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딩아, 배고파?”집에 오기 바쁘게 엄혜정은 강아지에게 사료를 줬다.바쁜 일과로 하루 두 끼밖에 챙겨주지 못하는 그녀는 푸딩이 얼마나 배가 고팠을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여보, 왜 나한테 그랬어? 내가 죽으니까 이젠 만족해?’‘혜정아, 나 좀 봐. 나 온몸이 피범벅이 됐어. 와서 피가 맞는지 만져봐.’‘엄혜정, 날 감옥에 처넣으니 만족해? 나 죽어서도 너 용서하지 않을 거야!’‘엄혜정!’“아아아아!”어느새 잠든 엄혜정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깨어나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내 잘못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야…….”“왕!”겁에 질려 머리를 감싸고 있던 엄혜정은 푸딩의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멍하니 푸딩을 바라보던 그녀는 주위를 빙 둘러보고 나서야 이곳이 셋방이라는 걸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얼른 손을 뻗어 푸딩을 품에 안았다.“미안해. 놀랐지? 나 악몽 꿨어. 그 사람이 또 내 꿈에 찾아왔어. 한동안은 이런 꿈 꾸지 않았었는데…….”김하준이 감옥에서 죽은 뒤 그녀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악몽에 시달렸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을 버틴 끝에 이제 겨우 악몽에서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을 줄 알았는데 또다시 그 사람이 꿈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병원 문 앞에서 만난 “육성현”이라는 남자를 떠올리자 엄혜정의 머리는 또다시 복잡해졌다.‘설마 김하준이 살아있었나?’그날 엄혜정은 휴가를 신청하고 다시는 발붙이고 싶지도 않은, 그녀에게 상처만 남겨준 A 시로 향했다.그리고 그 곳에 도착하기 바쁘게 그녀는 김하준의 묘소를 찾아갔다.그녀는 김하준의 시신을 매장한 뒤로는 이곳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묘지 앞에 서자 여전히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엄혜정은 무덤 앞에서 노잣돈을 태운 뒤 생화를 그 앞에 놓았다.“김하준,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내 생명을 대가로 당신 행복을 빌어줄 테니까 이번 생에는 나 좀 놔줘…….”그녀는 두렵고 고통스러웠다.김하준의 죽음은 마치 후유
그때 엄혜정은 고작 16살이었다. 욕설이 난무하는 빈민가에 살고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때 묻지 않은 선량한 소녀였다.하지만 나중에 그녀는 오랫동안 자기 행동을 후회했다. ‘왜 하필 김하준을 건드려서는…….’그렇다고 그녀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녀도 그때에는 김하준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라는 걸 전혀 몰랐으니까…….조사를 끝낸 엄혜정은 다시 제성으로 돌아와 여느 때와 같이 출퇴근하며 그날 일은 작은 해프닝으로 넘겼다.담당 형사도 그저 닮은 사람일 거라고 했으니까…….그다음 날, 회사로 출근한 엄혜정은 오서진의 명령으로 서류를 가져다주러 원유희의 사무실을 찾아갔다.노크를 하고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안에 손님이 있다는 걸 발견한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서류를 전해주고 사무실을 나서려고 했다.하지만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그녀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육성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두 사람 알아요?”이상함을 눈치챈 원유희가 이내 물었다.하지만 엄혜정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지 못했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반면 육성현은 오히려 침착했다.“전에 병원 앞에서 만난 적 있는데 내가 하마터면 차로 칠 뻔했거든.”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슬쩍 돌려 엄혜정을 바라봤다.“그런데 네 비서였을 줄이야. 세상 참 좁네.”“혜정 씨 괜찮아요?”원유희는 걱정되는 듯 물었다.사실 그녀는 사람도 좋은 데다 일처리도 깔끔하게 하는 엄혜정이 꽤 마음에 들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괜찮습니다.”엄혜정은 겨우 마음을 다스리며 대답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이 남자가 왜 여기 있지?’김하준은 이미 죽어서 땅에 묻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얼굴을 다시 마주하자 겁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감히 상대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스스로 두 사람이 아무런 관계도 없을 거라고 최면을 걸었다.그때 원유희가 계약서를 받아 들며 입을 열었다.“
