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였고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그날 밤 누구도 그녀를 구해주지 않았고 그녀는 “살인범”이 되었다.강성연은 탄식했다.“서도준 씨는 다음 날에야 당신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제야 그날 밤 룸에 있는 여자가 당신이라는 걸 알았다고 해요, 그래서...... 계속 당신과 만날 용기가 없었대요. 그날 밤 당신이 서도준 씨를 봤기 때문에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김아린은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뭔가 허전했다.“서도준 씨는 당신 앞에 나타날 수 없어 계속 휴대폰으로만 당신과 연락했어요. 당신이 수연에게 복수하려는 걸 알고 도움을 줬지요. 그는 뒤에 숨어서 그렇게 도와줄 수밖에 없었어요.”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때 서도준 씨는 경찰이 심은 첩자였고 일찍부터 고진욱과 주경우의 암거래를 알고 있었어요. 그는 임수호에게서 삼촌 고진욱의 정보를 빼내려고 당신들에게 접근한 거예요. 사실 서도준 씨도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지만 첩자는 언제든지 희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무런 표현도 할 수 없었던 거예요. 당신에게 그런 일이 발생한 후 서도준 씨는 계속 후회했어요. 그때 룸 안에 있는 여자를 구하고 싶었지만 첩자의 신분이 폭로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날 룸 안의 여자가 당신이라는 걸 알았다면 모든 걸 저버리고 구했을 거라 해요.”서도준은 김아린을 찾지 못하자 다시 룸으로 돌아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에야 그는 김아린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그는 후회했고 미친 듯이 자책했다.그 후 김아린은 개명하고 외국으로 떠났고 그는 이름을 감추고 골드 룸살롱을 지은 후 암암리에서 김 씨 가문을 도왔다.김아린 아버지가 주경우의 목욕탕을 차압한 것도 서도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수연을 채용한 후 술집 아가씨로 살아가게 했다. 그녀와 주경우를 만나게 한 건 서도준의 계획이었지만 수연은 얌전히 있지
그의 어깨에 기댄 강성연은 그의 목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뭘 잘못했는데?”“음... 집에 빨리 왔어야 했어요. 여보가 혼자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걸 알면서도 집에 늦게 왔잖아요.”강성연은 입술을 그의 귀에 가까이 댔다. 눈을 반쯤 뜬 그녀의 모습은 너무 유혹적이었다.반지훈은 여전히 꿈적도 하지 않았고 쌀쌀맞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강성연이 입을 맞추려고 할 때 그가 갑자기 머리를 돌려 그녀의 뺨을 큰 손으로 움켜쥐었다. 화가 났지만 피식 웃으며 말했다.“성연아, 매번 미인계로 나의 용서를 바라지마.”강성연은 처음으로 좌절감을 느꼈다!반지훈이 그녀를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성연이 그의 뒤를 따랐다.“어디로 가는 거예요?”그가 방문을 열며 대답했다.“서재.”강성연은 신고 있던 슬리퍼를 걷어차고 맨발로 달려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안돼요.”반지훈이 어디로 가면 그녀가 그의 길을 막았다.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강성연을 쳐다보았다.“나를 서재에 가지 못하게 하는 거야?”그녀가 입술 삐죽거렸다.“네.”그가 꼿꼿이 허리를 펴고 그녀를 쳐다보았다.“이유.”강성연은 반지훈이 정말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의 그는 기억을 잃은 반지훈이 아니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를 달래는 방식으로는 그를 감당하기 어렵다.그녀가 그의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당겼다.“김아린과 함께 있느라 시간이 늦었어요.”그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그리고?강성연은 그의 깊은 눈매에 눈을 맞추고 나서야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제가 골드 룸살롱을 인수했어요.”반지훈이 싱긋 웃어 보였다.“언제까지 나를 속이려고 했어? 강 사장님.”강성연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한참 동안 마땅히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반지훈이 그녀의 몸을 밀치고 서재로 향했다. 문이 닫기는 그 순간까지 반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두 사람 모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다.*레스토랑.“예쁘게 생긴 유부녀가
