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루에 몇백만 원씩 하는 스위트룸에 있다고? 개자식, 감히 우리 희지 돈을 이런 식으로 낭비해? 아무래도 네가 들은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은 모양이야.”서아란은 염무현이 쓰는 돈이 아까워서 손이 다 벌벌 떨릴 지경이었다. 양준우도 마찬가지로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그러니까! 난 스위트룸이라는 걸 구경도 한 적 없어!”모자는 곧바로 기세등등해서 히스턴 호텔로 출발했다....같은 시각, 염무현은 호텔에서 느긋하게 천 가방을 정리했다. 가방 안에는 여러 가지 은행의 블랙카드만 해도 수십장이 있었다.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50%의 재산을 내놓아야만 염무현을 의사로 청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그는 10%만 남기고 나머지 90%는 전부 기부했다. 그런데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남았다.그의 재력으로 양희지는 얼마든지 평생 놀고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듯 편한 길을 놔두고 굳이 힘든 길을 선택했다.블랙카드 말고는 그가 사부님에게서 물려받은 자그마한 가방이 있었다. 이는 노루 가죽으로 만든 가방인데, 침술 도구를 보관하는 데 쓰였다.사부님에게서 받은 유일한 물건인 노루 가죽 가방은 그에게 아주 소중한 것이었다. 이 가방을 물려준 계기로 그의 사부님은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쾅쾅쾅!급박한 노크가 들려오자, 염무현은 당연히 공혜리가 도착한 줄 알고 문을 열었다.“준우랑 어머님이 여긴 어떻게...?”염무현은 잠깐 멈칫하면서 물었다. 그가 자신을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원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던 서아란은 급기야 인상까지 썼다.“왜, 우리가 오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어디서 감히 우리 누나 돈으로 잡은 스위트룸에서 잘난 척이야!”양준우는 염무현을 팍 밀치더니, 당당하게 소파로 가서 앉았다. 서아란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보탰다.“너랑 희지 일은 우리도 들었다.”“네, 저희 이혼했어요.”“흥, 알면 됐다! 희지도 참 박복하지. 어쩌다 너 같은 개자식을 만났을까. 네가 시간을 낭비하지만
염무현은 옛정을 봐서라도 가만히 있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서아란에게 말했다.“어머님,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퉷! 누가 네 어머님이라는 거니? 전과자 주제에 못 하는 말이 없구나.”양준우는 블랙카드를 한가득 집어 들더니 무시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돈을 만져본 적도 없으면서 가짜 카드는 많이도 쟁여놨네. 이 쓰레기는 또 뭐야?”양준우는 노루 가죽 가방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당연히 길가에서 주운 쓰레기쯤으로 생각하고서 말이다.“건드리지 마!”염무현은 참다못해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양준우는 가방을 돌려주기는커녕 바닥에 던져서 힘껏 짓밟았다.“쓰레기 전과자 물건이면 다 쓰레기지 뭐!”“제기랄!”염무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어찌나 힘을 줬는지 관절에서는 뚜두둑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주먹은 결국 퍽 소리와 함께 양준우의 얼굴에 떨어졌다.양준우는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한쪽 얼굴은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부어올랐다.“내가 어쩌다 교도소에 들어갔는데, 네가 나를 전과자라고 욕보여? 네 부모한테서 배우지 못한 예절, 내가 가르쳐줄게!”“네가 감히 내 아들을 때려? 그래, 너 오늘 한번 죽어 봐라!”서아란은 손톱을 세우면서 염무현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서서히 고개를 돌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무겁게 말했다.“꺼져!”염무현의 눈빛에 겁먹은 서아란은 안색이 삽시에 창백해지더니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양준우는 이 틈을 타 꽃병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독기 서린 표정으로 그의 뒤통수를 노리면서 외쳤다.“죽어!”“그만!”이때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밖에는 어느샌가 건장한 경호원들을 데리고 온 미모의 여자가 서 있었다. 또렷한 이목구비와 완벽한 몸매는 사람들이 흔히 예쁘다고 칭찬하는 연예인이 무색해질 정도였다.양준우는 꽃병을 쳐든 동작 그대로 멈춰 섰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어느 분이 염무현 님이시죠?”염무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내가
