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은 원래도 잠을 깊게 자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인기척을 듣자마자 반응했다. 잠결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윤정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급하게 일어났다.“수정아, 깨났어? 일단 말하지 마, 내가 의사를 불러올게.”이 말만 하고 얼른 소환 벨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검사를 시작했다.스스로 호흡할 수도 있었기에 호흡기 사용을 중지했다. “정말 기적이네요! 적어도 1년 반쯤은 계속 혼수상태에 빠질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잘 회복됐네요.”“다른 문제는 없는 거죠?”“의식만 깨어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며칠 더 있다가 퇴원하도록 해요.”“그럼 지금 뭐 먹을 수 있을까요?”“네, 조만간에는 유동식만 가능해요. 아무래도 오랫동안 먹지 못했으니깐요.”“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윤정은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돌아간 후, 윤정은 바로 호텔에 전화를 걸어 유동식이랑 영양국을 주문했다. 전화를 끊은 후, 윤정은 자기 몸에서 시선 고정한 원수정이랑 물었다.“어때?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데 없어?”“없…….”목이 아픈 원수정은 말하다가 눈살을 찌푸렸다.그러자 윤정은 곧바로 원수정에게 물을 따라줬고 다정하게 빨대까지 꽂아줬다. “우선 좀 적게 머셔.”원수정은 두 모금만 마시고 더 이상 마시지 않았다. 물을 좀 마시니 목이 많이 편해졌다.메마른 사막에서 걷다가 오아시스를 찾아 물을 마신 기분이었다.“나 입원한 지 오래됐어?”“응, 벌써 보름이 다 됐어.”“그렇게나 오래 있었다고?”원수정은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생겼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당신 계속 여기에 있었어? 유희는?”이 말을 듣자 원수정이 깨어나서 느꼈던 즐거움은 잠시 잊혔다. 윤정은 시선을 돌려 피했고 대충 얼버무렸다.“유희는 제성에 있지, 제성을 못 벗어나는 거 당신 잘 알잖아.”원수정은 하마터면 이 일을 잊을 뻔했다. 동시에 김신걸에 대한
‘저 여자랑 표원식은 무슨 관계지? 아이 일 때문이라도 길가에서 얘기할 필요는 없을 건데?’수상함을 느낀 표원식은 고개를 돌리자 옆으로 지나가던 롤스로이스를 봤다. 저런 번호판을 가진 사람은 제성에서 김신걸 한 명뿐이었다. 밤은 깊어졌고 답답하고 불편한 느낌을 주었다. 이 동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롤스로이스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고 아래층에 멈췄다.김신걸은 자기도 모르게 원유희의 집으로 들어갔다.심플하고 깨끗했고 공기 중에는 원유희 특유의 단아한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있었으며 유치한 우유 향도 섞여 있었다.방에 들어간 김신걸은 침대에 앉았다. 갑자기 위가 뒤틀리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고 얼굴이 구겨졌다. 옆에 있던 서랍을 열자 뜻밖에도 안에 위장약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교활한 여자야.”김신걸은 그 약을 쳐다보며 넋을 잃었다. 약병을 깨뜨릴 만큼 손에 힘을 꽉 주었다.“빨리 나타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참을성이 없다는 거 알잖아…….”오랫동안 머물다가 김신걸은 아래층이 아니라 위층으로 올라갔다.문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김신걸은 경호원에게 직접 문을 열라고 했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 보니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고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아이의 물건이었다. 가지런히 깨끗하게 정리해있었다.김신걸은 날카롭고 예리한 눈빛으로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피노키오, 표원식, 원유희, 시터, 아이……그들 사인 분명히 뭔가 있어.’특히 아이들은 매번 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그들의 부모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기에 김신걸의 의심은 더 짙어졌다.‘왜…….’아파트에서 나온 김신걸은 뒤따라온 경호원에게 말했다.“세쌍둥이의 모든 자료를 다 찾아와, 그리고 내일 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도록 해.”“네.”밤, 김신걸은 드래곤 그룹에도 어전원에도 가지 않았고 민이령의 아파트로 향했다. 자신만의 개인 공간으로 생각했는데 냉장고를 열고 가득 찬 야채를 보았을 때 김신걸은 순간 멍해졌다.그리곤 바로
