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환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물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당황해하는 것이오?”조 대인은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벽령촌(碧嶺村)에서 잇달아 여섯 명이 죽었습니다. 말로는 들짐승에게 살해당했다고 하는데, 시체까지 모조리 뜯어먹었다고 합니다! 제가 사람을 한 무리 보냈는데 반만 살아서 돌아왔습니다!”“관건은 그들도 어떤 짐승인지 똑똑히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관은 도저히 방법이 없습니다. 마침 왕야께서 계양에 계시니,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이런 일이라면, 부진환은 당연히 거절할 도리가 없다.낙청연이 물었다: “벽령촌은 어디에 있소? 들짐승이 계양까지 들어오지 않았소?”조 대인이 대답했다: “벽령촌은 산에 있습니다. 계양과 거리가 좀 있습니다.”낙청연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이었다.이런 일을 거절한 이유가 없는 부진환은 바로 말했다: “나가서 기다리시오. 옷을 갈아입고 나가겠소.”“예!”조 대인이 방을 나간 뒤, 낙청연도 방에서 나왔다.벽령촌에서 이때 일이 생겼다는 건, 분명히 고의로 부진환을 유인하는 것이다.낙청연은 문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더니, 부진환이 깔끔한 현의(玄衣)를 입고 나타났다. 온몸은 차갑고 도도한 기운이 철철 넘쳤으며, 평소보다 좀 더 말쑥하고 멋스러웠다.낙청연은 바로 말을 꺼냈다: “저는 따라가지 않겠습니다.”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따로 행동해야 하니, 당신도 스스로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부진환은 말을 하면서, 어떤 물건을 그녀에게 건넸다; “해결할 수 없는 위험이 들이닥치면, 이것을 보내라.”낙청연은 건네받았다.그것은 신호 불꽃이었다.낙청연도 부진환에게 두 가지 물건을 건넸다: “이 부적은 몸에 꼭 지니고 다니셔야 합니다. 절대 잃어버리지 마세요.”“그리고 이것은, 해독환입니다. 보통 독은 모두 해독할 수 있습니다.”부진환은 살짝 감동되었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말했다: “내가 벽령촌에서 죽을까 봐 두려운 것이냐?”“걱정하지 말거라, 죽지 않는다.
”부설 낭자가 말한 이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소, 만약 어느 날 당신이 왕야에게 더 이상 가치가 없다면, 왕야가 당신께 돈을 주겠소?’“나의 말에 일리가 있지 않소?’낙청연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당신이 말한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나도 나 자신을 위해 계획을 좀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그런데 범가도 풍도 상회에 가입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설천풍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저는 범가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만두겠습니다!” 낙청연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이 말을 들은 설천풍은 안색이 확 달라지더니, 다급히 낙청연을 뒤따라가며 물었다: “왕비는 낙랑랑의 일 때문에 범가에 의견이 있는 것이요?”지금 계양 전체가 낙청연이 낙랑랑을 뒷받침해주러 왔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범가를 한바탕 혼내고, 상금문을 때리고, 류행아까지 죽였다.이 이유 말고 또 다른 이유가 있겠어?“그게 아니면요?”설천풍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사실…… 만약 낙랑랑의 일 때문이라면, 더욱 더 우리 풍도 상회에 가입해야 하오.”이 말은 낙청연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흥미진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설천풍은 웃으며 말했다: “부설 낭자의 신분과 지위, 그리고 본전으로 풍도 상회에 가입하면, 범가보다 더 빨리 돈을 벌 것이오.”“나 또한 부설 낭자를 도와 신속하게 세력을 확장할 수 있소. 이렇게 되면, 범가를 밀어낼 수 있지 않겠소?”“부설 낭자는 심지어 범가의 세력까지 먹어 치울 수 있소.”이 말을 들은 낙청연의 눈동자는 순간 번쩍이더니 말했다: “이건 꽤 좋은 방법이군요!”“그럼, 당신들의 풍도 상회를 구경시켜 주십시오.”설천풍은 매우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좋소.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으니, 식사하시고 부설 낭자에게 풍도 상회를 구경시켜 주겠소.”일은 낙청연이 생각했던 것보다 잘 풀렸다.점심을 먹을 때, 설천풍은 잠깐 자리를 비웠다. 말로는 직접 주방에 가서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해주겠다고 했다.하지
