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너뿐이야

시간이 지나도 너뿐이야

By:  윈드벨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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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그는 첫사랑을 구하기 위해 그녀와 결혼했다. 그에게 그녀는 동생의 사랑을 빼앗은 비열하고 뻔뻔한 여자일 뿐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가장 차갑고 무정한 모습만을 보여주며, 미움과 냉대를 아끼지 않았다. 반면 좋아하는 여자의 앞에서는 언제나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10년 동안 묵묵히 그의 옆자리를 지키며 그를 사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결국 이 관계를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등을 돌리려 하자 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아이를 품은 채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이 닥치자,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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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창안시, 거리엔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석 달간의 촬영을 마친 김지아는 네 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짐을 찾은 그녀는 출구로 걸어갔다.회사에서 마중을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 밖으로 권씨 가문의 운전기사 이용건이 검은 롤스로이스 옆에서 공손히 기다리고 있었다.김지아가 캐리어를 끌고 다가가자, 이용건은 짐을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어줬다.차 안에는 잘 재단된 검은색 수트를 입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권재혁이 앉아 있었다. 조각 같은 얼굴은 무표정했고 김지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권재혁과 김지아의 결혼은 벌써 2년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김지아는 남편이 직접 공항에 나온 것이 의외였지만, 이내 오늘이 두 사람의 계약 결혼이 만료되는 날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권재혁은 예전부터 그녀가 가까이 오는 걸 싫어했다. 김지아는 조심스럽게 차에 올라탄 후 자연스레 거리를 두었다.결혼하고 처음으로 이렇게 가까이 앉았지만, 여전히 낯선 그에게서 은은한 오드콜로뉴 향이 느껴졌다.이용건은 짐을 트렁크에 싣고 운전석으로 돌아와 시동을 걸었다.차 안 공기는 무겁고 답답했다. 권재혁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 침묵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김지아는 심장이 쿵쿵거렸고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약 20분 후, 롤스로이스가 권씨 가문의 저택 앞에 멈췄다. 집사가 빠르게 달려와 뒷좌석의 문을 열자, 권재혁이 긴 다리를 뻗으며 차에서 내렸다.“서재로 따라와.”그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차갑게 내뱉으며 집 안으로 사라졌다.김지아는 차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긴장한 채였다. 이제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었다.예상대로, 서재에 들어가자마자 권재혁은 서랍에서 이혼 서류를 꺼내 그녀 앞에 던졌다.“이혼하자.”석 달 만에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였다. 그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김지아의 가슴에 꽂혔다.김지아가 권재혁을 좋아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권씨 가문의 며느리라는 자리를 얻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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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창안시, 거리엔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석 달간의 촬영을 마친 김지아는 네 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짐을 찾은 그녀는 출구로 걸어갔다.회사에서 마중을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 밖으로 권씨 가문의 운전기사 이용건이 검은 롤스로이스 옆에서 공손히 기다리고 있었다.김지아가 캐리어를 끌고 다가가자, 이용건은 짐을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어줬다.차 안에는 잘 재단된 검은색 수트를 입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권재혁이 앉아 있었다. 조각 같은 얼굴은 무표정했고 김지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권재혁과 김지아의 결혼은 벌써 2년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김지아는 남편이 직접 공항에 나온 것이 의외였지만, 이내 오늘이 두 사람의 계약 결혼이 만료되는 날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권재혁은 예전부터 그녀가 가까이 오는 걸 싫어했다. 김지아는 조심스럽게 차에 올라탄 후 자연스레 거리를 두었다.결혼하고 처음으로 이렇게 가까이 앉았지만, 여전히 낯선 그에게서 은은한 오드콜로뉴 향이 느껴졌다.이용건은 짐을 트렁크에 싣고 운전석으로 돌아와 시동을 걸었다.차 안 공기는 무겁고 답답했다. 권재혁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 침묵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김지아는 심장이 쿵쿵거렸고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약 20분 후, 롤스로이스가 권씨 가문의 저택 앞에 멈췄다. 집사가 빠르게 달려와 뒷좌석의 문을 열자, 권재혁이 긴 다리를 뻗으며 차에서 내렸다.“서재로 따라와.”그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차갑게 내뱉으며 집 안으로 사라졌다.김지아는 차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긴장한 채였다. 이제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었다.