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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작가: 윈드벨
김지아는 서둘러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입구에 멈춰 선 흰색 마세라티 옆에 전태성이 공손하게 서 있었다.

전태성은 권재혁의 매니저였다. 나이는 젊었지만 이미 몇 년째 그를 보좌해왔고, 권재혁의 출장에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함께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지아가 가까이 다가가자, 전태성은 재빠르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

뒷좌석에 앉아 있는 권재혁은 검은색 수트를 입고 있었고, 그녀가 타자 잠깐 시선을 주더니 다시 휴대폰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김지아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의 차가운 반응에 금세 입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자연스럽게 권재혁과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차는 호텔을 떠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의 유명한 5성급 호텔에 도착했다.

김지아는 권재혁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여전히 습관적으로 그와 거리를 두고 걸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권재혁이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아 자기 팔에 자연스럽게 걸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하고 평온했지만, 김지아의 심장은 터질 듯 쿵쿵거렸다.

이번 자선 행사는 주로 연예계 인사들을 초대했다. ‘스타 자선 행사’라는 이름답게 많은 유명 연예인이 참석했다.

김지아는 예상치 못하게 강동원과 하초연을 발견했다.

하초연은 이번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을 맡은 레전드급 여배우였다. 강동원과 함께 출연하며 두 사람 모두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이미 현장에서는 수많은 기자의 플래시 세례가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최근 강동원과의 스캔들로 시끄러웠던 김지아가 권재혁과 함께 등장하자, 현장의 모든 시선은 단숨에 그들에게 쏠렸다.

권재혁은 원래 언론 노출을 꺼리는 인물이었지만, 그랜디스 그룹 대표로서 그의 존재감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특히 그가 투자한 작품마다 성공을 거두면서 업계에서도 주목받는 인물이었기에, 그의 등장은 행사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기자들은 아직 공식적인 인터뷰 시간이 아니었기에, 궁금증을 억누르며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최 측이 배치한 좌석이 의도적인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네 사람은 강동원과 하초연이 있는 테이블에 함께 앉게 되었다.

작은 원형 테이블에 네 사람이 둘러앉게 되었다.

김지아는 강동원과 정면으로 마주 앉게 되자, 그녀의 얼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강동원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이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아도 차분히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고 하초연에게도 예의를 갖춰 정중히 인사했다.

하지만 하초연은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동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촬영장에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웃음을 나눴다. 잠시 후 하초연은 자연스럽게 권재혁에게도 말을 걸었다.

“권 대표님, 이번 작품도 투자해 주신 거죠?”

하지만 권재혁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무심히 고개만 돌렸을 뿐이었다.

그의 냉랭한 반응에 하초연은 눈치 빠르게 대화를 멈췄다.

행사가 시작되자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와 대형 스크린에만 은은한 파란빛이 비쳤다.

김지아는 속이 허전해지며 테이블 위의 샴페인과 작은 디저트를 바라봤다.

접시 위에는 크기가 만두보다 작은 한 입 거리의 디저트가 네 조각 놓여 있었다.

주변 시선을 살피던 그녀는 재빠르게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아무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안심한 김지아는 두어 개를 더 집어넣었다.

바로 그때, 권재혁의 시선이 느껴졌다.

김지아는 움찔하며 손을 내리고,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며 얌전히 앉았다.

“끝나면 나가서 뭐라도 먹자.”

권재혁의 뜻밖의 제안에 김지아는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김지아는 스스로 착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가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 미소마저 계산된 것일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인터뷰 시간이 이어졌다.

평소라면 권재혁은 이런 자리에서 묵묵히 입을 다물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는 김지아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고 카메라 앞에 함께 섰다.

“두 분은 어떤 사이인가요?”

기자의 질문에 권재혁은 여유 있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제 아내입니다.”

그 순간, 김지아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결혼 후 2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녀를 ‘아내’라고 공개적으로 소개하지 않았던 그가 당당히 그녀의 존재를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김지아는 마치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처럼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인터뷰 내내 권재혁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고, 김지아도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호텔을 나설 때, 권재혁은 자기 외투를 그녀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걸쳐 주었다.

