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천초는 안타까운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두 사람은 정말 악연이네요.”—부진환은 빠른 걸음으로 마당을 나섰고 소유가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왕야.”“류씨 저택으로 간다.”부진환은 대문을 나선 뒤 말에 올라타 류씨 저택으로 향했다.류씨 집안의 연회에 참석했던 빈객들은 잠시 전부 옥에 갇혔다. 그들 모두 류만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었기에 류만이 구제금에 쓰일 은을 몰래 숨긴 일과 연관이 있는지 조사해야 했다.하지만 한 명이 저택에 남아있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허 호군이었다.“날 왜 남기는 것이오! 이 일은 나랑 아무 상관이 없소! 믿지 못하겠다면 조사해 보시오! 난 그저 손님으로 왔을 뿐, 류만이 한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소!”허 호군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을 감시하는 호위에게 빌었다.바로 그때, 부진환이 온몸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걸어왔고 그 위엄에 차마 고개를 들어 직시할 수 없었다.허 호군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화려한 옷과 검은색 신발이 자신의 앞에 도착한 것을 보았다.곧이어 싸늘한 목소리가 그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어느 손으로 그녀를 만졌느냐?”허 호군은 몸을 떨면서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무… 무슨 말씀이십니까?”부진환은 호위의 허리춤에서 천천히 장검을 빼 들었다. 위엄있는 그의 얼굴에는 그 어떤 표정도 없었고 다만 끝없는 한기가 감돌 뿐이었다. 허 호군은 등허리가 서늘했다.“이 손이겠구나.”날카로운 칼날이 허 호군의 오른손에 닿았다.“아니, 아닙니다…”겁에 질린 허 호군은 안색이 창백해졌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러나 그가 설명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칼날이 내려왔다.“아—”하늘을 찢을 듯한 처참한 비명과 함께 허 호군은 피가 줄줄 흐르는 손목을 쥐고 바닥을 나뒹굴었다.비명이 끊이질 않았다.마당에 있던 모든 계집종과 하인들은 그 모습에 덜덜 떨었고 류 부인 또한 몸을 떨고 있었다.“어라? 오른손이 아니었느냐?”부진환의 차가운 목
그 말에 마당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류만도 놀란 얼굴로 말했다.“역시 섭정왕답군. 자기 여인을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려 하다니, 참 대단하군그래!”뒷짐을 지고 있던 부진환은 주먹을 움켜쥐었다.겉으로는 태연한 척, 전혀 놀라지 않은 척했다.그날, 류씨 저택의 비명에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었다.섭정왕이 구제금을 횡령한 사건을 해결했다는 소식이 수도 전체에 퍼졌고, 섭정왕이 한 무희를 위해 류씨 저택에서 한 일 또한 수도에 파다하게 퍼졌다.그리고 섭정왕이 그 무희를 자기 여인이라 칭했다는 소문 또한 퍼지게 됐다.—낙청연은 침상 위에 사흘 동안 누워있었다. 가끔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의식이 불분명해 완전히 깨어나진 못했다.그녀가 아는 것이라고는 누군가 밤새 그녀의 침상 옆에서 그녀를 지키면서 약을 먹였다는 것뿐이었다.정신을 차려보니 역시나,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송천초였다.“깨어났군요!”송천초는 그녀가 깨어난 걸 보고는 흥분해 말했다.송천초는 얼른 그녀를 부축해 침상에 기대게 했고 혹시나 뒷머리의 상처를 건드리게 될까 조심스레 베개를 그녀의 등 뒤에 놓아줬다. “이번에는 심하게 다쳤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병이 남게는 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송천초는 약 그릇을 들고 오며 말했다.“수고했다.”낙청연은 말을 마친 뒤 약을 마셨다.“저는 겨우 처방을 내린 것이라 힘든 일은 없었습니다. 힘든 사람은…”송천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가에 누군가 와 있었다.동시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때마침 왔나 보군. 부설 낭자가 깨어나다니.”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낙월영이었다.“그렇지 않소? 송 낭자. 먼저 나가 보시오. 부설 낭자랑 할 얘기가 있소.”낙월영은 자신이 왕부의 안주인인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송천초에게 분부했다.송천초는 불쾌한 얼굴로 주저하며 낙청연을 바라보았고 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송천초가 당부했다.“부설 낭자는 이제 막 깨어났으니 충분히 휴식해야 합니다.”말을 마친 뒤 그녀는
