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게 바로 문제일 지도 모르겠어."강성연은 김아린을 바라보며 말했다."안 회장님이 구의범 씨를 반대하는 이유가 예전의 방탕한 생활 때문이잖아. 카사노바였던 사람을 어떻게 함부로 믿겠어? 내가 안 회장님이라고 해도 연애 한번 한 적 없는 백지장 같은 딸을 구의범 씨랑 만나도록 내버려 두지 못할 것 같아."김아린은 멈칫하다가 말했다."그래도! 의범 씨는 이미 충분히 많은 노력을 했어!"강성연이 웃으며 말했다."그렇긴 하지만 구의범 씨 본인이 예지 씨의 행복을 보장 못 한다잖아. 예지 씨를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한때 카사노바로서 이토록 순진한 여자를 지켜내기 쉽지 않았을 거야. 그래서 포기한다고 해도 나는 이해할 수 있어."강성연의 말에 김아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래도 나는 너무 답답해."강성연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만약 예지 씨의 약혼 소식을 알고 나서도 도망간다면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지."*진여훈은 안예지와 함께 드레스를 고르러 왔다. 직원은 친절하게 신상 드레스를 꺼내 안예지에게 보여줬다.진여훈은 휴대전화를 들고 말했다."예지 씨, 먼저 고르고 있어요. 저 통화 하나만 하고 올게요."안예지는 머리를 끄덕였다. 진여훈이 나간 다음 그녀는 연보라 드레스 하나를 대충 골라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드레스를 갈아입은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롱 드레스는 몸매를 완전히 드러냈고 소매의 레이스와 치맛자락의 레이스가 완벽하게 어우러져 단아함을 강조했다.안예지가 거울을 보며 멍때리고 있을 때,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진여훈이 돌아온 줄 알고 머리를 돌렸는데 점점 멀어져가는 익숙한 뒷모습에 흠칫 놀라며 달려갔다. 텅 빈 복도로 나온 안예지는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원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예지 씨."진여훈이 따라 나와서 물었다."왜 그래요?"안예지는 몸을 돌리며 머리를 흔들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들어가요.""네."진여훈은 안예지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고는 비상계단 쪽을 힐
"만약 이미 알고 있다면요?"진여훈이 되물었다. 그는 구의범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의범 씨가 예지 씨한테 무슨 말을 하든 상관 없어요. 예지 씨는 자의로 저와 약혼하는 것이고 저는 한번도 강요한 적 없어요."진여훈은 구의범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구의범은 차가운 표정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요."구의범은 몸을 돌려 차에 올라탔다. 진여훈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아무래도 장작을 더 넣어야겠어.'...이튿날 점심, 레스토랑에 도착한 안예지는 텅 빈 곳에 혼자 앉아있는 진여훈을 발견하고 얼른 걸어가 앉았다. 그러고는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여훈 씨, 이렇게까지 할 것 없는데...""괜찮아요. 제가 시끄러운 곳을 싫어해서 그래요."진여훈은 술 한 잔 따르며 물었다."술 마실 줄 알아요?"안예지는 멈칫하다가 답했다."조금이라면 괜찮아요."진여훈은 안예지에게도 술을 따라줬다."저 어제 구의범 씨랑 만났어요."안예지는 손을 흠칫 떨며 술잔을 받아 들더니 시선을 떨구고 입술을 깨물었다."만나서 무슨 얘기 했는데요?""아무래도 우리 약혼이 마음에 걸리나 봐요."안예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어제 본 사람이 구의범이 맞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왜 자신을 피하고 진여훈을 찾아갔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약간 화가 나기도 했다."그렇다고 해도 쉽게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진여훈은 술잔을 든 채로 안예지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누군가가 떠올랐는지 생각에 잠겼다.레스토랑 직원은 음식을 올리다 말고 실수로 술잔을 건드렸다. 술잔은 안예지를 향해 기울여졌고 빨간 와인이 옷에 쏟아지고 말았다."아... 죄송해요!"직원은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며 휴지를 꺼내 닦으려고 했다.안예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제가 닦을게요."안예지는 휴지를 건네받아 와인 자국을 닦았다.호텔 매니저가 황급히 걸어와 직원에게 한마디 했