검색창에 육성현이라는 세 글자를 검색한 순간 그에 관련된 자료가 바로 나왔다.육씨 가문의 미래 가주이자 유일한 후계자.게다가 인터넷에는 육성현이 어릴 때부터 육씨 가문의 가업을 관리하기 시작해 왔다고 적혀 있었다. 10대 때 해외로 유학을 가고 다시 돌아온 뒤 여전히 가업을 잇고 있다는 자료만 보면 진정한 재벌 가문의 아들이 맞았다.능력뿐만 아니라 기타 방면에서도 모두 두각을 나타내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이었다.그런 인생은 그녀가 알고 있는 김하준과는 천차만별이기에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엄혜정은 이 세상에 그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죽은 김하준이 다시 부활한 줄 알고 심장이 멎을 뻔했으니 얼마나 닮았는지 알 수 있었다.원유희가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노크소리가 들려오더니 앙증맞은 꼬맹이 세 명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엄마!”익숙한 소리에 놀란 원유희는 이내 고개를 들었고 세 아이를 본 순간 활짝 웃으며 벌떡 일어났다.“여긴 어떻게 왔어?”세 아이는 쪼르르 달려가 엄마의 품에 폭 안겼다.“혼자 왔어?”아이들 뒤를 아무리 살펴봐도 그들을 사무실로 안내한 엄혜정만 보일 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네. 우리 힘으로 찾아왔어요? 대단하죠?”유담은 원유희의 품 안에 안긴 채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까르르 웃었다.“와, 대단하네!”원유희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진선우가 아이들을 따라왔다고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지난번 경험도 있기에 그녀는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그저 앞으로 아이들이 이제는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엄마, 이거 우리가 엄마 주려고 산 거예요!”조한이 손에 든 디저트를 내밀며 말했다.“와!”‘디저트도 사 온 거야? 입이 심심했었는데.’“엄마 마음에 들어요?”상우가 큰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당연히 마음에 들지. 엄마 마침 디저트 먹고 싶었는데!”원유희는 만족한 듯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그때
원유희가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심지어 노크 소리도 들리지 않은 터라 원유희는 놀라 고개를 들었지만 사무실에 들어선 사람을 확인한 순간 바로 체념했다.‘내가 저 사람한테 뭘 더 바라겠어. 언제나 제멋대로인 사람인데 노크하길 바라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지.’사무실에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김신걸이었다.“아빠!”세 꼬맹이는 거의 동시에 그를 부르며 쪼르르 달려갔다.“아빠 우리 데리러 왔어요?”“싫어요. 나 집에 안 갈래요! 더 놀고 싶단 말이에요!”유담의 말에 김신걸이 대답하기도 전에 조한이 다시 소파 쪽으로 달려가 벌러덩 누워버렸다.김신걸은 곧바로 소파 쪽으로 다가가 조한을 일으켜 앉히며 입을 얼였다.“집에 가서 놀면 되잖아.”조한은 아빠의 말에 불만 가득해서는 큰 눈을 부릅떴다.“그럼 엄마도 우리랑 같이 가요?”“그건 엄마한테 물어봐.”김신걸의 말에 세 아이는 동시에 고개를 원유희 쪽으로 돌리더니 반짝반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기대에 찬 아이들의 눈빛에 원유희는 순간 압력을 느꼈다.‘나한테 선택권 넘겨주는 척하긴. 분명 일부러 나 난처하게 하려고 그런 거면서.’애들을 실망하게 할 수 없었기에 원유희는 당연히 거절하지 못했다.“그래 같이 가자.”“와!”원유희는 끝내 타협하듯 억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세 아이는 어찌나 기쁜지 그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조한은 심지어 김신걸의 아래를 밟을 뻔했다. 다행히 동작이 빠른 그가 막아서 사고를 면할 수 있었지만.퇴근 준비를 마친 뒤 다섯 식구는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조한과 상우는 앞에서 걸어갔고 유담은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은 채 뒤에서 걸어갔다.그리고 마침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온 엄혜정이 그들을 보고 인사했다.“대표님.”“누나! 우리 갈게요! 안녕!”“그래.”조한의 말에 엄혜정이 싱긋 웃었다.“우리 아빠가 데리러 왔어요!”유담은 귀엽게 딴 머리를 찰랑거리며 우쭐댔다.아이의 말에 엄혜정은 그제야 김신걸에게 눈길을 돌렸고