문밖에 선 부진환 역시 그 대화를 듣고서는 참지 못하고 미간을 구겼다.그가 방 안에 들어서자 낙월영은 살짝 놀라며 얼른 몸을 일으켰다.“왕야.”부진환은 덤덤한 얼굴로 침상 위에 누운 사람을 바라보더니 낙월영에게 말했다.“부설 낭자는 상처를 입었으니 휴식하게 놔두거라.”“알겠습니다. 이번에 심하게 다쳤으니 제가 직접 부엌으로 가서 닭국을 끓이겠습니다.”낙월영은 어질면서도 너그러운 모습을 꾸며내며 말했지만 눈빛에서 보이는 억울함은 감추지 못했고 그 모습은 굉장히 안타까웠다.낙월영이 방에서 나가자 부진환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그리고 낙청연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녀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냉소를 흘렸다.“뭘 그렇게 보십니까? 둘째 아씨가 얼마나 억울할지 생각하시는 겁니까? 속으로는 울고 싶은데 너그러운 척, 착한 척하면서 자신의 연적을 위해 닭국을 끓이러 가다니. 왕야, 얼른 저를 내쫓으시고 왕비의 자리를 낙월영에게 줘서 보상하세요.”낙청연은 조금의 감정도 담지 않고 더없이 평온한 어조로 얘기했다.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비아냥대는 그녀의 말에 부진환은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했다.부진환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지금 내 탓을 하는 것이냐?”낙청연은 가볍게 웃었다.“제가 어찌 감히 왕야를 탓하겠습니까? 제가 죄인인걸요. 그러니 이 모든 건 제가 자초한 일이지요. 이제는 자유마저 제게 과분한 일이 되었습니다.”그녀의 비아냥대는 말에는 가시가 박혀있었고 부진환은 가슴이 저렸다.낙청연은 분명 그를 탓하고 있었다. 그녀를 류씨 저택으로 보내 춤을 추게 하고 그렇게 많은 굴욕적인 일을 겪게 한 것을 말이다.그는 마음이 복잡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정작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상처가 나으면 언제든 떠나거라. 네 진짜 신분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을 것이다. 네가 뭘 하든 앞으로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휴서는 줄 수 없지만 네가 원하는 자유는 줄 수 있다.”낙청연은 냉소를 흘렸다
“전부 잡혀갔습니다. 범 공자도 류씨 가문의 사람으로 인정되어 잡혀갔고 저택의 모든 값어치 있는 물건들이 몰수당했습니다. 범 공자와 류 부인이 몰래 사통하면서 쓴 서신과 증표 또한 몰수당했습니다. 지금 류씨 저택은 텅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습니다!”그 말에 금고는 화를 내며 탁자를 내리쳤다.“섭정왕, 정말 지독하구나! 얼마 되지도 않는 재물을 전부 몰수해 가다니!”금고의 어조가 무거워졌다.“범 공자가 류 부인에게 접근하게 만들어 류 부인의 약점을 캐내고 그것으로 류 부인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는데, 부진환 때문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구나! 그전에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전부 허사가 되었다고!”금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그 말에 낙청연은 잠시 멈칫했다.류 부인이 류 대인을 엄하게 관리한다는 행우의 말이 떠올랐다. 류 대인은 청루 여인들을 모두 자신의 사저로 불러들였다.그날 다쳐서 정신을 잃었던 낙청연은 류 부인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그를 놓아주라고 빌던 게 생각났다. 류 부인이 말한 그는 아마 범 공자일 것이다.류 부인과 범 공자가 사통했고 류 대인이 그 약점을 틀어쥐고 있었기에 그날 류 부인이 낙청연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그런데 그 모든 일이 금고가 계획한 일이었다니, 정말 심계가 깊은 사람이었다.이제 류 대인을 찾을 수 없으니 금고에게 그 복수를 해야 했다.“넌 누구냐?”낙청연이 수상쩍게 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몇몇 여인이 그녀를 불렀고 방 안에 있던 금고는 곧바로 그 점을 알아챘다.그녀는 안색이 돌변해서 벌떡 일어섰다.“누구냐!”금고가 문을 벌컥 열었다.낙청연은 깜짝 놀랐지만 바로 도망가지는 않았고, 문을 여는 순간 그녀를 본 금고는 경악했다.“감히 공공연히 초향각에 와서 몰래 엿듣다니!”금고는 화를 냈고 낙청연은 냉소를 흘렸다.“무서우십니까? 앞으로 더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낙청연은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그녀의 서늘한 목소리에 금고는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이 세계는 줄곧 사내에게 관대했다. 사내는 밖에서 향락을 추구할 수 있고 기껏해야 풍류스럽다는 명성을 얻게 된다.