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호는 곁에 앉아있는 반크를 보고 낮은 소리로 조롱했다.“왜? 나와 이혼하면 다른 남자가 당신 같은 년을 받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반크는 그 말을 듣고 표정이 어두워졌다.“구세호씨, 손유린씨가 당신의 전처라 하여도 이렇게 모욕할 필요가 없잖아요. 명문 출신인 분이 왜 이렇게 배포가 좁은 거예요?”구세호는 반크의 말에 표정이 확 변했다.“넌 누구야? 감히 내 앞에서 이러쿵 저러쿵 해?”손유린은 구세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 걱정되었다.“구세호씨, 나가서 이야기해요.”“하, 지금 이 사람 편을 드는 거야?”구세호는 반크 앞으로 걸어가더니 그의 멱살을 잡았다.“이 여자의 편을 들고 싶어도 자신의 주제를 알아야지.”반크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설마 이곳에서 폭력을 사용할 생각입니까?” 손유린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마음이 조급했다. 구세호는 부대에서 몇 년 동안 훈련했기 때문에 몸이 건장했다. 그녀는 예전에 구세호가 보디가드를 골절될 때까지 때리는 걸 본 적이 있었다.반크는 지금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에 그의 상대가 아닐 거다.그녀는 다가가 구세호를 밀어냈다.“얼른 손 놔요, 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거예요?”구세호가 그녀의 손을 뿌리치자 손유린은 그 힘에 의자에 주저앉았다.강성연은 일어서서 그녀를 부축했고 보디가드 4명이 그들을 에워쌌다.오늘 지윤을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강성연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반크는 구세호의 멱살을 잡았다.“여자를 때려? 당신 그러고도 남자야?”구세호는 싸늘하게 웃더니 반크의 손을 뿌리치고 옷깃에 주름을 폈다.“내가 내 전처를 어떻게 대하든 당신이랑 상관없어. 당신이나 걱정해.”구세호가 명령을 내리자 보디가드들은 다가가 반크를 잡으려고 했다.손유린은 달려가 그들을 밀어내더니 반크 앞에 서서 구세호를 노려보았다.“당신 미친 거 아니에요? 왜 상관 없는 사람까지 끌어들여요?”손유린의 행동에 자극받은 구세호는 다가가서 그녀의 머리채를 잡더니 그녀를 노려
구세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구천광이 있었기에 화를 내기 껄끄러웠다.“시비 걸려는 건 아니다.”“그러면 이 사람들은 왜 데리고 왔어요?”구의범은 경호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다들 뭘 넋 놓고 서 있어? 당장 놔. 아무도 움직이지 마!”경호원들은 난감한 얼굴로 구세호를 바라보았다. 구세호는 성가시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고 경호원들은 그제야 물러났다.구세호는 흐려진 안색으로 그를 보았다.“넌 나랑 같이 돌아가.”구의범은 팔짱을 두르더니 고자질할 듯한 태도로 말했다.“돌아가죠, 뭐. 어차피 난 할아버지한테 얘기할 생각이니까요.”“너...”구의범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구천광의 곁에 서서 말했다.“형, 저희 어머니 부탁드려요.”구천광은 고개를 끄덕였다.구의범은 입구까지 걸어가서 고개를 돌려 강성연에게 웃어 보였다.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다음번에 밥 살 때 나 불러.”강성연은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구세호는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강성연은 반크의 앞에 섰다.“반크 아저씨, 괜찮으세요?”반크는 웃었다.“괜찮아, 다치지 않았어.”손유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들을 보았다.“미안해요. 나 때문에.”강성연은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아주머니 탓이 아니에요.”구천광은 강성연을 힐끗 보더니 손유린에게 말했다.“작은어머니, 제가 모셔다드릴게요.”손유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세호가 난동을 부릴 줄은 몰랐기에 손유린도 많이 놀랐다. 그녀는 구천광과 함께 떠났고 강성연은 반크와 함께 룸에서 나왔다. 반크가 물었다.“네가 구천광 씨를 부른 거야?”강성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뇨. 전 구의범 씨에게만 얘기했어요.”아마 구의범이 혼자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구천광을 부른 듯했다.구천광이 와서 다행이었다. 구의범이 구세호의 친아들이라지만 구세호가 아들의 체면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구천광은 달랐다.강성연은 눈알을 굴리더니 무언가 떠올린 듯 입을 열었다.“아주머니도 참 안 됐
