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다리는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겠지?’“너야말로 눈이 빠지도록 나를 기다리고 있던데,아니야?”이 말을 듣자 원유희는 입술을 깨물기 시작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다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아니 근데, 쟤는 계속 주주총회에 있었으면서 내가 두리번거린 거는 어떻게 알았대?”그녀는 곰곰이 생각할 겨를 도 없이 물어봤다.“괜찮아?”김신걸은 딱히 반갑지 않다는 듯이 물었다.“왜, 날 걱정해주러 온 거야?”원유희의 눈빛이 흔들렸다.“뭐, 필요하지 않다면 본론부터 얘기할게. 그 있잖아……내 신분을 회복시켜줄 수 있어?”“왜?”원유희는 모신걸의 '왜'라는 두 글자에 표정이 굳어졌다.“무슨 뜻이야? 이미 진실도 다 밝혀진 마당에 너희 어머니의 사망은 나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그 일은 나와 우리 엄마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그럼 당연히 우리를 놔주어야 되는 거 아냐?”“상관없다고?”김신걸의 독수리처럼 예리한 눈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고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나타나지 않았다.“당연하지! 너희……김영 그 사람이가 계속 우리 엄마한테 질척거렸고 우리 엄마는 그사람을 받아준 적이 없어. 이 일은 그 사람도 인정했잖아.”원유희는 급히 설명하려 했고 평정심을 잃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당신에게 이젠 나를 괴롭힐 명분 따위는 없어!”“근데 상대는 확실히 너희 어머니가 맞잖아?”김신걸의 목소리는 더없이 차가웠고 무거웠다.“이 세상의 일들은 네가 없다고 해서 사라지는 거 아니야.”“이게 어떻게 우리 엄마 탓일 수가 있어? 너 이렇게 억지를 부리면 안 돼!”원유희는 급해 죽을 것 같았다. ‘간신히 누명을 씻을 수 있는 희망을 보았는데 결국엔 아무 소용도 없다니?’“네 어머니는 우리 엄마가 죽인 것도 아니고 나와는 더 상관없어. 법적으론 물론이고 도덕적으로도 우리가 비난 받아야 할 이유는 없어!”“확실해?”김신걸은 상반신을 앞으로 기울이며 그녀의 작은 얼굴을 홱- 잡았다.“너희 어머니만 없으면
윤정이 원유희에게 집을 사주자마자 김신걸은 그 일을 발견했다. 원유희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 싶었는데 김신걸의 집도 이곳에 있었으니까 가능했다.원유희는 귀신을 본 것처럼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못 본 척하고 소리 없이 떠나고 싶었는데 옆 베란다에서 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원유희는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김신걸은 의자에 기대어 앉았는데, 손에 있던 컵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그는 몸이 완전히 풀린 상태로 있었고 머리는 처지고 눈이 감긴 채 얼굴은 창백했다.‘기절한 거 아니야?’원유희는 당연히 못 본 척하고 지날 수 없었다.그녀가 아무리 김신걸을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해도, 그가 아이들의 친아버지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하지만 바로 부를 수도 없었고 윤설에게 전화하는 건 더 말이 되지 않았다. 윤설은 그녀가 김신걸이 여기 있다는 것을 왜 알았는지 의심할 것이다!원유희가 번호를 알고 외부 유출이 걱정되지 않는 사람은 고선덕뿐이었기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답답해하던 차에 책상 위에 놓인 검은색 핸드폰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김신걸의 핸드폰이었다.원유희는 김신걸에게 전화를 걸었고, 쪼그리고 앉아 가드레일 뒤에 몸을 가리고 두 눈으로 옆의 움직임을 지켜봤다.핸드폰은 책상 위에서 진동하고 있었지만,김신걸을 깨우지 못했다.그리고 계속 진동하다가 미끄러운 테이블 때문에 폰은 땅에 툭 떨어졌다.“…….”원유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핸드폰이 박살 나면 내 책임인가? 짜증 나 죽겠네!”원유희는 가드레일을 사이에 두고 몸을 일으켰다.“김신걸! 김신걸!”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죽는 걸 지켜볼 수도 없고.’하지만 원유희는 구급차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김신걸처럼 성격이 괴벽한 사람이 구급차를 거절하면 어떡하는가? 그를 잘못 건드렸다가 재수 없게 되는 사람은 또 분명히 그녀가 될 것이다.원유희는 자신과 1미터 떨어진 베란다 가드레일을 봤다. 하지만 그녀는 고소공포증이 있었
