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게 바로 문제일 지도 모르겠어."강성연은 김아린을 바라보며 말했다."안 회장님이 구의범 씨를 반대하는 이유가 예전의 방탕한 생활 때문이잖아. 카사노바였던 사람을 어떻게 함부로 믿겠어? 내가 안 회장님이라고 해도 연애 한번 한 적 없는 백지장 같은 딸을 구의범 씨랑 만나도록 내버려 두지 못할 것 같아."김아린은 멈칫하다가 말했다."그래도! 의범 씨는 이미 충분히 많은 노력을 했어!"강성연이 웃으며 말했다."그렇긴 하지만 구의범 씨 본인이 예지 씨의 행복을 보장 못 한다잖아. 예지 씨를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한때 카사노바로서 이토록 순진한 여자를 지켜내기 쉽지 않았을 거야. 그래서 포기한다고 해도 나는 이해할 수 있어."강성연의 말에 김아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래도 나는 너무 답답해."강성연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만약 예지 씨의 약혼 소식을 알고 나서도 도망간다면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지."*진여훈은 안예지와 함께 드레스를 고르러 왔다. 직원은 친절하게 신상 드레스를 꺼내 안예지에게 보여줬다.진여훈은 휴대전화를 들고 말했다."예지 씨, 먼저 고르고 있어요. 저 통화 하나만 하고 올게요."안예지는 머리를 끄덕였다. 진여훈이 나간 다음 그녀는 연보라 드레스 하나를 대충 골라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드레스를 갈아입은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롱 드레스는 몸매를 완전히 드러냈고 소매의 레이스와 치맛자락의 레이스가 완벽하게 어우러져 단아함을 강조했다.안예지가 거울을 보며 멍때리고 있을 때,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진여훈이 돌아온 줄 알고 머리를 돌렸는데 점점 멀어져가는 익숙한 뒷모습에 흠칫 놀라며 달려갔다. 텅 빈 복도로 나온 안예지는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원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예지 씨."진여훈이 따라 나와서 물었다."왜 그래요?"안예지는 몸을 돌리며 머리를 흔들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들어가요.""네."진여훈은 안예지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고는 비상계단 쪽을 힐
"만약 이미 알고 있다면요?"진여훈이 되물었다. 그는 구의범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의범 씨가 예지 씨한테 무슨 말을 하든 상관 없어요. 예지 씨는 자의로 저와 약혼하는 것이고 저는 한번도 강요한 적 없어요."진여훈은 구의범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구의범은 차가운 표정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요."구의범은 몸을 돌려 차에 올라탔다. 진여훈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아무래도 장작을 더 넣어야겠어.'...이튿날 점심, 레스토랑에 도착한 안예지는 텅 빈 곳에 혼자 앉아있는 진여훈을 발견하고 얼른 걸어가 앉았다. 그러고는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여훈 씨, 이렇게까지 할 것 없는데...""괜찮아요. 제가 시끄러운 곳을 싫어해서 그래요."진여훈은 술 한 잔 따르며 물었다."술 마실 줄 알아요?"안예지는 멈칫하다가 답했다."조금이라면 괜찮아요."진여훈은 안예지에게도 술을 따라줬다."저 어제 구의범 씨랑 만났어요."안예지는 손을 흠칫 떨며 술잔을 받아 들더니 시선을 떨구고 입술을 깨물었다."만나서 무슨 얘기 했는데요?""아무래도 우리 약혼이 마음에 걸리나 봐요."안예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어제 본 사람이 구의범이 맞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왜 자신을 피하고 진여훈을 찾아갔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약간 화가 나기도 했다."그렇다고 해도 쉽게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진여훈은 술잔을 든 채로 안예지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누군가가 떠올랐는지 생각에 잠겼다.레스토랑 직원은 음식을 올리다 말고 실수로 술잔을 건드렸다. 술잔은 안예지를 향해 기울여졌고 빨간 와인이 옷에 쏟아지고 말았다."아... 죄송해요!"직원은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며 휴지를 꺼내 닦으려고 했다.안예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제가 닦을게요."안예지는 휴지를 건네받아 와인 자국을 닦았다.호텔 매니저가 황급히 걸어와 직원에게 한마디 했
