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하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없습니다.”서정식은 진도하를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부담을 느끼시지 말고 필요한 게 있으시면 꼭 말씀해 주세요.”“정말 없습니다.”진도하가 웃으며 말했다.그런 다음 곧바로 화제를 바꾸었다.“제가 이 별장에 이미 진법을 설치했으니 다들 여기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으실 거예요. 예전에 제가 말한 것처럼 출입 할 때 별장 안에 있는 물건을 들고 있으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들어올 수 없거든요.”“네. 알고 있습니다.”서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이 진법은 당시 단용수가 별장에서 요양하고 있을 때 진도하가 만든 것이었다.서정식도 알겠지만 진도하는 다시 한번 당부했다. 이로써 진도하의 마음이 드러났다. 사실 그는 자신이 이번에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 한 번 더 조심해야 할 것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이다.이때 서정식이 물었다.“혹시 진 선생님 이번 외출이 위험한 것 아닙니까?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는 건 아니죠?”진도하는 서정식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 잠시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서정식이 또 물었다.“꼭 해야 하는 일입니까?”“네. 해야만 합니다.”그러자 서정식은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도하를 말리거나 안심시키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가서 하세요!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 있잖아요!”“맞습니다.”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말했다.“그럼 저는 가볼게요.”이 말을 남기고 진도하는 별장에서 사라졌다.그러나 그는 떠나기 전에 비밀번호가 적힌 은행 카드를 별장 안에 남기고 갔다.진도하는 서정식에게 자양파와 이주안, 현지수를 위해 기를 모으는 약을 정제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그 많은 약재 값을 서정식 혼자 지불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 비용을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서정식이 절대 받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방법밖에 선택할 수 없었다.별장에서 나온 진도하
진도하는 만족하지 않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현실 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몇 달 만에 두 경지를 차례로 돌파한 셈이지만 링 안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이미 130 년을 훌쩍 넘겼다.진도하의 표정에 교만함이 없는 것을 본 스승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도하야, 네가 원만한 경지에 도달했지만 모든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야.”“네?”진도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스승을 바라보았다.스승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다른 세계는 수련하기에 환경이 아주 적합하고 수련하는 사람도 많아. 우리 세계에서는 원만한 경지에 도달하면 무적의 존재로 여겨지지만 그 세계에서는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해.”“뭐라고요?”진도하의 눈이 커졌다.다른 세계가 수련하기에 적합한 세계라고 해도 기껏해야 이 세계보다 한두 경지 위라고 생각했었는데 스승의 말을 들으니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스승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말했다.“아무튼 가보면 알게 될 거야.”진도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말했다.“거기 가면 어떤 곳인지 먼저 알아봐야겠어요.”“그래. 잘 알아두면 네가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거야.”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어서 말했다.“네가 그곳에 가면 먼저 아무 세력을 찾아서 가입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구나. 그래야만 그 세계에 대해 배우면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거야.”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승의 말을 마음에 새겼다.스승이 덧붙였다.“그곳에 가서 네 사부님으로 삼을 만한 사람을 만나면 부담 없이 입문해도 돼. 수련은 다른 훈련과 달라서 사부가 여러 명 있는 게 정상이야.”“알아요.”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이 그 한 명만 스승으로 삼으면 수련을 제대로 할 수 없을까 봐 걱정해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됐어. 내가 할 말은 다 했으니 앞으로는 너에게 달렸어.”스승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네.”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이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스승에게 말했다.“스승님, 순간이동 장치를 작동