요양원.처마 밑에서 물줄기가 뚝뚝 흘러내려 창가 화분의 꽃잎 위로 떨어졌다. 안지성은 소파에 기대어 앉아 무거운 마음으로 사진첩을 넘기고 있었다.그의 딸은 누군가에게 공격받아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는 10년 동안 딸의 곁을 지켰지만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육예찬이 문 앞에 서서 노크하자 안지성은 사진첩을 내려놓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구?”“전 육예찬입니다.”“육예찬?”그는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자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지?”육예찬은 침대 위에 누워있는 눈에 익은 사람을 보고 말했다.“오늘 사람 한 명 데리고 왔어요.”안지성은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육예찬이 경호원에게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그 사람은 안지성이 처음 보는 60대 노인이었다.안지성이 물었다.“이분은...”육예찬이 대답했다.“예전에 B대 경비원이셨어요. 이미 퇴직하셨는데 따님 일은 이분이 잘 알고 계세요.”안지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을 보았다.“잘 아신다고요?”60대 노인은 어깨를 움찔하며 말했다.“그... 인상이 아주 깊은 건 아닌데 아직 그 일을 기억하고는 있어요.”육예찬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어르신,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보신 것 그대로 말씀해주시면 돼요.”60대 노인은 침을 꿀꺽 삼킨 뒤 고개를 끄덕였다.“아마 10년 전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여학생 두 명이 백스테이지에서 싸우는 걸 봤어요. 저는 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무슨 일로 싸운 건지는 몰라요. 제가 그쪽으로 걸어가려는데 글쎄...”안지성이 다급히 물었다.“뭘 보셨어요?”“한 여학생이 무언가를 들고 다른 여학생 머리를 내리치는 거예요. 맞은 여학생은 쓰러진 뒤에 꼼짝하지 않았어요. 그때 너무 놀라서 전 선생님을 찾으러 갔죠.”60대 노인의 말로는 그가 선생님을 찾으러 간 뒤로 두 여학생은 그곳에서 사라졌고 바닥에는 피가 없었다고 한다. 노인은 자신이 헛것을 본 줄로 알았다고 한다. 분명 한 여학생이 쓰러지는 걸 목격했는데 사람이 없
육예찬은 눈을 가늘게 떴다.60대 노인은 그 상황을 목격했고 피해자 안예지의 얼굴도 보았지만 가해자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송아영이 가해자로 몰렸을 때 그는 상황을 알지 못했다.육예찬은 경호원에게 노인을 모셔다드리라고 했고 안지성의 앞에 서서 말했다.“아저씨, 송아영은 안지성 씨 따님을 공격한 가해자가 아니에요. 송아영은 따님 때문에 본인의 긍지였던 음악 학원을 포기해야 했죠. 진범은 제가 꼭 찾을게요. 전 아저씨가 송아영에게 기회를 한 번 주셨으면 합니다.”이틀 뒤, 안지성은 페이스북에서 송아영의 사건에 대한 글을 올리며 10년 전 B대 계단 밀치기 사건의 진범은 송아영이 아니라고 했다. 안지성은 피해자 안예지의 아버지였기에 그의 글에 많은 네티즌이 경악했다.#아니 10년 동안 누명을 썼던 거야? 너무 불쌍하다.##B대 사건 들어본 적은 있는데 난 헛소문인 줄 알았어.##10년 동안 아무 얘기 없다가 갑자기 죄가 없다고?#여론은 뜨거웠다. 대부분 사람은 송아영을 동정했다. 10년 동안 누명을 쓰고 오해를 받은 데다가 그 사건 때문에 자퇴를 권유받기까지 했으니 불쌍할 수밖에 없었다.반씨 저택.강성연은 단체 채팅방에서 송아영을 멘션한 사람들이 대부분 소문 때문에 그녀를 멘션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송아영은 그들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모른 척 가만히 있는 것도 현명했다.이미 지나간 일이었고 송아영의 결백을 증명했으니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둬야 했다.강성연은 반지훈에게 기대어 있었고 반지훈은 커피를 마시면서 금융 매거진을 읽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곁에 있는 강성연을 보며 말했다.“너 친구 누명 벗었잖아. 기뻐?”강성연은 웃었다.“기쁘죠.”반지훈은 테이블 위에 커피를 내려놓은 뒤 그녀를 끌어안았다.“나 모레 휴가야.”강성연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몸을 일으켜 그를 보았다.“모레요?”반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날씨 보니까 모레부터 추워진대. 온천욕 하기에 좋을 것 같더라고.”“하지만 반크 아저씨가 아직 다 낫지 않