문을 연 안예지는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머릿속이 창백해진 채로 넋이 나가버렸다.구의범은 안예지의 옷차림과 방금 전 자신을 부르던 말을 떠올리며 안색이 어두워졌다,안예지는 뒤늦게 정신 차리고 말했다."네가 어떻게..."구의범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방 안으로 밀치고는 묻을 닫아 버렸다. 침대 위에 장미 꽃잎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여훈을 기다리고 있었어?"안예지가 되물었다."뭐?""스위트 룸에서 샤워가운까지 입었으면 말 다 했지."구의범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둘이 벌써 그 단계까지 갔어?"'스위트 룸?'안예지는 여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구의범은 그녀에게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벽 쪽으로 밀더니 아무런 예고도 없이 키스했다.안예지는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구의범의 키스는 아주 난폭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던 안예지는 그를 살짝 밀었지만 그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고 더 깊게 파고들었다.점점 뜨거워지는 숨결과 함께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구의범은 입술을 떼더니 안예지의 목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는 몸을 흠칫 떨더니 완전히 힘이 풀린 채로 구의범에게 기댔다."의범아..."안예지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녀는 힘이 풀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약혼은 왜 했어?"구의범은 동작을 멈추더니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진여훈은 진심이 아니야."안예지는 넋을 잃었다. 두 사람은 어차피 가짜로 사귀고 가짜로 약혼했기에 그녀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약혼하는 게... 싫어?"구의범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더니 이마를 맞대며 말했다."내가 싫다면 약혼 안 할 거야?"안예지는 머리를 숙였다. 속도 모르고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에 그녀는 또다시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아니, 할 거야. 네가 나를 속상하게 한 만큼 똑같이 되갚아 줄 거야. 게다가 우리는 이미 헤어졌어. 내가 누구랑 약혼하든 너랑 무슨 상관...
'아무래도 성공한 모양이군.'진여훈은 천천히 술을 마셨다. 술잔은 어느덧 텅 비어버렸다. 자신의 처지가 갑자기 떠오른 그는 허공에 대고 피식 웃었다.'이번에는 진짜 남 좋은 일만 했네. 이렇게 유치한 짓은 왜 벌였나 몰라. 내가 언제부터 오지랖이 넓었다고...'이때 밥상 위에 올려놨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온 사람의 이름을 확인한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수락 버튼을 눌렀다."할아버지."진철의 목소리가 휴대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왔다."너 이틀 안에 당장 집으로 와."진여훈은 미간을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가짜 약혼이 진철에게 들킨 모양이다....안예지는 구의범의 품에서 서서히 눈을 떴다. 코 앞에 있는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몰래 앞으로 다가가 입술에 뽀뽀했다. 그러자 구의범은 손을 뻗어 그녀를 확 끌어안았다.몰래 뽀뽀하다가 들킨 안예지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어... 언제 깼어?""아까 깼거든."구의범은 머리를 짚고 몸을 일으키더니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근데 네가 나한테 뭘 할지 궁금해서 자는 척하고 있었지."안예지는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구의범은 피식 웃으며 이불을 끌어 내렸다."숨 막혀 죽을 작정이야?"안예지의 시선은 풀어진 셔츠 사이로 드러난 구의범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그녀는 순간 시선을 어디 둘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구의범은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부끄러워하면 어떡해?"안예지는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아무것도 안 하긴! 포옹도 하고, 키스도 했으면서..."구의범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이 정도는 익숙해져야지. 앞으로 더 한 일도 할 텐데."'더 한 일이라면 혹시...'안예지는 또다시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커플 사이에 당연한 일이니 그녀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다 했다. 하지만 구의범은...안예지의 생각을 읽었는지 구의범은 머리를 숙여 그녀의 볼에 뽀뽀했다."난