“좋아. 그럼 순간이동 장치를 작동시킨다!”스승이 말했다.“작동해 주세요!”진도하는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스승은 아무 말 없이 진도하를 바라보며 걱정 어린 눈빛을 보였다.진도하는 당당한 자세로 침착하게 서 있었다.슝!순간이동 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하고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스승은 눈가가 촉촉해진 채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여기 바람이 너무 세네...”진도하는 스승을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스승님, 저 갑니다.”곧이어 순간이동 장치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모든 것이 다시 선명하게 보일 때는 이미 다른 세계에 나타난 뒤였다.이 순간 진도하는 마치 갓난아기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른 세계를 둘러보았지만 눈 앞은 온통 하얀색이었다.이 세계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진도하가 서 있던 곳은 텅 빈 평지였고 땅에 있는 눈은 이미 무릎만큼이나 두껍게 쌓여 있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몇몇 사람들이 나무 수레를 밀며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진도하는 의아해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그가 놀란 것은 이곳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세계의 고대 의상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아직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지만 길에는 많은 보행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무리지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잠시 멍 때리고 있던 진도하도 그들을 따라갔다. 이 세계를 잘 모르더라도 모두가 가는 방향이 분명 사람이 많은 곳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다행히 눈이 많이 내려서 진도하의 옷에 눈이 많이 쌓여 다른 사람들은 그의 의상을 볼 수 없었다.진도하가 가장 놀란 것은 이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억양만 다를 뿐,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하는 말과 똑같다. 말을 할 때 톤을 조금만 바꾸면 현지인이 아니라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 할 것이다.이렇게 30분 정도 걷다 보니 어느새 그들 앞에 거대한 도시가 나타났다.예전에 여행할 때 보았던 고대 도시와 거의 같은 크기였지만 눈앞의 도시는 장엄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흰색 옥석은 비교적 값이 싸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팔 때 화폐로 사용한다.진도하의 스승은 그를 위해 보라색 옥석을 많이 준비했지만 백옥도 있었다. 방금 산 옷은 수십 개의 백옥이 들었다.나중에 진도하는 이 세계에 잡옥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잡옥은 일반적으로 민간인이 사고 파는 데 사용하는 화폐였다.잡옥 백 개는 백옥 한 개의 가치와 같다. 또한 백옥 백 개는 자옥 한 개의 가치와 같다.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게에서 나온 진도하는 자신이 이 세계에 완전히 녹아들었다고 느꼈고 거리를 걸으며 이리저리 바라보았다.물론 진도하는 단순히 걷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 도시와 이 세계를 계속 관찰했다.진도하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이 도시의 이름이 청룡시라는 것을 알았다. 도시의 이름을 알게 된 후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이 세계에 청룡시가 있으니 설마 백호시, 주홍시, 현무시도 있는 건 아니겠지?’이때 진도하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찻집을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걸어갔다.청룡시와 이 세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던 진도하에게 찻집은 의심할 여지없이 최고의 장소였다. 여러 계급의 사람들이 다양하게 있는 곳이라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다.진도하가 찻집에 들어서자 점원이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몇 분이 오셨습니까?”“한 명입니다.”진도하는 말하면서 말투를 굳이 바꾸지 않았다.이 청룡시에서는 통일로 사용하는 언어가 없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의 입에서 각자의 사투리가 나왔다.“손님, 이쪽으로 오세요.”점원은 진도하를 자리로 안내했는데 구석에 있는 자리여서 진도하는 마음에 들었다.진도하는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앉아 차 한 잔과 반찬 몇 접시를 주문한 후 차를 마시며 옆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들으셨어요? 태초서원에서 학생을 모집한대요!”초록색 옷을 입은 학자 같은 남자가 말했다.“당연히 들었죠. 태초서원은 우리 대연의 4대 서원 중 최고 서원인데 매년 이맘때면 학생들을 모집해
