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희가 전화를 걸면서 화장실로 갈 때, 수화기 저편에서 마작 소리가 들렸다.“누구랑 마작하는 거예요?”“호텔에 마침 마작 둘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돌아보다가 마침 다른 사람이 같이 하자길래 좀 했지.”“처음 보는 사람이랑 뭘 그런걸 해요? 다른사람한테 속는게 무섭지도 않아요?”“아니야, 괜찮아, 아휴, 엄마가 다 하고 다시 전화할게, 알겠지?”원유희가 답하기도 전에 무력하게도 이미 전화가 끊어졌다.이것도 좋은 현상이겠지? 그저 걱정만 하는 게 아니라, 어쨌든 즐거움을 찾은 거니까.그때, 그녀의 어깨에 여자 같지 않은 무거운 손이 닿았다.“누구랑 전화해?”김명화가 다가와서 물었다.그와 CCTV를 번갈아 보던 원유희는 생각에 잠겼다.만약 이 사람과 일부러 썸 타는 척을 하면, 김신걸의 주의를 끌 수 있지 않을까?하지만 그렇게 많은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고, 김명화와 썸을 타고 싶지도 않아서 이내 생각을 접고 그의 팔을 밀어젖혔다.“여기는 회사인데요, 좀 존중해 주세요.”“다들 네가 내 여자친구인 걸 아는데, 어깨동무는 물론이고 뽀뽀를 해도 이상하지 않지.”김명화가 제멋대로 하는 말에 원유희는 눈이 뒤집힐 뻔했지만 몸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어머니는 지금 강구에 계셔?”“뒷조사했어요?”“내 여자친구인데, 무슨 일이든 내가 알아야 하지 않겠어?”김명화는 자신의 행동을 부인하지 않고 말했다.“알면서 왜 물어봐요?”“너 별로 기분이 안 나빠 보이길래.”“저는 이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엄마가 먼저 떠나시고, 저도 떠나고. 시간 문제죠.”말을 마치고 화장실로 들어간 뒤 거울 앞에 선 원유희는 여기 뭘 하러 왔는지 잊을 지경이었다. 확실히 처음에 원수정이 강제로 제성을 떠날 때는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 받아들이고 나니, 특히 원수정이 빨리 그쪽 환경에 적응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편하게 했다. 지금 상황으로는 마작만 있으면 원수정은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다.“오늘 6만원 벌었어!”퇴근할 때, 원수정에게서 전화가 왔다.
원유희가 아주머니에게 모든 걸 말하고 월급도 정산하려고 했다. 원수정은 돌아올 수 없을 거고, 그럼 어차피 별장이 비어 있게 되니 원유희를 거기에 살게 하려는 게 뻔하다. 확실히 세 아이를 데리고 동네에서 산다면 사람들의 이목이 쏠릴 수도 있지만, 윤정이 사준 그 아파트조차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판에 별장도 안전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때,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나더니 곧 장미선과 윤설이 거들먹거리며 들어왔다.“뭘 하러 온거지?”원유희가 좋지 않은 안색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물건 가지고 오세요!”장미선이 뒤에서 크고 작은 가방을 들고 오는 기사에게 전했다.“오늘부터 여기가 바로 우리 호텔이야. 심심할 때 와서 묵으려고.”“여기는 우리 엄마 집이야. 똑바로 알고 행동해.”“제성을 떠나서, 어차피 안 사는 거 아닌가?”원유희의 차가운 말에, 장미선이 반박했다.“빈집으로 놔두면 얼마나 안 좋아? 게다가 윤설이 너의 친언니인데, 가끔 여기 와서 사는 게 문제될 건 없겠지?”그 순간, 윤설이 사방을 둘러보며 손을 뻗다가 꽃병 하나를 넘어뜨렸고 큰 소리와 함께 땅에 부딪혀 깨졌다. 갑자기 굳어진 분위기.“아, 미안해, 잘못 건드렸네!”누가 봐도 일부러 한 행동이다.“원수정 사모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꽃병인데…….”“지금 말 끼어들 때 아니예요!”아주머니의 아쉬운 말에, 윤설이 손을 휘두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뺨을 맞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아주머니가 뒤로 물러서자, 원유희가 놀라서 아주머니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너 뭐하는 거야? 아주머니, 괜찮으세요?”아주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문도 모른 채 뺨을 맞았으니 누구라도 억울할 수밖에.화가 난 원유희가 앞으로 달려들어 윤설의 얼굴에 손을 대려고 하자, 그녀는 움츠러들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때려, 때려봐! 때린 걸 알면 김신걸이 너한테 어떻게 할까?”원유희의 손이 허공에 굳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김신걸이 아니라도 강구에 혼자 있