낙청연의 청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낙청연은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설천풍, 어디라고 감히 왕비를 데리고 온 것이요? 이건 우리 상회내부 회의인데, 당신 죽고 싶소?”진훤의도 냉랭하게 말했다: “그러니까요, 우리 상회의 기밀을 어찌 아무 사람이나 다 듣게 할 수 있소? 설천풍, 설마 이 정도 규칙도 모르는 건 아니지요?”어떤 장로도 서늘한 표정으로 질책했다: “천풍, 이게 뭐 하는 짓이냐?”“외부인을 데리고 침입해서 상회의 기밀을 누설하면, 곤장 백 대의 벌을 받고, 상회에서 쫓아낸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지? 너 지금 우리 설가를 해 하는 것이다!”이 말을 한 사람이 바로 설천풍의 아버지인 것 같았다.하지만 이 어투는 책망으로 가득했다. 전혀 친아버지 같지 않았다.설천풍도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잠깐 망설이더니 말했다: “부설 낭자도 장사를 사고 싶어 합니다. 장사를 사면 풍도 상회의 사람이니, 외부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연히 기밀 누설도 아닙니다!’이 말을 듣던 낙청연은 깨달았다. 여기에 걸린 거구나!“맞습니다. 내가 장사를 사고, 풍도 상회에 가입하면 외부인이 아니지요?’상금문은 냉랭하게 웃더니 말했다: “당신이 사고 싶다면 다요? 나는 아직 승낙하지 않았소! 이 장사는 나와 진훤의 사이의 일이요. 당신은 뺏어갈 자격이 없소.”낙청연은 전혀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녀는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이 가지는 거라고 하지 않았소?”“내가 직접 들었는데.”상금문의 화난 표정으로 이를 악물더니 말했다: “그럼 나는 4만 냥을 내겠소!”낙청연은 망설이었다.이건 낮은 가격이 아니다.이때, 상금문이 비웃으며 말했다: “이만한 능력도 없는데, 큰 소리 치기는.”“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설천풍을 끌고 가서 곤장 백 대를 쳐야 하는 거 아니요?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누구든지 외부인을 끌어들이면 난장판이 되지 않겠소?’진훤의도 맞장구를
그리고 이 대루 안 곳곳이 뭐 하는 곳인지도 알아냈지만, 그녀에게 보여주는 곳은 분명 아무 문제가 없는 곳들이기 때문에 낙청연도 더 깊게 조사하지 않았다.새로 산 점포의 상황을 알아본다는 이유로 낙청연은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풍도 상회로 왔다.자기 장사에 몹시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다.그리고 이날, 상금문과 진훤의 등 사람들이 또 왔다.설마 또 어떤 중요한 일을 의논하는 것인가?이번에 낙청연은 정정당당하게 회의에 참석했다.하지만 상 앞에 앉자, 다들 표정이 괴이해졌다.설천풍은 기침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부설 낭자, 오늘은 어떤 일을 의논하는 것이 아니요. 당신과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이니, 밖에서 기다리시오.”이 말을 들은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상금문이 냉소하더니 말했다: “이왕 왔으니, 앉소.”“어차피 앉아있다고 해서, 배당금을 줄 것도 아닌데 뭐.”배당금?이때, 그들은 시작했다.두 개의 큰 상자를 상 위에 올리더니, 한 사람이 장부를 들고, 돈을 나줘 줬다.“설문주(薛聞洲), 20만 냥.”“설천풍. 13만 냥.”“당신들 돈은 함께 나눠주겠소.”그리하여 한 뭉치의 은표를 헤아려 설문주에게 건넸다. 설문주는 두 손에 다 쥐지도 못할 정도였다.낙청연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대체 무슨 장사를 하길래, 이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가?상금문과 진훤의 마저 17만 냥을 분배받았다.이건 단지 그녀들 개인 몫이었다. 그녀들의 아버지는 더욱 많이 분배받았다.매 가정은 최소 30만 냥을 분배받았다.’부정할 수 없는 건, 낙청연은 두 눈을 뗄 수 없었다.상금문은 은표를 작은 상자에 넣더니,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낙청연을 한 번 쳐다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돈 상자를 안고 가버렸다.모두 돈을 갖고 잇달아 가버렸다.오직 설천풍만이 낙청연에게 설명했다: “내년이면 당신도 이렇게 많은 배당금을 받을 수 있소.”“정말입니까?” 낙청연은 의아했다.“정말이요. 하지만 자기 돈을 투자해야 하오.” 설천풍은 진지하