초록색 옷을 입은 학자는 다시 한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러분들이 모르시겠지만 태초서원뿐만 아니라 다른 세 서원도 입학 요구를 올렸고 여러 문파에서도 가입하려는 제자들에 대한 요구를 올린 것 같아요.”“그런데 왜 그렇게 하는 거예요?”누군가가 의아한 듯 물었다.“그건 저도 몰라요.”학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쉬운 듯 말했다.이 모든 정보도 서점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게 된 것이었다.학자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그들이 왜 요구를 높였는지 알았더라면 오늘 찻집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 되었을 텐데, 아쉽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의 말은 찻집에 있는 사람들을 충분히 놀래켰다.주위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찻집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모두가 동시에 말하다 보니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들을 수 없었다.머릿속이 윙윙거리는 느낌만 있었다.다행히 진도하의 청력이 워낙 좋아서 꽤 잘 들었다.바로 이때, 이야기꾼이 찻집 맨 앞자리로 걸어나와서 책상 앞에 앉아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손님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이야기꾼은 책상을 쳤다.탁!찻집 사람들은 그제야 이야기꾼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점원도 이때 외쳤다.“조용!”찻집은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모두 대화를 멈추고 이야기꾼을 바라보았다.진도하는 이것이 이야기꾼의 규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점원이 “조용”이라고 외치는 순간 모두가 조용해지고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뜻이었다.아니나 다를까, 이야기꾼은 무대에 앉아 시 한 편을 읊었다.“곧게 펴지려는 구부러진 나무는 결국 휘어지고, 늑대를 개로 키워 집을 지키기는 어렵다. 먹물 묻은 갯가마우지는 검은색이 오래 못 가고, 흰 칠한 까마귀의 흰색은 견고하지 못하네.”진도하는 원래 있던 세계에서 이 시를 들은 적이 있다.이야기꾼이 마지막 구절을 읊었다.“좋은 일은 언제나 선한 사람이 하는 것이니, 어디 인간이 신이 될 수 있으랴!”찻집에 있던 사람들도
이 세계는 대염이라는 곳이다.그리고 여기엔 네 개의 주요 도시가 있다. 각각 청룡시, 현무시, 백호시, 주홍시다.이 네 개의 주요 도시 아래에는 수많은 작은 도시가 있다.진도하가 현재 머물고 있는 청룡시도 4대 도시 중 하나였다.또한 이곳에는 대염의 4대 서원 중 최고의 서원인 태초서원이 있다.그리고 세 개의 종파, 무상파, 청풍각, 현광문이 있다.그리고 지금이 바로 태초서원과 세 문파가 제자를 모집하는 시기였다.‘때마침 찾아왔을 줄은 몰랐네.’진도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이번 기회에 아무 문파에 들어가서 소원의 은신처와 부모님의 행방을 조사하면 되겠군. 그런데 어느 문파에 들어갈까?’진도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는 세 문파의 모집 조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태초서원의 모집 요구가 자신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과연 진도하는 태초서원에 입문할 수 있을까?진도하는 한참을 생각한 후 확신을 가졌다. 태초서원에 들어가자고 말이다.4대 서원의 최고인 만큼 그 위세가 대단할 테고 그 서원에 들어가면 아무도 그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어느 문파에 입문할지 결정한 진도하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침대에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푹 잠이 들었다.다음 날 새벽이 밝아오자 진도하는 방에서 걸어 나왔다.점원이 진도하를 보고 물었다.“손님, 여기 아침 식사를 준비했는데 드시겠습니까?”“괜찮습니다.”진도하는 고개를 저었다.점원은 의아해하며 물었다.“많이 바쁘신가요? 여기 아침 식사는 숙박 시 무료입니다.”진도하는 점원이 이렇게까지 열성적일 줄은 몰랐다.“사람이 많지 않은 틈을 타서 태초서원에 다녀오려고요.”그러자 점원은 말했다.“손님, 태초서원에 등록하려고 오신 거죠?”“네.”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점원이 이어서 말했다.“그럼 너무 늦게 일어나셨네요. 지금 태초서원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서 지금 가셔도 대기열 맨 뒤에 계실 텐데 아침 드시고 잠시 쉬었다가 점심에 가세요. 그때면 대부분의
