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2화

“좀 늦네...”

염무현은 약간 의외라는 표정으로 텅 빈 주변을 둘러봤다. 그가 4년 동안 그려오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양희지도 약속처럼 그가 출소하자마자 달려와서 안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양희지가 괜히 급하게 운전하다가 사고라도 당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무렵 하늘에서는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야 차 한 대가 그의 앞으로 와서 멈춰 섰다.

염무현은 빠른 걸음으로 마중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사람은 그가 기다리던 양희지가 아닌, 그녀의 친구 조윤미였다.

“윤미 씨가 어떻게 왔어요? 희지는요?”

조윤미는 한 손으로 우산을 든 채 차갑게 말했다.

“양 대표님은 오지 않으셨어요. 저는 이제 대표님의 비서이니, 조 비서님이라고 불러줘요. 그리고 이건 대표님이 전해달라고 하신 물건이에요.”

조윤미는 염무현에게 서류를 건네줬다. 이혼 합의서라는 커다란 다섯 글자는 눈이 아플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염무현도 놀란 듯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금방 미소를 되찾으면서 말했다.

“장난인 거 다 알아요. 희지한테 얼른 나오라고 해줘요.”

조윤미의 얼굴에는 언짢은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장난 아니거든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있듯이, 4년도 마찬가지예요. 염무현 씨 당신은 이제 우리 대표님과 어울리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이죠?”

염무현은 조윤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한결같이 냉정했다.

“지금의 당신은 우리 대표님과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요. 양 대표님은 서해 최고 미녀 대표이사로 불리고 있어요. 당신의 존재는 대표님의 명성에 누가 될 뿐이에요. 대표님의 회사를 위해서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떠나줘요. 괜히 근처를 맴돌면서 걸림돌이 되지 말고요.”

“내 존재가 뭐 어떻다고요?”

“염무현 씨는 전과자인 반면, 양 대표님은 대기업의 대표이사예요. 차도, 집도, 쓰는 물건도 전부 최고급이죠. 대표님과 가까이할 수 있는 사람도 이제는 업계의 거물밖에 없어요. 그런데 염무현 씨가 무슨 자격으로 대표님께 질척대죠?”

조윤미는 잔뜩 무시하는 표정으로 오만하게 말했다. 그런데도 염무현은 애써 분노를 억누르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어쩌다 전과자가 됐는지, 윤미 씨도 알잖아요.”

조윤미는 피식 웃더니 팔짱을 끼면서 받아쳤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제는 조 비서님이라고 불러줘야 하고요. 돈 달라는 말을 굳이 돌려서 하지 않아도 돼요. 얼마면 순순히 떨어져 줄 건데요?”

“희지한테 직접 만나서 얘기하자고 전해줘요.”

“대표님은 이런 사소한 일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 분이 아니세요. 오늘도 엄청난 거물과 만나야 한다고요.”

“이혼이 어떻게 사소한 일이에요? 희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나랑 만나줄 시간도 없는 거예요!”

염무현의 견고한 태도에 조윤미는 결국 미간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자꾸만 주제넘게 행동하지 말죠? 염무현 씨가 자리 비운 사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당신의 머리로는 이해하지도 못할 정도로요. 대표님과 만난다고 한들 어떻게 할 건데요? 대표님께서 정하신 일은 아무도 바꿀 수 없어요!”

“...”

“이혼 합의서에 사인만 해주면 공짜로 차와 집을 줄게요. 물론 6억 원의 위자료도 있어요. 대표님은 이미 사인하셨으니, 염무현 씨가 버텨봤자 소용없을 거예요. 그리고 최근 ZW그룹의 도련님이 대표님께 호감을 보이고 있는데, 대표님도 슬슬 받아주실 생각이래요.”

“ZW그룹이요? 설마 그 사람이 남도훈은 아니죠?”

조윤미는 차가운 목소리로 위협했다.

“남도훈 씨 맞아요. 남씨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염무현 씨도 알죠? 합의서에 사인을 안 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요.”

염무현은 관절 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신부대기실에 쳐들어간 변태도, 염무현을 교도소에 가게 만든 사람도, 다름 아닌 남도훈이었기 때문이다.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