김신걸은 병상 앞에 서 있었다. 검은 운동자는 위험한 짐승처럼 잠자고 있는 원유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원유희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입술까지 창백했고 얼굴과 손등은 상처투성이였다. 호흡은 평온했지만 크게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휠체어에 타고 있는 진선우는 죄책감을 느꼈다.“죄송합니다. 헬리콥터가 고장 났다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바로 원 아가씨를 데리고 내리뛰었는데 너무 높은 곳에서 뛴 탓에 바다에 떨어질 때 크게 다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바다에 빠진 후 저는 의식을 잃지 않았고 지나가던 요트 덕분에 구조되었습니다. 요트에 오르자마자 저도 쓰러진 탓에 제때 연락드리지 못했습니다.”김신걸의 시선은 원유희 몸에 고정될 뿐 한 번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았다.“지금 이동이 가능해?”옆에 있던 의사가 답했다.“여러 군데가 골절되었고 바이털도 금방 안정되었기에 당분간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고건, 송욱보고 사람 데리고 오라고 해.”“네.”고건은 병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의사와 간호사도 더 이상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병실을 나갔다.김신걸은 천천히 몸을 숙여 원유희의 얼굴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뻗어 핏기가 없는 원유희의 입술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다가가 키스했다.진선우는 황급히 머리를 숙였다.원유희의 입술색이 붉어지자 김신걸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고 검은 눈동자 속에 담긴 광기와 집착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짙었다.“내가 얘기했었지, 내 허락이 없으면 저승사자도 되돌아가야해.”혼수상태에 있는 원유희는 김신걸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무방비한 아이처럼 누워있었다. 김신걸은 그냥 원유희가 묵인했다고 생각했고 살짝 올라간 입꼬리에서 그의 탐욕을 엿볼 수 있었다.“선생님…….”진선우는 자리를 피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아무래도 김신걸이 아직 나가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기에 진선우는 민망하게 제자리에 있었다. 더군다나 어떤 일은 아직 말하지도 않았다.“말해. 무슨 상황이야?”“헬
궁금해진 윤설은 걸어가서 자료를 들어 봤다. 예상 밖으로 원유희의 자료임을 확인하고 고중 졸업하고 외국에 나가 생활했던 것까지 포함하여 꼼꼼하게 봤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점점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임신, 출산, 세쌍둥이.윤설은 깜짝 놀랐다. 원유희가 애를 낳았다니. 이 자료가 가짜일 리는 없다, 병원의 영수증까지 다 같이 있었다.그 후 원유희가 귀국하고 세 아이가 피노키오 학교에 있다는 것까지 다 써있었다.‘원유희가 다른 남자애를 낳았다니! 신걸 씨도 의심해서 조사하라고 시킨 거구나.’조사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그러니까 그날 아파트 단지에서 만났던 세쌍둥이가 원유희 애였어? 어쩐지 거슬린다고 생각했어. 신걸 씨가 이 자료를 보면 엄청 화내겠지?’원유희가 죽었으니 다행이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산지옥을 맛볼 텐데. 득의양양하게 원유희를 조롱하던 윤설은 마지막 페이지를 보자 얼굴에 띤 미소가 사라졌다.마지막 페이지에는 세쌍둥이의 프로필 사진이 붙어 있었다.미니 버전의 원유희, 그리고 미니 버전의……김신걸?“아!”윤설이 깜짝 놀라자 손에 있던 자료가 와르르 떨어졌다.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사무실에 들어온 비서는 테이블 앞에 서 있는 윤설을 보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뭐 도와드릴까요?”“아……아니에요. 신걸 씨가 없으니까 그냥 여기서 기다릴게요.”윤설은 애써 침착한 척을 했다. 비서는 이 말을 듣고 사무실에서 나갔고 문을 잘 닫아줬다.윤설은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땅 위의 자료를 주워 다시 한번 뒤적였다. 엄청 당황하고 두려운 눈치였다.윤설은 세 쌍둥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이 아이들이 왜 신걸 씨를 닮았을까? 완전 똑같잖아!’윤설은 어떻게 해야 똑같을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부자’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러다가 다리에 힘 빠져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어쩐지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있더라니. 어쩐지 원유희는 5층에 살아있었고 세쌍둥이는 6층에 살고