곧 진도하는 태초서원 입구에 도착했다.입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가득했고 모두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며 심지어 뒤에 있는 사람들은 앞 상황을 보지도 못하는데 구경하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이었다.이 광경을 본 진도하는 생각했다.‘방금 가게 점원의 말을 들은 덕분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까 일찍 와서 헛수고했겠네.’진도하는 사람들 속에 끼어들지 않고 옆에 떨어져 서 있었다.사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진도하는 줄을 서야 하는 곳에는 잘 가지 않았다.아침에 여관 점원이 몇 번이나 주의를 주길래 태초서원에 일찍 오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한참을 옆에 서 있다가 진도하는 드디어 차례대로 줄 지어선 사람들을 보았는데 약 백여 명이 있었다.진도하는 서둘러 걸어가 맨 뒤에 섰다. 그러자 주변의 구경꾼들이 모두 진도하를 바라보았다.누군가가 진도하를 얕잡아보듯 물었다.“당신은 그냥 구경하러 온 거예요? 아니면 태초서원에 가입하러 온 거예요?”하지만 진도하는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데 서투른 이유도 있었지만 문제는 그 사람의 말투가 매우 무례했기 때문이었다.진도하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본 그 남자는 짜증이 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재미만 보러 왔으면 여기서 줄 서지 마요. 여긴 등록하는 줄이니까.”진도하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그러자 남자는 계속 말했다.“등록하려는 거면 당신의 경지가 대부경이에요? 태초서원의 최소 요구가 대부경인데.”그렇게 말한 뒤 그는 진도하를 위아래로 살피더니 또 말했다.“경지가 대부경이 안 된다면 서둘러 떠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당신 차례가 되면 고생을 해야 할 거니까.”진도하는 그 사람의 말에 짜증이 났다.그래서 마침내 입을 열었다.“참가 요건을 몰랐다면 제가 왔겠습니까?”진도하의 말은 차갑고 냉정했다.그 남자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낮췄다.“나도 그냥 조심하라고 당부해 주는 건데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할 필요가 있나?”귀가 밝은
학자는 이번에 진도하가 언짢아하는 것을 느꼈는지 손을 거두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안해요. 여기까지 뛰어 오느라 너무 힘들어서 그만...”학자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진도하는 오히려 조금 당황스러웠다.하지만 사람들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진도하로서는 매우 불편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아직 그에게 낯선 사람인 학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이주안조차도 그의 어깨를 건드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학자는 마치 서로 아는 사이인 것처럼 진도하의 어깨를 만지며 말했다.“혹시 합격하는 조건에 대해 알고 있어요?”진도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학자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고는 찻집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짓던 그 표정이 떠올랐다.그래서 진도하는 학자가 자신이 모르는 소식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진도하가 대답했다.“알아요. 대부경이면 등록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그 말을 들은 학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난 등록 자격을 묻는 것이 아니라 합격할 수 있는 조건을 묻는 거예요.” 진도하는 그때서야 학자의 말을 알아듣고 물었다.“조건이 뭔데요?”그러자 학자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태초서원은 4대 서원 중 최고의 서원으로서 제자를 모집하는 조건이 가장 까다로운데 대부경의 경지에 있는 사람만이 등록할 수 있어요. 그리고 합격하려면 대부 1단계의 전력을 다한 펀치를 견뎌야 해요. 그 펀치를 견딜 수 있으면 합격하고 견디지 못하면 탈락이죠.”“그렇게 간단해요?”진도하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대부 1단계가 어떤 경지인지는 몰랐지만 대부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는 진도하를 보며 학자는 오히려 의아해했다.“대부 1단계의 펀치를 견디는 게 간단할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도 웃는 당신이 진짜 대단하네요.”“간단하지 않나요? 그냥 펀치를 한 번 맞는 거잖아요.”진도하는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어떤 경지의 사람이 자신에게 주먹을 날려도 자신은 반드시 견딜 수 있다고 믿