원유희는 참고 또 참으며 감정을 진정시켰다.“옷 몇 벌만 가지고 갈게.”“내가 가지고 가게 둘 것 같아? 지금부터 이 방의 모든 건 내 거야. 공기 하나라도! 이 여자들을 끌어내!”윤설이 각박한 눈빛으로 기사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기사가 다가가 원유희를 잡으려고 하자,“건드리지 마! 스스로 갈거야!”원유희가 그의 손을 뿌리치고 곧바로 아주머니와 함께 문을 나섰다.“우리한테는 믿을 구석이 있지, 바로 김신걸!그들의 말을 들은 아주머니가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정말 경찰에 신고 안 할 거예요? 이게 날강도지 뭐예요?”“아니예요, 어차피 저 사람들은 조만간 스스로 떠날 거예요.”원유희가 별장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주머니는 이해되지 않았다. 정말 스스로 떠날까? 자신이 보기에 고의로 괴롭히는 게 분명한데…….아주머니에게 월급 정산을 해 드린 후, 원유희는 혼자 아파트로 돌아가고 있다. 지하철에 탄 그녀의 마음이 답답하다.‘엄마한테 어떻게 설명하지?’지하철역을 막 나오자마자 원수정에게서 전화가 왔다.“옷 부쳤어?”“아니요…….”“시간이 없어?”“조금 바빠요…….”“너 나한테 숨기는 일 있는 거 아니야? 김신걸이 또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아니예요.”“내가 네 엄마인데, 이런 것도 못 느끼겠니?”“김신걸 그 사람이 아니라…….”원유희가 시선을 내리깔며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이어서 말했다.“장미선이랑 윤설이예요. 그 사람들이 별장을 차지했어요.”“뭐???”원수정의 목소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높아졌다.“그게 무슨 강도 같은 짓이야?”“엄마는 일단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일단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무슨 방법이야? 또 김신걸을 찾으려고? 난 반대다!”“그런 뜻이 아니라…….”원유희는 짜증이 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어쨌든, 엄마는 강구에 잘 계세요. 이쪽 일은 제가 처리할 테니까.”전화를 끊은 후, 원수정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뭐 때문에 자신들 모녀를 괴롭히는 걸까? 뭐 때문에 한사코 붙잡고 놓지 않는
전화를 받은 즉시 호텔 프론트에서 사람을 보냈고, 윤정은 계속 원수정을 위로했다.프론트에서 사람이 도착했을 때, 문이 열려 있고 잠금 체인은 연결되어 있어 확실히 누군가 문을 열러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욕실에 숨어있던 원수정은 안전한 걸 확인하고서야 걸어 나왔고, 직원들은 꼼꼼하게 살펴본 뒤 다른 손님이 방을 잘못 들어오려고 한 것 같다는 엉터리 같은 이유를 들어 사과했다. 통화로 이걸 들은 윤정이 원수정에게 전화를 바꾸라고 했고, 원수정이 전화를 호텔 직원에게 건넸다.윤정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직원의 안색이 나빠지며 전화에다 사과하고 허리를 굽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수정에게 휴대폰을 건넨 직원은 다시 그녀에게 거듭 사과한 후에야 떠났다. 문에 안전 장치를 제대로 한 후, 그녀는 윤정에게 물었다.“아까 그 직원한테 뭐라고 한 거야?”“CCTV를 조사해 보라고 했어.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고 오늘 밤의 사건을 조사하라고. 당신은 내일 호텔을 바꿔. 그 호텔 안전한 것 같지 않아.”“이사…….”원수정은 좀 망설이며 생각하다가 말했다.“좀 번거로울 것 같은데, 오늘 당신이 잘 말했으니까 호텔도 안전에 주의하겠지.”“내가 찾아볼게, 괜찮은 곳이 있으면 그때 바로 옮겨.”“미안, 한밤중에 전화해서. 유희한테는 차마 전화 못하겠더라고, 애가 놀랄까 봐. 그때 당신이 생각났어.”“나한테 전화하는 게 맞아. 유희가 이런 걸 들으면 무서울 거야. 어떤 일이 생기면 바로 나를 찾아.”원수정의 목이 메었다.“다행이야. 당신 아니었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텐데…….”“하지만… 내가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아니, 그만해. 나 이제 괜찮아, 자러 갈게. 머리 아파, 끊어.”윤정의 무거운 목소리에 원수정은 급히 전화를 끊었다.아까의 무서운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누군가가 그녀의 방 문을 열려고 한 건 확실하다. 그저 아까 마작을 같이 치던 친구였을 뿐. 견물생심으로 남의 방 문을 열려고 한 것이고, 큰 일은 아니다.원수정