김신걸이 드래곤 그룹에 없는 모양을 보니 아마도 강구에 가서 시체조차 없는 원유희를 찾으러 간 게 분명했다.‘정말 신경을 엄청 쓰네.’원유희는 이미 죽었으니 윤설은 개의치 않아도 된다. 하지만 윤설은 김신걸이 원유희의 아이에 관심이 생길까 봐 너무나도 걱정되었다‘어쩐지 원유희는 자신이 애를 못 낳는다는 말을 들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더니 이미 아이를 낳았구나.’‘근데 왜 저 세 아이를 내세우지 않고 숨기고 있는 거지?’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도 없었다. 김신걸이 그렇게 원유희를 싫어하고 있는데 원유희는 분명히 아이들까지 피해받을까 봐 숨겼을 것이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윤설은 방심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원유희가 싫더라도 핏줄은 핏줄이었다. 자료는 이미 바뀌었지만 세쌍둥이는 빨리 해결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윤설은 어서 그들을 제성에서 내쫓으려고 했다.더군다나 지금 원유희가 죽었으니 세쌍둥이의 정체가 밝혀지면 김신걸은 꼭 아이들을 데려갈 것이다. 하여 윤설은 김신걸이 세쌍둥이의 존재를 알고, 만나는 것을 무조건 막아야 했다. 정말로 만나면 그들의 얼굴만 보면 굳이 유전자 검사 할 필요도 없었다. 원유희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지만 의식은 또렷하지 않았고 곧 다시 잠이 들었다. 송욱은 그날 저녁에 바로 강구로 왔고 원유희에게 전신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는 송욱이 혼자 책임져서 했고 검사 결과는 다음 날에 다 나왔다.“여러 군데가 골절되고 내장이 아직 파열된 곳이 있었지만 다행히 치명적이진 않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어요. 바이털도 인젠 안정되어 몸조리만 잘하면 회복될 겁니다.”김신걸은 아직 잠들어있는 원유희를 그윽하게 쳐다보았다.“아직 몸이 약해서 오랫동안 깨어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근데 뭐 이틀 정도 더 있으면 괜찮아지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다 회복될 때까지 계속 여기에 있어.”“네.”핸드폰이 울리자 김신걸은 전화를 받았다.“알았어.”자료를 이미 사무실 테이블에 올려놓았다고 경호원에게 연락이 왔다.김신걸은 지
들어오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 딱히 좋은 사람은 같지 않았다.윤설은 이모를 보며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아이를 돌봐주는 이모죠? 전 원유희의 배다른 언니이자 김신걸의 약혼녀입니다. 얘기할 수 있을까요?”윤설은 말하면서 자기 집처럼 소파에 앉았다.이모는 윤설의 자기소개에 충격을 받았다. ‘그럼 아이들의 일이 들켰다는 얘긴가?’이모는 김신걸이 누구의 약혼자인지 잘 알고 있었고 윤설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서 갑작스러운 나머지 어쩔 바를 몰랐다.‘사모님이랑 연락이 안 되니까 교장 선생님을 찾아야겠지?’이모는 먼저 윤설이 무엇을 말을 하려는지 지켜보려고 했다.“뭘 하시려는 거예요?”이모는 멀지 않은 곳에 걸어가서 물었다.방문은 조금 열려있었고 세쌍둥이는 그 틈새를 통해 밖을 내다보았는데 보자마자 윤설을 알아봤다.‘그 나쁜 여자!’“세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세요. 제 말을 이해하시겠어요?”윤설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모는 어리둥절하다는 듯이 물었다.“왜죠?”“왜긴요, 원유희가 미혼모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저희 가문이 망신당하게 되는 거잖아요.”“그렇다고 어떻게 아이를 버릴 수 있어요…….”윤설은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그냥 도우미 주제에 뭔 자격으로 나랑 흥정하겠다는 거죠? 당신과 상의하는 게 아니라 명령하는 거라고요!”“저도 제가 그냥 시터라는 거 잘 알고 있는데요, 근데 사모님이 아이를 잘 돌보라고 얘기하셔서…….”이모도 감히 함부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얘기? 지금 원유희도 다 죽은 마당에 걔가 뭘 얘기했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방에서 엿듣고 있던 세쌍둥이는 멍해졌다.“그럴 리가요, 사모님은 그저 출장 가신 거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돌아올 거예요.”“애들만 이런 얘기를 믿지 당신은 어른이나 돼서 그런 말을 믿어?”윤설은 방쪽을 힐끗 쳐다보곤 계속 조롱했다.“그럼 사실대로 얘기해주죠. 뭐. 원유희는 이미 죽었어, 헬리콥터를 타고 있었는데 헬리콥터가 추락했고 바다에 빠졌는데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요. 올