그러나 집안의 부인이 다른 이들의 꼬임에 넘어가 다른 자와 사통한다면 그것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일이고 강에 빠뜨리거나 산 채로 파묻는 극도로 잔인한 수단으로 죽였다.청루가 장사하는 방법은 여인들을 밖에 내세워 손님들을 유혹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사내들을 보내 부군이 있는 부인들을 유혹하고 사통했다는 것을 약점으로 잡는 것은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일이었다.그러니 그 자리에 있는 사내 중 부인이 사통했다는 크나큰 치욕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낙청연의 말에 청루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세상에, 이렇게 비열한 수단을 쓴단 말이오?”“말도 안 되는군! 이런 수법으로 장사를 하다니, 정말 미쳤군!”집에 처첩들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2층에 있던 금고는 안색이 창백해져 호통을 치며 말했다.“저자의 헛소리를 믿지 마십시오! 얼른 저자를 잡거라!”오늘 저 빌어먹을 부설을 반드시 잡을 생각이었다.호위들이 다시 한번 그녀를 덮쳤다.그들은 사면팔방에서 낙청연을 에워싸고 접근하면서 그녀를 잡으려 용을 썼다.낙청연은 붉은 비단을 잡고 높이 뛰더니 다리를 쭉 뻗어 사람들을 쓰러뜨렸다.그녀는 경공을 이용해 가볍게 초향각 내부를 들쑤시고 다녔다. 초향각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들의 속도와 공격에 모두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해 낙청연은 우위를 점령할 수 있었다.그날 낙청연은 초향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고 사람들은 모두 경악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잡힐 것 같았는데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니 손에 땀을 쥐게 됐다.낙청연은 초향각 안이 엉망이 된 걸 보고는 땅을 밟고서 아주 빠른 속도로 대문을 향해 달렸다.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려 2층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여인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초향각은 언젠가 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설루는 언제나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말을 마친
낙청연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어떻게 죽었느냐?”“촛농에 데어 죽었습니다!”송천초는 허리를 숙이면서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고 그 말에 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뭐라고?”송천초가 말을 이어갔다.“거짓말이 아닙니다.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다들 엄청 상세하게 알려줄 겁니다. 류 대인 말고도 허씨 성을 가진 자가 죽었는데 두 손이 잘렸다고 합니다. 정말 잔혹했다고 합니다!”낙청연은 온몸이 경직됐다.허씨 성? 혹시 허 호군인가?“중요한 건 당시 섭정왕이 그 허씨에게 자기 여인을 건드린 자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수도 전체에 섭정왕이 청루의 무희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지요.”송천초는 감탄을 내뱉었다.낙청연은 그 순간 마음에 파문이 일었으나 이내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제일 믿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부진환이 한 말이었다.어쩌면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위장하기 위해서일지도 몰랐고 또 어쩌면 다른 이유나 목적이 있는 걸지도 몰랐다.그는 단 한 번도 자신에게 불리한 일을 한 적이 없다.약을 바꾸고 나니 저녁이 되었고 식사를 마친 뒤 낙청연은 다시 부설루로 향했다.진 어멈은 그녀가 오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낭자, 몸은 어떻습니까? 오늘 초향각에서 다치지는 않으셨습니까?”낙청연은 싱긋 웃으며 걸음을 옮겨 안으로 걸어갔다.“소문이 참 빠르오. 진 어멈도 벌써 알고 있다니.”“오늘 초향각에 큰일이 났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낭자, 참으로 대단하시네요. 이제 수도에서 부설 낭자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낙청연이 위층으로 올라가려 하자 진 어멈이 그녀를 붙잡고 말했다.“7공자께서 부설 낭자를 만나고 싶다고 오셨습니다. 만나시렵니까?”“데려다주시오.”진 어멈은 그녀를 데리고 2층의 조용한 별실로 향했다. 