반지훈은 강성연의 어깨를 잡았다.“걱정하지 마. 그 사람 전화번호 알려줘. 내가 위치추적 해볼게. 네가 나 대신 희승이한테 말해.”강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강성연은 희승에게 연락한 뒤 육예찬에게도 연락했다. 반지훈은 그녀의 옆에서 컴퓨터로 신속히 송아영이 있는 곳을 위치추적 해냈다.“교동로에 있어.”교동로.“쿨럭!”송아영은 몸 위로 쏟아지는 찬물 때문에 사레가 들려 기침했다. 그녀가 입고 있던 겉옷은 반 이상이 젖어 몸에 달라붙었고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송아영은 격렬히 기침하다가 문득 두 팔이 뒤로 묶여서 꼼짝할 수 없다는 걸 발견했다.“깨어났네.”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송아영은 잠시 넋이 나갔다. 너무 추웠던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시선을 들었다.그녀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성예주였다.송아영은 목이 쉰 상태였다.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니 인테리어가 안 된 건물 내부였다. 벽에는 시멘트만 되어 있었고 철근이 겉으로 그대로 드러난 상태였다.대형창문은 틀만 있고 유리는 없는 상태였고 틀은 공중에 떠 있었다.바람이 안으로 불어 들어오자 송아영은 너무 추워서 턱이 덜덜 떨렸다.“성예주... 왜 너야?”성예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왜 나냐고?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송아영은 멍한 표정이었다.무슨 뜻일까?성예주는 송아영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녀의 턱을 쥐었다.“내가 그때 그 자리를 얻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노력했는지 알아?”송아영은 몸이 뻣뻣이 굳고 입술도 창백해졌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정말 너야?”송아영은 믿지 않았다.성예주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성예주는 냉소했다.“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육예찬은 내가 한 짓이라는 걸 알았고 안예지 아버지도 네 결백을 주장했어. 10년 동안 억울하게 누명을 썼으면 계속 그렇게 살지.”“성예주, 난 너일 줄은 몰랐어...”송아영의 안색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렸다.성예주는 손에서 힘을 빼며 몸을 일으켰다.“너랑 안예지 성적이 가장
송아영은 아주 협조적이지 않았고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녀는 남자들에 의해 바닥에 눌러졌고 그중 한 남자의 손을 꽉 깨물었다. 남자는 앓는 소리를 내며 손을 빼더니 송아영의 뺨을 때렸다.그 바람에 고개가 돌려지며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붙었다.송아영의 겉옷은 남자들에게 억지로 벗겨져 단추가 뜯어졌고 안에 입은 셔츠 또한 무자비하게 뜯겨 나갔다.송아영은 두려움에 떨면서 울기 시작했다. 성예주는 휴대폰을 들어 그 상황을 촬영하며 명령을 내렸다.“다 벗겨요.”남자가 손을 뻗어 송아영의 마지막 옷을 벗기려고 할 때였다.“퍽!”문을 박차고 들어온 자가 송아영의 위에 있던 남자를 걷어차고 주먹과 발차기로 남은 두 명도 해치웠다.성예주는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쳤다.육예찬은 재빨리 옷을 벗어 송아영의 차가운 몸에 둘러준 뒤 그녀를 안아 들었다.“송아영!”송아영은 의식이 흐릿했다. 비몽사몽인 와중에 자신을 안아 든 남자를 본 그녀는 흐느끼며 말했다.“육... 육예찬 씨, 나 너무 무서워요.”송아영은 추위와 두려움 때문에 온몸을 떨고 있었다. 육예찬을 다시 만나게 되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육예찬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송아영을 품속에 꼭 끌어안았다. 고개를 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음산하게 성예주를 노려봤다.성예주는 깜짝 놀랐다.하지만 육예찬이 혼자 왔다는 생각에 그녀는 다급히 말했다.“뭘 넋 놓고 있어요? 남자 여럿이 한 명을 이기지 못해요?”남자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자 육예찬은 송아영을 내려놓은 뒤 홀로 그들을 전부 상대했다.바닥에 쓰러졌던 남자는 야구 배트를 들어 육예찬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육예찬은 뒤쪽의 습격을 막는 동시에 배트를 피해 상대를 공격했고 이내 옆에서 또 한 번 육예찬을 습격했다.육예찬은 왼발로 남자의 복부를 세게 찼다. 그 순간, 배트가 그의 등을 가격했고 육예찬은 비틀거리다가 남자의 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격렬히 싸우는 모습에 겁을 먹은 성예주는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 얼어붙어 서 있었다.남