육예찬은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강성연의 접시에 고기반찬을 놓더니 웃으며 말했다.“요즘 핫한 프로그램 ‘아내바보’가 누구를 참고해서 찍었는지 알고 있어요?”강성연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육예찬이 웃음을 터뜨렸다.“반지훈 씨를 모티브로 한 프로그램이에요. 결혼정보 회사 소개 글에도 좋은 남자를 뽑는 요구가 반지훈 씨를 기준으로 삼는대요.”강성연은 이마를 짚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렇군요...”“네. 서울에서 반지훈 씨 같은 남자들이 얼마나 잘나가는지 몰라요. 서울의 재벌 집 아가씨들 중에 반지훈 씨가 이혼하기만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요. 사촌 오빠이자 친구의 약혼자로서 이야기하는 건데, 조심해야 될 거예요.”강성연이 자세를 고쳐앉았다.“웃기지 마요. 누가 감히 제 남편을 빼앗아요?”용납할 수 없어!내가 반지훈과 싸우는게 그 여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잖아. 안돼!예전에도, 지금도 다른 여자에게 기회 따위는 주지 않을 거야!강성연은 가방을 손에 쥐고 씩씩거리며 레스토랑을 나섰다.육예찬은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누구처럼 여자한테 잡혀살고 싶지 않았다.그가 휴대폰을 꺼내어 송아영에게 문자를 남겼다. 바보 같은 여자는 아침을 먹었을까나....[착한 딸: 다이어트 중이에요!][육예찬: 가슴도 없으면서 다이어트는 무슨 다이어트예요.][착한 딸: 꺼져요!!]그가 종업원을 불러 송아영이 좋아하는 반찬을 포장했다.TG 그룹계약을 끝낸 반지훈은 희승과 여러 임원들과 함께 회의실을 나섰다.많은 사람들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그는 네이비색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늠름한 그의 자태와 매우 어울렸다. 환한 불빛 아래 그의 날카로운 눈매는 깊고도 점잖아 보였다.그를 발견한 여직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휴대폰을 쥔 채로 소리를 질렀다.“아! 반지훈 대표님이 결혼한 건 서울에 있는 모든 여자들의 손해야!”“반지훈 대표님과 구천광의 호흡도 좋았어, 하지만.. 하지만 반지훈 대표님이 부인을 사랑해 주는 모습도 보고 싶어!”“반지
반지훈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빠르게 뛰고 있는 심장이 조금 시큰거렸다.그는 넥타이를 풀어 책상에 내던지며 애써 기분을 가라앉혔다. “내가 잘못했어요. 숨기지 말았어야 했어요. 계속 나랑 말을 하지 않을 거예요?”그녀는 훌쩍거리며 말했고 투명한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녀의 앞에 선 반지훈은 무표정이었다.“나는 당신이 나한테 의지했으면 좋겠어. 날 투명인간으로 생각하지 말고.”“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그는 손으로 탁자를 지탱하더니 그녀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혼자 결정하고 나랑 상의하지 않았잖아. 나라는 존재를 잊기라도 한 거야?”강성연이 손을 뻗어 그를 끌어 안았다. 반지훈은 그녀를 밀치지 않고 그녀의 온기를 느꼈다.그녀가 훌쩍거리며 말했다.“미안해요, 매번 당신이 나를 대신해서 해결하는 게 귀찮을까 봐 그랬어요, 룸살롱을 인수했지만 적당한 사람이 나타나면 양도하려고 했거든요.”반지훈이 그녀의 턱을 잡고 입을 맞췄다.한참이 지나서 그녀를 놓아준 그는 그녀의 얼굴에 남아있는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강성연은 입을 삐죽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신이 울면 내 마음도 아파.”반지훈이 그녀의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 담겼다.“당신이 어제저녁에 울었더라면 내가 서재로 가지 않았겠지.”강성연은 감정을 억누르고 흐릿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왜 나를 울게 만들어요?”그는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울렸어?”강성연이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당신 때문이에요!”반지훈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책상에 앉혔다.“음, 당신이 울면 내 마음이 너무 아파. 대체 나한테 무슨 약을 먹인 거야? 너한테 화를 내지도 못하고 때리지도 못하고 욕도 하지 못하겠어. 항상 내가 당신을 달래고 있잖아.”그녀는 고개를 돌렸다.“달래주지 않아도 돼요.”반지훈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더니 웃으며 말했다.“내가 당신을 달래지 않아 당신이 화가 나서 집을 나간다면, 나는 또 애들을 데리고 애들 엄마