윤설은 세쌍둥이를 차라리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들이 믿지 않으면 윤설은 그들을 쫓아낼 수 없었다.윤설은 일어서서 오만함이 가득 찬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그럼 천천히들 기다리든가, 과연 기다릴 수 있을지 한번 봅시다.”이 말만 하고 윤설은 나갔다. 윤설이 떠나자마자 세 아이는 얼른 이모랑 물었다.“엄마 찾으러 갈 거예요! 엄마는 꼭 괜찮을 거예요!”유담이는 입을 내밀며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이모를 봤다.“거짓말이죠! 나쁜 사람이잖아요 그 아둠마!”“엄마한테 전화해도 돼요?”이모는 다급하게 그들을 위로했다.“맞아, 저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엄마는 그저 출장갔을 뿐이야. 저번에 엄마가 집에서 말 잘 들으라고 얘기했던 거 기억하지? 이제 엄마가 시간 나면 분명히 연락이 올 거야.”세쌍둥이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반신반의한 눈빛으로 이모를 바라보았다.“이모가 지금 저녁을 준비하러 가야 하니까 여기서 놀고 있어, 금방 다 돼.”이모는 세쌍둥이를 위로하고 주방으로 들어가 가만히 표원식에게 연락했다.“선생님, 세쌍둥이의 정체가 들켰어요.”“누구한테요?”“사모님의 이복 언니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바로 집으로 쳐들어와 저보고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사모님의 사고도 얘기하는 바람에 제가 아이들을 달래긴 달랬지만 아이들이 계속 시무룩해 있어요. 사모님도 곁에 없고 아이들도 들켰는데 어떡하죠?”표원식은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라고 한 것 빼고 다른 얘기는 안 했어요?”“네, 집안 망신이라고 소문나면 안 된다고 했어요.”“김신걸을 속이려고 이러는 거겠죠. 걱정하지 마요, 윤설은 절대로 김신걸한테 알려주지 않을 거예요. 알려주려고 생각했다면 오늘 찾아와서 떠나라고 하지 않았겠죠.”“근데 사모님 사고 난 일을 말하는 바람에 아이들도 의심하게 됐어요.”세쌍둥이는 평소에도 주견이 있고 사고력이 뛰어났기에 어른들이 변명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밤에 갈게요.”“그래요.”윤설이 차
특히 윤정이 알게 되면 김신걸과의 혼사를 다시 생각할 수도 있다.‘장난해? 난 반드시 신걸 씨의 아내가 되어야 해, 물론 나만 그런 자격이 있고.”사려져야 하는 건 세쌍둥이여야지 결혼은 아니었다.“왜 말을 안 해?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엄마 놀라게 하지 마!”윤설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괜찮아요, 그냥 일 때문에 이러는 거예요.”“너는 지금 제성의 국왕 김신걸의 부인으로 될 사람인데 누가 감히 너와 걸고 들겠어? 이름만 말해봐, 누가 감히 널 건들겠어?”“먼저 올라가서 잘게요.”윤설은 먼저 자리를 떠났다.“어전원에 안 가? 요 이틀에 배란기인 걸로 기억하는데?”이 말을 듣자 안 그래도 복잡한 윤설은 기분이 더 착잡해졌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쾅 닫았다.장미선은 어리둥절했다.‘김신걸이 강구로 간 거 아냐?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짧을 수가 있지? 자기 와이프를 집에 홀로 내버려 두고 원유희 일을 조사하러 가다니!”아무리 조사해봐도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었다.“아이……아이……”원유희에게 약을 바꿔주고 있는 송욱은 원유희의 잠꼬대를 듣게 되었다.원유희는 천천히 눈을 었고 의식이 아직 완전히 현실로 돌아오지는 못했다김신걸은 침대 옆으로 다가가 몸을 숙여 물었다.“뭐라고?”원유희는 전처럼 의식이 흐릿하지 않았고 김신걸의 얼굴을 보자마자 정신이 바로 돌아왔다. 그러다 자신이 김신걸앞에서 아이 얘기를 꺼낸 것이 생각났다.“외상 후유증 같아 보입니다.”송욱이 말했다. 어쨌거나 원유희가 유산할 때 모습은 누구나 다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당사자인 원유희는 더 말할 것 없이 잘 기억하고 있었다.정신적인 상처는 겉으로보면 때론 괜찮은 것 같지만 사실 그 상처와 후유증은 평생 지속된다. 몸이 약해지거나 정신이 약해지면 그 상처는 고스란히 나타나게 된다.송욱은 원유희의 눈동자를 확인하더니 말을 꺼냈다.“어제보다 많이 나아졌어요. 적당량의 유동식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가서 병원이랑 얘기할게요.”이 말을 다 하고 송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