“안 가고 뭐해?”원유희는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 집 문으로 갈 수 있어?”“안 돼.”화가 난 원유희는 그를 노려보았다.방금처럼 가기엔 아까 떨어질 뻔한 트라우마가 그대로 있었기에 불가능했다.“내가 누구 때문에 왔는데? 너희 집 문을 좀 빌리면 어때서? 뭐가 덧나냐고?”원유희는 정말로 방금처럼 가고 싶지 않았다.“나 방금 너를 구했어.”“…….”원유희는 화가 나서 말문이 막혔다.“나 밥 안 먹었어.”눈을 감으며 얘기하는 김신걸은 유독 힘이 없어 보였다.원유희는 미간을 찌푸렸다.‘밥해달라는 거야 뭐야?’원유희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김신걸은 자신을 일 시키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방금과 같은 위험한 일을 다시 하고 싶지 않으면 그에게 밥을 해줘야 안전하게 문으로 떠날 수 있다.‘……그래, 집에 뭐 있어? 내가 해줄게.”원유희는 부엌에서 김신걸에게 밥을 해주기 시작했다. 냉장고엔 아무런 채소도 없어 사람을 시켜 신선한 음식 재료를 가져왔다. ‘신선한 음식 재료는 배달시킬 수 있으면서 왜 음식은 배달시키지 않냐고. 분명히 많은 사람이 제성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이 남자의 시중을 들고 싶어 할 텐데.’하지만 원유희는 문을 빌려준 값이라고 생각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하지만 그녀는 김신걸이 왜 이곳에 집을 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집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는데 그녀의 집의 주택구조와 똑같았다. 그저 인테리어 스타일이 완전 달랐을 뿐이다. 이쪽의 인테리어 스타일은 아주 아늑해 보였고 딱봐도 김신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오히려……여자들이 좋아할 법한 스타일이었다.반시간 후, 세 가지 요리와 국을 만들어 식탁에 올렸다.김신걸이 별 얘기 없이 먹는 것을 보자 원유희가 물었다.“너 위병 때문이야?”김신걸은 말이 없었다.“괜찮은 것 같으니까 먼저 일어날게.”원유희는 더 이상 이곳에서 망신을 자처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좋은 점도 없었다.“내가 언제 널
원유희는 정신을 차리고 급히 달려가 그가 떠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왜 나보고 여기에 있으라는 건데? 난 돌아갈 거야.”“나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니 건드리지 마.”김신걸은 나른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지만, 그 눈빛 속에 숨긴 위협을 무시할 수 없었다.“내가 여기 있으면 기분이 더 나쁠 것 같지 않아?”원유희는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갔다.‘그렇게 자기를 싫어하고, 눈꼴 사납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라고 나와 멀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김신걸 그녀를 곁눈질하다가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잡고 방으로 밀어 넣었다.“너…”원유희는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김신걸은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고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그녀는 가고 싶었지만, 어떻게 감히 떠날 수 있겠는가?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의 방에 있는 것은 아니다.안에서 들려오는 샤워 소리에 원유희는 마음이 편치 않아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밖에 나가자 그녀는 마치 걸어다니면 떠날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처럼 거실을 계속 돌아다녔다. 그리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사실 그녀는 반드시 돌아가서 해결할 일은 없었다. 그저 김신걸과 같은 공간에 있기 싫었을 뿐이다. 게다가, 지금의 김신길은 윤설의 약혼자인데, 그사이에 이렇게 끼어있는 건 경우에 어긋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혹여나 다른 사람들이 보면 꼭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물론 김신걸의 목적이 바로 이런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는 그의 꾀에 넘어갈 순 없었다!그녀는 거실에 있었고, 방 안의 김신걸은 30분이 넘더라도 나오지 않았다.‘김신걸이 어떻게 이렇게 오래 씻을 수 있어?’원유희는 참지 못하고 일어나 방으로 갔다.문을 열고, 먼저 머리를 쑥 집어넣어 들었지만,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심지어 샤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원유희는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자는 김신걸을 보고 기가 막혔다.‘너는 내가 떠날 수 없다고 굳게 믿는구나!’원유희는 김신