안지성은 눈을 내리뜨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안예지와 진여훈의 약혼 소식에 적잖이 놀랐었다. 두 아이는 알고 지낸 시간도 짧은데 갑자기 약혼이라니, 정말로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구의범이 그녀한테 이별을 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그는 너무나 신경이 쓰였지만 그렇다고 섣부른 행동을 할 수는 없었기에 반지훈을 찾아갔었다. 반지훈과 진 씨 집안은 친척 사이였으니까 뭐라도 알까 싶어서.결국 반지훈한테서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진여훈과 자신의 딸이 가짜 약혼을 했다는 것을. 심지어 그에게는 이미 약혼녀도 있었다. 상대는 카지노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자의 딸이었는데 이미 두 집안끼리 혼담이 이루어진 상태였다.진여훈과 그의 딸이 이런 가짜 약혼을 발표한 건 구의범의 속내를 떠보기 위함이었다. 안지성은 진실을 알고 화가 나긴 했지만 딸아이가 진여훈한테 속아 넘어간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아빠.”안예지가 안지성의 곁에 앉으며 그의 팔을 껴안았다.“의범 씨 저한테 진심이에요. 저희 두 사람 허락해 주세요.”안지성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미 일은 다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나한테 통보하는 거니? 너 이제는 이 아빠가 안중에도 없구나.”안예지가 그의 어깨에 살포시 기댔다.“잘못했어요. 하지만 저 진짜 그 사람 좋아해요. 물론 그 사람도 저랑 같은 마음이고요.”김수혜가 과일이 담긴 접시를 들고 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미소 지었다.“어르신 아가씨도 이젠 다 컸는걸요. 아가씨가 원하는 행복을 찾아갈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제가 봐도 구씨 집안 그 둘째 도련님이 우리 아가씨한테 진심인 게 알리던데요.”안지성이 정색하며 물었다.“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김수혜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밖에서 저렇게 오랫동안 서서 기다리는 걸 보면 당연히 알게 되죠. 진심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추운 날씨에 꼼짝 않고 기다리고 있겠어요?”안예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 사람이 밖에 있다고요?”그녀가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나갔다. 서둘러
강성연은 베란다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를 마치려던 그때 그녀의 어깨 위에 외투가 걸쳐졌다.그녀는 등 뒤에서 자신을 감싸 안은 반지훈을 돌아보았다.“벌써 퇴근했어요?”그가 피식 웃었다.“회사에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도 없어서 일찍 왔어.”강성연이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구의범과 예지 씨 이젠 정말로 함께하게 되었네요. 가짜 약혼이 꽤 먹혔던 것 같아요.”반지훈이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간지럽혔다.“진여훈한테 도와달라고 하다니. 그런 생각은 너밖에 하지 못했을 거야.”그가 실눈을 떴다.“걔 성격으로 절대 이런 일에 쉽게 나서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설득했어?”강성연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까치발을 들고 그의 목을 껴안았다.“이게 다 당신 덕이죠.”그가 미간을 찌푸렸다.“내 덕이라고?”“당신이 진여훈 사촌 형인데, 어떻게 사촌 형의 체면을 깎을 수 있겠어요. 당신 심기를 건드렸다가 앞으로 서울에서 어떻게 장사하려고요. 안 그래요?”강성연이 씩 미소 지었다.반지훈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와이프가 그의 이름을 들먹이며 횡행한들 어쩌리. 그래봤자 그한테는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울 뿐인데.*맞춤 웨딩드레스 숍.웨딩드레스를 갈아입은 안예지가 커튼 뒤에서 걸어 나온 그 순간, 구의범은 그녀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 그의 눈에는 온통 그녀밖에 없었다.그의 끈질긴 시선에 그녀는 어쩐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이 드레스… 예뻐?”“응, 예쁘다.”구의범이 그녀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줬다.“너무 잘 어울려.”그녀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손유린과 반크가 그들 쪽으로 걸어가다가 멈칫했다. 어쩐지 자신의 아들과 안예지의 알콩달콩한 순간을 깨뜨리기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반크가 웃음을 터뜨렸다.“의범이도 이제 장가를 가게 되었네요.”“그러게 말이에요.”손유린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드디어 저도 쟤가 장가를 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네요.”구의범이 안