예상대로, 서재에 들어가자마자 권재혁은 서랍에서 이혼 서류를 꺼내 그녀 앞에 던졌다.“이혼하자.”석 달 만에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였다. 그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김지아의 가슴에 꽂혔다.김지아가 권재혁을 좋아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권씨 가문의 며느리라는 자리를 얻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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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김지아의 혈액 검사 결과는 문제가 없었다. 골수 적합성도 좋았고 거부 반응도 없었다. 결과로 보면 김지아는 김지연을 살릴 수 있었다.아예 모르는 사람이었어도 그녀는 주저 없이 골수를 기증했을 것이다. 하물며 자신의 배다른 동생이라면 더더욱 도와주고 싶었다.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권재혁은 이미 그녀를 차갑고 무정한 사람으로 단정 지었다. 그리고 김지연을 위해 주저 없이 무릎을 꿇었다.그 비참한 광경에 김지아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지는 듯했다. 그토록 간절한 그의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김지아와 권재혁은 늘 같은 학교에 다녔다.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진정한 소꿉친구였다.권재혁은 김지아를 지키기 위해 다른 남학생들과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고, 그녀의 성적을 올려주려고 밤을 새우며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다.김지아는 그렇게 오랜 시간 그의 곁을 지켜왔으니, 언젠가는 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의 소망을 그렇게 쉽게 들어주지 않았다.김지아는 김지연처럼 애교를 부리지 못했다. 그녀는 김지연처럼 권재혁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 몰랐다. 권재혁은 두 사람 모두를 소중히 여겼지만, 김지연에게 주는 온정은 더 따뜻하고 깊었다.‘재혁이는 정말 지연이를 사랑하는 걸까...’그 생각에 가슴이 쿡쿡 쑤셨고 자기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권재혁은 나를 냉정하고 무정한 사람으로 여겼을까? 왜 나를 동생마저 외면할 만큼 잔인하다고 생각했을까?’그때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무나도 분노한 나머지 이성을 잃었고, 홧김에 권재혁에게 결혼을 요구하며 권씨 가문의 며느리 자리를 내놓으라고 했다.비록 그 결혼은 계약일 뿐이었고, 계약 기간은 고작 2년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2년이면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현실은 차가운 칼날처럼 그녀를 베어냈고 결국 그녀는 이 게임에서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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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김지아는 잠시 멍해졌다.‘왜 아직 서명을 안 한 거지? 혹시 후회한 걸까? 이혼하기 싫어진 걸까?’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너무도 허망해 그녀 자신조차 실소가 나왔다.‘권재혁이 후회할 리가 없지. 그는 나를 벗어나기만을 바랐어. 이제 지연이의 몸 상태도 점점 좋아지고 있고... 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권재혁은 틀림없이 나를 버리려고 할 거야...’“내일 아침 9시 가정법원에서 보자.”그녀는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전화를 끊었다.그날 밤, 그녀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침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올 때쯤 일어났다.여덟 시가 되자 욕실에 들어가 샤워하고 깔끔한 정장을 입었다. 그러고 나서 은은한 메이크업을 하고 가정법원으로 향했다.가정법원에 도착한 후, 한 시간을 기다려도 권재혁은 나타나지 않았다.김지아는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끝내 받지 않았다.기다림에 지친 그녀는 그랜디스 그룹으로 향했다. 안내 데스크의 만류도 무시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바로 권재혁의 사무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권재혁은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다가, 가죽 소파에 앉아 있는 김지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하얀 얼굴에는 짙은 피로와 약간의 분노가 서려 있었다.“얼마나 기다렸어?”그는 그녀가 올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무덤덤하게 책상 뒤로 돌아가 의자에 앉아 서류를 펼치더니, 김지아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30분.”“좀 더 기다려.”그의 태도는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였다.김지아의 속에서는 끓어오르는 화가 폭발 직전이었다.“권재혁! 지금 뭐 하자는 거야?”‘가정법원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다가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또 기다리라고? 나란 사람을 도대체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걸까? 서명해야 할 서류 한 장만도 못 한 건가?’“도대체 나에게 뭘 원하는 거냐고!”김지아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그러자 권재혁은 서류 너머로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기다리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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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김지아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김지연의 수술이 성공적이었기에 모든 것이 괜찮아졌을 거라 믿었지만, 병이 재발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은 그녀의 심장을 조여왔다.‘그래서 지연이가 권재혁을 거절한 거야? 혼자 바보같이 권재혁이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고 있잖아...’