원유희는 긴장한 목소리로 김신걸을 불렀다.“이봐, 약 먹어, 송욱이 위약을 가져왔어.”김신걸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아마도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다.원유희는 김신걸의 조각같은 얼굴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분명히 잘생긴 얼굴인데, 왜 계속 얼음처럼 차갑게 굴지?’하지만 잠든 사자라고 해도 사자는 여전히 사자였고 김신걸은 여전히 위험했다.원유희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따끈한 독약을 가져왔어.”그러자 김신걸은 눈을 떴다.“…….”원유희의 표정은 삽시에 굳어졌고 너무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가 정신없이 일어나 침대 머리맡을 가리켰다.“송욱이 위약을 가져왔어.”“독약이 아니라?”김신걸은 담담하게 얘기했다.원유희는 코를 만지작거리며 얌전히 한쪽에 서 있었다.“아니……장난이었어.”김신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앉아 머리맡에 있던 약을 들어 물도 마시지 않고 그대로 삼켰다.원유희는 자신의 건방진 말이 김신걸을 화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딱히 화난 것 같지도 않았다.‘놀라 죽을 뻔했네. 어떻게 제대로 얘기할 때는 안 일어나다가 독약이라고 얘기하자마자 깨날 수가 있어?’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저기, 나 지금 가봐도 돼?”김신걸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있었고 깊고 검은 눈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이리 와.”원유희는 그녀와 침대 사이의 거리를 한번 다시 확인하고 긴장을 억누르며 한 걸음 더 나아갔다.“왜 그래… 아!”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그에게 끌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 김신걸은 그녀의 턱을 잡았고 그녀는 갈고리에 걸린 물고기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김신걸은 시선을 그녀의 놀란 작은 얼굴에 돌렸다.“여기서 자고 가라고. 몇번을 더 얘기해야 해?”원유희는 막 말을 하려는데, 몸이 한쪽으로 내동댕이쳐졌다.“아…….”‘왜 여기서 자야 하는데? 그리고 왜 이 사람이랑 같이 자야 하는데?’원유희는 화가 나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저항했고, 누워서 눈을 감은 김신걸을 본 후, 용기가 싹 사라졌다.그녀는 입을
그러다가 평소에 세쌍둥이를 안고 자는 버릇이 생각났다.‘김신걸을 세쌍둥이로 착각하고 안았을 거야.’그녀는 자신의 발이 김신걸의 긴 다리우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바로 발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아직도 자는 김신걸을 슬쩍 보고, 천천히 김신걸의 품에서 나왔다. 침대에서 내려오느라 그녀는 땀이 송골송골 났고 발이 땅에 닿자마자 재빨리 도망쳤다. 문이 살짝 닫히는 소리에 김신걸의 깊은 검은 눈이 떠졌다원유희는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와서 도착한 후 그제야 숨을 제대로 쉬었다. 마치 도둑질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손에 넣자마자 허둥지둥 아파트를 빠져나갔고 차를 타고 나서야 핸드폰을 볼 겨를이 생겼다.그리고 윤설의 전화가 여러 통이나 온 것을 발견했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얘는 나한테 왜 전화한 거지? 아 맞다, 김신걸이가 밤새 돌아가지 않았으니, 윤설은 분명 여기저기서 사람을 찾았을 거야.’그때 김신걸은 핸드폰을 베란다에 있는 테이블에 놓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원유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다행히도 윤설은 그 아파트에 찾아가지 않았다. 하마터면 정말로 불륜 현장을 들킬뻔했다.’시간을 보니 세 아이는 아직 학교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같이 아침을 먹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원유희는 택시에 앉아서 힘없이 창문에 기댔다.‘정말 너무나도 재수 없어. 어떻게 집을 샀는데 김신걸의 이웃이 되어버릴 수 있지? 이 집 정말로 받아도 되는 걸까? 근데 사자마자 환불하면 좀 그렇겠지?’원유희는 센스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고 친아버지를 상대하더라도 눈치 있게 행동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 안 들어갈 거니까 핑계 대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택시가 입구에 도착하자 원유희는 차에서 내렸다.단지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이 살던 건물로 뛰어갔다. 그러다 막 아래층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얼굴을 돌리자 바로 옆에 낯선 차가 보였고 차에서 내린 사람은 바로 윤설임을 확인했다.그녀는 원유희가 도착하기도 전에