몰려드는 기자들 사이에서 권재혁은 그녀를 보호하듯 그녀의 팔을 감싸며 걸었다.

그 순간, 김지아의 기억 속에서 오래된 장면이 떠올랐다.

바로 고등학교 시절 권재혁이 그녀를 괴롭히던 아이들과 맞서 싸우며 그녀를 품에 안아주었던 따뜻한 순간이었다.

‘그때는 정말 나를 많이 아꼈었는데...’

차에 올라타자마자 권재혁의 얼굴은 다시 차갑게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김지아가 배고프다는 걸 기억하고는 전태성에게 음식점으로 가자고 했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전태성은 도심을 몇 바퀴나 돌아야 겨우 한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김지아는 속이 허전했지만, 드라마 촬영 중이라 얼굴이 부을까 봐 걱정되어 채소 위주의 음식만 주문하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식사했다.

그녀가 식사를 마치는 동안 권재혁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그녀가 식사를 다 하기를 기다렸다.

그 차가운 눈빛 속에 숨겨진 진심이 무엇인지, 그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 먹었어.”

“가자.”

권재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밖으로 걸어 나갔다.

김지아는 그를 따라잡기 위해 서둘러 뒤를 쫓았지만, 10cm가 넘는 가느다란 하이힐을 신고 있었던 터라 뛰어도 그의 빠른 걸음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는 너무 빨리 걸었고, 그녀는 너무 다급하게 쫓아가다 보니 결국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하이힐의 가느다란 굽이 부러졌고 무릎은 차가운 바닥에 부딪혀 까맣게 긁혀버렸다.

권재혁은 그 소리에 뒤돌아봤지만, 다가와 부축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그대로 차에 올라타더니, 차창을 내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타. 호텔까지 데려다줄게.”

그 순간, 김지아는 쇼가 끝났다는 걸 깨달았다.

권재혁은 다시 원래의 차갑고 무정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김지아는 천천히 일어나 부러진 하이힐을 벗어 근처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맨발로 차에 올라탔다.

차 안은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 찼다.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어두운 밤 풍경만이 그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김지아의 머릿속에는 권재혁이 ‘제 아내입니다.’라고 말하며 다정하게 미소 짓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정말 연기를 잘하네. 프로 배우인 나보다도 더 자연스러웠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까진 무릎에서 피가 흐르는 것쯤은 아예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호텔 로비 앞에 도착했다. 김지아는 차에서 내린 뒤 있는 힘껏 닫았다.

그리고 차가운 지면에 맨발을 내디디며 성큼성큼 호텔로 들어갔다.

권재혁은 그녀의 걸음걸이가 약간 불편해 보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방금 넘어진 것이 꽤나 심했음을 깨달은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김지아의 모습이 호텔 로비 안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가, 낮은 목소리로 전태성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

...

그날 밤, SNS는 다시 한번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지아의 실체는 재벌가 사모님]이라는 제목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동시에 또 다른 실시간 검색어도 상위권을 차지했는데, 그것은 바로 강동원의 소속사에서 발표한 공식 입장이었는데, 내용은‘강동원과 김지아는 단지 친구 사이일 뿐’이라는 해명이었다.

이 사건으로 김지아의 SNS 팔로워 수는 단 하룻밤 사이에 20만 명이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과거 그녀를 악플로 공격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댓글을 삭제했고, 오히려 그녀의 연기력을 칭찬하거나 겸손한 성격을 높이 평가하는 긍정적인 댓글들로 가득해졌다.