뚜두둑!양준우의 두 다리는 부러지면서 이상한 각도로 휘어졌다. 백골이 살가죽을 뚫고 나오면서 피는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아악! 내 다리...!”양준우는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그의 비명은 방을 넘어 복도까지 울렸다. 서아란은 아직도 욕설을 퍼부으면서 황급히 그를 향해 달려갔다.“미친년, 감히 내 아들한테 손을 대다니-!”핸드폰을 꺼내든 서아란은 아무에게나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경호원이 눈치 빠르게 핸드폰을 쳐냈다.“염무현 님을 욕보인 결과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기억해요! 복수를 원하면 나 공혜리를 찾아와요.”공혜리는 경호원을 향해 머리를 돌리더니 차가운 말투로 또박또박 말했다.“두 사람을 밖에 내던지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염무현 이 개자식아! 내 아들이 이런 꼴을 당하도록 가만히 내버려둔다, 이거지? 내가 너희 둘을 무조건 찢어 죽이고 말 거야! 무조건!”경호원은 서아란의 아우성을 철저히 무시한 채 밖으로 끌어냈다. 방안이 다시 고요함을 되찾고 공혜리는 공손하게 말했다.“무현 님, 죄송합니다. 제 아버지는 병원을 떠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시라, 결국 제가 이렇게 모시러 왔습니다. 제 아버지는 지금 서해병원보다 조금 더 가까운 우리병원에 계십니다.”병원에는 헬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VIP를 위한 통로도 있었다. 그래서 염무현은 어쩌면 이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면서 대답했다.“괜찮아요.”병을 보이고 싶으면 직접 찾아오라는 규정이 생긴 이유는 그가 얼마 전까지 교도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단한 의사라고 해도 죄수는 죄수였으니, 그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는 교도소까지 직접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그러니 적당히 변화를 줄 필요가 있었다. 병원에 있는 환자를 호텔에 데려오는 것도 참 멍청한 일이었기 때문이다.공혜리는 시름을 놓은 듯 풀린 표정으로 빠르게 말했다.“그럼 이만 출발해도 될까요?”호텔 대문 밖에서 서아란은 아직도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경호원이 내치는 바람에 계단을 구르며 생긴
“하, 나는 그런 소식 못 들었거든? 거짓말을 하더라도 상대는 가려야지!”이때 양문수가 여러 사람과 함께 부랴부랴 달려왔다. 다리가 부러진 양준우와 얼굴이 퉁퉁 부은 서아란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이게 다 염무현 그 개자식 때문이에요! 우리가 불륜녀한테 맞는 꼴을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더라니까요?”서아란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한탄했다. 그러자 양문수는 분노를 억누르는 듯 인상 쓰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여보. 내가 무조건 복수해 줄게. 하지만 지금은 치료가 우선인데... 왜 아직도 이러고 있어?”서아란은 사실에 과장을 보태 한참이나 설명했다. 의사가 듣다못해 미간을 찌푸릴 정도로 말이다.“내가 병원장한테 전화할게. 우리가 어떤 사람인데, VIP 병동 하나 못 쓰겠어?”양문수는 당당하게 말하면서 전화하러 갔다. 서아란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의사한테 비아냥댔다.“들었지? 천한 것들은 이래서 문제야. 오늘 일은 너희 병원장한테 전부 이를 줄 알아!”얼마 후 양문수는 복잡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서아란은 그것도 모른 채 병원의 보안요원에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당장 우리를 VIP 병동으로 모셔가지 않고 뭐해?!”“저... 여보, 이번은 아무래도 일반 병동을 쓰는 게 좋겠어. 병원장이 가장 좋은 교수를 보내주기로 했으니까-”“그게 무슨 뜻이에요? 내 체면도 안 봐주겠다는 거예요?”양문수는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병원에 엄청난 거물이 왔나 봐. 그래서 VIP 병동을 통제하고 있대.”“거물? 그게 누군데?”서아란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보기에 양씨 가문보다 대단한 가문은 없었기 때문이다.자세한 상황은 전해 듣지 못했던 양문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몰라, 하지만 우리가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인 건 확실해. 그러니 일반 병동에서 치료받자. 지금은 준우를 치료하는 게 우선이야.”서아란은 목소리를 낮추더니 연신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그래, 일반