고선숙은 김지연의 말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김지연의 뺨을 때렸다.‘짝!’찰나의 소리와 함께 김지아의 가슴도 심하게 요동쳤다.김지연의 뺨은 금세 붉게 달아올랐고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그 모습을 보자 김지아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그녀는 문손잡이를 꽉 잡았다. 이제 막 문을 열려던 찰나에 고선숙이 김지연을 끌어안고는 사과하고 있었다.“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너를 때리면 안 됐어.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고선숙은 어깨가 들썩였고 목소리에 죄책감이 배어 있었다.김지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김지아의 기억 속에서 고선숙이 김지연을 때린 건 처음이었다. 어릴 적부터 고선숙은 김지연을 소중히 여기며, 딸이 조금이라도 상처받을까 전전긍긍했다.결국 김지아는 병실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발걸음을 돌려 병실을 떠났다.최유진의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최유진은 저녁 식사를 준비해 두었지만, 김지아는 입맛이 없었다. 그녀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너 어디 가려고?”최유진은 방문을 열고 짐을 싸고 있는 김지아를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봤다.“권씨 가문으로 돌아가려고.”“뭐? 너 이혼했잖아!”“이혼 안 했어. 권재혁이 없던 일로 하재. 돌아오라고 했어.”“권재혁이 돌아오라면 또 쪼르르 돌아가겠다는 거야?”김지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하루 종일 고민한 끝에 돌아가기로 했다.그냐는 짐을 다 싸고 나서 커다란 캐리어를 끌며 최유진에게 말했다.“그동안 신세 많이 졌어. 고마워. 유진아, 나중에 밥 한번 살게.”“지금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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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김지아는 고개를 푹 숙였고, 순간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한동안 권재혁의 눈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너무 갑작스럽잖아...’전희라가 증손주를 원한다는 건, 김지아와 권재혁의 관계가 더 가까워져야 한다는 뜻이었다.‘지난 2년간 나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는데, 오늘 갑자기 남편의 권리를 행사하려는 건가...’김지아의 얼굴이 화끈거렸고 몸이 굳어져 꼼짝할 수 없었다.“돌아누워. 엎드려.”권재혁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그 어떤 온기도 없는 차가운 말투였다.김지아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들어 그의 짙은 눈동자를 바라봤다. 무언가 말하려던 그녀보다 먼저, 권재혁이 비웃듯 내뱉었다.“설마 내가 네 얼굴을 보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랬다간 흥이 다 깨질 테니까.”김지아는 굴욕감에 치가 떨렸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권재혁, 너...”하지만 그녀의 말을 끝내기도 전에 권재혁의 두 손이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강제로 몸을 돌리더니, 그녀의 등을 세게 밀어 침대 위로 넘어뜨렸다.그의 몸이 순식간에 그녀 위로 올라탔다.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럽고 순식간에 벌어진 터라 그녀는 반응할 겨를도 없었다.다음 날 아침, 흐린 하늘에서는 새벽부터 가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김지아는 눈을 뜬 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침대 옆에는 이미 권재혁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만이 엉망이 된 모습으로 남겨져 있었다.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그것은 마치 뼈마디가 다 부서졌다가 다시 붙여진 기분이었다.어젯밤, 권재혁은 지난 2년간의 억눌린 감정을 모두 쏟아낸 듯했다. 그의 거친 행동 탓에 이제는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과 뼈가 다 아팠다.김지아는 배가 고파져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고 벽을 짚어가며 간신히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거울 속 그녀의 몸은 온통 멍투성이였다. 곳곳에 남은 자국들이 선명했고 목에는 짙은 키스 마크까지 있었다. 이를 가리기 위해 그녀는 일부러 실크 스카프를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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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강동원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창가에 앉아 있는 김지아를 바라봤다.그녀는 창을 등지고 있었다. 흰색 커튼은 바람에 살랑이며 부드럽게 흔들렸다. 따스한 햇살이 그녀의 머리 위로 내려앉아, 그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시선이 자연스럽게 마주치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잔잔한 미소를 건넸다.“선배님, 오랜만이에요.”김지아는 손에 들고 있던 대본과 먹던 사과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조이현은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언니, 강동원 배우님과 아는 사이였어요?”“알고 지낸 지 꽤 됐어.”두 사람은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였다.대학 축제에서 함께 공연하며 친해졌고, 이후 몇 차례 작품에서도 호흡을 맞췄다.서로 관계는 나쁘지 않았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김지아의 기억 속 강동원은 늘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그는 여전히 그때와 다름없이 따뜻했다.“오늘 저녁 회식 가?”강동원이 묻자, 김지아는 고개를 저었다.강동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나도 안 갈 건데, 우리끼리 밥 먹을래?”“좋아요.”