“아이도 태어났는데 왜 결혼하지 않는대요?”“에이, 당연한 거 아닌가? 아이는 실수로 생긴 거고 진짜 사랑은 피아노 여신 윤설이라는 뜻이겠지!”그 말에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유, 대표님만 불쌍하지. 아이를 셋이나 낳았는데 아무런 명분도 얻지 못하다니.”이 부장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명분은 없다지만 그래도 좋은 점은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 아빠가 김 대표님인데. 한 손으로 제성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모자라 돈 많지, 권력 있지, 잘생겼지.”“좋은 점이 있기는 무슨. 대표님 어머님이 예전에 김 대표님의 부모님 사이에 끼어들었거든…….”이 부장이 열이 나서 설명하고 있을 그때 엄혜정의 목소리가 갑자기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 부장님, 퇴근 안 하세요? 이미 퇴근 시간 훌쩍 지났는데.”때아닌 순간 끼어든 목소리에 이 부장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신입 주제에 자기 말을 끊었다는 것에 언짢은 듯했으나 곧바로 손을 휘휘 저었다.“다들 퇴근해. 퇴근해!”그 시각 다섯 식구는 어전원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원유희와 김신걸이 결혼했는지 안 했는지를 따지지만 않는다면 아주 화목한 가정처럼 보였다.“우리 내일 바다 가는 거 어때?”김신걸의 말에 원유희는 잠시 멍해 있더니 이내 알아차리고 되물었다.“내일 언제?”“오후.”세 꼬맹이도 곧바로 끼어들었다.“우리 내일 바다 가서 놀아요?”“우리 다섯명 함께 가는 거죠?”“한 명도 빠지면 안 돼요!”한편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메이드가 모든 내용을 그대로 장미선에게 전했고 그 덕에 작업실에서 돌아온 윤설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화김에 손에 들고 있던 핸드백을 소파에 내팽개쳤다.“뭐 바다 가서 논다고? 또 원유희 그년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겠지. 안 봐도 비디오네. 방해라도 받을까 봐 멀리 떠나겠다는 건가? 아버지는 아직도 병상에서 오늘내일하고 있는데 바다로 나가 놀 생각만 하다니 정말 뻔뻔하네!”“어떻게 할 거야? 지난번 방법은
원유희는 당연히 빌린 건 줄 알았는데 김신걸의 말을 듣자 어안이 벙벙해졌다.하지만 그녀도 요트는 처음이었다. 이런 건 보통 부자들이나 즐기는 것이기에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온 그녀는 요트를 탈 기회조차 없었다.“엄마, 우리 얼른 요트 타러 가요!”조한은 잔뜩 흥분해서 방방 뛰었다.아이의 모습에 원유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러자고 대답하려던 찰나 가방에 있던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당연히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인 줄 알았는데 액정을 확인한 순간 송욱의 이름이 보였다.‘무슨 일이지?;’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 없는 그녀는 옆으로 잠깐 물러나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원유희 씨, 어머님께서 아까 병실에서 넘어져 머리를 조금 다쳤어요.”“네?”그 말을 들은 순간 원유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상처는 이미 처리했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가벼운 뇌진탕이라서 휴식하면 돼요.”“제가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원유희는 고개를 돌려 김신걸을 바라보더니 기대에 부푼 세 꼬맹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자 차마 그들의 흥을 깨트리지 못했다. 이윽고 그녀는 김신걸 앞으로 걸어가더니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로 입을 열었다.“나 급한 일이 생겨 가봐야 할 것 같아. 아이들은 당신이 데리고 놀아.”“무슨 일인데?”김신걸의 눈빛은 순간 어두워졌다.“엄마가 병원에서 넘어져 뇌진탕이 왔대. 가봐야 할 것 같아.”원유희는 김신걸이 동의하지 않을까 봐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만약 그가 강요한다면 그녀는 억지로라도 요트에 탈 거지만 그러면 마음 놓고 아이들과 즐길 수는 없을 거다.“아이들 데리고 먼저 올라가.”김신걸의 명령에 경호원들이 아이들을 요트에 안아올렸다.“아빠, 엄마 빨리 와요!”아무것도 모르는 유담은 신나서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하지만 원유희는 여전히 김신걸의 어두운 눈을 바라봤다.“설마 나 못 가게 할 건 아니지?”“의사와 간병인이 있을 텐데 가서 뭐 하게?”