문을 연 안예지는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머릿속이 창백해진 채로 넋이 나가버렸다.구의범은 안예지의 옷차림과 방금 전 자신을 부르던 말을 떠올리며 안색이 어두워졌다,안예지는 뒤늦게 정신 차리고 말했다."네가 어떻게..."구의범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방 안으로 밀치고는 묻을 닫아 버렸다. 침대 위에 장미 꽃잎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여훈을 기다리고 있었어?"안예지가 되물었다."뭐?""스위트 룸에서 샤워가운까지 입었으면 말 다 했지."구의범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둘이 벌써 그 단계까지 갔어?"'스위트 룸?'안예지는 여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구의범은 그녀에게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벽 쪽으로 밀더니 아무런 예고도 없이 키스했다.안예지는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구의범의 키스는 아주 난폭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던 안예지는 그를 살짝 밀었지만 그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고 더 깊게 파고들었다.점점 뜨거워지는 숨결과 함께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구의범은 입술을 떼더니 안예지의 목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는 몸을 흠칫 떨더니 완전히 힘이 풀린 채로 구의범에게 기댔다."의범아..."안예지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녀는 힘이 풀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약혼은 왜 했어?"구의범은 동작을 멈추더니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진여훈은 진심이 아니야."안예지는 넋을 잃었다. 두 사람은 어차피 가짜로 사귀고 가짜로 약혼했기에 그녀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약혼하는 게... 싫어?"구의범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더니 이마를 맞대며 말했다."내가 싫다면 약혼 안 할 거야?"안예지는 머리를 숙였다. 속도 모르고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에 그녀는 또다시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아니, 할 거야. 네가 나를 속상하게 한 만큼 똑같이 되갚아 줄 거야. 게다가 우리는 이미 헤어졌어. 내가 누구랑 약혼하든 너랑 무슨 상관...
'아무래도 성공한 모양이군.'진여훈은 천천히 술을 마셨다. 술잔은 어느덧 텅 비어버렸다. 자신의 처지가 갑자기 떠오른 그는 허공에 대고 피식 웃었다.'이번에는 진짜 남 좋은 일만 했네. 이렇게 유치한 짓은 왜 벌였나 몰라. 내가 언제부터 오지랖이 넓었다고...'이때 밥상 위에 올려놨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온 사람의 이름을 확인한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수락 버튼을 눌렀다."할아버지."진철의 목소리가 휴대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왔다."너 이틀 안에 당장 집으로 와."진여훈은 미간을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가짜 약혼이 진철에게 들킨 모양이다....안예지는 구의범의 품에서 서서히 눈을 떴다. 코 앞에 있는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몰래 앞으로 다가가 입술에 뽀뽀했다. 그러자 구의범은 손을 뻗어 그녀를 확 끌어안았다.몰래 뽀뽀하다가 들킨 안예지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어... 언제 깼어?""아까 깼거든."구의범은 머리를 짚고 몸을 일으키더니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근데 네가 나한테 뭘 할지 궁금해서 자는 척하고 있었지."안예지는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구의범은 피식 웃으며 이불을 끌어 내렸다."숨 막혀 죽을 작정이야?"안예지의 시선은 풀어진 셔츠 사이로 드러난 구의범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그녀는 순간 시선을 어디 둘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구의범은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부끄러워하면 어떡해?"안예지는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아무것도 안 하긴! 포옹도 하고, 키스도 했으면서..."구의범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이 정도는 익숙해져야지. 앞으로 더 한 일도 할 텐데."'더 한 일이라면 혹시...'안예지는 또다시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커플 사이에 당연한 일이니 그녀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다 했다. 하지만 구의범은...안예지의 생각을 읽었는지 구의범은 머리를 숙여 그녀의 볼에 뽀뽀했다."난