원유희의 낯빛이 안 좋아졌다.“아무런 근거도 없이 허위사실로 사람을 모함하려고? 이러고도 넌 네가 떳떳할거라고 생각해?”“내가 널 모함한다고? 그럼 어디 얘기해봐, 너 밤새 집에 안 돌아오고 어디서 뭐했는데?”윤설이 민혜령의 집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를 둘째치고, 설령 모른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이 그곳에 새 집을 샀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필경 그 집은 아버지가 사준 것이고 그녀가 알면 그또한 골치 아픈 일이었다.원유희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윤설의 가방에서 핸드폰이 울렸고,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이름을 보고 한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그녀의 말이 어렴풋이 들려왔다.“신걸씨, 어디 갔었어? 전화도 안 되고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어. 취했다고? 그럼 나한테 전화해서 클럽에 가서 돌봐달라고 해야지, 혼자 취하면 얼마나 괴로운데…….”원유희는 윤설의 부드럽고 걱정스러운 말투를 들으며 그녀의 연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윤설이 전화를 한 틈을 타서 자기 집으로 달려가지 않았고 복도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원유희는 윤설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집까지 찾아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윤설을 얼른 돌려보내려고했다.윤설은 전화를 마치고 원유희에게 다가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말해, 너 어젯밤 어디에 있었어?”“왜? 김신걸이 어디로 가는지 말 안 했어?”“술에 취해 클럽에 있다고 했어.”“그러면 된 거 아냐? 내가 어디에 가든지 너랑 상관없잖아.”원유희는 미친개처럼 짓는 윤설이 어이없었고 한편 속으론 김신걸의 말을 듣고 놀랐다.‘클럽 좋아하고 자빠졌네…….’“그가 있었던 클럽은 내가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 김신걸이 아는 것은 둘째치고 아무것도 캐낼 수 없을 거야. 프라이버시를 엄청나게 잘 지켜주는 곳일 건데.”윤설은 바보가 아닌 이상 김신걸의 뒤를 캘 순 없었다.“그건 너희 둘 사이의 일이고 나랑은 상관없잖아. 내가 어디 가든지 너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어.”“너희
원유희는 얼굴이 싸늘해졌지만 돌아서서 세쌍둥이를 볼 땐 빙그레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유치원 가니? 스쿨버스 왔지? 얼른 가.”세쌍둥이는 짧은 다리로 힘들고 애타게 계단을 내려갔다.계단을 다 내려오자 홧김에 얼굴을 젖히고 윤설을 노려보았다“누구에여? 왜 언니를 때려여?”“나 이 사람 알아여. 그 솜치는 사람이야.”유담이가 얘기했다.윤설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이런 얄미운 애를 봤나? 감히 피아노 치는 고귀한 예술을 솜치기라고 해?’“여긴 아줌마를 환영하지 않아. 꺼져야 하는 사람은 아줌마야.”상우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윤설이 악독한 얘기를 뱉기 전에 원유희는 이모에게 말했다.“어서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요. 저는 괜찮아요.”“네…….”이모는 아이를 돌봐야 하기에 세 아이를 데리고 갔다.성질이 가장 급한 조한이는 억지로 끌려가면서도 이쪽을 향해 험악하게 얘기했다.“거기 솜치는 사람! 나 너를 기억했숴! 감히 우리 누나를 괴롭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원유희는 아이들이 끌려가는 것을 보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내연녀의 특기가 바로 사람을 현혹하는 거지. 저 나이 때 아직 세상을 모르는 애들은 바보나 다름없고. 어떻게 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원유희는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윤설, 너 정말 미친개구나, 사람만 보면 물어. 저런 아기들을 어떻게 욕할 수 있어?”“왜, 안타까워? 하긴, 넌 평생 아이를 못 낳으니까 다른 사람의 아이를 부러워하겠지. 물론 나와 신걸씨의 아이도 포함해서.”원유희는 그녀를 바라보며 옷깃을 힘껏 잡아당기더니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내 몸에 흔적이 있는지 보려고 이러는 거 아냐? 그래 보여주면 되잖아.”수상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지만 원유희의 눈처럼 하얀 피부가 윤설의 눈을 아프게 했다.그리곤 윤설의 마음속에서 질투가 생기기 시작했다.‘김신걸이 미련을 갖는 것이 바로 이런 몸일까?’원유희는 손을 떼고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