“선우 씨가요? 내 이름을 걸고 말이에요?”진도하는 주선우를 흘겨보았다.주선우가 두 눈을 반짝이며 열정 가득한 모습을 보니 이 일에 꽤나 열을 올리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맞아요. 형님은 형님 할 일을 계속하면 되고 상고성의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주선우가 말했다.“어쨌든 이곳은 항상 형님이 말하는 대로 될 거예요.”진도하는 그 말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무엇보다도 그는 문득 자신의 조상, 진씨 가문의 창시자를 떠올렸다.스승님이 말하길 진씨 가문의 창시자는 원래 세계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문파를 세웠고 그들이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 머무를 곳과 수련 자원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지금 비록 자신이 조상처럼 높은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이 작은 상고성에서라면 문파를 세우고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그러면 이주안, 현지수, 강고수 같은 사람들이 이 세계로 오게 될 경우 바로 상고성으로 올 수 있을 것이다.이런 생각이 들자 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일은 조금 더 생각해보도록 하죠.”그러자 주선우는 안절부절못한 듯 서둘러 말했다.“형님, 생각할 것도 없어요! 지금 형님의 대부경 5단계 실력으로 문파를 세우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더구나 이미 대부경 7단계 두 명을 넘어섰잖아요!”“하지만 수련 자원과 공법은 어디서 구할 수 있죠?”진도하가 물었다.문파를 세운다고 해도 중요한 건 공법과 자원이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문파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그러자 주선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그건 다 준비돼 있잖아요.”그러고는 고문파의 대문을 향해 입술을 쓱 내밀었다.진도하는 그제야 주선우의 뜻을 알아차렸다.그는 고문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단전이 파괴된 고문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짐을 챙겨 들고 차례차례 걸어나오고 있었다.주선우는 그들을 향해 외쳤다.“짐만 챙겨 나가. 공법과 자원은 모두 두고 가야 해. 알았어? 만약 몰래 가지고 나가는 걸 나한테 들키면 그땐
그 말을 들은 열몇 명의 수련자들은 더욱 두려워졌다.이때 문 밖에서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수련자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곧 그들 앞에 나타난 사람들은 다름 아닌 같은 문파의 동료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란 표정이 가득했다.“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일흔 명이 넘는 동료들이 입가에 피를 흘리고 창백한 얼굴로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너희 단전이 파괴된 거야?”금세 누군가가 상황을 깨닫고는 두려움에 떨며 물었다.하지만 그 수련자들은 아무 말 없이 진도하와 은소혜를 비켜 지나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이 광경을 목격한 나머지 수련자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비록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들은 동료들의 단전이 파괴된 것이 바로 진도하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진도하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10!”“9!”“8!”세 개의 숫자가 떨어지자마자 그중 한 명이 기운을 모아 자신의 단전을 가격했다.첫 번째로 나선 사람이 나오자 두 번째, 세 번째로 자진해서 단전을 파괴하는 이들이 연달아 나왔다.결국 열몇 명 모두 단전을 스스로 파괴했다.그제야 진도하는 만족한 듯 몸을 돌려 문을 나섰고 은소혜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독고 청의와 주선우가 기다리고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독고 청의가 물었다.“다 해결된 거죠?”“네, 해결됐어요.”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주선우가 물었다.“그럼 저들을 그냥 이렇게 놔둬도 되는 거예요?”진도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그냥 두죠.”비록 그들이 고천혁과 함께 악행을 저질렀지만 이제 그들은 단전이 파괴된 폐인이 되었으니 굳이 끝까지 몰아붙일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때로는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때도 있으니까.주선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흥분한 듯 진도하에게 말했다.“형님! 고천혁도 죽고 고문파도 거의 전멸했으니 이제 상고성에는 더 이상 문파가 없어졌어요.”“네?”진
그 한 마디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려 퍼졌다.은소혜는 귀를 문지르며 속으로 생각했다.‘도하의 실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구나.’문 앞에 있던 독고 청의와 주선우를 비롯한 다른 수련자들도 본능적으로 귀를 막았다.진도하의 목소리는 고문파의 본거지에 울려 퍼졌고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었을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1분도 지나지 않아 십여 명의 수련자들이 장검을 들고 진도하 앞에 분노에 찬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그들 중 선두에 선 마흔 즈음의 중년 남자가 화난 표정으로 진도하를 노려보며 말했다.“우리 고문파 앞에서 감히 고함을 치다니, 너 죽고 싶어?”그러자 진도하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고천혁은 이미 죽었어. 너희도 단전을 스스로 파괴하면 목숨만은 살려줄게.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야.”