“난 모르는 사람이에요. 내가 모셔 온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고요!”공혜리는 당황한 표정으로 염무현에게 설명했다.“무현 님, 저를 믿어주세요. 저는 진짜 모르는 사람이에요!”염무현과 같은 고수를 두고 다른 사람을 부른다는 것은 엄청난 실례였다. 그건 그에 대한 불신을 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 급하다고 해도 공혜리는 이런 저급한 실수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그럼 저분은 누구죠? 형님을 모셔 올 때 따라오길래, 저는 당연히 아가씨가 찾은 분인 줄 알았거든요...”이때 의사 가운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이 들어왔다. 선두에 선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병원의 병원장 유재영이었다.“공혜리 씨, 제가 소개해 드릴게요. 이분은 제 의대 선배님이시자, 제원 최고 신경외과 교수이신 이승휘 교수님이세요.”유재영의 말을 듣고 공혜리는 눈을 반짝이면서 물었다.“현대 의학의 최고 경지에 오르셨다는 그 이승휘 교수님이요?!”노인은 몸을 돌려 공혜리를 힐끗 봤다. 그리고 손을 휘휘 저으면서 겸손하게 말했다.“그 정도는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말이 그렇게 돌았군요.”공혜리는 당연히 이승휘가 누군지 알았다. 공규석이 쓰러진 다음 받은 전문가 리스트에서 그는 1순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너무 바쁜 탓에 지금껏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공혜리가 놀란 것을 보고 유재영은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공혜리 씨 참 운이 좋았어요. 선배님은 세미나를 위해 서해에 온 김에 저를 만나러 오신 거거든요. 공규석 씨가 VIP 병동에 들어오는 걸 보고는 직접 돕겠다며 이렇게 나서주셨어요. 재벌가에서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한결같이 거절하시던 분이 말이에요.”공혜리는 기쁜 한편 불안하기도 했다. 이승휘와 같은 전문가가 찾아왔다고 마냥 기뻐하기에는 염무현이 떡하니 곁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공규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지금 놓치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이기도 했다. 신의도 한 명보다는 두 명이 있는 편에 훨씬 안전할 것이다.공혜리
“공혜리 씨, 당신도 비싼 교육을 받은 사람 같은데 어떻게 시비를 안 가리지? 아무리 급해도 의사를 함부로 구하면 안 되지. 돈도 몸도 뺏기고 나서 후회하면 늦어. 제일 중요한 건 환자의 치료를 놓치면 울어도 소용없다는 거야.”이승휘가 말했다.“무현 님은 사기꾼이 아니에요.”이승휘가 콧방귀를 끼더니 조롱했다.“혜리 씨, 국내 의학은 안 돼. 서양 의학과는 비길 수조차 없어. 더 괘씸한 건 돌팔이가 환자와 가족들에게 사기 치는 거야. 완전 양심을 저버린 거지. 그게 사기꾼이 아니면 뭔데?”“무현 님,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공혜리가 얼른 염무현을 달랬다.이승휘는 미간을 찌푸렸다. 염무현의 아우라가 심상치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젊었다.의사라는 직업이 원래 오랜 기간의 임상 경험과 끊임없는 학습, 누적과 터득을 통해야만 전문가 레벨로 올라갈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러려면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는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는 기껏해야 스무 살이 좀 넘어 보였다. 의대도 졸업했는지 의문이었고 졸업했다고 해도 겨우 레지던트일 것이다.그런데 사기꾼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사기꾼을 하려면 닮기라도 해야지, 이래서 누굴 속일 수 있을까.이승휘는 공혜리가 급한 나머지 아무 의사나 구하는 바람에 이런 유치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다.이승휘는 업계의 권위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반드시 현장에서 정체를 까밝혀야 한다고 여겼다.“저기요, 어느 의대 나왔어요? 학력은 어떻게 되죠? 멘토는 누구예요?”이승휘가 염무현을 몰아세웠다. 그러자 염무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의대 다닌 적 없어요. 그러니 학력도 없겠죠. 멘토가 누군지는 알려드릴 수 없어요. 은퇴하셨거든요.”이건 다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사부님을 존경하는 의미로 옥의 신이라고 부른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는 여러 묘수를 알고 있는 늙은이였다.옥의 신, 감옥의 신이라는 뜻이었다.염무현이 교도소로 들어간 후 행운스레 그는 그 늙은이의