김지아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데뷔 후 3년 동안 그녀는 강동원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의 활동 영역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마치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처럼 교차점이 없었다.이번 기회에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강동원은 매니저에게 미리 레스토랑을 예약하게 했다. 해가 진 후, 그는 모자와 마스크, 스카프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김지아를 데리러 왔다.예약한 곳은 고풍스러운 중식당이었다. 레스토랑 전체가 클래식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고, 두 사람이 앉은 곳은 독립된 룸이라 강동원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모자와 마스크, 스카프를 벗으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민망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밥 한 끼 먹으러 나오는 것도 눈치 보인다니까.”김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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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김지아는 서둘러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입구에 멈춰 선 흰색 마세라티 옆에 전태성이 공손하게 서 있었다.전태성은 권재혁의 매니저였다. 나이는 젊었지만 이미 몇 년째 그를 보좌해왔고, 권재혁의 출장에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함께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김지아가 가까이 다가가자, 전태성은 재빠르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뒷좌석에 앉아 있는 권재혁은 검은색 수트를 입고 있었고, 그녀가 타자 잠깐 시선을 주더니 다시 휴대폰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김지아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의 차가운 반응에 금세 입꼬리를 내리고 말았다.자리에 앉은 그녀는 자연스럽게 권재혁과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차는 호텔을 떠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의 유명한 5성급 호텔에 도착했다.김지아는 권재혁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여전히 습관적으로 그와 거리를 두고 걸었다.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권재혁이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아 자기 팔에 자연스럽게 걸었다.그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하고 평온했지만, 김지아의 심장은 터질 듯 쿵쿵거렸다.이번 자선 행사는 주로 연예계 인사들을 초대했다. ‘스타 자선 행사’라는 이름답게 많은 유명 연예인이 참석했다.김지아는 예상치 못하게 강동원과 하초연을 발견했다.하초연은 이번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을 맡은 레전드급 여배우였다. 강동원과 함께 출연하며 두 사람 모두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이미 현장에서는 수많은 기자의 플래시 세례가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최근 강동원과의 스캔들로 시끄러웠던 김지아가 권재혁과 함께 등장하자, 현장의 모든 시선은 단숨에 그들에게 쏠렸다.권재혁은 원래 언론 노출을 꺼리는 인물이었지만, 그랜디스 그룹 대표로서 그의 존재감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특히 그가 투자한 작품마다 성공을 거두면서 업계에서도 주목받는 인물이었기에, 그의 등장은 행사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기자들은 아직 공식적인 인터뷰 시간이 아니었기에, 궁금증을 억누르며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그런데 주최 측이 배치한 좌석이 의도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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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점심시간, 김지아는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차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일 생각이었다.그때 하초연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나타났다. 그녀는 김지아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네며 공손하게 물었다.“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하초연은 여러 차례 성형 수술을 받은 듯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녀는 마치 요정처럼 매혹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김지아는 잠시 망설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하초연은 스프린터 밴에 올라타더니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 옆자리에 앉았다.“어젯밤엔 실례했어요. 제가 무례하게 굴었다면 용서해 주세요.”이는 어제 자선 행사에서 김지아에게 다소 무심하게 대했던 태도를 사과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투도 상당히 진정성 있게 들렸지만, 김지아는 하초연에 대해 이미 많은 소문을 들었던 터라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하초연은 재력 있는 집안도 없었고 든든한 인맥도 없었다.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적도 없었지만, 끈질긴 노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그녀는 연기력이 뛰어났고 외모도 눈에 띄었기에 소속사에서도 그녀에게 좋은 기회를 몰아주고 있었다.하지만 하초연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도 많았다.소속사 대표와의 부적절한 관계설부터, 촬영 현장에서의 이기적인 태도까지 이야기가 무성했다.어제까지만 해도 김지아에게 무관심했던 하초연이, 그녀가 권씨 가문의 사모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태도가 180도 바뀐 것은 그 의도를 뻔히 드러내는 셈이었다.