원래라면 기뻐할 일이었지만, 김지아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밤새 뒤척이며 잠 한숨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다음 날 촬영장에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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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 셔터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졌다. 기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김지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김지아는 진지하고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는 불륜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강동원 씨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 모두 같은 호텔에 머물렀습니다. 함께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이상할 게 없어요. 우리는 대학 선후배 사이였고 드라마 촬영을 함께하게 되어 오랜만에 식사를 한 것뿐입니다.”“그러면 SNS에 공개된 사진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사진 속에는 강동원이 김지아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다.몰래 촬영된 사진이었지만, 각도가 절묘해 두 사람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사진 속의 인물이 자신이 아니라는 변명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건 그저 친구 사이의 가벼운 포옹이었습니다.”“그러면 왜 ‘불륜’ 관련 주제와 사진들이 모두 삭제되었죠? 이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김지아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대답할 수 없네요. 저는 아무것도 지운 적이 없습니다. 사실 악의적인 허위 사실을 유포한 매체에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었거든요. 만약 누가 삭제했는지 아신다면 저에게 꼭 알려주세요.”그녀의 여유 있는 대답에 기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질문을 던졌던 기자는 얼굴이 붉어졌지만, 머뭇거리며 다시 물었다.“혹시 이번 사건이 새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해 강동원 씨와 자작극을 벌인 건 아닌가요?”김지아가 답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자작극도 없었고 홍보를 위한 조작도 없었습니다.”주홍이 나서자, 기자들의 카메라는 빠르게 주홍을 향했고 질문이 쏟아졌다.그들의 초점은 김지아의 데뷔 이후 꾸준히 인기가 없었던 점, 소속사 라임 매니지먼트가 이전에도 대형 스타를 배출한 적이 없는 점,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김지아의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무리한 ‘셀프 디스’ 마케팅을 했다는 의혹에 맞춰졌다.주홍은 기자들의 말을 듣고는 큰 소리로 웃었다.“저희는 배우의 명예와 미래를 걸고 장난하지 않습니다. 라임 매니지

  • 시간이 지나도 너뿐이야   제14화

    김지아는 바닥에 무릎 꿇은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권재혁이 왜 자신을 이곳에 데려왔는지, 이 남자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권재혁에게 물었다.“이 사람은 누구야?”권재혁은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그는 수트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더니 한 대를 입에 물었다.전태성이 재빨리 다가와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그는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 후, 천천히 연기를 내뱉었고 옅은 푸른빛 연기가 그의 주위에 맴돌았다.권재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년 남자를 힐끔 보고 무심하게 말했다.“전에 했던 말, 다시 해봐요.”그러곤 김지아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중년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김지아 씨한테 직접 말해요.”김지아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중년 남자를 바라봤다.남자는 겁에 질린 듯 몸을 떨며 바닥을 기어가더니, 김지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김지아는 본능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남자는 입술을 덜덜 떨며 말을 시작했다.“김지아 씨, 정말 죄송합니다. 가장 먼저 지아의 불륜 기사를 업로드한 사람이 바로 저예요. 그 주제를 만든 것도 저였고 댓글을 달고 퍼뜨리도록 바이럴 마케팅 업체를 고용한 것도 저예요. 하지만 사진은 제가 찍은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제게 보내준 거예요. 바이럴 마케팅 비용도 그 사람이 준 겁니다.”김지아는 순간 얼어붙었다. 눈앞의 이 남자가 자신을 한순간에 논란의 중심에 밀어 넣은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얼굴이 굳어졌다.“사진을 보낸 사람이 누구예요?”중년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권재혁을 바라봤다. 권재혁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진실을 말해요. 나를 보지 말고...”“하초연 씨예요. 하초연 씨가 사진을 보내주면서 김지아 씨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기사를 쓰라고 했어요. 바이럴 마케팅 비용도 하초연 씨가 준 거예요. 저는 그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했을 뿐이에요.”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다.김지아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스쳤다.‘하초연이

  • 시간이 지나도 너뿐이야   제15화

    육재철은 김지아의 표정을 살피며 긴장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그러나 김지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됐어요. 일어나세요.”“정말 저를 용서해 주시는 건가요?”“기자님을 용서해서라기보다는 기자님께서 저를 위해 해주셔야 할 일이 하나 있어요.”육재철은 얼른 일어섰다. 이제는 더 이상 겁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진지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김지아 씨, 뭐든 시켜만 주세요.”“당분간 하초연 씨에 대해 좀 알아봐 줬으면 해요. 하초연 씨에 대한 소문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로 생각하는데...”육재철은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겠죠?”“네! 잘 알겠습니다!”“보수도 드리겠습니다. 하초연 씨가 준 금액의 두 배로요.”육재철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믿기지 않는 듯 김지아를 바라보았다.김지아는 여유 있게 미소 지었다.“하지만 한 가지, 내가 원하는 건 진짜 사실이어야 해요.”“물론입니다. 안심하세요!”김지아는 육재철에게 명함과 은행 계좌를 요구했다.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방을 나갔다.뒤에서 누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렸는지 알게 된 순간, 김지아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녀는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전태성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김지아를 보자마자 고개를 살짝 숙이며 공손히 말했다.“대표님께서 차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운전기사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전태성은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문이 닫힐 때까지 예의를 갖추며 지켜봤다. 그러고는 권재혁의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전태성은 문을 열고 들어가 김지아가 육재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고했다.권재혁은 그의 이야기를 들은 후,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수고했어. 나가서 일 봐.”...권씨 가문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김지아는 계속해서 권재혁의 행동을 떠올렸다.‘나를 도와준 건가?’기자 회견에 함께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

