어 천상계를 제외하고 우리 청교가 꽉 잡고 있었지. 그리고 청교는 바로 내가 이끌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 것 같지? 너 같은 평민에게 신분을 공개했으니 이제 경배하도록 허락할게. 너무 공경할 필요는 없고 108배나 하면 돼. 괜히 많이 해봤자 시간 낭비일 뿐이니까.’염무현은 속으로 그녀가 아주 심한 자아도취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경배하라니?“그렇게 대단한데 왜 반지에 갇혀 있지?”단 한 마디에 백희연은 말문이 턱 막혔다.‘그건... 사고였어! 당시 한 도사의 음모에 빠져 실수로 붙잡히는 바람에 반지 안에 무려 천 년 동안 갇혀 있었거든. 다만 상대방 역시 이득을 본 건 없었고, 허구한 날 반지를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