반지훈의 목을 그러안은 강성연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반지훈 씨, 지훈 씨가 기억을 잃었을 때 내가 비밀이 하나 있다고 했잖아요.”그가 그녀를 쳐다보았다.“무슨 비밀?”눈가가 촉촉해진 그녀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내가 많이 사랑해요, 반지훈 씨.”3년 전, 강성연은 그녀 대신 총 맞아준 반지훈을,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멍한 표정을 짓던 반지훈은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키스를 퍼부었다.......교실에서 나와 교무실로 향하는 송아영을 만난 학생들마다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사모님이라 불렀다.그녀가 육예찬의 약혼자라는 소문이 학원에 퍼졌다.부리나케 교무실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책상 위에 고급 레스토랑에서 포장한 음식이 놓인 것을 발견했다.몇몇 선생님들은 그녀를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송 선생님, 예찬 도련님께서 정말 잘해주시네요.”“그러니까요. 점심밥까지 배달해 주다니, 너무 다정해요.”깊게 심호흡을 한 송아영은 책상 위에 놓인 음식을 쥐고 교무실을 나섰다.그녀가 떠난 후, 교무실에 남은 사람들의 얼굴에 상냥한 웃음이 사라졌다.“육예찬 도련님의 약혼자 신분으로 들어왔잖아. 짜증 나.”“어쩌겠어,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좋은 집에서 태어나 육 씨 가문 며느리가 되고.”“재벌 집에 시집가면서 예비 신부 교육이나 받는 게 아니라 왜 우리 밥그릇까지 뺏으려고 그런대? 얼마 하지도 않을 거면서.”포장된 음식을 손에 쥔 송아영은 육예찬의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는 육예찬 혼자 있었다.그녀는 그의 책상 위에 음식을 내려놓고 말했다.“육예찬 씨,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음식도 보내지 마요.”의자에 몸을 기대어 책을 뒤적거린 그가 나른하게 눈을 뜨고 그녀를 보았다.“다른 사람이 뒤에서 욕했나 봐요.”“알고 있었어요?”교무실에 있는 다른 선생님들이 자신을 아니꼽게 본다는 사실을 송아영은 이미 알고 있었다.“알았으니 이제 그만 보내세요. 낙하산이라는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입안에 음식을 가득 쑤셔 넣은 송아영은 끊임없이 오물거렸는데 마치 한 마리의 햄스터 같았다.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배가 부른 그녀는 시원하게 트림을 했다.“이제 살 것 같네.”서랍에서 휴지를 꺼낸 육예찬이 그녀의 입가에 묻은 기름을 닦아주었다.“쯧, 얌전하게 음식을 먹을 수는 없어요? 입가에 다 묻었잖아요.”분명히 나무라는 말투였지만 싫지 않았다.송아영은 그가 쥐고 있던 휴지를 빼앗으며 말했다.“싫어요? 어쩔 수 없어요. 제가 싫으면 우아한 전 여자친구 명승희 씨를 만나세요.”육예찬이 미간을 찌푸렸다.“왜 자꾸 그녀를 언급하는 거예요? 설마 질투하는 건 아니겠죠?”송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질투가 뭐예요?”그녀가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육예찬이 그녀를 불렀다. 송아영이 몸을 돌려 입을 열려고 하자 육예찬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긴 팔로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 힘에 머리가 젖혀진 그녀는 동공이 수축되었다. 그녀의 눈 앞에 확대된 얼굴은 흐릿할 정도로 가까웠고 입술에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졌다.송아영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그의 가슴팍을 밀치더니 거칠게 숨을 쉬었다.송아영을 품에서 놓아준 육예찬은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녀가 입술을 닦으며 소리를 질렀다.“뭐... 뭐 하는 거예요!”그가 대답했다.“키스.”송아영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어떻게...”왜 나한테 키스를 하는 거지?육예찬이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진작부터 하고 싶었어요.”*Soul 주얼리 회사.고진욱의 인터넷 기사를 보는 강성연은 미간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결국 경찰은 한성연의 협조로 고진욱을 잡았다.직원이 노크를 하는 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들어와요.”여자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대표님, 반크님께서 오늘 연차를 쓰신다고 합니다. 대표님께 전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그래요. 무슨 일 때문이라고 말했어요?”강성연이 물었다.여자 직