낙청연은 곧 발소리를 죽이고 제자리로 돌아가, 책상에 엎드려 피곤해서 잠든 척했다.잠깐 후, 발소리가 유유히 들려왔다.점점 더 가까워졌다.계단을 올라가는 소리 같았다.방금 그 찰칵 소리는, 밑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데, 아마 지하에 또 한 층이 있는 것 같았다.그 사람의 발소리가 점점 그들에게 가까워졌다.낙청연은 누군가 그녀를 쳐다보는 것을 느꼈고, 뒤이어 그녀의 손에 눌려 있던 장부를 가져가더니, 곧 다시 그녀의 손에 갖다 놓고, 곁을 떠나는 발소리를 들었다.그런데 한참 기다렸지만, 더 이상 동정이 없었다.낙청연은 조심스럽게 살짝 눈을 가느다랗게 떠보니, 전방에 확실히 사람이 없었다.그 사람은 이미 나간 것 같았다.낙청연이 막 일어나려고 하는데, 바닥에 갑자기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낙청연은 하마터면 심장이 멎을 뻔했다.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 그녀의 그림자 위에, 머리 그림자가 비쳐 움직였다.순간, 낙청연은 머리털이 곤두섰다.그 사람은, 바로 그녀 뒤에 있었다!낙청연은 급하게 눈을 감고, 굳어버린 몸을 최대한 풀어주고, 숨도 최대한 고르고, 눈동자도 감히 굴리지 않았다.움직이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 사람의 무공은 심상치 않다. 게다가 온몸에 음랭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 사람은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니다.낙청연은 풍도 상회에서 아직 이 사람을 만난 적 없다.등 뒤의 사람은 오랫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낙청연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한참 뒤 어떤 손이 그녀에게 뻗어오더니, 은은한 이상한 냄새가 엄습해왔다. 낙청연은 급히 숨을 죽였다.그 사람은 그 향을 낙청연에게 맡게 했다. 목적은 그녀를 깊게 잠들게 하기 위해서였다.하지만 낙청연은 숨을 죽였다.곧 그 사람은 나갔다. 발소리를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방문이 닫히고, 한참 뒤에야 낙청연은 눈을 떴다.그 사람은 검은색 도포를 걸쳤고, 몸집이 아주 작아,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발걸음이 가벼운 걸로 봐서 여자인 것 같았다.한 참 보고 있는데, 그
낙청연은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다. 사자의 눈알이 헐거웠다.낙청연이 그것을 누르려는데 사자의 목에 목걸이가 걸려있는 게 보였다. 목걸이에 그려진 도안을 확인한 순간 낙청연은 숨을 쉴 수 없었다.일월쇄의 문양!여국 황족의 물건이었다!조금 전 검은 망토를 두른 사람이 줄곧 엄씨 가문에 숨어있던 고수인 걸까?여국 사람이라니!황족의 물건을 알고 있다니 여국 황실 사람이 아니라면 제사장 일족일 것이다!그녀는 이 세대의 대제사장으로 제사상 일족의 모든 사람을 알고 있었다.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제사장 일족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낙청연은 조금 흥분되기도, 걱정되기도 했다. 그녀는 몸이 달라져서 예전처럼 무공이 강하지 않았다.다시 마주쳤을 때는 적일지, 아군일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상대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낙청연은 곧바로 일월쇄를 열었고 문이 서서히 열렸다.눈알을 눌러 함정을 발동시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이곳에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일월쇄로 함정을 만들어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니, 이렇게 주도면밀한 걸 보면 이 밀실에 풍도 상회의 진짜 비밀이 있을 것이다.안으로 들어가자 음산한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낙청연은 향안 위에 놓인 촛대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촛대는 뱀의 몸을 가진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촛불에서는 그윽한 푸른빛이 보였다.두 개의 촛대는 머리카락으로 엮인 가느다란 끈으로 이어져 있었다.촛대 아래는 각각 두 장의 선혈로 쓰인 이름과 사주팔자가 적혀 있었다.사주팔자 위에 적힌 이름을 보는 순간 낙청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하나는 진휜의의 사주팔자였고 다른 하나는 낙랑랑의 사주팔자였다.그들이 낙랑랑의 운명과 진훤의의 운명을 바꿔치기한 것이다!진훤의의 불빛은 밝게 빛나고 있었고 낙랑랑의 불빛은 암담했다.어쩐지! 예전에 점 쳐봤을 때 낙랑랑은 분명 평안한 일생을 보낼 운명이었다. 엄청나게 부유하거나 고귀하게 살 팔자는 아니지만 순조롭게 살 운명으로 대부분 사람보다