안지성은 눈을 내리뜨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안예지와 진여훈의 약혼 소식에 적잖이 놀랐었다. 두 아이는 알고 지낸 시간도 짧은데 갑자기 약혼이라니, 정말로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구의범이 그녀한테 이별을 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그는 너무나 신경이 쓰였지만 그렇다고 섣부른 행동을 할 수는 없었기에 반지훈을 찾아갔었다. 반지훈과 진 씨 집안은 친척 사이였으니까 뭐라도 알까 싶어서.결국 반지훈한테서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진여훈과 자신의 딸이 가짜 약혼을 했다는 것을. 심지어 그에게는 이미 약혼녀도 있었다. 상대는 카지노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자의 딸이었는데 이미 두 집안끼리 혼담이 이루어진 상태였다.진여훈과 그의 딸이 이런 가짜 약혼을 발표한 건 구의범의 속내를 떠보기 위함이었다. 안지성은 진실을 알고 화가 나긴 했지만 딸아이가 진여훈한테 속아 넘어간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아빠.”안예지가 안지성의 곁에 앉으며 그의 팔을 껴안았다.“의범 씨 저한테 진심이에요. 저희 두 사람 허락해 주세요.”안지성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미 일은 다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나한테 통보하는 거니? 너 이제는 이 아빠가 안중에도 없구나.”안예지가 그의 어깨에 살포시 기댔다.“잘못했어요. 하지만 저 진짜 그 사람 좋아해요. 물론 그 사람도 저랑 같은 마음이고요.”김수혜가 과일이 담긴 접시를 들고 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미소 지었다.“어르신 아가씨도 이젠 다 컸는걸요. 아가씨가 원하는 행복을 찾아갈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제가 봐도 구씨 집안 그 둘째 도련님이 우리 아가씨한테 진심인 게 알리던데요.”안지성이 정색하며 물었다.“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김수혜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밖에서 저렇게 오랫동안 서서 기다리는 걸 보면 당연히 알게 되죠. 진심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추운 날씨에 꼼짝 않고 기다리고 있겠어요?”안예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 사람이 밖에 있다고요?”그녀가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나갔다. 서둘러
강성연은 베란다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를 마치려던 그때 그녀의 어깨 위에 외투가 걸쳐졌다.그녀는 등 뒤에서 자신을 감싸 안은 반지훈을 돌아보았다.“벌써 퇴근했어요?”그가 피식 웃었다.“회사에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도 없어서 일찍 왔어.”강성연이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구의범과 예지 씨 이젠 정말로 함께하게 되었네요. 가짜 약혼이 꽤 먹혔던 것 같아요.”반지훈이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간지럽혔다.“진여훈한테 도와달라고 하다니. 그런 생각은 너밖에 하지 못했을 거야.”그가 실눈을 떴다.“걔 성격으로 절대 이런 일에 쉽게 나서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설득했어?”강성연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까치발을 들고 그의 목을 껴안았다.“이게 다 당신 덕이죠.”그가 미간을 찌푸렸다.“내 덕이라고?”“당신이 진여훈 사촌 형인데, 어떻게 사촌 형의 체면을 깎을 수 있겠어요. 당신 심기를 건드렸다가 앞으로 서울에서 어떻게 장사하려고요. 안 그래요?”강성연이 씩 미소 지었다.반지훈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와이프가 그의 이름을 들먹이며 횡행한들 어쩌리. 그래봤자 그한테는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울 뿐인데.*맞춤 웨딩드레스 숍.웨딩드레스를 갈아입은 안예지가 커튼 뒤에서 걸어 나온 그 순간, 구의범은 그녀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 그의 눈에는 온통 그녀밖에 없었다.그의 끈질긴 시선에 그녀는 어쩐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이 드레스… 예뻐?”“응, 예쁘다.”구의범이 그녀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줬다.“너무 잘 어울려.”그녀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손유린과 반크가 그들 쪽으로 걸어가다가 멈칫했다. 어쩐지 자신의 아들과 안예지의 알콩달콩한 순간을 깨뜨리기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반크가 웃음을 터뜨렸다.“의범이도 이제 장가를 가게 되었네요.”“그러게 말이에요.”손유린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드디어 저도 쟤가 장가를 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네요.”구의범이 안