“바쁘지 않아?”“아직.””간단한 안부를 물은 원수정은 카메라를 뒤집어 방을 향하게 했다.“보여? 전에 살던 방보다 너무 좋아.”“응, 보여.”“나 혼자 이렇게 큰 곳을 쓸 수는 없는데.”“크면 편하지, 뭐.”원수정이 카메라를 다시 돌려 그의 얼굴을 마주봤다.“내가 어떻게 당신한테 감사해야 하지? 그리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내가 여기서 얼마나 살아야 할지 모르고, 심지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른다는 거야…….”“부담 갖지 마. 언제까지든 계속 살 수 있어, 나한테 감사할 필요도 없고. 내가 이러는 것도 다 유희를 위해서야.”윤정의 말에, 원수정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호텔에 대해서만 조금 더 이야기하다가 영상통화를 끝냈다. 어린 여자처럼 줄곧 윤정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일은 해야 하는데, 이렇게 있는 듯 없는 듯한 느낌이 서로의 관계 발전에 더 좋지 않을까?방을 대충 정리한 원수정은 밖에 나가 쇼핑을 하며 옷을 샀다. 호텔에서 상점까지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사모님의 생활에 익숙한 그녀는 걷고 싶지 않아서 택시를 불렀다.이틀째 밖에 나가 놀고 있는 그녀. 매일 심심하고, 소비 외에 다른 즐길거리가 없다. 그래도 전의 호텔은 마작이라고 할 수 있었지…….4시가 좀 넘은 시각. 밖에서 돌아온 원수정이 호텔 로비에 들어섰고, 뒤에 있는 호텔 종업원이 그녀를 도와 차에 있는 크고 작은 쇼핑백을 들고 내렸다.“수정 씨.”원수정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돌려 윤정을 보고 의아해했다.“어떻게 온거지?”“출장 온 김에 잠깐 들렀어.”말을 마친 윤정의 눈길이 호텔 종업원의 손으로 향했다.“쇼핑하러 갔다왔어?”“내 물건도 부쳐줄 수 없다는데, 당연히 가서 새로 사야지.”윤정이 그 말을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물었다.“부쳐줄 수 없다니? 무슨 일이 생긴거야?”“일단 방으로 가. 내가 너희 집 그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해주지.”한숨을 내쉰 원수정이 윤정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유희가 태어났을 때 얼마나 쭈글쭈글했던지, 내가 왜 이렇게 못생긴 녀석을 낳았을까, 싶었다니까? 후에 자랄수록 예뻐졌기에 망정이지.”회상하던 원수정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옆에 있는 윤정도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그런데, 낳긴 했지만, 키울 용기가 없었어. 그래서 우리 오빠네 부부한테 맡기고, 개인적으로 생활비를 보내줬지. 나중에 오빠가 결코 좋은 아버지가 아니란 걸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들이 유희한테 잘해주도록 그저 더 많은 돈을 줄 수밖에.”“당신한테도 사정이 있었잖아.”“나는 늘 당신한테 아이의 존재를 알려주면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을까 자문했어. 아이의 귀엽고 앳된 얼굴을 볼때마다, 사랑해줄 아버지가 없다는 게 안타까웠지. 우리 오빠 때문에 아이가 섭섭해 할 때마다, 정말 너의 친아버지는 부드러운 남자고, 너에게 웃어주고, 사탕도 사주고, 같이 유치원에도 가 줄 거라고 말하고 싶었어…….”윤정은 말이 없었다. 이건 그녀의 탓이 아니다.“과거 일 가지고 고민하지 마. 유희는 앞으로 아직 살 날이 많고, 우리가 계속 그 아이 옆에 있을 거야.”“그 아이가 앞으로 살 날은 김신걸이 다 망쳤어. 그때 오빠네 부부가 사고가 난 후, 유희를 김씨 가문으로 데리고 가서 김영에게 내 조카딸이라고 소개했지. 그 사람은 내 체면을 봐서 아이를 아껴줬는데, 그때 김신걸 눈에 들 줄은 몰랐지.”“그때 유희는 몇 살이었어?”윤정의 얼굴빛이 변한 걸 보고, 원수정은 그가 오해했다는 걸 알았다.“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 유희를 괴롭혔어. 유희가 걔를 무서워하고, 찍소리도 못했지. 후에 유희는 외국으로 도망갔고, 김신걸도 갑자기 실종된 것 같았어. 더 이상 김영에게 돌아오지도 않고 제성에 나타나지도 않아서 유희도 괜찮을거라 생각하고 전화해서 그 애를 불렀는데, 뜻밖에도 김신걸에게 가로막혀서 호텔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김신걸이 당신 때문이라고 하는 걸 들었는데…….”“뭐가 나 때문이야, 헛소리! 내 말 들어봐. 애초에 김영이 나를