낙청연은 미간이 떨렸다. 주변을 둘러봤으나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천천히 설천풍이 앉아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다가가 보니 설천풍이 바닥에 쓰려져있었다.미간을 잔뜩 좁힌 낙청연이 허리를 숙여 설천풍을 흔들어 보았으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주위를 둘러봐도 전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지 않았다.결국 낙청연은 설천풍을 일으켰고 자신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잠을 잤다.-날이 밝았다.상회 사람들이 하나둘 도착했고 낙청연과 설천풍을 흔들어 깨웠다.두 사람은 피곤한 얼굴로 잠에서 깨어났다.“너무 피곤하군요. 장부를 전부 조사하지도 못했는데 잠이 들었습니다.”낙청연은 계속해 장부를 보기 시작했다.설천풍은 버티기 힘들었지만 낙청연의 곁을 지켰다.낙청연은 반나절 동안 그곳에 있었고 아무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검은 망토를 두른 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낙청연은 결국 풍도 상회를 떠났다.객잔으로 돌아온 낙청연은 지초에게 물었다.“왕야 쪽에서 소식이 있더냐?”지초는 차와 음식을 내놓으며 말했다.“왕야께서 떠나신 지 고작 이틀인데 벌써 왕야가 그리우신 겁니까?”“소서가 사람을 시켜 비둘기로 서신을 전해왔습니다.”지초는 낙청연에게 그 종이를 건네주었다.그것을 펼쳐 보니 이제 막 벽령촌(碧嶺村)에 도착해 아직 야수의 종적을 발견하지는 못했으나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쓰여 있었다.“비둘기는 아직 여기에 있습니다. 무언가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비둘기에게 서신을 묶어 왕야에게 보내시지요.”지초는 창가에서 새장을 들고 왔다.낙청연은 상황을 알리기 위해 간단히 몇 마디 적었다.어젯밤에 발견한 일에 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 일은 기밀이었기 때문에 만나서 직접 부진환에게 얘기할 심산이었다.비둘기를 내보내자 밖에서 갑자기 호위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뉘시오?”“왕비 마마를 뵙고 싶습니다. 제발 왕비 마마를 만날 수 있게 해주십시오!”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살짝 당황한 낙청연은 방문을 열어 아래층으로 향했다.“무슨 일이냐?
상대는 뺨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고 어지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더니 화를 내며 낙청연을 손가락질했다.“이, 이, 이!”그러나 낙청연을 본 순간, 어멈은 두려운 얼굴로 다급히 몸을 뒤로 숨겼다.“왕... 왕비 마마...”낙청연은 화가 난 얼굴이었다.“내가 왕비인 줄 알면서 랑랑 언니를 이렇게 하대하는 것이냐? 간덩이가 아주 제대로 부었네.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구나!”낙청연은 씩씩거리면서 옆에 놓인 빗자루를 손에 들었다. 그녀는 빗자루의 막대기 부분을 뽑더니 그것을 들고 사람들을 때렸다.그렇게 마당 안에는 앓는 소리와 우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낙랑랑이 낙청연에게 다가가 그녀를 말렸다.“그만 때리거라. 더 때리다가는 죽겠다.”낙청연은 그제야 멈췄다.얼굴이 피범벅이 된 어멈들은 화가 난 얼굴로 문가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거지 새끼, 네가 일러바친 것이구나! 두고 보자꾸나!”어멈들은 비틀거리면서 부랴부랴 도망쳤다.낙랑랑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이를 불러들였다.“소해(小奚)야, 네가 왕비 마마를 찾아간 것이냐?”소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려운 얼굴로 말했다.“랑랑 언니께서는 제게 무척 다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그들이 언니를 괴롭히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낙랑랑은 소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고개를 돌려 낙청연에게 말했다.“청연아, 저자들은 소해를 절대 봐주지 않을 것이다. 날 도와 이 아이를 데리고 계양을 떠날 수 있겠느냐?”“잡일을 시키는 대신 밥만 잘 챙겨주면 된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해 얼굴에 드리운 붉은빛을 본 낙청연은 소해가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어쩌면 그녀가 이 일을 일러바쳐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렇다면 당연히 구해줘야 했다.“문제없습니다.”“소해야, 넌 먼저 객잔으로 돌아가 지초를 찾거라. 그 아이가 널 돌봐줄 것이다.”소해는 고개를 끄덕인 뒤 곧장 자리를 떴다.낙청연은 낙랑랑의 손을 잡았다. 살갗이 벗겨진 손을 보자 낙청연은 마음이 아팠다.“랑랑 언니,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