그 중년 남자는 갑자기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너희 둘 미쳤어? 여기가 어딘 줄이나 알아? 감히 여기서 그런 허튼 소리를 하다니,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단전을 자진 파괴한 고문파 수련자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그는 고천혁이 죽었다는 사실도, 다른 수련자들이 이미 단전을 스스로 파괴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그는 진도하를 분노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바로 칼을 뽑을 듯한 기세였다.진도하는 화를 내지 않았고 그저 웃으며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너희 고문파 사람들은 모두 여기에 있어?”그와 동시에 진도하는 자신의 감지력을 넓혀 주변을 탐지했다.중년 남자는 대답 대신 화를 내며 소리쳤다.“어서 나가! 안 그러면 우리 세 개 주성의 수장님이 돌아오시면 넌 반드시 죽을 거야!”그는 진도하와 은소혜가 풍기는 강력한 기운을 느끼고 자신이 그들을 상대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그러나 평소 상고성에서 악명을 떨치며 권력을 휘두르던 그는 이들을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세 개 주성의 수장을 언급하며 그들을 위협하고 쫓아내려고 했다.이때 은소혜가 칼을 들고 중년 남자 옆으로 성큼 다가가며 말했다.“네가 말하는 ‘세 개 주성의 수장’이 고
그때 백발의 노인이 말했다.“길을 안내해드릴까요?”“좋습니다!”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고천혁을 제거한 이상 고문파의 나머지 사람들도 빨리 처리해야 했다. 그들을 놓쳐서 도망가게 한다면 더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이런 생각이 들자 진도하는 말했다.“어르신, 젊은 분 한 분만 보내주세요. 어르신께서 굳이 함께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백발의 노인은 진도하의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철수야, 네가 발도 빠르고 민첩하니 진 대사님을 안내해드려라.”“알겠습니다!”철수는 사람들 속에서 뛰어나와 신나게 말했다.“진 대사님, 저를 따라오시죠!”“가요!”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철수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철수 씨는 방향만 알려주면 돼요.”“알겠습니다!”철수는 곧장 대답했다.“이 길 끝까지 가서 왼쪽으로 꺾으면 됩니다!”철수가 방향을 알려주자 진도하는 환허보를 발휘해 고문파 본거지로 빠르게 향했다. 가는 동안 철수는 입을 틀어막고 있었고 언제든지 토할 것처럼 보였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은소혜와 독고 청의 일행도 그 뒤를 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단전을 자진 파괴한 고문파 수련자들이 진도하의 눈에 들어왔다.그들도 진도하를 보자마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우린 이미 단전을 끊었는데 왜 또 우리를 죽이려는 거야?”그들은 진도하를 두려워하며 물었다.그러자 진도하는 냉담하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나는 약속은 꼭 지켜.”“그런데 왜...”그들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진도하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진도하는 대답하지 않고 철수에게 다시 방향을 물었다. 철수가 또 다른 방향을 가리키자 진도하는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단전이 파괴된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진도하가 사라지자 그제야 긴장을 풀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얼굴에는 씁쓸한 표정만 남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고성에서 위세를 떨치던 수련자들이 이제는 단전이 파괴된 폐인이 되었으니 당연히 감
그 수련자는 눈빛이 흔들리며 혼란스러워졌다.진도하는 분노에 차 소리쳤다.“설마 나를 직접 나서게 만들 생각이야?”고문파의 수련자들이 자진하여 단전을 끊고 있을 때 진도하는 자신의 감지력을 모두 풀어놓았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거짓으로 단전을 끊는 척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지금 진도하 앞에 있는 이 수련자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는 자신의 단전을 때리는 시늉만 했을 뿐 실제로는 기운을 모으지 않았고 피를 뱉는 척까지 했다. 그의 단전은 멀쩡했다.그 수련자는 복잡한 눈빛으로 진도하를 바라보더니 침을 몇 번 삼키며 눈을 감았다. 이어서 그는 제대로 자신의 단전을 향해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번엔 진짜로 선홍빛의 피가 튀어나왔다.그제야 진도하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꺼져!”그 수련자는 단전이 파괴된 고통을 억지로 참고 비틀거리면서 자리를 떠났다.곧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모두 단전을 스스로 끊고 떠났다. 그제야 진도하는 용음검을 거두었다.그는 뒤돌아 은소혜와 그녀 뒤에 있는 수련자들을 보며 물었다.“우리는 사상자가 있어?”“사상자는 없지만 부상자는 몇 명 있어.”은소혜가 대답했다.