최신 챕터

  • 시간이 지나도 너뿐이야   제30화

    한대 얻어맞은 차승훈은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권재혁은 주먹을 풀더니 손에 묻은 피가 더러워 손수건을 꺼내 닦기 시작했다.하초연은 이 기회를 틈타 즉시 일어나 차승훈을 데리고 차로 달려갔다.운전석에 앉아서야 차승훈은 휴지로 코피를 닦으며 길옆에 서있는 권재혁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권재혁, 기다려! 나 차승훈이 이렇게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어!”애당초 차승훈 같은 사람을 신경도 쓰지 않았던 권재혁은 그의 말을 듣는 체도 하지 않고 차가운 눈으로 그를 한번 쳐다봤다.“이대로 안 넘어갈 테니까 각오해!”권재혁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앉자 기고만장해진 차승훈은 혼자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옆에 앉아있던 하초연은 차승훈의 어깨를 때리며 말했다.“쪽팔리게 그만 소리 지르고 빨리 운전이나 해요.”“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맞았는데요?”“지금 내 탓이라는 거예요?”차가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은 여전히 다투고 있었다.차승훈과 하초연의 목소리가 차츰 멀어지고 나서야 김지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권재혁은 피 묻은 손수건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김지아를 돌아보다 잠깐 머뭇거리더니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외투에는 따듯한 그의 체온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발렛파킹원이 롤스로이스를 몰고 오자 권재혁은 차 열쇠를 건네받은 뒤 김지아를 향해 말했다.“타.”추워서 발까지 꽁꽁 얼어붙었던 김지아는 더 이상 심술부리기도 힘들어 순순히 권재혁을 따라 차에 올라탔다.위병이 재발한 데다 공복에 술까지 마시고 찬 바람을 맞은 거로도 모자라 스트레스까지 받았던 김지아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위 통증이 점점 더 심해져 조수석에 웅크리고 앉아 식은땀을 흘렸다.그녀의 상태를 눈치챈 권재혁은 가속 페달을 힘껏 밟으며 속도를 올렸다.롤스로이스가 권씨 가문 저택에 들어섰을 때, 시간은 이미 밤 열한 시가 되어있었다.먼저 차에서 내린 권재혁은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웅크리고 있는 김지아를 발견하고 성큼성큼 다가가 조수석 문을 열고 안전띠를 푼 뒤