바람이 불자 원수정은 호텔 쪽으로 걸어갔고, 윤정은 몸을 풀었다.하늘에 걸려 있는 달, 그리고 온 하늘에 가득한 별이 내일의 화창한 날씨를 말해주는 순간. 그러나 윤정의 마음은 그리 화창하지 않다. 망설여지고, 무겁고, 복잡한 마음…….그는 차마 원수정에게 헤어진 후 오랫동안 바깥 세상으로 나올 수 없었다고, 억지로 나온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미 정이 없어진 전처와 재혼하는 그 괴로움은 딸을 대할 때만 좀 편해질 수 있다. 딸이 없을 때는, 모든 힘과 노력을 사업에만 쏟아부었다.시간은 빨리 흘러갔고, 그리운 마음도 희미해져갔다.다만 마음 속에 있던 사람을 다시 만나면 책임감이 더 강해지고 마음이 더 무거울 뿐이다. 원수정은 모를 것이다. 자신과 그녀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그녀에게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만약 유희가 정말 표원식을 좋아한다면, 윤정도 아버지로서 자연히 그녀 생각을 하게 되겠지. 원수정은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며 샤워하고 있다. 스위트룸에는 윤정의 그림자가 없지만, 그에게 이렇게 큰 담력이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급하지 않아, 한 번이나 두 번이나 똑같지 뭐.’원유희는 거실 바닥에 누워 세 아이들에게 눌려 장난치며 웃고 있다.“그만, 그만해…….”기운이 좋은 어린아이는 아무리 놀아도 피곤하지 않다. 갓 태어났을 때처럼 낮에는 잠도 안 자고 밤에도 힘이 넘친다. 그때 원수정과 아주머니는 모두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다.“엄마 목 마르죠? 제가 물 따라드릴게요!”조한이 일어나서 물을 따르러 갔다.“물 마시고, 계속 같이 놀아요!”“음…….”유담의 말에 원유희는 입꼬리를 두 번 당겼다.“엄마, 다리 아프죠? 안마해 드릴게요!”상우는 옆에서 두 손으로 다리를 얼얼하게 꼬집는다.원유희가 품 속에 애교 부리고 있는 유담이를 안고 장난치고 있을 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엄마, 누가 찾아요! 제가 가져올래요!”유담이 작은 얼굴을 내밀고 일어서서 휴대폰을 가지러 갔다.“고마워, 우리
그녀는 지금 6층에 있으니, 집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아빠 지금 5층이세요? 저 지금 동네 산책 중이예요!”전화를 끊은 원유희가 아이들과 황급히 인사를 하고 나갔다.문이 쾅 닫히고, 조한이 물컵을 손에 든 채 어른처럼 한숨을 내쉬며 묵묵히 물을 마셨다.원유희가 재빠르게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계단 모퉁이에 윤정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을 때, 윤정이 의아해했다.“동네 산책하고 있다며? 왜 위에서 내려왔어?”아버지가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그녀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동네 산책하다가 6층 아이를 만나서 데려다줬거든요. 올라가자마자 아빠한테서 전화가 온 거예요.”윤정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라는 단어가 순식간에 그의 마음을 건드렸을 뿐. 원유희가 잃었던 아이와 그녀의 성하지 못한 몸만 연상되었다.“아빠는 왜 이 시간에 왔어요? 밥은요?”뭔가 들킬까 두려워 원유희는 화제를 도렸다.“여기로 먹을 걸 좀 보냈거든, 지금 거의 다 왔다고 하니까 문 좀 열어봐.”“네.”원유희가 문을 열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누군가가 저녁을 집까지 가져다주었다. 김신걸도 이전에 같은 행동을 했었는데. 부자들은 정말 제멋대로다.윤정은 원유희와 몇 번 식사를 같이 하면서, 딸과 자신이 입맛이 참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안 먹는 것, 좋아하는 것, 못 먹는 것이 다 똑같았고, 이 사실이 자신으로 하여금 그녀를 더 아끼게 한다.“너네 엄마를 보러 갔었어.”윤정의 말에, 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아주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아버지가 어머니를 보러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너의 엄마가 나에게 표원식에 대해 말했어. 아직도 그와 연락하니?”윤정이 관심을 가지며 물었다.“그냥… 저번에 한 번 만났어요. 그냥 애들 때문에 만나는 거고, 나머지는 다 피해요. 저와 그 사람 사이 아무것도 아니예요.”그녀는 윤정의 말 뜻을 알아들었다는 듯 대답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