지윤이 성예주의 머리채를 쥐고 그녀를 반지훈과 강성연의 앞으로 끌고 갔다. 성예주는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강성연은 멀지 않은 곳에서 휴대폰을 주워 들었다. 여전히 촬영 화면에 멈춰있는 게 보이자 강성연은 휴대폰을 바닥에 내팽개친 뒤 신발 굽으로 액정을 부쉈다.“제...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앞으로는 이런 일 절대 없을 거예요.”성예주는 진지한 표정으로 울먹이며 간절히 빌었다.강성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성예주의 멱살을 잡았다.“봐달라고요? 그게 가능할 것 같아요?”성예주의 얼굴 위로 서서히 두려움이 드리워졌다. 강성연은 냉소했다.“아영이에게 10년 동안 누명을 씌웠으면서 또 아영이를 해치려고 했는데 봐달라고요? 아영이가 봐달라고 했으면 당신이 봐줬겠어요?”성예주는 대답하지 못했다.강성연은 차갑게 말했다.“더러운 수작질로 사람을 해쳐서 얻은 성과는 당신 것이 아니에요. 당신은 자격이 없으니까요.”강성연이 손을 놓자 성예주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고 반지훈이 경찰에게 뭐라고 하자 경찰들은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성예주를 데려갔다.성예주는 얼빠진 채로 경찰에게 끌려갔다. 경찰은 반지훈과 옆에서 대화를 나누었고 간단히 기록을 마친 뒤 사람을 데리고 떠났다.강성연은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경찰차를 바라보다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반지훈은 강성연을 품에 꼭 끌어안고 그녀를 불렀다. 그제야 강성연도 조금 긴장이 풀렸다.강성연은 자책 가득한 얼굴이었다.“우리가 조금만 늦게 왔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반지훈은 팔에 힘을 주며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이제 괜찮아. 우리 제때 도착했잖아.”강성연은 그의 품에 기대어 말했다.“나 아까 너무 난폭하지 않았어요?”하마터면 손을 쓸뻔했다.반지훈은 그녀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며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난폭하다고? 그냥 화가 난 고양이 같던데?”강성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우리 병원 가요.”반지훈은 고개를 끄
강성연이 말했다.“이모, 화내지 마세요. 이미 경찰들이 데려갔어요. 다행히 오빠랑 아영이는 괜찮아요.”“그렇다면 다행이네. 정말 놀라 죽는 줄 알았어. 일단 예찬이 그 자식 상처 좀 확인해 봐야겠다.”연희정은 육예찬의 병실로 향했다.강성연은 돌아가는 길에 줄곧 창밖을 바라보았다.반지훈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아직도 걱정돼?”강성연은 시선을 거두고 그를 바라보았다.“두 사람 다 괜찮으니 걱정할 건 없죠.”“성연아, 오늘 송아영 씨랑 육예찬 씨 일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강성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반지훈은 운전에 집중해 줄곧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우리도 예전에 비슷한 일을 겪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아니, 겪은 적 있는 게 분명하다고 느꼈어.”강성연은 시선을 내려뜨리고 웃었다.“맞아요, 겪어봤어요.”붉은 신호등에 차가 멈췄다. 반지훈은 강성연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내가 천천히 떠올릴게.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우리 둘만의 세계야.”다음 날, 서울 공항.반지훈은 팔짱을 두른 채로 대기실에 앉아있었고 그의 맞은편에는 구천광과 그의 매니저가 앉아있었다. 반지훈은 표정이 어두웠다.구천광은 버건디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반지훈과 달리 아주 명랑하고 온화해 보였다.그는 반지훈을 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우연이네요?”반지훈은 헛웃음을 쳤다.“우연이지.”강성연은 이마를 짚었다. 구천광도 때마침 제주도로 휴가 가는 것뿐인데 우연히 마주쳐서 이렇게 싸울 듯이 굴 줄은 몰랐다.“강성연 씨, 반지훈 씨랑 제주도 가는 거예요?”구천광은 강성연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며칠 휴가거든요.”반지훈은 강성연을 끌어안으며 그를 보았다.“나는 내 아내랑 허니문 가는 건데 넌 왜 제주도에 가는 거야? 넌 아내 있어?”강성연은 반지훈을 힐끗 바라보았다. 구천광의 앞에서 반지훈은 17살 소년처럼 굴었다.구천광은 웃었다.“있는지 없는지 내가 얘기해야 해요?”“제주도로 가는 MH8896 30분 뒤 이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