  • 시간이 지나도 너뿐이야   제29화

    하초연은 아마 김지아가 자신이 한 짓을 알고 본인이 부주의한 틈을 타 술잔을 바꿨을 거로 생각했다.하초연은 김지아가 어쩌면 사람들의 호감을 살 정도의 미모에 아무것도 모르는 단순하고 청순한 모습이지만 누구보다 생각이 많고 속셈을 차리는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김지아를 너무 만만하게만 본 것 같아 후회가 밀려온 하초연은 웃음을 거두며 이를 악물고 독설을 퍼부었다.“오늘은 내가 재수가 없었을 뿐이고, 이번 일 이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을 테니 각오해요.”하초연의 말 속에 어떤 의미가 들어있는지 알아차린 김지아는 냉담한 표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누워서 침 뱉기라는 게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죠.”“뭐라고?”김지아의 비아냥거리는 말에 화가 치밀어 오른 하초연이 손바닥을 들고 김지아를 향해 휘둘렀지만, 온몸이 나른했던 터라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태연하게 하초연의 손목을 낚아챈 김지아가 가볍게 툭 밀치자, 하초연은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마침 차를 가지고 오던 차승훈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즉시 차를 세우더니 노기등등한 기세로 달려와 하초연을 부축하며 김지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본인이 자초한 일이에요.”“권재혁의 마누라라고 내가 어쩌지 못할 거로 생각하는데 그거 오산이에요. 지난번 권재혁이 그쪽 때문에 술병으로 내 머리를 내려친 것도 아직 기억하고 있거든요? 조만간 그 빚 받을 테니 각오하세요.”김지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얼마든지 기다리죠.”하초연은 차승훈의 품에 안긴 채 억울하다는 듯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차승훈 씨, 김지아한테는 권재혁이라는 든든한 빽이 있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은 쓰게도 안 볼 거예요. 그러니 건드리지 마세요. 괜히 건드렸다가 승훈 씨가 화를 입게 되면 어떡해요.”“권재혁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요? 전혀 안 두렵거든요?”하초연의 도발에 화가 치밀어 오른 차승훈은 김지아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권재혁의 마누라가

  • 시간이 지나도 너뿐이야   제28화

    휴대전화 화면에는 두 사람이 서로 한마디씩 주고받은 문자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까지 김지아의 문자에는 회답도 없던 권재혁이였지만, 김지연과는 계속 문자도 하고 김지아를 옆에 두고 잘 자라는 인사도 나누고 있었다.마음 한편이 씁쓸해진 김지아는 일 초라도 그의 옆에 있고 싶지 않아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권재혁은 그러거나 말거나 가지 말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고 그녀가 혼자 클럽을 떠날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심진우는 자신의 품에 엉겨 붙는 하초연을 밀쳐내고 권재혁을 놀리며 말했다.“왜 저래? 너희 싸웠어?”권재혁은 심진우의 물음에 대답하지는 않고 얼굴이 붉게 물든 채 심진우에게 달려드는 하초연을 힐끗 쳐다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너는 거부감도 안 드냐?”아무 생각도 없이 하초연을 안고 있던 심진우는 권재혁의 농락에 입을 삐죽거리며 그녀를 차승훈한테 넘겨줬다.심진우가 아무리 여자가 끊지지 않고 주변에 그를 따르는 여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함께 잠자리했던 여자는 극히 소수였다.그러니 아무리 이쁜 하초연이라도 남자관계가 너무 복잡해 다치고 싶지 않았다.아무 여자와 몸을 나누기는 싫었던 심진우는 차승훈을 보며 말했다.“하초연 씨가 많이 취한 것 같으니까 네가 집까지 데려다줘.”붉게 물든 하초연의 예쁘장한 얼굴을 바라보던 차승훈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알았어. 걱정하지 마. 내가 안전하게 잘 모셔다드릴게.”온몸이 달아올랐던 하초연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남자라면 전부 덮치고 싶다는 욕망으로 들끓었다.비록 차승훈이 좋은 남자가 아니라는 걸 이성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현재 하초연은 너무 괴로웠고 남자의 손길이 한없이 간절하기만 했다.클럽에서 나온 김지아는 권재혁의 차에 앉아왔던 터라 길옆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혹시 지나가는 누구라도 그녀를 알아차리기라도 할까, 걱정된 김지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서있었다.이곳은 그렇게 외진 곳은 아니었지만, 택시를 잡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밤바람은 잘 정리되었던