“괜찮아요. 구 사장이 있으니 주주인 지윤 씨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요. 그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거나 영업을 방해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지윤 씨가 해결해 주면 돼요.”지윤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대답했다.“전 싸울 줄 밖에 모릅니다.”강성연은 이마를 문지르더니 말했다.“영업을 방해하는 사람이 선공을 하게 만들어야 해요. 아니면 곤란해질 거예요.”지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강성연은 손을 젓더니 말했다.“그래도 최대한 손님이 있는 장소에서 싸움을 하면 안 돼요. 그리고...”그녀는 지윤을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다.“친구를 많이 사귀고 혼자 다니지 마요. 지윤 씨는 지금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게 아니니 친구를 사귈 권리가 있어요.”지윤은 입술을 꼭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성연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X 아저씨도 지윤 씨를 위해 저에게 당신을 보내준 거예요. 지윤 씨는 아직 젊으니까 목숨까지 내놓을 필요는 없어요.”푹 고개를 떨군 지윤은 꽉 쥐었던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네, 노력하겠습니다...”골드 룸살롱에서 나온 강성연은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는 롤스로이스를 발견했다.문을 열고 차에 탄 그녀는 반지훈이 노트북으로 주식시장 데이터를 보고 있는.걸 발견했다.백미러로 강성연을 확인한 연희승이 말했다.“사모님, 이제 마음이 놓이나요?”강성연은 팔짱을 끼면서 앉았다.“네, 마음이 놓이네요.”그녀가 반지훈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저희 남편 덕분이에요!”반지훈은 컴퓨터 모니터에서 시선을 거두고 그녀를 쳐다보았다.“이제야 남편의 용도를 알겠어?”강성연은 눈을 깜빡이면서 그의 어깨에 기댔다.“네.”반지훈은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운전석에 앉은 연희승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나이에도 애정행각을 보다니, 힘들어 죽겠네!...집으로 돌아온 한성연을 본 한수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무슨 체면으로 집에 돌아온 거야?”남편이 딸에게 손찌검을 할까 봐 두려웠던
그는 잔을 내려놓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한 회장이 곧 찾아오겠어. 한성연이 정말 구 씨 가문 아이를 임신했다면 의범이와 한성연을 결혼시키면 되겠네.”위층에서 자신과 한성연을 결혼시키겠다는 말을 들은 구의범은 바로 아래층에 내려와 반대했다.“제가 왜 한성연과 결혼을 해야 하는데요! 저는 싫어요!”구 씨 어르신은 그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네가 사고를 친 거잖아, 한성연이 너의 애를 임신했어!”구의범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아이요?”“너... 너 아직도 모른척할 셈이냐, 구의범. 훈련 캠프에서 배운 건 다 까맣게 잊은 거냐? 역시 부전자전이야. 여자가 그렇게 좋아? 이제 임신까지 시켰으니 네가 책임지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 구 씨 가문을 얼마나 우습게 보겠어?”화가 치밀어 오른 구 씨 어르신의 말에 구세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구의범은 자신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어떻게 임신했지? 전 아니에요...”“한마디만 물을게! 너 잤어, 안 잤어?”구 씨 어르신이 탁자를 내리치자 탁자의 다리가 세게 흔들렸다.구의범은 다급하게 말했다.“저... 할아버지, 저 진짜 생각이 안 나요, 그치만 진짜 그 여자랑 자지 않았어요. 맹세해요.”확신할 수 있었다.아무리 인사불성이 되었다고 해도 어떻게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을 수가 있지?그 술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마시지 않았잖아. 한성연의 임신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구 씨 어르신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됐다. 너의 아이가 아닌데도 너한테 책임지라고 찾아오려 할까?”“할아버지, 저 진짜...”“구의범, 한성연은 무고하잖아. 예전에 네 형한테 거절당하고 지금은 너의 아이까지 임신했으니, 뭐라 해도 너희 둘을 결혼시켜야 해.”구 씨 어르신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자 구세호가 그의 뒤를 따랐다.구의범은 멍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있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며칠 지나지 않아 한성연이 임신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누군가는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