구의범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안지성이 딸의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안예지는 그와 눈빛을 교환한 후 함께 주례자 앞에 섰다.주례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신부 안예지 양은 신랑 구의범 군의 아내로 한평생 함께 살면서, 구의범 군이 힘들 때 가장 아늑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어떠한 곤란이 닥쳐와도 떠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까?”안예지가 구의범을 보고 미소 지으며 답했다.“맹세합니다.”“구의범 군은 안예지 양을 아내로 맞이하며 한평생 안예지 양을 사랑해 주고, 아껴주며, 그녀가 원할 때에는 언제든지 곁에 있어줄 것이고, 늙고 병들어도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까?”구의범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맹세합니다.”그가 그녀의 베일을 천천히 들어 올린 후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객석에서 울려 퍼진 박수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반지를 교환했다.주례자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이로써 두 사람은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안예지는 자신의 약지에 끼워진 그의 이름 이니셜이 새겨진 다이아 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들고 그를 보았다. 오늘부로 그는 그녀의 남편이 되었고 그녀는 그의 아내가 되었다.구의범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 마누라. 행복해?”안예지가 웃으며 그의 품에 안겼다.객석에 앉아있던 안지성이 고개를 숙이고 몰래 눈물을 훔쳤다. 자신의 딸이 시집을 가게 되다니. 그는 아직 딸을 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다.강성연은 반지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우리 또 한 커플의 사랑의 결실을 목격했네요.”반지훈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난 너만 기쁘면 돼.”강성연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이 결혼식의 일등공신인 진여훈은 왜 안 왔죠?”그가 웃었다.“안 온 게 아니라 못 온 거 아닐까?”그날 밤, 안예지는 아늑하게 꾸며진 신혼 방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앉아있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안예지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곧바로 구의범이 문을 열고
“저예요 아가씨.”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강성연이 활짝 미소 지었다.“지윤 씨?”지윤이 M 국으로 간지도 거의 반년이 되었다. 부모님의 행방을 찾았다는 말만 하고 지금껏 아무런 소식도 없어서 강성연은 그녀가 자신을 잊었다고 생각했었다.“이제야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아가씨.”“지윤 씨가 무사하면 됐어요.”강성연은 벽에 기대섰다.“M 국에서는 잘 지내고 있어요?”“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저 이제 곧 돌아가려고요.”강성연이 멈칫거렸다.“어디로요?”지윤이 잠깐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 부모님 찾았어요. 그런데… 생각했던 것처럼 잘 안돼서. 저 아가씨 곁으로 다시 돌아가려고요.”강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윤의 목소리에서 실망감이 느껴졌다. 당시 그녀는 친 부모의 행방을 알고 무척 기대에 차 있었다. 어쨌든 자신을 낳아준 친 부모였기에 그녀도 보고 싶었을 것이다.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달라있었던 것 같았다.“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와요.”“아가씨…”강성연이 시선을 떨구며 미소 지었다.“그곳이 불편하면 언제든지 돌아와요. 전 언제나 환영하니까요.”통화를 마친 강성연이 막 병실로 돌아가려던 그때, 그녀의 눈에 언뜻 누군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맞은편 복도를 지나가는 여자는 바로 윤티파니였다.‘윤티파니가 왜 산부인과에 있지?’그녀의 뒤로 두 명의 보디가드가 따랐는데 한눈에 보아도 보호가 아니라 감시하는 듯했다.한지욱과의 혼담이 깨진 후 윤티파니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하루아침에 종적을 감춘 듯 잠잠했었다.윤티파니가 침대에 걸터앉아 옷을 벗자 간호자가 커튼을 쳐줬다. 한참 후 커튼이 열렸을 때 그녀는 이미 옷을 다 갖춰 입은 상태였다.“윤티파니 씨 외람된 말씀이지만 손목에 상처는…”간호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티파니가 옷소매를 내리며 손목을 가렸다.“다른 건 상관하지 말고 결과만 알려주면 됩니다.”간호사가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