그녀의 지나치게 밝은 미소 속에 담긴 속내를 김지아는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괜찮아요.”김지아는 평온하게 대답했다.하초연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저는 김지아 씨랑 정말 잘 맞을 것 같아요. 시간 되면 식사라도 한번 해요.”“나중에 시간 되면 그러죠.”“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데, 제가 대본 맞춰 드릴까요?”“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는 조금 쉬고 싶어서요...”하초연은 눈치 있게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럼 방해하지 않을게요.”...차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인 덕분에 김지아의 상태는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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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벌써 가는 거야?”“오자마자 가네! 한잔하고 가.”“진짜 소꿉친구네. 교복부터 웨딩드레스까지 이어졌다는 거잖아...”“부럽다!”...사람들의 말이 뒤따랐지만, 권재혁은 아무런 반응 없이 김지아를 부축해 연회장을 빠져나왔다.차에 타자마자, 그는 자기 팔에 기대 있던 김지아를 밀어냈다.그녀에게서 나는 진한 술 냄새가 거슬렸다.예상치 못한 힘에 밀린 김지아는 균형을 잃고 옆으로 넘어지며 ‘쿵’ 소리와 함께 머리가 차창에 세게 부딪히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질렀고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려졌다.‘진짜 너무하네...’김지아는 무기력하게 좌석에 기대었고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술에 취했어도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술김에 한 번 안았을 뿐인데, 그토록 싫어할 줄이야...’그녀는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차 안에서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츠리며 그와의 거리를 유지했다.돌아가는 내내 그녀는 이를 꽉 깨물며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다.권재혁은 그런 그녀를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차가 권씨 가문 저택 앞에 멈추자, 그는 이용건이 문을 열기도 전에 혼자 차에서 내렸다.“권재혁!”참고 참던 김지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단호한 발걸음으로 앞만 보고 걸었다.김지아는 차 문을 열고 비틀거리며 그를 쫓아갔다.“왜 그래? 내가 대체 뭘 잘못했는데?”“권재혁, 멈춰!”그녀의 절박한 외침에도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이혼하지 않겠다고 한 건 너잖아. 지금 너한테 매달리는 사람은 내가 아니야!”그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눈물에 젖은 얼굴로 절규하듯 소리쳤다.권재혁의 발걸음이 멈추더니 천천히 돌아섰다.김지아는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힘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몸은 휘청였고 눈동자에는 절망이 가득했다.“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권재혁은 차가운 얼굴을 유지한 채, 단호하게 말했다.“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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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내가 뭘 오해했다는 건데?”강동원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스며 있었다.“네가 이렇게 힘든 거, 권재혁 때문 아니야?”김지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 자식이 너를 그렇게 힘들게 한다면, 그냥 떠나. 왜 너 자신을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거야?”“그만 돌아가세요.”더 이상 강동원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김지아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강동원은 한참 동안 문 앞에 서 있다가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이 나타나자 그제야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김지아는 샤워하고 몸에 배어 있던 담배와 술 냄새를 지웠다.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이미 불면증은 오래전부터 그녀의 일상이었다.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다가, 창밖이 밝아오기 시작했을 때까지도 그녀의 눈은 감기지 않았다.아침 7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조이현이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다.“언니, 왜 전화를 안 받아요? 난리 났어요!”조이현은 다급하게 말했다.“핸드폰 무음이었어. 미처 몰랐네.”“언니, 지금 실시간 검색어에 언니랑 강동원 오빠가 올라갔어요!”김지아는 얼어붙은 듯 서있다가 다급히 휴대폰을 들고 SNS를 확인했다.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젯밤 강동원이 그녀를 호텔까지 데려다주며 포옹한 장면이 사진으로 찍혀 미디어에 퍼진 것이었다.[유명 여배우 김지아, 재벌가 사모님의 불륜 스캔들]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쏟아지고 있었다.“대표님께 맡겨.”그녀는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회사에서도 최대한 덮어보려고 노력 중이에요.”“알겠어. 아침 식사 준비해 줘. 곧 비행기 타야 해.”조이현은 그녀의 태연한 모습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언니, 진짜 괜찮은 거예요?”“걱정해 봤자 뭐가 달라져?”...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기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지아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질문에는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회사에서 보내준 차량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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