“그러니까…….”원수정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기억이 난 듯 고개를 돌렸다.“장미선이 나 밀었어! 나 죽이려고 일부러 그런 게 틀림없어!”“나도 CCTV 돌려봐서 알아요. 그 여자도 본인이 부주의로 어머니 밀쳤다고 했고. 혹시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엄마가 넘어진 곳이 마침 사각지대로 제대로 확인 못 했거든요.”“그 여자가 부주의로 그랬다고? 그 두 모녀는 내가 죽기를 아주 고대할걸!”“저도 알아요. 그런데 증거가 없어요.”원유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원수정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아참, 너 아이들 데리고 바다로 놀러 간다며? 설마 안 갔어?”“엄마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잖아요.”“그럼 애들은?”“신걸 씨가 데리고 요트 타러 갔어요.”“보아하니 이게 그 모녀의 목적이었네. 너 못 가게 붙잡아 두는 게! 나 상관 말고 아이들한테 가 봐! 이런 기회 흔치 않아.”“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엄마를 그냥 내버려 두고 가요? 게다가 장미선 모녀가 또 무슨 짓이라도 벌일까 봐 불안해서 못 가겠어요.”“걱정 마.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원수정은 그 두 사람이 절대 그럴 배짱이 없다고 자신했다.“내일 다시 얘기해요.”‘지금 돌아가는 건 안 돼.’“너 이러면 그년들한테 놀아는 꼴이 되는 거라고…… 아휴!”원수정은 너무 답답한 나머지 버럭 화를 내더니 머리가 어지러웠는지 다시 털썩 침대에 누웠다.“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있어요. 엄마 지금 가벼운 뇌진탕이래요.”딸애의 말에 그녀는 눈을 감더니 불편함이 사라지자 다시 입을 열었다.“네 아버지는 어떡해? 설마 혼자 있는 거 아니지?”“바로 옆방에 있어요. 제가 왔다 갔다 하며 보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아마 장미선 모녀가 있을걸요.”잠시 뒤 옆 병실로 가보니 역시나 두 사람이 안에 앉아있었다. 두 사람이 떠나지 않는 한 원유희도 떠날 수 없었다.“이 방법 역시 좋네. 원유희가 바로 나타난 것 봐.”장미선은 계획이 성공한 게 기뻤는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지금 어디에 있어?”라인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김신걸이랑 오늘 바다에 나간다고 들었는데 원수정이 병원에서 일이 좀 생겨서 혼자 돌아왔다고 해요.”김명화는 눈썹을 찌푸리고 일어나 컴퓨터를 덮었다."나 좀 나갈게."라인은 김명화의 행동을 보고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었다. 라인에게 숨길 생각이 하나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라인은 그곳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살기까지 보였다.김명화는 지치지도 않은지 쉴 새 없이 원유희에게 집착하고 있다. 근데 처음부터 이런 것 아니었다.원유희는 병실에서 원수정과 함께 있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문이 열리자 김명화가 들어왔고 손에는 꽃바구니와 과일, 그리고 영양제를 들고 있었다. 원유희는 이 장면이 너무 익숙하다고 느꼈고 생각해보니 그때 윤정의 병문안을 올 때도 김명화는 이와 같은 모습으로 왔다.“이모, 어떠세요? 다쳤다는 얘기듣고 한달음에 왔어요.”김명화가 말했다. 그러자 원수정은 이런 김명화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얘네들이 언제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됐지?’예전에 김 사모님이었을 때도 원수정은 이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어떻게 알았어? 소식이 아주 빠르네?”‘설마 시시각각 내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윤정 아저씨 보러 왔다가 우연히 들어서 뭐 좀 사 들고 왔어요.”김명화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얘기했다.“어쩌다 이렇게 됐어요? 아저씨를 돌보다가 무리한 거 아니에요? 이모는 좀 더 휴식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너랑 무슨 상관인데?’원유희는 속으로 불만을 얘기했다.그러나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순 없기에 원유희는 그저 그러려니 넘어갔다.“다 장미선때문이지 뭐. 무슨 실수로 나랑 부딪쳤다고 하는데 딱 봐도 고의로 그런 거야.”원유희는 그 일을 떠올리자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보통 일이 아닌데?’“그만 봐요, 어차피 증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