  • 시간이 지나도 너뿐이야   제27화

    말을 마친 심진우는 잔에 들어있는 술을 전부 마셨고 이어서 미안하다는 의미로 연속 세잔을 마셨다.“오늘 제 생일이거든요. 간단하게 파티하는 거예요.”김지아는 ‘아.’하는 탄성과 함께 그의 생일을 축하했다.심진우는 권재혁을 향해 웃어 보였지만 어두운 그의 얼굴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야, 친구 생일인데 그 표정 좀 어떻게 못 하냐? 왜 죽상이야?”권재혁은 심진우를 흘겨보며 말했다.“네 놀거나 놀아.”“알았어.”심진우는 권재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물 만난 물고기처럼 여자들을 이리저리 끌어안으며 신나 날뛰었다.김지아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아무래도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권재혁의 옆에 앉아있었다.그녀가 권재혁을 바라보는 찰나 그는 누군가의 전화 때문에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액정에는 김지연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고 김지아는 급히 모른 척 눈길을 피했다.권재혁은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 하초연은 이 기회를 틈타 김지아의 옆에 다가와 앉더니 술을 한잔 권했다.김지아는 마다하며 말했다.“죄송해요. 속이 좋지 않아서.”하초연은 웃으며 뜨거운 물 한 잔을 받아 김지아에게 건네며 말했다.“그럼 뜨거운 물이라도 마셔요.”“고마워요.”“저랑 심진우는 안지, 오래된 친구 사이예요.”하초연은 심진우와 그녀의 사이를 변명이라도 하는 듯 김지아에게 설명했다.하초연과 심진우가 어떤 사이든 전혀 관심이 없던 김지아는 김지연이 도대체 이 밤중에 무슨 용건으로 권재혁한테 전화한 건지 신경 쓰였다. 그녀는 궁금증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김지아가 룸을 나가자, 권재혁은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를 들고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김지연의 전화 한 통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권재혁을 보자 김지아는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다시 룸으로 들어온 김지아는 잔에 있는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하초연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의아한

  • 시간이 지나도 너뿐이야   제26화

    권씨 가문 저택으로 다시 돌아가자, 전희라는 눈이 빠지게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검사 결과를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던 그녀는 권재혁을 보자마자 즉시 지팡이를 짚으며 마중을 나왔다.권재혁은 어두운 얼굴로 검사 보고서를 전희라한테 넘겨주고는 말도 없이 식당으로 들어갔다.결과를 본 전희라의 눈빛은 실망으로 가득 찼다.권재혁 몰래 피임약을 복용했다는 걸 말할 수 없었던 김지아는 그런 전희라의 표정에 괜히 제 발 저린 사람처럼 불안해졌다.“괜찮아.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전희라는 김지아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건넸다.“내가 나이는 많아도 아직 건강하단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 조급해할 거 없다.”김지아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전희라는 김지아를 한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 이러면 안 돼. 많이 먹어야지. 너무 말랐잖아. 바쁜 일만 마무리 하면 할머니가 몸보신 시켜줄게.”김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래 지금은 좀 괜찮아?”“네 많이 나아졌어요.”“그럼, 뭐라도 좀 먹으러 가자꾸나.”“생각 없어요. 저 좀 올라가서 쉴게요.”전희라는 더는 강요할 수 없어 ‘알겠다.’라고 대답한 뒤 김지아를 올려보냈다.급하게 방으로 돌아온 김지아는 권재혁 몰래 서랍에 숨겨 놓았던 피임약을 누구한테 들키기 전에 미리 버리려고 꺼내는 순간 갑자기 권재혁이 방으로 들어오더니 그녀의 손에 들어있는 약을 빼앗아 갔다.딱 봐도 피임약에 이미 두 알이 없어진 걸 알아차린 권재혁은 자신과 김지아의 잠자리가 정확히 두 번이라는 걸 기억하고는 눈썹을 찡그리며 손에 쥔 약을 구겨 버렸다.당황한 김지아는 권재혁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조차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현재 그가 얼마나 분노에 차 있는지 느껴졌다.“괜찮으면 같이 더블유에나 가지.”권재혁은 김지아를 한참 노려보다 이를 악물고 말했다. 거절할 새도 없이 김지아는 권재혁한테 손목이 잡혀 끌려 나갔다.손목뼈가 으스러지도록 단단히 움켜쥔 권재혁 때문에 김지아는