방 안에서는 향긋한 술 냄새가 느껴졌고 몇몇 여인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의자 위에 앉은 부경리는 무척 느긋해 보였다.그녀가 오자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전부 부설 낭자에게 달렸소. 난 그렇게 쓸데없이 참견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오. 그리고 이미 준 물건을 빼앗는 사람도 아니고!”류씨 저택에서 있은 일을 전해 들은 부경리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셋째 형님도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이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류만이 남몰래 구제금을 빼돌린다는 소문까지 접했는데 혹시라도 형님이 늦게 손을 쓴다면 큰일이었다.그래서 형님을 위해 변명을 한 것이다.“감사합니다, 7공자.”낙청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부설 낭자,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소.”부경리는 웃으며 대꾸했다.“그것보다 오늘 초향각에서 크게 소란을 일으켰다고 들었는데 부설 낭자는 참으로 기개가 넘치는군! 초향각은 상대하기 아주 까다로운 곳인데 말이오! 앞으로 조심하시오.”부경리가 일깨워줬고 낙청연은 눈빛이 차가워졌다. 저번에 금고에게 한 번 당했으니 두 번 다시 당하지 않을 셈이었다.이번에 반드시 초향각을 무너뜨릴 생각이었다!“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부경리는 그녀와 잠시 얘기를 나눈 뒤 곧 돌아갔다.—오늘 낙청연이 초향각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는 바람에 장사가 되지 않아 일찍 문을 닫았고 밤에도 장사하지 않았다.낙청연은 부설루에서 떠나지 않았다. 금고가 그녀를 죽일 방법을 생각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그렇게 밤이 깊어지고 밖에서 잠시 소란이 일었지만 부설루는 이내 고요해졌다.낙청연은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었고 2층으로 올라갔다.그곳에 가보니 관청의 사람이 부설루에 쳐들어와 부설루 전체를 통제하고 있었다.진 어멈은 깜짝 놀라서 급히 그를 맞이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사람까지 데려오시고, 무슨 일입니까?”사내는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금을 파는 점포에서 대량의 금 장신구를 잃어버렸는데 그 도둑놈이 부설루로 들어갔다고 누군가 관청에 보고했소! 다들 꼼짝 말고 여기 있으시오! 잠시 뒤 수색을 진행할 것이오!”그 말에 진 어멈은 깜짝 놀랐다.“도둑놈이라니요? 여기에는
낙청연은 관부의 대옥으로 압송되었다. 그것도 중범으로 지뢰의 깊은 곳에 갇히게 되었다.어둡고 습한 기운에 낙청연은 몹시 불편했다. 옥문에 자물쇠를 잠그더니, 발걸음 소리는 멀어져갔다. 죽음과 같은 적막이 순식간에 낙청연의 마음에 휩싸였다.그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풀더미에 앉았다.그 금품들은 계속 잠겨져 있었고, 손을 댄 적도 없다. 그것들은 모두 7황자가 선물한 것이다. 7황자의 이 물건들이 내원에 문제만 없다면, 그녀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그러나 7황자가 그녀를 위해 증명해야 한다.한창 생각하고 있는데, 고요함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이어서 검은색 두봉(鬥篷)을 두른 그림자가 옥문밖에 나타났다.두봉의 모자를 벗자, 금고의 얼굴이 시선에 들어왔다.낙청연은 실눈을 뜨더니 생각했다. 이 금고는 역시 보통이 아니다. 관부의 대옥까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니!“부설 낭자, 참 침착하구나! 혹시 7황자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금고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아쉽구나! 지금 7황자와 섭정왕은 모두 궁에 있단다. 7황자는 제 코도 석자이니, 아마 너를 구할 수 없을 것 같구나!”이 말을 듣고, 낙청연은 가슴이 뜨끔했다.이 금고의 세력이 이 정도로 크다는 말인가? 7황자마저?낙청연은 일어나 옥문밖으로 걸어갔다. 눈빛은 금고를 주시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일하십니까?”그녀는 지금 심지어 의심했다. 벽해각이 한 사람도 살아남지 않은 것은, 금고가 주범이 아니라, 종범(從犯)이라고.그럼 벽해각의 모든 사람을 죽인 배후의 주모자는 벽해각과 무슨 깊은 원한이 있단 말인가?금고의 눈빛도 약간 차가워지더니, 냉랭하게 말했다: “그럼 너는? 너는 누구를 위해 일을 하느냐?”“네가 만약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혹시 너를 살려줄 수도 있다.”금고는 시종 믿지 않았다. 이 세상에 갑자기 부설이라는 낭자가 나타나, 예전에 린부설이 추던 춤을 추고 있는 것을. 그리고 부설 낭자가 혼자서 이렇게 큰일을 해냈을 거라는 것도 믿지 않았다.