구의범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안지성이 딸의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안예지는 그와 눈빛을 교환한 후 함께 주례자 앞에 섰다.주례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신부 안예지 양은 신랑 구의범 군의 아내로 한평생 함께 살면서, 구의범 군이 힘들 때 가장 아늑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어떠한 곤란이 닥쳐와도 떠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까?”안예지가 구의범을 보고 미소 지으며 답했다.“맹세합니다.”“구의범 군은 안예지 양을 아내로 맞이하며 한평생 안예지 양을 사랑해 주고, 아껴주며, 그녀가 원할 때에는 언제든지 곁에 있어줄 것이고, 늙고 병들어도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까?”구의범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맹세합니다.”그가 그녀의 베일을 천천히 들어 올린 후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객석에서 울려 퍼진 박수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반지를 교환했다.주례자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이로써 두 사람은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안예지는 자신의 약지에 끼워진 그의 이름 이니셜이 새겨진 다이아 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들고 그를 보았다. 오늘부로 그는 그녀의 남편이 되었고 그녀는 그의 아내가 되었다.구의범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 마누라. 행복해?”안예지가 웃으며 그의 품에 안겼다.객석에 앉아있던 안지성이 고개를 숙이고 몰래 눈물을 훔쳤다. 자신의 딸이 시집을 가게 되다니. 그는 아직 딸을 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다.강성연은 반지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우리 또 한 커플의 사랑의 결실을 목격했네요.”반지훈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난 너만 기쁘면 돼.”강성연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이 결혼식의 일등공신인 진여훈은 왜 안 왔죠?”그가 웃었다.“안 온 게 아니라 못 온 거 아닐까?”그날 밤, 안예지는 아늑하게 꾸며진 신혼 방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앉아있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안예지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곧바로 구의범이 문을 열고
“저예요 아가씨.”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강성연이 활짝 미소 지었다.“지윤 씨?”지윤이 M 국으로 간지도 거의 반년이 되었다. 부모님의 행방을 찾았다는 말만 하고 지금껏 아무런 소식도 없어서 강성연은 그녀가 자신을 잊었다고 생각했었다.“이제야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아가씨.”“지윤 씨가 무사하면 됐어요.”강성연은 벽에 기대섰다.“M 국에서는 잘 지내고 있어요?”“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저 이제 곧 돌아가려고요.”강성연이 멈칫거렸다.“어디로요?”지윤이 잠깐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 부모님 찾았어요. 그런데… 생각했던 것처럼 잘 안돼서. 저 아가씨 곁으로 다시 돌아가려고요.”강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윤의 목소리에서 실망감이 느껴졌다. 당시 그녀는 친 부모의 행방을 알고 무척 기대에 차 있었다. 어쨌든 자신을 낳아준 친 부모였기에 그녀도 보고 싶었을 것이다.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달라있었던 것 같았다.“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와요.”“아가씨…”강성연이 시선을 떨구며 미소 지었다.“그곳이 불편하면 언제든지 돌아와요. 전 언제나 환영하니까요.”통화를 마친 강성연이 막 병실로 돌아가려던 그때, 그녀의 눈에 언뜻 누군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맞은편 복도를 지나가는 여자는 바로 윤티파니였다.‘윤티파니가 왜 산부인과에 있지?’그녀의 뒤로 두 명의 보디가드가 따랐는데 한눈에 보아도 보호가 아니라 감시하는 듯했다.한지욱과의 혼담이 깨진 후 윤티파니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하루아침에 종적을 감춘 듯 잠잠했었다.윤티파니가 침대에 걸터앉아 옷을 벗자 간호자가 커튼을 쳐줬다. 한참 후 커튼이 열렸을 때 그녀는 이미 옷을 다 갖춰 입은 상태였다.“윤티파니 씨 외람된 말씀이지만 손목에 상처는…”간호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티파니가 옷소매를 내리며 손목을 가렸다.“다른 건 상관하지 말고 결과만 알려주면 됩니다.”간호사가 무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