  • 시간이 지나도 너뿐이야   제25화

    “임신일 수도 있잖아.”안달해서 말하는 전희라의 목소리에 권재혁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진 채 계단 위에 서 있었다.이때 화장실 문을 열며 나오던 김지아는 전희라와 도우미들이 문 앞에 모여있는 것을 보고 방금 별소리를 다 내며 토했던 순간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할머니, 여기서 뭐 하세요?”“재혁이와 같이 병원 좀 가봐.”“재혁이 퇴근했어요?”전희라가 계단 쪽을 향해 눈짓하자 김지아의 눈길도 그쪽으로 향했다. 계단에 선 채 그녀를 내려다보는 권재혁의 눈빛은 어딘가 아주 복잡해 보였다.권재혁은 김지아를 한참 주시하다 즉시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와 곧장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기세등등한 그의 모습에 놀란 김지아는 머뭇거리며 뒷걸음질 쳤다.“병원 가자.”김지아는 웃으며 손을 저었다.“괜찮아. 심각한 거 아니야. 음식을 잘못 먹었나 봐.”“데려다줄게. 가자.”“진짜 괜찮아.”표정이 어두워진 권재혁은 더 이상 입씨름하기 귀찮아 두말하지 않고 김지아를 어깨에 둘러메고 밖으로 나갔다.그 모습에 속이 덜컹 내려앉은 전희라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놈아, 조심 좀 해. 다치면 어쩌려고 이래.”갑작스러운 권재혁의 행동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김지아는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내려줘. 나 진짜 괜찮다니까. 병원 갈 필요 없어.”“권재혁, 내 말 안 들려? 내려 달라고.”권재혁은 빠르게 걸어나가 김지아를 차에 태우고 안전띠까지 매준 뒤 ‘조용히 해.’라는 말로 그녀의 입을 닫았다.김지아는 긴장한 표정으로 권재혁을 바라봤다.차에 올라탄 권재혁은 빠른 속도로 자동차 엔진을 켜더니 쏜살같은 속도로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위가 좀 불편하다는데 왜 심각하게 이러지? 언제부터 나한테 이렇게 관심을 가졌다고?’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롤스로이스는 이미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권재혁은 김지아를 끌고 병원 안으로 향했고 산부인과라는 글씨를 보고 나서야 그녀는 권재혁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

  • 시간이 지나도 너뿐이야   제24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싸 쥔 채 멍하니 앉아있는 하초연의 모습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멀쩡히 하고 있던 몰로 브랜드 홍보대사도 이렇게 물 건너간 셈이었다.하초연은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분노를 참아야 했다.고개를 푹 숙인 채 얌전하게 있는 하초연을 보고 나서야 김지아는 돌아서서 권재혁을 바라봤다.노기등등해 있던 표정은 한결 누그러진 것 같았고 심오하던 눈빛은 차갑기만 했던 예전과 달리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김지아는 하초연의 팔을 잡아 자신을 막아준 권재혁을 떠올리자, 마음이 따듯해졌다.“오랜만이야.”어색한 분위기에 김지아는 한참 뒤에야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권재혁은 ‘응.’이라는 간단한 대답을 남긴 채 고개를 돌려 전태성을 보며 말했다.“차에 있는 물건 가지고 와.”전태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즉시 무대 뒤에서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온 전태성은 선물 상자를 들고 들어와 공손하게 김지아에게 건넨 후 다시 권재혁의 뒤로 물러섰다.김지아는 손에 든 상자를 보며 약간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권재혁을 바라보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저녁에 나랑 어디 좀 가자.”“어디?”권재혁은 김지아의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은 채 뒤돌아섰고 전태성과 부하들도 급히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무대 뒤에서 이들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도 차츰 흩어져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각자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선물 상자를 들고 대기실로 들어온 김지아가 상자 뚜껑을 열자, 안에는 짙은 색상의 드레스와 액세서리가 들어 있었다.그녀는 상자의 뚜껑을 다시 닫으며 조이현에게 물었다.“오늘 남은 스케줄이 더 있어?”“인터뷰와 런웨이를 끝으로, 몰로 브랜드 측 임원들과 저녁 식사가 있어요.”‘저녁 식사?’김지아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조이현을 향해 말했다.“주 대표님한테 연락해서 식사 자리는 취소하라고 해.”말을 마친 김지아는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남은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저녁 7시가 되어있었다. 김지아는 행사장 대기실을 빌려