“당신이 귀띔해야만 내가 아는 줄 알아?”이승휘가 염무현을 째려보더니 말했다.“당연히 중점 부위를 찾아서 뚫어야지. 설비 준비해.”염무현이 팽팽하게 맞섰다.“저 사람 몸을 벌집을 만든다 해도 독의 근원지는 못 찾을 거예요. 그리고 환자 상황이 여의찮고요.”“헛소리하지 마요. 선배 판단이 틀릴 리가 없잖아요. 뼈를 뚫는 시술, 상처가 난다고 해도 얼마나 작은데, 사람 몸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요. 모르면 좀 가만히 있어요. 무식한 거 티 나잖아요. 쪽팔리지도 않나.”유재영이 큰 소리로 말했다.“뼈를 뚫는 시술은 일반 환자들에게는 영향이 크지 않지만 공규석 씨처럼 거의 죽어가는 사람은 못 버텨내요.”“간덩이가 부었구먼. 감히 우리 선배님의 전문성에 도전해?”이승휘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저기요. 그냥 내가 원인을 찾으면 사기 칠 기회가 없어질 거 같아서 걱정하는 거 같은데, 맞죠?”공혜리는 중간에 껴서 어쩔 바를 몰랐다. 양쪽 다 공규석을 구하러 온 사람이었지만 새우등인 그녀는 누구의 편을 들든 맞는다고 볼 수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나를 못 믿어도 어쩔 수 없어요. 후회만 하지 마요.”염무현은 이렇게 말하더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이승휘는 공혜리에게 말했다.“공혜리 씨, 내 명예를 걸고 맹세할게. 만약 당신 아버지 못 고치면 권위라는 타이틀도 포기하고 앞으로 의사 그만둘 거야.”이렇게 독한 맹세도 스스름없이 하는 걸 봐서는 이미 확신이 선 것 같았다.공혜리가 서둘러 대답했다.“무슨 그런 말씀을... 이 교수님, 잘 부탁드릴게요.”그러고는 복잡한 눈빛으로 염무현을 바라봤다.“무현 님...”염무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공혜리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일이 해결되면 다시 진심으로 사과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이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설비 올려!”이승휘의 명령하에 유재영이 익숙하게 여러 가지 설비를 조작하며 케미를 살렸다.한편, 옆에 위치한 한 입원 병동.양희지가 당황한 표정으로 힐을 신은 채 한
막무가내인 서아란이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해서 설명했다.양문수도 옆에서 부채질했다.“4년이나 교도소에서 썩었으니 폭력적으로 변해도 이상해할 거 없잖아?”양희지는 마음이 복잡했다. 한편으로 염무현이 이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엄마와 동생이 불쌍했다.하지만 어찌 됐든 간에 사람을 때리는 건 잘못된 일이었다. 게다가 사람을 다치게 했다면 더더욱 안 된다.“그만해요. 바로 전화해서 따져줄 테니.”양희지는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와 바로 염무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질책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엄마랑 동생 진짜 당신이 그런 거야?”“부정하지는 않을게. 네 마음대로 생각해.”양희지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염무현, 난 그래도 너한테 희망을 품고 있었어. 무슨 이유라도 있는 줄 알았다고. 근데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할 줄은 몰랐네. 엄마 말이 맞아. 넌 정말 구제 불능의 인간쓰레기야.”염무현이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네가 한 말, 뭔가 익숙하다는 생각 안 들어?”양희지는 멈칫하더니 뭔가 떠올랐다. 익숙한 건 맞았다. 교도소 앞에서 염무현에게 했던 말을 지금 그대로 다시 돌려받았다.너무 아이러니했다. 염무현이 인간쓰레기면 그럼 양희지는 뭐란 말인가.양희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염무현은 이미 전화를 끊었다. 그는 양희지와 딱히 할 말이 없었다.양희지는 잔뜩 약이 올라 이를 악물었다.“염무현, 이 일 이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야.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고야 말겠어.”그러더니 양희지는 다시 어두운 얼굴로 병실에 들어갔다.서아란이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다.“뭐래... 그 새끼 인정 안 하지? 맞지? 딸, 그 새끼가 하는 말 절대 믿지 마...”“인정했어요.”양희지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아란은 멈칫하더니 콧방귀를 꼈다.“흥, 그래도 뭘 알긴 아네. 거짓말을 해도 쓸모가 없다는 걸 아니까 그런 거지. 근데 딸, 남도훈 도련님이랑 데이트 가지 않았어? 설마 말도 없이 안 나간 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