조금 전 그들이 고문파의 수련자들과 싸울 때 은소혜는 계속해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고 위험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바로 달려갔기 때문에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고 몇 명의 부상자만 나왔을 뿐이었다.“그래도 부상 당한 사람들은 이미 치료를 받았어. 지금 다들 몸 상태가 좀 허약할 뿐이지 큰 문제는 없어.”은소혜가 덧붙였다.그러자 진도하는 안도하며 품에서 약병을 꺼냈다.“이 약들은 내가 직접 만든 거예요. 수련에 큰 도움이 될 테니 모두 한 알씩 가져가요.”이들은 진도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를 도왔기에 진도하는 그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수련자들에게 보답하고 싶어 이 약을 내놓은 것이었다.진도하는 약병을 가장 가까이 있던 수련자에게 건네주었고 그 수련자는 약을 하나 꺼낸 다음 옆 사람에게 다시 약병을 넘겼다.바로 그
진도하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한번 용음검을 뽑아들고 고문파의 수련자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검 끝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살기가 고문파의 수련자들을 압도했고 이에 모두가 침묵 속에 휩싸였다.‘어떻게 해야 하지?’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그들이 망설이는 사이 은소혜와 독고 청의를 비롯한 다른 수련자들이 모두 다가와 고문파 수련자들을 포위했다.그들의 숫자는 고문파보다 적었지만 그들의 전의와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그들은 무기를 움켜쥔 채로 고문파의 수련자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했으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의도는 명확했다. 시간이 다 되면 진도하와 함께 일제히 달려들겠다는 것이다.“남은 시간은 50초.”진도하의 냉혹한 목소리가 울렸다.고문파의 수련자들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진도하의 검을 견딜 자신이 없었고 죽고 싶지도 않았다.“내가 단전을 끊으면 정말로 날 살려줄 거야?”갑자기 누군가가 물었다.진도하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대부경 1단계의 수련자였다.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스스로 단전을 끊는 자는 살려 보낼 거야.”“그 말 꼭 지켜.”그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손에 기운을 모아 자신의 단전을 향해 내리쳤다.퍽.남자는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단전의 파괴로 인한 고통을 억지로 참아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진도하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난 가도 되는 거지?”“가.”진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첫 번째로 단전을 끊은 자는 몸을 돌려 휘청거리며 멀리 걸어갔다. 10미터쯤 걸어간 뒤 누구도 그를 쫓지 않자 그는 단전을 움켜쥐고 빠르게 거리 끝으로 도망쳤다.이 광경을 본 고문파의 다른 수련자들은 진도하가 정말로 그 남자를 놓아주었다는 사실에 더욱 망설이기 시작했다.진도하는 다시 한번 말했다.“남은 시간은 이제 30초.”이 말을 듣자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모두 당황했다.퍽.또 한 명의 수련자가 기운을 모아 자신의 단전을 내리쳤다.“푸우...”그는 피를 뱉어내고 몸을 돌려 떠나갔다.진도하는
진도하의 영적 기운이 섞인 외침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것 같았다.은소혜와 다른 일행들, 그리고 고문파의 수련자들까지도 순간 멈칫하며 진도하를 바라보았다.진도하가 어깨에 메고 있는 고천혁을 보자 은소혜 일행은 놀라움과 기쁨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진도하가 또다시 대부경 7단계의 수련자를 처치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진도하는 대부경 7단계가 아니었지만 그 이상의 실력을 보였다.반면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당황스러워했다.“우리 문주님이 죽었어?”“어떻게 문주님이 저놈을 이기지 못할 수 있어?”고문파의 수련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고천혁이 다른 수련자들과 겨루는 모습을 여러 번 봐왔고 고천혁이 대부경 7단계의 수련자 앞에서조차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을 목격했었기 때문이다.상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고천혁이 옥판을 꺼내 들면 그 즉시 상대는 가루가 되어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고천혁이 실패했다니.그들은 마음이 혼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고 더 싸워야 할지 망설이기 시작했다.진도하는 고천혁의 시체를 땅에 던지고 고문파 수련자들을 향해 냉정하게 말했다.“고문파의 수련자들, 잘 들어라! 고천혁은 죽었어! 너희가 자진해서 단전을 끊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줄게! 그렇지 않으면 너희를 맞이할 건 죽음뿐이니까 각오해!”진도하의 말이 떨어지자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모두 침묵에 잠겼다.그들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드러났다. 단전을 자진해서 끊어야 할지, 아니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지 갈등에 빠진 것이다.그때 누군가 외쳤다.“우리를 속이려 해도 소용없어! 단전을 끊으면 결국 죽을 운명 아니야?”진도하는 그 말을 한 이를 바라보았다.“음? 대부경 4단계군.”그 대부경 4단계의 남자는 고문파의 다른 수련자들을 향해 돌아서더니 외쳤다.“모두 속지 마요! 죽을 각오로 싸우면 어쩌면 살 수 있는 길이 있을지도 몰라요! 단전을 끊는다는 건 우리 목숨을 칼 위에 올려놓는 거나 다름없어요. 저놈들이 우리를 살려줄지 죽일지는