  • 시간이 지나도 너뿐이야   제23화

    권재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깊은 두 눈으로 김지아를 주시하고 있었다.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한 손으로는 가슴을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를 짚은 채 방금의 해프닝은 별것 아니라는 듯 더욱 당당하고 멋있게 걸어 나갔다.김지아는 마침 무대 앞쪽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던 하초연을 가로질러 우아하게 무대를 돌아 들어갔다.등이 반쯤 노출 될 정도로 옷이 찢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쇼를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김지아의 모습에 권재혁의 표정은 한결 누그러진 것 같았다.김지아의 무대가 끝나자, 권재혁은 다른 사람의 무대는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뒤로 향했다. 전태성과 부하 직원 몇몇이 그의 뒤를 따랐다.무대 뒤는 방금 일어난 돌발 상황 때문에 이미 난장판이 되어있었다.디자이너는 지시를 따르지 않고 단독 행동을 한 하초연이 김지아의 치마를 밟아 피날레였던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망가뜨린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눈길을 끌겠다는 목적을 이미 달성한 하초연은 화가 치밀어 오른 디자이너에게 여유롭게 웃으며 사과했다.“죄송해요. 너무 긴장해서 그랬어요.”“처음 무대 올랐을 때도 안 하던 긴장을 왜 하필 마지막에 했다는 거예요?”“정말 긴장했다니깐요. 피날레라고 하니까 어찌나 떨리던지.”“무슨 말이에요 그게! 피날레는 김지아 씨지 하초연 씨가 아니잖아요.”“알고 있어요. 그냥 당시에 너무 긴장되어서 그랬어요. 미안해요.”하초연의 변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디자이너는 하초연이 고의로 자신의 무대를 망쳤다고 생각하여 손가락질하며 욕을 퍼부었다.“하초연 씨, 당신처럼 본인만 눈에 띄면 된다고 생각하는 무책임한 사람과는 앞으로 절대 협조 안 할 거니까 각오하세요.”하초연은 디자이너의 말에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는 듯 오히려 조소를 띄며 말했다.“별것도 안 되는 디자이너 따위가 큰소리는.”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디자이너는 하초연을 때리려고 손바닥을 치켜들었다.그녀의 손바닥이 하초연의 볼에 채 닿기도

  • 시간이 지나도 너뿐이야   제22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김지아한테 메이크업을 완성해 주자 런웨이 시작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가을 콘셉트로 되어있는 이번 패션쇼는 단풍을 기본으로 한 레드, 해양을 기본으로 한 블루, 노랑과 풀색을 어울려 만든 빈티지 콘셉트로 모두 세 가지가 있었다.세 가지 콘셉트를 번갈아 무대에 올려 스타들로 하여금 충분히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김지아가 홍보하는 ‘단풍’ 콘셉트에는 모두 여섯 세트의 옷이 있었고 각 세트의 탈의 시간은 5분가량에 머리 모양도 한번 변경해야 했다.패션쇼가 막 시작되려 하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그리고 브랜드 측 직원 및 디자이너와 매니저까지 전부 무대 뒤로 모여들었다.모두 자신의 열정을 다 바쳐 이 쇼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단풍’ 시리즈는 이번 가을 패션에서 하이라이트 콘셉트로 김지아가 제일 먼저 무대에 오르게 되어있었다.모든 준비를 마친 김지아는 무대 뒤에 서서 무대 쪽을 슬쩍 훔쳐봤다. 무대는 T자 형태로 되어있었고 쇼를 보러 온 손님들은 U자 형태로 무대를 빙 둘러있었다.공석 하나 없이 꽉 차 있는 사람 중에서도 김지아는 한눈에 권재혁을 찾아낼 수 있었다.권재혁의 좌석은 무대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중간 자리의 일렬에 있었다.사회자는 브랜드 시리즈를 소개한 뒤 잠시 농담으로 현장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모든 사람이 전부 사회자의 입담에 웃고 있었지만 유독 한 사람, 권재혁만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의 웃음 포인트가 낮은 건지 권재혁의 웃음 포인트가 높은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김지아 씨, 무대 오를 준비 하세요.”뒤에 있던 스태프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사회자가 무대 뒤로 물러나는 순간 쇼장의 불빛은 어두워졌고 런웨이만 환하게 비쳤다.경쾌한 리듬의 음악과 함께 김지아는 하이힐을 신은 채 침착한 표정으로 런웨이에 올랐다.맞은 편에는 권재혁이 정면으로 앉아있었고 무대에만 집중되어 있는 조명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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