쿵.거대한 굉음이 울렸지만 이번에는 피가 튀지 않았다.고천혁은 순간 멍해졌다.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설마 진도하 몸에 또 무슨 비장의 무기가 있단 말이야?’그는 재빨리 진도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그리고 그 순간 진도하가 크게 외쳤다.“아아아!”이 외침은 매우 고통스럽게 들렸고 천지를 뒤흔들 듯했다. 고천혁은 그 외침에 영혼마저 뽑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다음 순간 한 줄기 빛이 진도하의 어깨뼈에서 튀어나왔다.퍽.그 빛줄기는 바로 고천혁의 가슴 앞에 닿았다.크게 놀란 고천혁은 생각했다.‘이건 또 뭐야?’그는 서둘러 옥판을 조종해 방어하려 했다.그리고 그제야 공격해 온 것이 뼈 한 조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곧바로 그 뼈 조각이 옥판과 충돌했다.쾅.두 물체가 부딪히며 엄청난 에너지가 폭발했다.끼익.옥판은 깨졌고 수많은 조각으로 부서져 주변으로 흩어졌다.“젠장!”고천혁은 차가운 숨을 내뱉었다.옥판을 소유한 이후 그는 거의 무적이었는데 귀일경 이하에서는 그와 맞설 자가 없었다.옥판 덕분에 그는 상고성과 다른 두 주성의 문파를 멸망시키고 3대 주성의 수장이 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그의 비장의 무기가 산산조각이 났다니?고천혁은 얼어붙은 채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의 어두운 눈빛 속에 갑작스럽게 빛이 스쳤다.‘뭐지?’뼈 조각은 옥판을 부순 후 고천혁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눈 깜짝할 사이였다.“오지 마!”고천혁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졌다. 그는 급히 몸을 뒤로 뺐지만 그의 속도는 뼈의 속도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쉭.뼈 조각은 고천혁의 호신 영기에 부딪혔다.쾅.고천혁의 호신 영기는 산산조각이 났다.“뭐야?”고천혁의 눈이 커졌다.뼈 조각은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고천혁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고천혁은 움직임을 멈췄고 얼굴에 당혹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가슴에는 축구공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그는 그 자세를 유지한 채 3초간 서 있다가 결국 땅
고천혁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옥판을 던졌다.옥판은 빠르게 회전하며 진도하와 고천혁 사이에 자리 잡았다.하지만 진도하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스승님이 준 비취색 목걸이가 있으니 이 목걸이는 귀일경의 전력을 막아낼 수 있었다.그러니 옥판의 힘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진도하가 가진 자신감이었다.진도하는 마음을 굳혔다. 만약 옥판의 공격을 막지 못한다면 바로 스승님이 준 비취색 목걸이를 꺼낼 생각이었다.하지만 그 순간 옥판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슝.옥판에서 수많은 빛줄기가 쏟아져 나왔고 곧이어 검기와 영기가 진도하를 완전히 뒤덮었다.진도하는 반응할 틈도 없이 공격을 당했다.따다다다.그 빛줄기들이 빗방울처럼 진도하의 몸을 강타했고 그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고천혁은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옥판은 여전히 회전 중이었고 진도하의 호신 영기는 이미 산산조각이 났다. 그의 몸에는 상처가 끊임없이 늘어났다.진도하는 저항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상처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죽음의 기운이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진도하는 자신의 수명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음을 느꼈다. 피가 다 흘러나가기도 전에 그의 수명은 모두 사라질 듯했다.“아아아!”진도하는 크게 소리치며 억지로 체내의 영기를 끌어모았다.다시 한번 호신 영기를 형성했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민했다.그러나 죽음의 기운에 압도당해 비취색 목걸이조차 꺼낼 수 없었다.이것이 옥판의 무서움인가? 고천혁이 3대 주성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건가?수많은 수련자들이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그 순간 호신 영기는 다시 산산조각이 났다.끝없이 쏟아지는 빛줄기들이 진도하를 향해 끊임없이 날아왔다.푹. 푹. 푹.진도하의 몸은 점점 더 많은 상처로 가득 찼고 그의 영기도 계속 소모되었다.결국 진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